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대한제국)
1. 개요
군부(軍部)는 1895년 갑오개혁으로 군무아문이 개편되어 설립된 대한제국의 중앙 군사 행정 기관이다. 군부는 군대를 감독하고, 대신관방, 군무국, 포공국, 경리국, 군법국, 의무국, 정리국 등으로 구성되었다. 1907년 한일 신협약 이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고 군부의 기능이 약화되어 진위부로 변경되었으며, 1909년 폐지되고 친위부로 기능이 이관되었다.
| 명칭 | 군부(軍部) |
|---|---|
| 로마자 표기 | Gun-bu |
| 설립일 | 1895년 4월 1일 |
| 해체일 | 1909년 |
| 관할 | 대한제국 정부 |
| 예산 | 1903년: 3,594,911 원 1905년: 4,852,175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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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행정기관 -
원수부
대한제국 시기 군사 업무를 총괄한 원수부는 군무국, 검사국, 기록국, 회계국의 4개 부서로 구성되어 군사 기획, 작전, 인사, 징계, 기록 보존, 예산 관리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고종과 순종이 대원수 직을 맡았다. -
대한제국의 행정기관 -
대한제국 중추원
대한제국 중추원은 갑오개혁으로 설립되어 의회적 성격을 갖추었으나, 공화정 수립 루머로 황제의 견제를 받았으며, 독립협회 폐지 이후 자문기관으로 역할이 축소되다가 1907년 기능이 종식되었다. -
1909년 폐지 -
법관양성소
법관양성소는 1895년 대한제국 고종이 근대적 사법 제도 도입 후 법관 양성을 목적으로 평리원 안에 설치한 국립 교육 기관으로, 법학교, 경성전수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연원이 되었다. -
1909년 폐지 -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는 대한제국의 장교 양성을 목표로 설립되었으나 일본의 영향력 확대로 폐교되었고, 졸업생 중 독립운동가와 조선총독부 관리로 나뉜 인물들이 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역사
1894년 갑오개혁 때 8아문제 중 하나로 신설된 군무아문(軍務衙門)은 1895년에 군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군부는 군사 부문을 담당하며 군대를 통괄하는 부서였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유명무실해졌다가 1909년 7월 완전히 폐지되었고, 남은 기능은 신설된 친위부로 이관되었다. 원수부 설치 이후 군부의 권한은 축소되어 일반 행정 업무만 남게 되었고, 1907년 한일 신협약 이후 진위부로 변경되었다.
* 1894년(고종 31년) 6월 28일, 군무아문(軍務衙門) 출범
* 1895년(고종 32년) 4월 1일, 군부(軍部)로 개편
* 1909년(순종 3년) 6월 14일, 폐지 (친위부 신설)
2.1. 갑오개혁과 군부 설립 (1894-1895)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조선의 군사 제도를 개혁하면서 8아문제에 따라 군무아문(軍務衙門)을 신설하였고, 1895년에 관제 개혁으로 군무아문을 군부로 개칭하였다. 군부는 조선의 병조를 중심으로 한 각종 군사 기관의 관장 업무를 담당하고 군대를 통괄하는 부서로, 현대의 대한민국 국방부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군부의 수장은 군부대신이 맡았으며, 군부 협판, 군부 참의, 참사관 등을 두었다. 군부 관료에게는 통정대부, 가선대부 등의 동서반 관제 외에도 육군참장, 육군부장, 육군정령 등의 군 계급을 겸임하게 하였다.
* 1894년(고종 31년) 6월 28일, 군무아문(軍務衙門) 출범
* 1895년(고종 32년) 4월 1일, 군부(軍部)로 개편
2.2. 대한제국 시기 군부의 역할과 변화 (1895-1907)
1894년 갑오개혁 때 8아문 중 하나로 신설된 군무아문(軍務衙門)은 1895년 관제 개혁으로 군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군부는 조선의 병조를 비롯한 여러 군사 기관을 관리하고 군대를 통솔하는, 현대의 대한민국 국방부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군부의 최고 책임자는 군부대신이었고, 그 아래에 군부 협판, 군부 참의, 참사관 등을 두었다. 군부 관료들은 통정대부, 가선대부 등 동서반 관제와 더불어 육군참장, 육군부장, 육군정령 등의 군 계급을 함께 가졌다.
군부는 갑오개혁으로 정부 부처가 개편되면서 만들어졌으며, 일반적으로 군대를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원수부가 덕수궁에 설치되면서 군부의 권한은 축소되어 일반 행정 업무만 담당하게 되었다.
2.3. 군부의 해체와 친위부로의 이관 (1907-1909)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군부는 유명무실해졌고, 1909년 7월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도 함께 폐지되었다. 군부의 남은 기능은 신설된 친위부로 이관되었고, 초대 친위부장관은 이병무가 맡았다.
3. 조직
대한제국 군부는 1895년 육군부로 설립된 이후 여러 차례 조직 개편을 거쳤다. 초기에는 대신관방, 군무국, 포공국, 경리국, 군법국, 의무국, 정리국 등의 부서로 구성되었다. 각 국의 국장은 소장 또는 대령이 맡았으며, 군의국을 제외한 모든 국은 1등국이었다.
원수부 설치 후 군무국은 육군부에서 제외되었다. 1904년에는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일본의 영향으로 포공국이 폐지되고 해방국이 신설되었으며, 군의국은 1등국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군무국이 육군부에 소속되었고, 참모부와 교육국이 설치되었다.
1907년 8월, 육군부는 군무국과 회계국만 남기고 규모가 축소되었다.
3.1. 중앙 조직
대한제국 군부의 중앙 조직은 대신관방, 군무국, 포공국(이후 해방국), 경리국, 군법국, 의무국, 정리국 등으로 구성되었다. 군부는 26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었으며, 대부분 군 계급을 가지고 있었다. 육군 대신은 중장, 협판은 소장이었으며, 각 부의 국장은 대령 또는 소장이었다.
1895년 군부에는 대신관방을 포함하여 군무국, 포공국, 회계국, 군법국, 군의국의 5개 산하 기구가 있었다. 각 국의 국장은 소장 또는 대령이었고, 군의국을 제외한 모든 국은 1등국이었다. 1896년에는 육군무관학교가 설립되어 군부에 소속되었다. 1900년에는 군법원이, 1904년에는 소규모 군 공장이 설치되었다.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의 영향으로 군부 조직은 축소 및 개편되었다. 1904년 포공국이 폐지되고 해방국이 신설되었으며, 군의국은 1등국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참모부와 교육국이 설치되었다. 이 개혁은 일본의 영향 아래 이루어졌으며, 대한제국 육군 편집관은 권중현, 민영기, 민영환, 이윤용, 이지용, 구영조, 박제순, 엄준원, 형영운, 이병무, 이희두였다.
1907년 군부는 군무국과 회계국만 남기고 축소되었다. 장관 사무실은 장교 임명과 포상을 관리했다. 군부 소속 의무관은 제1국과 제2국의 지휘를 받았는데, 제1국은 육군 군의관을, 제2국은 군의관 인사 업무를 담당했다.
3.1.1. 군무국
군무국 산하에는 군사과, 마정과, 외국과가 있었다. 군사과는 부대의 조직, 전술, 배치, 교육 및 장교 임명을 감독했다. 마정과는 육군의 기병을 감독했다. 외국과는 유학생 파견, 문서 번역 및 문서 관리를 감독했다.
3.1.2. 포공국/해방국
1895년 육군부 산하에 설치된 포공국(砲工局)은 포병과 군사 공병을 관리했다. 포병과는 포병 기율과 군사 공병 기율의 지휘를 받았는데, 포병 기율은 포병을, 군사 공병 기율은 군사 공병을 감독했다. 포공국은 1904년 8월에 폐지되었고, 같은 해 9월 27일 해방국(海防局)이 설치되었다.
포병대 부장은 다음과 같다.
| 이름 | 계급 | 시작일 | 종료일 |
|---|---|---|---|
| 류혁로 | 중령 | 1895년 4월 1일 (음력) | 1895년 11월 3일 (음력) |
| 이병우 | 소령 | 1896년 1월 4일 | 1896년 3월 31일 |
| 이민긍 | 소령 | 1896년 4월 22일 | 1900년 7월 20일 |
| 이강하 | 중령 | 1900년 9월 29일 | 1901년 2월 4일 |
| 이건영 | 중령 | 1901년 2월 4일 | 1901년 3월 15일 |
| 이기도 | 중령 | 1901년 3월 16일 | ? |
| 권총석 | 소령 | 1901년 7월 30일 | ? |
3.1.3. 교육국
군부는 군사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국을 두었다. 교육국은 육군무관학교를 소속 기관으로 두었다. 1907년 8월 28일, 군부는 교육 규율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군무 부서의 일부가 되었다. 1904년 8월, 군무국이 육군부에 소속되었고 참모부와 교육국이 설치되었다. 1896년에는 육군무관학교가 설립되어 육군부에 소속되어 젊은 장교들을 교육했다.
3.1.4. 참모부
1904년 9월 창설된 참모부는 군사의 모든 사무를 감독했다. 참모부 장관은 참장(Colonel General) 또는 부장(Lieutenant General)이었다. 참모부에는 두 개의 부서가 있었는데, 제1과는 전술, 기지 위치, 부대 편성 및 전쟁 법규를 감독했고, 제2과는 외교 및 정보 업무를 감독했다. 또한, 참모부는 인사 업무와 참모부 보고를 감독하는 시종무관부를 예속시켰으며, 두 명의 시종무관이 참모부에 포함되었다.
| 이름 | 품계 | 시작일 | 종료일 |
|---|---|---|---|
| 이윤용 | 부장 | 1904년 9월 28일 | |
| 윤웅렬 | 부장 | 1904년 9월 30일 | 1905년 1월 1일 |
4. 역대 군부 대신
| 이름 | 임명일 | 퇴임일 |
|---|---|---|
| 조희연 | 1895년 4월 1일 (음력) | 1895년 4월 23일 (음력) |
| 신기선 | 1895년 4월 23일 (음력) | 1895년 6월 20일 (음력) |
| 안경수 | 1895년 6월 20일 (음력) | 1895년 8월 25일 (음력) |
| 조희연 | 1895년 8월 25일 (음력) | 1895년 10월 10일 (음력) |
| 이도재 | 1895년 10월 10일 (음력) | ? |
| 조희연 | 1896년 1월 29일 | 1896년 2월 11일 |
| 이윤용 | 1896년 2월 11일 | ? |
| 민영환 | 1896년 | ? |
| 이종건 | ? | ? |
| 민영기 | ? | ? |
| 심상훈 | ? | ? |
| 민영환 | ? | ? |
| 심상훈 | ? | ? |
| 민병석 | ? | ? |
| 윤웅렬 | ? | ? |
| 민병석 | ? | ? |
| 민영철 | ? | ? |
| 신기선 | ? | ? |
| 이근택 | ? | ? |
| 이봉의 | ? | ? |
| 윤웅렬 | ? | ? |
| 민영철 | ? | ? |
| 이용익 | ? | ? |
| 윤웅렬 | ? | ? |
| 민영기 | ? | ? |
| 이윤용 | ? | ? |
| 이종건 | ? | ? |
| 권중현 | ? | 1906년 11월 25일 |
| 이용익 | ? | ? |
| 심상훈 | ? | ? |
| 권중현 | ? | ? |
| 이근택 | ? | ? |
| 이병무 | 1907년 5월 22일 | 한일 병합 |
위 표는 대한제국 시기 군부 대신과 군부대신의 명단과 임명일, 퇴임일을 정리한 것이다. 초기에는 조희연이 여러 차례 임명되었고, 이윤용, 민영환 등도 군부 대신을 역임하였다. 이후 권중현, 이병무 등이 군부대신을 맡았으며, 이병무는 한일 병합 시기까지 재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