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오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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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헬리오그래피는 1811년 니세포르 니에프스가 개발한 사진으로 부식된 판화 기법을 의미한다. 니에프스는 빛에 노출되면 경화되는 유대 비투멘을 사용하여 유리, 금속판 등에 이미지를 고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1822년에는 렌즈 없이 감광성 판에 판화를 접촉시켜 최초의 헬리오그래피 복사본을 만들었고, 1826년에는 퓨터 판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헬리오그래피는 이후 니에프스의 조카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다게레오타입의 개발에도 영향을 미쳤다. 헬리오그래피는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 다게레오타입의 선구자로서, 그리고 화학적 원리를 통해 빛에 의해 경화되는 현상을 이용한 기술로, 사진술의 초기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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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오그래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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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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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사진술 |
발명 | 니세포르 니에프스 (1820년대) |
상세 정보 | |
개발 시기 | 1820년대 초 |
발명가 | 니세포르 니에프스 |
최초의 영구 사진 | 1822년 (파괴됨), 1826년/1827년 (현존) |
감광 물질 | 유대아 아스팔트 |
노출 시간 | 수 시간에서 수 일 |
이미지 | 직접적인 포지티브 이미지 |
기술적 특징 | |
원리 | 빛에 노출된 부분은 경화되어 용매에 녹지 않게 됨 |
사용 재료 | 유대아 아스팔트, 백랍, 유리 또는 금속판 |
용도 | 판화 복제, 풍경 및 정물 사진 제작 |
역사 | |
최초의 성공 | 1822년, 유리판에 이미지 생성 (파괴됨) |
최초의 현존하는 사진 | 1826년/1827년, 《르 그라의 창문에서 본 조망》 제작 |
니에프스의 사망 | 1833년 |
루이 다게르와의 협력 | 1829년부터 1833년까지 |
다게레오타이프의 개발 | 1839년, 다게르에 의해 발표됨 |
헬리오그래피의 쇠퇴 | 다게레오타이프의 등장으로 인해 |
같이 보기 | |
관련 기술 | 사진술, 다게레오타이프, 칼로타이프 |
관련 인물 | 니세포르 니에프스, 루이 다게르 |
2. 발명
니세포르 니에프스는 1811년 사진으로 부식된 판화 기법을 개발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1822년경 이 기법에 헬리오그래피라는 이름을 붙였다.[27]
니에프스는 에칭에 사용되는 산에 강한 유대 비투멘이 빛에 노출되면 경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3] 그는 유리, 아연, 구리 및 은 표면 구리 판, 퓨터, 석회암(석판화)에 이를 코팅하여 실험했으며, 빛에 가장 많이 노출된 표면이 라벤더 오일과 석유에 잘 녹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5] 따라서 코팅되지 않은 그림자 영역은 산 에칭 및 아쿠아틴트를 통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처리하여 검은색 잉크를 인쇄할 수 있었다.[6][7]
1816년, 니에프스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하여 얻은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역청을 기반으로 한 감광층을 사용하여 초기 성과를 달성했지만, 지지체 위의 이미지를 고정할 수는 없었다.
1822년까지 그는 렌즈 없이 판화를 광감응성 판에 접촉시켜 최초의 빛에 강한 헬리오그래피 복사본을 제작했다. 1826년에는 반사 표면으로 이미지가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퓨터 판을 사용했다. 1825년에는 이미지를 인쇄하는 기법을 확립했고, 1826년 또는 1827년에 르 그라의 창밖 풍경을 제작하여 포토레지스트를 처음으로 실현했다.[28]
1826년 여름, 니에프스는 카메라 옵스큐라 내부의 판에 렌즈로 투영된 영구적인 사진 이미지를 처음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용된 과정은 감도가 낮았는데, 헬무트 게른스하임은 노출 시간이 8시간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했고, 마리니에는[13] 3일 이상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14]
니에프스는 1829년 11월 그의 실험 요약본인 "헬리오그래피, 또는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형성된 이미지를 빛의 작용으로 자동 고정하는 방법"을[8][9] 준비했다. 여기에는 그의 "헬리오그래픽" 사진 조각 또는 사진 석판화 방법을 사용하여 잉크로 여러 번 인쇄된 복제품을 만들기 위한 석판화, 요판화 또는 볼록판화 마스터 플레이트를 만들 의도가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10]
헬리오그래피는 니에프스 생전에 그의 의도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의 조카 클로드 펠릭스 아벨 니에프스 드 생빅토르클로드 펠릭스 아벨 니에프스 드 생 빅토르|Claude Félix Abel Niépce de Saint-Victor프랑스어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1855년, 그는 구리 조각가 르메트르의 도움을 받아 헬리오그래프를 에칭하고 거기에서 인쇄물을 제작하여 이후의 사진 식각 과정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1833년 니에프스 사망 후, 기술은 사촌인 아벨 니에프스 드 생빅토르아벨 니에프스 드 생 빅토르|Abel Niépce de Saint-Victor프랑스어에게 계승되었고, 기법은 개량되어 헬리오그라뷔르(그라비어 인쇄)라고 명명되었다.[29]
2. 1. 초기 실험
니세포르 니에프스는 1811년부터 사진을 이용해 부식된 판화를 만드는 기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에칭에 사용되는 산에 강한 유대 비투멘이 빛에 노출되면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았다.[3] 그는 유리, 아연, 구리 및 은 표면 구리 판, 퓨터, 석회암(석판화)에 유대 비투멘을 코팅하여 실험했고, 빛에 가장 많이 노출된 표면이 라벤더 오일과 석유에 잘 녹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5] 따라서 코팅되지 않은 그림자 영역은 산 에칭 및 아쿠아틴트를 통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처리하여 검은색 잉크를 인쇄할 수 있었다.[6][7]
1822년까지 그는 렌즈 없이 판화를 광감응성 판에 접촉시켜 최초로 빛에 강한 헬리오그래피 복사본을 제작했다. 1826년에는 반사 표면으로 이미지가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퓨터 판을 사용했다.
니에프스는 1829년 11월, "헬리오그래피, 또는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형성된 이미지를 빛의 작용으로 자동 고정하는 방법"[8][9]이라는 실험 요약본을 준비했다. 여기에는 잉크로 여러 번 인쇄된 복제품을 만들기 위한 석판화, 요판화 또는 볼록판화 마스터 플레이트를 만드는 수단으로 그의 "헬리오그래픽" 사진 조각 또는 사진 석판화 방법을 사용하려는 의도가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10]
헬리오그래피는 니에프스가 살아있을 때 그의 의도대로 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조카인 클로드 펠릭스 아벨 니에프스 드 생-빅토르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1855년, 그는 구리 조각가 르메트르의 도움을 받아 헬리오그래프를 에칭하고 거기에서 인쇄물을 제작하여 이후의 사진 식각 과정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2. 2. 최초의 헬리오그래피
조제프 니세포르 니에프스는 1811년 사진으로 부식된 판화 기법을 개발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에칭에 사용되는 산에 강한 유대 비투멘이 빛에 노출되면 경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3] 그는 유리, 아연, 구리 및 은 표면 구리 판, 퓨터, 석회암(석판화)에 이를 코팅하여 실험했으며, 빛에 가장 많이 노출된 표면이 라벤더 오일과 석유에 용해되는 것을 가장 저항한다는 것을 발견했다.[5] 따라서 코팅되지 않은 그림자 영역은 산 에칭 및 아쿠아틴트를 통해 전통적으로 처리하여 검은색 잉크를 인쇄할 수 있었다.[6][7]1816년 시점에서 니에프스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하여 얻은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역청을 기반으로 한 감광층을 사용함으로써 초기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아직 지지체 위의 이미지를 고정할 수 없었다. 헬리오그래피라는 명칭은 니에프스에 의해 1822년경에 붙여졌다.[27]
1822년까지 그는 렌즈 없이 판화를 광감응성 판에 접촉시켜 최초의 빛에 강한 헬리오그래피 복사본을 제작했다. 1826년에는 반사 표면으로 이미지가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퓨터 판을 점점 더 많이 사용했다.
이미지를 인쇄하는 기법을 확립한 것은 1825년이었다. 르 그라의 창밖 풍경(1826년 또는 1827년)을 제작하여, 포토레지스트를 처음으로 실현했다.[28]
니에프스는 1829년 11월 그의 실험 요약본인 "헬리오그래피, 또는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형성된 이미지를 빛의 작용으로 자동 고정하는 방법"[8][9]을 준비했는데, 여기에는 잉크로 여러 번 인쇄된 복제품을 만들기 위한 석판화, 요판화 또는 볼록판화 마스터 플레이트를 만드는 수단으로 그의 "헬리오그래픽" 사진 조각 또는 사진 석판화 방법을 사용할 의도가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10]
헬리오그래피는 니에프스 생전에 그의 의도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의 조카 클로드 펠릭스 아벨 니에프스 드 생빅토르|클로드 펠릭스 아벨 니에프스 드 생 빅토르프랑스어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1855년, 그는 구리 조각가 르메트르의 도움을 받아 헬리오그래프를 에칭하고 거기에서 인쇄물을 제작하여 이후의 사진 식각 과정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1833년 니에프스의 사망 후, 기술은 사촌인 아벨 니에프스 드 생빅토르|아벨 니에프스 드 생 빅토르프랑스어에게 계승되었고, 기법은 개량되어 헬리오그라뷔르(그라비어 인쇄)라고 명명되었다.[29]
3.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
조제프 니세포르 니에프스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하여 사진을 촬영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1816년에 염화 은을 사용해 최초로 이미지를 얻었으나 영구적이지는 않았다.[20] 1826년 여름, 그는 최초로 영구적인 사진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3. 1. 최초의 사진
런던에서 돌아온 니에프스는 카메라 이미지를 만드는 데 집중했는데, 형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관점"이라고 모호하게 불렀다. 1816년, 그는 직접 만든 카메라 옵스큐라에 염화은으로 코팅된 빛에 민감한 종이를 넣어 작업실 창밖 풍경의 인상을 얻는 데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미지는 영구적이지 않았다.[20]
1826년 여름, 니에프스는 카메라 옵스큐라 내부의 판에 렌즈로 투영된 영구적인 사진 이미지를 처음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조르주 푸아토니에는 니에프스 형제의 서신을 근거로 1822년 이전에 그러한 첫 번째 이미지가 제작되었다고 주장한다.[11][12] 사용된 과정은 감도가 낮았는데, 헬무트 게른스하임은 노출 시간이 8시간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했고, 마리니에는[13] 그의 기술 재현 시도와 니에프스의 편지 증거를 바탕으로 3일 이상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14]
4. 다게레오타입의 선구자
노출 및 용매 처리된 판 자체는, 게른스하임에 의해 재발견된 ''르 그라의 창가 풍경''의 경우처럼,[15] 20.3cm × 16.5cm 크기의 음화 또는 양화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주변 반사에 따라 달라진다. 적절한 각도로 판을 보면 건물, 나무, 그 너머의 풍경을 담은, 읽을 수 있지만 모호한 양화 사진이 나타난다. 이는 비투멘의 밝은 막과 대조적으로 어두운 그림자 영역이 반사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는 다게레오타입과 다르지 않은데, 다게레오타입은 1826년 파리 광학기사 샤를과 뱅상 슈발리에를 통해 니에프스가 이들에게서 정교한 렌즈를 구매하여 유대 아스팔트를 사용하여 주석판에 이미지를 인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게르가 니에프스의 발견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당시 니에프스는 은판에 만들어진 카메라 이미지의 밝은 부분을 어둡게 만들기 위해 요오드 증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양화 이미지를 만들었다. 다게르와 니에프스는 서로에게 자신의 진전 상황을 드러내기를 꺼리면서 서신을 주고받았다.
4. 1. 다게르와의 협력
두 사람은 공동 작업을 통해 더 빠르게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하여 1829년 12월 14일에 회사를 설립했다.다게르는 음화를 선호했고, 함께 알코올에 녹인 라벤더 오일 잔류물의 광감성을 활용하여 단일하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정인 '''피사토타입'''[16]을 발명했다. 피사토타입은 다게레오타입과 마찬가지로 반사광의 각도에 따라 양화 또는 음화로 보였다.
다게르는 요오드를 사용하여 독창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을 계속 개선했는데, 이는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판에 증기 형태로 적용했을 때의 광감성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다게르는 다게레오타입 공정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 공정에서는 카메라에서 빛에 노출된 판의 요오드화은에 숨겨진 이미지가 수은 증기에 의해 나타났다.
다게르는 아마도 1834년 초에 첫 번째 성공적인 다게레오타입을 제작했을 것이며, 니에프스의 사망 후 1835년 5월 9일에 니에프스의 아들 이시도르와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고 회사 이름을 "니에프스-다게르"에서 "다게르와 이시도르 니에프스"로 변경했다. 1835년 9월 27일, 그는 이 발명을 ''Journal des artistes''에 자신의 발명으로 발표했다.[20] 다게르의 매우 성공적인 동명의 공정은 사용된 특정 화학 물질과 재료 측면에서, 완전히 실현되지 못한 채 상대적으로 잊혀진 니에프스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직접적으로 탄생했다.
4. 2. 다게레오타입 개발
니에프스와 다게르는 공동 작업을 통해 더 빠르게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하여 1829년 12월 14일에 회사를 설립했다.다게르는 음화를 선호했고, 니에프스와 함께 알코올에 녹인 라벤더 오일 잔류물의 광감성을 활용하여 단일하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정인 '''피사토타입'''[16]을 발명했다. 피사토타입은 다게레오타입과 마찬가지로 반사광의 각도에 따라 양화 또는 음화로 보였다.
다게르는 요오드를 사용하여 독창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을 계속 개선했는데, 이는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판에 증기 형태로 적용했을 때의 광감성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다게르는 다게레오타입 공정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 공정에서는 카메라에서 빛에 노출된 판의 요오드화은에 숨겨진 이미지가 수은 증기에 의해 나타났다.
다게르는 아마도 1834년 초에 첫 번째 성공적인 다게레오타입을 제작했을 것이며, 니에프스의 사망 후 1835년 5월 9일에 니에프스의 아들 이시도르와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고 회사 이름을 "니에프스-다게르"에서 "다게르와 이시도르 니에프스"로 변경했다. 1835년 9월 27일, 그는 이 발명을 ''Journal des artistes''에 자신의 발명으로 발표했다.[20] 다게르의 매우 성공적인 동명의 공정은 사용된 특정 화학 물질과 재료 측면에서, 완전히 실현되지 못한 채 상대적으로 잊혀진 니에프스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직접적으로 탄생했다.
5. 화학적 원리
역청은 소량의 질소와 황을 포함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구조의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연결된 벤젠 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빛에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경화되는 현상은 1782년 장 세네비에에 의해 처음 언급되었다. 이는 나무 수지(송진, 또는 아비에트산)의 빛에 의한 경화와 마찬가지로 고리의 추가적인 가교결합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1990년대부터 파리-남부 대학교의 장-루이 마리니에에 의해 연구된 이러한 과정의 광화학은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고 있다.[20]
에칭의 원판은 디자인을 충실히 재현한 인쇄판(대략적으로 말하면, 큰 도장과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다. 먼저 감광성 물질(유대 비투멘)에 빛을 작용시키고, 다음으로 17세기부터 유행하고 있는 기법인 동판에 질산을 사용하여 에칭한다. 이 두 가지 과정의 조합은 후에 "포토그라비어"라고 불리게 되지만, 아벨 니에프스는 "헬리오그라비어(그라비어 인쇄)"라는 말을 사용했다.
시트 형태의 주석(또는 구리, 은 도금 구리)에 라벤더 에센스를 녹인 유다의 아스팔트(접촉하면 굳어지므로 빛에 반응하는 물질)를 바른다. 바니스로 반투명하게 만든 에칭의 원화를 판 위에 놓고 햇빛에 쬔다.
빛은 종이의 잉크가 없는 부분을 투과하고, 아스팔트는 잉크가 그려져 있지 않은 곳에서만 굳어진다.
그 후, 빛이 닿지 않은 부분(경화되지 않아 제거하기 쉬운 부분)에서 아스팔트를 녹여 조각의 검은 선에 대응시킨다. 그 후 산의 작용으로 판을 선택적으로 에칭한다. 아스팔트로 보호되지 않은 선에 해당하는 부분이 산에 의해 깎여 나간다. 아스팔트로 보호되지 않은 판은 "움푹 들어간 곳에" 잉크를 묻히고(일반적인 에칭 기법), 종이에 눌러 찍는다. 이로써 원래의 판화가 "한 줄 한 줄" 재현된다. 새로운 교정 인쇄는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
6. 다른 의미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다른 현상을 지칭하는 데에도 사용되어 왔다.
- 태양의 묘사 (지리학 참고)
- 일반적인 사진술
- 햇빛반사식 신호기를 이용한 신호 전달 (이 장치는 흔히 헤리오트로프 또는 헬리오-텔레그래프라고 불린다)
- 태양 ''의'' 사진술[21]
니엡스가 "héliographie"라고 명명했지만, 19세기 후반에는 "heliography"가 모든 "태양 인쇄"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heliographic processes"는 연속적인 톤이 아닌 선을 위한 복제 인쇄를 구체적으로 의미하게 되었다.[20] 오래된 복제본에서 발견되는 약어 ''héliog.'' 또는 ''héliogr.''는 프랑스어 단어 ''héliogravure''를 나타낼 수 있으며, 이는 모든 형태의 포토그래비어를 지칭할 수 있다.
1850년대 이후, 외젠 들라크루아는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다. 1851년, 그는 헬리오그래피 협회의 창립 멤버가 된다. 클리셰 베르 (Cliché verre|유리 인쇄판프랑스어)를 사용하며, 1854년에는 사진가 Eugène Durieu|외젠 듀리유프랑스어에게 누드 남녀 모델의 사진 시리즈를 의뢰했다.
7. 기타 초기 사진술
- 피사우토타입 (약 1832년)
- 다게레오타입 (약 1835년)
- 캘로타입 (또는 ''탈보타입'', 약 1835년)
- 앰브로타입 (약 1850년)
- 페로타입 (''틴타입''; 약 1850년)
- 콜로디온 습판 (약 1850년)
- 워슬리타입 (1864)
1850년대 이후, 외젠 들라크루아는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다. 1851년, 그는 헬리오그래피 협회의 창립 멤버가 된다. 클리셰 베르(프랑스어: Cliché verre: 유리 인쇄판의 의미)를 사용하며, 1854년에는 사진가 Eugène Durieu|외젠 듀리유프랑스어에게 누드 남녀 모델의 사진 시리즈를 의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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