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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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협차(脇差, 와키자시)는 일본도의 일종으로, 칼날 길이가 30~60cm인 칼을 의미한다. 가타나와 함께 사무라이의 상징으로, 에도 시대에는 다이쇼(大小, 큰 칼과 작은 칼)를 이루어 사무라이의 신분을 나타냈다. 협차는 보조 검, 근접 전투, 세푸쿠 등에 사용되었으며, 실내 전투에 적합하여 단도보다 선호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가타나와 협차의 길이가 공식적으로 규정되었으며, 평민들도 코와키자시(小脇差)를 휴대하여 여행 시 안전을 도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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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차 | |
---|---|
개요 | |
종류 | 칼 |
길이 | 약 30–60 cm |
날의 형태 | 휨, 외날 |
제작 시기 | 무로마치 시대 (1336–1573) ~ 현재 |
명칭 | |
일본어 | (와키자시, '옆에 꽂는 칼') |
특징 | |
설명 | (일본)의 더 짧은 칼 |
칼집 형태 | 옻칠 나무 |
용도 | 사무라이가 휴대하던 칼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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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일본도는 제작 시기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4]
- 조코토(上古刀): 900년경까지 제작된 고대 검
- 코토(古刀): 900년~1596년경에 제작된 옛 검
- 신토(新刀): 1596년~1780년에 제작된 새로운 검
- 신신토(新々刀): 1781년~1876년에 제작된 더 새로운 검
- 겐다이토(現代刀): 1876년 이후 현재까지 제작된 현대 검
와키자시는 칼날 길이에 따라 오와키자시(大脇差)와 코와키자시(小脇差)로 나뉜다. 오와키자시는 가타나에 가까운 길이이며, 코와키자시는 단도에 가까운 길이다.[1] 와키자시가 반드시 가타나의 작은 버전인 것은 아니며, 제작 방식과 단면이 다를 수 있다.[5]
칸잔 사토는 그의 저서 《일본도》에서 와키자시가 실내 전투에 더 적합했기 때문에 단토보다 더 인기를 얻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는 성이나 궁궐에 들어갈 때 가타나를 문에 두고, 안에서는 와키자시를 착용하는 관습을 언급한다.[21]
남북조 시대에 쓰여진 『태평기』(1370년경 완성)에는 '협차'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후치베 요시히로가 "협차의 칼"을 사용하거나, 난토(南都)의 중도(衆徒, 나라의 승병) 등이 "협차의 태도"를 가졌다는 묘사가 있다. 그러나 이 '협차'는 숨겨서 차는 것을 의미하며, 갑옷 밑에 숨겨둔 단도나 법의(法衣) 밑에 숨겨둔 코다치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전국 시대에는 긴 타치(太刀)가 등장하면서 큰 타치와 작은 타치를 함께 차는 대소(大小) 풍습이 생겼다. 이때 '칼'은 큰 타치를, '협차'는 작은 타치를 가리키게 되었다. 대소 사용이 시작된 정확한 시기는 여러 설이 있지만, 에이로쿠 연간(1558~1570년) 이후로 추정된다. 15세기 중반 이씨 조선의 신숙주와 16세기 초 이세 사다요리의 기록에는 무사가 한 자루의 칼만 차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바쿠마츠 시대에는 3척(약 90cm) 전후의 긴 타치가 유행했고, 협차도 긴 것이 선호되었다. 신선조 국장 곤도 이사미는 타치와 거의 같은 길이의 긴 협차를 선호했다는 기록이 있다.
2. 1. 초기 역사 (15~16세기)
''와키자시''는 15세기[6] 또는 16세기부터 사용되었다.[7] ''와키자시''는 보조 검으로 사용되었으며,[1] 근접 전투, 패배한 적의 참수[8], 때로는 세푸쿠를 행하는 데 사용되었다.[9] ''와키자시''는 요로이 토시와 ''치사-가타나''를 포함하여 사무라이가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단검 중 하나였다. ''와키자시''라는 용어는 원래 칼날 길이를 명시하지 않았으며[10] ''와키자시노 가타나''("옆구리에 찌르는 칼")의 약어였고, 모든 크기의 동반 검에 적용되었다.[11]
에도 시대 동안, 도쿠가와 막부는 사무라이에게 ''가타나''와 짧은 칼을 쌍으로 착용하도록 요구했다. 이 짧은 칼은 ''와키자시''와 ''단토''였으며, 주로 ''와키자시''가 선택되었다.[12] ''가타나''와 함께 착용하는 ''와키자시''는 착용자가 사무라이임을 나타내는 공식적인 표시였다. 함께 착용했을 때, 두 칼은 문자 그대로 "큰-작은"을 의미하는 ''다이쇼''라고 불렸다. 오직 ''사무라이''만이 ''다이쇼''를 착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들의 사회적 권력과 개인적인 명예를 나타냈다.[13][14][15]
이 시대에는 평민들도 합법적인 길이의 ''코와키자시''를 하나 착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와키자시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강도와 마주칠 위험 때문에 여행할 때 흔했다.[16][17] ''와키자시''는 왼쪽 허리에 차고 허리띠(''Uwa-obi or himo'')에 고정되었다.[18][19] 1638년 일본의 통치자들이 검의 종류와 그것을 착용할 수 있는 사회 계층을 규제하려 했을 때 비로소 ''가타나''와 ''와키자시''의 길이가 공식적으로 정해졌다.[20]
2. 2. 에도 시대 (17~19세기)
에도 시대 도쿠가와 막부는 사무라이에게 가타나와 짧은 칼을 쌍으로 착용하도록 요구했다. 짧은 칼로는 와키자시와 단도가 있었으나, 주로 와키자시가 선택되었다.[12] 가타나와 함께 착용하는 와키자시는 착용자가 사무라이임을 나타내는 공식적인 표시였다. 이 두 칼을 함께 착용했을 때 ''다이쇼''(大小, 큰 칼과 작은 칼)라고 불렀다. 오직 사무라이만이 다이쇼를 착용할 수 있었으며, 이는 그들의 사회적 권력과 개인적인 명예를 상징했다.[13][14][15]--
당시 평민들도 합법적인 길이의 ''코와키자시''를 하나 착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와키자시를 착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특히 강도를 만날 위험이 있는 여행길에서 자주 착용했다.[16][17] 와키자시는 왼쪽 허리에 차고 허리띠(''Uwa-obi or himo'')에 고정했다.[18][19] 1638년, 일본 통치자들이 칼의 종류와 착용 가능한 사회 계층을 규제하면서 가타나와 와키자시의 길이가 공식적으로 정해졌다.[20]
부케 쇼핫토의 첫 번째 개정에 따라, 무사의 정식 차림새는 다이쇼 두 자루를 차는 것으로 정해졌다. 다이토(大刀)는 혼자시, 쇼토(小刀)는 와키자시를 장비했다. 이때 와키자시는 칼날 길이 1척(30cm) 이상 2척(60cm) 미만으로 정해져 쇼토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쇼토의 칼 장식에는 다이토와 달리 코즈카는 붙이지만 코가이는 붙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타치의 츠바에는 칼날을 통과시키는 중심 구멍(나카고아나) 외에 코가이히츠와 코즈카히츠 두 구멍이 뚫려 있지만, 쇼토의 츠바에는 코즈카히츠 구멍만 뚫려 있다.

타치나 타치는 옥내에 들어갈 때 칼걸이에 두거나 츄겐 등에게 맡겼지만, 와키자시는 그대로 허리에 찼다. 착석 시에도 타치는 손에 없거나 옆이나 뒤에 두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습격에 대처할 때는 와키자시를 사용했다. 『일본 무술 신묘기』에는 의례 자리에서 타치를 뽑아야 하지만, 유사시에는 와키자시 한 자루로 주군을 지켜야 하므로, 이를 대비해 와키자시에 나가바카마 차림으로 수련하는 무사 기술이 있었다. 이처럼 근세에는 전장 외에서도 와키자시를 사용할 일이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와키자시 휴대가 허용되지 않는 곳은 쇼군의 어전 등 제한된 장소뿐이었다.
와키자시는 정식 무기로 여겨지지 않아 츄겐 외에 백성, 마을 사람 등 비무사 신분도 휴대 제한이 없었다. 야쿠자는 "나가와키자시"라 불리는 2척 미만(1척 7~8촌)의 와키자시를 차고 다녔다.
칼은 넓은 의미로는 일본도 전체를, 좁은 의미로는 2척(약 60.6cm) 이상 칼날 길이에 칼날을 위로 향하게 하여 허리에 차는 것을 말한다. 2척 미만의, 칼과 같은 형태의 일본도는 협차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은 에도 시대 중반에 정착되었다.
1726년(교호 11년) 스미노 주켄의 『교호고기』, 1753년(호레키 3년) 마츠미야 칸잔의 『속일보집』, 1795년(칸세이 7년) 사카키바라 나가토시의 『본방도검고』 등에 따르면, 칼과 협차를 나누는 기준인 2척은 혼아미 가문이 감정서(오리가미)를 쓸 때 편의상 정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방에 따라 혼아미 가문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기도 했다. 1834년(덴포 5년) 아라이 타마에의 『화한도검담』에 따르면, 센다이 번에서는 칼과 협차를 나누는 기준이 2척 1촌(약 63.6cm)이었다.
2. 3. 근현대 (19세기 말 ~ 현재)
일본도 제작은 다음과 같은 특정 기간으로 나뉜다.[4]- ''조코토''(고대 검, 서기 900년경까지)
- ''코토''(900–1596년경의 옛 검)
- ''신토''(새 검 1596–1780)
- ''신신토''(더 새로운 검 1781–1876)
- ''겐다이토''(현대 검 1876–현재)
에도 시대 동안, 도쿠가와 막부는 사무라이에게 ''가타나''와 짧은 칼을 쌍으로 착용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짧은 칼은 ''와키자시''와 ''단도''였으며, 주로 ''와키자시''가 선택되었다.[12] ''가타나''와 함께 착용하는 ''와키자시''는 착용자가 사무라이임을 나타내는 공식적인 표시였다. 함께 착용했을 때, 두 자루의 칼은 문자 그대로 "큰-작은"을 의미하는 ''다이쇼''라고 불렸다. 오직 ''사무라이''만이 ''다이쇼''를 착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들의 사회적 권력과 개인적인 명예를 나타냈다.[13][14][15] 이 시대에는 평민들도 합법적인 길이의 ''코와키자시''를 하나 착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와키자시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강도와 마주칠 위험 때문에 여행할 때 흔했다.[16][17] ''와키자시''는 왼쪽 허리에 차고 허리띠(''Uwa-obi or himo'')에 고정되었다.[18][19] 1638년 일본의 통치자들이 검의 종류와 그것을 착용할 수 있는 사회 계층을 규제하려 했을 때 비로소 ''가타나''와 ''와키자시''의 길이가 공식적으로 정해졌다.[20]

3. 특징
와키자시는 칼날 길이가 30cm에서 60cm 사이인 일본도이다.[1] 가타나에 가까운 길이의 와키자시는 오와키자시, 단도에 가까운 길이의 와키자시는 코와키자시라고 불린다.[1] 와키자시는 가타나의 축소판이 아니며, 제작 방식과 단면이 다를 수 있다.[5]
원래 '타치'는 길이에 상관없이 칼날을 위로 하여 허리에 차고 칼집을 부착하는 일본도의 총칭이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1척(약 30.3cm)에서 2척 정도의 타치가 주류였다.
'협차'라는 단어는 남북조 시대 『태평기』(1370년경 완성)에 용례가 보인다. 후치베 요시히로가 "협차의 칼"을 사용하거나, 난토 승병들이 "협차의 태도"를 가졌다는 묘사가 있다. 그러나 일설에는 이 '협차'가 숨겨 차는 것을 의미하며, 갑옷 밑 단도, 법의 밑 코다치를 가리킨다고 한다.
전국 시대에 긴 타치가 나타나면서 큰 타치와 작은 타치를 함께 차게 되었고, '칼'은 큰 타치, '협차'는 작은 타치를 가리키게 되었다. 대소 사용 시기는 에이로쿠 연간(1558–1570년) 이후로 추측된다.
에도 시대에 칼과 협차를 나누는 칼날 길이 기준(2척)이 정착되었다. 1726년 등의 기록에 따르면, 이 기준은 혼아미 가문이 감정서 작성 시 편의상 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 이 기준이 침투하지 않아, 센다이 번에서는 칼과 협차 구분 기준이 2척 1촌(약 63.6cm)이었다.
3. 1. 종류
''와키자시''는 칼날 길이에 따라 구분되는 일본도이다.[1] 가타나에 가까운 길이의 ''와키자시''는 ''오와키자시'', 단도에 가까운 길이의 ''와키자시''는 ''코와키자시''라고 불린다.[1] ''와키자시''는 ''가타나''의 축소판이 아니며, 제작 방식과 단면이 다를 수 있다.[5]
종류 | 칼날 길이 |
---|---|
오와키자시(大협차) | 1자(尺) 8치(寸) 이상 2자 미만 (54.5 - 60.6cm) |
주와키자시(中협차) | 1자 3치 이상 1자 8치 미만 (40 - 54.5cm) |
코와키자시(小협차) | 1자 이상 1자 3치 미만 (40cm 미만) |
바쿠마츠 시대 신선조 국장 곤도 이사미는 타치와 거의 같은 길이의 긴 협차를 선호했다.
3. 2. 사용
와키자시는 15세기[6] 또는 16세기부터 사용되었다.[7] 보조 검으로 사용되었으며, 근접 전투, 패배한 적의 참수[8], 때로는 세푸쿠를 행하는 데 사용되었다.[9] 요로이 토시와 치사가타나 등 사무라이가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단검 중 하나였다. 와키자시라는 용어는 원래 칼날 길이를 명시하지 않았으며,[10] "옆구리에 찌르는 칼"을 의미하는 "와키자시노 가타나"의 약어였다.[11]
에도 시대 도쿠가와 막부는 사무라이에게 가타나와 함께 와키자시 또는 단토를 착용하도록 요구했다. 이 중 와키자시가 주로 선택되었다.[12] 가타나와 함께 착용하는 와키자시는 사무라이의 공식적인 상징이었다. 다이쇼는 사무라이만이 착용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사회적 권력과 명예를 나타냈다.[13][14][15] 평민들도 합법적인 길이의 코와키자시를 착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대중도 와키자시를 휴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강도를 만날 위험이 있는 여행 시에 흔했다.[16][17] 와키자시는 왼쪽 허리에 차고 허리띠(''Uwa-obi or himo'')에 고정했다.[18][19] 1638년, 일본 통치자들이 검의 종류와 착용 계층을 규제하면서 가타나와 와키자시의 길이가 공식적으로 정해졌다.[20]
칸잔 사토는 저서 "일본도"에서 와키자시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실내 전투에 더 적합했기 때문에 단토보다 인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성이나 궁궐에 들어갈 때 가타나는 문에 두고, 안에서는 와키자시를 착용하는 관습을 언급한다.[21]
사시가타나에서 발전했으며, 타치처럼 칼날을 위로 하여 허리에 찼다. 에도 시대 부케쇼핫토에 따라 무사의 정식 복장은 다이쇼(대도와 소도)를 착용하는 것이었다. 다이토는 혼자시, 쇼토는 와키자시로, 칼날 길이는 1척(30cm) 이상 2척(60cm) 미만으로 정해졌다. 쇼토의 칼 장식에는 코즈카는 붙이지만 코가이는 붙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타치의 츠바는 중심 구멍 외에 코가이히츠와 코즈카히츠 두 구멍이 있지만, 쇼토의 츠바는 코즈카히츠 구멍만 있다.
타치나 타도는 실내에 들어갈 때 칼걸이에 두거나 츄겐에게 맡겼지만, 와키자시는 허리에 찬 채로 있었다. 착석 시 타치는 옆이나 뒤에 두어 불의의 습격에 대처하기 어려웠으므로, 와키자시를 사용했다. 『일본 무술 신묘기』에는 의례 자리에서 타치를 뽑아야 하지만, 유사시 와키자시로 주군을 지켜야 하므로, 와키자시와 나가바카마 차림으로 수련하는 무사 이야기가 있다. 쇼군 어전 등 제한된 장소에서만 와키자시 휴대가 허용되지 않았다.
와키자시는 정식 무기로 여겨지지 않아 부케 봉공인 외에 백성, 마을 사람 등 비무사 신분도 휴대 제한이 없었다. 야쿠자는 "나가와키자시"라 불리는 2척 미만의 와키자시를 휴대했다. 보조 장비였지만, 무기 파손에 대비해 코다치술도 고안되었다. 짧은 칼날 때문에 상대와 접근하여 체술과 병용하는 기술이 있으며, 유파에 따라 유술에 포함되기도 한다. 니텐이치류 등 이도류 유파에는 와키자시를 던져 상대를 제압하는 오의가 전승된다.
실내에 휴대 가능하고 칼날이 짧아 실내나 숲 등 좁은 장소 전투에 유리했다. 상의 토벌·무례 토벌 시 부당함을 느낀 자는 와키자시로 저항할 수 있었다. 무례 토벌을 당하는 자가 저항하지 않으면 가문 박탈 등 엄격한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양측 모두 목숨을 걸고 임해야 했다. 상사가 상의 토벌을 할 때, 먼저 와키자시를 들려 자극하고 저항하게 한 뒤 베는 경우도 있었다.
4. 픽션에서의 협차
5.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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