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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산 (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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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건지산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에 위치한 해발 101m의 산으로,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의 묘소인 조경단이 있는 곳이다. 이름은 땅의 기운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큰 둑을 쌓았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으며, 조선 시대 지리지와 지도에 기록되어 유래가 오래되었다. 건지산은 전주를 조선 왕조의 본향으로 상징하며, 주변에는 전북대학교, 세계 소리문화의 전당, 전주동물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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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산 (전주시)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건지산
한자 표기乾止山
높이101
위치대한민국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2. 지명 유래

건지산(乾止山)이라는 이름은 전주의 지형과 관련된 풍수지리적 해석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전주 고을의 서북쪽 방향이 비어 있어 땅의 기운이 새어나간다고 여겨졌는데, 이를 막기 위해 서쪽의 가련산(可連山)부터 동쪽의 건지산까지 큰 둑(제방)을 쌓아 땅기운을 멈추게(止) 했다고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건(乾)'은 '하늘' 또는 '마르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1] 조선 영조 33년(1757년) 홍양한(洪良漢)이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2], 건지산은 마이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로 전주의 진산(鎭山)으로 여겨진다.

2. 1. 전주와 조선 왕조

오목대


전주는 경기전, 조경묘, 오목대 등이 위치한 조선 왕조의 본향이다.[2] 건지산(乾止山)이라는 이름은 전주의 땅기운이 서북쪽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서쪽 가련산(可連山)부터 동쪽 건지산까지 큰 둑을 쌓아 기운을 멈추게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풀이가 있다.[1] 영조 33년(1757) 홍양한의 <여지도서>에도 비슷한 기록이 나타나며, 건지산은 마이산에서 시작되어 전주부의 진산(鎭山)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전주는 신라 시대 9주 중 하나인 완산주로 출발하여 고려 시대에는 전주목으로서 안찰사영이 설치되었고, 조선 건국 후에는 전라감영이 위치하는 등 오랜 기간 동안 전라도 지역의 거점 도시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전주는 개성, 평양, 한양과 더불어 조선의 4대 길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특히 덕진연못의 연꽃은 조선의 건국 이념인 성리학과도 연관이 있는데, 성리학의 태두인 주돈이가 남긴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의 고결함을 칭송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연꽃처럼 무욕(無慾)과 정직(正直), 불변(不變)을 추구하는 선비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선 왕실은 전주와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주는 여러 유적을 남겼다. 태종 11년(1410)에는 전주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는 어진전(御眞殿)을 세웠고, 이는 세종 때 경기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건지산에는 태조 이성계의 21대조이자 신라 사공(司空)이었던 이한의 묘역인 조경단이 있는데, 이곳에는 덕진지가 연꽃 모양이고 건지산이 연잎 모양이라 석물이 있으면 가라앉는다는 속설 때문에 돌비나 상석 등이 전혀 없다. 영조 대에는 건지산 조경단에 조경묘(肇慶廟)를 세워 이한과 그의 부인 경주 김씨의 위패를 모셨으며, 고종 대에는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이라는 고종의 친필 석비가 세워졌다. 또한, 발산에는 목조 이안사의 유허비가, 오목대에는 태조 이성계가 잠시 머물렀음을 기념하는 주필유지비(駐蹕遺址碑)가 남아 있어 전주가 조선 왕조의 본향임을 명확히 보여준다.[2]

2. 2. 풍수지리와 전설



건지산(乾止山)이라는 이름은 풍수지리적으로 '큰 둑을 쌓아 새어나가는 땅기운을 멈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조 33년(1757년) 홍양한이 쓴 <여지도서>에 따르면, 전주 고을의 땅 형세가 서북쪽이 비어 있어 땅기운이 새어나간다고 보았기에, 서쪽의 가련산(可連山)부터 동쪽의 건지산까지 큰 둑(제방)을 쌓아 이를 막았다고 한다. 여기서 건(乾)은 '하늘' 또는 '마르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1] 건지산은 마이산에서 시작되어 전주부의 진산(鎭山), 즉 주산을 이룬다.

전주는 경기전, 조경묘, 오목대 등이 위치한 조선 왕조의 본향이다. 전주부의 남쪽 3리에는 곤지산(坤止山)이 있고, 안산(案山)으로는 완산(完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고덕산(高德山)에서 내려온 산줄기라고 전해진다. 한편, 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는 <남행월일기>에서 '전주에는 크고 웅장한 중자산(中子山)이 있는데, 부의 남쪽 남천 너머 나지막한 완산의 이름을 따서 전주의 지명을 삼았는지 이상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주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이다. 본래 백제 시대에는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 비자화(比自火), 온다라 등으로 불렸다. 신라 진흥왕 16년(555년)에 완산주(完山州)가 설치되었고, 경덕왕 15년(756년)에는 지금의 이름인 전주로 바뀌며 9주 중 하나가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전라도를 순찰하는 안찰사영이 전주에 설치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전라감영이 들어서면서 현재까지 전라도의 거점 도시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처럼 전주는 신라 시대부터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그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속설에 따르면 덕진지는 연꽃 모양이고 건지산은 연잎 모양이어서, 돌로 된 구조물(석물)이 있으면 연못에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선 태조 이성계의 21대조인 신라 사공(司空) 이한의 묘소가 있는 조경단에는 비석이나 상석 등 돌로 만든 것이 전혀 없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전주가 태조 이성계의 본관향이기 때문에 전라감영 터를 정할 때 명나라로부터 두 번이나 불인정을 받았으나, 가련산을 그려 보낸 후에야 인정을 받았다는 설화가 있다. 이는 고려 말 나옹화상이나 조선 초 무학대사가 남긴 비기(秘記)인 <금감록(金鑑錄)> 또는 <삼이록(三移錄)>에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전주는 개성, 평양, 한양과 더불어 조선의 4대 길지 중 하나로 꼽혔다. 특히 덕진연못의 연꽃은 조선 건국 이념인 유교성리학 철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는 성리학의 대가인 주돈이(1017~1073)가 남긴 <애련설(愛蓮說)>의 내용과 연결되는데, 이 때문에 마이산에서 이어진 산의 정기가 전주에 머물게 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주돈이는 <애련설>에서 '진나라 도연명은 국화를 사랑했고, 당나라 이래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사랑했지만, 나는 유독 진흙 속에서도 더러워지지 않고 요염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맑고 오뚝하게 서 있는 연꽃을 좋아한다'고 노래했다. 이는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 중 대나무를 노래한 부분과 유사하게, 욕심 없고 정직하며 변치 않는 선비의 고결함을 상징한다. 조선 태종 11년(1410년)에는 전주, 경주, 평양에 태조의 어진을 모신 어진전(御眞殿)을 세웠는데, 세종 때 경기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영조 때에는 건지산 조경단조경묘(肇慶廟)를 세워 시조 이한과 그의 부인 경주 김씨의 위패를 모셨다. 고종 때에는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이라는 고종의 친필 석비를 세웠다. 또한 발산에는 목조 이안사의 유허비가, 오목대에는 태조의 주필유지비가 남아 있어 전주가 조선 왕조의 본향임을 보여준다.[2]

2. 3. 유교적 상징성



전주는 경기전, 조경묘, 오목대 등이 위치한 조선 왕조의 본향이다. 건지산(乾止山)이라는 이름은 전주의 서북쪽이 비어 땅기운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서쪽 가련산(可連山)부터 동쪽 건지산까지 큰 둑을 쌓아 기운을 멈추게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1]

속설에 따르면 덕진연못은 연꽃 모양이고 건지산은 연잎 모양이어서, 이성계의 21대조인 신라 사공(司空) 이한(李翰)의 묘소가 있는 조경단에는 석물이 있으면 연못에 가라앉는다고 하여 돌비석이나 상석 등이 없다고 한다. 특히 덕진연못의 연꽃은 조선의 건국 이념인 성리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성리학의 태두인 주돈이(周敦頤, 1017-1073)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을 '진흙 속에서 피어나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出淤泥而不染), 요염하지 않으며(不妖), 향기는 멀리 퍼질수록 더욱 맑고(香遠益清), 꼿꼿하고 깨끗하게 서 있는(亭亭凈植)' 군자의 모습에 비유하며 예찬했다.

이러한 연꽃의 상징성은 윤선도오우가(五友歌)에서 대나무를 노래한 구절("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 저렇게 사계절에 늘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에서 나타나는 무욕(無慾), 정직(正直), 불변(不變)의 선비적 고결함과도 통한다.

전주에는 조선 왕조의 본향임을 보여주는 여러 유적이 남아 있다. 태종 11년(1410)에는 전주, 경주, 평양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신 전각을 세웠는데, 세종 때 경기전(慶基殿)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조 때는 건지산 조경단조경묘(肇慶廟)를 세워 시조 이한(李翰)과 그의 부인 경주 김씨의 위패를 모셨고, 고종 때에는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이라는 고종의 친필 석비가 세워졌다. 또한 발산에는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의 유허비, 오목대에는 태조가 잠시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는 유지비(駐蹕遺址碑)가 남아 있어 전주가 조선 왕조의 본향임을 뚜렷이 보여준다.[2]

3. 위치와 주변 환경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에 위치한 산이다. 높이는 해발 101m이다.[1]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李翰, 생몰미상)의 묘소인 조경단(肇慶壇)이 있어 능산(陵山)이라고도 불린다.[2]

조선 시대 지리지와 지도에도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유래가 오래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2]신증동국여지승람』(전주)에는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전주에 건지산이 있는데 소목이 울창하여 주(州)의 웅진(雄鎭)이다."라고 기록했다.[2]여지도서』에는 "진안현(鎭安縣) 마이산(馬耳山)에서 뻗어 나와 고을의 진산(鎭山)을 이룬다. 관의 북쪽 10리에 있다."고 수록되어 있다.[2] 한편, 『팔도지도』에는 건지산이 '건상산(乾上山)'으로 기재되어 있다.[2]

3. 1. 주변 시설

건지산에는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李翰)의 묘소인 조경단이 있다.[2] 산 주변으로는 전북대학교, 세계 소리문화의 전당, 전주 동물원 등이 자리 잡고 있다.[2]

4. 역사적 기록



건지산이라는 이름은 '고을 땅의 형세가 서북쪽 방향이 텅 비어 전주의 땅기운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서쪽 가련산(可連山)으로부터 동쪽 건지산(乾止山)까지 큰 둑을 쌓아 땅기운을 멈추게 했다'는 풍수지리적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있다. 여기서 '건(乾)'은 '하늘 건' 또는 '마를 건'을 뜻하는 글자이다.[1] 영조 33년(1757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도 유사한 기록이 나타나는데, 전주의 땅기운이 서북쪽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서쪽의 가련산과 동쪽의 건지산 사이에 큰 둑을 쌓았다는 내용이다.[2]

건지산은 조선 시대의 여러 지리지와 지도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유래가 오래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의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신증동국여지승람』(전주)에서 건지산을 "수목이 울창하여 주의 웅장한 진산(鎭山)"이라고 묘사했다.[2]여지도서』는 건지산이 진안현마이산(馬耳山)에서 산줄기가 뻗어 나와 전주 고을의 진산을 이루며, 관아 북쪽 10리에 위치한다고 기록했다.[2] 한편, 『팔도지도』에는 건지산이 '건상산(乾上山)'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기도 하다.[2]

전주는 경기전, 조경묘, 오목대 등이 위치한 조선 왕조의 본향(本鄕)으로 여겨지는 중요한 도시이다. 건지산에는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李翰, 생몰년 미상)의 묘소인 조경단(肇慶壇)이 자리하고 있어 능산(陵山)이라고도 불린다.[2] 조경단과 관련하여, 덕진연못은 연꽃 모양이고 건지산은 연잎 모양이어서 돌로 만든 석물이 있으면 연못에 가라앉는다는 속설 때문에 조경단에는 돌로 된 비석이나 상석 등이 없다고 전해진다. 또한 전주가 태조의 본향이기에 전라감영 터를 정할 때 명나라로부터 두 차례 불인정을 받았으나, 가련산 그림을 보내고 나서야 인정받았다는 설화가 나옹과 무학이 남긴 비기(秘記)인 <금감록(金鑑錄)> 또는 <삼이록(三移錄)>에 전해 내려온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전주가 개성, 평양, 한양과 더불어 조선의 4대 길지 중 하나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현재 건지산 주변에는 전북대학교,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주동물원 등이 위치해 있다.[2]

참조

[1] 서적 건지산(乾止山) 국토지리정보원 2010
[2] 뉴스 전주가 조선의 4대 길지(吉地) http://www.jjan.kr/n[...] 전북일보 20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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