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은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로, 레프트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안산서초등학교에서 배구를 시작하여, 한봄고등학교를 거쳐 2005년 흥국생명에 입단하며 프로에 데뷔했다. 흥국생명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이끌며 MVP를 휩쓸었고, 일본, 터키, 중국 등 해외 리그에서도 활약하며 다양한 개인 및 단체 수상 경력을 쌓았다. 2012년에는 흥국생명과의 이적 분쟁을 겪기도 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하며 올림픽 3회 출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등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저서를 출간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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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2014년 그랑프리 당시의 김연경
이름
김연경
별명
연냄이 연남이 보거스 욘사마 연콩 킴 배구요정 우리누나 배구여제 배구황제 식빵언니 야키 The God 아시아의 가모바
김연경은 1988년 2월 26일 경기도안산시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고향은 전라남도구례군이며, 안산서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 선수였던 큰 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했다.[117]원곡중학교 3학년 때까지 키가 170cm도 안 될 정도로 작아, 3년 내내 교체 멤버로 뛰며 주로 세터나 리베로로 경기에 나섰다.[117]한봄고등학교(구 수원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3년 동안 키가 20cm 이상 자라면서, 1학년 겨울부터 레프트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꿨다.[117]
2005년 11월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고,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에서 공격 득점 전체 3위에 올랐다.[12] 같은 해 10월에 열린 V-리그 2005~2006 시즌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했다.[118] 이후,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005년 ~ 2009년), 일본V.프리미어리그의 JT 마블러스 (2009년 ~ 2011년), 터키 리그 페네르바흐체 여자 배구단 (2011년 ~ 2017년), 중국 리그 상하이 여자 배구팀 (2017년 ~ 2018년), 터키 리그 엑자시바시 비트라(2018년 ~ 2020년)에서 활동했다. 2020년 흥국생명으로 복귀하여(2020년 ~ 2021년) 활동 후, 중국 리그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2021년 ~ 2022년)를 거쳐, 2022년 흥국생명에 재복귀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김연경은 1988년 2월 26일 경기도안산시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고향은 전라남도구례군이며, 구례에 조부모가 살고 있다.[115] 외가집은 전라남도구례군간전면에 있다.[116]안산서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 선수였던 큰 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했다.[117]원곡중학교 3학년 때까지 키가 170cm도 안 될 정도로 자라지 않아, 3년 내내 교체 멤버로 뛰며 주로 세터나 리베로로 경기에 나섰다.[117] 이때 배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만류로 한봄고등학교(구 수원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 3년 동안 키가 20cm 이상 자라면서, 1학년 겨울부터 레프트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꿨다.[117] 이때부터 "초고교급 선수"로 불리며 3학년이던 2005년 11월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고,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에서 공격 득점 전체 3위에 올랐다.[12] 2005년 10월에 열린 V-리그 2005~2006 시즌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했다.[118]
2005-06 시즌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서 뛰는 김연경
2. 2. 프로 데뷔 및 흥국생명 시절 (2005년 ~ 2009년)
한국전력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2005년 드래프트에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같은 해 17세의 나이로 한국 대표팀에 선발되어 2005년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컵에서 공격 성공률 부문 전체 선수 중 3위를 기록하며 활약했다.[12] 2005-06시즌 한국 V리그에서는 팀 우승에 기여하며 MVP와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전 시즌 최하위 팀이었던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맹활약으로 프로화 이후 처음으로 통합 우승을 달성했고, 김연경은 프로 데뷔 첫 해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 결정전 MVP를 비롯하여 신인상,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 트리플 크라운까지 모두 휩쓸었다.
그러나 데뷔 첫 해의 지나치게 많은 공격 시도 탓에 2006년 5월 김연경은 오른쪽 무릎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119] 수술 후 재활이 완벽히 끝나기도 전에 김연경은 세계 선수권과 도하 아시안 게임의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경기를 치렀고, 도하 아시안 게임 도중에는 오른쪽 무릎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왼쪽 발바닥 통증에 시달리기도 했다.[120] 아시안 게임 직후 열린 2006-07 시즌에서는 수술 여파를 떨쳐내고 소속 팀에서 활약하며 흥국생명의 2년 연속 통합 우승에 기여했다.
2006-07시즌 한국 V리그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하지만 2006-07 시즌 이후에도 왼쪽 무릎 연골 파열로 인한 부상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재활을 마치자마자 2007년 배구 월드컵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거의 모든 경기를 뛰었으며, 월드컵 일정을 마치고 난 뒤에는 소속 팀으로 돌아와 4달 간의 2007-08 시즌을 소화해야 했다. 2007-08 시즌에서 소속 팀 흥국생명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인천 GS칼텍스에게 패하여 통합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김연경은 역대 최고의 공격 성공률인 47.59%을 기록하면서 공격상을 3년 연속 수상했고, 흥국생명을 정규리그 1위로 올리는 데에 성공하며 정규리그 MVP도 3년 연속 수상했다. 그러나 두 번째 수술 후 무리한 일정 탓에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을 앞두고 무릎 연골이 다시 파열되며 3년 연속으로 수술대에 오르고 말았다.
이처럼 부상으로 인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는 사이 김연경은 2008-09 시즌에 여자부 최초로, 남녀부 통틀어 두 번째로 V-리그 득점 2,000점과 공격 득점 2,000점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소속팀 흥국생명은 이 시즌에 감독 교체와 잦은 선수 부상 등으로 힘든 시즌을 치렀고, 정규 시즌을 3위로 마감했다. 그러나 KT&G와의 NH농협 2008-09 V-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자신의 시즌 개인 최다득점인 40점을 기록하였고, 챔피언 결정전 진출을 확정지으며 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어 1년 만에 다시 펼쳐진 GS칼텍스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4경기에서 공격 성공률 52.60%·득점 93점·수비 순위 1위 등 공수 양면에서 대활약하며 흥국생명을 1위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챔피언 결정전 MVP 기자단 투표에서 28표 중 24표를 받아 2년 만에 다시 챔피언 결정전 MVP로 선정되었다. 이어 벌어진 한·일 탑매치에서 일본의 히사미츠 스프링스와의 경기에서는 31점을 득점하였고,[121] 도레이 애로즈와의 경기에서는 24점을 기록하며 탑매치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122] 이런 활약 덕분에 상대팀인 도레이 애로즈 칸노 고이치로 감독은 "김연경의 공격력이 인상적이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123]
2. 3. 일본 V.프리미어리그 진출 (2009년 ~ 2011년)
2009년 5월, 김연경은 일본 V.프리미어리그의 JT 마블러스에 입단하며 한국 프로배구 사상 최초로 해외에 진출했다.[121][122][123]
2009-10 시즌, 김연경은 정규리그 모든 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하여 경기당 평균 24.9점을 기록하며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전년도 최하위권(10팀 중 9위)이었던 JT 마블러스는 김연경 영입 이후 개막전부터 25연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 V리그 출범 이후 2001년 NEC 레드로켓츠가 기록한 31연승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129] 2010년 2월 6일 도레이 애로즈와의 경기에서는 45득점을 기록하며 흥국생명 시절 자신이 기록한 한 경기 최다 득점(44점)을 경신했다.[130] 덴소 에어리비스의 다츠카와 미노루 감독은 김연경을 "일본에서도 100년에 한 번 나올 선수"라고 칭찬했다.[131] 정규리그 종료 후, 김연경은 총 696점으로 득점상을 받았으며, 공격 성공률 3위, 세트당 공격 성공 횟수 1위, 블로킹 10위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132]
세미파이널을 1위로 통과한 JT 마블러스는 결승에서 전년도 우승 팀 도레이 애로즈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김연경은 감투상(MIP)과 베스트6에 선정되었다.
2010-11 시즌에는 JT 마블러스의 우승을 이끌며 MVP를 수상했고, 흑조기 대회도 제패했다.
2. 4. 터키 리그 진출 및 페네르바흐체 시절 (2011년 ~ 2017년)
호세 로베르토 기마랑이스 감독은 팀 회장을 설득하여 김연경을 페네르바흐체 여자 배구단으로 영입했다. 그는 김연경이 유럽에서는 비교적 무명이었음에도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보았다.[22]
김연경은 유럽에서의 첫 시즌에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페네르바흐체 여자 배구단의 CEV 챔피언스리그 첫 우승을 이끌었다. 김연경은 토너먼트 최우수 득점자이자 MVP를 수상했고, 서브와 공격 모두 1위를 차지했다.[23][24]
디나모 카잔과의 경기 후, L'Équipe와의 인터뷰에서 김연경은 공격과 수비 모두 뛰어난 기술을 가진 "배구의 미래 마이클 조던"이라고 불렸다.[25]
2012-13 시즌에는 전 소속팀 흥국생명과의 분쟁과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올림픽 브라질과의 경기 중 반월상 연골이 파열된 후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2013 CEV컵에서 득점, 공격, 서브 부문 상위권을 유지하며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팀은 결승에서 무시나에게 패했고, 페네르바흐체 여자 배구단는 터키 리그에서 4위를 기록했다. 이 시즌은 김연경의 프로 배구 인생에서 유일하게 트로피를 따지 못한 시즌이 되었다.
2014 월드 그랑프리에서 김연경은 러시아와의 경기(한국 3-1 승리)에서 42점을 득점하며 토너먼트 최고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이 토너먼트에서 조반니 기데티는 김연경을 세계 최고라고 칭찬했다.
2015년 5월, 김연경은 터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MVP, 베스트 스코어러, 베스트 스파이커 3관왕을 달성했다.[97]
2016년 4월,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김연경은 베스트 아웃사이드 히터 상을 수상했다.
2. 5. 중국 리그 진출 (2017년 ~ 2018년)
김연경은 6시즌 동안 활동했던 페네르바흐체와의 계약을 끝내고 상하이로 이적했다.[98][99] 2017-18 시즌 상하이를 이끌고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팀에게 있어 17년 만의 쾌거였다. 결승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후,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다.
2. 6. 터키 리그 복귀 및 엑자시바시 시절 (2018년 ~ 2020년)
중국 리그에서 1년을 보낸 후, 김연경은 터키로 돌아와 에자자바시와 2년 계약을 맺었다.[32] 김연경의 합류 이후 팀은 7년 만에 터키컵과 슈퍼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9-20 시즌에는 조던 라슨(Jordan Larson)의 뒤를 이어 에자자바시의 새로운 주장이 되었다.[32]
2020년 하계 올림픽 여자 배구 아시아 지역 예선(Volleyball at the 2020 Summer Olympics – Women's Asian qualification)에서 김연경은 2020 도쿄 올림픽 진출 티켓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터키 리그에서의 과도한 피로는 조별 리그 카자흐스탄과의 경기 중 복통으로 이어졌다. 복근 파열 진단을 받고 중화 타이베이와의 준결승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태국과의 결승전에 다시 등장하여 팀의 도쿄행을 확정짓는 승리에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연경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진통제를 복용한 후 경기에 나섰다고 밝혔다.[33]
김연경의 에자자바시와의 계약이 끝난 후, 여러 언론에서는 코로나19 범유행(COVID-19 pandemic)을 고려하여 그녀가 베이징으로 갈 가능성 또는 한국으로 복귀할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다.[34]
2. 7. 흥국생명 복귀 (2020년 ~ 2021년)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엑자시바시 비트라와 계약을 해지하고 새 소속팀을 찾던 중, 김연경은 올림픽과 대표팀 동료들과의 호흡을 위해 국내 복귀를 선언했다. 6월 6일, 연봉 3.5억원에 흥국생명으로 11년 만에 복귀하였다.[35]
2. 8. 중국 리그 재진출 (2021년 ~ 2022년)
2021년, 김연경은 흥국생명을 떠나 중국 리그의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상하이 구오화 인슈어런스)와 입단 계약을 맺으며 중국 리그에 재진출했다.[98][99]
2. 9. 흥국생명 재복귀 (2022년 ~ 현재)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엑자시바시 비트라와 계약을 해지하고 새 소속팀을 찾던 중, 중국에서 거액을 제시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올림픽과 대표팀 동료들과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 국내 복귀를 선언했다. 2020년 6월 6일, 김연경은 3.5억원에 흥국생명으로 11년 만에 복귀하였다.[47]
2021년 화성 IBK 알토스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블로킹 도중 오른손 엄지손가락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를 받고 경기를 계속했다. 화성 IBK 알토스와의 세 번째 경기에서 현대건설 박미희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김연경이 테이핑한 손으로 경기에 나서기로 스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GS칼텍스 서울 KIXX와의 챔피언십 경기에서도 테이핑한 손으로 경기에 출전했다.[48]
3. 논란
김연경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알려진 논란은 없다.
3. 1. 흥국생명과의 이적 분쟁 (2012년)
김연경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공격, 블로킹, 서브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팀을 이끌었다.[49]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은 36년 만에 4강에 진출했고, 김연경은 베스트 스코어러와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4위 팀에서 최우수 선수가 선정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95][96]
2014년부터 김연경은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같은 해 월드 그랑프리 예선 라운드에서 득점 랭킹 1위를 기록했다. 2015년 8월 월드컵에서는 베스트 스코어러를 수상했다.
5. 1. 2. 개인 클럽
한국전력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2005년 드래프트에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2005-06시즌 한국 V리그에서는 팀 우승에 기여하며 MVP와 신인상을 수상했다.
2006-07시즌 한국 V리그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2007-08시즌 한국 V리그에서는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역대 최고의 공격 성공률인 47.59%를 기록하며 3년 연속 공격상을 수상했다. 2009년, 한국 V리그와 처음으로 자국에서 개최된 한·일 정상 대결에서 우승을 이끌고 MVP를 수상했다. 같은 해 5월, 김연경의 일본 V프리미어리그 JT 마블러스 입단이 발표되면서 한국 프로배구 사상 최초의 해외 이적 선수가 되었다.
2009-10 시즌 V프리미어리그에서는 세터 타케시타 가에와의 환상적인 호흡을 통해 팀을 개막 25연승으로 이끌었고, 본인 또한 득점왕에 올랐다. 결승전에서는 토레이 아로즈의 에이스 키무라 사오리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듬해인 2010-11 시즌에는 우승을 차지하며 MVP를 수상했다. 이어 흑조기 대회도 제패했다.
2011년 5월, 김연경은 JT 마블러스를 떠나 터키 리그의 페네르바흐체로 이적했다.[94]
2012년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MVP와 득점왕을 차지했다.
2015년 5월, 터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MVP, 베스트 스코어러, 베스트 스파이커 3관왕을 달성했다.[97]
2016년 4월,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김연경은 베스트 아웃사이드 히터 상을 수상했다. 2017년 6월, 중국 배구 리그의 상하이 국화인수로 이적했다.[98][99]
김연경은 한국 대표팀의 주요 득점원으로, 거의 모든 경기에서 최상위 득점 및 공격 기록을 달성했다.[36][37][38][39][40][41][42][43]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국 대표팀을 36년 만에 4강으로 이끌며 베스트 스코어러와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되었다. 4위 팀에서 최우수 선수가 선정된 것은 이례적이었다.[95][96]
2014년부터 대표팀 주장을 맡았으며, 월드 그랑프리 예선 라운드에서 득점 랭킹 1위를 기록했다. 2015년 월드컵에서도 베스트 스코어러를 수상했다.
5. 2. 2. 개인 클럽
한국전력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2005년 드래프트에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2005-06시즌 한국 V리그에서는 팀 우승에 기여하며 MVP와 신인상을 수상했다.
2006-07시즌 한국 V리그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2007-08시즌 한국 V리그에서는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역대 최고의 공격 성공률인 47.59%를 기록하며 3년 연속 공격상을 수상했다. 2009년, 한국 V리그와 처음으로 자국에서 개최된 한·일 V-리그 톱매치에서 우승을 이끌고 MVP를 수상했다. 같은 해 5월, 김연경의 일본 V프리미어리그JT 마블러스 입단이 발표되면서 한국 프로배구 사상 최초의 해외 이적 선수가 되었다.
2009-10 시즌 V프리미어리그에서는 세터 다케시타 요시에와의 환상적인 호흡을 통해 팀을 개막 25연승으로 이끌었고, 본인 또한 득점왕에 올랐다. 결승전에서는 도레이 애로즈의 에이스 기무라 사오리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듬해인 2010-11 시즌에는 우승을 차지하며 MVP를 수상했다. 이어 구로와시키 대회도 제패했다.
2011년 5월, 김연경은 JT 마블러스를 떠나 터키 리그의 페네르바흐체로 이적했다.[94]
2012년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MVP와 득점왕을 차지했다.
2015년 5월, 터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MVP, 베스트 스코어러, 베스트 스파이커 3관왕을 달성했다.[97]
2016년 4월,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김연경은 베스트 아웃사이드 히터 상을 수상했다. 2017년 6월, 중국 배구 리그의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로 이적했다.[98][99]
김연경은 한국에서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인재'''”라고 불린다. 2시즌 동안 일본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어 대부분의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 대모아이(大友愛), 카노 마이코(狩野舞子), 쿠리하라 메구미(栗原恵), 이노 아키코(井野亜季子) 등과 친분이 있으며, 김사니의 저서에서 “언젠가 같은 팀에서 함께 뛰고 싶습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JT 마블러스 시절에는 팀 동료였던 타케시타 카에(竹下佳江)를 “오바상(おばちゃん)”이라고 불렀으며, 실력뿐만 아니라 팀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해 그 성격이 매우 사랑받았다. JT를 떠나 한국으로 귀국할 당시 JT 선수 전원이 공항까지 배웅 나왔을 정도였다.
김연경은 공수 양면에서 만능이며, 리시브와 디그도 매우 뛰어나다.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조반니 귀데티는 김연경을 "러시아 선수의 체격, 미국의 파워, 한국 선수의 기술, 그리고 브라질 선수의 민첩성을 모두 갖춘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극찬하며, "지난 30년 동안 본 적 없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한국 대표팀 감독 스테파노 라바리니는 "김연경은 주장을 넘어 한국 배구의 리더"라며, "카리스마와 실력으로 항상 팀을 하나로 단결시켜 주는 훌륭한 리더이자 인격자"라고 평가했다.
2012 런던 올림픽 3·4위 결정전에서 일본에 패배한 후에는 드물게 크게 울기도 했다.[101] 2017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는 김연경이 사용하는 일본산 신발에 부착된 “대한독립만세” 로고 부분을 스티커로 가린 사실이 일본 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팀의 주축 선수로 출전하여, 준결승에서 태국에 패했지만 3·4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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