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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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육군은 이탈리아 통일 이후 창설된 이탈리아 왕국 육군에서 비롯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냉전 시대를 거치며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 육상작전사령부, 육상작전지원사령부, 육군 항공 사령부 등으로 구성되며, 아리에테 기갑여단, 폴고레 공수여단 등 여러 여단을 운용한다. 이탈리아 육군은 NATO의 일원으로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여러 국제 분쟁에 파병되었으며, 자연 재해 시에도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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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육군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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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명칭 | 이탈리아 육군 |
로마자 표기 | Esercito Italiano |
약칭 | EI |
창설일 | 1861년 5월 4일 |
국가 | 이탈리아 |
소속 | 이탈리아군 |
종류 | 육군 |
역할 | 지상전 |
규모 | 97,755명 (2018년) |
본부 | 로마 |
표어 | Salus Rei Publicae Suprema Lex Esto |
표어 (번역) | 공화국의 수호는 최고의 법이 되어야 한다 |
군가 | 4 Maggio (5월 4일) - 풀비오 크뢰 작곡 |
기념일 | 11월 4일, 국가 통합 및 국군의 날 5월 4일, 육군의 날 |
군장 | 3개의 이탈리아 군사 훈장 기사 십자장 1개의 군사 용맹 금메달 2개의 시민 용맹 금메달 1개의 시민 용맹 은메달 1개의 시민 공로 은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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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총사령관 | 세르조 마타렐라 |
육군 참모총장 | 육군 대장 카르미네 마시엘로 |
주요 지휘관 | |
주요 지휘관 | 주세페 가리발디 루이지 카도르나 아르만도 디아스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아오스타 공작 2세 엔리코 카빌리아 피에트로 바돌리오 조반니 메세 주니오 발레리오 보르게세 |
전투 | |
주요 전투 | 이탈리아 통일 전쟁 1866년 전쟁 1887년-1889년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마흐디 전쟁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의화단 운동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스페인 내전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침공 제2차 세계 대전 걸프 전쟁 코소보 전쟁 1999년 동티모르 위기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14년) |
과거 군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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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이탈리아 육군의 역사는 리소르지멘토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1861년 주세페 가리발디의 요청으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이탈리아 왕국 육군(Regio Esercito)이 창설되었다.
이탈리아는 1900년 의화단 운동 진압을 위해 중국에, 1911-1912년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에는 리비아에 원정군을 파견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이탈리아 왕국 육군이 참전한 첫 대규모 현대전이었다. 이탈리아군은 주로 북부 이탈리아에서 전투를 벌였으며, 7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는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1915년 5월부터 1917년 8월까지 이탈리아군의 공세는 서부 전선보다 빈번했으며, 이탈리아군의 규율은 다른 국가보다 엄격했다.[15]
전간기 동안 이탈리아 왕국 육군은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에 참여했고, 스페인 내전에 병력과 물자를 지원했으며,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침공을 감행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 왕국 육군은 공수부대 운용의 선구자였지만, 실제 운용 가능한 병력은 제한적이었다. 이탈리아군은 이집트와 그리스-이탈리아 전쟁에서 졸전을 거듭하며 준비 부족과 무기 열세를 드러냈다. 조반니 메세 장군이 지휘한 러시아 원정군은 천왕성 작전으로 궤멸되었고, 북아프리카에서는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제132 아리에테 기갑사단과 제185 폴고레 공수사단이 전멸했다.
1943년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 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축출했고, 이탈리아는 연합군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북부에는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이, 남부에는 바돌리오 정부가 들어서면서 내전이 벌어졌다. 이탈리아 공동교전군은 연합군 편에서 싸운 남부 왕당파 군대였다.
1946년 이탈리아 왕국이 공화국으로 전환되면서 이탈리아 왕국 육군은 이탈리아 육군("Esercito Italiano")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초기에는 이탈리아 공동교전군 출신 5개 사단과 3개 내부 치안 사단으로 구성되었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창설 후, 이탈리아 육군은 나토 남유럽 통합군에 편입되어 유고슬라비아를 통한 소련의 침공에 대비했다. 1951년 남유럽통합지상군(LANDSOUTH)이 창설되었고, "이탈리아 용접" 훈련을 통해 이탈리아 육군의 전투력을 시험했다.
1960년대 이탈리아 육군은 구조 개편을 통해 사단을 여단급으로 축소하고, 피사에 제1공수여단을 창설했다. 1972년에는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 간 긴장 완화로 제3군과 제6군단이 해체되었다.
1989년 냉전 종식 당시 이탈리아 육군은 26개 전투 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3개 군단과 군사 지역 작전 통제하의 여단으로 분산 배치되었다. 냉전 이후 이탈리아 육군은 국제 분쟁에 미국, 유엔, NATO의 일원으로 지원 부대를 파병하고 있다.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이탈리아 육군은 국제 분쟁에 미국, 유엔 또는 NATO의 일원으로 지원 부대 등을 파병하고 있다. 파병 지역은 다음과 같다.
파병 연도 | 파병 지역 | 비고 |
---|---|---|
1982년 | 레바논 내전 | |
1989년 | 나미비아 | |
1991년 | 알바니아, 쿠르디스탄 | |
1992년 | 소말리아 내전 | |
1993년 | 모잠비크 | |
1995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분쟁 | |
1999년 | 동티모르, 코소보 분쟁 | |
2001년 | 콩고민주공화국 | |
2002년 | 아프가니스탄 분쟁 | |
2003년 | 이라크 전쟁, 다르푸르 분쟁, 유엔 레바논 임시 주둔군 |
또한 각국 주재 이탈리아 대사관 경비에도 종사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빈약한 산업력으로 물자 및 장비 부족에 시달렸던 이탈리아 육군은 현대에 들어 전후 부흥한 산업 지대의 산업력을 활용하여 많은 중장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공군, 해군과 마찬가지로 장비 국산화에도 적극적이며, 1995년에 개발된 주력 전차 C1 아리에테는 우수한 성능을 보이고 있다. 대소전에서 이름을 날린 알피니 부대는 오늘날에도 육군의 중추로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과 영국군의 치안 유지를 돕고 있다.
2. 1. 이탈리아 통일과 창설 (1861년)
이탈리아 육군은 교황령 병합과 이탈리아의 통일 (리소르지멘토) 이후 창설된 이탈리아 왕국 육군(Regio Esercito)에서 비롯되었다.[1] 1861년, 주세페 가리발디의 요청으로 사보이아가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신생 이탈리아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1]이탈리아는 1900년의 의화단 운동이 벌어지자 중국으로, 그리고 1911-1912년의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당시에는 리비아로 원정군을 파견했다.[1] 근대 이탈리아 육군의 역사는 이탈리아 통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탈리아의 모체인 사르데냐 왕국 육군이 독립에 관련된 무장 조직과 평정한 국가의 육군을 흡수하여 1861년 3월 4일 이탈리아 왕립 육군을 조직하였다.(초대 육군 장관에는 만프레도 판티가 임명되었다.)[1]
2. 2. 제1차 세계 대전 (1914년 ~ 1918년)
이탈리아 왕국 육군이 참전한 첫 대규모 현대전은 제1차 세계 대전이다. 대부분의 전투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벌어졌으며 왕국군은 700,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포함한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1915년 5월에서 1917년 8월까지, 3개월에 한 번꼴로 강행된 이탈리아군의 공세 횟수는 서부 전선보다도 빈번했다. 이탈리아군의 규율 또한 타국가보다 엄격해 병사의 실책에 대한 처벌 강도는 독일, 프랑스, 영국군에 비해 가혹했다.[15][2]유럽 각국 간의 마찰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탈리아는 독일·오스트리아와 삼국동맹을 체결했으나, 미수복 이탈리아의 완전 반환(오스트리아 영토에는 남티롤, 트리에스테, 달마티아 등이 남아 있었다)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되면서 동맹에서 이탈했다. 이후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초기에 중립을 표명하며 관망했으나, 미수복 이탈리아를 할양한다는 비밀 외교에 편승하여 영국과 프랑스 측에 가담하여 참전했다. 이탈리아 육군은 알프스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오스트리아 육군과 치열한 산악전을 벌인 끝에 1916년에 고리치아를 점령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탈락을 우려한 독일이 정예 부대를 파견했고, 독일군이 사용한 침투전술(당시에 막 발명된 신전술이었다)에 큰 타격을 입어 궁지에 몰렸다(카포레토 전투). 이후 이탈리아 육군은 프랑스와 영국군의 원군을 받아 전선을 재정비했고, 전쟁의 추세가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 때까지 끈기 있게 버텼다.
이 전쟁으로 이탈리아는 트리에스테와 남티롤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지만(피우메와 달마티아는 합병하지 못했다), 프랑스와 영국처럼 막대한 전비를 배상금으로 충당할 수 없었기에,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경제 위기에 직면하여 도시는 실업자와 제대 군인들로 넘쳐났다. 이러한 경제적 불안은 이후 파시즘의 득세를 불러왔다.
2. 3.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 ~ 1945년)
이탈리아 왕국 육군은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가장 큰 규모의 지상군 중 하나였으며, 공수부대 운용의 선구자였다. 하지만 실제 운용 가능한 병력 수는 제한적이었고, 사단들은 화력이 부족해 검은 셔츠단의 공격대대로 증원받았다.[15]제2차 세계 대전 중 이탈리아의 군사적 업적은 이집트에 대한 공세 실패와 그리스-이탈리아 전쟁에서의 졸전으로 인해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 제10군은 이집트로 진격했지만, 나침반 작전에서 영국군에게 패퇴하여 중앙 리비아까지 밀려나 항복했다.[16]
이탈리아군은 1차 세계 대전 당시의 구식 무기를 사용했고, M11, M13, M14, M15 '중형' 전차는 셔먼 전차에 비해 전투력이 떨어졌다. 장비 부족과 보급 계획 부재도 문제였다.[17]
조반니 메세 장군이 지휘한 러시아 원정군은 물자 부족을 겪었고, 천왕성 작전으로 이탈리아 제8군은 궤멸되었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제132 아리에테 기갑사단과 제185 폴고레 공수사단이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전멸했다.
1943년 7월 10일,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하자 해안 방어사단들은 저항 없이 해체되었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축출했다. 1943년 9월, 이탈리아는 연합군과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북부의 이탈리아 사회공화국과 남부의 바돌리오 정부로 분할되었다. 이탈리아 공동교전군은 연합군 편에서 싸운 남부 왕당파 세력이었다.
2. 3. 1. 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의 서술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은 시대착오적인 제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내며 이탈리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무솔리니의 독단적인 결정은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이탈리아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15]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육군은 무솔리니 정권의 무리한 전쟁 수행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참전한 이탈리아 육군은 연합군에게 번번이 패배하며 무능함을 드러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16] 특히 이집트와 그리스에서의 졸전은 이탈리아군의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3][4]
무솔리니 실각 후 북부에 수립된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은 나치 독일의 꼭두각시 정권에 불과했다. 이들은 파시즘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전쟁 범죄에 가담하는 등 이탈리아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다.
2. 4. 냉전 시대 (1947년 ~ 1991년)
1946년 6월, 이탈리아 왕국이 공화국으로 전환되면서 이탈리아 왕국 육군은 이탈리아 육군("Esercito Italiano")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초기 이탈리아 육군은 이탈리아 공동교전군의 5개 전투 집단을 모체로 하여 영국제 장비로 무장한 5개 사단을 보유했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의 주요 섬인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방어하기 위해 3개의 내부 치안 사단을 운용했다.[18]- 보병사단 "크레모나" (토리노)
- 보병사단 "폴고레" (피렌체)
- 보병사단 "프리울리" (볼차노)
- 보병사단 "레냐노" (베르가모)
- 보병사단 "만토바" (바라체)
- 내부치안사단 "아오스타" (시칠리아 팔레르모)
- 내부치안사단 "사바우다" (시칠리아 엔나)
- 내부치안사단 "칼라브리아" (사르데냐 사사리)
1947년, 트리에스테 자유 지구를 둘러싼 유고슬라비아와의 영토 분쟁으로 인해 이탈리아 육군은 폴고레 사단을 트레비소로, 만토바 사단을 고리치아로 전진 배치했다. 이와 함께 7개의 사단과 5개의 산악여단을 추가로 창설했다.
- 보병사단 "아오스타" (메시나, 1948년 2월 1일)
- 보병사단 "사르데냐 척탄병" (치비타베키아, 1948년 4월 1일)
- 보병사단 "아벨리노" (살레르노, 감축 전력, 1949년 9월 1일)
- 산악여단 "줄리아" (치비달레 델 프리울리, 1949년 10월 15일)
- 차량화보병사단 "트리에스테" (볼로냐, 1950년 6월 1일)
- 산악여단 "트리덴티나" (브레사노네, 1951년 5월 1일)
- 보병사단 "피네롤로" (바리, 감축 전력, 1952년 4월 15일)
- 산악여단 "타우리넨세" (토리노, 1952년 4월 15일)
- 기갑사단 "아리에테" (포르데노네, 1952년 10월 1일)
- 기갑사단 "센타우로" (베로나, 1952년 11월 1일)
- 산악여단 "오로비카" (메라노, 1953년 1월 1일)
- 기갑사단 "포주올로 델 프리울리" (로마, 1953년 1월 1일)
- 산악여단 "카도레" (벵우노, 1953년 7월 1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창설 이후, 이탈리아 육군은 나토 남유럽 통합군에 편입되어 유고슬라비아를 통한 소비에트 연방의 침공 가능성에 대비했다. 1951년 7월 10일, 북동부 이탈리아 방어를 위해 남유럽통합지상군(LANDSOUTH)이 창설되었고, 사령부는 베로나에 위치했다. 마우리치오 라자로 드 카스틸리오니 중장이 사령관을 맡았다.[18] 남유럽통합지상군은 3개 사단(만토바, 폴고레, 트리에스테)과 3개 여단(줄리아, 트리덴티나, 아리에테)을 운용했다. "이탈리아 용접" 훈련은 미국, 이탈리아, 튀르키예, 그리스의 육해공 통합 훈련으로, 신생 이탈리아 육군의 전투력을 처음으로 시험한 훈련이었다.[19]
1952년 5월 1일, 육군은 1개의 군 사령부와 2개의 군단 사령부를 창설했다. 제3군은 파도바에, 제4군단은 볼차노, 제5군단은 비토리오베네토에 배치되어 유고슬라비아와의 전쟁 발발 시 나토 사령부의 명령을 전군에 하달하는 역할을 맡았다.[20] 1952년 후반에는 볼로냐에 제6군단, 1957년에는 밀라노에 제3군단이 창설되어 제3군에 배속되었다.
1960년, 육군은 트리에스테, 프리울리, 포주올로 델 프리울리, 피네롤로, 아벨리노, 아오스타 사단을 여단급으로 축소하고, 피사에 제1공수여단을 창설했다. 1965년 10월 1일, 아벨리노 보병사단이 해체되었고, 1967년 6월 10일, 제1공수여단은 "폴고레"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 간 긴장 완화로 1972년 4월 1일 제3군과 제6군단이 해체되었고, 제3군의 역할은 베로나의 남유럽통합군이 담당하게 되었다.
1989년 냉전 종식 당시 이탈리아 육군은 26개의 전투 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부대 유형 | 수량 | 비고 |
---|---|---|
기갑여단 | 4 | 켄타우로, 아리에테, 마멜리, 포주올로 델 프리울리 |
기계화여단 | 10 | 고이토, 레냐노, 브레시아, 트리에스테, 가리발디, 비토리오 베네토, 고리치아, 만토바, 그라나티에리 디 사르데냐, 피네롤로 |
기동여단 | 5 | 크레모나, 프리울리, 아퀴, 아오스타, 사사리 |
알프스 여단 | 5 | 카도레, 율리아, 오로비카, 타우리넨세, 트리덴티나 |
공수여단 | 1 | 폴고레 |
로켓 포병여단 | 1 | 아퀼레이아 |
이 부대들은 3개의 군단에 분산 배치되었다.
- '''제3군단''' (밀라노): 켄타우로, 고이토, 레냐노, 브레시아, 트리에스테, 크레모나
- '''제4알프스군단''' (볼차노): 카도레, 율리아, 오로비카, 타우리넨세, 트리덴티나
- '''제5군단''' (비토리오베네토): 아리에테, 마멜리, 포주올로 델 프리울리, 가리발디, 비토리오 베네토, 고리치아, 만토바, 아퀼레이아
군사 지역 작전 통제하에 있는 여단은 다음과 같다.
- '''제7지역 군사사령부''' (피렌체): 폴고레, 프리울리
- '''제8지역 군사사령부''' (로마): 아퀴, 그라나티에리 디 사르데냐
- '''제10지역 군사사령부''' (나폴리): 피네롤로
- '''제11지역 군사사령부''' (팔레르모): 아오스타
- '''사르데냐 자치군사사령부''' (칼리아리): 사사리
1989년 냉전 종식 시점 이탈리아 육군의 편제 현황은 다음과 같다.
수량 | 부대 유형 | 장비 | 비고 |
---|---|---|---|
19 | 전차 대대 | 레오파르트 1A2, M60A1 | 기갑여단 당 2개 대대, 기계화여단 당 1개 대대, "아리에테" 여단은 3개 전차 대대 운용. 각 전차 대대는 49대의 전차 운용. |
9 | 기갑 대대 | M47 패튼, M113 APC | 각 기계화여단에 1개 대대 배치. 제4 알프스 군단, 제5 군단, 중부 군관구, 기갑 기병학교, 제1 기갑 보병 연대에 각각 1개씩 훈련 대대 배치. 각 대대는 33대의 M47 패튼 전차와 24대의 M113 APC 운용. |
2 | 정찰 중대급 부대 | 레오파르트 1A2, M113 APC | "브레시아", "비토리오 베네토", "마멜리", "포주올로 델 프리울리" 여단에 편입. 각 부대는 31대의 전차와 24대의 M113 운용. |
35 | 기계화 보병 대대 | M113 APC | 기갑여단 당 1개 대대, 기계화여단 당 3개 대대. 각 대대는 68대의 M113 APC와 17대의 M106 박격포 운반차 운용. |
12 | 기계화 보병 대대 | 기계화여단 당 2개 대대, "아오스타" 여단에 3개 대대, 트리에스테에 1개 대대. | |
13 | 알피니 | 알프스 여단 당 2개 대대; "줄리아" 여단은 4개 알피니 대대 운용, 아오스타 군 알프스 학교에 1개 대대 추가. | |
5 | 공수부대 | 1개 카라비니에리 공수 대대, 2개 공수 대대, 1개 공수 강습(특수부대) 대대. 제4군단은 알피니 공수 중대 운용. | |
6 | 요새화 보병 | 이탈리아 동부 및 북부 국경 방어. 1개 알피니 대대, 5개 보병 대대, 1개 알피니 중대. 대대 규모는 10개에서 19개 중대로 다양. | |
2 | 상륙 보병 | LVT-7 | 1개 라구나리 대대, 1개 수륙양용 차량 대대, 베네치아 방어 임무를 맡은 상륙군 사령부의 1개 훈련 중대. |
33 | 훈련 대대 | 신병 기초 훈련 담당: 4개 알피니, 1개 공수, 1개 그라나티에리, 27개 보병 대대 훈련. | |
11 | 자주포 | M109 자주포 | 기갑 및 기계화 여단 당 1개 부대("피네롤로", "레냐노", "트리에스테", "그라나티에리 디 사르데냐", "브레시아" 기계화 여단 제외), 제3군단 예하 연대에 2개 부대, 로마 육군 포병학교에 1개 포대, 사르데냐에 1개 훈련 포대. 각 부대는 18문의 M109 자주포 운용. |
18 | 야전포병 | M114 곡사포 | 기계화 여단 당 1개 부대("사사리" 기계화 여단 제외), 알프스 여단 당 1개 부대, "피네롤로", "레냐노", "트리에스테", "그라나티에리 디 사르데냐", "브레시아" 기계화 여단, 제5군단, 투스카니-에밀리아 군관구, 남부 이탈리아 남부 군관구, 로마 육군 포병학교에 각각 부대 배치. 각 부대는 18문의 M114 곡사포 운용. |
6 | 산악포병 | Mod 56 곡사포 | 알프스 여단 당 1개 부대, "줄리아" 알프스 여단은 2개 부대 운용. 각 부대는 18문의 Mod 56 곡사포 운용. |
1 | 공중포병 | Mod 56 곡사포 | "폴고레" 공수여단 소속. 18문의 Mod 56 곡사포 운용. |
8 | 중(重)야전포병 | FH-70 곡사포 | 군단 포병: 제3군단, 제4 알프스 군단, 제5군단, 로마 육군 포병학교에 각각 부대 배치. 각 부대는 18문의 FH-70 곡사포 운용. |
1 | 중(重)포병 | M115 곡사포 | 제5군단 예하 1개 부대. 12문의 M115 곡사포 운용. |
1 | 중(重)자주포병 | M110A2 자주포 | "아퀼레이아" 여단 소속 1개 부대. 18문의 M110A2 자주포 운용. |
1 | 미사일 포병 | MGM-52 랜스 | 육군 유일 미사일 포병 부대. 6개의 MGM-52 랜스 발사대 운용. |
8 | 표적획득 | 군단 지원 6개 포병 레이더/드론 부대, "아퀼레이아" 미사일 여단 지원 1개 표적 획득 부대, 기병 포병 연대 예비 부대 1개. | |
7 | 경(輕)대공포병 | FIM-92 스팅어, 40/70 대공포 | 대공포병 사령부 예하 5개 현역 및 2개 예비 부대. |
4 | 대공 미사일 포병 | MIM-23 호크 | 대공포병 사령부 예하 2개 연대. 각 부대는 24개의 MIM-23 호크 발사대 운용. |
17 | 공병 대대 | 군단 및 군관구 예하: 8개 개척 대대, 2개 전투 공병 대대, 2개 철도 건설 대대, 2개 교량 건설 대대, 육군 공병학교 훈련/시범 부대 1개, 알프스 국경 요새 건설/유지 관리 2개 광산 대대. 24개 전투 공병 중대가 육군 여단("사사리" 여단 제외) 지원. | |
5 | 정찰 헬리콥터 | AB 206, A109 EOA | AB 206 운용 4개 중대, A109 EOA 헬리콥터 운용 1개 중대. |
5 | 수송 헬리콥터 | AB 205, AB 412, CH-47 치누크 | 비테르보에 CH-47 치누크 헬리콥터 운용 1개 중대, AB 412 및 AB 205 헬리콥터 운용 6개 중대. |
9 | 일반 항공기 | AB 212, SM.1019 | 전국 분산 배치, 다양한 지역 사령부 지원. |
17 | 통신 대대 | 2개 독립 중대 추가. | |
3 | 전자전 대대 | ||
1 | NBC 방어 대대 | 공병대 소속, 육군참모총장 직할. | |
25 | 수송 대대 | 여단 당 1개 수송 대대; "사사리" 여단 제외. | |
6 | 기동 수송 대대 | 육군 3개 군단 사령부 지원. | |
9 | 수송 대대 | 로마 영토 사령부, 육군/국방군 참모총장 지원. | |
26 | 지휘 및 통신 부대 | 여단 당 1개, 육군 대공포병 사령부 1개, 상륙군 사령부 1개. |
또한 육군은 "사사리" 여단을 제외한 각 전투 여단에 1개씩 총 24개의 대전차 중대를 운용했다.
냉전 시기에는 서방 국가의 일원으로서 동구권의 공격에 대비했다.
2. 5. 냉전 이후 (1991년 ~ 현재)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이탈리아 육군은 국제 분쟁에 미국, 유엔 또는 NATO의 일원으로 지원 부대 등을 파병하고 있다. 파병 지역은 다음과 같다.파병 연도 | 파병 지역 | 비고 |
---|---|---|
1982년 | 레바논 내전 | |
1989년 | 나미비아 | |
1991년 | 알바니아, 쿠르디스탄 | |
1992년 | 소말리아 내전 | |
1993년 | 모잠비크 | |
1995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분쟁 | |
1999년 | 동티모르, 코소보 분쟁 | |
2001년 | 콩고민주공화국 | |
2002년 | 아프가니스탄 분쟁 | |
2003년 | 이라크 전쟁, 다르푸르 분쟁, 유엔 레바논 임시 주둔군 |
또한 각국 주재 이탈리아 대사관 경비에도 종사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빈약한 산업력으로 물자 및 장비 부족에 시달렸던 이탈리아 육군은 현대에 들어 전후 부흥한 산업 지대의 산업력을 활용하여 많은 중장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공군, 해군과 마찬가지로 장비 국산화에도 적극적이며, 1995년에 개발된 주력 전차 C1 아리에테는 우수한 성능을 보이고 있다. 대소전에서 이름을 날린 알피니 부대는 오늘날에도 육군의 중추로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과 영국군의 치안 유지를 돕고 있다.
2. 6. 한국과의 관계
주어진 자료에는 이탈리아 육군과 한국 간의 직접적인 군사 관계에 대한 내용이 없다. 따라서 이 섹션에 작성할 내용이 없다.3. 조직
이탈리아 육군의 조직은 여러 차례 개편을 거쳤다. 1975년 군사 개혁에서는 연대급 부대가 해체되고 대대들이 새로 창설된 통합 여단들의 직속 명령을 받게 되었다.
1975년 이전 | 1975년 이후 | 참고 |
---|---|---|
보병사단 "크레모나" | 차량화보병여단 "크레모나" | 제3군단 소속 |
보병사단 "사르데냐 척탄병" | 기계화보병여단 "사르데냐 척탄병" | 중앙군지역 소속 |
차량화여단 "아퀴" | 중앙군지역 소속 | |
보병사단 "레냐노" | 기계화보병여단 "레냐노" | 기갑사단 "센타우로"에 합류 |
기계화보병여단 "브레시아" | 기계화보병사단 "만토바"에 합류 | |
기병여단 "포주올로 델 프리울리" | 기갑여단 "포주올로 델 프리울리" | 기계화보병사단 "만토바"에 합류 |
기갑여단 "비토리오 베네토" | 기계화보병사단 "폴고레"에 합류 |
1986년에는 4개의 사단 사령부가 해체되고, 북부 이탈리아의 여단들은 3개 군단의 직접 명령을, 중부와 남부 이탈리아의 여단들은 군지역사령부의 명령을 받게 되었다. 냉전 종식 후 1991년, 1997년, 2002년에 추가적인 여단 해체 및 재편성이 이루어졌다.
2023년 5월, "아퀴" 사단과 "비토리오 베네토" 사단 및 육군 시뮬레이션 및 검증 센터가 작전 지상군 사령부 및 육군 작전 사령부에 배속되었다.[11]
2024년 현재, 이탈리아 육군의 주요 편성은 다음과 같다.
군단급 | 사단급 | 여단 |
---|---|---|
![]() | ![]() | -- 줄리아 알프스 여단 -- 타우리넨세 알프스 여단 |
![]() | -- 포주올로 델 프리울리 기병 여단 -- 아리에테 132 기갑 여단 | |
![]() | -- 사르데냐 그라나티에리 기계화 여단 -- 아오스타 기계화 여단 -- 피네롤로 기계화 여단 -- 사사리 기계화 여단 -- 가리발디 베르사글리에리 여단 | |
![]() | ![]() ![]() ![]() ![]() ![]() | |
![]() | -- 프리울리 공중기동 여단![]() | |
![]() | ||
![]() | ||
![]() | ||
-- 폴고레 공수 여단 | ||
![]() | ||
![]() | -- NRDC-ITA 지원 여단 | |
![]() | ![]() | |
![]() |
각 여단은 3,000~5,000명의 병력을 운용하며, 다음과 같은 부대를 포함한다.
- '''여단 사령부'''
- 지휘 및 전술 지원 대대
- 지휘 중대
- 통신 중대
- '''기갑 연대'''
- 지휘 및 군수 지원 중대
- 기갑 중대 그룹
- 3개 정찰 중대
- 중기갑 중대
- '''포병 연대'''
- 지휘 및 군수 지원 포대
- 감시, 표적 획득 및 전술 연락 포대
- 포병 그룹
- 3개 야포 포대
- 사격 및 기술 지원 포대
- '''공병 연대'''
- 지휘 및 군수 지원 중대
- 공병 대대
- 3개 사퍼 중대
- 배치 지원 중대
- '''군수 연대'''
- 지휘 및 군수 지원 중대
- 군수 대대
- 보급 중대
- 정비 중대
- 수송 중대
여단의 유형에 따라 3개의 기동 대대를 운용한다.
- '''경보병 연대'''
- 지휘 및 군수 지원 중대
- 보병 대대
- 3개 소총 중대
- 기동 지원 중대
- '''중보병 연대'''
- 지휘 및 군수 지원 중대
- 보병 대대
- 3개 소총 중대
- 기동 지원 중대
- '''중장갑 보병 연대'''
- 지휘 및 군수 지원 중대
- 보병 대대
- 3개 소총 중대
- 기동 지원 중대
- '''전차 연대'''
- 지휘 및 군수 지원 중대
- 전차 대대
- 3개 전차 중대
방공여단과 야전포여단은 다음과 같다.
- 방공여단
- 제4방공연대
- 제5방공연대
- 제17방공연대
- 제121방공연대
- 야전포여단
- 제2산악포병연대
- 제5로켓포연대
- 제7NBC방위연대
- 제28공공관련연대
- 제52포병연대
3. 1. 작전 부대
제3기계화보병여단 "고이토"제32기갑여단 "마멜리"
제132기갑여단 "마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