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요리유키
1. 개요
구로다 요리유키는 1851년 쓰시마 번주의 아들로 태어나 구루리 번주 구로다 나오야스의 딸과 결혼한 후 구로다 가문을 상속받아 자작 작위를 받았다. 그는 대심원 서기관, 요코하마 지방 재판소 서기 등을 역임했으며, 1897년 귀족원 자작 의원으로 선출되어 사망할 때까지 재임했다. 러일 전쟁에서 훈4등 욱일소수장을 받았으며, 그의 아들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 결혼했다. 구로다 요리유키는 1917년 도쿄에서 사망했다.
| 이름 | 구로다 가즈시 |
|---|---|
| 한자 표기 | 黒田 和志 |
| 로마자 표기 | Kuroda Kazushi |
| 출생 | 1851년 9월 8일 |
| 사망 | 1917년 1월 21일 |
| 작위 | 자작 |
|---|---|
| 구루리 번 구로다 씨 당주 | 구루리 후다이 구로다 자작가 |
| 대수 | 1대 |
| 임기 시작 | 1884년 |
| 임기 종료 | 1917년 |
| 후임 | 구로다 히로유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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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이 구로다씨 -
누마타번
누마타번은 에도 시대 고즈케국 누마타 지역에 존재했던 번으로, 사나다 씨, 혼다 씨, 구로다 씨를 거쳐 도키 씨가 다스렸으며 마지막 번주 도키 요리오키가 보신 전쟁에서 신정부군에 협력하여 폐번치현 이후 군마현에 편입되었다. -
후다이 구로다씨 -
소 다케유키
소 다케유키는 일본에서 태어나 도쿄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덕혜옹주와 결혼했으나 이혼 후 재혼하여 레이타쿠 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윤리학 연구, 번역, 저술 활동을 하다가 1985년에 사망했다. -
막말 쓰시마 후추번 사람 -
소 요시아키라
소 요시아키라는 쓰시마 후추번의 마지막 번주이자 메이지 시대의 백작으로, 번주 재임 시절 조슈 정벌과 보신 전쟁을 겪었으며 메이지 유신 후에는 번지사와 외무대승을 지내며 조선과의 외교 교섭을 담당했다. -
막말 쓰시마 후추번 사람 -
소 요시요리
소 요시요리는 쓰시마 후추 번의 15대 번주로, 재정 개혁 실패, 후계자 문제로 인한 소동, 러시아 군함 점령 사건 등을 겪으며 번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은거하여 가독을 물려준 인물이다. -
도쿄도 출신 -
이와야 사자나미
이와야 사자나미는 메이지 시대에 아동 문학을 보급하고 일본 최초의 아동 문학 총서 간행, 전승 설화 리텔링, '옛날이야기 하이쿠 그림' 창조 등을 통해 일본 근대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아동 문학가, 소설가, 시인, 수필가이자 문예 평론가이다. -
도쿄도 출신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2. 생애
구로다 요리유키는 1851년 쓰시마 후추번 번주 소 요시카즈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구 구루리번 번주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어 1881년 구로다 가문의 가독을 상속했으며, 1884년 자작 작위를 받았다. 1882년 대심원 서기로 임관한 것을 시작으로 법원 관련 관료직을 역임했다. 1897년부터 사망 시까지 귀족원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러일 전쟁에서의 공적으로 훈4등 욱일소수장을 받았다. 그의 넷째 아들인 백작 소 다케유키는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딸 덕혜옹주와 결혼했다. 1917년 1월 21일 도쿄 자택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2.1. 가계와 초기 생애
1851년 9월 8일, 쓰시마 후추번 번주 소 요시카즈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구 구루리번(현재의 지바현) 번주였던 구로다 나오카즈의 둘째 딸 구로다 레이코의 데릴사위가 되어 1881년 4월 14일에 구로다 가문의 가독을 상속했다. 1884년 7월 8일에는 자작 작위를 받았다.
2.2. 관료 경력
1882년 5월, 대심원 서기로 임관했다. 이후 센다이 시심 재판소 판사보, 나가사키 항소원 서기, 요코하마 지방 재판소 서기, 요코하마 구 재판소 공증인 등을 역임했다.
2.3. 정치 경력
1882년 (메이지 15년) 5월, 대심원 서기로 임관했다. 이후 센다이 시심 재판소 판사보, 나가사키 항소원 서기, 요코하마 지방 재판소 서기, 요코하마 구 재판소 공증인 등을 역임했다.
1897년 (메이지 30년) 7월 10일, 귀족원 자작 의원으로 선출되어 사망할 때까지 재임했다. 러일 전쟁에서의 공적으로 훈4등에 서훈되었고, 욱일소수장을 받았다.
3. 가족 관계
* 아버지: 소 무네카즈(宗義和) - 쓰시마 후추번의 번주. 구루리번 번주 구로다 나오카즈의 사위가 되어 구로다 성을 사용하였다.
* 아내: 구로다 레이코(黒田鏻子) - 구로다 나오카즈의 차녀. 1881년 4월 14일 요리유키와 결혼했으나 1884년 자녀 없이 사망했다. 아내 사후 요리유키는 1884년 7월 8일 구로다 가문의 상속자가 되었다.
| 관계 | 이름 | 생몰년 | 주요 사항 |
|---|---|---|---|
| 장남 | 구로다 히로유키(黒田博運) | 1882년 - 1938년 | 자작. 고쿠가쿠인 대학 졸업. 궁내청 근무 외에 사업을 했다. * 장남(손자): 츠네시(常志) - 쿠로다 가문 13대 당주. * 차녀(손녀): 마사코(正子, 1912-1989) - 간토 고등 여학교 졸업. 1934년 에티오피아 황족 아라야 아베베와 약혼했으나 이탈리아의 방해로 파혼되었다. 이후 해군 기술자 요네쿠라 후유히코(米倉冬彦)와 결혼했으며, 사이타마현 야마토정(현 와코시)의 시의원을 역임했다. -- |
| 사남 | 소 다케유키(宗武志) | 1908년 - 1985년 | 소 시게모치의 양자. 대한제국 고종의 딸 덕혜옹주와 결혼했으나 이후 이혼하고 일본인 여성과 재혼했다. (상세 내용은 하위 섹션 참조) |
| 삼녀 | 아쓰시(厚) | 1893년 - ? | 지바현 사와라의 양조업자 바바 젠베이(馬場善兵衛)와 결혼 후, 사업가 가와타 이비조(川田亥備造)와 재혼, 이후 게이오기주쿠 대학 교수 쿠사마 시게루(草間 滋)와 재혼했다. |
| 사녀 | 도시(とし) | 1895년 - ? | 미와다 고등 여학교 졸업. 군마현 이세사키마치의 명사 호시노 겐베이(星野元治)의 장남 호시노 가메토시(星野龜年)와 결혼했다. |
3.1. 덕혜옹주와의 관계
구로다 요리유키의 넷째 아들인 백작 소 다케유키는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딸 덕혜옹주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정략결혼으로, 덕혜옹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제로 진행된 측면이 강하다. 결혼 후 덕혜옹주는 조현병(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으로 인해 오랜 기간 고통받았으며, 결국 소 다케유키와 이혼하고 대한민국으로 귀국했다.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 사이에 딸 하나(소 마사에)를 두었으나, 덕혜옹주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이혼하였고, 이후 일본인 여성과 재혼하여 다른 자녀를 낳았다.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은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이 겪었던 수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