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로
1. 개요
김약로는 조선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지평, 정언, 교리, 부교리, 시독관, 수찬, 검토관, 부수찬, 이조좌랑, 헌납, 응교, 부응교, 시강관, 동부승지, 참찬관, 승지, 대사성, 대사간, 부제조, 호조참의, 관리사, 개성유수, 공조참판, 병조참판, 예조참판, 평안도 관찰사, 대사헌, 호조판서, 선공감제조, 세자빈객, 병조판서, 약방제조, 우참찬,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이후 호조판서, 공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경기도 관찰사로 재직 중 우의정에 올랐으며, 좌의정, 내국도제조, 사복시도제조 등을 겸임했다. 시호는 충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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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호조참의 -
이경억
이경억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1644년 문과 장원 급제 후 효종과 현종 시대에 걸쳐 요직을 역임하며 우의정과 좌의정까지 올라 국정을 총괄했고, 시호는 문익이다. -
조선의 호조참의 -
유홍 (15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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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이조좌랑 -
김제남 (1562년)
김제남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공을 세웠고, 인목왕후의 아버지로서 돈녕부도정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광해군 때 이이첨의 모함으로 사사되었으며, 인조반정 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원주에 사당과 신도비가 있는, 서인 세력의 정치적 음모와 광해군 시대 폭정의 비극적 사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
조선의 이조좌랑 -
유홍 (15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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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공조참판 -
심연원
심연원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영의정까지 올랐고, 을사사화 때 위사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손녀가 명종의 비 인순왕후가 되면서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고 심의겸, 심충겸 형제가 서인의 영수로 활동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
조선의 공조참판 -
신개
신개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태종과 세종 시대에 걸쳐 공조판서, 예문관대제학, 의정부 우의정 및 좌의정 등 요직을 역임하며 간쟁과 직언을 통해 국정 운영에 큰 영향을 미쳤고, 사후 세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인재문집》이 있다.
2.1. 관직 생활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승문원정자를 시작으로 지평, 정언, 교리, 부교리, 시독관, 수찬, 검토관, 부수찬, 이조좌랑, 헌납, 응교, 부응교, 시강관을 지냈다. 동부승지, 참찬관, 승지, 대사성, 대사간, 부제조, 호조참의, 관리사를 거쳐 개성유수, 대사간, 공조참판, 병조참판, 예조참판, 동지경연사,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했다. 이후 대사헌, 호조판서, 선공감제조, 세자빈객, 병조판서, 약방제조, 우참찬, 공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 지경연사, 판의금부사를 거쳤다. 다시 호조판서, 공조판서, 판의금부사,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내고 경기도관찰사로 재직 중 우의정에 올랐다. 이후 좌의정이 되었으며, 내국도제조와 사복시도제조 등을 겸임하였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4. 조선 시대 우의정
김약로는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그는 동부승지, 대사성, 대사간, 호조참의 등을 역임하였고, 개성유수, 공조참판, 병조참판, 예조참판 등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다. 이후 대사헌, 호조판서, 병조판서, 우참찬, 공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특히, 호조판서를 여러 번 역임하며 국가 재정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판의금부사를 지내며 사법, 치안 분야에도 관여했다. 경기도관찰사로 재직 중 우의정에 임명되어 좌의정까지 올랐으며, 내국도제조와 사복시도제조 등을 겸임했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영조 시대 주요 우의정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