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황경
1. 개요
고황경은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과 광복 후 교육 및 사회 활동을 한 인물이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고명우의 딸로 태어나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일본 도시샤 여자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친일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했으며, 광복 후에는 경기여고 교장, 미군정 부녀국장을 역임했다. 한국 전쟁 이후 서울여자대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학장과 명예총장을 지냈으며, 대한어머니회 초대 회장, 걸스카우트 연맹 단장 등을 역임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2000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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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우회의 인물 -
김활란
김활란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여성운동가이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며 여성 교육에 기여했으나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로 비판받았다. -
근우회의 인물 -
박순천
박순천은 1898년에 태어나 1983년에 사망한 대한민국 여성 정치인으로, 3·1 운동 참여,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민주당 대표최고위원과 신민당 고문을 지내며 여성 권익 신장에 기여했다. -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자 -
황순원
황순원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시로 등단 후 소설로 전향하여 단편 〈소나기〉, 장편 《카인의 후예》 등을 통해 한국인의 삶과 정신, 전통적 가치를 탐구했으며, 간결하고 시적인 문체, 설화적 분위기, 순수성과 동심을 통한 인간 본성 탐구가 특징이다. -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자 -
서갑호
일제강점기부터 대한민국에서 기업인으로 활동한 서갑호는 일본에서 섬유 산업으로 성공 후 귀국하여 방림방적을 설립, 한국 면방직 산업 발전에 기여했으며 주일 대한민국 대표부 부지를 기증하기도 했으나 부정 축재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고황경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고명우의 딸로 한성부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는 외가쪽으로 먼 친척이다. 고황경은 4대째 개신교를 믿어온 집안에서 자랐으며,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일본 도시샤 여자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소녀 범죄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조선총독부의 조선부인문제연구회에 가담하면서 친일 단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조선부인문제연구회는 총독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계몽하는 여성 단체였으며, 고황경은 홍승원과 함께 호남 지역 강연을 담당했다. 총독부에서 발족시킨 방송선전협의회의 방송 강좌에도 참가했고, 윤덕영의 부인 김복수가 회장을 맡은 애국금차회 간사와 조선임전보국단 임원으로서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연설과 좌담회로 전쟁을 적극 지원했다.
광복 후 1945년 경기여고 교장, 1946년 미군정의 보건후생부 부녀국장에 임명되었다. 언니인 고봉경은 이때 미군정 경무국의 초대 여경과장을 지냈다. 한국 전쟁 때 아버지 고명우와 언니 고봉경은 납북되었다.
고황경은 한국 전쟁 이후 몇 년간 영국에 머물면서 활동하다가, 귀국하여 1961년 장로교 교단의 오랜 숙원이던 서울여자대학교를 설립해 초대 학장과 명예총장을 맡았다. 대한어머니회 초대 회장, 한국 걸스카우트 연맹 단장,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을 역임했다.
2.1. 초기 생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고명우의 딸로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외가쪽으로 먼 친척은 독립 운동가 김마리아이다.
고황경의 가정은 4대째 개신교를 믿어온 집안 이었으며, 비교적 여유 있는 환경이었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일본의 도시샤 여자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했다.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소녀 범죄에 대한 논문으로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09년 3월 6일, 서울에서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황해도 은진의숙을 거쳐, 1924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동지사여자전문학교(현 동지사여자대학교) 영문학과, 1931년 동지사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33년 미시간 주립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35년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하여, 1944년까지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하며, 법학, 경제학, 사회학, 영어를 가르쳤다. 1937년 5월 미시간 주립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전공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한국인 여성으로는 세 번째 박사 학위 취득자가 되었다.
2.2. 일제강점기 활동
고황경은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조선부인문제연구회에 가담하며 친일 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단체는 총독부 정책을 홍보하고 계몽하는 여성 단체였으며, 고황경은 홍승원과 함께 호남 지역 강연을 담당했다. 총독부에서 발족시킨 방송선전협의회의 방송 강좌에도 참가했고, 윤덕영의 부인 김복수가 회장을 맡은 애국금차회 간사와 조선임전보국단 임원으로서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연설과 좌담회로 전쟁을 적극 지원했다.
1937년 1월 경성방송국 라디오 방송 부인 강좌 담당 강사로 위촉되었고, 같은 해 조선총독부 학무국 주도의 조선 부인 문제 연구회의 발기인을 맡았다. 같은 해 8월에는 애국금차회의 발기인이 되어 간사를 맡았다. 1938년 6월경, 조선여자그리스도교청년회연합회(YWCA)가 세계 YWCA 협의회를 탈퇴하고, 일본여자그리스도교청년회동맹에 가입을 결의할 때, 김활란, 유각경, 박마리아와 함께 실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41년 8월에는 임전대책협의회의 설립에 참여하였고, 10월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을 맡았으며, 12월에는 부인대지도위원에 임명되었다. 1942년 1월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 부인지도위원으로 선임되었고, 6월에는 참사로 임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기에는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조선인의 전쟁 협력과 여성들을 대상으로 징병 참가를 장려하는 글을 『반도의 빛』에 다수 기고했다.
2.3. 해방 이후 활동
광복 후 1945년 경기여고 교장, 1946년 미군정의 보건후생부 부녀국장에 임명되었다. 언니인 고봉경은 이때 미군정 경무국의 초대 여경과장을 지냈다. 한국 전쟁 때 아버지인 고명우와 언니 고봉경은 납북되었다.
고황경은 한국 전쟁 이후 몇 년간 영국에 머물면서 활동하다가, 귀국하여 1961년 장로교 교단의 오랜 숙원이던 서울여자대학교를 설립해 초대 학장과 명예총장을 맡았다. 대한어머니회 초대 회장, 한국 걸스카우트 연맹 단장,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을 역임했다.
연도별 세부 활동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내용 |
|---|---|
| 1945년 8월 | 조선재외전재동포구제회의 평의원 |
| 1945년 10월 | 경기공립고등여학교 교장 |
| 1945년 11월 | 조선교육심사위원회 제5분과위원회(중등교육 담당) 위원, 미군정청의 초대 부녀국장 |
| 1947년 3월 |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범아시아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 |
| 1949년 |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약 1년간 체류하며 "인구 문제"를 연구 |
| 1957년 | 한국으로 귀국,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창설 주도 |
| 1958년 3월 | 대한어머니회를 설립하여 수석최고위원으로 선임 |
| 1958년 4월 |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장 |
| 1958년 | 재단법인 정의학원 이사 |
| 1960년 3월 |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 1961년 4월 | 서울여자대학교 초대 총장 |
| 1961년 11월 | 재건국민운동 본부 중앙위원회 위원 |
| 1963년 | 걸스카우트의 대한소녀단연합회장, 국제 연합 한국협회 이사 겸 부회장 |
| 1968년 | 국민교육헌장 제정 위원 |
| 1971년 11월 | 국어 순화 운동 전국연합 회장 |
| 1981년 |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상임위원 |
| 1983년 | 순국열사 김마리아 기념사업 회장 |
| 1984년 4월 | 서울여자대학교 명예학장 |
| 1989년 3월 | 서울여자대학교 명예총장 |
2000년 11월 2일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향년 91세였다. 평생 미혼으로 지냈으며, 사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었다.
2.4. 교육 및 사회 활동
고황경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고명우의 딸로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독립 운동가 김마리아는 외가쪽으로 먼 친척이다. 4대째 개신교를 믿어온 집안에서 자랐으며,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도시샤 여자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소녀 범죄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광복 후 1945년 경기여고 교장, 1946년 미군정의 보건후생부 부녀국장에 임명되었다. 언니인 고봉경은 이때 미군정 경무국의 초대 여경과장을 지냈다. 한국 전쟁 때 아버지인 고명우와 언니 고봉경은 납북되었다.
한국 전쟁 이후 몇 년간 영국에서 머물면서 활동하다가, 귀국하여 1961년 장로교 교단의 오랜 숙원이던 서울여자대학교를 설립해 초대 학장과 명예총장을 맡았다. 대한어머니회 초대 회장, 한국 걸스카우트 연맹 단장,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을 역임했다.
고황경의 교육 및 사회 활동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내용 |
|---|---|
| 1924년 |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현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 |
| 1928년 | 동지사여자전문학교 (현 동지사여자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
| 1931년 | 동지사대학교 법학부 졸업 |
| 1933년 | 미시간 주립 대학교 대학원 졸업 (경제학 석사) |
| 1935년 |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과정 수료 후 귀국, 이화여자전문학교 (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역임 (~1944년) |
| 1937년 | 경성방송국 라디오 방송 부인 강좌 담당 강사 위촉, 조선총독부 학무국 주도 조선 부인 문제 연구회 발기인, 경성자매원 원장, 미시간 주립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전공 철학 박사 학위 취득, 애국금차회 발기인 및 간사 |
| 1938년 | 조선여자그리스도교청년회연합회(YWCA) 실행위원 |
| 1942년 | 여성감화원 가사료, 영아원 운영 시작 |
| 1945년 | 조선재외전재동포구제회 평의원, 경기공립고등여학교 교장, 조선교육심사위원회 제5분과위원회(중등교육 담당) 위원, 미군정청 초대 부녀국장 |
| 1947년 | 인도 뉴델리 "범아시아 회의" 한국 대표 참가 |
| 1949년 | 프린스턴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인구 문제" 연구 |
| 1957년 |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창설 주도 |
| 1958년 |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장, 대한어머니회 설립 및 수석최고위원, 재단법인 정의학원 이사 |
| 1961년 | 서울여자대학교 초대 총장, 재건국민운동 본부 중앙위원회 위원 |
| 1963년 | 걸스카우트 대한소녀단연합회장, 국제 연합 한국협회 이사 겸 부회장 |
| 1968년 | 국민교육헌장 제정 위원 |
| 1971년 | 국어 순화 운동 전국연합 회장 |
| 1981년 |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상임위원 |
| 1983년 | 순국열사 김마리아 기념사업 회장 |
| 1984년 | 서울여자대학교 명예학장 |
| 1989년 | 서울여자대학교 명예총장 |
3. 비판 및 논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교육/학술,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4. 평가
고황경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교육/학술, 친일단체 부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독신으로 살면서 제자들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 존경을 받았으며, 서울여대는 고황경의 호를 딴 공동체식 교육 '바롬교육'을 필수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