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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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규기는 자은대사로 존칭되는 당나라의 승려로, 법상종의 종조이다. 17세에 출가하여 현장에게 사사받아 그의 번역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특히 유식학 연구에 매진하여 《성유식론술기》 등을 저술하고 호법의 유식설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식설을 세웠다. 그는 많은 저서를 남겨 '백본논사' 또는 '백부소주'로 불렸으며, 저서 《대승법원의림장》과 《성유식론술기》를 바탕으로 중국 법상종을 조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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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기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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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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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유치 (성), 홍도 (자) |
출생 | 632년 |
출생지 | 장안 |
사망 | 682년 (50세) |
국적 | 중국 |
종교 | 불교 |
종파 | 동아시아 유식학 |
아버지 | 유치 경종 |
어머니 | 배 (어머니의 성) |
스승 | 현장 |
존칭 | 자은대사 |
사찰 | 대자은사 |
속성 | 기 (基) |
생몰년 | 정관 6년 - 영순 원년 11월 13일 (632년 - 682년12월 17일) |
법명 | 규기 |
로마자 표기 | Gyu-gi |
활동 | |
주요 저서 | 성유식론술기 성유식론추요 |
사상적 영향 | |
스승 | 현장 |
제자 | |
주요 제자 | 혜소 |
2. 생애
성은 위지(尉遲) 씨, 자는 홍도(弘道)이며, 대자은사(大慈恩寺)에 머물렀기에 '''자은대사'''(慈恩大師)로도 불린다.[1] 경조군 장안현 출신이다.[1]
17세에 출가하여 현장(玄奘)의 제자가 되었고, 대자은사에서 현장의 불경 번역 사업에 참여했다.[1][2] 특히 659년에는 현장과 함께 『성유식론(成唯識論)』을 한역했으며, 이를 연구하여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등을 저술하고 호법(護法)의 학설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식설(唯識說)을 정립했다.[1][2]
이후 『변중변론(辨中邊論)』, 『유식20론(唯識二十論)』 등 여러 경전의 한역을 주도했으며,[1][2] 수많은 저서를 남겨 '백본논사(百本論師)' 또는 '백부소주(百部疏主)'라는 별칭을 얻었다.[1][2] 그의 저술은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기초가 되었고, 규기는 법상종의 시조로 여겨진다.[1][2]
2. 1. 출가 전
성은 위지 씨이며, 자는 홍도이다. 대자은사에 살았기 때문에 '''자은대사'''로 존칭된다. 경조군 장안현 출신이다. 아버지는 당나라의 좌금오장군 위지종으로, 위지경덕의 종제이다.2. 2. 출가와 현장과의 만남
성은 위지(尉遲) 씨이며, 자는 홍도(弘道)이다. 대자은사(大慈恩寺)에 머물렀기 때문에 '''자은대사'''(慈恩大師)로 존칭된다. 경조군 장안현 출신으로, 아버지는 당나라 좌금오장군(左金吾將軍) 위지종(尉遲宗)인데, 그는 위지경덕(尉遲敬德)의 종제(사촌동생)이다.17세에 출가하여 현장(玄奘) 삼장(三藏)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대자은사에서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교 경전을 한자로 번역하는 작업에 참여하여, 중국어 감수를 맡았다. 특히 현경 4년(659년)에는 현장과 함께 『성유식론(成唯識論)』을 번역하였다.
이후 규기는 『성유식론』을 깊이 연구하여 주석서인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와 『성유식론장중추요(成唯識論掌中樞要)』를 저술하였다. 또한 『유식삼십송석(唯識三十頌釋)』을 통해 인도의 불교 논사인 호법(護法, Dharmapāla)의 학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유식설(唯識說)을 정립하였다. 이는 진제(眞諦)가 번역한 경전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기존의 유식설을 비판하며 제시된 것이었다.
용삭 원년(661년)에는 『변중변론(辨中邊論)』과 『유식20론(唯識二十論)』의 한역을, 이듬해에는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을, 그 다음 해에는 『계구족론(阿毗達磨界身足論)』의 한역에서 필수(筆受, 받아쓰는 역할)를 맡았다.
규기는 수많은 저서를 남겨 '백본논사(百本論師)' 또는 '백부소주(百部疏主)'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의 저서 중 특히 『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과 『성유식론술기』를 통해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교의가 형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규기는 법상종의 시조로 여겨지게 되었다. 법상종이 '자은종'(慈恩宗)이라고도 불리는 것은 그의 호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오대산에 머무른 경험이 있었고, 동시대의 승려인 도선(道宣)과 교류하기도 했다.
2. 3. 유식학 연구와 저술 활동
17세에 출가하여 현장(玄裝)의 제자가 되었으며, 대자은사(大慈恩寺)에 머물며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교 경전을 한역하는 작업에 참여하여 중국어 점검을 맡았다. 현경 4년(659년)에는 현장과 함께 『성유식론(成唯識論)』을 한역하였다. 이후 규기는 이 경전을 깊이 연구하여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성유식론장중추요(成唯識論掌中樞要)』 등을 저술했다. 특히 『유식삼십송석(唯識三十頌釋)』을 통해 호법(護法)의 학설을 중심으로 하여, 진제(眞諦)의 번역에 기반한 기존의 유식설(唯識說)을 비판하고 새로운 유식설을 정립했다.용삭 원년(661년)에는 『변중변론(辨中邊論)』과 『유식20론(唯識二十論)』의 한역에서 필수를 맡았고, 이듬해에는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 그 다음 해에는 『계구족론(界具足論)』의 한역에서 필수를 담당했다. 이처럼 수많은 저서를 남겨 '백본논사(百本論師)' 또는 '백부소주(百部疏主)'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과 『성유식론술기』는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교리를 체계화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규기는 법상종의 실질적인 창시자이자 시조로 여겨진다. 대자은사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자은대사'로도 불렸으며, 법상종을 '자은종(慈恩宗)'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2. 4. 삼차법사
규기가 출가할 때 스승인 현장에게 여색과 술, 고기를 끊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요구했고, 승려가 된 후에는 술, 여자, 그리고 경전을 싣는 세 대의 수레를 이끌고 다녔다는 일화에서 삼차법사(三車法師)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전해진다.그러나 송고승전에 기록된 이 일화는 학술적으로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송고승전 자체에서도 규기가 직접 쓴 "자서(自敍)"에서 "아홉 살에 부모상을 당해 점차 세속을 멀리했다"고 밝힌 내용과 삼차법사 일화가 서로 모순됨을 언급하며, 만약 규기의 자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삼차법사 이야기는 그를 비방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3. 주요 저서
규기는 현장과 함께 『성유식론』(成唯識論)을 한역한 이후 이를 깊이 연구하여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장중추요』(掌中樞要) 등을 저술했으며, 『유식삼십송석』(唯識三十頌釋)을 통해 호법(護法)의 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유식설(唯識說)을 세웠다.
그는 수많은 저서를 남겨 '백본논사'(百本論師) 또는 '백부소주'(百部疏主)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 외에도 『유가론략찬』, 『백법론소』, 『인명입정리론소』(약칭 『인명대소』), 『묘법연화경현찬』(약칭 『법화현찬』)[5], 『무구칭경소』 등이 있다. 특히 『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과 『성유식론술기』는 중국 법상종(法相宗)을 조직화하고 그 시조가 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3. 1. 논서(論書)
규기는 수많은 저서를 남겨 '백본논사(百本論師)' 또는 '백부소주(百部疏主)'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저서명 | 원어/원제 | 비고 |
---|---|---|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 현장의 성유식론에 대한 주석서. 대정신수대장경 제1830권. | |
장중추요(掌中樞要) | ||
유식삼십송석(唯識三十頌釋) | 호법의 설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식설을 세운 저서. | |
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 | 법상종 조직화의 기반이 된 저서. | |
인명입정리론소(因明入正理論疏) | 因明入正理論疏zho | 인명입정리론의 주석서. 약칭 인명대소. 대정신수대장경 제1840권. |
중변변론술기(辯中邊論述記) | 辯中邊論述記zho | 변중변론에 대한 술기. 대정신수대장경 제1835권. |
잡집론술기(雜集論述記) | 雜集論述記zho | 무착의 아비달마집론에 대한 상혜의 주석서에 대한 술기. |
유식이십론술기(唯識二十論述記) | 唯識二十論述記zho | 세친의 유식이십론(Viṃśatikā)에 대한 술기. |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 大乘百法明門論解zho | 세친의 백법명문론에 대한 해설. 대정신수대장경 제1836권. |
유가사지론략찬(瑜伽師地論略纂) | 瑜伽師地論略纂zho | 유가사지론에 대한 요약 주석. 대정신수대장경 제1829권. 약칭 유가론략찬. |
백법론소(百法論疏) | 백법명문론에 대한 주석서. | |
묘법연화경현찬(妙法蓮華經玄贊) | 묘법연화경에 대한 주석서. 약칭 법화현찬.[5] | |
무구칭경소(無垢稱經疏) | 유마경(무구칭경)에 대한 주석서. |
3. 2. 경소(經疏)
규기는 수많은 저서를 남겨 '백본논사(百本論師)' 또는 '백부소주(百部疏主)'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그의 주요 저술 및 경소(經疏)는 다음과 같다.저서명 | 비고 |
---|---|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 유식설 연구 저술. 법상종 조직화의 바탕이 된 주요 저서 중 하나. |
장중추요(掌中樞要) | 유식설 연구 저술. |
유식삼십송석(唯識三十頌釋) | 호법의 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유식설을 세움. |
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 | 대정신수대장경 45권, No. 1861. 법상종 조직화의 바탕이 된 주요 저서 중 하나. |
아미타경 소(阿彌陀經疏) | 대정신수대장경 37권, No. 1757. |
관미륵상생도솔천경 찬(觀彌勒上生兜率天經賛) | 대정신수대장경, No. 1772. |
금강반야경 찬술(金剛般若經賛述) | 대정신수대장경, No. 1700. |
반야바라밀다심경 유찬(般若波羅蜜多心經幽贊) | 대정신수대장경 33권, No. 1710. Shih and Lusthaus 2006 번역. |
묘법연화경 현찬(妙法蓮華經玄賛)[4] | 대정신수대장경 34권, No. 1723. 약칭 『법화현찬』.[5] |
설무구칭경 소(說無垢稱經疏) | 대정신수대장경 38권, No. 1782. 약칭 『무구칭경소』. |
유가론략찬(瑜伽論略纂) | |
백법론소(百法論疏) | |
인명입정리론 소(因明入正理論疏) | 인명입정리론의 주석서. 약칭 『인명대소』. |
4. 평가 및 영향
현장의 제자로서 대자은사에서 경전 번역 작업에 참여했으며, 특히 호법의 설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식설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장중추요(掌中樞要)>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겨 '백본논사(百本論師)' 또는 '백부소주(百部疏主)'로 불렸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법상종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그 시조가 되어 후대 불교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참조
[1]
서적
Ancient Buddhism in Japan
https://books.google[...]
E. J. Brill
[2]
웹사이트
中国历史上排名第二的高僧究竟叫什么名字?
http://www.thepaper.[...]
The Paper
2015-12-20
[3]
문서
Quick Overview of the Faxiang School
http://www.acmuller.[...]
2007-12-12
[4]
서적
Princeton Dictionary of Buddh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
[5]
웹사이트
受賞発表
https://www.min.ac.j[...]
身延山大学
2019-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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