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유
1. 개요
교유는 후한 말 원술 휘하의 장수이다. 원술이 남양군을 잃고 구강군에 거점을 마련했을 때 장훈과 함께 핵심 장수가 되었으며, 여포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된 후 다시 원술에게 돌아갔다. 이후 조조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군과의 전투에서 하후돈에게 죽는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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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과 주변 인물 -
손견
손견은 후한 말의 군벌이자 오나라의 시조이며 손책과 손권의 아버지로, 황건적의 난 진압 등 공을 세웠고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하여 낙양 함락에 기여했으나, 향양 전투 중 전사했으며, 뛰어난 무력과 리더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과감한 성격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인물이다. -
원술과 주변 인물 -
진기 (원술 부하)
진기는 영웅기에 기록된 원술 휘하 장수로, 원술이 황제를 칭하려 할 때 반대하다 죽임을 당했으며, 구강태수로 임명되어 손책과의 동맹 관계에 갈등을 빚었고, 여포 공격에 참여했다 패배하기도 했다. -
197년 사망 -
진기 (원술 부하)
진기는 영웅기에 기록된 원술 휘하 장수로, 원술이 황제를 칭하려 할 때 반대하다 죽임을 당했으며, 구강태수로 임명되어 손책과의 동맹 관계에 갈등을 빚었고, 여포 공격에 참여했다 패배하기도 했다. -
197년 사망 -
곽사
후한 말 동탁의 부하였던 곽사는 이각 등과 장안을 점거하고 헌제를 옹립하여 권력을 장악했으나, 이각과의 다툼 끝에 조조에게 패하고 부하에게 살해당한 인물이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2. 생애
193년(초평 4년), 원술이 남양군을 잃고 구강군 일대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면서 교유는 장훈과 함께 원술의 핵심 장수가 되었다. 이들은 젊은 손책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같은 해 3월, 원술이 양주 자사 진온을 살해하고 진유를 추방하여 양주로 거점을 옮기자, 교유는 장훈과 함께 대장군에 임명되었다. 건안 2년(197년) 봄, 원술이 황제를 참칭했을 때도 교유는 이에 따랐다.
2.1. 여포와의 전투와 배신
197년(건안 2년)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서주목 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 교유, 한섬, 양봉 등에게 수만 명의 대군을 주어 일곱 길에서 밀고 올라가게 했다. 진규는 한섬·양봉과 원술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그 둘을 구슬릴 것을 제안하였다. 여포군이 응전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100보가량 되었을 때 한섬과 양봉도 돌아서서 장훈군을 동시에 타격하였다. 그 탓에 대패하여 살상되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며 교유는 사로잡혔다.
같은 해 9월(음력),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였다. 연주목 조조가 직접 응징에 나섰고 원술은 장훈, 이풍, 양강, 악취, 그리고 복귀한 교유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호현(苦縣) 부근에서 참패하여 장훈만 가까스로 퇴각하고 교유는 다른 세 장수와 같이 목숨을 잃었다.
2.2. 원술에게 복귀와 최후
193년(초평 4년) 원술이 남양군을 잃고 구강군 일대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자, 교유와 장훈은 원술의 핵심 장수가 되었다. 197년(건안 2년)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서주목 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 교유, 한섬, 양봉 등에게 수만 명의 대군을 주어 일곱 길에서 밀고 올라가게 했다. 진규는 한섬·양봉과 원술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을 알고 그 둘을 구슬릴 것을 제안하였다. 여포군이 응전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100보가량 되었을 때 한섬과 양봉도 돌아서서 장훈군을 동시에 타격하였다. 그 탓에 대패하여 살상되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며 교유는 사로잡혔다.
9월(음력),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자 연주목 조조가 직접 응징에 나섰다. 원술은 장훈과 이풍, 양강, 악취, 그리고 복귀한 교유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호현(苦縣) 부근에서 참패하여 장훈만 가까스로 퇴각하고 교유는 다른 세 장수와 같이 목숨을 잃었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삼국지연의》에서 교유는 상장(上將)의 지위로 일곱 부대 중 제2로군을 이끌고 소패(小沛)로 향한다. 조조, 여포, 유비, 손책 연합군이 수춘(壽春)으로 쳐들어오자, 교유는 5만 명을 거느리고 성 밖에서 조조군을 맞이한다. 그러나 하후돈과의 일기토에서 3합도 안 되어 찔려 죽는다.
교유는 서주의 여포를 토벌할 때 제2군 상장에 임명된다. 그러나 진규의 계략에 빠져 아군의 배신을 당해 전군이 붕괴되고, 자신도 여포 휘하의 고순에게 패한다. 이후 조조가 수춘으로 쳐들어오자 성 밖으로 나가 맞이하여 싸우지만, 하후돈에게 일기토에서 죽임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