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실록
1. 개요
《경종실록》은 경종 시대의 국정 전반을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으로, 1720년 음력 6월부터 1724년 음력 8월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 총 15권 7책으로 구성되었으며, 1726년에 편찬이 시작되어 1732년에 완성되었다. 편찬 과정에서 정미환국과 이인좌의 난 등의 사건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영조의 독촉 속에 소론 인물들이 주도하여 편찬되었다. 《경종실록》은 신임사화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노론에 대한 혹평을 담고 있어, 노론의 반발을 사 《경종수정실록》이 편찬되는 배경이 되었다. 《경종수정실록》은 노론 주도로 편찬되었으며, 《경종실록》의 내용에 대한 수정 및 보완을 통해 신임사화에 대한 평가를 변경하고 노론에 유리한 내용으로 재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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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 | 이윤(李昀) |
|---|---|
| 묘호 | 경종(景宗) |
| 시호 | 덕문익무순인선효대왕(德文翼武純仁宣孝大王) |
| 능호 | 의릉(懿陵) |
| 재위 기간 | 1720년 ~ 1724년 |
| 출생 | 1688년 11월 20일 |
| 사망 | 1724년 10월 11일 (35세) |
| 부왕 | 숙종 |
| 모후 | 희빈 장씨 |
| 왕후 | 단의왕후 심씨, 선의왕후 어씨 |
| 권수 | 15권 7책 |
|---|---|
| 경종수정실록(景宗修正實錄) | 5권 3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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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선조실록》은 선조 시대 40년 7개월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로, 임진왜란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완성되었으며, 당파적 시각과 기록의 부실함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선조 시대의 여러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서 현대 역사 연구에 활용된다. -
조선왕조실록 -
인조실록
인조실록은 인조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으로, 인조반정, 병자호란, 정묘호란 등의 사건을 포함하여 조선 후기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노론 -
김만중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소설가인 김만중은 명문 양반 가문 출신으로, 암행어사, 공조 판서, 대사헌, 대제학 등 요직을 역임하며 숙종의 궁녀 장씨 총애를 비판하다 유배 생활을 했고, 어머니를 위해 지은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비롯한 저서를 통해 국어 문학 발전에 기여하며 주자학적 세계관과 불교적 사상을 융합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
노론 -
김수항
김수항은 서인 및 노론의 중진으로 예송 논쟁에서 서인 측 입장을 대변하고 영의정을 역임했으나 기사환국으로 유배되어 사사된 조선 시대 문신이다.
2. 《경종실록》
《경종실록》은 경종 재위 4년 2개월(1720년 음력 6월~1724년 음력 8월) 동안의 국정 전반을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총 15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일부이다. 정식 명칭은 《경종덕문익무순인선효대왕실록》이며, 표지 및 판심제는 《경종대왕실록》이다. 소론 주도로 편찬되었다.
2.1. 편찬 과정
《경종실록》 편찬 작업은 1726년(영조 2년) 음력 8월에 시작되었으며, 정미환국 및 이인좌의 난 등으로 인해 1732년(영조 8년) 음력 2월에야 완성되었다. 1729년(영조 5년) 음력 10월에는 영조가 《경종실록》 편찬을 독촉하는 명을 내리기도 하였다. 1732년 음력 3월 13일, 마침내 《경종실록》이 완성되어 사초를 세초하고 실록 1부를 오대산의 사고에 보관하였으며, 영조는 《경종실록》 편찬자들에게 상을 내렸다. 이듬해 음력 10월에는 태백산 사고에도 봉안하였다.
《경종실록》은 편찬에 관한 의궤가 없어 편찬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영조실록》에 따르면 편찬관은 총재관에 이집과 조문명, 대제학에 이덕수, 부제학에 서명균, 판중추부사에 이의현, 지춘추관사에 김재로, 승지 윤봉조 등이며, 이들은 대부분 소론이었다.
2.2. 주요 내용
《경종실록》의 주요 내용은 1721년에 일어난 신임사화와 노론-소론 간의 대립에 관한 것이다. 실록은 신임사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노론 계열의 신하들에 대해서는 혹평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사신왈(史臣曰)", "근안(謹按)"이라는 표현을 통해 제시되었다.
《경종실록》은 즉위년(1720년) 2권, 경종 1년(1721년) 3권, 경종 2년(1722년) 5권, 경종 3년(1723년) 3권, 경종 4년(1724년) 2권 등 총 1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록 인쇄에는 《현종실록》부터 사용된 "현종실록자"라는 활자가 쓰였다.
2.3. 특징
총 15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할 때에는 "사신왈(史臣曰)", "근안(謹按)" 등의 표현을 사용하였다. 연간별 구성은 즉위년 2권, 경종 1년 3권, 경종 2년 5권, 경종 3년 3권, 경종 4년 2권이다. 실록 인쇄에는 《현종실록》부터 사용된 "현종실록자" 활자가 사용되었다. 내용은 주로 신임사화와 노론-소론의 대립에 관한 것이 많으며, 신임사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노론 계열의 신하들에 대해서는 혹평을 하였다.
3. 《경종수정실록》
《경종수정실록》은 소론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경종실록》의 내용에 노론이 이의를 제기하여 다시 편찬된 경종 시대의 실록이다. 총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지에는 《경종대왕수정실록》(景宗大王修正實錄)으로 쓰여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를 이룬다.
《경종실록》은 신임사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노론파 사람들에 대해서는 혹평하는 등 편찬 초기부터 논란이 있었다. 《경종수정실록》은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편찬되었으며, 소론 계열 신하들을 신임사화와 관련지어 비판하고, 《경종실록》에 실렸던 노론 계열 신하들에 대한 비판 및 노론 측에 불리하게 기록된 내용은 삭제하였다. 신임사화에 대해서는 이인좌의 난과 관련지어 비판하였다. 즉위년부터 경종 4년까지 1개년에 1권씩 총 5권으로 편찬하였다.
3.1. 편찬 배경
소론이 편찬한 《경종실록》은 신임사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노론파 사람들에 대해서는 혹평하였다. 특히 노론은 신임사화에 대한 내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항상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경종실록》 편찬이 한창이던 1729년(영조 5년) 주서 이수해는 "실록청의 뒷면에 농간이 있다."라며 실록청의 문제를 제기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왕명을 업신여기고 당습을 즐긴다는 이유로 유배되었고, 편찬 완료 직후인 1732년 음력 4월 헌납 민정은 박상검의 옥사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 하여 이를 추가하자고 주장하였다. 또 1741년(영조 17년) 음력 10월에는 헌납 이천보가 《경종실록》의 개/보수를 주장하였다. 단 이때에는 실록 개수가 실시되지는 않았다.
결국 정조 때인 1777년(정조 1년) 음력 10월 이사렴이 《경종실록》의 기록에 문제점을 제기하며 《선조수정실록》 등의 예에 따라 실록 개수를 상소하였고, 다른 신하들도 이에 동의함에 따라 1778년(정조 2년)부터 본격적으로 실록 개수 작업이 시작되었다.
3.2. 편찬 과정
소론이 편찬한 《경종실록》의 내용에 노론이 의문을 제기하여 다시 편찬된 경종 시대의 실록이다. 1777년(정조 1년) 음력 10월 이사렴이 《경종실록》의 기록에 문제점을 제기하며 《선조수정실록》 등의 예에 따라 실록 개수를 상소하였고, 다른 신하들도 이에 동의함에 따라 1778년(정조 2년)부터 본격적으로 실록 개수 작업이 시작되었다. 1781년(정조 6년) 음력 7월 《경종수정실록》이 완성되었다.
《경종수정실록》 편찬에는 총재관 정존겸, 도청당상 채제공, 황경원 등 6명, 도청낭청 박천형 등 4명, 분판낭청 12명 등 총 23명이 참여했으며, 주로 황경원이 편찬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노론이었다.
1779년(정조 7년) 음력 7월 송덕상은 《경종실록》의 일이 대부분 바로잡혔다고 하여 《경종수정실록》만 남기고 《경종실록》은 없애자고 주장했으나,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3. 주요 내용
景宗修正實錄중국어은 소론이 편찬한 《경종실록》의 내용에 노론이 의문을 제기하여 다시 편찬된 경종 시대의 실록이다. 총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지에는 景宗大王修正實錄중국어으로 쓰여 있다.
《경종실록》은 신임사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노론파 사람들에 대해서는 혹평하는 등 편찬 초기부터 논란이 있었다. 특히 노론은 신임사화에 대한 내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항상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경종수정실록》은 《경종실록》에 있던 노론 계열 신하들에 대한 비판 및 노론 측에 불리하게 기록된 시정기나 논평을 모두 삭제하였다. 또한 소론 계열 신하들을 신임사화와 관련지어 비판하였으며, 신임사화에 대해서는 이인좌의 난과 관련지어 비판하였다.
3.4. 특징
총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에는 《경종대왕수정실록》(景宗大王修正實錄)으로 쓰여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를 이룬다. 소론이 편찬한 《경종실록》의 내용에 노론이 의문을 제기하여 다시 편찬된 경종 시대의 실록이다.
《경종실록》은 신임사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노론파 사람들에 대해 혹평하는 등 처음부터 논란이 있었다. 노론은 신임사화에 대한 내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항상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결국 정조 때인 1777년(정조 1년) 음력 10월 이사렴이 《경종실록》의 기록에 문제점을 제기하며 실록 개수를 상소하였고, 다른 신하들도 이에 동의함에 따라 1778년(정조 2년)부터 본격적으로 실록 개수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후 1781년(정조 6년) 음력 7월 《경종수정실록》이 완성되었다.
《경종수정실록》 편찬자는 총재관에 정존겸, 도청당상에 채제공, 황경원 등 6명, 도청낭청에 박천형 등 4명, 분판낭청 12명 등 총 23명이며, 주로 황경원이 편찬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노론이다.
소론 중심의 《경종실록》 기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개수된 실록인만큼, 소론 계열의 신하들을 신임사화와 관련지어 비판하였다. 또 《경종실록》에 실렸던 노론 계열 신하들에 대한 비판 및 노론 측에 나쁘게 기록된 기타 시정기나 논평도 모두 삭제하였고, 신임사화에 대해서는 이인좌의 난과 관련지어 비판하였다.
즉위년부터 경종 4년까지 1개년에 1권씩 총 5권으로 편찬하였다.
4. 《경종실록》과 《경종수정실록》의 비교
《경종실록》과 《경종수정실록》은 편찬 주체, 내용, 평가 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경종실록》은 1720년(경종 즉위년) 음력 6월부터 1724년(경종 4년) 음력 8월까지 총 4년 2개월간 경종 시대의 국정 전반에 관한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총 15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식 명칭은 《경종덕문익무순인선효대왕실록》이다. 1726년(영조 2년) 음력 8월에 편찬이 시작되어 정미환국 및 이인좌의 난 등으로 인해 1732년(영조 8년) 음력 2월에야 완성되었다. 소론이 중심이 되어 편찬했으며, 총재관은 이집과 조문명, 대제학은 이덕수, 부제학은 서명균 등이었다.
《경종수정실록》은 《경종실록》의 내용에 노론이 의문을 제기하여 다시 편찬된 실록이다. 총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지에는 《경종대왕수정실록》으로 쓰여 있다. 1777년(정조 1년) 음력 10월 이사렴이 실록 개수를 상소하여 1778년부터 개수 작업이 시작되었고, 1781년(정조 6년) 음력 7월에 완성되었다. 주로 황경원을 비롯한 노론 인사들이 편찬에 참여하였다.
두 실록은 편찬 주체가 달랐던 만큼, 내용 구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 구분 | 《경종실록》 | 《경종수정실록》 |
|---|---|---|
| 편찬 주체 | 소론 | 노론 |
| 권수 | 총 15권 | 총 5권 |
| 연간별 구성 | 즉위년 2권, 경종 1년 3권, 경종 2년 5권, 경종 3년 3권, 경종 4년 2권 | 즉위년부터 경종 4년까지 1개년에 1권씩 |
| 사용 활자 | "현종실록자" | (자료 없음) |
4.1. 신임사화에 대한 평가
《경종실록》은 신임사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노론에 대해서는 혹평을 하였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을 할 때에는 "사신왈(史臣曰)", "근안(謹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반면 《경종수정실록》은 소론 중심의 《경종실록》 기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개수된 실록인 만큼, 소론 계열의 신하들을 신임사화와 관련지어 비판하였다. 또한 《경종실록》에 실렸던 노론 계열 신하들에 대한 비판 및 노론 측에 불리하게 기록된 기타 시정기나 논평도 모두 삭제하였고, 신임사화에 대해서는 이인좌의 난과 관련지어 비판하였다.
4.2. 주요 인물에 대한 평가
《경종실록》은 소론 중심 편찬으로 노론 인물들에 대해 혹평하고, 소론 인물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신임사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노론계 신하들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평가했다. 사건이나 인물 평가는 "사신왈(史臣曰)", "근안(謹按)" 표현을 사용했다.
《경종수정실록》은 노론 중심 편찬으로 소론계 신하들을 신임사화와 관련지어 비판했다. 《경종실록》 내 노론계 신하 비판, 노론 측에 불리한 시정기나 논평은 삭제하고, 신임사화는 이인좌의 난과 관련지어 비판했다.
5. 역사적 의의와 영향
《경종실록》은 당대 정치 상황과 당파적 입장이 역사 기록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실록의 편찬 과정과 내용을 통해 조선 후기 정치사의 주요 쟁점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소론이 편찬한 《경종실록》과 노론이 편찬한 《경종수정실록》을 비교하면, 신임사화와 같은 주요 사건에 대한 평가가 당파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경종실록》은 객관적 역사 서술의 중요성과 역사 해석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를 제기한다. 역사 기록은 특정한 관점에 치우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해야 하지만, 같은 사실이라도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