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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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개국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연안 김씨 출신으로 영천에서 태어났으며, 퇴계 이황의 제자 박승임에게 수학했다. 1573년 생원이 되었고, 1591년 문과에 급제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의병을 일으켜 활약했으며, 전란 후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예조 정랑을 거쳐 옥천 군수를 역임했다. 이황 학파에 속했으며, 동인, 북인, 소북으로 당색이 변했다. 저서로는 《만취일고》, 《만취관동일록》 등이 있으며, 사후 영천의 삼봉서원에 제향되었다.

김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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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이황의 제자 박승임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73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59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아 의병장으로 활약했고, 1598년 전란 종결 후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예조 정랑, 옥천군수를 역임했다.

이황 학파로, 동인에서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될 때 북인이 되었다. 북인대북과 소북으로 분열될 때는 소북에 속했다.

2.1. 유년 시절 및 수학

경상도 영천에서 연안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몽득(金夢得)이며, 어머니는 이극온(李克溫)의 딸이다. 자는 공제(公濟),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인 소고 박승임(朴承任)의 문하생이 되어 수학하였다.

2.2. 관직 생활

1573년(선조 6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591년(선조 24년) 식년문과에 병과 7등으로 급제하였고, 장사랑으로 재직하였다. 1595년 예빈시 주부(禮賓侍主簿)에 특별 임명되었으며, 1596년 예조좌랑에 임명되었다. 충청도 도사로 임명되어 선원전(濬源殿) 영정(影幀) 봉안(奉安) 업무를 맡기도 하였다. 관직은 예조정랑(正郞)을 거쳐 중훈대부 행 옥천군수에 이르렀다.

2.3. 임진왜란과 의병 활동

1592년 7월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피신하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 의병을 규합하여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1598년(선조 31년) 전란 종결 후,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한 공로로 선무원종공신 3등으로 녹훈되었다.

2.4. 학맥과 당색

학맥으로는 이황 학파였으며, 당색으로는 동인이었으나 동인이 정철을 처벌하는 의견을 놓고 남인북인으로 분당될 때 북인이 되었다. 선조 말년에 북인대북과 소북으로 분당할 때는 유몽인, 남이공 등과 함께 소북파가 되었다.

2.5. 성품

그는 불의를 보고 타협하거나 한 치도 굽힘이 없었다. 평소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의리로써 털끝만큼도 굽히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불우한 세상을 살다가 죽었다. 정의감이 강하고 악행에 타협하지 않았으며, 의리를 굽히지 않아 불우한 생애를 보냈다.

3. 사후

1605년(선조 38) 4월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뒤에 증 중직대부 사헌부집의 겸 춘추관편수관에 증직되었고, 다시 승정원승지로 추증되었다. 1643년(인조 21) 영천의 삼봉서원(三峯書院)에 제향되었다. 1650년(효종 1년) 증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에 추증(追贈)되었다.

4. 저서

* 《만취일고》
* 만취관동일록(晩翠關東日錄)
* 만취예조일기(晩翠禮曹日記)

5.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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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
증조부김세형(金世衡)
조부김복흥(金復興)
김몽득(金夢得)
이극온(李克溫)의 딸
?
장남김여엽(金汝燁)
차남김여환(金汝煥)
삼남김여욱(金汝煜)
사남김여혁(金汝爀)

6. 관련 문화재

* 영주 만취당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1호이다.
* 영주 만취당 김개국 종중 소장 전적 및 책판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6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