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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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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기태는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선수 시절 주로 지명타자로 활약하며 1994년 홈런왕, 1997년 타율왕을 차지했다. 1992년부터 1994년, 2004년 4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하여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 감독을 역임했다.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인 2017년에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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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1969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기태
한자 표기金杞泰
로마자 표기Gim Gitae
출생일1969년 5월 23일
출생지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신장181cm
체중86kg
타석좌타
투구좌투
수비 위치1루수, 좌익수, 지명타자
선수 경력
포지션지명타자 / 1루수 / 감독
데뷔 리그KBO 리그
데뷔 날짜1991년 4월 11일
데뷔 팀쌍방울 레이더스
마지막 날짜2005년 9월 25일
마지막 팀SK 와이번스
드래프트1991년 특별 지명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쌍방울 레이더스 (1991년–1998년)
삼성 라이온즈 (1999년–2001년)
SK 와이번스 (2002년–2005년)
통계 (KBO)
타율0.294
홈런249
타점923
코치 경력
코치SK 와이번스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7년–2009년, 2021년-현재)
LG 트윈스 (2010년–2011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07년~2008년, 2023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수석코치 (202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 (2022년)
KT 위즈 (2023년)
감독 경력
감독LG 트윈스 (2012년–2014년)
KIA 타이거즈 (2015년–2019년)
LG 트윈스 2군 감독 (2010년~2011년)
kt 위즈 2군 감독 (2023년)
수상
수상 내역4× KBO 리그 골든 글러브 (1992년, 1993년, 1994년, 2004년)
KBO 최고 출루율1992년, 1997년 ~ 1998년
KBO 홈런왕1994년
KBO 최고 장타율1994년, 1997년
KBO 타격왕1997년
계약금5억원
국가대표
국가대표대한민국
올림픽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아시안 게임1990년 베이징
올림픽 메달
메달}}

2. 선수 경력

1991년 신생 팀 특별우선 지명을 받아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1루수였지만 주로 붙박이 지명타자로 나왔고, 1992년~1994년까지 3년 연속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데뷔 첫 해 2할대 타율, 27홈런, 95타점으로 좋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같은 팀의 좌완투수 조규제에게 밀려 신인왕에는 실패했다. 1992년에는 3할대 타율, 31홈런으로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와 출루율왕을 수상했고, 1994년에는 25홈런으로 좌타자로서 첫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997년에는 타격왕을 차지했고, 1996년1997년에는 팀의 중심 타자로서 팀의 2차례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대학 시절부터 야구 대한민국 대표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했으며, 대학교 4학년 때인 1990년에,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다. 신규 참입 구단인 해당 구단의 조치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과 2차 지명 사이에서 진행된 특별 지명을 받았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선수층이 얇아 고전했던 팀의 4번 타자로 일찍이 자리 잡았다. 27홈런으로 당시 신인 최다 홈런 및 좌타자 시즌 최다 홈런의 신기록을 달성, 타점 2위 등의 활약으로 신인왕 후보에도 올랐다. 그러나 기자 투표에서는 최우수 구원 타이틀을 얻은 팀 동료 조규제에게 패해 2위로 마쳤다.

그 이후 쌍방울의 중심 타자로서, 또한 한국 프로 야구를 대표하는 좌타 거포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1994년에는 최다 홈런 타이틀을, 1997년에는 수위 타자 타이틀을 획득했다. 특히 1994년 최다 홈런 타이틀은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좌타자 홈런왕이 되어, 그동안 '좌타자는 교타자'라는 한국 프로 야구의 상식을 깨뜨렸다. 팀의 역사상 늘 빈약했던 쌍방울 타선에서 더욱 존재감을 드러냈고, 상대팀에서는 "쌍방울 타선은 김기태만 피하면 괜찮다"며 철저하게 고의 사구를 시도했고, 무슨 일만 있으면 승부를 피했다. 그 결과 시즌 세 자릿수 사구를 두 번이나 기록하는 등 통산 975개의 사구를 기록했다. 또한 고의 사구의 수도 역대 2위인 129개를 기록했으며, 쌍방울에 재적한 8년간 6번이나 두 자릿수 고의 사구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고 맹타를 휘둘렀다. 1996년, 1997년에는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포스트 시즌도 경험했다.

1998년 아시아 경제 위기로 모기업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구단의 운영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때문에 쌍방울은 주력 선수를 자금력이 풍부했던 현대 유니콘스나 삼성 라이온즈 등에 트레이드하여, 그 트레이드 자금을 운영비로 충당하게 되었다. 이는 타선의 중심이었던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고, 중간 계투의 핵심으로 1996년에는 구원만으로 20승을 거두며, 최다승 타이틀을 획득한 김현욱과 함께 시즌 종료 후 현금 트레이드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그는 해태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된 좌타자 양준혁을 대신해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1999년에 2할대 타율, 28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꾸준한 성적을 거뒀다.[13] 하지만 2001년에는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과의 불화로 출장 경기 수가 크게 감소했고, 홈런도 기록하지 못한 채 타율도 1할대로 급추락했으며 2001년 한국시리즈에도 출전하지 못했다.[13] 2001년 시즌 후 SK 와이번스와의 6:2 현금 트레이드(그, 정경배, 김태한, 이용훈, 김동수, 김상진 <-> 브리토, 오상민 + 현금 11억)돼 이적했다.[13] 이는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빅 딜이었고, 팀이 현금 11억을 받아 당시 FA를 선언했지만 팀을 찾지 못했던 양준혁을 다시 데려왔다.[13]

삼성에서 좌타 장거리 타자로서 임창용 획득을 위해 해태로 트레이드 된 양준혁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 또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대한민국 대표로 선출되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2년 현금 트레이드로 예전 쌍방울 선수단을 승계한 팀으로 돌아온 그는 나이가 들며 전성기 때의 타격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팀의 중심 타선을 이끌었다. 2003년에는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데뷔 후 처음으로 2003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했지만 현대 유니콘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4년에 마지막 3할 타율, 10홈런, 67타점으로 현역 마지막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2005년에 15년 간의 선수 생활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 1.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1991년 신생 팀 특별우선 지명을 받아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1루수였지만 주로 붙박이 지명타자로 나왔고, 1992년~1994년까지 3년 연속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데뷔 첫 해 2할대 타율, 27홈런, 95타점으로 좋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같은 팀의 좌완투수 조규제에게 밀려 신인왕에는 실패했다. 1992년에는 3할대 타율, 31홈런으로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와 출루율왕을 수상했고, 1994년에는 25홈런으로 좌타자로서 첫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997년에는 타격왕을 차지했고, 1996년1997년에는 팀의 중심 타자로서 팀의 2차례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대학 시절부터 야구 대한민국 대표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했으며, 대학교 4학년 때인 1990년에,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다. 신규 참입 구단인 해당 구단의 조치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과 2차 지명 사이에서 진행된 특별 지명을 받았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선수층이 얇아 고전했던 팀의 4번 타자로 일찍이 자리 잡았다. 27홈런으로 당시 신인 최다 홈런 및 좌타자 시즌 최다 홈런의 신기록을 달성, 타점 2위 등의 활약으로 신인왕 후보에도 올랐다. 그러나 기자 투표에서는 최우수 구원 타이틀을 얻은 팀 동료 조규제에게 패해 2위로 마쳤다.

그 이후 쌍방울의 중심 타자로서, 또한 한국 프로 야구를 대표하는 좌타 거포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1994년에는 최다 홈런 타이틀을, 1997년에는 수위 타자 타이틀을 획득했다. 특히 1994년 최다 홈런 타이틀은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좌타자 홈런왕이 되어, 그동안 '좌타자는 교타자'라는 한국 프로 야구의 상식을 깨뜨렸다. 팀의 역사상 늘 빈약했던 쌍방울 타선에서 더욱 존재감을 드러냈고, 상대팀에서는 "쌍방울 타선은 김기태만 피하면 괜찮다"며 철저하게 고의 사구를 시도했고, 무슨 일만 있으면 승부를 피했다. 그 결과 시즌 세 자릿수 사구를 두 번이나 기록하는 등 통산 975개의 사구를 기록했다. 또한 고의 사구의 수도 역대 2위인 129개를 기록했으며, 쌍방울에 재적한 8년간 6번이나 두 자릿수 고의 사구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고 맹타를 휘둘렀다. 1996년, 1997년에는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포스트 시즌도 경험했다.

1998년 아시아 경제 위기로 모기업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구단의 운영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때문에 쌍방울은 주력 선수를 자금력이 풍부했던 현대 유니콘스나 삼성 라이온즈 등에 트레이드하여, 그 트레이드 자금을 운영비로 충당하게 되었다. 이는 타선의 중심이었던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고, 중간 계투의 핵심으로 1996년에는 구원만으로 20승을 거두며, 최다승 타이틀을 획득한 김현욱과 함께 시즌 종료 후 현금 트레이드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2. 2. 삼성 라이온즈 시절

그는 해태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된 좌타자 양준혁을 대신해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1999년에 2할대 타율, 28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꾸준한 성적을 거뒀다.[13] 하지만 2001년에는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과의 불화로 출장 경기 수가 크게 감소했고, 홈런도 기록하지 못한 채 타율도 1할대로 급추락했으며 2001년 한국시리즈에도 출전하지 못했다.[13] 2001년 시즌 후 SK 와이번스와의 6:2 현금 트레이드(그, 정경배, 김태한, 이용훈, 김동수, 김상진 <-> 브리토, 오상민 + 현금 11억)돼 이적했다.[13] 이는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빅 딜이었고, 팀이 현금 11억을 받아 당시 FA를 선언했지만 팀을 찾지 못했던 양준혁을 다시 데려왔다.[13]

삼성에서 좌타 장거리 타자로서 임창용 획득을 위해 해태로 트레이드 된 양준혁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 또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대한민국 대표로 선출되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2. 3. SK 와이번스 시절

2002년 현금 트레이드로 예전 쌍방울 선수단을 승계한 팀으로 돌아온 그는 나이가 들며 전성기 때의 타격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팀의 중심 타선을 이끌었다. 2003년에는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데뷔 후 처음으로 2003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했지만 현대 유니콘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4년에 마지막 3할 타율, 10홈런, 67타점으로 현역 마지막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2005년에 15년 간의 선수 생활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200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이승엽과 함께 중심 타선을 이끌며 국가대표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24] 2008년 하계 올림픽에는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참가했다.[24] 202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도 발탁되었으나, 건강 문제로 중도 하차하고 심재학에게 타격코치를 넘겼다.[25]

4. 지도자 경력

은퇴 후 한신 타이거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다가 팀이 코치진 대개편을 해 연수 일정을 조정하고 조기 귀국했다.[14] 귀국 후 2006년 시즌에 팀의 타격보조코치를 맡았다. 시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육성군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이후 8년 만에 코치진으로 올림픽에 돌아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활동하며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연수 후 2008년요미우리의 타격코치로 임명됐다. 임명 당시 순수 한국인 최초로 일본프로야구 정식 코치가 됐다.[15] 2009년까지 코치로 활동한 후 당시 감독이었던 박종훈의 요청으로 귀국해 2010년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됐다. 2011년 7월 30일 LG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수석코치로 임명됐고, 박종훈이 성적 부진으로 시즌 최종전에 사임하자 2011년 10월 7일에 감독으로 선임됐다.

202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부름을 받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군 수석코치로 활동했고, 2022년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타격코치로 선임됐다. 베이징 올림픽 때에도 본 적이 있었던 무라타 슈이치가 그의 보조 타격코치로 나섰다.[16] 다만 2022년 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폐결핵 진단을 받아 귀국해서 잠시 요양[17]했고, 동년 4월 요미우리에 복귀했지만 시즌 후 요미우리와 재계약하지 못했다.[18]

2023년에는 kt wiz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1시즌 만에 사임[19]하고 김태한에게 넘겼다.

2011년 시즌 후,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계약 기간은 3년이었다. 부임하자마자 FA였던 송신영, 조인성, 이택근을 잃었고, 승부 조작 사건으로 투수 박현준, 김성현마저 잃어 전력 출혈이 크게 발생한 채 시즌을 시작했다.[20] 시즌 초 대규모 전력 출혈의 여파로 2012년에는 7위에 그쳤지만, 선수단 사이에서 야구 외적인 잡음이 없어졌다.[20] 2013년에는 팀의 상승세가 뛰어나 팬들로부터 '갓기태'라고 불렸다.[21] 그 해 상위권 팀들 중 가장 먼저 포스트 시즌 진출을 확정지으며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22] 투수 류제국의 맹활약으로 최종전에서 두산 베어스를 이기고 정규 시즌을 2위로 마감했으나, 팀의 경험 부족으로 인해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 패하며 2013년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2014년 4월 23일, 팀의 성적 부진으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고, 후임으로 양상문이 새 감독으로 선임됐다.

2014년 10월 28일 선동열의 뒤를 이어 고향 팀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복귀했다.[3] 2017년 10월 3일 시즌 최종전이었던 Kt 위즈전에서 대승을 거둬 2009년 이후 8년만이자 개인 첫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꺾고 선수 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냈으며, 지명타자 출신 감독으로 첫 우승 및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로 호남권 출신 감독의 우승을 달성했다.[23] 2018년 시즌 종료 전에 임창용을 방출시켜 팬들의 질책을 많이 받았다. 2019년 5월 16일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다.[3]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2006년 SK에서 파견되어 한신 타이거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이후 이승엽의 소개로 200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육성 코치로 취임했다.

2008년부터 2년간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 코치를 맡았고, 같은 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 코치를 맡았다. 이스턴 리그 챌린지 매치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연합팀 "퓨처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지바 롯데 마린스의 연합팀 "시리우스"의 감독을 맡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10년 LG 트윈스 2군 감독으로 취임했고, 2011년 7월 1군 수석 코치로 이동했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LG 트윈스 1군 감독으로 취임하여 2012년부터 3년간 계약했다. 2013년 정규 시즌 2위로 LG를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 패했다. 2014년 4월 23일, 시즌 초반 팀이 최하위에 머물자 감독직을 사임했다.

2014년 10월,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7년 KIA를 8년 만의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9년 5월 16일, KIA가 최하위에 머물렀던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을 사임했다.[3]

2020년 12월 2일, 2021년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헤드 코치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4] 2021년 11월 13일, 2022년부터 1군 타격 코치 취임이 발표되었지만,[5] 귀국 후 폐결핵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팀 합류가 늦어졌다.[6] 4월 15일에 2군에 합류했고,[7] 19일에 1군에 합류했다.[8] 10월 6일, 1군 타격 코치에서 퇴임했다.[9]

2023년부터 아들 김건형이 소속된 KT 위즈 퓨처스팀 감독으로 취임했지만,[10] 건강 문제로 그 해를 끝으로 KT를 퇴단했다.[11]

4. 1. 코치 경력

은퇴 후 한신 타이거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다가 코치진 대개편으로 조기 귀국해 2006년 팀의 타격보조코치를 맡았다.[14]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육성군 지도자 연수를 받았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로 활동하며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다.[15] 연수 후 2008년요미우리의 타격코치로 임명되어, 2009년까지 활동했다.[15] 2010년에는 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2011년 7월 30일에는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15]

202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수석코치, 2022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로 활동했다.[16] 베이징 올림픽 때 함께했던 무라타 슈이치가 보조 타격코치를 맡았다.[16] 시즌을 앞두고 폐결핵 진단을 받아 요양[17]했고, 복귀했지만 시즌 후 재계약하지 못했다.[18]

2023년 kt wiz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1시즌 만에 사임했다.[19]

4. 2. LG 트윈스 감독 시절

2011년 시즌 후,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계약 기간은 3년이었다. 부임하자마자 FA였던 송신영, 조인성, 이택근을 잃었고, 승부 조작 사건으로 투수 박현준, 김성현마저 잃어 전력 출혈이 크게 발생한 채 시즌을 시작했다.[20] 시즌 초 대규모 전력 출혈의 여파로 2012년에는 7위에 그쳤지만, 선수단 사이에서 야구 외적인 잡음이 없어졌다.[20] 2013년에는 팀의 상승세가 뛰어나 팬들로부터 '갓기태'라고 불렸다.[21] 그 해 상위권 팀들 중 가장 먼저 포스트 시즌 진출을 확정지으며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22] 투수 류제국의 맹활약으로 최종전에서 두산 베어스를 이기고 정규 시즌을 2위로 마감했으나, 팀의 경험 부족으로 인해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 패하며 2013년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2014년 4월 23일, 팀의 성적 부진으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고, 후임으로 양상문이 새 감독으로 선임됐다.

4. 3.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2014년 10월 28일 선동열의 뒤를 이어 고향 팀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복귀했다.[3] 2017년 10월 3일 시즌 최종전이었던 Kt 위즈전에서 대승을 거둬 2009년 이후 8년만이자 개인 첫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꺾고 선수 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냈으며, 지명타자 출신 감독으로 첫 우승 및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로 호남권 출신 감독의 우승을 달성했다.[23] 2018년 시즌 종료 전에 임창용을 방출시켜 팬들의 질책을 많이 받았다. 2019년 5월 16일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다.[3]

4. 4. 기타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2006년 SK에서 파견되어 한신 타이거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이후 이승엽의 소개로 200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육성 코치로 취임했다.

2008년부터 2년간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 코치를 맡았고, 같은 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 코치를 맡았다. 이스턴 리그 챌린지 매치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연합팀 "퓨처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지바 롯데 마린스의 연합팀 "시리우스"의 감독을 맡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10년 LG 트윈스 2군 감독으로 취임했고, 2011년 7월 1군 수석 코치로 이동했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LG 트윈스 1군 감독으로 취임하여 2012년부터 3년간 계약했다. 2013년 정규 시즌 2위로 LG를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 패했다. 2014년 4월 23일, 시즌 초반 팀이 최하위에 머물자 감독직을 사임했다.

2014년 10월,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7년 KIA를 8년 만의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9년 5월 16일, KIA가 최하위에 머물렀던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을 사임했다.[3]

2020년 12월 2일, 2021년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헤드 코치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4] 2021년 11월 13일, 2022년부터 1군 타격 코치 취임이 발표되었지만,[5] 귀국 후 폐결핵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팀 합류가 늦어졌다.[6] 4월 15일에 2군에 합류했고,[7] 19일에 1군에 합류했다.[8] 10월 6일, 1군 타격 코치에서 퇴임했다.[9]

2023년부터 아들 김건형이 소속된 KT 위즈 퓨처스팀 감독으로 취임했지만,[10] 건강 문제로 그 해를 끝으로 KT를 퇴단했다.[11]

5. 논란 및 사건 사고

2012년 9월 12일 SK전에서 신동훈을 대타로 올린 사건으로 팬들 사이에서 '포기태'라고 불렸다.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에는 3피트 라인 판정과 관련해 그라운드에 누워서 항의하는 모습 때문에 '눕기태'라는 별명이 붙었다.

5. 1. 신동훈 대타 사건

5. 2. 임창용 방출 논란

6. 주요 기록 및 수상


도소





장타







2

3



















O
P
S




타몸

맞희





4
1991쌍방울22124508427651121502792747293.262.370.487.857208940541992231235253988612028331965711484.302.461.6211.08224711805181993249639531736761729431157357.240.380.391.771124710481994251084543767011920425799107470.316.430.5901.020222102021319952611648240248129343127212107244.321.419.510.9292058107151996279136631047921731253365448.297.399.487.8861519002201997281114783909513430326791078454.344.460.6361.096248112021419982912654143484134284319010510479.309.440.6061.04626311003151999삼성30130560468821373322888548295.293.403.551.95425896136200031101395333691032412680515756.309.410.6221.0322076203720013244102855152109001617.176.314.224.53719110012002SK331013372843273151946214757.257.359.412.7711176033020033493265236326970318222730.292.364.360.7248540110200435126465403601292401067245755.320.404.454.8581831004162005365413011252340011001523.205.297.241.5382740211KBO 통산 : 15년1544600349758161465298272499238366948862.294.407.515.9232564116271142129



기록날짜소속구장상대팀상대 투수경기수달성 당시 나이기타각주
600타점1998. 5. 24삼성잠실LG8번째
2000루타2000. 7. 5삼성대구두산107031세 1개월 12일5번째


6. 1. 선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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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쌍방울22124508427651121502792747293.262.370.487.857208940541992231235253988612028331965711484.302.461.6211.08224711805181993249639531736761729431157357.240.380.391.771124710481994251084543767011920425799107470.316.430.5901.020222102021319952611648240248129343127212107244.321.419.510.9292058107151996279136631047921731253365448.297.399.487.8861519002201997281114783909513430326791078454.344.460.6361.096248112021419982912654143484134284319010510479.309.440.6061.04626311003151999삼성30130560468821373322888548295.293.403.551.95425896136200031101395333691032412680515756.309.410.6221.0322076203720013244102855152109001617.176.314.224.53719110012002SK331013372843273151946214757.257.359.412.7711176033020033493265236326970318222730.292.364.360.7248540110200435126465403601292401067245755.320.404.454.8581831004162005365413011252340011001523.205.297.241.5382740211KBO 통산 : 15년1544600349758161465298272499238366948862.294.407.515.9232564116271142129



기록날짜소속구장상대팀상대 투수경기수달성 당시 나이기타각주
600타점1998. 5. 24삼성잠실LG8번째
2000루타2000. 7. 5삼성대구두산107031세 1개월 12일5번째


6. 2. 지도자 기록

프로 선수 시절, 김기태는 주로 지명 타자로 기용되었으며, 가끔 1루수로 경기에 출전했다. 전업 지명 타자로서 1994년홈런 타이틀을, 1997년타율 타이틀을 획득했다. 또한 그는 4차례 KBO 골든 글러브 수상자이기도 하다.

2000년 김기태는 2000년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야구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김기태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LG 트윈스의 감독을 맡았다. 2014년 말 김기태는 KIA 타이거즈의 감독이 되었다. 2017년 김기태는 팀을 성공적으로 한국시리즈로 이끌었고, KBO 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2019년 5월 16일, 그는 감독직에서 사임했다.[2]

7. 출신 학교

참조

[1] 뉴스 Manager for baseball champions thanks well-traveling fans for support http://english.yonha[...] 2017-10-31
[2] 웹사이트 KIA타이거즈 김기태 감독 사퇴 http://www.tigers.co[...] 2019-05-16
[3] 문서 http://www.kiatigers[...]
[4] 웹사이트 来季のコーチングスタッフについて https://www.giants.j[...] 2020-12-02
[5] 웹사이트 巨人2軍打撃コーチに小笠原道大氏、3軍監督に駒田徳広氏 亀井らも入閣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1-11-14
[6] 웹사이트 巨人 金杞泰コーチが肺結核で療養 復帰時期未定 横川スコアラーが打撃コーチ就任 https://www.daily.co[...] デイリースポーツ 2022-01-15
[7] 웹사이트 【巨人】金杞泰打撃コーチが肺結核療養から復帰し2軍に合流 https://hochi.news/a[...] スポーツ報知 2022-05-02
[8] 웹사이트 【巨人】肺結核のため療養していた金杞泰コーチが1軍合流 https://hochi.news/a[...] スポーツ報知 2022-05-02
[9] 웹사이트 コーチングスタッフの退任について https://www.giants.j[...] 2022-10-06
[10] 웹사이트 김기태 전 감독, KT 2군 사령탑으로 KBO리그 복귀 https://newsis.com/v[...] NEWSIS 2022-10-15
[11] 웹사이트 프로야구 kt 김기태 2군 감독, 사의 표명…"휴식 필요" https://www.yna.co.k[...] 2023-12-25
[12] 웹인용 Kia Tigers manager Kim Ki-tai offers to quit after slow start https://en.yna.co.kr[...] 2023-12-07
[13] 뉴스 '신의 허락' 받지 못한 불운의 스타 3인방 http://sports.news.n[...] 마이데일리
[14] 뉴스 '8연패' SK, 올해도 코치진 개편 효과 볼까 https://news.naver.c[...] OSEN
[15] 뉴스 김기태 코치, "요미우리 유니폼 1년 더 입습니다" https://sports.news.[...] 스포츠조선 2023-05-14
[16] 뉴스 명문 요미우리 1군 타격코치 맡은 김기태, "더 잘해 실적 내겠다" https://sports.news.[...] OSEN
[17] 뉴스 日 언론 "요미우리 김기태 코치, 폐결핵으로 한국서 요양" https://sports.news.[...] 엑스포츠뉴스
[18] 뉴스 김기태 전 KIA 감독, 요미우리와 작별…KBO 현장 복귀 가능할까? https://sports.news.[...] 스포츠조선
[19] 뉴스 프로야구 kt 김기태 2군 감독, 사의 표명…"휴식 필요" https://sports.news.[...] 연합뉴스
[20] 뉴스 김기태 감독, LG 역사에 굵은 획을 긋다 http://sports.news.n[...] 조이뉴스24
[21] 뉴스 "할 말 해라" 소통의 야구 통했다 http://sports.news.n[...] 주간한국
[22] 뉴스 김기태 감독의 ‘형님 리더십’, 형님들도 못한 미라클 http://sports.news.n[...] MK스포츠
[23] 뉴스 첫 단군매치 '역대급' 한국시리즈 예고 https://m.sports.nav[...] 스포츠서울
[24] 뉴스 '수어지교' 조계현-김기태, 타이거즈 왕조 재현할까 https://sports.news.[...] 오마이뉴스
[25] 뉴스 ‘대표팀 돌발 악재’ 김기태 코치 귀국, 심재학 코치 눈에 주목하는 이유 https://sports.news.[...] MK스포츠
[26] 뉴스 지명타자 출신이 사령탑을?… 편견을 뿌리치다 http://sports.news.n[...] 동아일보
[27] 뉴스 김기태, “상대 벤치가 장난치는 것 같았다” http://osen.mt.co.kr[...] OSEN
[28] 뉴스 KBO, LG 김기태 감독에게 벌금 500만 원 부과 http://sports.news.n[...] 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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