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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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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광석은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 사망한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1980년대 후반 동물원 밴드로 활동하다 1989년 솔로 데뷔 후 4장의 정규 앨범과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는 소극장 공연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며 음악적 역량을 인정받았으나, 1996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사후에도 그의 음악은 많은 사랑을 받아 추모 앨범이 발매되고, 그를 기리는 다양한 작품과 기념 공간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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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94년 김광석 홍보 이미지
1994년 김광석 홍보 이미지
이름김광석
로마자 표기Gim Gwang-seok
한자 표기金光石
출생일1964년 1월 22일
출생지대구광역시
사망일1996년 1월 6일
사망지서울특별시
직업싱어송라이터
활동 시기1983년–1996년
악기기타
장르포크 록
관련 활동동물원
노래를 찾는 사람들
학력
학교명지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기타 정보
별명작은돌, 또해, 노래한 철학자, 통기타의 제왕, 노래하는 시인(음유시인), 가객(歌客), 숏다리, 휜다리
종교무종교
가족누나 2명 (김광나, 김광득)
형 2명 (김광동, 김광복)
슬하 1녀 (딸 김서연)
배우자서해순

2. 생애

1964년 1월 22일, 대구시 대봉동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27][7]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창신동으로 이주하여 서울창신초등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며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를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26] 대광고등학교 시절 합창부로 활동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26]

1982년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7]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28] 1985년 1월 입대하였고,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29] 큰형(김광동)이 1980년 10월에 군복무 중 사망했기 때문이고,[29] 관련해서 김광석은 인생이야기 음반에서 이등병의 편지 부르기 전에 이야기한다. 제대 후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31] 1986년 8월, 고려대학교 앞 라이브 카페 "고리(輪)"를 운영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리"라는 이름을 지었다.

1989년 10월 솔로로 데뷔하여 첫 음반을 내놓았으며,[30] 이후 1991년에 2집,[32] 1992년에 3집을 발표하였고,[33] 1994년에 마지막 정규 음반인 4집을 발표하였다. 정규 음반 외에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부르기 1집과 2집을 1993년1995년에 각각 발표하였다. 1991년부터 꾸준히 학전 등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하였으며, 1995년 6월 29일 KMTV 슈퍼콘서트를 찍었다.

슈퍼콘서트 포스터


그리고 1995년 8월 11일에는 소극장에서 1000회 공연의 기록을 세웠다.[43]

1990년 6월, 일반 여성과 1년 교제 후 결혼했다.[31] 1991년 5월, 딸이 태어났다(2007년 사망). 가을, 불교방송에서 "밤의 창가에서" DJ를 시작했다. 1992년 6월, 전달 라디오 방송에서 게스트였던 소설가 마광수의 성적인 발언이 방송 규정 위반으로 이어져 한 달간 해당 프로그램 출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33] 1994년 9월, EBS FM에서 "음악의 세계" DJ를 시작했다.

1996년 1월 5일 박상원이 진행하던 HBS '겨울나기'에 출연을 하였는데 여기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을 부른 것이 마지막 공연과 모습이 되었다.

1996년 1월 6일 새벽 4시 30분 마포구 원음빌딩 자택 403호에서 전깃줄과 밧줄로 목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88]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89]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순,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영)는 2004년 별세했다.

2. 1. 유년 시절과 음악 활동

1964년 1월 22일, 대구시 대봉동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27][7]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창신동으로 이주하여 서울창신초등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며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를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26] 대광고등학교 시절 합창부로 활동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26]

1982년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7]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28] 1985년 1월 입대하였고,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29] 큰형(김광동)이 1980년 10월에 군복무 중 사망했기 때문이고,[29] 관련해서 김광석은 인생이야기 음반에서 이등병의 편지 부르기 전에 이야기한다. 제대 후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31] 1986년 8월, 고려대학교 앞 라이브 카페 "고리(輪)"를 운영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리"라는 이름을 지었다.

1989년 10월 솔로로 데뷔하여 첫 음반을 내놓았으며,[30] 이후 1991년에 2집,[32] 1992년에 3집을 발표하였고,[33] 1994년에 마지막 정규 음반인 4집을 발표하였다. 정규 음반 외에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부르기 1집과 2집을 1993년1995년에 각각 발표하였다. 1991년부터 꾸준히 학전 등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하였으며, 1995년 6월 29일 KMTV 슈퍼콘서트를 찍었다.

그리고 1995년 8월 11일에는 소극장에서 1000회 공연의 기록을 세웠다.[43]

1990년 6월, 일반 여성과 1년 교제 후 결혼했다.[31] 1991년 5월, 딸이 태어났다(2007년 사망). 가을, 불교방송에서 "밤의 창가에서" DJ를 시작했다. 1992년 6월, 전달 라디오 방송에서 게스트였던 소설가 마광수의 성적인 발언이 방송 규정 위반으로 이어져 한 달간 해당 프로그램 출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33] 1994년 9월, EBS FM에서 "음악의 세계" DJ를 시작했다.

1996년 1월 5일 박상원이 진행하던 HBS '겨울나기'에 출연을 하였는데 여기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을 부른 것이 마지막 공연과 모습이 되었다.

1996년 1월 6일 새벽 4시 30분 마포구 원음빌딩 자택 403호에서 전깃줄과 밧줄로 목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88]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89]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순,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영)는 2004년 별세했다.

2. 2. 군 복무와 동물원 결성

19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며 활동을 시작했다.[28] 1985년 1월 입대하였고,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29] 이는 큰형(김광동)이 1980년 10월에 군복무 중 사망했기 때문[29]이며, 김광석은 인생이야기 음반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기 전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제대 후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31]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31], 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10][11] 1988년 김광석을 비롯한 학생 음악가들이 결성한 동물원은 한국의 유명 록 밴드 산울림의 주요 보컬인 김창완의 공개적인 지지 덕분에 인기를 얻게 되었다.[10][11] 김광석이 탈퇴한 후에도 동물원은 다양한 멤버 구성으로 계속해서 앨범을 발표했다.[10][11] 2014년에는 김광석과 그가 동물원에서 보낸 시절을 다룬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 – The Zoo''가 한국에서 초연되었다.[12]

2. 3. 솔로 활동과 소극장 공연

1989년 10월, 김광석은 첫 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솔로로 데뷔하였다.[30] 이후 1991년에 2집, 1992년에 3집을 발표하였고, 1994년에는 마지막 정규 음반인 4집을 발표하였다. 1991년 2월에 발표한 2집의 "사랑했지만"은 큰 인기를 얻으며 김광석을 스타 반열에 올렸다.[32] 정규 음반 외에도 1993년1995년에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부르기 1집과 2집을 각각 발표하였다. 1993년 7월에는 데뷔 10주년을 기념하여 한 달 동안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31] 1994년에 발표한 네 번째 정규 앨범은 그의 음악적 재능을 완성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김광석은 TV 음악 프로그램 출연보다는 학전 등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을 하며 명성을 얻었다. 1991년부터 꾸준히 소극장 공연을 이어갔으며, 1995년 8월 11일에는 소극장에서 1000회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43] 그는 관객들과 더 가까이 소통하기 위해 작은 공연장을 선호했으며, 서울 대학로 일대의 소극장 공연 트렌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1995년에는 전국 투어를 진행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맨해튼의 머킨 콘서트홀 등 해외에서도 공연을 열었다.

2. 4. 사망

1996년 1월 6일 새벽, 김광석은 자신의 집에서 목에 끈이 감긴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 내렸지만, 유족과 지인들은 여러 의혹을 제기하며 타살 가능성을 주장했다.[13]

부인 서해순은 김광석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주장했지만, 가족들은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김광석의 누나들은 평소 그가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고 말하며 오래 살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90] 어머니 역시 아들이 활발하고 마음이 약한 아이라며 자살을 믿지 못했다.[90]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은 사망 6개월 전부터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며, 자살 자체가 황당하다고 말했다.[90]

서해순은 김광석이 사망했을 당시 상황에 대해 세 가지 다른 진술을 했다.[90] 첫째, TV를 보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고 했다. 둘째, TV를 보다가 김광석이 추울까 봐 이불을 가져다주러 갔는데 죽어 있었다고 했다. 셋째, 잠을 자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고 진술했다.[90]

주요 의문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김광석이 스스로 목을 맸는지 여부였다. 목을 매달기 위해 사용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도 아니었다는 주장이었다.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발견되었고, 전깃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 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91] 둘째, 평소 메모광으로 알려진 김광석의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셋째, 서해순이 주장한 우울증 역시 지인들은 김광석이 1,000회 공연을 할 때 매일 봤지만 병원에 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의문을 제기했다.[91]

서해순의 신뢰도는 떨어지는데, 사망 후 얼마 안 되어 딸과 미국으로 간 점, 김광석 가족과 재산 다툼을 한 점, 김광석 아버지와 합의한 내용을 어긴 점 등이 그 이유이다.[92] 서해순은 김광석에게 여자 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서해순에게 남자 관계가 있었고 그 남자는 김광석의 친구였다고 한다. 김광석은 죽기 전날 서해순에게 이혼을 요구했다.[93]

2017년, 김광석의 죽음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재조사 움직임이 있었다. 딸 김서연 양이 2007년에 사망한 사실이 은폐된 것이 밝혀지면서, 김광석의 유족과 일부 정치인은 서해순을 딸에 대한 살인과 소송사기로 고발했으나 무혐의 처분되었다.[14][15]

1996년 1월 5일, 김광석은 절친한 친구 박하키와 SBS TV 프로그램 「박상원의 겨울나기」 리허설과 녹화에 참여했다. 짧은 머리에 수염을 기른 반항적인 모습으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불렀다.[34] 6일 0시 30분경 귀가하여 아내와 음주를 했고, 4시 30분경 계단 난간에 전기 코드를 매달아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36] 세브란스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사망이 확인되었고, 경찰은 조울증에 의한 자살로 판단했다. 시신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되었다.[36][42]

당시 인기 가수 김성재와 서지원의 연이은 죽음은 국내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2. 5. 사후

딸 김서연은 1991년에 태어나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매년 록 음악과 힙합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추모 공연을 열고 있으며, 그의 앨범은 꾸준히 판매되어 2007년 1월 기준 5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2008년 1월 6일, 그의 사망 12주기를 맞아 수천 회의 공연을 개최했던 콘서트홀에 그의 기념 부조가 공개되었으며, 많은 팬들이 그를 추모했다. 2010년 11월에는 20명이 넘는 예술가, 디자이너, 조각가들이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구시에 김광석을 기리는 벽화를 제작했다. 이윤옥의 「김광석 평전, 전하지 못한 말」이나 박준흠 외의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등 다수의 기사와 서적에서 그의 유산과 그의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열기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한대수가 시작하고 1970년대 초 박정희 독재 정권 하에서 김민기, 정태춘, 그리고 조동진의 노래들로 번성했던 한국 민중가요의 직계 후손이자 계승자이다. 그러나 김광석의 음악은 초기 경력에서 사회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민주화 투쟁에서 간과되었던 개인의 슬픔과 좌절에 공감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젊은 세대는 집단주의와 공동체에서 개인주의와 동시대인들의 경험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김광석은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삶을 그려냈지만, 차분하고 절제된 태도를 유지했다. 음악평론가 이주엽은 그의 노래가 낙관과 비관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개인을 묘사하지만, 현실과 마주하는 고통을 포기하지 않는 자의식을 승화시켰다고 주장한다.

2021년 1월, 인공지능(AI)을 이용하여 그의 사망 25년 만에 그의 목소리가 SBS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을 통해 공개되었다. 12월에 게시된 홍보 영상은 15만 회 이상 조회되었다.

3.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의혹과 논란

서해순은 김광석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주장했지만, 가족 및 지인들은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90] 김광석의 가족들은 평소 김광석이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며 오래 살고 싶어 했다고 전하며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90]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 역시 김광석의 자살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의문점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90]

김광석의 죽음 당시 부인 서해순은 세 가지 다른 진술을 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TV를 보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

2. TV를 보다가 김광석이 추울까 봐 이불을 가져다주러 갔는데 죽어 있었다.

3. 잠을 자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

주요 의문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김광석이 스스로 목을 맸는지 여부, 둘째, 유서의 부재, 셋째, 실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지 여부였다.[91] 첫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목을 매달 때 사용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91]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해서 발견됐다. 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있을거다. 근데 전깃줄이 늘어나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91] 두 번째 의문은 평소 메모광으로 알려진 김광석이 아무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91] 김광석의 첫째 자형은 "(김광석은) 메모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91] 세 번째 의문은 부인 서해순이 주장한 우울증에 대해, 김광석의 음악 동호회 지인이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반박했다는 점이다.[91]

부인 서해순의 신뢰도는 낮은데, 김광석 사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딸과 미국으로 간 점, 김광석의 가족과 재산 다툼을 벌인 점, 김광석의 아버지와 합의한 내용을 어긴 점 등이 그 이유이다.[92]

2017년 김광석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재조사 움직임이 있었다. 또한 김광석의 딸 김서연이 2007년에 사망했고, 이 사실이 은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광석의 딸인 김서연이 어머니에게 피살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13][14][15] 다만 김광석 본인의 의문사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김광석의 유족과 일부 정치인은 김광석의 처 서해순을 딸에 대한 살인과 소송사기로 고발하여, 수사가 진행 되었으나 무혐의 처분되었다.[93]

서해순은 김광석에게 여자 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서해순에게 남자 관계가 있었으며 그 남자는 김광석의 친구였다고 한다. 김광석은 죽기 전날 서해순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사망했다.[93]

3. 1. 주요 의문점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은 김광석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주장했지만, 가족 및 지인들은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90] 김광석의 가족들은 평소 김광석이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며 오래 살고 싶어 했다고 전하며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90]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 역시 김광석의 자살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의문점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90]

김광석의 죽음 당시 부인 서해순은 세 가지 다른 진술을 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TV를 보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

2. TV를 보다가 김광석이 추울까 봐 이불을 가져다주러 갔는데 죽어 있었다.

3. 잠을 자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

주요 의문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김광석이 스스로 목을 맸는지 여부, 둘째, 유서의 부재, 셋째, 실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지 여부였다.[91] 첫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목을 매달 때 사용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91]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해서 발견됐다. 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있을거다. 근데 전깃줄이 늘어나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91] 두 번째 의문은 평소 메모광으로 알려진 김광석이 아무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91] 김광석의 첫째 자형은 "(김광석은) 메모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91] 세 번째 의문은 부인 서해순이 주장한 우울증에 대해, 김광석의 음악 동호회 지인이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반박했다는 점이다.[91]

부인 서해순의 신뢰도는 낮은데, 김광석 사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딸과 미국으로 간 점, 김광석의 가족과 재산 다툼을 벌인 점, 김광석의 아버지와 합의한 내용을 어긴 점 등이 그 이유이다.[92]

2017년 김광석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재조사 움직임이 있었다. 또한 김광석의 딸 김서연이 2007년에 사망했고, 이 사실이 은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광석의 딸인 김서연이 어머니에게 피살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13][14][15] 다만 김광석 본인의 의문사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김광석의 유족과 일부 정치인은 김광석의 처 서해순을 딸에 대한 살인과 소송사기로 고발하여, 수사가 진행 되었으나 무혐의 처분되었다.[93]

서해순은 김광석에게 여자 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서해순에게 남자 관계가 있었으며 그 남자는 김광석의 친구였다고 한다. 김광석은 죽기 전날 서해순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사망했다.[93]

3. 2. 재조사 요구와 법적 대응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은 김광석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주장했지만, 가족과 지인들은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90] 가족들은 김광석이 평소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고 말하며 오래 살고 싶어 했다는 점을 들어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90] 김광석의 어머니 역시 아들이 활발하고 마음이 약하며 남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자살을 믿지 않았다.[90]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은 김광석이 사망하기 6개월 전부터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며, 자살 자체가 황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타살이라고 생각하며, 의문점들이 밝혀져 김광석의 사망 원인이 규명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90]

김광석 사망 당시 부인 서해순은 세 가지 다른 진술을 했다.[91] 첫 번째는 TV를 보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TV를 보다가 김광석이 추울까 봐 이불을 가져다주러 갔는데 죽어 있었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잠을 자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91]

주요 의문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김광석이 스스로 목을 맸는지, 둘째,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셋째, 정말로 우울증이 있었는지 여부였다.[91] 첫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목을 매달 때 사용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91]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발견되었고, 전깃줄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의문을 제기했다.[91] 두 번째 의문은 평소 메모광으로 알려진 김광석이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91] 김광석의 첫째 자형은 김광석이 메모를 필수적인 습관으로 여겼다며 유서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91] 세 번째 의문은 부인 서해순이 주장한 우울증에 대해 지인이 "적어도 1년 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지만 병원에 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라며 반박한 것이다.[91]

또한, 부인 서해순의 신뢰도는 떨어지는데, 김광석 사후 얼마 안 되어 딸과 미국으로 간 점, 김광석 가족과 재산 다툼을 한 점, 김광석의 아버지와 합의한 내용을 어긴 점 등이 그 이유로 제시되었다.[92]

2017년 김광석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재조사 움직임이 있었다.[93] 딸 김서연이 2007년에 사망한 사실이 은폐된 것이 밝혀지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커졌다. 김광석의 유족과 일부 정치인은 서해순을 딸에 대한 살인과 소송사기로 고발하여 수사가 진행되었으나 무혐의 처분되었다.[93]

경찰은 김광석의 죽음을 자살로 판정했지만, 유족들은 타살 의혹을 제기했으나 입증되지 않았다.[13] 김광석의 사망 이후 그의 딸은 2007년에 사망했으며, 어머니(김광석의 아내)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14][15] 한편 서해순은 김광석에게 여자 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서해순에게 남자 관계가 있었고 그 남자는 김광석의 친구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김광석은 죽기 전날 서해순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고 한다.[93]

3. 3. 서해순의 입장과 반박

서해순은 김광석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주장했지만, 가족과 지인들은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90] 김광석의 누나들은 "광석이는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고 항상 말했다.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라며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어머니 역시 "활발하고 마음이 약한 아이다.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라며 아들의 자살을 믿지 않았다.[90]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은 "돌아가시기 한 6개월 전쯤부터는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며 "자살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라고 말했다.[90]

서해순은 김광석이 사망했을 당시 상황에 대해 세 가지 다른 진술을 했다.[90] 첫 번째는 TV를 보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TV를 보다가 김광석이 추울까 봐 이불을 가져다주러 갔는데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잠을 자다가 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목에 줄을 매고 죽어 있었다고 진술했다.[90]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주요 의문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김광석이 스스로 목을 맸는지, 둘째,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셋째, 우울증이 있었는지 여부였다.[91] 첫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목을 매달 전깃줄을 묶기 위해 사용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도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91]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해서 발견됐다. 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있을거다. 근데 전깃줄이 늘어나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91] 두 번째 의문은 평소 메모광으로 유명했던 김광석이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광석의 첫째 자형은 "(김광석은) 메모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91] 세 번째 의문은 서해순이 주장한 우울증 역시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음악 동호회 지인은 "분명 말씀 드릴 수 있다.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적어도 1년 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라이브 1,000회 공연할 때 매일 봤었고 그동안 병원 가는 걸 본 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91]

서해순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첫째, 김광석 사망 후 얼마 안 되어 딸과 미국으로 간 점, 둘째, 김광석 가족과 재산 다툼을 한 점, 셋째, 김광석의 아버지와 합의한 내용을 어긴 점 등이다.[92]

2017년 김광석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재조사 움직임이 있었다. 김광석의 딸 김서연이 2007년에 사망한 사실이 은폐되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광석의 유족과 일부 정치인은 서해순을 딸에 대한 살인과 소송사기로 고발했으나 무혐의 처분되었다.[93] 서해순은 김광석에게 여자 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서해순에게 남자 관계가 있었고 그 남자는 김광석의 친구였다고 한다. 김광석은 죽기 전날 서해순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사망했다.[93]

4. 음악적 특징과 평가

김광석은 한국 민중가요의 계승자이자, 동시에 개인의 슬픔과 좌절을 노래한 가수로 평가받는다.[17][18][19] 그는 한대수에서 시작되어 김민기, 정태춘, 조동진으로 이어지는 한국 민중가요의 흐름을 계승하면서도,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주목했다.[17]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젊은 세대의 관심사가 집단에서 개인으로 옮겨갈 때, 김광석은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며 공감을 얻었다.[17] 음악평론가 이주엽은 그의 노래가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현실에 맞서는 자의식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17]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고 있으며, 그의 앨범은 2007년 1월 기준 5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16] 매년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그를 추모하는 공연을 열고 있으며,[16] 2008년에는 그의 사망 12주기를 맞아 콘서트홀에 기념 부조가 공개되었다.[16] 2010년에는 대구시에 그를 기리는 벽화가 제작되었다.[16] 다수의 기사와 서적에서 그의 음악적 유산과 지속적인 인기를 분석하고 있다.[17] 발라드와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서도, 사실상 마지막 포크 계승자로 여겨졌으며,[41] 민중가요의 사회적 의식과 대중가요의 감성을 모두 담아내어 젊은이들에게 삶을 성찰하는 여유와 용기를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42][41] 2010년대에는 베이비붐 세대부터 에코 세대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41]

2021년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그의 목소리가 복원되어 SBS 프로그램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에서 공개되기도 했다.[20]

5.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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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은 생전에 4장의 정규 음반을 발매했다.

제목앨범 정보
김광석 (1집)
김광석 2집
나의 노래
김광석 4집



김광석 네번째》는 그룹 시절의 이미지를 벗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평가를 높인 음반이다.[35]

김광석은 〈다시 부르기 1〉(1993년), 〈다시 부르기 2〉(1995년)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 음반들은 이전에 다른 가수가 불렀던 노래들을 김광석이 다시 부른 리메이크 앨범이다.

〈다시 부르기 1〉은 1993년에 발매되었으며, 〈이등병의 편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사랑했지만〉, 〈그날들〉, 〈너에게〉, 〈슬픈노래〉, 〈거리에서〉, 〈말하지 못한 내사랑〉, 〈그루터기〉, 〈기다려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대의 웃음소리〉, 〈광야에서〉 등이 수록되어 있다.

〈다시 부르기 2〉는 1995년 3월 1일에 발매되었으며, 〈바람과 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잊혀지는 것〉, 〈불행아〉, 〈내 사람이여〉,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변해가네〉, 〈새장 속의 친구〉, 〈나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앨범 정보
김광석 다시 부르기 I
김광석 다시 부르기 II



김광석은 여러 장의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1996년 8월 13일, CJ E&M 뮤직 레이블로 《김광석 인생이야기》(Kim Kwang-seok Life Story)와 《김광석 노래이야기》(Kim Kwang-seok Singing Story)가 발매되었다. 《김광석 인생이야기》에는 〈서른 즈음에〉,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나의 노래〉 등이 수록되었다.

《김광석 노래이야기》에는 〈먼지가 되어〉, 〈나른한 오후〉, 〈꽃〉, 〈그날들〉, 〈혼자 남은 밤〉, 〈그대 웃음 소리〉,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자유롭게〉, 〈일어나〉 등이 수록되었다.

2012년 8월 9일에는 아름다운 동행 레이블을 통해 라이브 앨범 《잊을 수 없는》이 발매되었다.

김광석은 생전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많은 앨범이 발매되었다. 1996년 8월 13일에는 라이브 앨범인 ''김광석 인생이야기''와 ''김광석 노래이야기''가 CJ E&M 뮤직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다. 2000년 11월 7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Anthology 1''이 발매되었고, 2001년 4월 21일에는 미완성곡이 포함된 컴필레이션 앨범 ''Classic''이 서울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2002년 11월 12일에는 박스 세트 ''Collection: My Way (1964–1996)''가, 2005년 11월 12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김광석 베스트''가 CJ E&M 뮤직을 통해 발매되었다. 2006년 8월 26일에는 ''김광석 3, 4 리마스터''와 ''김광석 추억 I, II 리마스터''가 리마스터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2007년 1월 20일, 컴필레이션 앨범 ''노래이야기 + 인생이야기''가 발매되었고, 2012년 7월 9일에는 9CD 박스 세트 ''내 노래 박스 세트''가 위드33엔터테인먼트와 CJ E&M 뮤직을 통해 발매되었다. 같은 해 8월 9일에는 라이브 앨범 ''잊을 수 없는''이 아름다운 동행 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2014년 11월 11일에는 ''김광석 4 리마스터''가, 2016년 11월 7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김광석 어게인''이 발매되었다.

이 외에도 ''1+2'', ''다시부르기 1, 2'', ''셋, 넷'', ''1집 the Confession'', ''2집 비밀'', ''김광석 Collection : My Way 1964-1996'', ''풍경소리 :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김광석 5th CLASSIC'', ''김광석 나의노래'' 등 다양한 앨범이 사후에 발매되었다.

김광석 사후 그의 음악을 기리는 여러 앨범이 발매되었다. 1996년 8월 13일에는 라이브 앨범 《김광석 인생이야기》(Kim Kwang-seok Life Story)와 《김광석 노래이야기》(Kim Kwang-seok Singing Story)가 CJ E&M 뮤직 레이블로 발매되었다. 2000년 11월 7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Anthology 1》이, 2001년 4월 21일에는 미완성곡이 포함된 컴필레이션 앨범 《Classic》이 서울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2002년 11월 12일에는 박스 세트 《Collection: My Way (1964–1996)》가 CJ E&M 뮤직에서 발매되었고, 2005년 11월 12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김광석 베스트》(Kim Kwang-seok Best)가 발매되었다. 2006년 8월 26일에는 《김광석 3, 4 리마스터》(Kim Kwang-seok 3, 4 Remastered)와 《김광석 추억 I, II 리마스터》(Kim Kwang-seok Recalling I, II Remastered)가 리마스터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2007년 1월 20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노래이야기 + 인생이야기》(Singing Story + Life Story)가, 2012년 7월 9일에는 9CD 박스 세트 《내 노래 박스 세트》(My Song Box Set)가 위드33엔터테인먼트와 CJ E&M 뮤직에서 발매되었다. 2012년 8월 9일에는 라이브 앨범 《잊을 수 없는》(Unforgettable)이 아름다운 동행 레이블로 발매되었다. 2014년 11월 11일에는 《김광석 4 리마스터》(Kim Kwang-seok 4 Remastered)가, 2016년 11월 7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김광석 어게인》(Kim Kwang-seok Again)이 위드33엔터테인먼트와 CJ E&M 뮤직에서 발매되었다.

'가객 - 부치지 않은 편지' 앨범에는 권진원, 송숙환, 안치환, 노래마을, 류금신, 김영남, 박학기, 김현성, 이정열, 윤도현 등이 참여하여 김광석의 노래를 불렀다. 특히, 박학기서른 즈음에를 불렀고, 김현성은 이등병의 편지를, 윤도현은 광야에서를 불렀다.

'김광석 Anthology - 다시 꽃씨되어' 앨범에는 이소라 외 17명, 박학기, 권진원, 나원주, 한동준, 여행스케치, 조트리오, 강산에, 동물원, 엄태환, 이정열, 서우영, 안치환, 김건모, 장필순, 윤종신, 더 클래식 등이 참여했다. 이 앨범에서 박학기권진원서른 즈음에를 함께 불렀고, 윤도현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

5. 1. 정규 앨범

김광석은 생전에 4장의 정규 음반을 발매했다.

제목앨범 정보
김광석 (1집)
김광석 2집
나의 노래
김광석 4집



김광석 네번째》는 그룹 시절의 이미지를 벗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평가를 높인 음반이다.[35]

5. 2. 리메이크 앨범

김광석은 〈다시 부르기 1〉(1993년), 〈다시 부르기 2〉(1995년)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 음반들은 이전에 다른 가수가 불렀던 노래들을 김광석이 다시 부른 리메이크 앨범이다.

〈다시 부르기 1〉은 1993년에 발매되었으며, 〈이등병의 편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사랑했지만〉, 〈그날들〉, 〈너에게〉, 〈슬픈노래〉, 〈거리에서〉, 〈말하지 못한 내사랑〉, 〈그루터기〉, 〈기다려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대의 웃음소리〉, 〈광야에서〉 등이 수록되어 있다.

〈다시 부르기 2〉는 1995년 3월 1일에 발매되었으며, 〈바람과 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잊혀지는 것〉, 〈불행아〉, 〈내 사람이여〉,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변해가네〉, 〈새장 속의 친구〉, 〈나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앨범 정보
김광석 다시 부르기 I
김광석 다시 부르기 II


5. 3. 라이브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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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은 여러 장의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1996년 8월 13일, CJ E&M 뮤직 레이블로 《김광석 인생이야기》(Kim Kwang-seok Life Story)와 《김광석 노래이야기》(Kim Kwang-seok Singing Story)가 발매되었다. 《김광석 인생이야기》에는 〈서른 즈음에〉,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나의 노래〉 등이 수록되었다.

《김광석 노래이야기》에는 〈먼지가 되어〉, 〈나른한 오후〉, 〈꽃〉, 〈그날들〉, 〈혼자 남은 밤〉, 〈그대 웃음 소리〉,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자유롭게〉, 〈일어나〉 등이 수록되었다.

2012년 8월 9일에는 아름다운 동행 레이블을 통해 라이브 앨범 《잊을 수 없는》이 발매되었다.

5. 4. 추모 앨범

김광석 사후 그의 음악을 기리는 여러 앨범이 발매되었다. 1996년 8월 13일에는 라이브 앨범 《김광석 인생이야기》(Kim Kwang-seok Life Story)와 《김광석 노래이야기》(Kim Kwang-seok Singing Story)가 CJ E&M 뮤직 레이블로 발매되었다. 2000년 11월 7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Anthology 1》이, 2001년 4월 21일에는 미완성곡이 포함된 컴필레이션 앨범 《Classic》이 서울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2002년 11월 12일에는 박스 세트 《Collection: My Way (1964–1996)》가 CJ E&M 뮤직에서 발매되었고, 2005년 11월 12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김광석 베스트》(Kim Kwang-seok Best)가 발매되었다. 2006년 8월 26일에는 《김광석 3, 4 리마스터》(Kim Kwang-seok 3, 4 Remastered)와 《김광석 추억 I, II 리마스터》(Kim Kwang-seok Recalling I, II Remastered)가 리마스터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2007년 1월 20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노래이야기 + 인생이야기》(Singing Story + Life Story)가, 2012년 7월 9일에는 9CD 박스 세트 《내 노래 박스 세트》(My Song Box Set)가 위드33엔터테인먼트와 CJ E&M 뮤직에서 발매되었다. 2012년 8월 9일에는 라이브 앨범 《잊을 수 없는》(Unforgettable)이 아름다운 동행 레이블로 발매되었다. 2014년 11월 11일에는 《김광석 4 리마스터》(Kim Kwang-seok 4 Remastered)가, 2016년 11월 7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김광석 어게인》(Kim Kwang-seok Again)이 위드33엔터테인먼트와 CJ E&M 뮤직에서 발매되었다.

'가객 - 부치지 않은 편지' 앨범에는 권진원, 송숙환, 안치환, 노래마을, 류금신, 김영남, 박학기, 김현성, 이정열, 윤도현 등이 참여하여 김광석의 노래를 불렀다. 특히, 박학기는 서른 즈음에를 불렀고, 김현성은 이등병의 편지를, 윤도현은 광야에서를 불렀다.

'김광석 Anthology - 다시 꽃씨되어' 앨범에는 이소라 외 17명, 박학기, 권진원, 나원주, 한동준, 여행스케치, 조트리오, 강산에, 동물원, 엄태환, 이정열, 서우영, 안치환, 김건모, 장필순, 윤종신, 더 클래식 등이 참여했다. 이 앨범에서 박학기와 권진원은 서른 즈음에를 함께 불렀고, 윤도현은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

5. 5. 사후 발매된 앨범

김광석은 생전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많은 앨범이 발매되었다. 1996년 8월 13일에는 라이브 앨범인 ''김광석 인생이야기''와 ''김광석 노래이야기''가 CJ E&M 뮤직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다. 2000년 11월 7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Anthology 1''이 발매되었고, 2001년 4월 21일에는 미완성곡이 포함된 컴필레이션 앨범 ''Classic''이 서울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2002년 11월 12일에는 박스 세트 ''Collection: My Way (1964–1996)''가, 2005년 11월 12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김광석 베스트''가 CJ E&M 뮤직을 통해 발매되었다. 2006년 8월 26일에는 ''김광석 3, 4 리마스터''와 ''김광석 추억 I, II 리마스터''가 리마스터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2007년 1월 20일, 컴필레이션 앨범 ''노래이야기 + 인생이야기''가 발매되었고, 2012년 7월 9일에는 9CD 박스 세트 ''내 노래 박스 세트''가 위드33엔터테인먼트와 CJ E&M 뮤직을 통해 발매되었다. 같은 해 8월 9일에는 라이브 앨범 ''잊을 수 없는''이 아름다운 동행 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2014년 11월 11일에는 ''김광석 4 리마스터''가, 2016년 11월 7일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김광석 어게인''이 발매되었다.

이 외에도 ''1+2'', ''다시부르기 1, 2'', ''셋, 넷'', ''1집 the Confession'', ''2집 비밀'', ''김광석 Collection : My Way 1964-1996'', ''풍경소리 :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김광석 5th CLASSIC'', ''김광석 나의노래'' 등 다양한 앨범이 사후에 발매되었다.

6. 방송

김광석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불교방송의 《밤의 창가에서》 DJ를 맡았다.[59] 1994년 9월부터 1995년까지는 EBS FM 「음악의 세계」 DJ로도 활동했다.[59]

6. 1. 진행

김광석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불교방송의 《밤의 창가에서》 DJ를 맡았다.[59] 1994년 9월부터 1995년까지는 EBS FM 「음악의 세계」 DJ로도 활동했다.[59]

7.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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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수여 연도, 훈장 명칭
국가연도훈장
대한민국2014대통령 표창[24]
대한민국2010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style="text-align:center" |
대한민국2016사단법인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선정 명예의 전당[60]


8. 김광석을 소재로 한 작품

매년 록 음악과 힙합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추모 공연을 열고 있으며, 그의 앨범은 꾸준히 판매되어 2007년 1월 기준 5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16] 2008년 1월 6일, 그의 사망 12주기를 맞아 수천 회의 공연을 개최했던 콘서트홀에 그의 기념 부조가 공개되었으며, 많은 팬들이 그를 추모했다. 2010년 11월에는 20명이 넘는 예술가, 디자이너, 조각가들이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구시에 김광석을 기리는 벽화를 제작했다.[17][18][19]

2021년 1월, 인공지능(AI)을 이용하여 그의 사망 25년 만에 그의 목소리가 KBS가 아닌 SBS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을 통해 공개되었다. 12월에 게시된 홍보 영상은 15만 회 이상 조회되었다.[20]


  • 음반

「Kim Kwang Seok」(2009년): 독일의 힙합 그룹 디 오슨스(Die Orsons)가 만든 추모곡. 김광석을 한국의 밥 딜런, 한국의 커트 코베인으로 칭송했다.

  • 서적

「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2013년) 김광석이 생전에 남긴 직필 원고 67편과 미발표곡 64곡을 수록한 에세이집.
「김광석과 철학하다」 (2016년) 김광식(철학자, 서울대학교 교수) 저.
「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 (2016년) 김용석(철학자, 영산대학교 교수) 저.

  • 전시

「김광석을 보다展: 만나다•듣다•그리다」 (2016년): 20주기 추모 기념 이벤트로, 300여 점의 유품과 그의 고려대학교 앞 라이브 카페 "고리(輪)"를 재현한 공간 등이 전시되었다.[61]

  •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2012년): 팬클럽 등이 후원한 제작비 4000만 원 규모의 어쿠스틱 뮤지컬이다. 김광석이 생전에 사용하던 기타를 친형으로부터 제공받아 원곡에 충실한 연출을 선보였다. 2013년 말, 더블 주연 배우 중 한 명인 최승열이 JTBC 「히든싱어2」에 출연하여 김광석을 연상시키는 가창력을 선보이며 화제가 되었다.[62]
그날들」(2013년): 제작비 40억 원 규모의 대형 뮤지컬. 「제7회 뮤지컬 어워즈」에서 올해의 창작 뮤지컬상, 남우 신인상(지창욱), 극본상(장유정)을 수상했다.
「디셈버: 끝나지 않는 노래」(2013년): 제작비 50억 원 규모의 김광석 탄생 50주년 기념 뮤지컬. JYJ김준수 주연. 김광석의 노래 18곡, 자작곡 4곡, 미발표곡 2곡을 사용했다.
「그 여름, 동물원」(2015년): 동물원 시절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초연 당시 김광석 역은 박호산, 최승열 더블 캐스팅이었다. 권리 문제를 피하기 위해 김광석 역만 실명을 사용하지 않고, 역할 이름을 「그 친구」로 했다.

  • 영화

「김광석 19960106 (2017년)」: 자살 당일부터 수년간 의문점을 취재해 온 전 MBC 이상호 기자의 고발 다큐멘터리 영화.

9. 김광석 거리

2010년 11월, 대구 중구 방천시장 동쪽의 좁은 골목길에 김광석을 주제로 한 벽화와 조형물이 약 350m에 걸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일명 김광석 거리)’이 조성되어 관광 명소가 되었다.[66][67] 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08년부터 추진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66] 초기에는 예술 작품의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았으나, 참여한 예술가들이 지역과 관련된 인물을 주제로 통일하는 데 합의했고, 유년 시절을 방천시장 인근에서 보낸 김광석이 선정되었다.[68]

김광석 거리는 대구 중구의 관광객 수를 크게 증가시켰다. 2008년 287명에 불과했던 관광객 수는 2016년 약 240만 명(이 중 김광석 거리 방문객은 약 100만 명)으로 급증했다.[66][6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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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뉴스 Documentary sheds light on beloved singer's mysterious death http://www.koreahera[...] 2017-08-02
[3] 뉴스 Reporter seeks probe into death of late folk rock singer's daughter http://www.koreahera[...] 2017-09-02
[4] 서적 Korea: The Impossible Country https://books.google[...] Tuttle Publishing
[5] 웹사이트 [취재파일] 故 김광석과 서연 양의 부검감정서가 남긴 진실의 실마리 http://news.sbs.co.k[...] 2017-10-12
[6] 웹사이트 Yonhap News Agency http://english.yonha[...]
[7] 웹사이트 Kim Kwang-seok Mural Road & Bangcheon Market http://eng.daegucvb.[...]
[8] 웹사이트 거리에서 다시 부르는 이름, 김광석 http://www.grandcult[...]
[9] 뉴스 [추억의 LP 여행] 김광석(上) http://weekly.hankoo[...] 2004-07-02
[10] 웹사이트 ko:동물원 https://web.archive.[...]
[11] 웹사이트 동물원 30th Anniversary Concert http://sisa-n.com/16[...] 2017-08-01
[12] 웹사이트 Protective fans put musical in spotlight : Controversy over ownership of singer's music creates confusion http://koreajoongang[...] 2017-11-07
[13] 뉴스 Unending song of Kim Kwang-seok http://www.hani.co.k[...] 2005-12-29
[14] 웹사이트 Police Reopens Investigation of Legendary Singer's Widow http://english.chosu[...]
[15] 웹사이트 Police probes mysterious death of folk singer's daughter http://www.koreahera[...] 2017-09-27
[16] 뉴스 Late Kim Kwang-seok's album sold over 5 million copies http://news.khan.co.[...] 2007-01-30
[17] 서적 The 100 masterpiece albums of Korean Popular Music Sun
[18] 웹사이트 Case reopens for folk singer's death https://www.koreatim[...] 2017-09-22
[19] 웹사이트 Case reopens for folk singer's death https://m.koreatimes[...] 2017-09-22
[20] 웹사이트 South Korea has used AI to bring a dead superstar's voice back to the stage, but ethical concerns abound https://www.cnn.com/[...] 2021-01-26
[21] 웹사이트 BTS, Red Velvet win at Korean Popular Culture and Arts Awards https://entertainmen[...] 2018-10-18
[22] 웹사이트 BTS gets award upon their return home http://koreajoongang[...] 2018-10-25
[23] 웹사이트 Korean Popular Culture and Arts Awards announces winners http://kpopherald.ko[...] 2016-10-25
[24] 웹사이트 대중문화예술상 2014년 http://www.kocca.kr/[...]
[25] 웹사이트 melon 김광석プロフィール http://www.melon.com[...]
[26] 웹사이트 김광석 출생 50년에 주목받는 김광석 길 http://pub.chosun.co[...] chosun.com 201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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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웹사이트 maniadb gallery http://www.mania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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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뉴스 우리 가요에 깃든 '서른' https://news.naver.c[...]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2007-09-27
[82] 뉴스 김광석 12주기 추모콘서트 개최 ‥ 노래비 제막식도 함께 진행돼 http://www.hankyung.[...] 한국경제신문 2008-01-06
[83] 뉴스 김광석 출생 50년에 주목받는 김광석 길 따라가보니...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4-06-05
[84] 뉴스 '김광석'으로 되살아 난 길 http://www.ytn.co.kr[...] YTN 2014-05-25
[85] 뉴스 [단독]가수 고(故) 김광석, 학창시절 보낸 창신동 집 팔려 http://www.focus.kr/[...] 포커스뉴스 2016-01-25
[88] 뉴스 가수 金(김)광석씨 자살 https://newslibrary.[...] 매일경제 1996-01-07
[89] 뉴스 사리 나온 가수 김광석 불교신행 화제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96-01-14
[90] 뉴스 故 김광석 타살의혹 재점화… 가족들 입 모아 “자살 아니다” https://news.naver.c[...] 한국일보 2012-06-19
[91] 뉴스 故김광석 타살의혹 제기 이유 3가지 들어보니.. http://www.newsen.co[...] 뉴스엔 2012-06-19
[92] 뉴스 고 김광석씨 부인 ‘저작인접권 침해’ 7,800여만원 배상 판결 https://news.naver.c[...] 한겨레 2006-10-11
[93] 웹사이트 http://www.gobal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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