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흥부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흥부전은 형제간의 우애와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고전 소설이다. 가난하지만 착한 흥부가 제비를 구해준 보답으로 부자가 되자, 욕심 많은 형 놀부가 이를 따라 하려다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판소리계 소설로,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며, 한국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표면적으로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다루지만, 이면적으로는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와 경제적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 흥부전은 오늘날까지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어 영화,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의 민담 - 아기장수 우투리
    아기장수 우투리는 한국 전래 설화에 등장하는 영웅으로, 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비범한 아이가 역모를 일으킬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죽임을 당하거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는 공통된 줄거리를 가진다.
  • 한국의 민담 -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호랑이에게 쫓기던 오누이가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한국 민담으로, 권선징악의 교훈과 가족애를 담고 있으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 한국의 전설 - 2009 전설의 고향
    2009 전설의 고향은 2009년 8월에 방영된 10부작 드라마로, 다양한 한국 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신분 제도, 여성 억압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 한국의 전설 - 전설의 고향
    전설의 고향은 KBS에서 1977년부터 2009년까지 방영된 드라마 시리즈로, 한국의 전설이나 민담을 바탕으로 한 공포, 드라마 장르의 에피소드들을 선보였으며, KBS 아카이브 디지털 프로젝트를 통해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시청할 수 있다.
  • 조선의 소설 - 사씨남정기
    사씨남정기는 김만중이 지은 고전 소설로, 사씨가 첩의 모함으로 쫓겨나는 과정을 통해 권선징악을 보여주며, 숙종 시대의 정치 상황을 풍자하고 가부장제를 비판한다.
  • 조선의 소설 - 홍길동전
    《홍길동전》은 조선 시대 사회 문제 속에서 서얼 출신 홍길동이 활빈당을 이끌고 의적 활동을 펼치다 율도국을 건설하는 이야기를 그린 한글 소설로, 사회 비판과 민중 영웅 제시를 통해 문학적,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다양한 매체로 각색되어 한국 문화의 주요 상징이 되었다.
흥부전
지도
기본 정보
유형고전 소설
언어한국어
창작 시기조선 시대 후기
등장인물
주요 인물흥부
놀부
줄거리
내용형제간의 갈등과 권선징악을 다룬 이야기
주제선행과 악행의 결과
형제간의 우애
특징
문체평민적
해학적
배경조선 시대 사회상 반영
양반 사회 비판
영향
파생 작품흥부 (영화)
각종 연극, 뮤지컬
구전 설화의 형태로 전승
기타
로마자 표기Heungbu Jeon (흥부전)
한자 표기興甫傳
다른 제목흥부와 놀부

2. 등장인물

흥부는 남보다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당시 사회적 모순으로 희생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박을 통해 값이 비싼 물건들을 얻어 부자가 되어 다른 기민들에게 나눠주는 공동체적 삶의 정신의 소유자이다.[2]

흥부와 놀부는 매우 부유한 아버지의 아들인 형제였다. 형인 놀부는 매우 탐욕스럽고 냉정했지만, 동생인 흥부는 친절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시던 날, 형제는 아버지가 재산을 둘로 나누어 각자에게 주도록 유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놀부는 흥부와 그의 가족을 속여 재산을 모두 차지하고 흥부 가족을 내쫓았다. 흥부는 불평하지 않고 가난을 받아들였다.[2]

어느 가을, 흉년이 들어 흥부 가족은 먹을 것이 없게 되었고, 흥부는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구걸하려고 형의 집으로 갔다. 남편만큼이나 잔인한 놀부의 아내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었다. 흥부를 본 아내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밥주걱으로 흥부의 얼굴을 때렸지만, 흥부는 불평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뺨에 묻은 밥풀을 긁어낸 후, 다시 때려달라고 부탁했다. 흥부를 어리석다고 생각한 아내는 부탁대로 했다. 흥부는 다른 뺨에 묻은 밥풀도 모아 아이들에게 먹였다.[2]

돌아오는 길에, 흥부는 이 새끼 제비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흥부는 뱀을 쫓아 버리고,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해 주었다. 아이들은 제비가 완전히 낫도록 정성껏 돌보았다. 아이들은 제비를 정성껏 돌보고 벌레를 먹였다. 제비의 다리가 나을 무렵, 제비는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제비들과 함께 날아갔다. 사흘 후, 제비는 호박씨를 물고 와 흥부의 손에 떨어뜨렸다. 흥부는 씨앗을 뒷마당에 심고 싹이 트기를 기다렸다. 그 씨앗은 세 개의 큰 호박을 맺었다. 수확할 때가 되자, 흥부는 호박 속에 보물과 고급 옷감, 그리고 하인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기뻐했다.[2]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마을 전체에 퍼져 놀부에게까지 미쳤다. 놀부는 망설임 없이 흥부를 찾아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부자가 되었는지 물었다. 놀부는 형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지만, 스스로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이듬해 봄, 제비는 놀부에게 조롱박 씨앗을 가져다주었고, 놀부는 그것을 심었다. 놀부가 조롱박을 쪼개자, 각 조롱박에서 파괴적인 것들이 나왔다. 첫 번째 조롱박에서는 도깨비가 나와 놀부의 탐욕을 나무랐다. 두 번째 조롱박에서는 채권추심원들이 나타나 돈을 요구했다. 세 번째 조롱박에서는 진흙탕물이 쏟아져 집이 침수되었다.[3] 놀부와 그의 아내는 모든 재산을 잃었다.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놀부 부부는 흥부에게 용서를 구했고,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2]

"흥부"와 "놀부"와 같은 이름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선행이 부와 행운을 가져온다는 교훈은 전 세계 여러 문화의 다른 민담과 유사하다. 이 이야기는 또한 한국에서 장남이 가장 중요한 자녀라는 일반적인 한국적 가치관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큰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최근 "흥부와 놀부"는 미국 교과서인 "Literary Place 2, 3"에 실렸다.[3]

놀부는 심성이 사악하며 동생 흥부 일가를 집에서 쫓아냈다.[2] 재물을 바탕으로 윤리 규범을 깨뜨리며 사회적 모순을 심화시키는 인물이다. 흥부와 놀부는 매우 부유한 아버지의 아들인 형제였으나, 놀부는 매우 탐욕스럽고 냉정했다.[2]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재산을 나누어 주었지만, 놀부는 흥부와 그의 가족을 속여 모든 재산을 차지하고 흥부 가족을 내쫓았다.[2]

어느 가을, 흉년으로 흥부 가족이 굶주리자, 흥부는 형의 집으로 가서 음식을 구걸했다. 그러나 놀부의 아내는 흥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밥주걱으로 뺨을 때렸다. 그럼에도 흥부는 불평하지 않고, 뺨에 묻은 밥풀을 긁어모아 아이들에게 먹였다.[2]

이후 흥부가 부자가 된 것을 알고, 놀부는 흥부를 찾아와 그 비결을 물었다. 흥부에게서 제비 이야기를 들은 놀부는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고쳐준 뒤, 제비가 가져다준 박씨를 심었다. 그러나 박이 열리자 그 안에서 도깨비, 빚쟁이, 진흙 등이 쏟아져 나와 놀부는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었다.[3] 결국 놀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흥부에게 용서를 구했다.[3]

흥부는 뱀에게 잡아먹힐 뻔한 새끼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해 주었다.[2] 아이들은 제비가 완전히 낫도록 정성껏 돌보았고, 다리가 나을 무렵 다른 제비들과 함께 날아갔다. 이듬해 춘삼월 어느날, 제비는 박씨('''보은박''') 하나를 물고 흥부의 집으로 돌아와 은혜를 갚는다.[3] 제비는 월동을 위해 중국 강남으로 매년 겨울 날아가는 철새이다. 이는 당대 민중의 삶의 이치인 "권선징악"을 형상화시켜 주는 소재이다.

흥부가 밥을 구걸하러 왔을 때, 밥풀이 묻은 주걱으로 흥부의 뺨을 치는 등 놀부 못지않게 흥부를 괴롭혔다.

2. 1. 흥부

흥부는 남보다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당시 사회적 모순으로 희생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박을 통해 값이 비싼 물건들을 얻어 부자가 되어 다른 기민들에게 나눠주는 공동체적 삶의 정신의 소유자이다.[2]

흥부와 놀부는 매우 부유한 아버지의 아들인 형제였다. 형인 놀부는 매우 탐욕스럽고 냉정했지만, 동생인 흥부는 친절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시던 날, 형제는 아버지가 재산을 둘로 나누어 각자에게 주도록 유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놀부는 흥부와 그의 가족을 속여 재산을 모두 차지하고 흥부 가족을 내쫓았다. 흥부는 불평하지 않고 가난을 받아들였다.[2]

어느 가을, 흉년이 들어 흥부 가족은 먹을 것이 없게 되었고, 흥부는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구걸하려고 형의 집으로 갔다. 남편만큼이나 잔인한 놀부의 아내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었다. 흥부를 본 아내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밥주걱으로 흥부의 얼굴을 때렸지만, 흥부는 불평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뺨에 묻은 밥풀을 긁어낸 후, 다시 때려달라고 부탁했다. 흥부를 어리석다고 생각한 아내는 부탁대로 했다. 흥부는 다른 뺨에 묻은 밥풀도 모아 아이들에게 먹였다.[2]

돌아오는 길에, 흥부는 이 새끼 제비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흥부는 뱀을 쫓아 버리고,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해 주었다. 아이들은 제비가 완전히 낫도록 정성껏 돌보았다. 아이들은 제비를 정성껏 돌보고 벌레를 먹였다. 제비의 다리가 나을 무렵, 제비는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제비들과 함께 날아갔다. 사흘 후, 제비는 호박씨를 물고 와 흥부의 손에 떨어뜨렸다. 흥부는 씨앗을 뒷마당에 심고 싹이 트기를 기다렸다. 그 씨앗은 세 개의 큰 호박을 맺었다. 수확할 때가 되자, 흥부는 호박 속에 보물과 고급 옷감, 그리고 하인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기뻐했다.[2]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마을 전체에 퍼져 놀부에게까지 미쳤다. 놀부는 망설임 없이 흥부를 찾아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부자가 되었는지 물었다. 놀부는 형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지만, 스스로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이듬해 봄, 제비는 놀부에게 조롱박 씨앗을 가져다주었고, 놀부는 그것을 심었다. 놀부가 조롱박을 쪼개자, 각 조롱박에서 파괴적인 것들이 나왔다. 첫 번째 조롱박에서는 도깨비가 나와 놀부의 탐욕을 나무랐다. 두 번째 조롱박에서는 채권추심원들이 나타나 돈을 요구했다. 세 번째 조롱박에서는 진흙탕물이 쏟아져 집이 침수되었다.[3] 놀부와 그의 아내는 모든 재산을 잃었다.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놀부 부부는 흥부에게 용서를 구했고,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2]

"흥부"와 "놀부"와 같은 이름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선행이 부와 행운을 가져온다는 교훈은 전 세계 여러 문화의 다른 민담과 유사하다. 이 이야기는 또한 한국에서 장남이 가장 중요한 자녀라는 일반적인 한국적 가치관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큰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최근 "흥부와 놀부"는 미국 교과서인 "Literary Place 2, 3"에 실렸다.[3]

2. 2. 놀부

놀부는 심성이 사악하며 동생 흥부 일가를 집에서 쫓아냈다.[2] 재물을 바탕으로 윤리 규범을 깨뜨리며 사회적 모순을 심화시키는 인물이다. 흥부와 놀부는 매우 부유한 아버지의 아들인 형제였으나, 놀부는 매우 탐욕스럽고 냉정했다.[2]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재산을 나누어 주었지만, 놀부는 흥부와 그의 가족을 속여 모든 재산을 차지하고 흥부 가족을 내쫓았다.[2]

어느 가을, 흉년으로 흥부 가족이 굶주리자, 흥부는 형의 집으로 가서 음식을 구걸했다. 그러나 놀부의 아내는 흥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밥주걱으로 뺨을 때렸다. 그럼에도 흥부는 불평하지 않고, 뺨에 묻은 밥풀을 긁어모아 아이들에게 먹였다.[2]

이후 흥부가 부자가 된 것을 알고, 놀부는 흥부를 찾아와 그 비결을 물었다. 흥부에게서 제비 이야기를 들은 놀부는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고쳐준 뒤, 제비가 가져다준 박씨를 심었다. 그러나 박이 열리자 그 안에서 도깨비, 빚쟁이, 진흙 등이 쏟아져 나와 놀부는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었다.[3] 결국 놀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흥부에게 용서를 구했다.[3]

2. 3. 제비

흥부는 뱀에게 잡아먹힐 뻔한 새끼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해 주었다.[2] 아이들은 제비가 완전히 낫도록 정성껏 돌보았고, 다리가 나을 무렵 다른 제비들과 함께 날아갔다. 이듬해 춘삼월 어느날, 제비는 박씨('''보은박''') 하나를 물고 흥부의 집으로 돌아와 은혜를 갚는다.[3] 제비는 월동을 위해 중국 강남으로 매년 겨울 날아가는 철새이다. 이는 당대 민중의 삶의 이치인 "권선징악"을 형상화시켜 주는 소재이다.

2. 4. 놀부의 처

흥부가 밥을 구걸하러 왔을 때, 밥풀이 묻은 주걱으로 흥부의 뺨을 치는 등 놀부 못지않게 흥부를 괴롭혔다.

3. 주제

소설 '''흥부전'''은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조선 사회의 유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며 인과응보에 따른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착한 흥부가 제비를 만나 다리를 고쳐주고 박을 얻어 부자가 되자 놀부는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흥부와 똑같이 행동하지만 되려 벌을 받고 착해지며 사이좋게 지냈다는 줄거리는 인과응보에 따른 권선징악과 형제애를 강조한 흥부전의 주제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작품의 배경이 된 당시 조선 후기 사회는 신흥 계급이 등장하면서 유교적 질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때였다. 당대의 사회상을 생각하면 흥부는 무능하고 몰락한 양반으로, 놀부는 탐욕스러운 신흥 상인 계급의 모습을 투영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흥부전''', 그 이면의 주제는 몰락한 양반과 물질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탐욕스러운 신흥 상인 계급을 풍자하며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작품을 생성하고 향유했던 서민계층의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급변하는 현실 사회에서 몰락한 양반의 모습을 보여주며, 양반으로서 위세를 부리려하는 기존의 유교적 관념을 비판한다. '''흥부전'''은 당시 유교적 세계관에 새로운 서민만의 세계관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가치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표면적인 주제는 중세의 가치관에 해당하는 형제간의 우애나 권선징악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조선 후기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근대적 가치관에 해당하는 빈부의 갈등을 주제로 삼았다.

원래 '흥부전'은 민담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판소리 '흥부가'로 발전하면서 다른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그 결과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소설 '흥부전'에는 민담과 판소리에서 두드러지는 이중적인 주제가 나타난다. 한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이중적인 주제를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로 설명한다.

민담의 구조에서 '흥부전'의 표면적 주제는 선행은 상을 받고 악행은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의 판소리 서사는 이면적 주제를 드러낸다. 바로 부유한 평민과 빈곤한 양반의 등장이 기존의 사회 질서와 계급제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 모두 '흥부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이면적 주제가 표면적 주제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3. 1. 표면적 주제: 권선징악과 형제간의 우애

소설 '''흥부전'''(興夫傳)은 일반적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조선 사회의 유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며 인과응보에 따른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착한 흥부가 제비를 만나 다리를 고쳐주고 박을 얻어 부자가 되자 놀부는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흥부와 똑같이 행동하지만 되려 벌을 받고 착해지며 사이좋게 지냈다는 줄거리는 인과응보에 따른 권선징악과 형제애를 강조한 흥부전의 주제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작품의 배경이 된 당시 조선 후기 사회는 신흥 계급이 등장하면서 유교적 질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때였다. 당대의 사회상을 생각하면 흥부는 무능하고 몰락한 양반으로, 놀부는 탐욕스러운 신흥 상인 계급의 모습을 투영한다고 볼 수 있다.

원래 '흥부전'은 민담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판소리 '흥부가'로 발전하면서 다른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그 결과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소설 '흥부전'에는 민담과 판소리에서 두드러지는 이중적인 주제가 나타난다. 한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이중적인 주제를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로 설명한다.

민담의 구조에서 '흥부전'의 표면적 주제는 선행은 상을 받고 악행은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3. 2. 이면적 주제: 조선 후기 사회 변화와 경제적 갈등

<흥부전>(興夫傳)은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조선 사회의 유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며 인과응보에 따른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착한 흥부가 제비를 만나 다리를 고쳐주고 박을 얻어 부자가 되자 놀부는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흥부와 똑같이 행동하지만 되려 벌을 받고 착해지며 사이좋게 지냈다는 줄거리는 인과응보에 따른 권선징악과 형제애를 강조한 <흥부전>(興夫傳)의 주제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작품의 배경이 된 당시 조선 후기 사회는 신흥 계급이 등장하면서 유교적 질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때였다. 당대의 사회상을 생각하면 흥부는 무능하고 몰락한 양반으로, 놀부는 탐욕스러운 신흥 상인 계급의 모습을 투영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흥부전>(興夫傳)>, 그 이면의 주제는 몰락한 양반과 물질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탐욕스러운 신흥 상인 계급을 풍자하며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작품을 생성하고 향유했던 서민계층의 생가을 반영한 것으로 급변하는 현실 사회에서 몰락한 양반의 모습을 보여주며, 양반으로서 위세를 부리려하는 기존의 유교적 관념을 비판한다. <흥부전>(興夫傳)은 당시 유교적 세계관에 새로운 서민만의 세계관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가치있다고 평가받는다.

원래 '흥부전'은 민담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판소리 '흥부가'로 발전하면서 다른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그 결과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소설 '흥부전'에는 민담과 판소리에서 두드러지는 이중적인 주제가 나타난다. 한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이중적인 주제를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로 설명한다.

민담의 구조에서 '흥부전'의 표면적 주제는 선행은 상을 받고 악행은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의 판소리 서사는 이면적 주제를 드러낸다. 바로 부유한 평민과 빈곤한 양반의 등장이 기존의 사회 질서와 계급제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 모두 '흥부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이면적 주제가 표면적 주제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4. 판소리와 소설

흥부전은 판소리의 서사적 영향을 받은 판소리계 소설로 여겨진다. 오늘날까지 공연되는 5대 판소리 중 하나이며, 신재효의 박타령은 서울에서 인쇄된 흥부전과 함께 흥부전의 주요 판본 중 하나이다. 오늘날까지 노래가 전승되어 공연되는 5대 판소리는 춘향가('춘향의 노래'), 심청가('심청의 노래'), 흥부가(또는 박타령), 수궁가('수중 궁궐의 노래', 토별가/토별가한국어(토끼와 거북이의 노래)로도 알려짐), 적벽가('적벽의 노래', 화용도타령/화용도타령한국어('화용도의 노래')로도 알려짐)를 포함한다.

4. 1. 판소리계 소설

흥부전은 판소리의 서사적 영향을 받은 판소리계 소설로 여겨진다. 오늘날까지 공연되는 5대 판소리 중 하나이며, 신재효의 박타령은 서울에서 인쇄된 흥부전과 함께 흥부전의 주요 판본 중 하나이다. 오늘날까지 노래가 전승되어 공연되는 5대 판소리는 춘향가('춘향의 노래'), 심청가('심청의 노래'), 흥부가(또는 박타령), 수궁가('수중 궁궐의 노래', 토별가(토끼와 거북이의 노래)로도 알려짐), 적벽가('적벽의 노래', 화용도타령('화용도의 노래')로도 알려짐)를 포함한다.

4. 2. 신재효본 박타령

흥부전은 판소리의 서사적 영향을 받은 소설을 가리키는 판소리계 소설로 여겨진다. 흥부전은 오늘날까지 공연되는 5대 판소리 중 하나이며, 신재효의 박타령은 서울에서 인쇄된 흥부전과 함께 흥부전의 주요 판본 중 하나이다. 오늘날까지 노래가 전승되어 공연되는 5대 판소리는 춘향가(춘향의 노래), 심청가(심청의 노래), 흥부가(또는 박타령), 수궁가(수중 궁궐의 노래, 토별가(토끼와 거북이의 노래)로도 알려짐), 적벽가(적벽의 노래, 화용도타령(화용도의 노래)로도 알려짐)를 포함한다.

5. 전승 및 관련 설화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는 흥부가 태어난 곳으로, 아영면 성리는 흥부가 정착하고 부자가 된 곳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주민들은 양 지역에는 흥부전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고, 흥부전의 원형 격인 ‘박 첨지 설화’와 ‘춘보 설화’가 각각 전해지며, 옛 이름이 각각 ‘성현동, 복덕촌, 성복골’과 ‘복성리’였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5][6] 아영면 성리에서는 1991년에 흥부전의 얼개와 유사하게 서술된 천석꾼 임씨의 약력이 새겨진 비석이 발견된 적도 있다.[7][8] 반면 2017년에 발굴된 흥부전의 가장 오래된 이본인 《흥보만보록》에는 공간적 배경이 평양직할시 순안구역)으로 되어 있다.[9]

'''흥부전'''은 전형적인 모방담(模倣談)으로, 한 사람이 어떤 행동으로 성공하지만 그 행동을 따라 한 다른 사람은 실패하는 이야기이다. 선행은 상을 받고 악행은 벌을 받는 교훈적인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친절에 친절로, 해악에는 해악으로 답하는 동물이 등장하는 것도 특징이다. 고대 신라의 '''방이 설화'''와 몽골 지역의 '''박타는 처녀'''는 '''흥부전'''과 유사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오래된 민담이다. '''박타는 처녀'''의 경우, 한국에서 몽골로 전래된 '''흥부전'''의 몽골식 각색이라는 견해와, 몽골의 이야기가 나중에 한국에 수용되었다는 견해가 공존한다.

'''방이 설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방이는 악한 동생에게 집에서 쫓겨나 도시를 떠돌며 구걸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땅을 빌릴 수 있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방이는 동생에게 곡식 씨앗과 누에를 달라고 했다. 악한 동생은 방이에게 찐 곡식 씨앗과 누에알을 주었다. 그러나 방이는 최선을 다해 씨앗과 누에를 돌보았고, 그중 한 마리의 누에는 살아나 약 10일 만에 소만큼 커졌다. 동생은 질투심에 누에를 죽였고, 그러자 100리(약 39.3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누에들이 방이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방이는 모든 누에 덕분에 부자가 되었고, 동생의 모든 누에는 방이의 것이 되었다. 게다가 방이가 심었던 곡식 씨앗 중 하나는 자라서 익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한 마리가 익은 곡식을 물고 산으로 날아갔다. 방이는 새를 따라가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을 만났다. 그는 소원대로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마법 지팡이를 얻어 더욱 부자가 되었다. 방이의 행운을 들은 동생도 산으로 갔지만,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에게 코를 뽑히고 말았다.

'''박타는 처녀'''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처녀가 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중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발견했다. 그녀는 제비를 데려와 실로 부러진 다리를 묶어 주었다. 이듬해, 같은 제비가 처녀의 집으로 박씨를 물고 돌아왔다. 그녀가 씨앗을 심자 박이 자라 보물로 가득 찬 박들을 맺었다. 이웃집에는 악한 처녀가 살았다. 이웃의 행운을 알게 된 그녀는 제비를 잡아 다리를 부러뜨리고 치료해 주었다. 제비는 이듬해 박씨를 가져왔다. 악한 처녀가 씨앗을 심자 박이 자라 독사로 가득 찬 박들을 맺었고, 독사들은 처녀를 물어 죽였다.

이 이야기의 더 오래된 버전이 존재하며, 더 길고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놀부(Nolbu)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의 왼쪽 갈비뼈 아래에는 악덕으로 가득 찬 장기(simsulbo/심술보한국어)가 튀어나와 있다. 그는 한국 문학에서 훨씬 더 탐욕스럽고 사악하며 무정한 인물이다.[4]

5. 1. 전승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는 흥부가 태어난 곳으로, 아영면 성리는 흥부가 정착하고 부자가 된 곳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주민들은 양 지역에는 흥부전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고, 흥부전의 원형 격인 ‘박 첨지 설화’와 ‘춘보 설화’가 각각 전해지며, 옛 이름이 각각 ‘성현동, 복덕촌, 성복골’과 ‘복성리’였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5][6] 아영면 성리에서는 1991년에 흥부전의 얼개와 유사하게 서술된 천석꾼 임씨의 약력이 새겨진 비석이 발견된 적도 있다.[7][8] 반면 2017년에 발굴된 흥부전의 가장 오래된 이본인 《흥보만보록》에는 공간적 배경이 평양직할시 순안구역으로 되어 있다.[9]

흥부전에 묘사된 지리적 위치를 바탕으로 일부 학자들은 흥부와 놀부가 남원에 살았으며, 흥부는 남원시 아영면 성리 부근에 거주하며 부자가 되었다는 설을 제기하고 있다. 흥부전은 전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남원 외 다른 배경을 가진 버전도 존재하지만, 남원시는 아영면을 흥부마을로 지정하고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5. 2. 관련 설화

흥부전은 전형적인 모방담(模倣談)으로, 한 사람이 어떤 행동으로 성공하지만 그 행동을 따라 한 다른 사람은 실패하는 이야기이다. 선행은 상을 받고 악행은 벌을 받는 교훈적인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친절에 친절로, 해악에는 해악으로 답하는 동물이 등장하는 것도 특징이다.[4] 고대 신라의 '''방이 설화'''와 몽골 지역의 '''박타는 처녀'''는 흥부전과 유사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박타는 처녀'의 경우, 한국에서 몽골로 전래된 흥부전의 몽골식 각색이라는 견해와, 몽골의 이야기가 나중에 한국에 수용되었다는 견해가 공존한다.

방이 설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방이는 악한 동생에게 집에서 쫓겨나 구걸하며 살다가, 낯선 사람에게 땅을 빌려 농사를 짓게 되었다. 동생에게 곡식 씨앗과 누에를 달라고 했지만, 동생은 찐 곡식 씨앗과 누에알을 주었다. 그러나 방이는 최선을 다했고, 그중 한 마리의 누에가 소만큼 커졌다. 동생은 질투심에 누에를 죽였지만, 100리(약 39.3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누에들이 방이의 집으로 몰려들어 부자가 되었다. 또한 방이가 심었던 곡식 씨앗 중 하나가 자라 익었는데, 새 한 마리가 익은 곡식을 물고 산으로 날아갔다. 방이는 새를 따라가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에게 소원대로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마법 지팡이를 얻어 더욱 부자가 되었다. 동생도 산으로 갔지만,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에게 코를 뽑히고 말았다.

박타는 처녀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처녀가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 주었다. 이듬해 제비가 박씨를 물고 왔고, 씨앗을 심자 보물로 가득 찬 박들이 열렸다. 이웃집의 악한 처녀는 제비를 잡아 다리를 부러뜨리고 치료해 주었지만, 제비가 가져온 박씨에서는 독사들이 나와 처녀를 물어 죽였다.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는 흥부가 태어난 곳으로, 아영면 성리는 흥부가 정착하고 부자가 된 곳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주민들은 양 지역에 흥부전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고, 흥부전의 원형 격인 ‘박 첨지 설화’와 ‘춘보 설화’가 각각 전해지며, 옛 이름이 각각 ‘성현동, 복덕촌, 성복골’과 ‘복성리’였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5][6] 아영면 성리에서는 1991년에 흥부전의 얼개와 유사하게 서술된 천석꾼 임씨의 약력이 새겨진 비석이 발견된 적도 있다.[7][8] 반면 2017년에 발굴된 흥부전의 가장 오래된 이본인 《흥보만보록》에는 공간적 배경이 평양 서촌(현 평양직할시 순안구역)으로 되어 있다.[9]

이 이야기의 더 오래된 버전이 존재하며, 더 길고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놀부(Nolbu)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의 왼쪽 갈비뼈 아래에는 악덕으로 가득 찬 장기(심술보(simsulbo))가 튀어나와 있다. 그는 한국 문학에서 훨씬 더 탐욕스럽고 사악하며 무정한 인물이다.[4]

6. 다양한 판본

판소리계 소설의 여러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흥보전』이다. 『흥보전』의 주요 판본으로는 서울에서 간행된 25장본(이하 경판본)과 신재효본(이하 박타령)이 있다. 경판본의 간행 연도는 알 수 없으나, 후대 경판본의 권당 장수가 적어지는 경향으로 미루어 25장본 경판본은 1880년경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재효본의 저술 시기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70년에서 1873년 사이로 추정된다.

하버드-옌칭 도서관에 소장된 『흥보전』(이하 옌칭본)은 1853년의 『흥보전』본을 1897년에 필사한 사본이다. 옌칭본을 필사한 하시모토 아키미(하시모토 아키미/橋本彰美일본어)는 한국어 학습을 목표로 했던 일본인으로, 원문을 대체로 그대로 필사했다.

여러 『흥보전』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833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흥보만보록』(‘흥보의 일생 기록’)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송시열(호 우암)의 후손인 송준호 교수가 소장하고 있다. 『흥보만보록』은 다른 『흥보전』 판본들과 두 가지 주요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첫째, 『흥보만보록』의 배경은 평양 서촌(현재 평안남도 평원군 수남면)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다른 모든 『흥보전』 판본들은 허구의 마을이나 삼남 지방(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흥보만보록』은 평양 서촌을 배경으로 명시한 유일한 판본이다.

둘째, 흥보의 성씨가 장씨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장천이며, 이 판본에는 흥보가 무과에 급제하여 덕수 장씨(德水張氏)의 시조가 되었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덕수 장씨는 황해도 덕수(현재 개풍군)를 중심으로 한 성씨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다른 모든 『흥보전』 판본들은 흥보와 놀부의 성씨를 언급하지 않았거나, 이야기의 줄거리와 관련된 박(박과의 동음이의어)이나 연(제비를 뜻하는 한자의 동음이의어)씨로 기록하고 있다. 『흥보만보록』은 흥보의 아버지 이름을 언급하고 그를 덕수 장씨의 시조로 명시하는 점에서 독특하다.

흥부전에는 서울에서 출판된 세 가지 판본, 필사본, 옛 활자본, 그리고 수십 가지의 판소리본 등 여러 판본이 있다. 그중에서 서울에서 간행된 경판본 흥부전과 신재효 판본 박타령이 대표적인 판본으로 여겨진다.

최근 몇 년 동안 흥부전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H. N. Allen영어의 “Hyung Bo and Nahl Bo, or, the Swallow-king's Rewards영어”, J. S. Gale영어의 “Heung-Poo Jun영어”, Homer B. Hulbert영어의 “The brothers and the birds영어” 등이 영어 번역본으로 출판되었다.

6. 1. 경판본

흥부전에는 서울에서 출판된 세 가지 판본, 필사본, 옛 활자본, 그리고 수십 가지의 판소리본 등 여러 판본이 있다. 그중에서 서울에서 간행된 경판본 흥부전과 신재효 판본 박타령이 대표적인 판본으로 여겨진다.

최근 몇 년 동안 흥부전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H. N. Allen영어의 “Hyung Bo and Nahl Bo, or, the Swallow-king's Rewards영어”, J. S. Gale영어의 “Heung-Poo Jun영어”, Homer B. Hulbert영어의 “The brothers and the birds영어” 등이 영어 번역본으로 출판되었다.

6. 2. 옌칭본

흥부전에는 서울에서 출판된 세 가지 판본, 필사본, 옛 활자본, 그리고 수십 가지의 판소리본 등 여러 판본이 있다. 그중에서 서울에서 간행된 경판본 흥부전과 신재효 판본 박타령이 대표적인 판본으로 여겨진다.

최근 몇 년 동안 흥부전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영어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 H. N. 앨런, “Hyung Bo and Nahl Bo, or, the Swallow-king's Rewards”, ''Korean Tales'', 뉴욕 & 런던: The Nickerbocker Press, 1889.

  • J. S. 게일, “Heung-Poo Jun”, ''Gale, James Scarth Papers'', 미출판, 1921.

  • 호머 B. 헐버트, “The brothers and the birds”, ''Omjee the Wizard'', 스프링필드, 매사추세츠: Milton Bradley, 1925.

6. 3. 흥보만보록

판소리계 소설의 여러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흥보전』이다. 『흥보전』의 주요 판본으로는 서울에서 간행된 25장본(이하 경판본)과 신재효본(이하 박타령)이 있다. 경판본의 간행 연도는 알 수 없으나, 후대 경판본의 권당 장수가 적어지는 경향으로 미루어 25장본 경판본은 1880년경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재효본의 저술 시기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70년에서 1873년 사이로 추정된다.

하버드-옌칭 도서관에 소장된 『흥보전』(이하 옌칭본)은 1853년의 『흥보전』본을 1897년에 필사한 사본이다. 옌칭본을 필사한 하시모토 아키미(하시모토 아키미/橋本彰美일본어)는 한국어 학습을 목표로 했던 일본인으로, 원문을 대체로 그대로 필사했다.

여러 『흥보전』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833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흥보만보록』(‘흥보의 일생 기록’)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송시열(호 우암)의 후손인 송준호 교수가 소장하고 있다. 『흥보만보록』은 다른 『흥보전』 판본들과 두 가지 주요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흥보만보록』의 배경은 평양 서촌(현재 평안남도 평원군 수남면)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다른 모든 『흥보전』 판본들은 허구의 마을이나 삼남 지방(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흥보만보록』은 평양 서촌을 배경으로 명시한 유일한 판본이다.

흥보의 성씨가 장씨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장천이며, 이 판본에는 흥보가 무과에 급제하여 덕수 장씨(德水張氏)의 시조가 되었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덕수 장씨는 황해도 덕수(현재 개풍군)를 중심으로 한 성씨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다른 모든 『흥보전』 판본들은 흥보와 놀부의 성씨를 언급하지 않았거나, 이야기의 줄거리와 관련된 박(박과의 동음이의어)이나 연(제비를 뜻하는 한자의 동음이의어)씨로 기록하고 있다. 『흥보만보록』은 흥보의 아버지 이름을 언급하고 그를 덕수 장씨의 시조로 명시하는 점에서 독특하다.

7. 현대적 재해석

흥부전은 소설과 시로 다시 쓰여졌으며, 노래, 연극, 뮤지컬, 마당놀이, 영화로 각색되었다. 가장 최근의 각색은 2018년에 개봉한 영화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이다.

8. 어휘

삼순구식(三旬九食)은 30일 동안 아홉 끼니만 먹을 정도로 매우 가난하다는 뜻이다. 환곡(還穀)은 조선 시대에 곡식을 사창(社倉)에 저장하였다가 백성들에게 봄에 빌려주고 가을에 이자를 붙여 거두던 일, 또는 그 곡식을 말한다. 죄상(罪狀)은 범죄의 구체적인 사실을, 장자(長者)는 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다. '고의 벗은 놈'에서 고의(袴衣)는 남자의 홑바지인데, 옷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겉옷이 필요 없다는 뜻으로 '개 발에 편자'라는 속담과 관련 있다. 마삯은 말을 타는 데 드는 삯으로, 흥보가 매품을 팔러 병영으로 갈 때 드는 비용이다. '닫다'는 다리를 빨리 움직여 이동하는 것을, 애중(愛重)은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뜻한다. 광주산(廣州産)은 광주에서 생산된 물건을 말한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Hungbu and Nolbu tale type: a Korean double contrastive narrative structure http://findarticles.[...] FindArticles 2011-09-01
[2] 블로그 Bundaegi: Hungbu and Nolbu http://www.bundaegi.[...] 2006-12-04
[3] 웹사이트 http://www.tparents.[...] 2010-06-29
[4] 서적 How Koreans Talk UnhengNamu 2002
[5] 뉴스 흥부는 실존인물이었다 http://legacy.h21.ha[...] 한겨레21 2020-09-27
[6] 웹인용 흥부소공원 (興夫小公園) http://namwon.grandc[...] 한국학중앙연구원 2020-09-27
[7] 뉴스 <화제> 흥부전 주인공 '林부자' 비석 발견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20-09-27
[8] 뉴스 흥부묘비 발견 http://news.kbs.co.k[...] KBS 2020-09-27
[9] 뉴스 1833년에 쓴 최고(最古) '흥부전' 발견…"남도 아닌 평양 배경" https://www.yna.co.k[...] 연합뉴스 2020-09-2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