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
1. 개요
김옥은 금성고등중학교 출신으로 왕재산경음악단 피아니스트였으며,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1980년대부터 김정일의 개인 비서를 지냈으며, 고용희 사후 김정일과 동거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2009년 김정일과 정식으로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정일 사후 김정일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후 모든 공식 직책을 잃고, 2016년 숙청되어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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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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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金玉 |
| 로마자 표기 | Gim Ok |
| 출생일 | 1964년 8월 28일 |
|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배우자 | 김정일 (2004–2011) |
| 출신 학교 | 평양음악무용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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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정당 | 조선로동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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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 | 김정일의 개인 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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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음악가 -
김책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 투쟁가이자 북한의 군인, 정치인인 김책은 만주에서 항일 투쟁 후 소련에서 김일성과 함께 활동했으며, 해방 후 북한 건국에 참여하여 부수상 겸 산업상, 한국 전쟁 전선사령관을 역임했고 사후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음악가 -
최성환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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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원수 배우자 -
홍일천
홍일천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북한의 교육자이자 정치인으로, 김정일과의 결혼과 이혼 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김형직사범대학 학장을 지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원수 배우자 -
리설주
리설주는 김정은의 부인으로, 함경북도 청진시 출신으로 추정되며 중국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은하수관현악단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고, 2012년 공식적으로 소개된 후 2018년부터 '여사' 칭호를 사용하며 활발한 외교 활동을 하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치와 정부 -
조선로동당
조선로동당은 1945년 평양에서 창당되어 김일성이 북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위원장으로 추대된 후 여러 정당과의 통합을 거쳐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되었으며, 주체사상을 유일 지도 이념으로 하여 북한 사회의 모든 분야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치와 정부 -
김설송
김설송은 김정일과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에서 김정일의 비서로 활동했으며, 몰타와 유럽에서 유학하며 외국어를 배웠다.
2. 생애
1964년 출생. 아버지는 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을 지낸 김효이다. 평양의 금성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졸업 후 왕재산경음악단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1980년대부터 김정일의 개인 비서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1987년 김정일의 관리에 합류했다는 기록도 있다. 2001년경에는 국방위원회 과장에, 이후 국가방위위원회 부서장으로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한미 양국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점차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인 고용희가 사망한 이후 활동이 두드러졌다. 고용희가 자신의 아들들인 김정철과 김정은을 돌볼 인물로 김옥을 직접 추천하고 맡겼다는 설이 있다.
2006년 1월, 김정일이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였던 후진타오와 회담할 때 동행했으며, 이후 북한 내 시찰 등에도 김정일과 함께하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김정일과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2008년에는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딸을 출산했으며, 2009년경 정식으로 결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에는 중국을 방문한 대한민국의 보수 야당 자유선진당 소속 박선영 의원이 중국 고위 관계자로부터 김옥과 김정일 사이에 당시 7세 된 아들이 있다는 정보를 전달받기도 했다.
2008년 9월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을 당시, 김옥이 김정일의 병세를 가장 잘 아는 인물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고용희가 맡긴 아들들과의 관계 때문에 후계 구도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었다.
2009년 4월 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를 전후하여 아버지 김효가 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는 2004년 고용희 사망 직후 경질된 리봉수의 후임으로, 한동안 공석이었던 자리였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김옥은 공식 장례식 위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2월 14일 "번영하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기여한 공로로 김정일훈장 수훈자 명단(총 132명)에 포함되었으며, 이때 북한 매체를 통해 처음으로 실명이 보도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의료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인 2013년 7월, 김옥은 모든 공식 직책을 잃었다. 2016년 7월 초,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자유아시아방송은 김옥이 가족들과 함께 숙청되어 노동교화소로 보내졌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중국의 한 사업가가 방북 중 조선노동당 간부에게 들은 내용을 근거로 한 것으로, 숙청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김옥의 남동생 김균이 누나의 권세를 등에 업고 오만하게 행동한 것이 국가안전보위부를 통해 김정은에게 보고되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한 김옥의 존재가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 우상화나 부인 리설주, 여동생 김여정의 정치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숙청의 배경으로 분석되었다. 실제로 남동생 김균은 2011년 김일성종합대학 제1부총장(총장대행)에 임명되었으나 2013년 10월 갑자기 해임되었고, 아버지 김효 역시 2014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에서 재선되지 못했다.
3. 권력과 영향력
1980년대부터 김정일의 개인 비서로 활동했으나,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평양 음악 무용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왕재산경음악단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김정일의 셋째 부인인 고용희가 사망한 이후 김옥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김옥을 김정일에게 추천한 사람이 고용희였으며, 고용희는 사망 직전 자신의 아들들인 김정철과 김정은을 김옥에게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1월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후진타오와의 회담이나 북한 내부 시찰 등 김정일의 공식 활동에 동행하는 모습이 확인되면서 존재감이 부각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김정일과 동거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08년 9월부터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이 불거지면서 김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김정일의 병상을 가까이에서 지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후계자 결정 과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마커스 놀랜드 박사는 김옥을 "김정일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며 "김정일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다. 일부에서는 과거 중화인민공화국의 장칭이나 중화민국의 쑹메이링처럼 김옥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김옥의 영향력은 그의 가족에게도 미쳤다. 2009년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 선거에서 아버지 김효가 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으로 선출되었는데, 이는 김옥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당 재정경리부 부부장 자리는 고용희 사망 직후 전임자 리봉수가 경질된 이후 공석이었다.
김정일 사후인 2012년 2월, 김옥은 "번영하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기여한 공로로 다른 131명과 함께 김정일훈장을 받았다. 이는 북한 매체에서 김옥의 실명이 처음으로 보도된 사례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은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인 2013년 7월경 모든 공식 직책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7월,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자유아시아방송은 김옥과 그의 가족이 숙청되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숙청 배경으로는 김옥의 남동생 김균(김규은)의 월권 행위와 오만한 태도가 국가안전보위부를 통해 김정은에게 보고된 점, 그리고 김옥의 존재가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 우상화 작업이나 부인 리설주, 여동생 김여정의 정치 활동에 부담이 되었을 수 있다는 점 등이 거론되었다. 실제로 남동생 김균은 2011년 김일성종합대학 제1부총장에 임명되었으나 2013년 10월 해임되었고, 아버지 김효 역시 2014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에서 재선되지 못했다.
3.1. 고용희 암살설 (논란)
2009년 김정일의 다섯째 부인인 김옥이 네 번째 부인 고용희가 탄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조작하여 암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는 김옥 측근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으며, 김옥 본인이 이를 실토했다는 내용이다. 고용희는 실제로 2004년에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같은 해 5월 26일 프랑스의 한 병원에서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은 6월 초 북한에서 치러졌다.
고용희는 사망하기 직전 김옥에게 아들인 김정철과 김정은을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4. 김정은 시대의 몰락
김정일 사후, 김옥은 "번영하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31명의 다른 인사들과 함께 김정일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는 2012년 2월 14일에 발표되었으며, 북한 매체를 통해 김옥의 실명이 처음으로 공개된 사례이기도 하다. 2012년 9월에는 독일 베를린으로 의료 치료를 받으러 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은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김옥의 정치적 입지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2013년 7월, 그녀는 맡고 있던 모든 공식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김옥 본인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들도 연이어 권력에서 밀려났다. 김일성종합대학 제1부총장이었던 남동생 김균은 김정은 집권 직후인 2013년 10월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났고, 조선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을 지낸 아버지 김효 역시 2014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에서 선출되지 못했다.
2016년 7월 초,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자유아시아방송은 김옥이 가족들과 함께 숙청되어 노동교화소 또는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한 중국인 사업가가 북한 방문 중 조선노동당 간부로부터 들은 정보에 근거하여, 숙청의 결정적인 계기는 김옥의 남동생 김균이 누나의 권세를 믿고 저지른 월권 행위와 오만한 태도였다고 한다. 국가안전보위부가 이러한 사실을 김정은에게 보고하면서 숙청이 집행되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나 부인 리설주, 여동생 김여정 등의 정치적 활동에 김옥의 존재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숙청의 배경으로 고려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