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 (후한)
1. 개요
김선은 후한 말기의 인물로, 무릉태수를 지냈다. 209년 유비가 형주 남부 4군을 공격했을 때 유비에게 항복했으며, 《삼국지》에는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으나, 배송지가 인용한 《삼보결록주》에는 유비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선의 아들 김의는 조조에게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일족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비에게 대항하다가 부하 공지의 배신으로 죽는 것으로 묘사된다.
-
209년 사망 -
유기 (후한)
유기는 후한 말 유표의 아들로, 채씨 일가의 견제를 피해 강하 태수로 부임했으며, 유비와 합류하여 형주자사가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
209년 사망 -
사환
후한 말 무장 사환은 패군 출신으로 협객으로 이름을 떨치다 조조의 거병에 가신들과 합류하여 중군교위 등을 맡아 활약했으며 관도 대전에서 순유의 계책에 따라 원소군의 군수 물자 운송대를 습격하는 공을 세웠다. -
3세기 중국 사람 -
제갈량
제갈량은 삼국 시대 촉한의 정치가이자 전략가로, 유비의 삼고초려로 촉한에 합류하여 승상이 되었고, 섭정으로서 남정을 통해 촉한의 기반을 다졌으며, 북벌을 통해 위나라를 공격했으나 실패했으며, 법치주의와 인재 등용을 중시하고 경제 정책을 통해 국력을 강화했다. -
3세기 중국 사람 -
유비
유비는 후한 말 평민 출신으로 시작하여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여러 세력을 거치며 활동하다 제갈량을 영입하여 촉한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으나, 이릉 전투 패배 후 병사하였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흉노 출신으로 전한에 투항하여 고위 관직에 오른 김일제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김선은 후한 말 경조군(京兆郡; 현재의 중국 산시성 시안 일대) 출신으로, 자는 원기(元機)이다. 그는 황문시랑(黃門侍郎), 한양태수, 의랑(議郎), 중랑장(中郎將) 등 여러 관직을 거친 후 형주의 무릉군(武陵郡; 현재의 중국 후난성 창더 일대) 태수를 지냈다.
건안 14년(209년) 유비가 적벽 전투 승리 후 형주 남부 4군(장사, 무릉, 영릉, 계양)을 정벌할 당시 무릉태수로 있었다. 이때 김선의 행적에 대해서는 유비에게 항복했다는 기록(삼국지 본전)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는 기록(삼보결록주)이 모두 존재한다.
그의 아들 김의는 218년 위나라의 조조에 대항하여 경기, 위황 등과 함께 허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였고, 이 사건으로 김선의 일족은 멸족하였다.
2.1. 유비와의 관계
208년 적벽 전투 이후 세력을 확장하던 유비는 형주 남부의 장사, 계양, 영릉, 무릉군 4개 군을 공략하였다. 당시 무릉군 태수였던 김선은 유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김선의 최후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린다. 『삼국지』 본전의 기록에 따르면, 건안 14년(209년) 유비가 표를 올려 유기를 형주자사로 삼고 남쪽 4군을 정벌하자, 김선은 장사태수 한현, 계양태수 조범, 영릉태수 유도와 함께 유비에게 항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 『삼보결록주』(三輔決錄注중국어 (간체))의 기록은 이와 다르다. 이 기록에 따르면 김선(자는 원기, 경조윤 출신)은 황문시랑, 한양 태수, 의랑, 중랑장 등의 관직을 거쳐 무릉태수를 겸임했는데, 유비의 공격을 받아 싸우다 죽었다고 한다.
김선의 아들 김의는 이후 조조 정권 하에서 218년 경기, 위황 등과 함께 조조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일족과 함께 처형되었다.
2.2. 최후
208년 적벽 전투에서 조조가 패배한 후, 209년 (건안 14년) 유비는 유기를 형주 자사로 삼고 남쪽의 4군(장사, 무릉, 영릉, 계양)을 정벌했다. 『삼국지』 본전에 따르면, 당시 무릉 태수였던 김선은 유도, 한현, 조범 등 다른 태수들과 함께 유비에게 항복했다.
그러나 배송지가 『삼국지』에 주석으로 인용한 《삼보결록주》의 기록은 이와 다르다. 《삼보결록주》에 따르면 김선은 자가 원기(元機)이며, 경조윤 출신으로 황문시랑, 한양태수, 의랑, 중랑장을 거쳐 무릉태수를 겸임했다. 이 기록에서는 유비의 공격을 받은 것은 동일하지만, 김선이 항복하지 않고 싸우다 죽었다고 전한다.
김선의 아들 김의는 218년에 경기, 위황 등과 함께 조조에게 대항하여 허도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처형되었다. 이 사건으로 김선을 포함한 김일제의 후손인 그의 일족은 모두 죽임을 당해 멸족한 것으로 보인다.
《삼보결록주》는 서진의 摯虞중국어 (간체)가 조기의 《삼보결록》을 보완한 것인데, 조기는 201년에 이미 사망했으므로 원본 《삼보결록》에는 김선이나 김의의 최후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3. 가족 관계
아들 김의가 있었다. 김의의 자는 덕의(德禕)이다. 218년, 김의는 경기, 위황(韋晃) 등과 함께 허도(현재의 허창시)에서 조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 조조 휘하 관리인 왕필(王必)을 부상시켰다. 이 반란은 결국 왕필과 장군 엄광(嚴匡)에 의해 진압되었고, 김의 등 공모자들은 모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 《삼보결록주》에는 김의가 흉노 출신으로 전한에 투항한 김일제의 후손으로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아버지 김선 역시 김일제의 후손일 것으로 추정된다. 218년 김의가 반란 실패로 처형되면서, 김선 일족도 함께 멸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