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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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릉군은 중국 역사상 존재했던 군으로, 현재의 후난성 일대에 위치했다. 전한 고제 5년(기원전 202년)에 검중군을 개칭하여 설치되었으며, 형주에 속했다. 한나라 시대에는 13개의 현을 관할했으나, 왕망 시기에 건평군으로 개칭되었다가 후한 시대에 다시 무릉군으로 환원되었다. 후한 시대에는 무릉만이라는 토착 민족의 반란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삼국 시대에는 오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며, 서진 시대에는 10개의 현을 관할했다. 남북조 시대에는 남조의 송, 제나라에 속했으며, 수나라 시기에 랑주로 개칭되었다가 당나라 때 무릉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무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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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무릉군은 의 소양왕 때 세워진 검중군을 전신으로 한다.

고제 때 무릉군이 설치되었다. 왕망 때 건평군으로 개칭되었다가, 후한이 건립되자 무릉군으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후한 시기, 무릉군에는 왕망신나라 건국 이후 혼란기를 틈타 한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무릉만(武陵蠻)이라 불리는 토착 비한족계 민족들이 있었다. 이후 무릉만은 여러 차례 한나라 조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고 독자적인 세력권을 차지했다.

263년(손휴 영안 6년) 영양현, 충현, 누중현이 천문군으로 분리되어 군의 영역이 축소되었다.

589년(수 문제 개황 9년), 원릉현을 비롯한 군의 서부 지역이 원릉군으로 분리되면서 군역이 창더 시 이남 일대로 축소되었다. 을 멸망시킨 뒤 낭주(郎州)가 설치되었다가 원주(沅州)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나라 멸망 이후 소선이 이곳을 차지했다. 621년(당 고조 무덕 4년), 당나라가 소선을 격파한 뒤 낭주(朗州)를 설치했다. 742년(당 현종 천보 원년), 당나라가 주현제가 아닌 군현제를 실시할 때 무릉군으로 칭했으며, 천보 연간에 강남서도에서 산남동도로 소속이 바뀌었다. 758년(당 현종 건원 원년) 낭주로 복귀되었다.

2.1. 전한

전한 고제 5년(기원전 202년)에 검중군의 이름을 무릉군으로 고쳐 설치하였다. 현대의 연구 결과에 따라 검중군의 실존이 의심되고 동정군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무릉군은 동정군을 계승하는 군일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형주에 속하였으며,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34,177호, 185,758명이였다. 아래의 속현 목록은 《한서》지리지의 내용이다. 원연·수화 연간(기원전 8년)의 현황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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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한자대략적 위치비고
창더시 북동점수(漸水)가 동으로 원수(沅水)로 들어간다.
잔릉孱陵징저우시 궁안현 서
임원臨沅창더시
원릉沅陵화이화시 위안링현 남옛 검중군의 치소다.
담성鐔城화이화시 징저우먀오족둥족자치현?강곡수(康谷水)가 남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옥산(玉山)에서 담수(潭水)가 나와 동으로 아림(阿林 - 울림郁林?)에서 욱수(郁水)로 들어가니, 무릉군·울림군 2군을 지나 720리를 간다.
무양無陽화이화시 즈장둥족자치현?천수(天水)가 고저란(古且蘭)에서 (갈려?)나와 남으로 원수에 들어가니 890리(190리?)를 간다.
천릉遷陵샹시투자족먀오족자치주 바오징현 북동
진양辰陽화이화시 천시현 남서삼산곡(三山谷)에서 진수(辰水)가 나와 원수로 들어가니 750리를 간다.
《원화지》에선 삼산곡의 별명이 진산(辰山)이라 한다.
유양酉陽샹시투자족먀오족자치주 융순현
의릉義陵화이화시 쉬푸현 남군의 치소다. 부량산(鄜梁山)에서 서수(序水)가 나와 서로 원수로 들어간다.
항산佷山이창시 창양투자족자치현약초(葯草)가 나는 곳이었다.
영양零陽장자제시 츠리현영수(零水)가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장자제시 쌍즈현유원산(酉原山)에서 유수(酉水)가 나와 남으로 원릉에 이르러 원수로 들어가니 1200리를 간다.
역산(歷山)에서 풍수(灃水)가 나와 동으로 하전(下隽)에 이르러 원수로 들어가니 무릉군·장사군 2군을 지나 1200리를 간다.


왕망 때는 건평(建平)이라 하였으며, 다음 현의 이름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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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천릉(孱陵)천륙(孱陸)
원릉(沅陵)원륙(沅陸)
천릉(遷陵)천륙(遷陸)
의릉(義陵)건평(建平)

2.2. 후한

후한 시기 무릉군은 12개 현, 46,672호, 250,913명의 주민을 거느렸다. 이 지역에 살던 토착 비한족계 민족들은 무릉만(武陵蠻)이라 불렸는데, 왕망신나라 건국 이후 혼란기를 틈타 한나라에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후 무릉만은 여러 차례 한나라 조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고 독자적인 세력권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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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군에 속한 현
현명한자대략적 위치비고
임원현臨沅縣창더 시47년(후한 광무제 건무 23년) 무릉만 정부 상단정이 반란을 일으켜 인근 군현을 약탈했고, 48년(후한 광무제 건무 24년) 임원현을 침공했다. 조정에서 이숭, 중산태수 마성, 중랑장 유광, 마무, 손영 등을 보내 상단정을 공격했지만 패배했다. 상단정의 반란은 복파장군 마원이 파견되면서 종결되었고, 이후 종균(宗均)이 이사(吏司)를 파견해 남만을 평정했다.
한수현漢壽縣창더 시 북동134년(후한 순제 양가 3년) 삭현(索縣)에서 한수현으로 개명되었다.
잔릉현孱陵縣징저우 시 궁안 현 서78년(장제 건초 3년), 누중만(漊中蠻) 담아건(覃兒健)이 반란을 일으켜 영양, 작당, 잔릉의 경계 지역을 파괴했다.
영양현零陽縣장자제 시 츠리 현 동북78년(장제 건초 3년), 누중만(漊中蠻) 담아건(覃兒健)이 반란을 일으켜 영양, 작당, 잔릉의 경계 지역을 파괴했다. 형주 7군, 여남군, 영천군 형도(刑徒), 이사 5천을 징발해서 결성된 진압군은 영양에서 누중만을 방어했다. 진압군은 80년 담아건의 항복을 인정하지 않고 굉하(宏下)까지 추격하여 반란군을 격파, 담아건을 참수했다.
충현充縣장자제 시 쌍즈 현115년(후한 안제 원초 2년), 예중만(澧中蠻)이 군현의 요역, 조세가 공평성을 잃었다는 것을 명분으로 충현의 여러 종족의 토착민 2천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주군에선 오리만, 육정(六亭)의 병사들을 모집해 추격하여 격파했다. 136년(후한 순제 영화 원년), 예중만과 누중만이 징수한 조세 문제를 이유로 부족 구성원 전체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137년(후한 순제 영화 2년) 봄 2만의 반란군이 충현 성을 포위했다. 이 반란은 무릉태수 이진이 수백 명을 참수하면서 항복했다. 이후 청백리를 선발하면서 민심을 안정시켰다.
누중현漊中縣장자제 시 츠리 현 서78년 누중만(漊中蠻) 담아건(覃兒健)이 반란을 일으켰다. 92년(후한 화제 영원 4년) 예중만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우정(郵亭)을 파괴하고 공무원, 주민들을 살해하고 약탈했으나 지방 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116년 가을 예중만과 함께 4천이 반란을 일으켰다.
원릉현沅陵縣화이화 시 위안링 현 남
진양현辰陽縣화이화 시 천시 현 남서
유양현酉陽縣샹시투자족먀오족자치주 융순 현
천릉현遷陵縣샹시투자족먀오족자치주 바오징 현 북동
심성현鐔城縣화이화 시 징저우먀오족둥족자치현?
원남현沅南縣창더 시 남50년(후한 광무제 건무 26년) 신설되었다.
작당현作唐縣창더 시 안샹 현 북78년(장제 건초 3년), 누중만(漊中蠻) 담아건(覃兒健)이 반란을 일으켜 영양, 작당, 잔릉의 경계 지역을 파괴했다. 이후 남군으로 이관되었다.


후한 건립 후 무릉군은 임원, 잔릉, 령양, 충, 원릉, 원남, 진양, 유양, 천릉, 침성, 작당 등 12현을 관할했다.

2.3. 삼국 시대 ~ 남북조 시대

263년(손휴 영안 6년) 영양현, 충현, 누중현이 천문군으로 분리되어 군역이 축소되었다. 10현 14,000호를 거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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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군(진)의 현
현명한자명대략적 위치비고
임원현臨沅縣변화없음
용양현龍陽縣창더 시 한서우 현
한수현漢壽縣변화없음오나라가 건국해서 멸망할 때까지 오수현(吳壽縣)으로 개명되었다.
원릉현沅陵縣
겸양현黚陽縣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주 룽산 현 서남
유양현酉陽縣변화없음
침성현鐔城縣
원남현沅南縣
천릉현遷陵縣
무양현舞陽縣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주 즈장 둥족 자치현


유송대엔 10현 5,090호 37,555명을 거느렸다. 남제시기에도 영현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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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군(유송, 남제)의 현
현명한자명직위
임원현臨沅縣남상(男相)
용양현龍陽縣후상(候相)
한수현漢壽縣백상(伯相)
원남현沅南縣현령(縣令)
천릉현遷陵縣후상(候相)
진양현辰陽縣남상(男相)
무양현舞陽縣현령(縣令)
유양현酉陽縣현장(縣長)
겸양현黚陽縣현장(縣長)
원릉현沅陵縣현령(縣令)


진나라 때, 무릉군은 임원, 용양, 한수, 원릉, 원남, 유양, 천릉, 침성, 무양, 검양 등 10현을 관할했다.

남조 송나라 때, 무릉군은 영주에 속했으며, 임원, 용양, 한수, 원릉, 원남, 천릉, 진양, 유양, 무양, 검양 등 10현을 관할했다.

남조 제나라 때, 무릉군은 임원, 용양, 한수, 원릉, 원남, 천릉, 진양, 유양, 무양, 검양 등 10현을 관할했다.

남조 양나라 때, 무릉군은 무주에 속했다. 후에 무주는 원주로 개칭되었다.

2.4. 수당 시대

589년(수 문제 개황 9년), 원릉현을 비롯한 군의 서부 지역이 원릉군으로 분리되면서 군역이 창더 시 이남 일대로 축소되었다. 을 멸망시킨 뒤 낭주(郎州)가 설치되었다가 이름이 원주(沅州)로 바뀌었다. 2현 3,416호를 거느렸다.

수나라 멸망 이후 소선(蕭銑)이라는 군벌이 차지했다. 621년(당 고조 무덕 4년), 소선을 격파한 뒤 낭주(朗州)를 설치했다. 742년(당 현종 천보 원년), 당나라가 주현제가 아닌 군현제를 실시할 때 무릉군으로 칭했으며, 천보 연간에 강남서도에서 산남동도로 소속이 바뀌었다. 758년(당 현종 건원 원년) 낭주로 복귀되었다. 당초에는 2현 2,149호 10,913명을, 천보 연간에는 9,306호 43,716명을 거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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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군 소속 현
현명한자대략적 위치비고
무릉현武陵縣창더 시임원현, 원남현, 한수현을 통합해 무릉현을 만들었다. 망이산(望夷山), 용산(龍山)이 현내에 있었다.
용양현龍陽縣창더 시 한서우 현현경내에 백사호(白查湖)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