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흥
1. 개요
김순흥은 1910년 경성부에서 태어나 1981년 사망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방 헌금을 기부하고,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한국민주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48년 친일 인사 명단에 올랐으며,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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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제 부역자 -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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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제 부역자 -
김용주 (1905년)
김용주는 1905년에 태어나 1985년에 사망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행위를 하고 해방 후에는 기업가로 활동하며 전남방직 불하, 대한해운공사 사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
1981년 사망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
1981년 사망 -
베아트리스 틴슬리
베아트리스 틴슬리는 은하 진화와 우주론 연구에 기여한 뉴질랜드 출신 천문학자로, 여성 과학자로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일 대학교 최초 여성 천문학 교수가 되었으며, 가속 팽창 우주 연구 등의 업적과 함께 여성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다.
2. 생애
(내용 없음)
2.1. 출생과 가계
1910년 12월 28일,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 김씨이다. 경성에 거주하는 대지주로서 경기도 파주 지역에 논 389정보와 밭 75정보를 소유했으며, 1937년 6월 말경 소작인 750여 명을 두었다. 1940년경 연 소득이 11만 원에 달했다.
2.2. 일제 강점기 활동
김순흥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하여 국방 관련 단체에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벌였다. 당시 1만 원은 현재 가치로 약 10억 원에 해당한다. 그가 일제강점기 동안 벌인 주요 활동 내역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날짜 | 활동 내용 | 비고 |
|---|---|---|---|
| 1933년 | 8월 | 조선 나 예방 협회 기금 기부 | 1,000원 |
| 1934년 | 6월 29일 | 조선중앙일보 감사역 | 사장 여운형 |
| 1936년 | 2월 | 합자 회사 구정 상회 사장, 교하간이교(校河簡易校) 부지 기부 | 1,500평 |
| 7월 | 금융 신탁 회사 우익 상사 취체역(상무이사) | ||
| 1937년 | 7월 22일 | 국방헌금 헌납 ("나라에 대한 봉사의 뜻을 표하고자 적은 돈이나 마 바치오니 받아주십시오" 발언) | 종로경찰서에 1만 원 |
| 9월 5일 이후 | 조선 군사 후원 연맹 사업비 기부, '경기도 내 군기 헌납 기성회' 발기인 참여 및 비행기 대금 기부, 동민회 회원 활동 | 각각 2,500원, 500원 (당시 군용기 1대 75,000원) | |
| 1939년 | 9월 | 주식회사 쇼와 직물 설립 및 사장 | |
| 11월 | 조선총독부 주도 조선 유도 연합회 참사 | 전시 체제 강화 및 황민화 목적 | |
| 1940년 | 9월 | 중앙 연료 주식회사 취체역 | |
| 1943년 | 8월 | 징병제 실시에 감격하여 국방 헌금 헌납 | 3,000원 |
| 1944년 | 4월 | 일본 정부로부터 감수포장 수여 |
2.3. 해방 이후
해방 이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대한경제보국회 감사를 맡았다. 1948년에는 김구와 임시정부 계열이 작성한 숙청 대상 친일 인사 명단 초안에도 이름이 포함되었다.
2.4. 사망
1981년 10월 26일 오전 4시 50분, 서울 종로구 내자동 167-2 자택에서 사망했다. 당시 학교법인 이화학원(이화여자대학교) 이사였으며, 장례는 서울에서 이화학원장으로 치러졌다. 그가 사망한 내자동 자택 주소는 1937년 7월 22일, 일제 강점기 종로경찰서에 국방헌금 1만 원을 헌납했을 당시의 주소와 동일하다. 1948년 김승학이 작성한 친일파 명단에 이름이 올랐으며,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경제 부문에도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