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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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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란사는 1872년 평양에서 태어나, 대한제국 시기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이화학당에 입학하여 미국 유학 후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귀국 후 이화학당 교수로 재직하며 유관순을 지도했다.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하려 했으나, 베이징에서 병을 얻어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후 건국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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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사
기본 정보
김란사
김란사
본관안동 김씨 (신 안동)
인물 정보
출생1872년 8월 12일
사망1919년 3월 19일 (46세)
국적대한제국
직업교육가, 대한민국독립운동가
배우자박정서
자녀3남
활동
주요 활동기독교 계몽운동
교육사업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지원
훈장
훈격애족장 (2005년)

2. 생애

2. 1. 초기 생애와 이화학당 입학

김란사는 1872년 평양에서 부친 김병훈과 모친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무역업자였다.[10] 조카손자인 김용택씨가 국민일보를 찾아와서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김란사가 정확한 이름이라고 한다.[9] 1911년 부친의 무역업을 돕기위해 인천으로 이사했으며, 부인 조씨와 사별한 하상기(河相驥)와 혼인하였다.[10]

초기 이화학당은 기혼자가 입학할 수 없었지만, 룰루 프라이 교장에게 "내 인생은 이렇게 밤중처럼 캄캄합니다. 나에게 빛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습니까…어머니들이 배우고 알아야 자식을 가르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설득함으로써 자신이 학비를 낸다는 조건으로 입학하였다.[10] 1896년 24세의 나이로 이화학당 학생이 되었다.[2] 남편 성씨인 하씨와 세례명인 낸시를 따와서 하란사라고 불렸다.[10] 본명이 김씨이므로 김란사가 맞으며, 하란사라는 이름은 미국에 입국할 때에 입국심사관에게 남편의 성이 하씨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10] 이후 그녀는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교에서 유학하며 학사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한국 여성으로서 이름을 알렸다.[2]

2. 2. 미국 유학과 귀국

김란사는 187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1] 1906년미합중국에 있는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에서 문학사(Artium Magister)를 취득하여 대한제국의 여성으로서 학사를 최초로 취득하였다.[2] 결혼한 여성의 입학을 금지하는 학교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화학당의 교육자들을 설득하여 1896년 24세의 나이로 학생이 되었다.[2] 귀국 후에는 한민족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고 한민족의 단결과 발전을 도모하려는 집단스러운 감정이나 의지 고양에 힘썼다. 대한제국의 황제인 순종 이척(李坧)이 재위 중에 대한 제국이 일본 제국에게 나라를 빼았겼다. 그 뒤에 경술국치가 일어난 1910년부터는[11]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이화학당에서 사감으로 일했으며, 그가 사감으로 일할 적에 이화학당을 다닌 학생이 유관순이다.

2. 3. 이화학당 교수와 여성 운동

김란사는 미국에서 귀국한 후 이화학당에서 영어와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3] 김란사는 유관순이 다른 여학생들과 함께 평화 시위를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학생 주도 단체인 이화문학회(E-mun-hai)의 고문을 맡았으며, 유관순에게 "조선의 빛"이 되어 이 단체에 참여하도록 격려했다. 1910년 이화학당에 최초의 여자대학교 설립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인 교수였으며, 결국 부교장을 역임했다.[4]

2. 4. 독립운동과 최후

고종의 신임을 얻은 김란사는 한국 독립 운동에서 통역관이자 특사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5] 1919년 고종과 김란사는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한국 독립에 대한 외국의 지지를 얻으려 했으나, 1919년 1월 21일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 시도는 중단되었다.[5]

1919년, 김란사는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식사를 한 후 병에 걸려 결국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란사의 시신이 검게 변했다는 증언(독살 가능성)이 있었지만, 공식적인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6]

3. 여성 교육에 대한 신념

김란사는 교육을 통한 여성 권한 신장에 대한 옹호로 알려져 있다. 1911년 7월, 윤치호가 저널 ''The Korea Mission Field''에 한국 여성들이 가사일을 배우는 것의 필요성을 상세히 적은 글을 기고하자, 김란사는 반박하는 글을 게재하여 "여성 교육의 목적은 요리나 바느질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여학생들이 증거 없이 세탁이나 다림질을 할 줄 모른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7]

1995년, 김란사는 사후에 건국훈장을 받았다.[8]

4. 평가 및 유산

김란사는 교육을 통한 여성 권한 신장에 대한 옹호로 알려져 있다. 1911년 7월, 윤치호가 저널 ''The Korea Mission Field''에 한국 여성들이 가사일을 배우는 것의 필요성을 상세히 적은 글을 기고하자, 김란사는 반박하는 글을 게재하여 "여성 교육의 목적은 요리나 바느질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여학생들이 증거 없이 세탁이나 다림질을 할 줄 모른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7]

1995년, 김란사는 사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8]

5. 관련 인물

참조

[1] 웹사이트 한국 최초 자비 미국 유학생 https://terms.naver.[...]
[2] 서적 Ewha old and new : 110 years of history (1886-1996) Ewha Womans University Press 2005
[3] 뉴스 독립운동가 김란사는 왜 하란사가 됐나 http://www.womennews[...] 2016-05-18
[4] 뉴스 "하란사 바른 이름은 김란사 기생 출신 첩 아니다"… 남동생 손자 김용택씨 "신상 기록 잘못" 증언 http://news.kmib.co.[...] 2016-01-29
[5] 서적 Han'gwŏn ŭro ponŭn Han'guk ch'oech'o 101-changmyŏn : uri kŭndae munhwa ŭi ppuri rŭl tŭlch'wŏ ponŭn chaemi innŭn munhwa kihaeng Karam Kihoek 1998
[6] 웹사이트 [카드뉴스] 3.1 만세운동의 숨은 주역 2탄, 김하란사! https://muchkorea.ti[...] 2017-03-13
[7] 뉴스 [단독] "여성은 요리, 바느질 배워야" 주장 반박한 김란사 http://www.hankookil[...] 2019-03-01
[8] 뉴스 "하란사 바른 이름은 김란사 기생 출신 첩 아니다"… 남동생 손자 김용택씨 "신상 기록 잘못" 증언 http://news.kmib.co.[...] 2016-01-29
[9] 뉴스 국민일보 2016년 1월 29일자 http://news.kmib.co.[...] 국민일보 2016-01-29
[10] 뉴스 국민일보 2016년 1월 29일자 http://news.kmib.co.[...] 국민일보 2016-01-29
[11] 웹사이트 http://sillok.hi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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