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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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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이니치 신문사는 일본의 유력 언론사로, 1872년 도쿄니치니치신문 창간을 시작으로 1943년 현재의 이름으로 제호가 통일되었다. 도쿄, 오사카, 홋카이도 등 일본 주요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전국을 대상으로 신문을 발행한다. 주요 사업으로는 신문 발행 외에도 야구, 바둑, 장기 등 다양한 대회를 주최하며, 출판, 부동산, 인쇄, 광고 등 다양한 분야의 자회사를 거느린 매일신문그룹홀딩스 산하 기업이다. 과거 3억 엔 강도 사건 관련 체포 사건, 니시야마 사건, 마이니치 신문의 롯데·모리나가 사건 관련 날조 사건, 마이니치 데일리 뉴스 WaiWai 문제 등 불상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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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시야마 사건은 1971년 오키나와 반환 협정 당시, 니시야마 기자가 입수한 밀약 문서를 폭로하면서 발생했고, 이는 미일 간 오키나와 반환 협정의 이면에 원상복구 비용을 일본 측이 부담한다는 내용의 밀약이 존재함을 드러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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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 신문사
기본 정보
회사명주식회사 매일신문사
영문 회사명The Mainichi Newspapers Co., Ltd.
로고
매일신문 도쿄 본사 (파레스사이드 빌딩)
종류주식회사
본사 우편번호100-8051
본사 소재지서울특별시종로구일민대로 1-1 (파레스사이드 빌딩)
설립일1918년 (다이쇼 7년) 12월 21일
창간일1872년 3월 29일 (메이지 5년 2월 21일)
업종정보·통신업
사업 내용신문·잡지·서적 등의 발행·인쇄·판매업
대표자대표이사사장집행임원 마쓰키 겐
자본금1억 엔 (2021년 이후)
발행 주식 총수830만 주
매출액579억 6600만 엔 (2024년도)
영업이익-14억 600만 엔 (2024년도)
순이익-7억 3600만 엔 (2024년도)
순자산80억 5300만 엔 (2024년도)
총자산1320억 8000만 엔 (2024년도)
직원 수약 1,900명 (2021년도)
결산기3월 31일
주요 주주매일신문그룹홀딩스 100%
외부 링크매일신문사 공식 웹사이트
참고

2. 주요 사업소

도쿄본사(등기상 본점):도쿄도 지요다구 잇쓰바시 1-1-1 팔레스사이드빌

홋카이도지사:홋카이도삿포로시추오구 기타 4조 니시 6초메 1 매일삿포로회관

오사카본사:오사카부오사카시키타구우메다 3초메 4-5 매일신문빌딩

주부본사:아이치현나고야시나카무라구메에키 4초메 7-1 미드랜드스퀘어

주부본사 사사시마오피스:아이치현나고야시나카무라구히라이케초 4-60-12 글로벌게이트

서부본사:후쿠오카현기타큐슈시고쿠라키타구 콘야초 13-1 매일서부회관

후쿠오카본부: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추오구텐진 1초메 16-1 매일후쿠오카회관

2. 1. 도쿄 본사 (등기상 본점)

마이니치 신문 도쿄 본사(등기상 본점)는 도쿄도 지요다구 잇쓰바시 1-1-1 팔레스사이드 빌딩에 위치하고 있다.

2. 2. 홋카이도 지사

홋카이도삿포로시추오구 기타 4조 니시 6초메 1 매일 삿포로 회관에 위치하고 있다.

2. 3. 오사카 본사

오사카부 오사카시 키타구 우메다 3초메 4-5 매일신문빌딩에 위치하고 있다.

2. 4. 주부 본사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무라구 메에키 4초메 7-1 미들랜드 스퀘어에 위치하고 있다.

주부 본사 사사시마 오피스는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무라구 히라이케초 4-60-12 글로벌 게이트에 위치하고 있다.

2. 5. 서부 본사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고쿠라키타구 콘야초 13-1 매일 서부 회관에 위치하고 있다. 후쿠오카 본부는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주오구 텐진 1초메 16-1 매일 후쿠오카 회관에 위치하고 있다.

3. 사장(社章)



'대'(大)자를 별 모양으로 형상화하고, 그 중앙에 '매'(毎)자를 원으로 둘러싼 형태이다.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 시절인 1897년 3월 31일에 제정되어 1991년 11월 4일까지 사용되었다.

1991년 11월 5일 이후로는 코퍼레이트 아이덴티티를 도입하여, 눈과 별을 결합한 심볼 마크인 "매일의 눈"을 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3. 1. 구 사장 (1897년 ~ 1991년)



'대'(大)자를 별 모양으로 형상화하고, 그 중앙에 '매'(毎)자를 원으로 둘러싼 형태이다.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 시절인 1897년 3월 31일에 제정되어 1991년 11월 4일까지 사용되었다.

3. 2. 현 사장 (1991년 ~ 현재)

1991년 11월 5일 이후로는 코퍼레이트 아이덴티티를 도입하여, 눈과 별을 결합한 심볼 마크인 "매일의 눈"을 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4. 사기(社旗)

1991년 11월 5일 제호 변경 이전에는 흰 바탕에 매일신문사의 구 사장(앞서 언급된 별 모양)을 상단 중앙에 배치하고, 붉은색 두 줄의 선을 배경으로 한 디자인이었다. 두 줄의 선은 구름을, 별은 문화의 별을 나타낸다고 여겨졌다. 하단에는 명조체로 "매일신문사" 또는 제호와 같은 필체(예서체)로 "매일신문"이라고 표기한 경우가 있었다.

제호 변경 이후에는 현대의 지성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인텔리전트 블루(하늘색)를 기조로 하여, 제호와 거의 같게 양쪽에 "매일의 눈"을 배치하고, 그것을 사이에 두는 형태로 "MAINICHI"를, 중앙에는 밑줄(흰색)을 넣어 명조체로 매일신문이라고 표기한다.

4. 1. 1991년 이전

1991년 11월 5일 제호 변경 이전에는 흰 바탕에 매일신문사의 구 사장(앞서 언급된 별 모양의 것)을 상단 중앙에 배치하고, 붉은색 두 줄의 선을 배경으로 한 디자인이었다. 두 줄의 선은 구름을, 별은 문화의 별을 나타낸다고 여겨졌다. 하단에는 명조체로 "매일신문사" 또는 제호와 같은 필체(예서체)로 "매일신문"이라고 표기한 경우가 있었다.

4. 2. 1991년 이후

1991년 11월 5일 제호 변경 이전에는 흰 바탕에 상단 중앙에 매일신문사의 구 사장(앞서 언급된 별 모양의 것)을 배치하고, 붉은색 두 줄의 선을 배경으로 한 디자인이었다. 두 줄의 선은 구름을, 별은 문화의 별을 나타낸다고 여겨졌다. 하단에는 명조체로 "매일신문사" 또는 제호와 같은 필체(예서체)로 "매일신문"이라고 표기한 경우가 있었다.

제호 변경 이후에는 현대의 지성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인텔리전트 블루(하늘색)를 기조로 하여, 제호와 거의 같게 양쪽에 "매일의 눈"을 배치하고, 그것을 사이에 두는 형태로 "MAINICHI"를, 중앙에는 밑줄(흰색)을 넣어 명조체로 매일신문이라고 표기한다.

5. 연혁

1872년 도쿄니치니치신문이 창간되었다.[6] 1876년에는 '오사카니포'가 창간되었다.[6] 1882년, '오사카니포'를 대체하여 일본입헌정당신문(후의 오사카매일신문)이 창간되었다.[6]

1943년, 도쿄니치니치신문과 오사카매일신문이 제호를 통일하여 '''매일신문'''이 되었다.[6] 1947년 6월 5일에는 쇼와 천황이 오사카 본사를 방문했다.[7] 1950년 7월 28일, 각 보도 기관에서 레드퍼지가 시행되면서 매일신문사에서 49명이 해고되었다.[8]

1977년 11월 4일, 주식회사 매일신문사(구 오사카매일신문사)는 경영 악화로 신구분리에 의한 재건을 실시하였다. 시모노세키 신문, 스포츠닛폰신문 도쿄본사 및 종업원 주식회사, 주요 판매점, 도쿄방송(현·TBS홀딩스), 마이니치 방송, 산와은행 및 미쓰비시은행(모두 현재의 미쓰비시UFJ은행) 등의 40억 엔 출자로 매일신문주식회사를 도쿄에 설립하였다.[9] 1977년 12월 1일, 주식회사 매일신문사는 매일신문주식회사에 신문 발행권을 양도하고 주식회사 매일에 상호를 변경하였고, 매일신문주식회사는 이를 받아 주식회사 매일신문사(법인등기상 2대째)로 개칭하였다.[9]

1985년 10월, 주식회사 매일의 채무 상환이 완료되어 동사를 존속회사로 합병하였다. (상법상 본사는 도쿄본사) [9]

2011년4월 1일, 자회사인 주식회사 스포츠닛폰신문사와 공동으로 주식이전을 실시하여, 공동 지주회사인 매일·스포니치 지주이전주식회사(현·매일신문그룹홀딩스)를 설립하고, 그 완전자회사가 되었다.[10] 2015년4월 1일, 출판 사업 부문을 분사하여, 매일신문출판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10]

2020년 9월, 발행 부수에서 주니치 신문에 밀려 업계 4위로, 10월에는 니혼게이자이 신문에도 밀려 업계 5위로 하락했다. 11월에는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부수 하락으로 업계 4위로 복귀했다.[11]

2021년 3월, 자본금을 41억 5천만 엔에서 1억 엔으로 감자했다. 이는 세법상 중소기업에 해당하게 하기 위함이었다.[12] 같은 해 7월, 조간·석간 세트는 4,037엔에서 4,300엔으로, 조간만 발행하는 지역은 3,093엔에서 3,400엔으로 각각 가격을 인상했다. 이는 27년 반 만의 인상이었다.[12] 2023년 6월 1일, 조간·석간 세트는 4,300엔에서 4,900엔, 조간 통합판은 3,400엔에서 4,000엔, 1부 판매도 160엔으로 다시 인상했다.[13]

2024년 7월 17일, 9월말에 도야마현에서의 신문 배송을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국 47개 도도부현에 배송망을 유지해 온 마이니치 신문사의 첫 배송 중지 사례이다.[14]

5. 1. 창간 및 초기 발전 (1872년 ~ 1943년)

1872년 도쿄니치니치신문이 창간되었다.[6] 1876년에는 '오사카니포'가 창간되었다.[6] 1882년, '오사카니포'를 대체하여 일본입헌정당신문(후의 오사카매일신문)이 창간되었다.[6]

5. 2. 제호 통일 및 전후 재건 (1943년 ~ 1977년)

1943년, 도쿄니치니치신문과 오사카매일신문이 제호를 통일하여 '''매일신문'''이 되었다.[6] 1947년 6월 5일에는 쇼와 천황이 오사카 본사를 방문했다.[7] 1950년 7월 28일, 각 보도 기관에서 레드퍼지가 시행되면서 매일신문사에서 49명이 해고되었다.[8]

1977년, 경영 악화로 신구분리 방식의 재건이 이루어졌다. 시모노세키 신문, 스포츠닛폰신문 도쿄본사 및 종업원 주식회사, 주요 판매점, 도쿄방송(현 TBS홀딩스), 매일방송, 산와은행 및 미쓰비시은행(메인뱅크. 모두 현재의 미쓰비시UFJ은행) 등의 출자로 매일신문주식회사가 도쿄에 설립되었다. 이후 주식회사 매일신문사는 매일신문주식회사에 신문 발행권을 양도하고 주식회사 매일로 상호를 변경했다.

5. 3. 경영 안정화 및 지주회사 전환 (1977년 ~ 현재)

1977년 11월 4일, 주식회사 매일신문사(구 오사카매일신문사)는 경영 악화로 신구분리에 의한 재건을 실시하였다. 시모노세키 신문, 스포츠닛폰신문 도쿄본사 및 종업원 주식회사, 주요 판매점, 도쿄방송(현·TBS홀딩스), 마이니치 방송, 산와은행 및 미쓰비시은행(모두 현재의 미쓰비시UFJ은행) 등의 40억 엔 출자로 매일신문주식회사를 도쿄에 설립하였다.[9] 1977년 12월 1일, 주식회사 매일신문사는 매일신문주식회사에 신문 발행권을 양도하고 주식회사 매일에 상호를 변경하였고, 매일신문주식회사는 이를 받아 주식회사 매일신문사(법인등기상 2대째)로 개칭하였다.[9]

1985년 10월, 주식회사 매일의 채무 상환이 완료되어 동사를 존속회사로 합병하였다. (상법상 본사는 도쿄본사) [9]

2011년4월 1일, 자회사인 주식회사 스포츠닛폰신문사와 공동으로 주식이전을 실시하여, 공동 지주회사인 매일·스포니치 지주이전주식회사(현·매일신문그룹홀딩스)를 설립하고, 그 완전자회사가 되었다.[10] 2015년4월 1일, 출판 사업 부문을 분사하여, 매일신문출판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10]

2021년 3월, 자본금을 41억 5천만 엔에서 1억 엔으로 감자했다. 이는 세법상 중소기업에 해당하게 하기 위함이었다.[12] 같은 해 7월, 조간·석간 세트는 4,037엔에서 4,300엔으로, 조간만 발행하는 지역은 3,093엔에서 3,400엔으로 각각 가격을 인상했다. 이는 27년 반 만의 인상이었다.[12] 2023년 6월 1일, 조간·석간 세트는 4,300엔에서 4,900엔, 조간 통합판은 3,400엔에서 4,000엔, 1부 판매도 160엔으로 다시 인상했다.[13]

2024년 7월 17일, 9월말에 도야마현에서의 신문 배송을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국 47개 도도부현에 배송망을 유지해 온 마이니치 신문사의 첫 배송 중지 사례이다.[14]

6. 경영 실적 추이

毎日新聞社일본어의 경영 실적은 시대에 따라 변동해 왔으며, 최근에는 디지털 전환 등의 영향으로 매출액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단위는 백만 엔
결산기매출액영업이익경상이익당기순이익순자산총자산
2007년 3월기157,797959▲6,32520,532164,725
2008년 3월기152,54053618022,224170,363
2009년 3월기151,9411,37528222,645173,184
2010년 3월기148,7482,6942,16117720,399167,432
2011년 3월기138,085▲2,584▲2,695▲1,76116,928161,195
2015년 3월기118,2212812612,395152,313
2017년 3월기110,18115112022713,590153,066
2018년 3월기106,632▲19613015113,024150,834
2019년 3월기97,429▲1,780▲1,386▲53712,025147,877
2020년 3월기88,062▲3,817▲8,075▲6,9684,225140,214
2021년 3월기80,031▲2,800▲2,6741913,984140,867
2022년 3월기62,45324106▲4073,429135,326
2023년 3월기59,523▲1,196▲1,0963,0016,600134,200
2024년 3월기57,966▲1,406▲915▲7368,053132,080



※유가증권보고서 및 결산공고에서 작성

7. 대상 지역

마이니치 신문은 일본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되며, 지역별로 조간·석간 발행 여부에 차이가 있다.[15]

발행소발행 지역석간 발행 지역(일부 지역 제외)
도쿄 본사동북 지방, 관동 지방, 고신에쓰 지방, 시즈오카현이바라키현, 도치기현, 군마현, 사이타마현, 치바현, 도쿄도(오가사와라 제도 제외), 가나가와현, 시즈오카현
홋카이도 지사홋카이도※ 홋카이도 지사는 발행하는 모든 지역이 조간 통합판이다.
주부 본사아이치현, 기후현, 미에현(이가시, 나바리시, 쿠마노시, 미나미무로군 제외)※ 주부 본사는 발행하는 모든 지역이 조간 통합판이다.
오사카 본사호쿠리쿠 지방, 긴키 지방, 미에현이가시, 나바리시, 쿠마노시, 미나미무로군, 주고쿠 지방(야마구치현, 시마네현하마다시, 마스다시, 오다시, 고쓰시, 오치군, 가노아시군 제외), 시코쿠오사카부, 교토부, 효고현, 시가현, 나라현, 와카야마현
세이부 본사야마구치현, 시마네현하마다시, 마스다시, 오다시, 고쓰시, 오치군, 가노아시군, 규슈, 오키나와현야마구치현, 후쿠오카현, 오키나와현



석간은 각 도도부현의 일부를 제외한 지역에서 발행된다. 석간이 없는 지역에서는 통합판이 발행된다. 홋카이도는 2008년 8월 30일자로, 야마나시현2016년 3월 31일자로, 주부 본사 관할의 도카이 3현 (아이치현, 기후현, 미에현)은 2023년 3월 31일자로 각각 석간 발행을 폐지하고 통합판만 발행하게 되었다.[15]

오키나와현은 본토에서 항공으로 수송된다. 계열사인 스포츠닛폰은 류큐신포사와 제휴하여 「신포스포니치」로 현지 인쇄한다.

8. 불상사

3억 엔 강도 사건 관련 체포 사건(三億円別件逮捕事件), 니시야마 사건(西山事件), 마이니치 신문의 롯데·모리나가 사건 관련 날조 사건(毎日新聞のグリコ・森永事件に関する捏造事件), 마이니치 데일리 뉴스 WaiWai 문제(毎日デイリーニューズWaiWai問題) 등이 있었다.

2021년 5월 18일,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의 자위대 대규모 접종 센터 예약과 관련하여, 마이니치 신문 기자와 AERA dot. 기자로부터 "부정한 수단으로 예약이 가능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문의가 방위성에 있었다고 밝혔다. 기시 노부오(岸信夫)는 부정한 수단에 의한 예약은 백신 접종 희망자의 접종 기회를 빼앗고, 백신 자체가 낭비될 수 있는 악질적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하고, 방위성으로서 마이니치신문사 및 아사히신문출판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고 밝혔다.[16]

8. 1. 주요 불상사 목록

3억 엔 강도 사건 관련 체포 사건(三億円別件逮捕事件), 니시야마 사건(西山事件), 마이니치 신문의 롯데·모리나가 사건 관련 날조 사건(毎日新聞のグリコ・森永事件に関する捏造事件), 마이니치 데일리 뉴스 WaiWai 문제(毎日デイリーニューズWaiWai問題) 등이 있었다.

2021년 5월 18일,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의 자위대 대규모 접종 센터 예약과 관련하여, 매일신문 기자와 AERA dot. 기자로부터 "부정한 수단으로 예약이 가능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문의가 방위성에 있었다고 밝혔다. 기시 노부오(岸信夫)는 부정한 수단에 의한 예약은 백신 접종 희망자의 접종 기회를 빼앗고, 백신 자체가 낭비될 수 있는 악질적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하고, 방위성으로서 매일신문사 및 아사히신문출판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고 밝혔다.[16]

9. 발행 신문 및 잡지

9. 1. 신문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은 마이니치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신문이다. 마이니치 소학생 신문(毎日小学生新聞)과 홋카이도 소학생 신문도 발행하고 있다. 영문 주간지인 MAINICHI WEEKLY와 점자 마이니치신문(点字毎日)도 발행한다.

9. 2. 잡지

마이니치 신문사는 2015년 4월 1일에 출판 부문을 분사하여 마이니치 신문 출판(毎日新聞出版)을 설립했다.

주요 출판물로는 선데이 마이니치(サンデー毎日), 에코노미스트 (일본 잡지)(エコノミスト (日本の雑誌)), 월간 News가 와카루(月刊Newsがわかる)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에코노미스트 투자의 달인(エコノミスト投資の達人), 마이니치 포럼(毎日フォーラム), 불교예술(佛教芸術), 하이쿠 알파(俳句あるふぁ), MMJ (잡지)(MMJ (雑誌)) 등을 출판하고 있다.

관련 출판사로 마이내비(株式会社マイナビ)(구 마이니치커뮤니케이션즈(毎日コミュニケーションズ))가 있지만, 자본 및 업무 관계는 약화되었다. 다만, 마이내비가 출판하는 잡지나 신문 일부를 마이니치 신문 판매점에서 취급하기도 한다.

10. 주요 주최 행사

마이니치 신문사는 야구와 관련된 여러 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와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는 오사카 본사에서 주관하며, 각각 구 다이마이(大毎)와 마이니치 신문사에서 계승되었다. 도시 대항 야구 대회와 전일본 클럽 야구 선수권 대회는 도쿄 본사에서 주관하며, 도시 대항 야구 대회는 구 토니치(東日)에서 계승되었다.

마이니치 신문사는 아사히 신문과 공동으로 명인전과 순위전을 주최하고 있다. 스포니치와는 왕좌전을 공동 주최한다. 본인방전 또한 마이니치 신문사가 주최하는 기전 중 하나이다. 이들은 모두 도쿄 본사에서 관할하며, 명인전, 순위전, 본인방전은 구 동일본신문으로부터 계승되었다.

별후오이타매일마라톤은 서부본사 관할이다. 전국고교럭비대회와 고시엔볼은 오사카본사 관할이다. 대일본상투 본장소의 막내 최고우승 역사에게 증정되는 우승사진액은 도쿄본사 관할이며, 구 시사신보에서 계승되었다.

10. 1. 야구

마이니치 신문사는 야구와 관련된 여러 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와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는 오사카 본사에서 주관하며, 각각 구 다이마이(大毎)와 마이니치 신문사에서 계승되었다. 도시 대항 야구 대회와 전일본 클럽 야구 선수권 대회는 도쿄 본사에서 주관하며, 도시 대항 야구 대회는 구 토니치(東日)에서 계승되었다.

10. 2. 바둑·장기

마이니치 신문사는 아사히 신문과 공동으로 명인전과 순위전을 주최하고 있다. 스포니치와는 왕좌전을 공동 주최한다. 본인방전 또한 마이니치 신문사가 주최하는 기전 중 하나이다. 이들은 모두 도쿄 본사에서 관할하며, 명인전, 순위전, 본인방전은 구 동일본신문으로부터 계승되었다.

10. 3. 기타 경기

별후오이타매일마라톤은 서부본사 관할이다. 전국고교럭비대회와 고시엔볼은 오사카본사 관할이다. 대일본상투 본장소의 막내 최고우승 역사에게 증정되는 우승사진액은 도쿄본사 관할이며, 구 시사신보에서 계승되었다.

11. 과거 발행 신문 및 잡지

마이니치 신문사는 과거에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발행했으나, 현재는 발행이 중단된 것들도 있다.


  • 메이니치 데일리 뉴스(毎日デイリーニューズ): 2001년 3월 휴간되었으며, 4월부터 웹사이트 단독 미디어로 전환되었다.
  • 마치고토(マチゴト): 2014년 3월 휴간되었다.
  • MAINICHI RT: 2013년 8월 31일 휴간되었으며, 유료 전자판 및 타블로이드 조간(수도권 1도 3현 대상)으로 발행되었다.
  • 매일 중학생 신문(毎日中学生新聞): 2006년 3월 31일자로 휴간되었다.
  • 매일 어린이 신문(毎日こどもしんぶん): 1976년 창간되어 2000년 3월 휴간되었다.
  • 카메라매일
  • 매일그래프
  • 1억 명의 쇼와사
  • 일본의 초상
  • 매일라이프
  • 나의 식탁
  • 알바트로스 뷰: 1987년부터 2009년까지 발행되었으며, 프레지덴트사로 판권이 이전되었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팬북: 1979년부터 2008년까지 발행되었으며, 2009년부터 베이스볼 매거진사로 판권이 이전되었다.
  • FC도쿄 팬북: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발행되었으며, 2010년부터 아사히 신문출판으로 판권이 이전되었다.

12. 비판

13. 현역 사원 및 출신자

13. 1. 현역 사원 (일부)


  • 회카와 하루유키(会川晴之) (도쿄 본사 편집 편성국 편집위원): 몽골 핵폐기물 처리 계획 보도로 2012년 본 상다 기념 국제기자상(ボーン・上田記念国際記者賞) 수상.
  • 쿠니다 스미레(國枝すみれ) (외신부 부부장): 본 상다 기념 국제기자상(ボーン・上田記念国際記者賞) 수상.
  • 콘도 카츠시게(近藤勝重) (전문 편집위원)
  • 시게자토 테츠야(重里徹也) (논설위원)
  • 마키 타로(牧太郎) (전문 편집위원)
  • 마츠다 타카카즈(松田喬和) (전문 편집위원)
  • 모토무라 유키코(元村有希子) (도쿄 본사 과학환경부 부부장): 이공계 백서 기획 창설, 2007년도 마이니치 신문 TV CM에서 이와미 타카오, 키시이 시게카츠, 시마 노부히코, 도리코시 슌타로와 공연, 2007~08년 런던 유학.
  • 요라 마사오(与良正男) (논설위원)
  • 아오노 유리(青野由利) (논설위원)
  • 스즈키 타쿠마(鈴木琢磨) (석간 편집부 편집위원)
  • 탄게 히데오(丹下日出夫) (계약 기자, 경마 평론가)
  • 하기오 신야(萩尾信也) (사회부 편집위원): 사토 켄 "사는 자의 기록" 취재반으로 이시바시 탐잔 기념 와세다 저널리즘 대상 수상.
  • 후쿠모토 요우코(福本容子) (객원 편집위원, 전 런던 특파원)
  • 후지와라 아키오(藤原章生) (편집위원): 카이타카 켄 논픽션상(開高健ノンフィクション賞) 수상.

13. 2. 출신자 (일부)

마이니치 신문사 출신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1919년 기쿠치 칸과 동시에 입사하여 학예부에서 소설을 담당했다.
  • 이시카와 킨이치 - 1920년 입사, 문화부장, 출판국장, 산 사진신문 사장을 거쳐 수필가, 일본 라이온스 클럽 초대 가버너를 역임했다.
  • 오니시 쿄진 - 1940년 입사, 서부 본사에서 징병·복원 후 복직하지 않고 작가로 전향했다.
  • 오야마 야스하루 - 장기 6단이었던 1942년에 촉탁 고용되었으며, 후에 실력 제3대 명인이 되었다.
  • 오쿠무라 신타로 - 1901년 입사, 사회부장을 거쳐 1936년부터 종전까지 사장을 역임했다.
  • 오와리 큐지 - 1927년 입사, 인쇄공에서 운동부 기자로 승진한 후, 프로야구 난카이 호크스 전속 스카우터로 이직했다.
  • 카네코 슈조 - 1924년 입사, 북평 지국장, 논설위원을 거쳐 라디오규슈 대표이사, RKB 매일방송 사장·회장을 역임했다.
  • 카와무라 카즈하루 - 1930년 입사, 전후 고치현 지사로 전직하여 2회 당선되었다.
  • 기쿠치 칸 - 1919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함께 시사신보에서 이직하여 학예부에서 소설을 담당했다. 1923년 문예춘추 창업을 위해 퇴사했지만, 1934년에 복귀했다.
  • 조토 모토아키 - 1907년 입사, 동일 편집주간이었던 1926년, 광문사건의 책임을 지고 일단 퇴사했다. 1932년, 대매 이사회장이 되었지만, 10개월 만에 사임했다.
  • 코타니 쇼이치 - 1936년 입사, 사업부에서 일간 신오사카 편집국장을 거쳐 덴츠 라디오·텔레비전 국장을 역임했다.
  • 사카모토 마사루 - 1925년경 일시 재직, 翼賛선거에서 중의원 당선 1회, 전후 효고현 지사 당선 2회를 기록했다.
  • 우스다 쥰스케 - 필명·큐킨. 1915년 오사카 니치니치 신문에서 이직, 학예부장으로 아쿠타가와와 기쿠치의 초빙에 힘쓴 후, 『선데이 매일』 초대 편집장을 역임했다.
  • 타카이시 신고로 - 1901년 입사, 구 대매 회장 겸 주필에서 매일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전후, IOC 위원·일본자전거진흥회(현·JKA) 회장 등을 역임했다.
  • 타카기 키이치로 - 1893년 시사신보에서 이직하여 제2대 사장을 역임했다.
  • 타카하시 신조 - 1928년 오사카 시사신보에서 이직, 부주필을 거쳐 매일방송 제2대 사장(실질적 창업자), 도쿄 12채널 이사 등을 역임했다.
  • 니시무라 마코토 - 1927년 입사, 학예부 시대에 로봇 『학천칙』을 만들었다. 논설고문, 대매 사회사업단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전일본보육연맹 창립자이자 배우 니시무라 아키라의 친부이다.
  • 니토베 이나조 - 1929년 고문으로 기용되어 영어 매일의 감수를 담당했다. 전 도쿄 여자대학 학장, 전 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역임했다.
  • 하라 다카시 - 1896년한성 특명전권공사를 사임하고 편집총리에 취임했다. 1898년부터 1906년까지 사장을 역임한 후, 제19대 수상이 되었다.
  • 히토미 키누에 - 1926년 입사, 운동부에서 육상 경기 선수로 활약하는 한편, 사업부에서 선발 중학교 야구 대회 본부를 담당하고 승리 팀의 교가 연주·교기 게양을 발안했다.
  • 히라카와 세이푸 - 1914년 입사, 사회부장을 거쳐 상무이사 편집주간을 역임했다.
  • 마스기 시즈에 - 1925년 입사, 무사코지 사네아츠의 애인이 되어 퇴사 후, 소설가로 전향했다. 전후, 요미우리 신문에서 신상 상담(현·인생 상담)의 응답자로 활약했다.
  • 호토야마 히코이치 - 1889년 오사카 후지타 그룹(현·DOWA홀딩스)에서 이직하여 고문을 역임했다. 1906년 제5대 사장에 취임하여 일보사 합병, 선발 중학교 야구·풋볼 우승 대회·대학 스모 선수권 설립, 『선데이 매일』『주간 이코노미스트』『점자 매일』 창간을 주도했다.
  • 유아사 요시오 - 1928년 입사, 대매 야구단 선수에서 운동부 기자를 거쳐 프로야구 매일 오리온스 총감독에 취임했다.
  • 와타나베 오사무 - 1888년 시사신보에서 이직하여 초대 사장 겸 주필을 역임했다. 도 신문(현·도쿄 신문) 주필을 겸임했다.
  • 마생 히사시(麻生久) - 1917년 입사, 퇴사 후 중의원 의원에 2회 당선되었으며, 사회대중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 아베 신노스케(阿部真之助) - 1911년 만주닛폰신문에서 이직, 학예부장으로서 실력제 명인전・순위전・본인방전을 기획했다. 주필을 끝으로 정년퇴직하고, NHK 회장・경영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NHK학원 창립자・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 이토 미요지(伊東巳代治) - 1891년 사장으로 취임, 내각서기관장(현・사무담당 관방부장관)、추밀고문관、귀족원 의원 등을 역임하고 정관계의 중진급을 역임했다.
  • 이나하라 카츠지(稲原勝治) - 1923년 요미우리신문에서 이직, 1931년 일본외사협회 이사장 취임을 위해 퇴사했다.
  • 오카모토 키도(岡本綺堂) - 1890년 입사, 중앙신문、야마토신문 등 경쟁 타사를 전전한 후 복귀했다. 1913년 퇴사하여 극작가로 전향했다.
  • 가토 다카아키(加藤高明) - 1904년 일보사 사장을 역임, 후에 제24대 수상을 역임했다.
  • 카와시마 쇼지로(川島正次郎) - 1918년 입사, 구 도쿄시 상공과장을 거쳐 중의원에 14회 당선되었으며, 자유민주당 부총재, 파벌 회장 등을 역임했다.
  • 키시이 준로(岸井寿郎) - 1919년 입사, 정치부장, 영업국 차장을 거쳐 익찬선거에서 중의원 의원에 1회 당선되었다.
  • 쿠메 마사오(久米正雄) - 작가. 1933년 아베에게 초빙되어 사우. 1938년 아베의 후임으로 학예부장을 역임했다.
  • 시카쿠라 키치지(鹿倉吉次) - 1914년 입사, 전무이사를 거쳐 라디오 도쿄(현・TBS홀딩스) 전무, 도쿄방송 제2대 사장을 역임했다.
  • 시모자와 히로시(子母澤寛) - 1926년 요미우리신문에서 이직, 사회부・학예부를 겸임하고 『신선조 3부작』을 저술했다. 1933년 시도 사건 당시 퇴사, 독립했다.
  • 시마자키 신타로(島崎新太郎) - 사회부장 시대에 도시대항야구를 발안했다.
  • 스즈키 시게사부로(鈴木茂三郎) - 1921년 다이쇼닛폰신문에서 이직, 1937년에 퇴직하여 무산대중당・일본무산당 서기장, 전후 일본사회당 제2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중의원에 6회 당선되었다.
  • 세키 나오히코(関直彦) - 1888년 사장을 역임, 퇴임 후 중의원에 10회 당선되었으며, 귀족원 의원, 도쿄변호사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법조계의 초대형 인물이 되었다.
  • 토쿠토미 이치로(徳富猪一郎) - 필명・소호. 국민신문 창업자. 1929년 동지 사장을 사임하고 사빈을 역임했다.
  • 하시도 신(橋戸信) - 1925년 오사카아사히신문에서 이직, 제1회 와세다-게이오 대항전에서 와세다의 주장을 맡았다. 도시대항야구의 창설에 공헌하고, 대회의 MVP에 해당하는 '''『하시도상』'''의 유래가 되었다.
  • 후쿠치 겐이치로(福地源一郎) - 1874년 대장성에서 이직, 종군기자로서 세이난전쟁을 취재한 후 주필・사장을 역임했다. 관보의 대행 기능을 수주하는 등의 실적을 남겼다.
  • 보 슈오(坊秀男) - 1933년 도신문에서 이직, 대정익찬회 재무부 부부장, 재정상보 사장을 거쳐 중의원에 11회 당선되었으며, 후생대신・대장대신을 역임했다.
  • 호리 시게루(保利茂) - 1927년 호치신문에서 이직, 시도 사건 당시 시도를 따라 퇴사 후, 중의원에 11회 당선되었으며, 내각관방장관、제59대 중의원 의장 등을 역임하고 거물 정치가가 되었다.
  • 미토 추조(三土忠造) - 1911년 입사, 중의원에 11회 당선, 귀족원 의원, 내무대신 등도 역임하고 거물 정치가가 되었다.
  • 유미다테 요시오(弓館芳夫) - 필명・코와니. 1918년 만조보에서 이직, 운동부장으로서 매일 테니스 선수권을 기획 실행, 그 후 사진부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 安倍 신타로(安倍晋太郎) - 1949년 입사, 정치부 기자에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각료 비서관이 되기 위해 퇴사했다. 이후 중의원 당선 11회, 파벌 회장 등을 역임했다.
  • 이치카와 히로시(市川浩) - 1954년 입사, 오사카 본사 사회부에서 난카이마루 조난 사고(南海丸遭難事故)의 참상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퇴사하여 철학의 길을 걸었다. 후에 메이지 대학 교수·명예교수를 역임했다.
  •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 1936년 구 다이마이(大毎) 입사, 학예부 부부장에서 아쿠타가와 상(芥川賞) 수상을 계기로 작가로 전향했다.
  • 우에다 조류(上田常隆) - 1926년 구 다이마이(大毎) 입사, 영업국장·상무이사를 거쳐 1961년 사장을 역임했다. 재임 중에는 도쿄 본사의 다케바시 이전을 추진한 외에도, 일본 사회인 야구 협회(현·JABA 일본 야구 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 우에타케 엔지(植竹圓次) - 1927년 구 도니치(東日) 입사, 도니치 정리부장, 마이니치 신문사 소학생 신문부장, 지방부장을 거쳐 도쿄도(東京都)하치오지시(八王子市)조역으로 전직, 이후 시장 당선 3회를 기록했다.
  • 우치야마 안지(内山安二) - 1954년 입사, 서부 본사 소학생 신문부에서 독립하여 학습 만화의 제1인자가 되었다.
  • 우메지마 사다시(梅島貞) - 1929년 입사, 1968년 사장을 역임했다.
  • 오시마 리소(大島理森) - 1969년 입사, 퇴사 후 중의원 당선 12회를 기록했으며, 제76-77대 중의원 의장(衆議院議長)을 역임하여 거물 정치인이 되었다.
  • 오모리 미노루(大森実) - 1945년 일본 질소 비료에서 이직, 외신부장을 거쳐 독립하여,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カリフォルニア大学アーバイン校) 교수 등을 역임했다.
  • 나카지마 미치오(中島道雄) - 1927년 입사, RKB 마이니치 방송 사장, 회장을 역임했다.
  • 쿠도 신이치로(工藤信一良) - 1939년 구 도니치(東日) 입사, 부사장에서 태평양 야구 연맹(파 리그) 회장에 취임하여, 사무국 공식 명칭을 '''『태평양 야구 연맹(パシフィック野球連盟)』'''으로 변경했다.
  • 쿠로사키 사다지로(黒崎貞治郎) - 1924년 구 도니치(東日) 입사, 도니치 학예부 부부장, 니칸 신오사카 편집국장, 사회부장, 마이니치 오리온스 이사를 거쳐 태평양 야구 연맹 이사장을 역임했다.
  • 코니시 카즈토(小西和人) - 1950년 도쿠시마 신문(徳島新聞)에서 이직, 오사카 본사 사회부에서 낚시꾼의 시각에서 환경 문제 취재를 담당했다. 1976년 독립하여 『주간 낚시 선데이』를 창간했다.
  • 후나구스쿠 야스요시(古波蔵保好) - 1941년 오키나와 신보(沖縄日報)에서 구 다이마이(大毎)로 이직, 오사카 본사 사회부 기자, 논설위원을 거쳐 수필가, 평론가를 역임했다.
  • 고바야시 마사미(小林正巳) - 1951년 입사, 정치부 부부장에서 중의원 의원으로 전직, 당선 2회를 기록했으며, 신자유 클럽(新自由クラブ) 결당에 참가했다.
  • 코미네 겐(小峰元) - 1943년 입사, 오사카 본사 정리부, 지방부에서 편집위원을 거쳐 람포상 수상을 계기로 퇴사하여 작가로 전향했다.
  • 사이토 모리요시(斎藤守慶) - 1951년 입사, 오사카 텔레비전 방송(大阪テレビ放送)에 출향 후, 마이니치 방송으로 옮겨 제5대 사장·회장·최고 고문을 역임했다.
  • 사카타 카츠로(坂田勝郎) - 1932년 구 다이마이(大毎) 입사, 상무이사 오사카 본사 대표에서 마이니치 방송으로 이직하여 부사장·제4대 사장·회장을 역임했다.
  • 시마 노부히코(嶌信彦) - 1965년 입사, 경제부를 거쳐 TBS TV 『프라임 타임』 『브로드캐스터(ブロードキャスター)』 등에서 코멘테이터를 맡았다.
  • 시바 시로(斯波四郎) - 1941년 구 도니치(東日) 입사, 선데이 마이니치 편집부를 거쳐 아쿠타가와상 수상을 계기로 퇴사하여 작가로 전향했다.
  • 니이나 츠요시(新名丈夫) - 1932년 구 도니치(東日) 입사, 합병 후인 1944년, 이른바 죽창 사건(竹槍事件)으로 수상도조 히데키(東条英機)의 노여움을 사, 제국 육군에 소집되어 이오지마 전투(硫黄島の戦い)에서 전멸 직전까지 갔다.
  • 스기모토 요시오(杉本良夫) - 1961년 입사, 1967년 미국 유학을 위해 퇴사했다. 이후 1973년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라트로브 대학교(ラトローブ大学) 교수, 멜버른 일본 연구 센터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 스즈키 츠네오(鈴木恒夫) - 1963년 입사, 도쿄 본사 정치부에서 코노 요헤이(河野洋平)의 비서로 전직, 중의원 당선 6회를 기록했으며, 후쿠다 개조내각에서 문부과학대신(文部科学大臣)을 역임했다.
  • 스즈키 무네이치(鈴木棟一) - 1962년 입사, 정치부에서 자민당의 내막에 정통하여, 편집위원을 거쳐 정치 평론가를 역임했다.
  • 스나다 이치로(砂田一郎) - 1960년 입사, 풀브라이트 프로그램(フルブライト・プログラム)으로 미국 유학 후, 워싱턴 지국을 거쳐 도카이 대학(東海大学)→가쿠슈인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 타카다 겐자부로(高田元三郎) - 1917년 구 다이마이(大毎) 입사, 도니치 대표를 거쳐 마이니치 신문사 대표이사, 1945년 오쿠무라의 후임으로 사장을 역임했다.
  • 타카하라 스미코(高原須美子) - 1956년 입사, 출판국에서 주간 에코노미스트를 담당 후, 정년퇴직하여 경제 평론가를 역임했다. 구 경제기획청 장관, 일본 체육 협회·센트럴 야구 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 타기가와 쿄(多岐川恭) - 1948년 요코하마 정금은행(横浜正金銀行)(현·미쓰비시 UFJ 은행(三菱UFJ銀行))에서 이직, 서부 본사 보도부에서 1958년 나오키상 수상을 계기로 퇴사했다.
  • 타케우치 레이이치(竹内黎一) - 1949년 입사, 정치부에서 아버지 타케우치 슌키치(竹内俊吉)의 뒤를 이어 중의원 당선 10회를 기록했다. 자민당 후지야마 파 아이세이카이(愛正会)의 전통을 끝까지 지켜내고, 나카소네 내각의 과학기술청(科学技術庁) 장관으로 입각 경험도 있다.
  • 타케무라 켄이치(竹村健一) - 1955년 입사, 영문 마이니치 기자에서 산요 특수 제강(山陽特殊製鋼)으로 이직, 이후 평론가로서 많은 저서를 발간했다.
  • 타네무라 나오키(種村直樹) - 1959년 입사, 도쿄 본사 사회부에서 국철(토키와 클럽)을 담당 후, 『레일웨이 라이터』라는 직함으로 독립했다.
  • 토가와 유키오(戸川幸夫) - 1937년 구 도니치(東日) 입사, 사회부 기자, 석간 도니치 사회부장을 거쳐 마이니치 그라프(毎日グラフ) 편집 차장을 역임했다. 1954년 나오키상 수상을 계기로 퇴사하여 동물 문학 작가로서 지위를 확립했다.
  • 토리이 모리유키(鳥井守幸) - 1955년 입사, 선데이 마이니치 편집장, 논설위원을 거쳐 테이쿄 헤이세이 대학(帝京平成大学) 교수, 일본 저널리스트 전문학교(日本ジャーナリスト専門学校) 제3대 교장을 역임했다.
  • 나이토 쿠니오(内藤国夫) - 1961년 입사, 도쿄 본사 사회부에서 도대 분쟁(東大紛争)을 담당 후, 편집위원을 거쳐 독립하여 반 소카 프리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 나이토 타케노부(内藤武宣) - 1961년 입사, 정치부에서 중의원 의원에 출마하지만 낙선하고, 제74대 수상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비서를 거쳐 킨키 방송(KBS 교토) 상무이사 사장실장을 역임했다. 뮤지션다이고(DAIGO)의 친부이다.
  • 난부 추헤이(南部忠平) - 1935년 구 다이마이(大毎) 입사, 운동부장을 거쳐 일본 육상 연맹 코치, 도쿄 올림픽 육상 총감독, 홋카이도 여자 단기대(현·홋카이도쇼 대학(北翔大学)) 교수 등을 역임했다.
  • 니시야마 타키치(西山太吉) - 1954년 입사, 도쿄 본사 정치부 재직 중인 1971년, 니시야마 사건(西山事件) 당사자로 체포·기소되었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을 얻었지만 직후 퇴사하여 프리 저널리스트(フリージャーナリスト)가 되었다.
  • 하무로 테츠오(葉室鐵夫) - 1946년 니시니혼 신문(西日本新聞)에서 이직, 오사카 본사 운동부에서 고시엔 볼(甲子園ボウル) 창설에 관여했다.
  • 후쿠시마 키요히코(福島清彦) - 1969년 입사, 경제부를 거쳐 신구 분리 시 노무라 종합 연구소(野村総合研究所)로 이직, 정년퇴직 후 릭쿄 대학 교수에서 특임 교수를 역임했다.
  • 후루야 쓰나마사(古谷綱正) - 1935년 구 도니치(東日) 입사, 정리부·논설위원(여록 필자)을 거쳐 TBS TV 『뉴스 코프』 캐스터를 역임했다. 아들 후루야 아키쓰나는 『8시다요! 전원 집합(8時だョ!全員集合)』 프로듀서이다.
  • 호소카와 류이치로(細川隆一郎) - 1942년 구 도니치(東日) 입사, 도쿄 본사 정치부장, 주부 본사 편집국 차장을 거쳐 정치 평론가를 역임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탤런트(タレント)로서도 활약했다.
  • 혼다 치카오(本田親男) - 1924년 고베 신문(神戸新聞)에서 이직, 구 다이마이(大毎) 사회부장, 오사카 본사 편집국장, 대표를 거쳐 제8대 사장을 역임했다. 일본 신문 협회(日本新聞協会) 회장, 마이니치 방송 회장 등을 역임했다.
  • 미야케 히사유키(三宅久之) - 1953년 입사, 도쿄 본사 특별 보도부장에서 텔레비 아사히(テレビ朝日) 『뉴스 레이더』 캐스터를 역임했다.
  • 무라야마 코헤이(村社講平) - 1946년 복원 후 입사, 오사카 본사 운동부에서 난부의 부하로서

14. 매일신문 그룹 기업

마이니치 신문사(毎日新聞社)는 마이니치신문그룹홀딩스(毎日新聞グループホールディングス) 산하에 다양한 분야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18] 미디어 사업 외에도 부동산, 인쇄, 광고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19]

미디어 사업 분야에서는 주식회사 毎日新聞ネット가 뉴스 사이트 및 데이터베이스 제작을 담당하고,[18] 주식회사 MANTAN이 MANTANWEB(만탄웹)을 운영한다. 주식회사 毎日教育総合研究所, 마이니치신문출판(毎日新聞出版) 주식회사도 미디어 사업 분야의 자회사이다. 또한, 시모쓰케신문(下野新聞)사, 후쿠시마민보(福島民報)사, 라디오후쿠시마(ラジオ福島)와 같이 지역 신문 및 라디오 방송국도 관련 기업으로 두고 있다.

부동산 사업 분야에는 주식회사 마이니치빌딩(毎日ビルディング)이 있다. 인쇄 사업 분야에는 주식회사 毎日新聞北海道センター, 주식회사 毎日新聞大阪センター, 주식회사 毎日新聞中四国印刷, 주식회사 毎日新聞九州センター가 있으며, 도니인쇄(東日印刷) 그룹이 동일본 지역 대부분, 고속오프셋(高速オフセット)이 간사이 지역 대부분의 인쇄 업무를 담당한다.

판매·운송 분야에는 毎日新聞開発株式会社, 毎日新聞名古屋開発株式会社, 毎日新聞大阪開発株式会社, 毎日販売協栄株式会社, 毎日新聞中部販売普及株式会社, 주식회사 東都春陽堂, 주식회사 近販, 에스·엔 수송(エス・エヌ輸送)株式会社, 주식회사 毎日新聞西部アシスト 등이 있다.

삽입 광고 분야에는 毎日折込株式会社, 주식회사 北海道毎日サービス, 주식회사 新広社, 주식회사 毎日メディアサービス 등이 있으며, 광고 분야에는 주식회사 마이니치광고사(毎日広告社), 주식회사 毎日企画サービス, 주식회사 毎日エージェンシー, 다이마이 광고(大毎広告)株式会社, 주식회사 西部毎日広告社 등이 있다.

기타 사업 분야에는 주식회사 毎栄, 주식회사 毎日文化センター〔주부〕, 주식회사 毎日文化センター〔오사카〕, 주식회사 毎日みらい創造ラボ, 주식회사 내외절단통신사(内外切抜通信社) 등이 있다.

15. 기타 관련 조직

매일신문은 여러 관련 조직을 통해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매일신용조합(毎日信用組合)은 직역 금융기관이다. 그 외에도 매일서도회(毎日書道会), 매일신문사회사업단(도쿄·오사카·서부)(毎日新聞社会事業団), 공익재단법인 인지증예방재단(公益財団法人認知症予防財団), 일반사단법인 아시아조사회(一般社団法人アジア調査会), 일반사단법인 종합디자이너협회(一般社団法人総合デザイナー協会), 일본뉴스시사능력검정협회(日本ニュース時事能力検定協会) 등이 있다.

16. 우호 회사·단체

현재 마이니치 신문 그룹은 TBS 및 계열 각국과 자본 관계는 거의 없지만, 우호 관계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사는 산와 그룹에 소속되어 미도리카이 회원 기업인 반면, TBS홀딩스와 TBS 텔레비전미쓰이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 (TBS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TBS홀딩스#신문계열의 상세 설명 참조)


  • 주식회사 TBS홀딩스(TBS Holdings, Inc.)
  • 주식회사 TBS 텔레비전(TBS Television, Inc.)
  • 주식회사 TBS 라디오(TBS Radio & Communications, Inc.)
  • 주식회사 BS-TBS(BS-TBS, Inc.)
  • 주식회사 MBS 미디어 홀딩스(MBS Media Holdings, Inc.)
  • 주식회사 마이니치 방송(Mainichi Broadcasting System, Inc.)
  • 주식회사 MBS 라디오(MBS Radio, Inc.)
  • 주식회사 RKB 마이니치 홀딩스(RKB Mainichi Holdings, Inc.)
  • RKB 마이니치 방송 주식회사(RKB Mainichi Broadcasting Corporation)
  • 주식회사 마이내비(Mynavi Corporation)
  • 사회복지법인 도쿄 헬렌 켈러 협회
  • 사회복지법인 일본 헬렌 켈러 재단
  • 일본 보도사진 연맹

17. 지배 하에 있는 기간방송사업자

매체 집중 배제 원칙에 따라, 마이니치 신문사는 특정 비율 이상의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 사업자를 두고 있다.[20] 주식회사 라디오 후쿠시마, 와카야마 방송, 텔레비전 야마구치 주식회사가 해당된다.[20]

참조

[1] 서적 毎日新聞 毎日新聞社 1872-03-29
[2] 웹사이트 https://rtbsquare.wo[...]
[3] 웹사이트 https://rtbsquare.wo[...]
[4] 웹사이트 https://rtbsquare.wo[...]
[5] 웹사이트 会社概要 https://www.mainichi[...] 2021-08-03
[6] 서적 국가의 신문 통제
[7] 서적 昭和天皇実録第十 東京書籍 2017-03-30
[8] 뉴스 報道界の赤色分子解雇 日本経済新聞 1950-07-29
[9] 서적 日本新聞年鑑(各年度版) 電通
[10] 뉴스 毎日新聞社:出版事業を分社化、「毎日新聞出版」4月設立 http://mainichi.jp/s[...] 2015-01-26
[11] 웹사이트 毎日新聞、ABC部数で中日新聞に続き日経新聞にも追い抜かれる https://rtbsquare.wo[...] 2021-01-25
[12] 웹사이트 購読料改定のお願い https://www.mainichi[...] 2021-08-25
[13] 웹사이트 毎日新聞、6月に値上げ 朝夕刊セット4900円 https://nordot.app/1[...] 2023-05-11
[14] 웹사이트 毎日新聞 富山県内での配送を9月末で休止へ 全国初 {{!}} NHK https://www3.nhk.or.[...] 日本放送協会 2024-07-17
[15] 기타
[16] 뉴스 「朝日新聞出版『AERA dot.』および毎日新聞の記者の悪質な行為であり、極めて遺憾。厳重に抗議する」大規模接種の予約システム報道めぐり岸防衛相 https://times.abema.[...] 2021-05-18
[17] 논문 菊池寛の大毎・東日再入社をめぐって https://hdl.handle.n[...] 関西大学国文学会 2019-03
[18] 웹사이트 企業情報 http://mainet.jp/det[...]
[19] 기타
[20] 웹사이트 地上系放送事業者 https://www.tele.sou[...]
[21] 웹사이트 https://webjournal.j[...]
[22] 트위터 https://twit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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