맨위로가기

집사 (역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집사》는 14세기 일 칸국 시대에 라시드 앗 딘 하마다니가 저술한 방대한 역사서이다. 이 책은 몽골 제국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유라시아 전역의 역사와 문화를 포괄하며, 몽골 제국 시대의 회화 양식을 보여주는 삽화를 포함하고 있다. 《집사》는 몽골 제국의 왕실 자료와 페르시아, 유럽, 중국 등 다양한 지역의 자료를 바탕으로 몽골, 튀르크 부족의 역사, 유라시아 민족의 역사, 지리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몽골 제국 각지에 배포되었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으며, 몽골 제국 연구의 필수 사료로 평가받는다. 2002년부터 한국어로 번역되어 현재까지 총 5권이 출판되었다.

2. 저자

《집사》의 저자 라시드 앗 딘 하마다니(رشیدالدین فضل‌الله همدانی|Rashīd al-Dīn Faḍlullāh Hamadānīfa, 1247~1318)는 이란 하마단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약사의 아들이었던 그는 의학을 공부하여 일 칸국의 군주 아바카 칸(치세 1265~1281)의 궁정에 들어갔으며, 30세 무렵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그는 빠르게 정치적으로 성장하여 1297년 재상(Vizier)이 되었고, 1304년에는 군주 가잔 칸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세 명의 칸을 섬기며 1316년까지 재상직을 유지했으나, 두 번째로 모셨던 울제이투 칸을 독살했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318년 7월 13일 처형되었다.

라시드 앗 딘은 몽골의 침략으로 파괴된 이란의 사회경제 체제를 재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예술과 건축 분야의 주요 후원자였다. 그는 타브리즈 인근에 세운 학술 복합 단지인 랍어 라시디(Rab'-e Rashidi)를 확장하여 이집트, 시리아, 중국 등지에서 온 학자들과 학생들을 유치하였고, 이곳에서 자신의 저작들을 출판하기도 했다.[44][5] 그는 《집사》 외에도 많은 저술 활동을 했으나, 현재는 《집사》를 제외하면 일부 신학 저술과 진위가 의심되는 서신들만 전해진다. 그의 막대한 재산은 당시 이란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저술가였음을 시사한다.[5]

《집사》는 현대적 관점에서도 국가 차원의 대규모 문화 프로젝트로 평가받는다.[47] 라시드 앗 딘이 최종 편집자였음은 분명해 보이지만, 여러 학자가 참여한 집단 작업의 결과물로 여겨진다. 라시드 앗 딘의 지도 아래 다국적 학자들이 편찬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편찬에 참여했던 아불 카심 알 카샤니(Abu’l Qasim al-Kashani) 등 일부 인물들은 자신들이 세계사 부분을 저술했다고 주장했으며, 특히 카샤니는 라시드 앗 딘이 자신의 공적을 부당하게 가로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47] 라시드 앗 딘 스스로도 공무로 바빠 "하루 중 저술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간은 새벽기도가 끝난 뒤부터 동이 틀 때까지뿐이었다"[47]고 할 정도로, 실제 집필 과정에는 많은 조수와 학자들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라시드 앗 딘은 이들이 작성한 초고를 검토하고 수정하여 최종본을 완성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47] 또한 《집사》의 모든 내용이 독창적인 것은 아니며, 예를 들어 칭기스 칸 사후 시기에 대한 부분은 주베이니(Juvayni)의 저술을 상당 부분 인용하고 있다. 그의 저술은 공식적인 역사 기록으로서 사실적인 어조와 아첨 없는 솔직함이 특징으로 평가받지만,[41] 일 칸국의 역사처럼 자신이 직접 관여한 사건에 대해서는 그의 정치적 입장이나 객관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3. 편찬 배경 및 과정

《집사》는 일 칸국의 제7대 군주 가잔 칸의 명령으로 편찬이 시작되었다.[47] 처음에는 몽골인과 그 조상들의 역사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타리키 가자니》(Taʾrīkh-ī Ghazānī)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는 후에 《집사》(Jāmiʿ al-tawārīkh)의 일부가 되었다.

당시 이란을 지배하던 몽골인들은 점차 정주 문화에 동화되면서 칭기즈 칸 이래 조상들이 이룩한 업적과 몽골 제국의 건설 과정을 잊어가고 있었다.[47] 가잔 칸은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과 기강 해이가 국가 운영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는 "현재 아무도 그러한 일들을 알지도 탐구하지도 않고, 세월이 흘러 아미르의 자손인 젊은이와 새로운 세대들은 조상의 이름과 계보 그리고 지나간 속에도 있었던 정황과 그러한 정황이 일어나게 된 연유에 대해 소홀하고 무지한 상태"라고 개탄하며,[47] 역사서 편찬을 통해 몽골 지배층의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정체성을 재확립하고자 했다. 이는 당시 가잔 칸이 추진하던 세제 개혁, 행정 개혁 등 광범위한 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일종의 '의식 개혁'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47] 즉, 《집사》 편찬은 단순히 과거사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몽골 제국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46]

편찬 작업을 위해 재상 라시드 앗 딘은 수도 타브리즈에 '랍어 라시디'(Rab'-e Rashidi) 대학 구역 내에 편찬소를 설치했다. 이곳에는 모스크, 병원, 도서관, 교실 등이 포함되었으며, 이집트, 시리아, 중국 등지에서 온 학자들과 300명 이상의 인력이 동원되어 자료 수집, 번역, 편집, 삽화 제작 등 방대한 작업을 수행했다.[45][44]

1304년 가잔 칸이 사망하고 그의 동생 울제이투 칸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편찬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울제이투 칸은 라시드 앗 딘에게 기존의 몽골사를 넘어 당대 알려진 세계 전체의 역사를 포함하도록 편찬 범위를 확장할 것을 지시했다. 확장된 《집사》는 1306년부터 1311년 사이에 완성되어 울제이투 칸에게 헌정되었다.[47]

라시드 앗 딘이 최종 편집자이자 총 책임자였음은 분명하지만, 방대한 분량과 다양한 내용을 고려할 때 여러 학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47] 라시드 앗 딘 스스로도 공무로 바빠 저술에 전념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언급한 바 있어,[47] 실제 집필 과정에는 많은 조력자들이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편찬 과정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작업에 참여했던 학자 중 한 명인 아불 카심 알 카사니(Abu’l Qasim al-Kashani)는 자신이 실질적인 저자이며 라시드 앗 딘이 자신의 공적을 가로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47] 이러한 주장의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완전히 근거 없는 이야기로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47]

4. 자료 및 구성

《집사》의 편찬을 위해 라시드 앗 딘은 다양한 지역의 문서와 증언을 폭넓게 수집했다. 이는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전역의 광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문화를 융합하고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주요 참고 자료는 다음과 같다.


  • 이란: 페르시아 역사가 아타 말릭 주베이니가 저술한 몽골 제국 역사서 《세계정복자의 역사》와 구성이 유사하며, 본서에 삽입된 ''샤나메''의 삽화도 이란에서 제작되었다.[50]
  • 유럽: 13세기 도미니코회 수도사였던 오파바의 마르틴이 저술한 《교황과 황제들의 연대기》(''Chronicon Pontificum et Imperatorum'')가 인용되었다.
  • 몽골: 라시드 앗 딘은 일 칸국 궁정에 소장되어 있던 몽골 제국의 왕실 비기(秘記)인 《알탄 뎁테르》(Altan Debter, 금책金策)를 열람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중국: 약에 관한 자료 3권과 행정에 관한 1권 등 중국에서 전래된 자료의 번역본 4종을 참고했다.[51] 라시드 앗 딘 자신도 중국의 서예, 그림, 음악을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몽골족의 시조 알랑 고아와 그 자녀들을 묘사한 삽화(《집사》 파리본). 후세의 가필이 더해져 인물의 얼굴 및 복장은 다른 삽화들과 차이가 있다.


가잔 칸이슬람교 개종 장면을 묘사한 삽화. 티무르 왕조 시대의 1430년경 필사본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집사》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분은 다시 세부 주제별로 나뉜다.

# 제1권: 타리키 가자니 (''Taʾrīkh-ī Ghazānī'') 《집사》의 가장 방대한 부분으로, 원래 가잔 칸의 명으로 편찬이 시작된 『가잔의 축복받은 역사』(Tārīkh-i Mubārak-i Ghāzānī)가 개편되어 제1권 "몽골사"가 되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몽골과 튀르크 부족: 역사, 계보, 전설을 다룬 부족지. 부족들은 칭기즈 칸 가문이 속한 키야트 씨족을 중심으로 족조 전승과 계보에 따라 4가지로 분류된다.
  • 제1장: 오구즈의 자손 및 친족에서 비롯된 24부족 (오구즈계).
  • 제2장: 과거 다른 이름과 수장을 가졌던 튀르크 부족.
  • 제3장: 독립된 수장을 가졌으나 제2장, 제4장 부족과 연관이 없는 튀르크 부족.
  • 제4장: 오래전부터 '몽골'이라 불린 부족.
  • 제1절: 돌루르킨 분족 (콩기라트, 콜라스, 이키레스, 이르지킨, 울리얀키트 등).
  • 제2절: 니룬 분족 (알랑 고아의 자손, 칭기즈 칸과 계통 관계에 있는 몽골계 여러 씨족).
  • 몽골의 역사: 칭기즈 칸부터 마흐무드 가잔 칸의 죽음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칭기즈 칸 가문의 조상과 후예에 대한 본기(Dāstān)로 구성된다.
  • 본기 구성: 각 제왕 본기는 보통 세 부분으로 나뉜다.
  • 제1절: 아내, 후궁, 아들, 계보, 계도, 초상.
  • 제2절: 본문 (치세 중 사건).
  • 제3절: 인물 관련 일화, 금언.
  • 본기 제2, 3절에는 각기 '단'(hikāyat)이라 불리는 이야기가 포함되며, 주요 단에는 동시대 마와라안나흐르, 이란, 미스르 등 다른 지역의 동향 정보도 기록되어 있다.
  • 제1장: 칭기즈 칸 조상 제 본기 (도분 바얀 ~ 예수게이).
  • 제2장: 칭기즈 칸 후예 제 본기 (칭기즈 칸, 오고타이 카안, 조치, 차카타이 칸, 툴루이 칸, 구유크 칸, 몽케 카안, 쿠빌라이 카안, 테무르 카안, 훌레구 칸, 아바카 칸, 아흐마드 칸, 아르군 칸, 게이하투 칸, 가잔 칸).


천사 지브릴의 계시를 받는 무함마드. (14세기, 에든버러 대학교 소장 『집사』 「예언자 무함마드 열전」 삽화)


마라 파피야스의 유혹을 받는 싯다르타. (14세기, 에든버러 대학교 소장 『집사』 아랍어판 「인도인의 역사」 석가모니 열전 삽화)


# 제2권 올제이투 칸의 명으로 추가 편찬된 세계사 부분이다.

# 제3권: 슈 아비 파니가나흐 (''Shu'ab-i panjganah'') 아랍인, 유대인, 몽골인, 프랑크인, 중국인의 다섯 계보를 다룬다. 이 문서는 이스탄불톱카프 궁전 도서관에 두 개의 필사본(ms 2937)으로 존재하지만, 마이크로필름으로만 출판되었다.

# 제4권: 슈와르 알 아콰림 (''Suwar al-aqalim'') 지리 안내서에 해당하는 '제역도지'(諸域圖志)였으나, 현존하는 사본은 없다.

5. 삽화

《집사》의 현존하는 여러 사본에는 다양한 양식의 삽화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몽골 제국 시대 회화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54] 이 삽화들은 일 칸국의 수도였던 타브리즈의 랍어 라시디(Rab'-e Rashidi) 구역에 세워진 편찬소 등에서 제작되었다.[45][54] 라시드 앗 딘의 지시에 따라 매년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판본이 제작되었기에 삽화 양식은 어느 정도 표준화되었는데, 등장인물에게 몽골식 용모와 의상을 부여하여 주요 인물 간의 구별이 어려워지기도 했다.[14][15]

삽화들은 페르시아 미니어처 예술 전통의 일부로, 주로 잉크와 수채화 물감을 사용했으며 때로는 은을 첨가하여 제작되었다. 내용은 역사적, 종교적 사건, 궁정 장면, 다양한 국적과 민족의 권위자들을 묘사한다.[13] 세속적인 맥락에서 인간 형상을 묘사하는 예술은 이슬람 세계에서 지속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9세기 초 압바스 왕조 시대에 번성했다.[53]

'''스타일과 영향'''

《집사》의 삽화는 여러 문화권의 영향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 회화 기법의 영향이 두드러지는데, 어두운 윤곽선과 투명한 수채 기법 사용, 원나라 시대 화풍을 따른 풍경 표현 등이 그 예이다.[11] 이는 이후 페르시아 회화의 특징이 되는 불투명한 수채화 양식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인물의 길쭉한 표현이나 제스처 등에서는 후기 비잔틴 미술의 영향도 나타난다.[16] 일부 학자들은 비잔틴 삽화가 아담이나 족장 등 비(非)몽골 세계사 부분을 묘사할 때 참고 자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17]

250px






250px


1092년, 셀주크 왕조의 재상 니잠 알 물크를 암살하는 하시샤신(왼쪽, 흰 터번)의 모습. 톱카피 MS H 1653 소장본.


《집사》 삽화, 요나와 고래. 이란, 1400년경.


'''주요 사본과 삽화'''

  • '''에든버러 소장본''': 에든버러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이 부분은 1306~1307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48], 페르시아와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 무함마드, 칼리프, 가즈나 왕조, 셀주크 제국, 호라즘 왕조 등의 역사를 다룬다. 총 70개의 세밀화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당시 타브리즈의 국제적인 성격을 반영하여 기독교, 중국, 불교 등 다양한 양식의 영향을 보여준다. 세밀화는 특이하게 가로로 긴 형태인데, 이는 중국 두루마리 그림의 영향일 수 있다. 잉크 드로잉에 수채로 채색하는 기법이 사용되었고, 금속성 은이 많이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산화되어 검게 변했다. "무함마드의 탄생" 장면은 예수의 탄생을 묘사한 비잔틴 구도를 차용하는 등 기독교 미술의 영향도 보인다.[23] 이 사본에는 무함마드를 묘사한 가장 초기 그림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풍경 배경 묘사나 3/4 시점을 이용한 건축물 표현 등도 특징적이다.[24] 학자 라이스(Rice)는 이람 화가, 로라스프 화가, 전투 장면의 대가, 알프 아르슬란의 대가 등 4명의 주요 화가와 조수들을 구분했다. 삽화에는 에티오피아인, 시리아 기독교인, 중국인, 몽골인, 아랍인 등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특징이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다.

  • '''칼릴리 컬렉션 소장본 (MSS 727)''': 데이비드 칼릴리가 수집한 칼릴리 이슬람 미술 컬렉션에 포함된 이 부분은 59개의 필사본으로 구성되며 35개의 삽화가 있다.[27] 1314년 타브리즈에서 제작되었으며, 이슬람, 중국, 인도, 유대인 역사의 일부를 다룬다. 에든버러 소장본과는 다른 사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각 페이지의 크기는 43.5cm × 30cm이다. 에든버러본에서 확인된 로라스프 화가와 알프 아르슬란의 대가의 작품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스타일의 약간의 차이가 관찰되지만, 이는 제작 연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중국 지도자들의 초상화에서는 원나라 벽화 기법(선과 수묵 표현, 검은색과 밝은 붉은색 사용)에 능숙한 새로운 화가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28]

  • '''톱카피 궁전 소장본 (H 1653 & H 1654)''': 이스탄불 톱카피 궁전 도서관에는 14세기 초 페르시아어 사본 두 점이 소장되어 있다.
  • MS H 1653: 1314년에 제작되었으며, 일 칸국 양식의 그림 68점이 포함되어 있다. 티무르 왕조의 샤 루흐 술탄을 위한 후대의 추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18]
  • MS H 1654: 1317년에 제작되었으며, 중국 황제의 초상화 21쪽을 포함하여 118점의 삽화가 실려 있다. 라시드 앗 딘을 위해 필사되었으며, H 1653과 마찬가지로 샤루크가 소유했다.[29] 이 사본은 일 칸국 시대에 미완성 상태로 남겨졌다가 14세기 말과 샤 루흐 통치 시기에 삽화가 추가되었다.[18][13] 이 사본의 삽화는 우구즈 투르크, 중국, 유대교, 프랑크, 인도 역사 등 비이슬람 역사를 다룬 초기 필사본의 공백을 메우는 데 도움을 준다.[13]

  • '''티무르 왕조 시대 사본''': 일 칸국 이후 티무르 왕조 시대에도 《집사》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다. 티무르의 아들 샤 루흐는 미완성 사본을 입수하여 궁정 역사가 하피즈-이 아브루에게 완성을 명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사본들(톱카피 MS B 282, 파리 Supplément persan 1113 등)은 일 칸국 시대 사본의 가로 형식 등을 모방하면서도 의상, 채색 등에서 티무르 왕조의 특징을 보여주는 "역사적 스타일"을 발전시켰다.[30]


이처럼 《집사》의 삽화들은 몽골 제국의 광대한 영토와 활발했던 문화 교류 속에서 탄생한 예술적 성과를 보여주며, 당시의 역사와 사회,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시각 자료를 제공한다.

6. 《집사》의 의의와 영향

《집사》는 일 칸국 시대의 가장 중요한 역사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45] 단순한 기록물을 넘어, 몽골 제국이란 지배를 정당화하고[46] 당시 사회·정치적 개혁과 맞물려 편찬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편찬의 시작은 가잔 칸의 의뢰였다. 그는 페르시아 지역에 정착하며 이슬람 등 현지 문화를 받아들인 몽골인들이 자신들의 유목민적 뿌리와 칭기즈 칸 이래의 역사를 잊어가는 것을 우려했다.[47] 가잔 칸은 이러한 역사의식의 부재와 정체성 상실이 몽골 지배층의 결속을 약화시키고 국정 문란을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47] 따라서 그는 재상 라시드 앗딘에게 몽골 제국사 편찬을 지시함으로써, 다른 제도 개혁의 바탕이 될 '의식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다.[47] 이는 당시 라시드 앗딘이 추진하던 조세 제도 정비, '바라트' 폐지, '이크타' 지급, 지방관 통제 강화, 도량형 통일, 태양력 도입 등 광범위한 개혁 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몽골의 역사와 계보를 다루는 『가잔의 축복받은 역사』(Tārīkh-i Mubārak-i Ghāzānī|타리히 모바라키 가자니fa)로 시작되었다.

1304년 가잔 칸이 사망한 후, 그의 뒤를 이은 울제이투 칸은 라시드 앗딘에게 편찬 범위를 넓혀 당시 알려진 세계 전체의 역사를 다루도록 요청했다.[45] 이에 따라 《집사》는 몽골사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의 다양한 민족과 국가들의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세계사 서술로 확장되었으며, 1310년 혹은 1311년에 완성되었다.

《집사》는 완성 직후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 몽골 제국 내 여러 왕가에 보내졌으며, 아랍어로도 번역되어 맘루크 왕조를 비롯한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졌다.[19] 라시드 앗딘은 자신의 와크프 시설을 통해 매년 페르시아어와 아랍어 사본을 제작하여 각지에 배포하도록 지시했는데,[19] 이는 《집사》가 당대 지식과 문화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비록 라시드 앗딘 사후 편찬소가 파괴되는 등 부침을 겪었으나, 그의 아들 기야스 알딘(Ghiyath al-Din|기야스 알딘fa) 등에 의해 사본이 보존되고 편찬 작업이 이어졌다. 이후 티무르 왕조, 오스만 제국, 사파비 왕조, 무굴 제국 등 후대 왕조에서도 중요한 역사서로 인정받아 지속적으로 필사되고 연구되었다.

도시 문 앞에서 벌어지는 기마전. 라시드 앗-딘, ''자미 알-타와리흐'', Diez Albums, 1300–1325


근대 역사학 연구에서도 《집사》는 13세기 이후 중앙 유라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사료로 평가받는다. 알라딘 아타 말릭 주베이니의 《세계 정복자 역사》와 함께 이 시기 연구의 양대 축을 이루며, 19세기부터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연구되었다. 특히 중국 청나라의 학자 훙쥔은 러시아어 번역본을 통해 《원사》를 연구하고 오류를 바로잡은 《원사역문증보》를 저술했으며, 커샤오민의 《신원사》 편찬에도 영향을 미쳤다. 《집사》에는 쿠빌라이 칸과 테무르 칸 시기 대원조에 대한 《원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독자적인 정보가 풍부하여, 현재까지도 몽골 제국원나라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집사》는 여러 단계에 걸쳐 증보되었고 다양한 언어(페르시아어, 아랍어, 튀르크어 등)로 기록되었으며, 수많은 사본들이 유라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어 원본을 복원하고 정확히 교정하는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이다.

7. 한국어 번역

《집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가 《부족지 - 라시드 앗 딘의 집사1》를 처음 번역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어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다. 2016년에는 《부족지》가 재간되었다. 이후 김호동 교수는 《칭기스칸기》, 《칸의 후예들》, 《일 칸국의 역사》, 《이슬람의 제왕》 순으로 번역을 이어갔으며, 2023년까지 사계절출판사에서 총 5권으로 완역되었다. 2024년에는 이 번역본들의 축약본인 《몽골제국 연대기》가 같은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참조

[1] 문서 Inal
[2] 백과사전 JĀMEʿ AL-TAWĀRIḴ http://www.iranicaon[...] Columbia University 2012-02-02
[3] 문서 Carey
[4] 문서 Compendium of Chronicles
[5] 웹사이트 Ilkhanid Structures Discovered in Tabriz http://www.chnpress.[...] CHN 2012-01-23
[6] 서적 The Illustrated Encyclopedia of Islamic Art and Architecture Lorenz Books
[7] 문서 Blair and Bloom
[8] 문서 Blair
[9] 문서 Blair
[10] 웹사이트 Fitzwilliam Museum http://www.fitzmuseu[...] Cambridge
[11] 학술지 Illustrating History: Rashid al-Din and his Compendium of Chronicles http://dx.doi.org/10[...] 2017-02-13
[12] 백과사전 The Grove Encyclopedia of Islamic Art and Architecture http://dx.doi.org/10[...] 2009-01-01
[13] 학술지 Images of the Peoples of the World Encountered by the Mongols in the Jamiʿ al-tawarikh http://dx.doi.org/10[...] 2019-01-02
[14] 웹사이트 JĀMEʿ al-TAWĀRIḴ ii. Illustrations https://iranicaonlin[...] 2010-05-25
[15] 웹사이트 Folios from the Jami' al-tavarikh (Compendium of Chronicles). http://www.metmuseum[...] 2003-10
[16] 서적 The arts of Islam : treasures from the Khalili Collection http://worldcat.org/[...] The Overlook Press 2010
[17] 학술지 Byzantize Sources for the Jāmi' al-Tāwarīkh of Ra shīd Al-Dīn 1985
[18] 학술지 The Topkapı Manuscript of the Jāmiʿ al-Tawārikh (Hazine 1654) from Rashidiya to the Ottoman Court: A Preliminary Analysis https://www.tandfonl[...] 2018-05-04
[19] 문서 Carey
[20] 문서 Canby
[21] 웹사이트 Folios from the Jami' al-tavarikh http://www.metmuseum[...]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12-01-15
[22] 웹사이트 Medieval Catapult Illustrated in the Jami' al-Tawarikh https://reach.ieee.o[...]
[23] 문서 Blair and Bloom
[24] 문서 Min Yong Cho
[25] 웹사이트 The World History of Rashid al-Din, 1314. A Masterpiece of Islamic Painting http://libraryblogs.[...] 2014-07-14
[26] 서적 The Art of Peace: Eight collections, one vision Penguin Random House
[27] 문서 Blair
[28] 서적 A compendium of chronicles: Rashid al-Din's illustrated history of the world Nour Foundation in association with Azimuth Editions and [[Oxford University Press]]
[29] 문서 Blair
[30] 문서 Blair and Bloom
[31] 문서 金山 2022
[32] 문서 金山 2022
[33] 문서 ラシードッディーン『集史』第 1 巻「モンゴル史」の諸写本に見られる脱落
[34] 학술지 『集史』第2巻「世界史」校訂の諸問題 : モハンマド・ロウシャンの校訂本に対する批判的検討を中心に https://hdl.handle.n[...] 東京外国語大学アジア・アフリカ言語文化研究所
[35] 문서 ラシードゥッディーン『中国史』近刊刊本二種
[36] 논문 『集史』第2巻「世界史」校訂の諸問題
[37] 문서 『集史』パリ写本について
[38] 문서 『集史』テヘラン写本(イラン国民議会図書館写本2294番)について
[39] 이미지 File:DiezAlbumsBirth.jpg
[40] 문서 Inal. p. 163.
[41] 백과사전 JĀMEʿ AL-TAWĀRIḴ http://www.iranicaon[...] Columbia University 2012-02-02
[42] 문서 Carey. p. 158
[43] 문서 "Compendium of Chronicles", p. 9
[44] 웹인용 Ilkhanid Structures Discovered in Tabriz http://www.chnpress.[...] CHN 2012-01-23
[45] 서적 The Illustrated Encyclopedia of Islamic Art and Architecture Lorenz Books
[46] 문서 Blair and Bloom, 3
[47] 서적 김호동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도서출판 사계절, 2010년 https://books.google[...] 도서출판 사계절
[48] 문서 Blair. pp. 31–32.
[49] 문서 Blair. p. 36
[50] 웹사이트 Fitzwilliam Museum http://www.fitzmuseu[...] Cambridge 2017-06-27
[51] 문서 라시드 앗 딘의 집사에 포함된 중국사의 서문에서는 "제왕들의 이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그것에 따라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는 역사서가 하나 있는데, 현재 이 역사서는 키타이인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고 정확하여 신빙성이 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세 명의 불교 승려가 집필하였다는 이 책은 당시 북중국에서 일 칸의 궁정으로 온 두 명의 학자에 의해 번역되어 《집사》 중국사 부분의 집필에 활용된 것이다. 라시드 앗 딘은 이 세 명의 승려와 두 명의 학자의 이름을 기록하였지만, 원래 이름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또한 페르시아어로 번역된 중국의 역사서도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김호동은 현존하는 '중국사'의 내용을 볼 때 1341년에 완성되어 1347년에 간행된 석념상(釋念常)의 《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와 매우 흡사하기는 하지만 '중국사'가 《불조역대통재》보다 수십 년 먼저 편찬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인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중국사의 원자료는 석념상이 활용했던 다른 사서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김호동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도서출판 사계절, 2010).
[52] 문서 원명은 '키타이 제왕의 역사' 혹은 '키타이와 마친의 제왕의 역사'이다.
[53] 서적 Grove Encyclopedia of Islamic Art Vol. II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Inc.
[54] 문서 Bloom & Blair, Grove Enlycl., Vol. II p. 214
[55] 웹인용 Khalili Collection, MSS. 727, folio 66a http://warfare.upher[...] 1305–14
[56] 문서 Blair. p. 7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