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타임라인 바로가기

한홍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타임라인 바로가기

1. 개요

한홍구는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자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민주자료관 관장, 평화박물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독립운동가 한기악의 손자, 언론인 한만년의 아들이며, 유진오의 외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국사학을 전공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베트남 전쟁 당시 파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 운동, 양심적 병역 거부권 실현, 대체복무제도 개선 등 사회 참여 활동을 해왔다. 한홍구는 일제강점기, 베트남 전쟁, 군사 독재, 친일파 문제 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햇볕정책을 지지한다. 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평가와 비판이 존재하며,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평화박물관 운영과 관련한 비판도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성공회대학교 교수 - 신영복
    신영복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사회운동가, 대학교수, 저술가로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 생활 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집필하여 반향을 일으켰고, 출소 후 관계론을 중심으로 사상을 발전시키며 독특한 서체로 민중과 소통했으며,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 성공회대학교 교수 - 오연호
    오연호는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작가로, 《오마이뉴스》를 창간하여 시민 참여 저널리즘을 구현했으며 덴마크의 행복 사회 모델을 연구하여 행복한 삶과 사회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 꿈틀리인생학교 이사장 및 사단법인 꿈틀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워싱턴 대학교 동문 - 제임스 M. 케인
    제임스 M. 케인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저널리스트로, 《우편배달부는 두 번 벨을 울린다》, 《이중 배상》 등의 필름 누아르 스타일 소설로 명성을 얻었으며 미국 작가 연맹 설립 운동에도 참여했다.
  • 워싱턴 대학교 동문 - 호프 솔로
    호프 솔로는 미국의 여자 축구 골키퍼로, 고등학교 시절 공격수로 활약하다 골키퍼로 전향하여 미국 여자 프로 축구 리그와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며 올림픽 금메달, 월드컵 우승 등을 기록했다.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 - 진중권
    대한민국의 미학자이자 작가, 평론가, 대학교수인 진중권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며 미학, 예술, 정치, 사회에 대한 저술 및 번역 활동과 진보 정당 활동을 해왔다.
한홍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한홍구 교수
이름한홍구
한글한홍구
한자韓 洪九
가타카나ハン・ホング
로마자 표기법Han Hong-goo
출생일1959년 7월 16일
출생지대한민국
국적대한민국
직업교수
분야역사학
부모한만년(출판인), 유효숙
친척할아버지 한기악, 외할아버지 유진오
학력
학력서울대학교 석사,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박사

2. 생애

조선시대의 학자 한백겸의 14대손이며, 한치응(韓致應)의 7대손이다.[8] 독립운동가 한기악의 손자이자, 일조각 창업주인 언론인 한만년의 4남이며, 교육자 유진오의 외손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미국 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8]

1999년 귀국 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문제, 양심적 병역 거부 등 인권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해왔다.[8] 또한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에도 참여하였다.[8]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8]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및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관장, 평화박물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8]

2. 1. 학문 활동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독립투쟁사 연구(Wounded Nationalism: The Minseangdan Incident and Kim Il-Sung in Eastern Manchuriaeng)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8]

2004년부터 3년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및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관장, 평화박물관 이사로 재직 중이다.

2. 2. 사회 참여 활동

미국에서 돌아온 1999년부터 베트남 전쟁 당시 파병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 운동,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활동 등을 해왔다.[8] 2004년부터 3년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2014년에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보복성 손해배상과 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목표로 하는 ‘손잡고 캠페인’을 벌였다.[8]

2. 3. 경력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독립투쟁사를 연구하여 박사학위(Wounded Nationalism: The Minseangdan Incident and Kim Il-Sung in Eastern Manchuriaeng)를 취득했다.

1999년 귀국 후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파병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진실 규명 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활동에도 힘썼다. 2014년에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보복성 손해배상 및 가압류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법·제도 개선 운동인 ‘손잡고 캠페인’을 주도했다.

2004년부터 3년 동안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및 동 대학 민주자료관 관장, 평화박물관 이사로 재직 중이다.

3. 정치적 입장

한홍구는 대표적인 한국 진보 진영의 논객으로 평가받는다. 보수 언론은 그가 '박근혜 대통령이 태어나기 전에 그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였어야 했다'고 주장했다며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아버지 한만년이 1989년 7월 국민일보에 기고했던 칼럼을 근거로 한홍구를 비판하기도 했는데, 일각에서는 한만년이 자식들의 앞날을 염려하여 공안기관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해당 칼럼을 썼다는 주장도 제기된다.[9]

2012년에는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에는 서울대 사학과 총동창회가 선정한 '자랑스러운 사학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2014년과 2016년에는 평화박물관 활동가들을 부당하게 해고하여 시민단체를 독단적으로 운영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0][11][12]

그는 전형적인 한국 진보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일제 강점기의 문제점, 과거 군사 독재 정권의 폭압, 베트남 전쟁 파병과 관련 문제, 한국 전쟁 중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친일파 문제 등에 대해 강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햇볕 정책을 지지한다. 이러한 그의 구체적인 입장과 활동은 아래 하위 문단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진다.

3. 1. 일제 강점기 문제

한홍구는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 제국의 한국 식민 지배와 그 과정에서 벌어진 위안부 동원, 강제징용, 황민화 정책 등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며, 일본 정부의 철저한 보상과 사죄를 요구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많은 한국 지식인들과 공유하는 문제의식이지만, 한홍구는 더 나아가 이러한 과거사 문제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특히 그는 친일파 문제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한다. 친일파가 단순히 일제에 협력한 것을 넘어,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군사 독재 정권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아 과거 식민 통치 방식을 답습하며 민중을 억압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고 독재 체제로 이어졌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홍구는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 전쟁 파병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냉전 시대 강대국들의 대리전이라는 측면보다는, 미국의 식민지 해방 운동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경험한 한국이 베트남에서 유사한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된 역사적 아이러니를 지적하며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것이다.[5]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과 사과, 보상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을 주도했으며, 2001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베트남 정부에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보상을 약속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한홍구는 이러한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며, 한국 사회 전체가 베트남인들에게 저지른 과오를 깊이 성찰하고 인정해야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5]

한홍구는 자신의 저서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일본어판 서문에서, 베트남 전쟁 문제에 관여하면서 일본의 식민 지배, 한국 군사 독재의 폭정, 베트남에서의 학살 등 역사적 비극들이 편협한 민족주의반일 감정에 기반한 시각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민주주의인권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함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는 그가 협소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넘어서려는 고민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5]

3. 2. 베트남 전쟁 파병 문제

한홍구는 박정희 대통령의 베트남 전쟁 파병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5] 그는 자신의 저서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에서 베트남 전쟁을 단순한 냉전 하의 대리 전쟁으로 보기보다는, 미국의 식민지 해방 운동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 특히 일제 강점기의 고통을 겪었던 한국이 미국의 파병 요구에 응한 박정희 정권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한다.[5]

또한 한홍구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여성 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을 이끌었다.[5]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01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여 유감을 표명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5] 그러나 한홍구 자신은 이러한 조치가 여전히 불충분하며, 한국 사회 전체가 베트남인들에게 저지른 과오를 깊이 성찰하고 인정해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5]

그는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일본어판 서문에서 베트남 전쟁 문제에 대한 개입을 통해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혔다.[5]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 한국 군사 독재 정권의 억압, 베트남에서의 한국군 범죄 등은 편협한 민족주의적 반일 감정이나 혐한 감정이 아닌, 인류 보편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5] 이를 계기로 그는 협소한 반일 감정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술회했다.[5]

3. 3. 군사 독재 및 한국군 문제

한홍구는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논객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일본 식민 지배와 위안부, 강제징용, 황민화 정책 등에 대해 비판하며 철저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한다. 이러한 입장은 많은 한국 지식인들과 공유하는 부분이지만, 한홍구는 특히 과거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한다.

그는 박정희 정부의 베트남 전쟁 파병 결정을 강하게 비판한다. 한홍구는 베트남 전쟁을 단순한 냉전 하의 대리전으로 보기보다, 미국이 식민지 해방 운동을 억압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측면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에서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겪은 한국의 근현대사와 비교하며 박정희 정부의 파병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또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및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운동을 이끌었다. 이러한 노력은 2001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베트남 측에 유감을 표명하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5] 그러나 한홍구 자신은 이를 불충분하다고 평가하며, 한국 사회 전체가 베트남인들에게 저지른 과오를 깊이 인식할 때까지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일본어판 서문에서, 베트남 문제에 관여하면서 일본의 식민 지배, 한국 군사 독재의 압정, 베트남에서의 학살 등 역사적 과오를 편협한 민족주의(반일/혐한)가 아닌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밝히며, 이를 통해 편협한 반일 의식을 넘어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한홍구는 한국군이 자행한 민주화 운동 탄압 사건들과 한국 전쟁 중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오랫동안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군에 대한 비판이 금기시되었고, 한국 전쟁은 북한의 일방적인 잘못으로만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한홍구는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그 이전에 발생한 제주4·3사건 등을 조명하며 한국군의 비인도적인 측면을 지적했다. 더 나아가 병역 제도와 관련해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4. 친일파 문제

한홍구는 친일파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가 친일파를 비판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에 협력하고 위안부, 강제징용, 황민화 정책 추진 등에 가담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 및 그들과 연결된 인물들이 한국의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 엘리트로 군림하며 과거 식민 지배 체제를 참고하면서 한국 국민에 대한 억압적인 지배를 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그는 일제 강점기뿐 아니라 해방 이후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3. 5. 햇볕 정책

한홍구는 햇볕 정책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북한의 정치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해당 체제가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야 하며, 단순한 강경책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4. 평가 및 비판

2012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에는 서울대 사학과 총동창회가 선정한 '자랑스러운 사학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역사관과 활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보수 언론으로부터 좌파 역사학자로 지목되며 비판을 받았고, 아버지 한만년이 아들의 학문적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칼럼도 있다.[6] 다만 이 칼럼의 작성 배경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제기된다.[9] 또한 2014년과 2016년 평화박물관 운영과 관련하여 활동가 부당 해고 논란으로 시민단체를 독단적으로 운영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0][11][12]

4. 1. 비판적 평가

보수 언론은 한홍구가 ‘박근혜 대통령이 태어나기 전에 그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였어야 했다’고 주장했다며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로 지목했다. 또한 그의 아버지 한만년이 1989년 7월 《국민일보》에 기고한 칼럼을 인용하며 한홍구를 비판하기도 했다.

한홍구의 아버지인 한만년은 해당 칼럼에서 아들 한홍구가 사료를 다루는 기술과 해석 능력이 부족하고, 여러 선배 학자들의 시행착오와 업적을 무시한 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으며, 무지에서 비롯된 자신감과 부족한 능력으로 강연을 한다고 지적했다.[6] 다만, 한만년이 이러한 글을 쓴 이유가 자식들의 앞날을 염려하여 공안기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9]

2014년과 2016년에는 평화박물관 활동가들을 부당하게 해고하여 시민단체를 독단적으로 운영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0][11][12]

5. 가계

조선시대의 학자 한백겸의 14대손이며, 한치응(韓致應)의 7대손이다.[8] 독립운동가 한기악의 손자이자, 일조각의 창업주인 언론인 한만년의 4남이며, 교육자 유진오의 외손이다.

'''한홍구 가계'''
관계이름생몰년주요 경력 및 학력
14대조한백겸조선시대 학자
7대조한치응
조부한기악1898년 1월 14일 ~ 1941년 6월 20일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자
(전 동아일보 발행인,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 보성전문 졸업)
백부한만춘연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경성제대 졸업)
숙부한만청서울대학교병원장 (서울대학교 졸업, 영상의학 전공)
외조부유진오1906년 5월 13일 ~ 1987년 8월 30일문인, 교육자, 법학자
(전 고려대학교 총장, 전 신민당 총재, 경성제대 졸업)
외조모이용재1921년 ~ 2009년 11월 12일[13]한의사 (전 명래제약 대표)
한만년1925년 10월 29일 ~ 2004년 4월 30일출판인 (일조각 창립, 서울대학교 졸업)
유효숙1930년 3월 27일 ~ ?
한성구1944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졸업, 내과학 전공)
한경구1956년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졸업, 인류학 전공)
한준구1958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졸업, 영상의학 전공)
여동생한승미1964년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졸업, 문화인류학 전공)
사촌한민구서울대학교 교수 (전 공과대학 학장, 서울대학교 졸업)


6. 저서

'''단독 저서'''

제목출판사출판 연도
대한민국史 (총4권)한겨레2006년 12월 4일
특강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한겨레2009년 3월 31일
한홍구와 함께 걷다 (평화의 눈길로 돌아본 한국 현대사)검둥소2009년 11월 30일
지금 이순간의 역사한겨레2010년 3월 8일
직설한겨레2011년 8월 31일
장물바구니-정수장학회의 진실돌아온산2012년 10월 26일
유신 (오직 한 사람을 한 시대)한겨레2014년 1월 15일
역사와 책임한겨레2015년 4월 6일
사법부돌베개2016년 3월 21일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철수와영희2016년 11월 17일



'''공저'''

제목출판사출판 연도
편견을 넘어 평등으로창비2006년 2월 10일
거짓말한겨레2006년 9월 15일
전쟁없는 세상철수와영희2008년 6월 10일
1%의 대한민국철수와영희2008년 9월 18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 (5인5색 한국 현대사 특강)철수와영희2009년 10월 9일
노무현이 꿈꾼 나라동녘2010년 4월
인문학 박물관에서인물과사상사2010년 5월 17일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2010년 5월 17일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한겨레2012년 6월 29일
감시사회철수와영희2012년 6월 30일
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철수와영희2012년 9월 18일
후쿠시마 이후의 삶반비2013년 3월 4일
하나의 대한민국, 두개의 현실시대의 창2014년 4월 19일
그가 그립다 (스물 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생각의길2014년 5월 8일


참조

[1] 뉴스 법원 "'불온서적' 반발 군법무관들 징계 정당" http://news.naver.co[...] 아시아경제 2010-04-24
[2] 웹사이트 [원희복의 인물탐구] 한홍구 “독재헌법에도 빨갱이 마구 죽일 조항 없었다” https://m.khan.co.kr[...] 2018-07-22
[3] 웹사이트 [세상읽기] 조선일보와 한홍구 교수의 싸움 https://m.khan.co.kr[...] 2015-10-19
[4] 웹사이트 '박정희 죽어야' 한홍구는 '금수저 좌파'? https://www.chosun.c[...] 2015-10-14
[5] 웹사이트 http://www.altasia.o[...]
[6] 뉴스 '박정희 죽었어야' 한홍구 부친 한만년 "미련한 인간" http://news.naver.co[...] 데일리안 2015-10-17
[7] 뉴스 '한국 100년의 역사전쟁' 한홍구교수 뉴욕강연 https://news.naver.c[...] 뉴시스 2016-02-13
[8] 뉴스 (역사의 땅, 사상의 고향)(16) 실학적 역사학 창시 한백겸(下)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07-08-10
[9] 간행물 아비 그리울 때 보라, 한만년의 일업일생 http://www.sisainliv[...] 시사인 2016-08-21
[10] 웹사이트 평화박물관의 활동가들이 집단 사직을 했다. 왜? http://nowplanb.kr/6[...] 더플랜비 2014-02-01
[11] 뉴스 평화 없는 평화박물관 http://h21.hani.co.k[...] 한겨레21 2016-05-16
[12] 뉴스 평화가 깨진 평화박물관…활동가들, 한홍구 이사 고소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16-07-05
[13] 뉴스 명복을 빕니다 故유진오 박사 부인 이용재 여사 http://news.donga.co[...] donga.com 2009-11-14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