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토 제도는 오키나와 본섬 동쪽 약 340km 태평양상에 위치한 섬들로, 열대 몬순 기후를 보인다. 약 100만 년 전부터 20만 년 전 사이 산호초 융기에 의해 형성된 해양도로, 남대동섬, 북대동섬, 오키다이토섬으로 구성된다. 1885년 일본 영유가 확정되었으며, 1899년 개척 이민이 정착하여 사탕수수 재배를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정 아래에서 미나미다이토촌과 기타다이토촌이 설치되었고, 1972년 일본에 반환되었다. 현재 북대동공항과 남대동공항을 통해 나하 공항과 연결되며, 해상 교통과 통신 시설도 갖추고 있다. 다이토 제도는 고유종이 서식하는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으며, 의료 서비스도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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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토 제도 - 기타다이토섬 기타다이토섬은 오키나와현에 속한 융기된 환초 지형의 산호섬으로, 열대 우림 기후와 독특한 생태계를 지니며, 사탕수수 재배와 인광석 광산 운영의 역사를 거쳐 현재는 기타다이토촌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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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토 제도는 오키나와에서 오랫동안 우후가리(大東)로 알려져 왔다. 류큐어로 "동쪽 끝"을 의미하는 우후가리는 일본어로는 "오오아가리"에 해당하며, "대동(大東)"이라는 한자 표기는 이러한 의미를 담아 붙여진 것이다. 1820년 러시아 제국의 범선 “보로지노(Бородино)”가 이 섬들을 측량한 후, '보로지노 제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22]
1543년 9월 25일, 스페인의 탐험가 베르나르도 데 라 토레가 스페인령 필리핀에서 스페인령 멕시코로 돌아가는 북쪽 항로를 찾으려는 시도 중에 처음 발견하였다. 미나미다이토지마와 키타다이토지마는 며칠 후 기록되었다.[1] 이후 여러 국가의 유럽 탐험가들이 방문했다.
1885년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할 때까지 무인도로 남아 있었다. 1900년도쿄 남쪽 287km에 위치한 이즈 제도 중 하나인 하치조섬 출신의 개척단이 다마오키 한우에몬(1838~1910)의 지휘 아래 미나미다이토지마에 정착하여 사탕수수 재배를 시작했다. 그는 이후 키타다이토지마와 오키다이토지마의 식민지 개척 노력을 이끌었다. 이 두 섬에는 인산 비료와 화약의 원료가 되는 상당한 양의 구아노 매장량이 있었다. 1919년까지 인구는 4000명이 넘었다.
키타다이토지마는 고대 산호초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1934년 일본 과학자팀이 석회암 아래의 지반 성질을 알아내기 위해 석회암을 시추하기 위해 이 섬을 방문했다. 1936년 시추공은 최종적으로 431.67m에 도달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화석 산호와 고대 유공충 모래 이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2]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나미다이토지마는 미국 해군의 반복적인 공격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모든 섬은 미국이 점령하여 1950년부터 미국령 류큐 제도 민정부의 일부로 관리되었다. 이 섬들은 1971년 오키나와 반환 협정에 따라 1972년 일본에 반환되었다.
오키나와 전투 후, 미군정이 시행되면서, 1946년에 처음으로 다이토 제도에도 촌제가 시행되어 기타다이토촌(北大東村)과 미나미다이토촌(南大東村)이 탄생했다. 제도 최초의 우체국 설치도 미국 통치하의 1946년이다(남대동우체국).[32]
3. 1. 일본의 영유권 주장과 개척
메이지 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이주해오기 전까지는 무인도였다. 1885년 일본 영유가 확정되었다.[40] 1885년부터 행해져 온 섬 내 조사 과정에서 "절벽에 막혀 있지만, 섬 안은 평탄하고 비옥한 토양에 풍족하다"라는 보고가 있었다.[23]
접안이 어려워 개척이 쉽지 않았으나, 1899년 다마오키 한우에몬(玉置半右衛門)이 이끄는 하치조섬(八丈島)에서 온 개척 이민 22명이 상륙, 정착에 성공했다. 1900년도쿄 남쪽에 위치한 이즈 제도 중 하나인 하치조섬 출신의 개척단이 다마오키 한우에몬(1838~1910)의 지휘 아래 남대동도에 정착하여 사탕수수 재배를 시작했다. 그는 이후 북대동도와 충대동도의 식민지 개척 노력을 이끌었다.
1900년 (메이지(明治) 33년)에는 충대동도에 대해 일본이 영유를 다른 나라에 선포하고 오키나와현(沖縄県)에 편입되었다. 그 이후 시정촌은 설치되지 않은 채 다마오키(玉置) 상회, 이어 대일본제당(大日本製糖)이 행정 운영을 대신해 오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정 아래에서 미나미다이토촌(南大東村)과 기타다이토촌(北大東村)이 설치되었다.[40]
1900년대 이후에는 다마오키 한우에몬을 중심으로 한 개척단에 의한 이주가 시작되어, 북대동도와 남대동도는 다마키 상회(후에 사업이 매각되어, 최종적으로는 다이닛폰세이토(大日本製糖))가, 충대동도는 라사공업(ラサ工業)이 섬 전체를 지배하고, 행정 기능조차도 이러한 사기업에 의해 행해졌다.
3. 2. 제2차 세계 대전과 전후
메이지 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이주해오기 전까지는 무인도였다. 1885년 일본 영유가 확정되었다. 1899년 다마오키(玉置半右衛門)가 이끄는 하치조섬(八丈島)에서 온 개척 이민 22명이 상륙, 정착에 성공했다. 그 이후 시정촌은 설치되지 않은 채 다마오키(玉置) 상회, 이어 대일본제당(大日本製糖)이 행정운영을 대신해 오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정 아래에서 미나미다이토촌(南大東村)과 기타다이토촌(北大東村)이 설치되었다.[40]
이 섬들은 오키나와에서는 오랫동안 우후가리(大東)로 알려져 왔다. 1820년러시아 제국의 범선이 측량한 후 보로디노 제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22]
1885년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할 때까지 무인도로 남아 있었다. 1900년도쿄 남쪽 287km에 위치한 이즈 제도 중 하나인 하치조섬 출신의 개척단이 다마오키 한우에몬(1838~1910)의 지휘 아래 미나미다이토지마에 정착하여 사탕수수 재배를 시작했다. 그는 이후 키타다이토지마와 오키다이토지마의 식민지 개척 노력을 이끌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나미다이토지마는 미국 해군의 반복적인 공격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모든 섬은 미국이 점령하여 1950년부터 미국령 류큐 제도 민정부의 일부로 관리되었다. 이 섬들은 1971년 오키나와 반환 협정에 따라 1972년 일본에 반환되었다.
오키나와의 미군정(アメリカ合衆国による沖縄統治)이 시작됨에 따라 제당 회사에 의한 섬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남대동섬(南大東島)과 북대동섬(北大東島)에 촌제가 시행되어 각각 남대동촌(南大東村), 북대동촌(北大東村)이 성립되었다.
제도 최초의 우체국(남대동우체국(南大東郵便局))이 설치되었다.[32]
1949년: 일반인을 위한 전보 취급이 시작되었다.
1953년~1954년경: 라디오 공동 수신 시설의 운용이 시작되었다.
1959년: 나하(那覇)와의 사이에 무선 전화 설비가 개설되었다.
1961년: 류큐 전신전화 공사(琉球電信電話公社)가 섬 내부 전화를 개설했다.
1972년: 오키나와 반환(沖縄返還)에 따라 일본에 반환되었다. 섬 외부 전화가 개통되었다.
1974년: 남대동섬(南大東島)에 케이블 텔레비전국이 개국했다.
1979년: 전화가 다이얼 자동화되어 교환원을 거치지 않고 통화할 수 있게 되었다 (통신 위성을 사용. 시외 국번은 09802).
1984년: 일본방송협회(日本放送協会)(NHK)가 '유리 2호 a(ゆり2号a)'에 의한 위성 시험 방송(衛星試験放送)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제도 내 최초의 동시 텔레비전 방송(テレビ放送)이 시작되었다.
1998년: 지상파 아날로그 텔레비전 방송(アナログテレビ放送)이 시작되었다. NHK 도쿄(NHK首都圏局) 및 오키나와현에 계열국이 있는 민영 키국(キー局)인 TBS텔레비전(TBSテレビ), 후지텔레비전(フジテレビジョン), 텔레비 아사히(テレビ朝日)의 방송 내용이 그대로 방영되었다.
2011년:
오키나와 본섬과 남대동섬(南大東島) 사이에 해저 광케이블이 설치되어 운용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제도 내 통신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다.
이와 함께 지상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日本の地上デジタルテレビ放送)도 시작되었다. 오키나와현역 텔레비전 방송국(본섬)으로부터의 직접 동시 배신이 되었다.
4. 생태
류큐 제도에서 300km 이상 떨어져 있는 다이토 제도는 하부가 자연적으로 서식하지 않는 독특하고 고립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고유종을 보유하고 있다.[3] 뱀이 없기 때문에 유입된 두꺼비가 번성하게 되었다.[4] 미나미다이토섬, 오키다이토섬은 원래 원시림이었으나, 군사 훈련을 포함한 인간 활동으로 인해 숲이 사라지고 특히 오키다이토섬에서 고유종이 멸종되었다.[5] 장어를 제외하고, 탐험 이전에는 담수어류와 양서류가 기록되지 않았다.
섬에서 번식하는 철새와 해양 종에는 레이산알바트로스[5], 검은날개물떼새[12], 참치, 가다랑어, 방어, 청새치, 쥐가오리, 일본 가재, 바다거북, 돌고래, 혹등고래 등이 있다.[13]류큐 제도 중에서 녹색꿩은 다이토 제도에만 서식한다.[12] 산호와 산호초 어류 또한 군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데, 특히 황금붓꼬리돔(Chaetodon auripes)은 때때로 이 섬들에 고유한 것으로 간주되며,[14] ''Hemitaurichthys thompsoni''는 이전에는 보닌 제도에서만 기록되었다.[15] 일본 해역에서 더욱 희귀해진 흑새치와 쥐돔도 여전히 서식한다.[16]
4. 1. 보호 구역
류큐 제도에서 300km 이상 떨어진 다이토 제도는 하부 독사가 없는 독특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으며, 고유종이 서식한다.[3] 뱀이 없어 두꺼비가 번성하게 되었다.[4] 미나미 섬과 오키 섬은 원래 원시림이었으나, 군사 훈련 등으로 숲이 사라지고 오키다이토지마에서 고유종이 멸종되었다.[5] 오키다이토지마와 작은 섬을 제외한 군도 전체는 4,251ha의 일본 야생 동물 보호 구역이며, 234ha의 특별 보호 구역이 있다.
남대동도 동쪽 해안의 식생
섬 이름이 붙은 동식물에는 대동과일박쥐, 대동말똥가리, 다이토 네올리트세아(Daito Neolitsea), 대동올빼미(일본 천연기념물)[6], 다이토 사슴벌레(Daito Stag Beetle)[7], 다이토 피굴루스 비노듈루스(Daito Figulus binodulus) (사슴벌레), 다이토 유터프노시아(Daito Euterpnosia)(매미), 대동쇠붉은뺨멧새, 대동검은턱멧새, 대동흰눈썹흰멧새, 대동종려나무[8], 대동피마자나무[9], 대동갈대속[10] 등이 있다. 다이토 휘파람새(Daito bush warbler), 대동곤줄박이, 대동 흰눈썹지빠귀(Daito wren) 등은 멸종되었다.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은 이 섬을 국제적으로 중요한 조류 지역(IBA)으로 인정했다.[11]
번식하는 철새와 해양 종에는 레이산알바트로스[5], 검은날개물떼새[12], 참치, 가다랑어, 방어, 청새치, 쥐가오리, 일본 가재, 바다거북, 돌고래, 혹등고래 등이 있다.[13] 녹색꿩은 다이토 제도에만 서식한다.[12] 황금붓꼬리돔(Chaetodon auripes)은 이 섬들에 고유한 것으로 간주되며,[14] ''Hemitaurichthys thompsoni''는 보닌 제도에서만 기록되었다.[15]흑새치와 쥐돔도 서식한다.[16]
북대동도와 남대동도 전역은 국 지정 대동제도 야생동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면적 4,251ha, 특별보호지구 234ha). 다이토오큰박쥐와 다이토오벌매 등 고유종·고유아종의 서식지이며, 붉은발부비와 장다리물떼새 등의 번식지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혹등고래도 대동제도를 월동지로 이용한다.[29]
4. 2. 다이토 고유종
류큐 제도에서 300km 이상 떨어진 다이토 제도는 하부 독사가 서식하지 않는 독특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고유종이 서식한다.[3] 뱀이 없어 두꺼비가 번성하게 되었다.[4] 미나미다이토섬, 오키다이토섬은 원래 원시림으로 덮여 있었으나, 인간 활동으로 인해 숲이 사라지고 특히 오키다이토섬에서 고유종이 멸종되었다.[5] 오키다이토섬과 작은 섬을 제외한 군도 전체는 4,251ha의 일본 야생 동물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234ha의 특별 보호 구역이 있다.
다이토 제도의 동식물 중에는 섬의 이름을 딴 것이 많다. 예를 들어 대동과일박쥐, 대동말똥가리, 다이토 네올리트세아(Daito Neolitsea), 대동올빼미(일본의 천연기념물)[6], 다이토 사슴벌레(Daito Stag Beetle)[7], 다이토 피굴루스 비노듈루스(Daito Figulus binodulus) (사슴벌레), 다이토 유터프노시아(Daito Euterpnosia)(매미), 대동쇠붉은뺨멧새, 대동검은턱멧새, 대동흰눈썹흰멧새, 대동종려나무[8], 대동피마자나무[9], 대동갈대속[10] 등이 있다. 다이토 휘파람새(Daito bush warbler), 대동곤줄박이, 대동 흰눈썹지빠귀(Daito wren) 등은 멸종되었다. 이 섬들은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에 의해 국제적으로 중요한 조류 지역(IBA)으로 인정받았다.[11]
섬에서 번식하는 철새와 해양 종에는 레이산알바트로스[5], 검은날개물떼새[12], 참치, 가다랑어, 방어, 청새치, 쥐가오리, 일본 가재, 바다거북, 돌고래, 혹등고래 등이 있다.[13] 녹색꿩은 류큐 제도 중 다이토 제도에만 서식한다.[12] 황금붓꼬리돔(Chaetodon auripes)은 이 섬들에 고유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며,[14] ''Hemitaurichthys thompsoni''는 이전에는 보닌 제도에서만 기록되었다.[15]흑새치와 쥐돔도 여전히 서식한다.[16]
북대동도와 남대동도 전역은 국 지정 대동제도 야생동식물보호구역(희소 야생동식물 서식지)으로 지정되어 있다(면적 4,251ha, 그중 특별보호지구는 234ha). 이는 두 섬이 다이토오큰박쥐와 다이토오벌매 등의 고유종·고유아종의 서식지이며, 붉은발부비와 장다리물떼새 등의 번식지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혹등고래도 다이토제도를 월동지로 이용하고 있다.[29]
오키다이토섬은 오랜 세월 인광석 채굴과 미군 사격 훈련으로 연안부를 제외하고 많은 생물이 소실된 것으로 여겨진다.
북대동공항과 남대동공항이 있으며, 류큐 에어 커뮤터를 통해 나하 공항과 연결된다. 두 공항 모두 소형 항공기(커뮤터기)를 이용하여 운항하며, 350km에 달하는 비행 거리는 커뮤터 노선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길고, 소요 시간은 약 1시간이다. 북대동섬과 남대동섬 간의 비행은 20km, 소요 시간 10분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항공 노선 중 하나였다. 1997년 두 공항의 활주로가 1,500m로 연장되어, 외딴섬에 800m 활주로만 있었던 항공 운송 체계의 미비가 크게 해소되었다.
=== 해상 교통 ===
나하토부두에서 대동해운의 여객선 「다이토」가 주 1회 정도 운항한다. 북대동도와 남대동도는 모두 외양에 위치하며 융기 환초 지형으로 주변 수심이 급경사로 깊다. 따라서 외곽 방파제 설치가 어렵고 해안선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일반적인 항만 정비가 어렵다. 섬 안에는 여러 곳에 항구라고 불리는 정박지가 있지만 부두에 접안하지는 않는다. 외해에 계선 부표나 닻을 사용하여 정박하며,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크레인에 의한 매달아 짐을 싣고 내리는 작업이나 예선을 이용한 하역을 하고 있다.
남대동도에서는 2000년 11월, 정박지와는 별도로 섬 북부에 일본에서는 드문 연안 대규모 암반 굴착 방식 공법으로 굴착하여 인공의 만을 건설한 남대동어항이 건설되어 어선의 계류가 가능하게 되었다. 북대동도에도 같은 시설이 건설되어 2019년 2월에 완공되었다.[39]
주변 해역은 거칠고 태풍의 통로이기도 하여 결항이 매우 잦다. 태풍 시즌에는 매년 수주일 이상 배가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섬 주민들은 생활의 한 방법으로 대형 냉장고를 여러 대 소유하는 등 어느 곳보다 비축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5. 1. 항공
북대동공항과 남대동공항이 있으며, 류큐 에어 커뮤터에 의해 나하 공항과 연결되어 있다. 두 공항 모두 소형 항공기(커뮤터기)를 이용하여 운항한다. 350km에 달하는 비행 거리는 커뮤터 노선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길며, 소요 시간은 약 1시간이다. 북대동섬과 남대동섬 간의 비행은 20km이며, 소요 시간 10분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항공 노선 중 하나였다. 1997년에 두 공항의 활주로가 1,500m로 연장되어, 외딴섬에 800m 활주로만 있었던 항공 운송 체계의 미비가 크게 해소되었다.
5. 2. 해상 교통
나하토부두에서 대동해운의 여객선 「다이토」가 주 1회 정도 운항한다. 북대동도와 남대동도는 모두 외양에 위치하며 융기 환초 지형이기 때문에 주변 수심이 급경사로 깊다. 따라서 외곽 방파제 설치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안선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섬이어서 일반적인 항만 정비가 어렵고, 섬 안에 여러 곳에 항구라고 불리는 정박지가 있지만 부두에 접안하는 것은 아니다. 외해에 계선 부표나 닻을 사용하여 정박하며,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크레인에 의한 매달아 짐을 싣고 내리는 작업이나 예선을 이용한 하역을 하고 있다.
남대동도에서는 2000년 11월에 정박지와는 별도로 섬 북부에 일본에서는 드문 연안을 대규모 암반 굴착 방식 공법으로 굴착하여 인공의 만을 건설한 남대동어항이 건설되어 어선의 계류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같은 시설이 북대동도에도 건설되어 2019년 2월에 완공되었다.[39]
주변 해역은 거칠고 태풍의 통로이기도 하기 때문에 결항이 매우 많다. 태풍 시즌이 되면 매년 수주일 이상 배가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섬 주민들은 생활의 한 방법으로 대형 냉장고를 여러 대 소유하는 등 어느 곳보다 비축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6. 통신
다이토 제도에 전신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17년(다이쇼 6년)이다. 동양정당(東洋精糖)이 무선전신 취급소를 설치하여 처음으로 일반인의 통신이 가능해졌다. 제도 최초의 우체국은 미군정하의 1946년(쇼와 21년) 남대동우체국이며, 공중전보 취급은 1949년(쇼와 24년)에 시작되었다.[32]
전화 설비는 제당회사의 사설 전화만 있었으나, 1959년(쇼와 34년) 나하와 무선전화 설비가 개설되었다. 1961년(쇼와 36년) 류큐전신전화공사가 도내 전화를 개설했고, 오키나와 반환 후인 1972년에 도외 전화가 개통되었다.[32]
오랫동안 다이토 제도와 도외 간 시외·시내통화는 북대동도와 남대동도 각각 1기씩 있는 NTT 무선 중계소에서 스카퍼JSAT의 통신위성JSAT·JCSAT을 경유하여 전화망에 연결되었다. 자동 다이얼화는 1979년으로, 타케토미정과 함께 일본 국내에서 가장 늦었다. 위성 경유로 발신 방법은 일반 전화와 다르지 않지만, 약간의 시간 지연이 발생했다.
2011년(헤이세이 23년) 지상 디지털 방송 개시에 따라 오키나와 본섬-남대동도 간 해저 케이블이 설치되어 위성 경유 통신의 특성은 해소되었다. 남대동도-북대동도 간에는 깊은 해구가 있어 해저 케이블 설치가 비용상 어렵기 때문에, 도간 무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외국번은 09802이며, 시내국번은 남대동이 2, 북대동이 3이다. 시외통화 요금은 오키나와현내라면 인접 취급이 된다. 휴대전화는 NTT 도코모와 더불어 2007년부터 오키나와 셀룰러의 au도 사용 가능해졌다. 소프트뱅크는 2014년(헤이세이 26년) 7월 현재 북대동도, 남대동도 모두 3G·플래티넘 밴드 기지국 설치 공사를 완료하여[30] 사용 가능해졌다.
2019년(헤이세이 31년/레이와 원년) 오키나와 본섬-북대동도 간 해저 광케이블 설치 계획을 위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휴대전화는 1999년 9월 NTT도코모가 난세이 제도(南西諸島)에서 처음으로 서비스를 개시했다.[32]
6. 1. 전화
다이토 제도에 전신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17년(다이쇼 6년)이다. 동양정당(東洋精糖)이 무선전신 취급소를 설치하여 처음으로 일반인의 통신이 가능해졌다. 제도 최초의 우체국 설치는 미군정하의 1946년(쇼와 21년)이며(남대동우체국), 공중전보 취급은 1949년(쇼와 24년)에 시작되었다.[32]
전화 설비는 제당회사의 사설 전화만 있었으나, 1959년(쇼와 34년)에 나하와의 사이에 무선전화 설비가 개설되었다. 복귀 전 류큐전신전화공사가 1961년(쇼와 36년)에 도내 전화를 개설했고, 더 나아가 오키나와 반환 후인 1972년에 도외 전화가 개통되었다.[32]
오랫동안 다이토 제도와 도외 간의 시외·시내통화는 북대동도와 남대동도 각각 1기씩 있는 NTT 무선 중계소에서, 스카퍼JSAT가 운영하는 통신위성JSAT·JCSAT을 경유하여 전화망에 연결되어 있었다. 자동 다이얼화는 1979년으로, 타케토미정과 함께 일본 국내에서 가장 늦은 시기였다. 위성 경유이기 때문에, 발신 방법은 일반 전화와 다르지 않지만, 약간의 시간 지연이 발생했다. JSAT의 운영은 1989년경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이전의 해당 통신 상황은 불명확하다.
2011년(헤이세이 23년)에 지상 디지털 방송 개시에 따라 오키나와 본섬-남대동도 간에 해저 케이블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위성 경유 통신의 특성은 해소되었다. 남대동도-북대동도 간에는 깊은 해구가 있어 해저 케이블을 설치하는 것이 비용상 어렵기 때문에, 도간 무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외국번은 09802이며, 시내국번은 남대동이 2, 북대동이 3이다. 시외통화 요금은 오키나와현내라면 인접 취급이 된다. 휴대전화는 NTT 도코모에 더하여 2007년부터 오키나와 셀룰러의 au도 사용 가능해졌다. 소프트뱅크는 2014년(헤이세이 26년) 7월 현재, 북대동도, 남대동도 모두 3G·플래티넘 밴드 기지국 설치 공사를 완료했기 때문에[30] 사용 가능해졌다.
2019년(헤이세이 31년/레이와 원년)에는 내장성을 높이기 위해 오키나와 본섬-북대동도 간 해저 광케이블 설치 계획을 위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휴대전화는 1999년 9월 NTT도코모가 난세이 제도(南西諸島)에서 처음으로 서비스를 개시했다.[32]
6. 2. 방송
일본 국내를 위한 위성방송(BS·CS방송) 시청에는 서비스 개시 이래 다른 지역과 비교해 특별한 차이점은 없다. 여기서는 지상파 방송에 대해 기술한다.
1975년까지 다이토 제도에는 지상파 TV 방송 중계국이 없어 TV 방송을 시청할 환경이 없었다. (단, 1974년에 미나미다이토섬에 케이블 TV 방송국이 개국했다. 방송이 아닌 일반 VTR 장치 등을 구입하여 시청하는 가정도 있었다.)[32]1975년에 NHK 오키나와 방송국이 본토의 TV 프로그램을 재편집하여 미나미다이토 촌사무소를 통해 2시간 정도의 테이프넷으로 시차 편성을 실시했으며, 1976년부터 1987년까지 케이블 텔레비전인 미나미다이토 유선 텔레비전 공동 센터도 더해 테이프넷 배포가 실시되었다(현재는 폐지).[32] 이러한 상황에서 군도 내에서는 오키나와현 평균보다 VTR 보급률이 높았고, 오키나와 본섬이나 현외 친척으로부터 녹화한 테이프를 받아 데크로 시청하는 일도 있었다.[32] 본토 및 본섬으로부터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던 낙도였기 때문에 군도 주민들의 텔레비전 미디어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고, 1984년 BS 방송 개시・최초 동시 방송 수신 환경 실현 시에는 당시 촌장과 많은 주민들이 모여 기념식을 거행할 정도였다.[32]
지상파 오키나와현역국 중계국 설치 및 케이블 텔레비전에 의한 재방송[31]은 각 방송국 본부(親局)·나하시가 있는 오키나와 본섬으로부터 거리가 멀어 기술적·비용적 문제로 실시되지 않았다.[32] 이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우선 1984년-1986년부터 NHK가 BS 아날로그 방송(NHK BS1 및 NHK BS2)을 수신하여 지상파(VHF)로 변환하여 방송했다.[32]
1998년부터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도 개시되었다. 그때는 도쿄도 에토군아오미의 텔레콤센터에서 오가사와라 제도(도쿄도) 향으로 송신하고 있는 재경 각사의 중계파·난시청 대책용 위성 중계 회선을 수신하여 중계하는 방법이 채택되었다.[33]
민방에 대해서는 오키나와현역국 중계국의 대체 조치로서, 현내에 계열국이 있는 TBS 텔레비전·후지 텔레비전·텔레비 아사히의 3개 방송만 중계되었고, 닛폰 TV·텔레비 도쿄의 프로그램은 볼 수 없었다.[34] 시청할 수 있는 방송국에 대해서도 로컬 뉴스나 일기예보는 모두 도쿄 것이었고, 수도권의 교통 정보 등 다이토 제도에서는 전혀 이용 가치가 없는 내용도 그대로 방영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통신위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폭우 등의 경우 강우에 의한 전파 감쇠로 수신 장애가 발생했다. 다이토 제도에 기상경보 등이 발표되었을 때는 아날로그 방송에서는 NHK에 테롭을 삽입하여 기상 정보를 내보내는 방식으로 주민을 위한 편의를 도모했다. 또, 현내 뉴스는 전화회선을 사용하여 문자 정보로 제공되었다.
2011년7월 22일에 재오키나와국 기타다이토 중계국, 미나미다이토 중계국이 디지털 신국으로 동시 개국했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다이토 제도에 대한 지상 디지털 방송의 전송로는 사키시마 제도와 마찬가지로 해저 광섬유 케이블이 사용되고 있다(오키나와 본섬측 육상국은 미야코지마 중계국으로의 전송과 마찬가지로 이토만시 요네스에 설치되어 있다).
디지털 중계국은 오키나와현역국이 방송하기 때문에 오키나와현역 로컬 방송에 더해, 오키나와현에 계열국이 없는 닛폰 TV 계열·텔레비 도쿄 계열[35]의 프로그램도 오키나와현역국에서 방송되는 경우 시청할 수 있게 된다.
1953년~1954년경 라디오 공동 수신 시설(각 섬의 집중 수신 시설에서 무선 방송을 수신하여 각 가정에 유선 스피커로 재전송하는 방식)이 시작되었다.[32]
2007년 4월 1일, 오키나와현의 AM 방송국(중파) 3개사의 중계국이 개국되었다. 하지만 AM는 외국 방송국과의 혼신으로 수신 상태가 좋지 않고, 송신 설비가 대규모가 되기 때문에[36], 다이토 제도에서는 FM으로 송신하고 있다(오키나와 본섬 이외의 현내 중계국도 마찬가지).
방송국
남대동
NHK 오키나와 제1
83.5 MHz
RBCi 라디오
81.4 MHz
라디오오키나와
79.6 MHz
모두 원래는 AM 방송국이지만, 야간의 외국 전파와의 혼신을 피하기 위해 FM으로 변환하여 방송하고 있다. 2013년 10월 현재, 오키나와 본섬에서 남대동 중계국으로의 전송에는 통신 위성이 사용되고 있지만, 통신 위성은 폭우나 태풍 등의 악천후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본래의 FM 라디오 방송국인 NHK-FM과 FM 오키나와는 중계국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포라딕E층이 발생하지 않는 한 수신 불가능하다. 2011년 지상 디지털 방송의 개시에 맞춰, 오키나와 본섬과 남대동섬 사이에 방송·통신 전송에 사용되는 해저 광케이블이 부설되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설치가 가능하지만,[37] 개국 시기는 미정이다. 참고로, NHK-FM은 2012년도에 오가사와라 제도의 지치지마·하하지마 양 중계국에 중계국을 설치했지만, 남대동 중계국은 설치되지 않아 전국에서 유일하게 NHK-FM을 직접 수신할 수 없는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NHK라디오 제2방송은 전국 동일 내용의 프로그램 편성이므로 낮에는 오키나와 본섬(나하 본국 1125 kHz)에서, 야간에는 본토의 대전력국(특히 도쿄, 오사카, 구마모토)에서 각각 수신 가능하기 때문에 설치되어 있지 않다. 2012년도에 오가사와라 제도의 지치지마·하하지마 양 지역에 라디오 제2방송의 중계국을 설치했지만, 남대동 중계국은 설치되지 않았다. radiko는 2018년도의 시험 배포만 도쿄 방송 센터에서 배포되었지만, 2019년도부터의 정식 배포는 대상 외이므로 청취할 수 없다.
전파 수신을 통한 라디오 방송 환경은 본토와 본섬(오키나와 본섬)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인터넷 라디오 동시 송출 서비스인 "NHK온라인 라디오 らじる★らじる", "radiko.jp"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권리 처리 문제로 동시 송출 서비스에서 방송되지 않는 일부 프로그램 및 음악을 제외하면, 오키나와 제도에서도 오키나와현 지역의 각 라디오 방송국(단, NHK 오키나와현 지역 방송은 현재 동시 송출 서비스에서 청취 불가능)[38], 전국 주요 8개 도시판 NHK 라디오 각 방송국(제1, 제2, FM), 그리고 유료로 일본 전국의 민영 라디오 방송을 청취할 수 있다.
참고로, FM 오키나와는 재팬FM네트워크와 각종 휴대전화・스마트폰 통신사가 제휴한 도코데모FM・LISMO WAVE의 유료 배포 서비스, 그리고 JFN PARK(현 Audee), WIZ RADIO를 이용한 무료 배포 서비스도 제공했지만, radiko의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현재는 이러한 앱을 통한 배포 서비스는 종료되었다.
7. 의료
2013년 10월 현재, 다이토 제도(大東諸島)에는 남대토섬(南大東島)과 북대토섬(北大東島) 각각에 현립 병원 부속 진료소와 촌립 치과 진료소가 있다. 북대토 치과 진료소(北大東歯科診療所)는 류큐 대학(琉球大学) 구강외과가, 남대토 치과 진료소(南大東歯科診療所)는 의료법인(医療法人) 케이시카이(恵歯会)(야마구치현(山口県) 슈난시(周南市))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1]
진료소에서 감당할 수 없는 환자가 발생하면 오키나와 본섬으로 응급 이송한다.[1] 운 좋게 류큐 에어 커뮤터(琉球エアーコミューター)의 항공편 스케줄에 맞는 경우, 류큐 에어 커뮤터기에 확보되어 있는 “촌장석(村長席)”을 이용하여 이동한다.[1] 야간 등 그 외의 경우에는 오키나와현 지사(沖縄県知事)를 통해 육상자위대(陸上自衛隊) 제15여단(第15旅団) 제15헬리콥터대(第15ヘリコプター隊) (나하 비행장(那覇飛行場) 주둔)에 재해 파견(災害派遣)을 요청하여 LR-2 연락 정찰기(偵察機) 또는 UH-60J/A 헬리콥터(ヘリコプター)에 의해 긴급 수송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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