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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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순흥은 1910년 경성부에서 태어나 1981년 사망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방 헌금을 기부하고,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한국민주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48년 친일 인사 명단에 올랐으며,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김순흥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순흥
출생일1910년 12월 28일
출생지경성부
사망일1981년 10월 26일
사망지서울
국적
가족이지아(손녀)
경력
직업기업인
학력
수상일본 제국 훈장 감수포장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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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내용 없음)

2.1. 출생과 가계

1910년 12월 28일,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본관광산 김씨이다. 경성에 거주하는 대지주로서 경기도 파주 지역에 389정보와 75정보를 소유했으며, 1937년 6월 말경 소작인 750여 명을 두었다. 1940년경 연 소득이 11만 원에 달했다.

2.2. 일제 강점기 활동

김순흥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하여 국방 관련 단체에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벌였다. 당시 1만 원은 현재 가치로 약 10억 원에 해당한다. 그가 일제강점기 동안 벌인 주요 활동 내역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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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날짜활동 내용비고
1933년8월조선 나 예방 협회 기금 기부1,000원
1934년6월 29일조선중앙일보 감사역사장 여운형
1936년2월합자 회사 구정 상회 사장, 교하간이교(校河簡易校) 부지 기부1,500평
7월금융 신탁 회사 우익 상사 취체역(상무이사)
1937년7월 22일국방헌금 헌납
("나라에 대한 봉사의 뜻을 표하고자 적은 돈이나 마 바치오니 받아주십시오" 발언)
종로경찰서에 1만 원
9월 5일 이후조선 군사 후원 연맹 사업비 기부, '경기도 내 군기 헌납 기성회' 발기인 참여 및 비행기 대금 기부, 동민회 회원 활동각각 2,500원, 500원 (당시 군용기 1대 75,000원)
1939년9월주식회사 쇼와 직물 설립 및 사장
11월조선총독부 주도 조선 유도 연합회 참사전시 체제 강화 및 황민화 목적
1940년9월중앙 연료 주식회사 취체역
1943년8월징병제 실시에 감격하여 국방 헌금 헌납3,000원
1944년4월일본 정부로부터 감수포장 수여

2.3. 해방 이후

해방 이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대한경제보국회 감사를 맡았다. 1948년에는 김구임시정부 계열이 작성한 숙청 대상 친일 인사 명단 초안에도 이름이 포함되었다.

2.4. 사망

1981년 10월 26일 오전 4시 50분, 서울 종로구 내자동 167-2 자택에서 사망했다. 당시 학교법인 이화학원(이화여자대학교) 이사였으며, 장례는 서울에서 이화학원장으로 치러졌다. 그가 사망한 내자동 자택 주소는 1937년 7월 22일, 일제 강점기 종로경찰서에 국방헌금 1만 원을 헌납했을 당시의 주소와 동일하다. 1948년 김승학이 작성한 친일파 명단에 이름이 올랐으며,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경제 부문에도 수록되었다.

3. 친일 행적 논란

1937년 7월 22일 일제 강점기 종로경찰서에 국방 헌금 1만원을 헌납했다. 이때 헌납자 성명과 주소(서울 종로구 내자동 167-2)는 1981년 10월 26일 사망 당시 그의 주소와 일치한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1948년 김승학이 작성한 친일파 명단에 이름이 올랐으며,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경제 부문에도 포함되었다.

4. 가족 관계

* 조부: 김홍기(金弘基)
* 부친: 김윤석(金潤錫)
* 모친: 송은석(宋恩錫) (1886년 10월 7일 ~ 1972년 12월 4일) - 1950년 4월 자하문 밖 토지 13,645평을 이화학당(이화여자대학교)에 기부하였다.
* 자녀
** 3남: 김사홍(金士鴻)
* 손녀: 이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