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금산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금산사는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사찰로,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진표율사가 중창하여 미륵신앙의 성지가 되었으며,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쫓겨나 유폐되기도 했다. 고려 시대에는 혜덕왕사가 중창하여 대규모 사찰로 발전했으나, 조선 시대에는 불교 탄압으로 폐사되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으며, 현재는 1961년 월주스님에 의해 호남의 명찰로 거듭났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62호인 김제 금산사 미륵전과 보물인 노주 등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금산사 - 대원사 (완주군)
    대원사(완주군)는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되어 후백제,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며 학문적 깊이를 더했고, 난원 국사와 의천 선사가 머물렀으며, 임진왜란 이후 진묵대사가 중창하였고, 강증산이 도를 깨우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웅전 뒤편에는 5층 석탑이 위치한 사찰이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절 - 선운사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에 위치한 사찰로, 백제 위덕왕 때 창건되었으며 여러 보물과 동백나무 숲을 보유하고 템플스테이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 전북특별자치도의 절 - 내소사
    전라북도 부안군에 있는 내소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어 임진왜란 후 중건되었으며,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지어진 대웅보전과 고려동종 등 다양한 문화재, 아름다운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사찰이다.
금산사 - [지명]에 관한 문서
개요
금산사 일원
금산사 일원
이름금산사 (金山寺)
로마자 표기Geumsansa
위치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좌표35°43′22.3″N 127°03′12.3″E
종교
종파불교
종단조계종
본산조계종 제17교구 본사
역사
창건백제 법왕 원년 (599년)
중창신라 경덕왕 시대 (722년 - 766년)
중창자진표
건축
주요 건축물미륵전 (국보 제62호)
기타
특징법상종에서 조계종으로 종파 변경

2. 역사

금산사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창건되어, 신라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며 미륵신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후 견훤 유폐, 고려시대 혜덕왕사 중창 등 역사적 사건들을 겪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35년 (인조 13년) 수문대사에 의해 재건되었다.

1725년에는 환성지안 스님이 화엄대법회를 개최하여 금산사에 1,400여 명의 대중이 몰려들었으나, 조정에서 위협을 느껴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기도 했다.[24]

1961년 월주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교, 극락교, 향적당, 적묵당, 보현당, 설법전, 요사채, 나한전, 조사전, 보제루 등을 신축하고 미륵전과 대적광전, 대장전, 상서전, 금강계단 등은 해체 복원하여 호남의 명찰로 만들었다.

미륵전(국보 제62호)은 건물과 불상의 크기가 웅장하다. 미륵전의 미륵보살상은 옥내 입불로서는 세계 최대이며, 삼존불 중 가운데 미륵불상이 11.82m, 좌우 불상은 8.8m이다. 경주 황룡사지나 지리산 화엄사에 있었다는 장육전이 실제 남아 있는 예는 금산사 미륵전이 유일하다.

미륵전 앞마당에는 노주(보물 제22호)와 석련대(보물 제23호)가 있다. 노주는 관솔불을 밝히기 위한 장치로 보이며, 석련대는 불상의 좌대로 추정되나 불상은 없고 연꽃이 화려하게 새겨진 좌대만 남아있다. 금산사 부도전 중앙에는 고려시대 금산사 중창주인 혜덕왕사 진응탑비(보물 제24호), 오층석탑(보물 제25호)이 있고, 미륵전 옆 언덕 위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보물 제26호)이 있다.

대적광전(구 보물 제476호) 앞에는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당간지주(보물 제28호), 심원암 삼층석탑(보물 제29호), 대장전(보물 제827호, 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호)과 석등(보물 제 828호) 등 국가지정문화재만 11점에 달하고, 금산사 전역이 사적 제496호로 지정되었다.

2. 1. 창건과 중창

599년(백제 법왕 원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23] '금산사사적(金山寺事蹟)'의 기록에 따르면 '599년 백제 법왕이 즉위하여 살생을 금지하는 법을 반포하고, 이듬해에 금산사에서 38명의 승려를 득도시켰다'[22]고 전해진다. 금산사를 누가 창건했는지 기록이 정확히 남아 있지 않아 금산사를 부흥시킨 진표율사를 실질적인 창건자로 여기기도 하지만, 경덕왕 21년인 8세기 초 진표율사가 순제법사에게 출가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그 훨씬 이전부터 절이 창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762년(경덕왕 21년)부터 766년(혜공왕 2년) 사이에 진표율사가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일으켜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후백제의 창시자인 견훤(재위: 900년~935년)이 금산사를 보호했고, 그의 아들 견신검이 왕위를 찬탈했을 때 견훤이 금산사에 갇혔다.[7]

고려 문종 33년(1079년)에는 혜덕왕사가 중창해서 86개 동 43개의 암자를 설치했다고 한다. 혜덕왕사에 의해 최성기를 맞이했고, 석련대, 오층 석탑, 노주 등, 현존하는 주요 석물은 이때 만들어졌다. 충숙왕 15년(1328년)에는 원명해원 스님이 또 한 차례 중수했다.

조선 태종에 의한 1407년 (태종 7년)의 불교 탄압 당시, 존속을 허락한 88개 사찰 안에 금산사의 이름은 없었고,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에 의한 1424년 (세종 6년)의 불교 탄압 당시에도, 존속을 허락한 36개 사찰 안에 금산사의 이름은 없었고, 계속 폐사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불교#이씨 조선 시대의 불교 탄압)

임진왜란 때는 뇌묵당 처영 스님이 금산사를 거점으로 의승병을 모집하고 왜군에 대항했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금산사는 승병의 거점으로서 활용되었다. 1596년 (선조 29년) 정유재란 때, 금강문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화재로 소실되었다. 1635년 (인조 13년)에 수문대사가 재건했다.

2. 2. 후삼국시대와 고려시대

935년, 후백제 말기 왕위 계승 문제로, 견훤은 장남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3개월 동안 유폐되었다.[7]

고려 1079년 (문종 33년), 혜덕왕사가 금산사 주지로 임명되면서 다양한 부속 사찰을 세워 사찰을 완전히 개축했고, 이는 금산사의 문화적 번영 시대를 열었다.[6][7] 이때 석련대, 오층 석탑, 노주 등 현존하는 주요 석물이 만들어졌다.

2. 3. 조선시대와 임진왜란

1592년(선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산사는 승병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1596년(선조) 정유재란 때, 금강문을 제외한 나머지는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1635년 (인조) 수문대사가 재건했다.[7]

2. 4. 근현대

599년 (법왕 원년) 백제의 사찰로 창건되었다.[23] 백제 멸망 후, 통일 신라 경덕왕 시대 (722년 - 766년)에 진표에 의해 중수되었고, 법상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다.

935년, 후백제 말기 왕위 계승 문제로 견훤은 장남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3개월 동안 유폐되었다.

고려 시대 1079년 (문종 33년), 혜덕왕사에 의해 최성기를 맞이했다. 석련대, 오층석탑, 노주 등 현존하는 주요 석물은 이때 만들어졌다.

조선 태종의 불교 탄압(1407년, 태종 7년)과 세종의 불교 탄압(1424년, 세종 6년) 당시 금산사는 존속을 허락한 사찰 목록에 포함되지 않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불교#이씨 조선 시대의 불교 탄압)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금산사는 승병의 거점으로서 활용되었다. 1596년 (선조 29년) 정유재란 때 금강문만 남기고 나머지는 화재로 소실되었다.[7] 1635년 (인조 13년) 수문대사가 재건했다.[8]

1961년 월주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교, 극락교, 향적당, 적묵당, 보현당, 설법전, 요사채, 나한전, 조사전, 보제루 등을 신축하고 미륵전과 대적광전, 대장전, 상서전, 금강계단 등은 해체 복원해서 호남의 명찰로 만들었다.[24]

3. 주요 문화재



금산사에는 국가지정문화재 11점과 사적 1곳이 있다. 주요 문화재는 다음과 같다.

종류이름이미지
보물 제22호노주
노주
보물 제23호석련대
석련대, 연꽃 모양의 돌 연대
보물 제24호혜덕왕사의 진응탑비
보물 제25호오층석탑
오층석탑
보물 제26호금강계단
방등계단(승계단)
보물 제27호육각 다층석탑
육각 다층 석탑
보물 제28호당간지주
당간지주
보물 제29호심원암 삼층석탑
보물 제827호대장전
대장전
보물 제828호석등
금산사 석등 (석등, 돌 등불)
사적 제496호금산사 전역


3. 1. 국보

금산사의 성보문화재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김제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이다. 미륵전은 건물 규모와 안에 모셔진 불상의 크기가 모두 웅장하다. 미륵보살상은 옥내 입불(실내에 서 있는 불상)로는 세계 최대라고 하며, 삼존불 중 가운데 미륵불상이 11.82m, 좌우 불상은 8.8m이다. 경주 황룡사지나 지리산 화엄사에 있었다는 장육전이 실제로 남아 있는 예가 금산사 미륵전이다.

3. 1. 1. 김제 금산사 미륵전 (국보 제62호)

미륵불(미래의 부처)을 모시고 있는 미륵전


김제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은 미륵불(미래의 부처)을 모시는 법당으로, 한국 불교 전각 중 독특한 형태를 지닌 3층 목조 건물이다. 1635년(인조 13년)에 다시 지어졌다.[5][9]

안에는 거대한 미륵불상이 있는데, 옥내 입불(실내에 서 있는 불상)로는 세계 최대라고 하며, 삼존불 중 가운데 미륵불상이 11.82m, 좌우 불상은 8.8m이다. 경주 황룡사지나 지리산 화엄사에 있었다는 장육전(丈六殿)이 실제로 남아 있는 예가 금산사 미륵전이다.

건물 1층은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은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은 미륵전(彌勒殿)이라 불린다. 1층과 2층은 앞쪽에 5칸, 측면에 4칸, 3층은 앞쪽에 3칸, 측면에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과 2층 지붕은 건물 앞뒤로 6개, 각 측면에 5개의 기둥으로 지지되며, 3층 지붕은 앞뒤로 4개, 측면에 3개의 기둥으로 지지된다. 처마는 공포(栱包)로 받쳐지고, 전각 내부의 주요 목재 지지 기둥은 여러 조각으로 만들어졌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민흘림'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미륵전은 처마 빔이 처마를 지지하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배치되는 다포(多包) 양식으로 건축되었다.[5][9] 겉으로 보기에는 3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트여 있는 한국 유일의 3층 법당이다.

미륵전 수미단(須彌壇) 아래에는 커다란 무쇠솥이 있다고 전해지나, 불단 한쪽에 굳게 잠긴 자물쇠 때문에 아무나 볼 수는 없다.

3. 2. 보물

노주(보물 제22호)는 대적광전대장전 사이에 있는 고려 초기 석물이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윗부분에 불상 받침대로 추정되는 조각이 있다. 3단 받침대 위에 봉오리 모양 장식이 올려져 있다. 아래쪽 받침대에는 기둥, 타원형 무늬와 16개 연꽃잎이, 위쪽 받침대에는 16개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크기는 가로 1.2m, 높이 2.3m이다.[10]

석련대(보물 제23호)는 통일 신라 또는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연꽃 모양 돌 받침대이다. 불상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두 개의 사각형 구멍이 있다. 꽃무늬와 육각형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통일 신라 시대 양식을 따른다.[11]

혜덕왕사 진응탑비(보물 제24호)는 고려 중기 승려 혜덕왕사를 기리는 비석이다. 거북 모양 받침돌과 심하게 훼손된 비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혜덕은 정종 4년(1038년)에 태어나 숙종 때 주지와 국가 불교 단체 수장을 지냈다. 숙종은 그가 죽은 뒤 "국사"로 추증하고, 탑 이름을 "진응"으로 고쳤다.

오층석탑(보물 제25호)은 금산사 북쪽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5층 석탑이다. 뒤편에 사리 계단이 있고, 지붕 때문에 6층처럼 보인다. 각 층 모서리에 부조가 새겨져 있고, 지붕돌 처마는 위로 굽어 있다. 상륜부 받침은 지붕돌 모양이다.[13]

금강계단(보물 제26호)은 신라 말 인도 불교 사원 양식을 따른 종 모양 석탑이다. 2층 사각형 석대 위에 세워져 있고, 각 면에 부처와 사천왕 상이 새겨져 있다. 돌 난간 흔적과 사천왕 얼굴 조각이 있다. 탑신 중앙부에는 연꽃과 사자 얼굴, 꼭대기에는 연꽃 아래 아홉 마리 용이 조각되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종형 탑으로,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14]

육각 다층석탑(보물 제27호)은 높이 2.18m의 점판암으로 만든 육각형 석탑이다. 고려 초기 건립, 봉천원 암자에서 옮겨왔다. 현재 상층 2개 층만 남아있으며, 기단 위에 연꽃 무늬, 옥개석은 경사지다 꺾이는 형태이다. 화강암제 상륜부가 추가되었다.[15]

당간지주(보물 제28호)는 불교 깃발을 지지하는 두 개의 깃대 받침대(높이 3.5m)이다. 깃대 고정용 구멍 세 개가 있으며, 통일 신라 시대 양식을 보인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원래 기단을 유지하고 있으며, 8세기 후반 신라 시대에 세워졌다.[16][17]

심원암 삼층석탑(보물 제29호)은 심원암 북쪽 2층 기단 위 삼층 석탑이다. 기둥 무늬, 3개 옥개석, 처마가 꺾이는 고려 시대 건축 양식을 보인다. 실제로는 고려 시대에 제작되었지만, 신라 시대 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18]

대장전(보물 제827호)은 원래 백제 시대 팔각형 목탑이었으나, 1635년 전각으로 재건, 1922년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다. 지붕 용마루 빔에 상륜 일부가 남아있다. 석가모니불과 가섭, 아난 상이 봉안되어 있고, 석가모니불은 수미단 위에 있다. 팔작지붕, 격자형 천장, 2층(측면 1층) 다포 양식을 보인다.[19]

석등(보물 제828호)은 대장전 앞 "깨달음의 등불"이다. 높이 3.9m의 화강암 석등으로, 고려 시대 작품이며 1922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사각형 하대석에는 쌍연꽃 무늬, 팔각형 받침대에는 세로선이 새겨져 있다. 윗부분은 만개한 연꽃 모양이고, 등화실 네 면에 창문이 있다.[20]

4. 갤러리

금산사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 -|]]
  • -|]]
  • -|]]
  • -|]]
  • -|]]
  • -|]]

5. 템플스테이

금산사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21]

6. 사건


  • 1986년 12월, 보물 제476호였던 금산사 대적광전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완전히 불에 타 소실되었다.[1] 1988년 복원에 착수하여 원형으로 복원되었다.[4]
  • 2006년 김제 금산사 미륵전 안에 있는 삼존불상 중 법화림 보살상이 장마로 인해 등판 부분의 흙이 떨어져 나가 크게 훼손되었다.[2]
  • KBS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지로 이용되었다.[3]

참조

[1] 웹사이트 법왕 法王 (Beopwang, King Beop of Baekje) https://web.archive.[...] Nate /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2009-09-12
[2] 웹사이트 법왕 法王 (Beopwang, King Beop of Baekje) https://web.archive.[...] Nate /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2009-09-12
[3] 웹사이트 금산사 金山寺 (Geumsansa) https://web.archive.[...] Nate /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2009-09-12
[4] 웹사이트 금산사 金山寺 (Geumsansa) https://web.archive.[...] Nate / Britannica 2009-09-12
[5] 웹사이트 National Treasures 62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of Korea 2009-09-06
[6] 웹사이트 History of the Geumsansa Temple https://web.archive.[...] Buddhpia 2009-09-12
[7] 웹사이트 Geumsansa Temple - 금산사 (金山寺) (founded 599, rebuilt 16th century onward) http://www.orientala[...] Asian Historical Architecture 2009-09-06
[8] 웹사이트 Geumsansa (금산사 / 金山寺) introduction https://web.archive.[...] Korea Temple 2009-09-06
[9] 웹사이트 Geumsansamireukjeon(Mireukjeon Hall of Geumsansa Temple)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of Korea 2009-09-06
[10] 웹사이트 Geumsansa Temple Noju(Noju of Geumsansa Temple) https://web.archive.[...] Korea Temple 2009-09-06
[11] 웹사이트 Treasures 23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of Korea 2009-09-06
[12] 웹사이트 Treasures 24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9-09-06
[13] 웹사이트 Treasures 25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9-09-06
[14] 웹사이트 Treasures 26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9-09-06
[15] 웹사이트 Treasures 27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9-09-06
[16] 웹사이트 Treasures 28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9-09-06
[17] 웹사이트 Geumsansa Dangganjiju http://www.encyber.c[...] Doosan Encyclopedia 2009-09-06
[18] 웹사이트 Treasures 29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9-09-06
[19] 웹사이트 Treasures 827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9-09-06
[20] 웹사이트 Treasures 828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09-09-06
[21] 웹사이트 Geumsansa Temple stay program https://web.archive.[...] 2016-01-17
[22] 서적 금산사사적(金山寺事蹟)
[23] 웹인용 한국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 금산사 소개페이지 https://web.archive.[...] 2015-11-16
[24] 서적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신문관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