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균
1. 개요
서명균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노론으로 활동하다 소론에 의해 파직되었으나, 영조 때 재등용되어 경기도관찰사, 호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이후 예문관 제학, 형조판서, 공조판서, 홍문관 제학 등을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했으며, 판중추부사와 영중추부사로 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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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 사망 -
조너선 스위프트
조너선 스위프트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자 사제로, 풍자와 사회 비판으로 유명하며 '걸리버 여행기', '드레이피어 서한', '겸손한 제안'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 본성과 사회 부조리를 풍자적으로 비판했고 더블린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의 학장으로도 활동했다. -
1745년 사망 -
카를 7세
카를 7세는 바이에른 선제후이자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중 프랑스와 동맹하여 신성 로마 황제가 되었으나, 짧은 재위 기간 동안 전쟁과 영토 상실을 겪었고 바이에른 로코코 시대의 문화적 절정기를 이끌었다. -
1680년 출생 -
조문명
조문명은 김창협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를 역임했으며, 경종실록 편찬과 이인좌의 난 진압에 기여하여 분무공신에 책록되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조의 탕평책에 앞장선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
1680년 출생 -
에드워드 티치
에드워드 티치는 검은 수염으로 더 잘 알려진 18세기 초 영국의 해적으로, 벤자민 호니골드의 선원으로 해적 생활을 시작하여 '앤 여왕의 복수'호를 기함으로 삼고 찰스 타운 항구 봉쇄 등의 행위로 악명을 떨쳤으나, 로버트 메이너드 중위와의 전투에서 사망하며 해적의 황금시대를 마감하는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서명균은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노론과 소론의 당쟁 속에서 소론에 의해 파직되었다가 영조 때 재등용되어 우의정과 좌의정까지 역임하는 등 정치적 부침을 겪었다.
2.1. 관직 생활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한 서명균은 검열, 겸설서, 설서, 사서, 지평, 부수찬, 교리를 거쳤고, 수원부사로 잠시 외직에 있었다. 이후 헌납, 교리, 겸사서를 거쳐 이조참의, 충청도관찰사, 병조참지를 역임하며 노론에서 활동하였으나, 소론에 의해 파직되었다.
영조 때 다시 등용된 서명균은 경기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호조참판, 부제학,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이후 예문관제학, 형조판서, 지경연사, 동지경연사, 도감제조를 거쳐 형조판서, 공조판서, 호조판서, 홍문관제학, 판의금부사를 역임했다. 홍문관제학, 예조판서, 형조판서, 동지성균관사를 거쳐 우참찬에 올랐다.
개성유수를 거쳐 판돈녕부사, 우의정을 역임하고, 좌의정에 올랐다. 약방과 사복시의 도제조를 겸임하기도 했으며,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로 치사했다.
2.2. 노론 활동과 정치적 부침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겸설서, 설서, 사서, 지평, 부수찬, 교리 등을 역임했다. 수원부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헌납, 교리, 겸사서를 거쳐 이조참의, 충청도관찰사, 병조참지를 지낼 때 노론으로 활약하다가 소론에 의해 파직되었다.
영조 즉위 후 재등용되어 경기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호조참판, 부제학,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이후 예문관제학, 형조판서, 지경연사, 동지경연사, 도감제조를 거쳐 형조판서, 공조판서, 호조판서, 홍문관제학, 판의금부사를 역임했다. 홍문관제학, 예조판서, 형조판서, 동지성균관사를 거쳐 우참찬이 되었고, 개성유수와 판돈녕부사를 지낸 후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다. 약방과 사복시의 도제조를 겸임하고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로 치사하였다.
2.3. 영조 시대의 주요 활동
영조 때 재등용되어 경기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호조참판, 부제학, 이조참판을 지냈다. 이후 예문관제학, 형조판서, 지경연사, 동지경연사, 도감제조를 역임하고, 공조판서, 호조판서, 홍문관제학, 판의금부사를 거쳤다. 다시 홍문관제학, 예조판서, 형조판서, 동지성균관사를 거쳐 우참찬에 올랐다.
2.4. 최고위 관직 역임
영조 때 재등용되어 이조참의, 충청도관찰사, 병조참지를 거쳐 호조참판, 부제학,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예문관제학, 형조판서, 지경연사, 동지경연사, 도감제조에 이어 형조판서, 공조판서, 호조판서, 홍문관제학, 판의금부사를 역임했다. 이후 홍문관제학, 예조판서, 형조판서, 동지성균관사에 이어 우참찬이 되고, 개성유수와 판돈녕부사를 거쳐 우의정에 이어 좌의정에 올랐다. 약방과 사복시의 도제조를 겸임하고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로 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