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인민당
1. 개요
근로인민당은 1947년 여운형이 창당한 정당이다. 1945년 조선인민당이 분열된 후, 여운형은 지지 세력을 모아 근로인민당을 결성했다. 남조선로동당과 협력하며 활동했으나, 여운형의 암살과 당내 갈등으로 쇠퇴했다. 여운형 사후 홍명희가 당을 이끌었고, 이후 장건상이 당수직을 맡았지만 1949년 독립노농당에 흡수되어 와해되었다. 북한에서도 리용의 주도하에 활동했으나, 숙청으로 인해 폐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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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해산된 정당 -
북조선로동당
북조선로동당은 1946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과 조선신민당의 합병으로 창당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으로, 김두봉이 초대 위원장을 맡았지만 김일성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으며, 1949년 남조선로동당과 합병하여 조선노동당으로 개편되었다. -
1949년 해산된 정당 -
인민당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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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희 -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1920년 창간되어 민주주의, 민족주의, 문화주의를 사시로 내걸고 민족운동 등을 전개했으며, 일제강점기 폐간 후 복간되어 방송 사업을 시작했고, 여러 논란을 겪으며 현재 주 6일제로 신문을 발행한다. -
홍명희 -
신간회
신간회는 1927년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하여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로, 민족 대단결을 목표로 노동 운동과 농민 운동을 지원하며 일제에 저항하다가 1931년 해산되었다. -
장건상 -
좌우합작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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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상 -
허헌
허헌은 일제강점기 변호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3·1 운동 관련자 변호와 신간회 활동을 했고, 해방 후에는 건준위 부위원장, 민전 공동의장 등을 지내며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으며, 월북 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등을 지냈다.
2. 조선인민당 결성과 분열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여운형은 좌익 세력을 중심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결성했다. 건준은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했으나, 10월 10일 미 군정청 장관이 "인민공화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승만도 주석 취임을 거부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여운형은 건국동맹 등 여러 단체를 흡수하여 11월 12일 조선인민당을 창당하고 위원장에 취임했다. 부위원장은 장건상, 정무국장은 이여성이었다.
조선인민당은 한국민주당이 자산계급을, 조선공산당이 무산계급을 대표하는 계급 정당인 것과 달리, 노동자, 농민, 소시민, 자본가, 지주까지 포괄하는 대중 정당임을 표방하며 중도 좌파 노선을 취하고, 좌우합작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2.1. 조선인민당의 분열과 남조선로동당 결성
1946년 5월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임시 정부 조직 참여 문제를 둘러싸고 결렬되자, 조선인민당 내부의 비(非) 여운형계는 조선공산당 및 조선신민당 내 합당 추진파와 연합하여 11월에 남조선로동당을 결성하면서 조선인민당은 분열되었다.
3. 근로인민당 창당과 활동
1947년 초, 미소공위 재개 움직임이 보이자 여운형은 남부 지방을 순회하며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지방 순회 결과, 구 인민당원의 절반 정도는 남로당에 합류했지만, 여전히 십만여 명의 지지자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들을 기반으로 근로인민당을 결성하기로 결심했다. 여운형이 위원장, 백남운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1946년 5월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임시 정부 조직 참여 문제를 둘러싸고 결렬되면서, 인민당은 분열되었다. 인민당 내부의 비(非) 여운형계는 조선공산당 및 조선신민당 내 합당 추진파와 함께 11월 남조선노동당을 결성했다. 이에 여운형은 신민당 및 공산당 내 합당 반대파와 함께 사회노동당을 결성했지만, 격렬한 정쟁으로 인해 1947년 2월 해산되었다. 이후 1947년 5월 24일, 여운형은 자신의 지지 세력을 다시 모아 근로인민당을 창당했다. 근로인민당은 남조선노동당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활동했지만, 구(舊) 인민당 계열과 구 사회노동당 계열 간의 심각한 당내 갈등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