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학의 친일파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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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승학의 친일파 명단은 2001년 공개된 육필 원고에 수록된 명단으로, 1948년 김구 등 한국독립당 지도부의 지시로 김승학이 작성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명단에는 정계, 관계, 실업계, 언론계, 문학계, 연예계, 교육, 종교계, 다액 국방금 헌납자, 지원병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김연수, 윤치호, 이광수, 김활란 등이 주요 인물로 언급된다. 명단의 출처와 정확성에 대한 논란과 한계가 존재하며, 친일파 청산과 관련된 역사적, 사회적 논의의 맥락에서 다루어진다.
이 명단은 《친일파 군상(親日派 群像)》이라는 제목이 붙은 육필 원고에 들어 있으며, 2001년 발굴되어 《월간중앙》을 통해 공개되었다.
김승학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친일파 명단은 당시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제에 협력한 인물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명단은 김승학이 독립운동 과정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인물들을 활동 분야와 협력 형태에 따라 분류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2. 명단의 출처 및 역사적 배경
명단이 작성된 1948년은 남한에 단독 선거가 실시되고 단독 정부가 세워지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결성이 가시화되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해당 명단은 정부 수립 과정에서 소외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한국독립당 계열 인사들의 친일파 청산에 대한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사료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김승학이 김구 등 한국독립당 지도부의 지시를 받고 명단을 작성했는지 여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하여 국내 사정에 상대적으로 어두웠던 임시정부 계열 민간 인사들의 정보 수집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명단의 정확성이나 완결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혈서 지원자로 표시된 가수 남인수, 백년설, 박향림 등은 실제로는 〈혈서지원〉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른 사실이 착각을 일으켜 명단에 잘못 포함되었을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1]
김승학의 원고는 1948년 삼성문화사에서 발간한 《친일파 군상》이라는 단행본의 초고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3. 명단에 포함된 주요 인물 및 분류
주요 분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 명단은 김승학 개인의 판단과 수집 정보에 기반한 것이므로, 명단 자체나 포함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 맥락과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각 분류에 속한 구체적인 인물 명단과 그들의 주요 행적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1. 정계, 관계, 실업계 (43명)
이름 주요 직책 및 친일 행적 이성환 임전보국단 간부, 국민동원총진회 이사장 이승우 전 경성부회 의원, 전 국민총동원 이사 윤치호 1945년 12월 사망 김연수 경성방직 사장, 전 만주국 명예총영사 고원훈 중추원 참의, 전 도지사 신태악 변호사 조병상 종로경방단장 여운홍 친일논문 발표, 시국 강연 인정식 사회주의에서 전향 후 국민문학 등에 친일논문 발표 박희도 전 동양지광 사장[1] 이각종 전 총독부 촉탁, 국민정신총동원 연맹 상무이사[1] 김한경 동양지광 등에 친일논문 게재[1] 김시권 전 도지사 박인덕 전 청화여숙장 이정섭 임전보국단 의원[1] 김사연 중추원 참의, 전 도지사 문명기 전 조선신문 사장[1] 한상룡 전 중추원 고문, 전 관동군 최고 고문, 조선총력연맹 사무국장 정교원 전 도지사 차재정 전 대동민우회 간부 이성근 전 충남지사, 전 매신(매일신보) 사장 박흥식 조선비행기공업회사 사장 박춘금 민족학살 도모한 대의당 당수 안인식 총력연맹 참사 한규복 중추원 참의, 충북지사 이종린 천도교 요인 최린 천도교 요인, 중추원 참의 최남선 사학자 박윤진 친일 시국 강연[1] 이돈화 천도교인 장덕수 전 보성전문 교수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 김석원 일본 육군 소좌[1] 김동원 평양상공회의소 회주 박정형 경무국 경찰 (현재 세도 부림) 정방오 전 일제 헌병대 (현재 세도 부림)[1] 김신석 은행가[1] 손영목 강원, 전북 지사, 국민동원총진회 이사 고일청 임전보국단 간부[1] 차재명 황국신민의 십자군 간부 문덕상 황국신민의 십자군 간부 박상준 귀족원 의원 김오성 공산주의 이론가, 문학 평론가. 일제 말기 전향, 친일 논설 게재. 해방 후 월북[1]
3. 2. 언론계, 문학계, 연예계 (45명)
김승학이 작성한 친일파 명단 중 언론계, 문학계, 연예계 관련 인물은 총 45명이다. 각 인물 옆의 괄호 안 숫자는 김승학이 기록한 해당 인물의 친일 행위 관련 횟수나 중요도로 추정되나, 명확한 기준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름 | 한자 | 주요 활동 | 친일 행위 관련 기록 (김승학) |
---|---|---|---|
김기진 | 金基鎭 | 평론가 | 1 |
박영희 | 朴英熙 | 평론가 | 3 |
정인택 | 鄭人澤 | 소설가 | 2 |
이희적 | 李熙迪 | 변호사 | 2 |
이광수 | 李光洙 | 소설가 | 15 |
주요한 | 朱耀翰 | 시인 | 13 |
김동환 | 金東煥 | 시인 | 12 |
김동인 | 金東仁 | 소설가 | 2 |
모윤숙 | 毛允淑 | 시인 | 8 |
현영섭 | 玄永燮 | 녹기연맹 이사 | 조선어 사용 폐지 주장 (1) |
백철 | 白鐵 | 문학평론가 | 7 |
장혁주 | 張赫宙 | 소설가 | 1 |
이찬 | 李燦 | 시인 | 1 |
김용제 | 金龍濟 | 시인 | 3 |
최재서 | 崔載瑞 | 국민문학 주간, 평론가 | 1 |
이석훈 | 李石薰 | 소설가 | 1 |
정인섭 | 鄭寅燮 | 문학인, 교육가 | 5 |
최승희 | 崔承喜 | 무용가 | 1 (친일 행적 관련 논란 존재) |
오정민 | 吳禎民 | 연극평론가 | 1 |
김정의 | 金正義 | 일제 국민가요 작가 | 1 |
박경조 | 朴景祚 | 일제 국민가요 작가 | 1 |
김용환 | 金龍煥 | 가수 | 1 |
이용설 | 李容卨 | 의학박사 | 1 |
홍해성 | 洪海星 | 극작가 | 1 |
유치진 | 柳致眞 | 극작가 | 1 |
김태진 | 金兌鎭 | 극작가 | 1 |
박영호 | 朴英鎬 | 극작가 | 1 |
김화랑 | 金火浪 | 배우 | 1 |
안석주 | 安碩柱 | 영화감독 | 1 |
안종화 | 安鐘和 | 영화감독 | 1 |
최인규 | 崔寅奎 | 영화감독 | 1 |
박기채 | 朴基采 | 영화감독 | 1 |
방한준 | 方漢駿 | 영화감독 | 2 |
서강백 | 徐康百 | 평론가 | 1 |
노천명 | 盧天命 | 시인 | 숫자 미기록 |
홍양명 | 洪陽命 | 경제학자 | 1 |
고승제 | 高承濟 | 경제학자 | 숫자 미기록 |
안함광 | 安含光 | 평론가 | 1 |
김억 | 金億 | 시인 | 1 |
이창수 | 李昌洙 | 평론가 | 1 |
배상하 | 裵相河 | 숫자 미기록 | |
이영근 | 李永根 | 미국에서 친일활동하다 일본인 도움으로 귀국 (1) | |
대조실신 | 大朝實臣 | 내선일체 잡지 간행, 숫자 미기록 | |
송영 | 宋影 | 극작가 | 1 |
박순천 | 朴順天 | 친일시국강연 (2) |
특히 이광수, 주요한, 김동환, 모윤숙, 백철 등은 김승학이 기록한 친일 행위 관련 횟수가 두드러지게 높아, 이들의 적극적인 친일 협력 행태를 짐작하게 한다. 노천명 시인 역시 명단에 포함되어 있으나 관련 숫자는 기록되지 않았다. 무용가 최승희의 경우, 예술적 성취와는 별개로 일제 강점기 말기 활동에 대한 친일 논란이 존재한다.
명단에는 문학, 연극,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친 친일 협력의 일면을 보여준다. 다만, 이 명단은 김승학 개인의 판단에 따른 기록이며, 각 인물의 친일 행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역사적 평가는 추가적인 자료 검토와 연구가 필요하다.
3. 3. 교육, 종교계 (19명)
- 정남수 (鄭南洙): 목사
- 김활란 (金活蘭): 이화여전 교장
- 장면(張勉): 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연맹 간사
- 허하백 (許河伯): 여성계 인사
- 신흥우 (申興雨): 목사
- 이헌구 (李軒求): 평론가
- 이숙종 (李淑鐘): 여성계, 교육계 인사
- 오긍선 (吳兢善): 교육자
- 양주삼 (梁柱三): 기독교 감리교 총리사
- 유억겸 (兪億兼): 일본 기독교청년회 조선위원
- 유진오 (兪鎭午): 교육자, 소설가
- 송금선 (宋今璇): 교육자, 덕성여자실업학교장
- 황신덕 (黃信德): 교육자
- 임숙재 (任淑宰): 교육자
- 손정규 (孫貞圭): 교육자
- 유각경 (兪珏卿): 전 조선여자기청 전무
- 홍승원 (洪承嫄): 여성계 인사
- 고황경 (高凰京): 교육자
- 김성수 (金性洙): 동아일보 사장
3. 4. 다액 국방금 헌납자 (36명 외)
이름 | 한자 표기 | 헌납 내용 / 주요 직책 |
---|---|---|
김연수 | 金秊洙 | 81만원과 물품 |
최창학 | 崔昌學 | 임전보국단 이사 |
김치구 | 金致龜 | 백미 1만석 (10년간) 헌납 |
원봉수 | 元鳳洙 | 백미 3천석 |
김성호 | 金聖浩 | 20만원 |
박흥식 | 朴興植 | 조선비행기주식회사 대표, 20만원 |
임훈 | 林薰 | 12만원 |
산본승사 | 山本昇司 | 10만원 |
이교식 | 李敎植 | 10만원 |
대산계치 | 大山啓治 | 20만원 |
손창식 | 孫昌植 | 40만원 |
수묵심일 | 水墨深一 | 10만원 |
이영구 | 李英九 | 12.5만원 |
김용섭 | 金龍燮 | 20만원 |
평산용웅 | 平山龍雄 | 10만원 |
박기효 | 朴基孝 | |
이병길 | 李丙吉 | |
청목무일 | 靑木茂一 | 20만원 |
남경이 | 南耕二 | 50만원 |
김순흥 | 金淳興 | |
김정호 | 金正浩 | |
민대식 | 閔大植 | |
민규식 | 閔奎植 | |
손홍준 | 孫洪駿 | |
맹영옥 | 孟永玉 | |
이병길 | 李丙吉 | |
임종상 | 林宗相 | |
장지필 | 張志弼 | |
장황 | 張璜 | |
박흥래 | 朴興來 | |
한인수 | 韓寅洙 | |
김상훈 | 金相訓 | |
김상진 | 金相鎭 | |
손창윤 | 孫昌潤 | |
박우석 | 朴宇錫 | |
백낙승 | 白樂承 | |
그 외 56명 |
3. 5. 지원병 (70명)
이름 | 한자 이름 | 이름 | 한자 이름 |
---|---|---|---|
이수우 | 李壽宇 | 윤철모 | 尹哲模 |
김근창 | 金根昌 | 정병두 | 鄭炳斗 |
김주석 | 金柱錫 | 김용인 | 金容仁 |
유영복 | 劉永福 | 송문식 | 宋文植 |
김칠수 | 金七洙 | 이영우 | 李英雨 |
김광수 | 金光洙 | 하공식 | 河公植 |
이용성 | 李龍星 | 이종정 | 李鐘亭 |
김병순 | 金秉淳 | 임병선 | 林炳善 |
청목무 | 靑木茂 | 조순용 | 趙順容 |
김성덕 | 金聖德 | 윤시숙 | 尹時淑 |
이지봉 | 李之鳳 | 김대진 | 金大鎭 |
오인상 | 吳寅象 | 최정낙 | 崔程洛 |
최병옥 | 崔炳玉 | 오재춘 | 吳在春 |
정선영 | 鄭先永 | 김종만 | 金鍾萬 |
김기창 | 金起昌 | 이병윤 | 李炳潤 |
김정수 | 金正秀 | 김종규 | 金宗圭 |
허인구 | 許印九 | 외삼오각 | 外三五各 |
김도근 | 金道根 | 조병묵 | 趙秉黙 |
손복희 | 孫福熙 | 허만학 | 許萬鶴 |
서원순광 | 西原順光 | 송원주훈 | 宋原柱薰 |
송원규희 | 宋原奎喜 | 신목부차랑 | 新木富次郞 |
해원삼절 | 海原三節 | 산본규순 | 山本圭淳 |
김전승환 | 金田昇丸 | 무원병권 | 武源炳權 |
현무기완 | 玄武磯完 | 백년설 | 白年雪 |
신농철수 | 新農鐵秀 | 길전청작 | 吉田淸作 |
박용해 | 朴龍海 | 죽림객승 | 竹林客承 |
청수홍석 | 淸水弘錫 | 평산기범 | 平山基範 |
장병학 | 張炳學 | 신생창근 | 新生昌根 |
암본종조 | 岩本鍾詔 | 대촌희명 | 大村熙明 |
박용석 | 朴容錫 | 해본의웅 | 海本義雄 |
옥산광랑 | 玉山光郞 | 김동은 | 金東殷 |
복전수창 | 福田秀昌 | 백정재정 | 白井載貞 |
무평충웅 | 武平忠雄 | 박향림 | 朴響林 |
남인수 | 南仁樹 | 연규홍 | 延奎弘 |
김중환 | 金重煥 | 송본원영 | 宋本元榮 |
4. 명단의 한계와 논란
김승학이 김구 등 한국독립당 지도부의 지시를 받고 명단을 작성했는지 여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하여 국내 사정에 어두웠을 수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 민간 인사들의 정보 수집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명단의 정확성이나 완결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혈서 지원자로 표시된 가수 남인수, 백년설, 박향림은 이들이 부른 '혈서지원'이라는 노래 때문에 착오로 명단에 잘못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1]
5. 친일파 청산 논의와 현대적 의의
김승학이 작성한 친일파 명단은 《친일파 군상(親日派 群像)》이라는 제목이 붙은 육필 원고 형태로 존재했으며, 2001년에 발굴되어 《월간중앙》을 통해 공개되었다.
이 명단이 작성된 시기는 1948년으로, 남한에서 단독 선거가 치러지고 단독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결성이 구체화되던 때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명단은 정부 수립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한국독립당 계열 인사들이 가졌던 친일파 청산에 대한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사료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명단의 작성 경위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김승학이 김구를 비롯한 한국독립당 지도부의 지시를 받고 작성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김승학을 포함한 임시정부 계열 인사들은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 사정에 상대적으로 어두웠을 수 있으며, 민간인 신분으로서 정보 수집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 때문에 명단 자체의 정확성이나 완결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명단에 혈서 지원자로 기록된 가수 남인수, 백년설, 박향림 등은 실제 혈서 지원자가 아니라 〈혈서지원〉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사실이 와전되어 잘못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1]
김승학의 육필 원고는 1948년 삼성문화사에서 출간된 《친일파 군상》이라는 단행본의 초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명단은 당시 임시정부 계열의 친일파 청산 의지를 보여주는 사료로서 가치가 있지만, 작성 경위의 불확실성과 정보 수집의 한계로 인해 내용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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