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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독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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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범독일주의는 '모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판(Pan)'과 '게르만'의 합성어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려는 사상이다. 1860년 이전, 신성로마제국 해체 이후 국민낭만주의의 발흥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1848년 혁명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 1871년 독일 제국 성립 이후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통합을 목표로 했으며, 오스트리아의 범독일주의는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에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팽창주의와 제국주의를 주장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즘과의 연관성으로 인해 금기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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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독일주의
개요
1900년경의 범게르만 연맹 깃발
1900년경의 범게르만 연맹 깃발
유형범민족주의, 정치적 이념
존속 기간19세기 ~ 1945년
목표게르만 민족의 통합 및 확산
지지 기반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
관련 단체범게르만 연맹
역사적 배경
기원19세기 범민족주의 운동
주요 주장모든 게르만 민족의 통합
게르만 문화의 우월성
동유럽으로의 영토 확장
주요 인물게오르크 리터 폰 쇠너러
하인리히 클라스
카를 페터스
이념적 특징
핵심 이념인종주의
민족주의
팽창주의
반유대주의
주요 구호하나의 민족, 하나의 제국, 하나의 지도자
"로마로부터의 해방"(Los von Rom)
영향 및 결과
정치적 영향독일 제국의 팽창 정책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 중 하나
나치즘의 등장
사회적 영향반유대주의 확산
소수 민족 탄압
종식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 독일의 패망과 함께 소멸
관련 용어
관련 개념헤임 인스 라이히(Heim ins Reich, "제국으로 돌아가라")
그로스도이체 뢰중(Großdeutsche Lösung, 대독일주의)
클라인도이체 뢰중(Kleindeutsche Lösung, 소독일주의)
레벤스라움(Lebensraum, 생존 공간)
관련 단체범게르만 연맹(Alldeutsche Bewegung)
기타
참고 문헌Britannica Online Encyclopedia: "Pan-Germanism (German political movement)"
Dagbladet.no: "Slik ble vi germanersvermere"
Bernard Mees, "The Science of the Swastika"

2. 어원

'판(Pan영어, 汎|넓을 범중국어)'이라는 단어는 "모든, 전체, 전부, 아우르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단어이다. 이 맥락에서 '게르만'이라는 명칭은 원래 율리우스 카이사르갈리아 북동부의 부족들, 또는 이들이 사는 지역을 가리켰던 라틴어 '게르마니(Germani)'에서 유래했으며 중세 후기에는 현대 독일어의 조상 방언을 사용하는 게르만어 화자를 지칭하는, 다소 느슨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영어로 '범게르만/범독일(Pan-German)'이라는 명칭은 1892년에 처음 사용되었다.[47][48]

독일어에서는 '범게르만주의'라는 표제 아래 다소 다양한 개념들을 포함시킬 수 있지만, 그 의미에는 조금이나 아니면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범독일'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전 독일의(alldeutsch|알도이치de)'나 '독일 전체의(gesamtdeutsch|게삼트도이치de)'와 같은 형용사는 일반적으로 모든 독일어 화자가 있는 '''국가'''들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움직임을 의미하지만, 반면에 '범게르만주의'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모든 '''화자'''들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의미한다.[5][6]

3. 유래 (1860년 이전)

범독일주의의 기원은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낭만적 민족주의가 탄생하면서 시작되었으며,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얀과 에른스트 모리츠 아른트가 초기 지지자였다. 30년 전쟁베스트팔렌 조약 체결 이후, 신성 로마 제국 내 수많은 영방국가들이 사실상 독립하면서 독일인들은 같은 민족이라는 유대감과 동질성이 희미해지고 여러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폴레옹이 합스부르크 가문을 여러 차례 패배시키고 스스로를 '프랑스인의 황제'라고 칭한 것은 신성 로마 황제의 권위에 큰 타격을 주었다.

1806년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이 스스로를 신성 로마 황제로 선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직위에서 물러났다. 이후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빈 체제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국민낭만주의가 탄생하면서 범독일주의가 시작되었다.

1820년 독일 연방.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는 파란색,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는 노란색, 독립적인 독일 연방 국가는 회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붉은색 경계는 연방의 영역을 나타낸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모두 연방 밖의 영토를 지배했다.


범독일주의 지지자들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유럽 내의 모든 독일어권 화자들을 통합하고자 했다. 범독일주의는 1848년 혁명 당시 지식인과 혁명가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었으며, 그중에는 리하르트 바그너그림 형제도 있었다.[45]

1841년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호프만 폰 팔러슬레벤이 작사한 Deutschlandlied|독일의 노래de는 첫 번째 구절에서 "뫼즈에서 메멜까지 / 아디제 강에서 벨트까지" 즉, 동프로이센과 남티롤을 포함하는 것으로 ''독일''을 정의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나 폴 안톤 라가르드와 같은 인물들은 서기 9세기 초에 시작된 동방식민운동으로 새롭게 개척되었던 중부~동부 유럽 영토, 특히 슬라브인들이 거주했던 몇몇 지역이나 발트해 연안을 두고 '독일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범독일주의자들에게 이 운동은 독일인들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그것의 소수 민족들과 재결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레벤스라움을 형성한 드랑 나흐 오스텐이었다.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1848년)을 떠올리면서, 카를 마르크스는 1853년에 "둘 모두 같은 위대한 민족에 속하는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서로 싸우는 대신, 세습적인 슬라브족을 위한 길만 준비한다"고 말한 바 있다.[49]

4. 진정한 독일이란

범독일주의의 기원은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낭만적 민족주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얀과 에른스트 모리츠 아른트가 초기 지지자였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발발한 30년 전쟁베스트팔렌 조약 체결 이후, 신성로마제국 내 수많은 영방국가들이 사실상 독립하면서 그곳 주민들은 명칭만 '독일인'이었을 뿐, 실제로는 같은 민족이라는 유대감과 동질성은 희미했고 여러 국가들 사이에 분열되어 있었다.

1848년 혁명가들 사이에서 범독일주의는 널리 퍼져 있었는데, 특히 리하르트 바그너그림 형제가 그러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파울 안톤 라가르드와 같은 인물들은 동방식민운동으로 개척되었던 중부~동부 유럽 영토, 특히 슬라브인들이 거주했던 몇몇 지역이나 발트해 연안을 '독일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범독일주의자들에게 이 운동은 독일인들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레벤스라움을 형성한 드랑 나흐 오스텐이었다.[45]

1841년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호프만 폰 팔러슬레벤이 작사한 독일의 노래de("독일의 노래")는 첫 번째 구절에서 "뫼즈에서 메멜까지 / 아디제 강에서 벨트까지" 즉, 동프로이센과 남티롤을 포함하는 것으로 ''독일''을 정의했다.

1차 슐레스비히 전쟁(1848년)을 떠올리며, 칼 마르크스는 1853년에 "독일인과 스칸디나비아인은 같은 위대한 민족에 속해 있으면서도 서로 다투는 대신 연합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세습적인 적 슬라브족을 위한 길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7]

범독일주의는 19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독일 통일」이념의 확대였다. 독일인의 민족주의 고양으로 인해 “독일어가 들리는 곳이 독일이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5. 오스트리아의 범독일주의

1848년 합스부르크 제국 혁명 이후,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혁명가들이 대독일 해결책을 주장했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배하여 독일에서 배제되고, 다민족 합스부르크 군주국에서 민족 갈등이 심화되면서 오스트리아에서 독일 민족 운동이 전개되었다.[15] 급진적인 독일 민족주의자이자 오스트리아 반유대주의자인 게오르크 리터 폰 셰너러가 이끄는 ''범독일 협회''와 같은 단체들은 합스부르크 군주국 통치하에 있는 모든 독일어 사용 지역을 독일 제국에 병합할 것을 요구했고, 열렬히 오스트리아 민족주의와 범오스트리아 정체성을 거부했다. 셰너러의 민족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독일 민족주의아돌프 히틀러나치 이데올로기에 영감을 주었다.[16]

1933년, 오스트리아 나치와 국민자유주의 대독일 인민당은 행동 단체를 결성하여, 독자적인 오스트리아 민족 정체성을 부과하고 오스트리아인들이 "더 나은 독일인"이라고 주장한 오스트로파시즘 오스트리아 연방국에 맞서 싸웠다. 쿠르트 슈슈니크나치 독일에 대한 유화 정책을 채택하고 오스트리아를 "더 나은 독일 국가"라고 불렀지만, 여전히 오스트리아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17] 1938년 오스트리아의 "안슐루스"로 오스트리아 독일 민족주의자들의 역사적 목표가 달성되었다.[18]

1945년 나치 독일의 몰락과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 나치즘과의 연관성으로 인해 범독일주의와 안슐루스에 대한 생각은 인기를 잃었고, 오스트리아인들은 자신들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연합의 독일 민족 진영과 초기 오스트리아 자유당에서 그러한 개념들이 부활했다.[19]

6. 스칸디나비아의 '범게르만주의'

북게르만어를 사용한 스칸디나비아를 범독일주의보다 더 광대한 개념인 '''범게르만주의'''에 포함시키려는 주장은 주류 범독일주의 사상과 함께 추진되었다.[61][62] 야코프 그림은 뭉크의 반덴마크 범게르만주의를 받아들여 덴마크인들이 도착하기 이전 유틀란트 반도 전역에 게르만족이 먼저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은 독일의 정당한 영토이며, 나머지 지역은 스웨덴에 넘겨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Großgermanisches Reich


이에 대해 다네비르케 유적지를 발굴한 고고학자 얀스 야코프 아스무센 워사에는 덴마크 영토에 있던 초기 주민들의 언어를 알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독일이 프랑스와 영국의 대부분 지역에 대해 더 확고한 '역사적 영유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슬라브족 역시 동프로이센을 포함한 독일 영토의 동부를 합병할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워사에의 주장과는 상관없이, 범독일주의는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의 독일인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1848년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는 범게르만주의가 덴마크에서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보다 덜 유행한 데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63]

노르웨이 독립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범게르만주의적인 경향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저명한 인물로는 페테르 안드레아스 뭉크, 크리스토퍼 브룬, 크누트 함순, 헨리크 입센,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 등이 있었다.[45][64][65] 특히 노르웨이 국가의 가사를 쓴 비에른손은 1901년에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아돌프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플람스인 등의 민족들을 포함하여 독일의 새로운 지도 아래 유럽의 게르만족 대부분을 포함한 대독일국을 만들려 했다.[66] 그러나 나치 독일의 범게르만족 야망에 대응하여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덴마크에서 반독일 스칸디나비아주의가 급성장했다.[67]

오스트리아와 주데텐란트를 포함한 나치 독일의 행정 구역


안슐루스 이후 나치 독일의 팽창 우려 가능성을 나타낸 지도. 1938년 10월 29일 영국의 사회주의 신문 데일리 워커(Daily Worker)에 기재됨.

7. 1918년부터 1945년까지

제1차 세계 대전은 범독일주의를 실제로 실행하려는 최초의 시도였으며, 범독일주의자들은 이 시기에 팽창주의제국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69]

세계대전에서의 패전 이후, 독일어를 구사하는 엘리트들이 중앙 유럽 및 동유럽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게 감소하였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독일은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였는데, 그중에는 독일계 인구가 많았던 단치히, 오이펜-말메디, 알자스-로렌 등도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또한 트리아농 조약으로 인해 해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영토가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폴란드에게 각각 할양되었으며, 독일어권 인구가 대다수이던 잔존 영토는 '독일계 오스트리아'(Deutschösterreich|도이체외스터라이히de)라는 이름으로 구분되었다. 나중에 독일계 오스트리아는 승전국들과 생제르맹 조약을 추가로 맺었는데, 이에 따라 국호는 '오스트리아(österreich|외스터라이히de)'로 변경되었으며 독일과의 통합 역시 금지되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아돌프 히틀러배후중상설을 근거로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독일 민족주의 사상을 처음 도입하였다.[69] 히틀러는 1918년 하인리히 클래스를 만났고, 클래스는 1923년 히틀러가 뮌헨 폭동(맥주홀 폭동)을 일으킬 때 이를 지원했다. 히틀러와 그의 지지자들은 범독일연맹과 기본적인 범독일주의 이념들을 대부분 공유했지만, 정치 스타일의 차이로 인해 두 그룹은 갈라서게 되었다. 보헤미아 독일 노동자당은 범독일연맹의 지도부가 너무 상류계급이라 자신들과 잘 맞지 않는다고 여겨 이들과의 관계를 끊었고, 그 대신에 1921년 안톤 드렉슬러가 창당한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전신)과 힘을 합쳤다.[70]

나치의 선전은 또한 정치적 슬로건인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지도자(Ein Volk, ein Reich, ein Führer|아인 볼크, 아인 라이히, 아인 퓌러de)'를 사용하여 오스트리아에서 독일과의 통합 정서가 강해지고 범독일주의가 만연하도록 의도했다.

나치 독일은 스스로를 '제3제국(Drittes Reich|드리테스 라이히de)'라고 칭했는데, 이는 독일 역사에서 최초의 제국으로 알려졌던 중세의 신성로마제국(Erstes Reich|에라스테스 라이히de, 제1제국)과 이전 근대독일 제국(Zweite Reich|츠바이테스 라이히de, 제2제국)을 의식하여 의도적으로 지칭한 것이다.[71] 나치 정권은 중세 제국의 유산들 중 여러 부분을 대체로 찬양했지만, 때로는 이것을 비판하거나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일례로, 히틀러는 프랑크 왕국카롤루스 대제가 '문화적인 창의성', '뛰어난 조직화 능력'과 더불어 '시민 자유를 포기'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71] 그러나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이 정치적으로는 남부에만 집중하고 자신과 유사한 동방정책은 추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71] 오스트리아 병합 이후, 히틀러는 에 있던 옛 오스트리아 황실 보석(제국 왕관, 제국의 검, 성창 등)들을 뉘른베르크로 이전하여 보관하도록 명령했다.[72] 뉘른베르크는 신성 로마 제국의 비공식적인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나치 정권 치하에서 뉘른베르크 전당대회가 열리던 곳이기도 했는데, 신성로마황제를 상징하는 물품들을 이곳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나치 독일을 '구 제국의 후계자'로 정당화함과 동시에 옛 오스트리아 제국의 잔재였던 빈의 위상을 약화시키기 위한 히틀러의 술책이었다.[73]

1939년 중반 나치 독일의 영토. 이탈리아와 프랑스 남부, 저지대를 제외한 신성로마제국 강역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이 보인다.


1939년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한 이후 히틀러는 공식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이 '부활'했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제국을 옛 '로마 제국'보다 더 나은 국가라고 여겼다.[74] '불편한 다민족 연합체 가톨릭 제국이었던 바르바로사의 신성로마제국'과 달리, 나치 정권의 독일은 '인종차별적이고 민족중심적인 제국'이었다.[74]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대한 일부분의 폄하와 함께, 중세의 가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과거의 최고의 측면과 지금의 인종차별 및 민족주의적 사고가 결합된 새로운 황금기를 향한 진보'가 이루어졌다.[74]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적인 국경은 또한 나치 독일에 의해 영토 수정주의의 근거로써 사용되어, 한때나마 게르만족이 그 지역을 점유했다면 히틀러는 현대의 영토와 국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팽창정책을 펼쳤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도 히틀러는 신성로마제국 내의 각 영방국가들에게 거의 완전한 자치권을 부여했던 베스트팔렌 조약을 없애버릴 꿈을 꾸고 있었다.[75] 1939년 11월 17일, 독일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 역사적인 조약의 '완전 폐지'가 나치 정권의 '큰 목표'이며,[75] 이 조약이 뮌스터에서 체결되었으므로 폐지되는 것 역시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라고 기록했다.[76]

'하임 인스 라이히(Heim ins Reichde, 제국의 고향)' 모토는 나치 독일 시대 타지역(오스트리아, 주데텐란트 등)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에게 이 지역을 대독일의 영역이자 그들의 고향이라고 선전한 것으로, 나치 정권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레벤스라움의 달성과 대게르만국의 설립'을 위한 구상이었다.[77] 이 범독일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제국은 유럽 내의 독일어권 화자가 분포하는 지역은 어디든지 모조리 합병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토적으로는 최소한 1939년 당시의 제국 영토(독일 본토, 오스트리아, 체코)와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등의 독일어권 지역을 넘어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북동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을 차지하려 했다.[78] 개중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은 앵글로색슨계였던 영국이었는데, 나치 독일은 영국을 속주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장기적인 해양 파트너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79]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발트 지역과 같은 광활한 동부에 설치된 '국가판무관부(Reichskommissariat|라이히코미사리아트de)' 역시 향후 이 지역을 안정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으며, 볼가강이나 우랄강 너머까지 확장할 계획도 있었다. 나치 독일의 핵심 이념은 '독일인과 독일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는 새로운 생활권(레벤스라움)이 있어야 한다'였기 때문에, 이것은 독일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를 찾아서 나치는 식민지화할 수 있는 '동쪽으로 끌어들이는 공간(드랑 나흐 오스텐)'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만들었다. 이 개념은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이나 '명백한 운명' 정책과 비슷한 점이 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제국 친위대의 인원들이 점점 더 비게르만 출신이 되면서 '대게르만국'이라는 개념은 점차 희석되고 그 대신 '유럽 자치 국가들의 연합'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였다. 이들 친위대는 현재 각 주를 대표하는 유럽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보유한 주방위군과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생학과 민족우월주의를 신봉하는 하인리히 힘러와 같은 인물들은 이러한 개념에 불만을 표하면서, 1943년 4월 제1SS기갑사단 경호친위대 아돌프 히틀러제2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 제3SS기갑사단 토텐코프 장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8. 1945년 이후의 역사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면서, 범슬라브주의가 막을 내린 것과 마찬가지로 범독일주의도 쇠퇴하였다. 이후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범독일주의는 나치의 사상과 깊게 관련된 개념으로 여겨져 사실상 금지되었다.[40] 전쟁 직후 독일은 소련, 프랑스, 미국, 영국에게 각각 점령되었으며 1949년에는 서독동독으로 나뉘었다. 1938년 이전 나치 독일이 합병한 영토는 다시 그 국가들에게 반환되었으며, 오스트리아 역시 독일과 다시 분리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 때보다 훨씬 더 큰 영토적 손실을 보았으며, 동프로이센을 포함한 많은 동방 영토가 소련폴란드에게 넘어갔다. 동유럽의 독일인들은 오스트리아나 서독으로 도망치거나 때로는 추방되었다. 독일과 독일인들의 명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1990년 독일이 재통일되자 오래된 논쟁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81]

참조

[1] 백과사전 Pan-Germanism (German political movement) – Britannica Online Encyclopedia https://www.britanni[...] 2012-01-24
[2] 논문 Origins and Political Character of Nazi Ideology 1964-12
[3] 웹사이트 Slik ble vi germanersvermere – magasinet http://www.dagbladet[...] Dagbladet.no 2012-01-24
[4] 서적 The Science of the Swastika https://books.google[...] Central European University Press 2008
[5] 웹사이트 Nation und Nationalismus https://www.bpb.de/t[...] 2023-04-21
[6] 백과사전 Pangermanismus https://hls-dhs-dss.[...] 2023-04-21
[7] 서적 The Eastern Question https://books.google[...] Taylor & Francis Group 1994
[8] 뉴스 The Situation of Germany https://timesmachine[...] 2017-08-21
[9] 서적 Nationalism and Globalisation: Conflicting Or Complementary
[10] 웹사이트 Das politische System in Österreich (The Political System in Austria) http://www.politisch[...] Austrian Federal Press Service 201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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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백과사전 Pan-German League https://books.google[...] ABC-CLIO 201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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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서적 The First World War http://archive.org/d[...] Pearson Longma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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