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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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석중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 1911년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파 방정환의 잡지 《어린이》에 동요 〈오뚜기〉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고, 이후 《어린이》의 주간을 맡아 한국 아동 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윤석중은 동요집 《윤석중 동요집》을 비롯하여 1,300여 편의 동요와 800여 편의 동시를 창작했으며, 3·1 문화상, 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2003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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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송은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이자 언론인으로, 방정환 등과 색동회를 조직하여 아동문학 운동을 전개했으며, 광복 후에는 작품을 통해 사회상을 비판하는 등 대한민국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윤석중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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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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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윤석중 |
호 | 석동(石童) |
출생일 | 1911년 5월 25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경성부 |
사망일 | 2003년 12월 9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국적 | 대한민국 |
종교 | 천주교(세례명 : 요한) |
배우자 | 박용실 |
자녀 | 슬하 3남 1녀 |
형제 | 윤양중(이복 아우) 윤영모(이복 아우) 윤경모(이복 아우) |
직업 및 활동 | |
직업 | 아동문학가, 동화작가, 시인 |
활동 기간 | 1924년 ~ 2003년 5월 |
장르 | 아동문학 동화 음악평론 동시 시문학 영화제작 작사 |
학력 및 경력 | |
학력 | 양정고등보통학교 명예 졸업 일본 조치 대학교 신문학과 학사 |
경력 | 한국방송위원회 위원장 |
2. 생애
윤석중은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2. 1. 출생과 유년 시절
2. 2. 문학 활동
1911년 당시에는 경성부였던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동 13번지에서 윤덕병과 조덕희의 여덟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두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형제들도 모두 어려서 죽었다.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고, 열 살에 교동보통학교에서 공부했는데, 담임선생님이었던 맹건호 교사가 최남선이 발행하던 《아이들 보이》를 빌려주어 한국어를 배워익혔다.[4] 열 살 때인 1921년은 당시 조선이라고 불린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으므로 일본어를 국어로, 조선어를 외국어로 배우던 시대에 모어인 한국어를 어린이 잡지로써 배운 것이었다.[4] 우리말을 배운 경험은 나는 한국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한국 사람이라는 민족정체성을 일깨워주어 1924년에 《신소년》에 첫 동시인 《봄》을 발표하였다.[4] 일본 동요인 《하루가기타》를 배우면서 '우리말에도 봄이라는 예쁜 말이 있는데, 뭐하러 일본말로 하루라고 할까?'라는 비판하는 생각이 들어 만 13세인 1924년에 동시를 지은 것이다.[4]1925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발행하던 잡지 어린이에 옷두기(오뚝이)를 보내었는데, 그의 문재를 존중한 소파 방정환 선생에 의해 아동문학가로 이름을 문학계에 알렸다.[4]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재학하였으나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운동이 발발하고, 이에 동참하지 못하고 졸업장을 받는 것조차 양심의 가책이 되어 <중외일보>에 '자퇴생의 수기'를 투고한 후 졸업을 며칠 앞두고, 자퇴를 한다. 1930년 가을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귀국을 하게 된다. 이후 1942년 일본 조치 대학 신문학과에서 학사 학위 취득하였다. 1925년 잡지 어린이에 그의 동요 〈오뚜기〉가 당선된 후에 우산 셋이, 바람, 짝작궁(정순철 작곡, 윤석중 작사)등 많은 동요 가사와 동화, 어린이 희곡 등 아동문학의 갈래에 걸쳐 아동문학 작품들을 창작·발표하였다.
1931년, 그해 별세한 방정환 주간의 뒤를 이어 개벽사의 어린이 잡지인 《어린이》의 주간으로 한국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활약하였다. 그 후 《소년중앙》·《소년》·《소학생》의 주간을 지냈으며, 1955년 조선일보 편집 고문을 지냈다. 1956년 새싹회 회장에 선출되고, 1961년 3·1 문화상 예술 부문 본상과 1966년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1970년 어린이 회관 고문이 되는 등 아동들을 위한 많은 공헌을 하였다.
2. 3. 작품 활동
1911년 당시에는 경성부였던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동 13번지에서 윤덕병과 조덕희의 여덟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두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형제들도 모두 어려서 죽었다.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고, 열 살에 교동보통학교에서 공부했는데, 담임선생님이었던 맹건호 교사가 최남선이 발행하던 《아이들 보이》를 빌려주어 한국어를 배워익혔다.[4] 열 살 때인 1921년은 당시 조선이라고 불린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으므로 일본어를 국어로, 조선어를 외국어로 배우던 시대에 모어인 한국어를 어린이 잡지로써 배운 것이었다.[4] 우리말을 배운 경험은 나는 한국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한국 사람이라는 민족정체성을 일깨워주어 1924년에 《신소년》에 첫 동시인 《봄》을 발표하였다.[4] 일본 동요인 《하루가기타》를 배우면서 '우리말에도 봄이라는 예쁜 말이 있는데, 뭐하러 일본말로 하루라고 할까?'라는 비판하는 생각이 들어 만 13세인 1924년에 동시를 지은 것이다.[4] 1925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발행하던 《어린이》에 옷두기(오뚝이)를 보내었는데, 그의 문재를 존중한 소파 방정환 선생에 의해 아동문학가로 이름을 문학계에 알렸다.[4]양정고등보통학교를 재학하였으나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운동이 발발하고, 이에 동참하지 못하고 졸업장을 받는 것조차 양심의 가책이 되어 <중외일보>에 '자퇴생의 수기'를 투고한 후 졸업을 며칠 앞두고, 자퇴를 한다. 1930년 가을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귀국한다. 이후 1942년 일본 조치 대학 신문학과에서 학사 학위 취득하였다. 1925년 잡지 어린이에 그의 동요 〈오뚜기〉가 당선된 후에 우산 셋이, 바람, 짝작궁(정순철 작곡, 윤석중 작사)등 많은 동요 가사와 동화, 어린이 희곡 등 아동문학의 갈래에 걸쳐 아동문학 작품들을 창작·발표하였다. 1931년, 그해 별세한 방정환 주간의 뒤를 이어 개벽사의 어린이 잡지인 《어린이》의 주간으로 한국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활약하였다. 그 후 《소년중앙》·《소년》·《소학생》의 주간을 지냈으며, 1955년 조선일보 편집 고문을 지냈다. 1956년 새싹회 회장에 선출되고, 1961년 3·1 문화상 예술 부문 본상과 1966년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1970년 어린이 회관 고문이 되는 등 아동들을 위한 많은 공헌을 하였다.
2. 4. 사회 활동
윤석중은 양정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1929년 광주 학생 운동에 동참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졸업을 앞두고 자퇴하였다. 1930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나 1년 만에 귀국하였고, 1942년 조치 대학 신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25년 잡지 어린이에 동요 〈오뚜기〉가 당선된 후, 우산 셋, 바람, 짝작궁(정순철 작곡) 등 많은 동요와 동화, 어린이 희곡을 창작·발표하였다. 1931년 방정환의 뒤를 이어 개벽사의 어린이 잡지 어린이의 주간으로 활동하며 한국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였다. 이후 《소년중앙》·《소년》·《소학생》의 주간을 지냈으며, 1955년 조선일보 편집 고문을 역임하였다. 1956년 새싹회 회장에 선출되었고, 1961년 3·1 문화상 예술 부문 본상, 1966년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1970년 어린이 회관 고문을 맡는 등 아동들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하였다.2. 5. 번역 활동과 저작권 문제
윤석중의 번역 작품인 《열한마리 고양이》 시리즈는 초판 출판사였던 웅진미디어가 2001년 7월 웅진코웨이개발에 흡수합병되었고,[5] 원작자 바바 노보루와 초판 번역자 윤석중의 타계로[6](원작자-2001년 4월 7일, 초판 번역자-2003년 12월 9일) 절판되었다. 이 과정에서 《열한마리 고양이》 원작자의 작품이자 윤석중이 번역하여 같은 출판사에서 발행한 《알리바바와 마흔 명의 도둑》도 절판되었다. 웅진미디어는 1996년 9월 방문판매사업본부를 웅진시스템(구 웅진통신판매)에 양도했고, 웅진시스템은 1998년 1월 방문판매사업본부를 웅진출판(현재 웅진씽크빅)에 넘겼으며, 2000년 10월 웅진식품에 흡수합병되었다.[7] 웅진코웨이개발은 2003년 5월 미디어사업부문을 교육출판-음반사업 영위 업체[8] 웅진미디어로 분리시켰지만,[9] 2006년 2월 폐업했다.이후, 《열한마리 고양이》 시리즈는 그림 두루마리 책인 '11마리 고양이 마라톤 대회'와 본편(총 6권)이 2006년 2월 꿈소담이에서 재판되었으며, 이장선으로 번역자가 바뀌었다.[10] 본편 2번째(11마리 고양이와 바보새 -> 11마리 고양이와 바닷새), 4번째(자루에 든 11마리 고양이 -> 11마리 고양이와 주머니), 5번째(11마리 고양이와 이상한 고양이 -> 11마리 고양이와 별난 고양이) 제목이 변경되었고, 본편 완결인 '11마리 고양이와 아기공룡'은 초판(웅진미디어) 당시 발매되지 않았다.
2. 6. 사망
3. 학력
경성 교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 조치대학교 신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4. 작품
1932년 신구서림에서 첫 동요집 《윤석중 동요집》을 출간하였고, 《초생달》, 《굴렁쇠》, 《어린이를 위한 윤석중 시집》 등을 저술하였다. 1956년 새싹회 동요집 《엄마손》 등을 비롯하여 윤석중 동요집(1932년), 잃어버린 댕기 동시집(1933년, 첫 동시집) 등 그의 작품은 동요는 천삼백 편, 그의 동요에 정순철 작곡가 등이 곡을 붙인 동시가 800여 편에 이른다.
어린이들이 우산 셋을 들고 나란히 가는 모습을 그린 동시이자 동요인 《우산 셋이》, 바람이 불어 나무꾼을 시원하게 하는 《바람》, 어린이가 시간을 알아오라는 엄마 심부름을 하면서 분꽃, 닭이 물을 마시는 모습, 개미를 보는 이야기인 《넉점 반》,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표현한 《숨바꼭질》처럼 아름답고 신기한 자연을 보면 호기심을 가지는 어린이들의 맑고 순수한 동심, 바람을 의인화하는 동심, 나비들에게 말을 하는 동심을 묘사한 동시를 지었다.
그가 지은 동시는 동어 반복, 일정한 음수로써 박자를 가지기 때문에 정순철 작곡가 등이 작곡하여 동요로 지음으로써 어린이들이 친숙하게 동시와 동요를 배우면서 풍부한 감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으니, 윤석중 선생의 아동문학사에서의 업적은 매우 크다. 2003년 12월 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5. 상훈
- 1961년 3·1 문화상을 수상했다.[11]
- 1965년 '고마우신 선생님'으로 추대되었다.[11]
- 1966년 문화 훈장을 수여받았다.
- 1973년 외솔상을 수상했다.
- 1978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12]
참조
[1]
서적
어린이 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
스타북스
[2]
서적
윤석중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3]
서적
넉점 반
창비
[4]
서적
윤석중 시선
지식을 만드는 지식
[5]
뉴스
[기업공시] 삼양통상 ; 웅진닷컴 ; 동원금속 ; 한솔제지
https://news.naver.c[...]
한국경제
2001-05-29
[6]
뉴스
원로 아동문학가 윤석중옹 별세
https://news.naver.c[...]
경향신문
2003-12-09
[7]
뉴스
웅진식품, 웅진시스템 흡수합병키로
https://news.naver.c[...]
한국경제
2000-08-04
[8]
뉴스
[대체]웅진닷컴, 웅진미디어에 5억출자
https://news.naver.c[...]
머니투데이
2003-04-28
[9]
뉴스
웅진미디어, 초등생 영어학원 가맹점 모집
https://news.naver.c[...]
한국경제
2003-10-19
[10]
뉴스
<아동신간> '11마리 고양이' 외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6-07-11
[11]
뉴스
세 번째『고마우신 선생님』=윤석중 선생님 뽑아
동아일보
1965-03-27
[12]
뉴스
인터뷰 막사이사이賞수상 尹石重씨
동아일보
1978-08-04
관련 사건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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