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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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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소월(본명: 김정식)은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나 1934년 사망한 한국의 시인이다. 그는 오산학교에서 김억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1920년 동인지 '창조'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25년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발간했으며, 민요조의 서정적인 시를 통해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으로는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 '먼 후일' 등이 있으며, 1981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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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교육
작품 활동
기타 정보
서명
이미지
김소월
김소월

2. 생애

김소월은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나 곽산군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부친의 정신 이상으로 인해 조부 밑에서 자랐으며, 숙모 계희영의 영향을 받았다. 오산학교에서 김억을 만나 문학적 지도를 받았고, 1920년 등단했다. 3·1 운동 이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떠났으나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했다. 1925년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발간했다.

귀국 후 광산 일과 동아일보 지국 운영을 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류머티즘과 정신적 고통을 겪다가 1934년 33세의 나이로 곽산군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인에 대해서는 뇌졸중, 자살, 아편 과다 복용 등 여러 추측이 있다.

2. 1. 출생과 성장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출생하였고, 정주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후 곽산군에서 성장하였다. 1904년, 그의 부친 김성도는 정주군과 곽산군을 잇는 철도 공사장에서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당하여 정신 이상 증세를 겪게 되었다.[3] 이후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조부의 손에서 자랐으며, 숙모 계희영으로부터 이야기의 재미를 배웠다.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조만식과 평생 문학의 스승이 될 김억을 만났다. 1916년 오산학교 재학 시절 고향 구성군 평지면의 홍시옥의 딸 홍단실과 결혼했다.

2. 2. 학창 시절과 문단 등단

1915년 오산고등보통학교(평안북도 정주)에서 조만식김억을 만났는데, 김억은 김소월에게 평생 문학의 스승이 되었다.[16] 김억의 격려를 받아 1920년 동인지 《창조》 5호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다.[10] 오산학교 재학 시절 김소월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3·1 운동 이후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했다. 1923년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14] 같은 해 9월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 무렵 서울 청담동에서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 《영대》 동인으로 활동했다.[9]

2. 3. 결혼과 일본 유학

1916년 오산학교 재학 시절 고향 구성군 평지면의 홍시옥의 딸 홍단실과 결혼했다. 학업을 우선시하고 싶었던 김소월에게는 내키지 않는 결혼이었다.

1923년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14] 같은 해 9월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4]

2. 4. 귀국 후의 삶과 죽음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가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왔으나 실패하고, 처가인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구성군 남시면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개설했으나 이마저 실패하여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4] 그는 예민한 성격 탓에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로 세월을 보냈으며, 친척들에게도 천시받았다. 일본의 압박으로 부인과 함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1934년 12월 24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던 김소월은 평안북도 곽산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16] 향년 33세였다. 사망 이틀 전,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라며 쓴웃음을 지으며 우울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자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소월의 증손녀는 김소월이 심한 관절염을 앓았고, 통증 완화를 위해 아편을 복용했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아편 과다 복용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2. 5. 사후

1977년 사후 43년 만에 그의 시작 노트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실린 시 가운데 스승 김억이 이미 발표한 게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김억이 제자의 시를 자신의 시로 발표했던 것이다.

1981년 금관문화훈장(1등급)이 추서되었으며 서울 남산에 그를 기리는 시비가 세워졌다.

1986년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한국 가곡의 20%가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며 그 수에서 가곡 시인 중 1위를 차지하였다.[17]

3. 작품 경향

김소월은 민요조의 서정적인 목소리로 시작 활동을 하였으나,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라면〉에서는 민족적 현실을 깨달아 참여적인 목소리로 기울었다.[6]

김소월은 생전에 출판된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1925)에 수록된 시 대부분을 십 대 시절에 지었다. 배재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에서 잠시 교편을 잡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상업학교에 다녔다. 그곳에서 《개벽》을 비롯한 여러 문예지에 시를 발표했다. 그의 시는 귀국 후에도 《용광》 등의 문예지를 통해 발표되었고,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이어졌다.

스승인 김억은 1935년 소월의 시를 선집하여 출판했다. 김억은 소월의 진정한 천재성은 한국 민요의 리듬으로 시를 지음으로써 한국인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다가간 데 있다고 평가했다. 소월 시의 매력은 한국 민요의 선율을 통해 전달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영어 번역으로는 온전히 재현하기 어렵다.[6]

나 보기가 역겨워|나 보기가 역겨워한국어

가실 때에는|가실 때에는한국어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한국어

영변(寧邊)에 약산(藥山)|영변(寧邊)에 약산(藥山)한국어

진달래꽃|진달래꽃한국어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한국어

가시는 걸음 걸음|가시는 걸음 걸음한국어

놓인 그 꽃을|놓인 그 꽃을한국어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한국어

나 보기가 역겨워|나 보기가 역겨워한국어

가실 때에는|가실 때에는한국어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한국어

이 시에서 한 여인은 곧 떠날지도 모르는 연인에게 말하고 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맥락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한 번역가는 다양한 분위기나 스타일 선택에 맞춰 여러 가지 대안적인 번역을 예시로 제시했다.[7] 특히 그는 묘사된 감정에 대한 정확한 대응어를 찾는 어려움을 언급했지만, 그 주제는 한국 문학 및 민요 전통에서 모두 표준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다른 해설가는 본질적으로 단순한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가능성을 다룬다.[8] 김소월이 일제 강점기라는 맥락에서 우울한 노래를 씀으로써 자기만족에 빠진 것은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한 가지 답은 외국 문학 양식을 실험하는 것을 거부하고 "가장 순수한 한국어"로 전통적인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 문화 저항의 한 형태였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어는 일본어의 공격을 받고 때때로 금지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이 시를 일본의 존재에 대한 은유적 언급이자 그들의 떠남에 대한 예상으로 보기도 한다.

반면, 데이비드 매캔은 "《진달래꽃》에서 사회사나 문학적 전기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사는 다른 사람들이 이 시에 대해 쓴 글에서 발견된다"고 믿는다. 그의 의견으로는, 이 시는 그 자체로 존재하도록 허용되어야 하며, 해설의 적절한 임무는 다른 사람들의 논평 뒤에 무엇이 있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4. 평가

조연현은 "김소월의 시는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향토적인 체취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면서 "한 마디로 전통적인 시인"이라고 평했고,[18] 조병춘은 "우리 민족의 문학적 생리에 배겨 있는 민중적·민요적 리듬을 가장 적절하게 건드려 준 시인"이라고 했다.[19]

김현은 김소월의 시가 "전래의 정한의 세계를 새로운 리듬으로 표현해 낸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민요에 속한다."고 했으며,[20] 유종호는 김소월의 젊은 시절 시단에서 이른바 '조선주의'가 유행이었으나, 시인은 "조선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채 조국의 산하에 지천으로 피고 지는 진달래라는 표상을 선택함으로써 겨레 감정에 호소한다. 그는 추상적인 관념에서 출발하지 않고 구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 하나만 가지고서도 그는 당대의 누구보다도 시인이요 터주시인"이라고 했고,[21] 김용직은 김소월을 "우리 현대시사의 한 표준이며 역사"라고 했다.[22]

한국의 전통적인 한(恨)을 노래한 시인이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23]

나 보기가 역겨워|나 보기가 역겨워한국어

가실 때에는|가실 때에는한국어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한국어

영변(寧邊)에 약산(藥山)|영변(寧邊)에 약산(藥山)한국어

진달래꽃|진달래꽃한국어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한국어

가시는 걸음 걸음|가시는 걸음 걸음한국어

놓인 그 꽃을|놓인 그 꽃을한국어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한국어

나 보기가 역겨워|나 보기가 역겨워한국어

가실 때에는|가실 때에는한국어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한국어[6]

이 시에서 한 여인은 곧 떠날지도 모르는 연인에게 말하고 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맥락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한 번역가는 다양한 분위기나 스타일 선택에 맞춰 여러 가지 대안적인 번역을 예시로 제시했다.[7] 특히 그는 묘사된 감정에 대한 정확한 대응어를 찾는 어려움을 언급했지만, 그 주제는 한국 문학 및 민요 전통에서 모두 표준적인 것이다.

다른 해설가는 본질적으로 단순한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가능성을 다룬다.[8] 김소월이 일제 강점기라는 맥락에서 우울한 노래를 씀으로써 자기 만족에 빠진 것은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한 가지 답은 외국 문학 양식을 실험하는 것을 거부하고 "가장 순수한 한국어"로 전통적인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 문화 저항의 한 형태였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어는 일본어의 공격을 받고 때때로 금지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이 시를 일본의 존재에 대한 은유적 언급이자 그들의 떠남에 대한 예상으로 보기도 한다.

반면, 데이비드 매캔은 "『진달래꽃』에서 사회사나 문학적 전기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사는 다른 사람들이 이 시에 대해 쓴 글에서 발견된다"고 믿는다. 그의 의견으로는, 이 시는 그 자체로 존재하도록 허용되어야 하며, 해설의 적절한 임무는 다른 사람들의 논평 뒤에 무엇이 있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5. 작품 목록

김소월의 시는 다음과 같이 여러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

출판물출판 정보주요 수록 시
잃어버린 사랑: 소월 김 시집 99편김종삼, 1975, 판코리아출판사: 서울
진달래, 김소월 시집데이비드 R. 매캔, 2007, 컬럼비아 대학교 출판부: 뉴욕
『조선시집』김소운 역편, 1954년, 이와나미 문고, 이와나미쇼텐「노래소리」, 「옛날에는」, 「잊지 않으면야」, 「훗날」
『현대조선시선』허남기 편역, 1960년, 조선문화사「산에 꽃피네」, 「위령」, 「원컨대 우리에게 쟁기를 댈 땅을 주소서」, 「상쾌한 아침」
『한국현대시집』강정중 편역, 1987년, 토요미술사「철쭉꽃」
『철쭉꽃 필 무렵 일제시대 민족문학 대역선』한국의 역사를 다시 쓰는 모임(One Korea 번역위원회) 편역, 1995년, 신간사「산에 꽃이 있다」, 「잊을 수 없다」, 「철쭉꽃」, 「옛날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재역 조선시집』김시종 역, 2007년, 이와나미쇼텐
『김소월 시집 철쭉꽃』임양자 역, 2011년, 서사청수사


5. 1. 시


  • 〈낭인의 봄〉
  • 진달래꽃
  • 엄마야 누나야
  • 먼 후일
  • 산유화
  • 〈접동새〉
  • 〈가는 길〉
  • 초혼
  • 〈개여울〉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라면〉
  • 〈나의 집〉
  • 〈춘향과 이도령〉
  • 〈금잔디〉
  • 〈삭주구성〉
  • 〈산〉
  • 〈꿈〉
  • 〈무덤〉
  • 〈추회〉
  • 〈첫사랑〉
  • 〈왕십리〉
  • 〈길〉
  • 〈집 생각〉
  • 〈바다〉
  • 〈그를 꿈꾼 밤〉
  • 〈어려 듣고 자라 배워 내가 안 것은〉
  • 〈눈물이수르르 흘러납니다〉
  • 〈새벽〉
  • 〈바람의 봄〉
  • 〈삼수갑산〉
  • 〈부모〉
  • 〈무심〉
  • 〈옛이야기〉
  • 〈못잊어〉
  • 〈만나려는 심사〉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 〈오는 봄〉
  • 〈가막 덤불〉
  • 〈만리성〉
  •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 〈고적한 〉
  • 〈제이 엠 에스〉


김소월은 생전에 출판된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1925)에 수록된 시 대부분을 십 대 시절에 지었다. 배재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상업학교에 다녔다. 개벽을 비롯한 여러 문예지에 시를 발표했으며, 귀국 후에도 『용광』 등의 문예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스승 김억은 1935년 소월의 시를 선집하여 출판하면서 회고록과 비평문을 함께 수록했다. 김억은 소월의 진정한 천재성이 한국 민요의 리듬으로 시를 지어 한국인의 마음에 직접 다가간 데 있다고 평가했다. 소월 시의 매력은 한국 민요의 선율을 통해 전달되기에 영어 번역으로는 온전히 재현하기 어려우며, 이는 작품 번역에 추가적인 어려움을 낳는다.

6. 가족 관계

관계이름
아버지김성도
어머니장경숙
작은어머니(숙모)계희영
부인홍단실(洪丹實) - 홍시옥(洪時玉)의 딸
첫째 딸김구생[24]
둘째 딸김구원[24]
첫째 아들김준호[24]
둘째 아들김은호[24]
셋째 아들김정호[24] (1953년 반공포로로 석방, 김소월의 자녀들 중 유일하게 남한에 거주)
손녀김은숙
손자김영돈
넷째 아들김낙호[24]


7. 연보

연도내용
1902년음력 8월 6일, 평안북도 구성군 왕인동에서 태어남. 100일 후,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단동 아버지 집에서 성장.
1904년아버지가 정신 이상을 겪음.
1905년조부 김상주(金相疇)에게 한문을 배우기 시작.
1909년남산학교에 입학.
1913년장티푸스에 걸림.
1915년남산학교 졸업. 홍단실(洪丹實)과 결혼.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
1918년정주에서 주산대회 우승.
1919년오산학교 중학부 졸업. 장녀 김규생(金亀生)이 태어남.
1920년『창조』를 통해 문단에 등단. 차녀 김규원(金亀源)이 태어남.
1922년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
1923년배재고등보통학교 졸업. 도쿄상과대학(현 히토쓰바시대학)에 입학(불합격이었다는 설도 있음). 간토 대지진의 영향으로 고향으로 귀향.
1924년고향으로 돌아옴. 이후, 처가인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으로 이사. 김동인, 김찬영, 임장화 등과 함께 『영대』 동인이 됨. 장남 김준호(金俊鎬)가 태어남.
1926년구성군 남시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 차남 김은호(金殷鎬)가 태어남.
1932년삼남 김정호(金正鎬)가 태어남.
1934년12월 24일, 독극물 자살.


참조

[1] 웹사이트 Kim Sowol http://klti.or.kr/ke[...]
[2] 웹사이트 김소월 https://people.searc[...]
[3] 뉴스 Poet Kim So-wol https://www.koreatim[...] Korea Times
[4] 서적 Who's Who in Korean Literature Hollym
[5] 뉴스 Top Ten Korean Modern Poets Selected https://www.koreatim[...] 2020-02-12
[6] 서적 Poems From Korea (정보없음)
[7] 학술지 Translating Korean Poetry http://hompi.sogang.[...] 2014-07-09
[8] 학술지 The Meanings and Significance of So Wŏl's ''Azaleas'' https://www.jstor.or[...]
[9] 서적 集英社 世界文学大事典 1 集英社 1996
[10] 서적 韓国近現代文学事典 明石書店 2012
[11] 서적 韓国朝鮮を知る事典 新版 平凡社 2014
[12] 서적 朝鮮詩集 岩波書店
[13] 웹사이트 김소월(金素月)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 2020-09-13
[14] 참고자료 한국근현대문학사전 및 기타 참고자료
[15] 웹사이트 (제목 없음) https://news.v.daum.[...]
[16] 서적 동굴 속의 독백
[17] 뉴스 歌曲의 20%는 素月詩 경향신문 1986-08-06
[18] 서적 한국현대문학사 성문각 1969-09-05
[19] 논문 한국 현대시의 전개양상 연구 명지대학교
[20] 서적 한국문학사 민음사 1996-09-10
[21] 서적 시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5-05-25
[22] 서적 한국현대문학의 사적 탐색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09-30
[23] 웹사이트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http://people.aks.ac[...]
[24] 뉴스 南韓에살아있는 素月의 令息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5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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