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곤
1. 개요
김점곤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며, 이후 대학교수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1962년 경희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국제정치학을 가르쳤으며, 부총장을 역임하고 명예교수로 활동했다. 한국 전쟁에서 1사단 12연대장, 9사단장, 6사단장 등을 역임하며 다부동 전투, 평양 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전했다. 1962년 소장으로 예편 후에는 학자로서 활동하며, 2014년 노환으로 별세하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 씨명 | 김점곤 |
|---|---|
| 현지어 표기 | 金點坤 |
| 본관 | 김해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 |
| 사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
| 출생일 | 1923년 4월 15일 |
| 사망일 | 2014년 9월 28일 (91세)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 303호 |
| 소속 | 일본 제국 육군, 대한민국 육군 |
|---|---|
| 복무 기간 | 일본 제국 육군, 대한민국 육군 (1946년 ~ 1962년) |
| 최종 계급 | 일본 제국 육군 소위, 대한민국 육군 소장 |
| 근무 | 육군본부 |
| 지휘 | 제1보병사단 제12연대 제9보병사단 제6보병사단 육군보병학교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중일 전쟁 한국 전쟁 영변 전투]] |
| 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4회) 충무무공훈장 (4회) 화랑무공훈장 (3회) 국민훈장 모란장 보국훈장 미국 은성훈장 미국 동성훈장 미국 훈공장 (2회) |
| 경희대학교 교수 국방부 촉탁위원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경희대학교 평화연구원 명예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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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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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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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출생 -
잭 킬비
잭 킬비는 미국의 전자 공학 기술자이자 집적 회로의 공동 발명가로, 1958년 단일 반도체 재료에 회로 부품을 집적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1959년 최초의 집적 회로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으며,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1923년 출생 -
밥 바커
밥 바커는 《진실 혹은 결과》와 《정가는 얼마일까요》를 진행하며 큰 인기를 얻은 미국의 텔레비전 게임 쇼 진행자이자, 은퇴 후 동물 권리 운동가로 활동하며 동물 보호를 위한 기부와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문 -
박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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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문 -
서영제
서영제는 검사 출신 변호사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변호사 활동과 함께 한솔제지 사외이사, 충남대학교 법학대학원장, 세종대학교 감사를 지냈다.
2. 생애
金點坤중국어은 1957년 육군 정보참모부장, 연합참모본부장을 역임하고 1961년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수석대표, 국방부 차관보에 임명되었다가 1962년 소장 계급을 끝으로 전역했다.
전역 직후 경희대학교 교수로 채용되어 국제정치학을 담당했으며, 교수, 대학원장을 거쳐 1980년에는 경희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1987년 교수 퇴직 이후 경희대 명예교수 및 경희대학교 평화연구원 명예원장으로 활동했다.
2014년 9월 28일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졌고,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군 복무
金點坤중국어은 1923년 4월 15일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자퇴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 제1고등학원을 졸업한 뒤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 진학했다.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하여 간부후보생으로 베이징에서 1년 6개월 동안 특수교육을 받고 중국 허베이성 탕산 부근과 톈진 등 화북지방에서 북지나 방면군 소위로 복무하였다.
1945년 중국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귀국하여 1946년 서울대학교 법문학부에 2주간 다니다가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육사) 1기로 입교하여 임관했다. 춘천 8연대의 경비중대장(중위)으로 근무할 당시 육사 2기로 임관한 박정희 소위가 소대장으로 휘하에 있었는데, 이때의 인연으로 1949년 숙군 당시 박정희 구명에 참여하였다. 1948년 통위부장 보좌관으로 근무하다 여순사건 반군 진압을 위한 임시사령부 작전참모로 참전했다. 진압 후 제5여단에서 중령으로 진급했다. 1950년 2월 전남 광주에서 여단에서 사단으로 승격한 5사단 신병 교육대대장을 역임했다.
2.2. 한국전쟁 참전
1950년 5월 15일 제1사단 12연대 부연대장에 임명되었고, 6월 25일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에 취임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6월 26일 제1사단 제12연대로 다시 배속되고 연대장으로 보직 변경되어 파주, 문산에서부터 싸웠다. 1사단 12연대장으로서 다부동 전투, 평양 전투 등 낙동강 전선 방어와 국군의 진격전, 중공군 참전 이후 철수전 등 여러 전투에서 싸웠다.
1946년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육사) 1기로 임관했다. 춘천 8연대의 경비중대장(중위)으로 근무할 당시 육사 2기로 임관한 박정희 소위가 소대장으로 휘하에 있었는데, 이때의 인연으로 1949년 숙군 당시 박정희 구명에 참여하였다. 1948년 통위부장 보좌관으로 근무하다 여순사건 반군 진압을 위한 임시사령부 작전참모로 참전했고, 진압 후 제5여단에서 중령으로 진급했다. 1950년 2월엔 전남 광주에서 여단에서 사단으로 승격한 5사단 신병 교육대대장을 역임했다.
1950년 6월 10일,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에 임명되었고, 당시 참모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6월 25일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급히 부임했다. 그러나 제1사단장이었던 백선엽 대령이 제12연대장에 김점곤을 요청하여 전장에 착임하여, 궤멸된 연대를 재건하면서 분전했다. 8월의 다부동 전투에서의 유학산 방어, 9월의 공세 전환 시에서의 간극 돌파, 평양 진공 시의 보전 공동부대 지휘관으로 돌진 및 동평양 제일 진입, 숙천·순천 전투, 중국 인민지원군 개입 시의 운산 전투, 크리스마스 공세 시의 태천 공격 등에서 활약했다.
1951년 4월 중공군 춘계공세 당시 구파발 부근에서 전투중에 부상을 입어 6개월 동안 부산 육군 병원에 입원했다. 같은 해 11월에 백야전전투사령부(백선엽 소장)가 창설되면서 그 참모장에 임명되어, 지리산 일대의 남부군 소탕에 기여했다.
1952년 4월, 제2군단이 재건되고, 백선엽 중장이 군단장에 취임하면서 동 참모부장, 후에 동 참모장, 준장 임명. 같은 해, 제9사단장이 되었다. 1953년 1월, 인사국장. 6월, 제6사단장. 휴전협정 이후 1954년 제1군사령부 참모장, 1955년 육군 소장, 1956년 육군보병학교 교장이 되었다.
2.3. 한국전쟁 이후
1950년 5월 15일 제1사단 12연대 부연대장에 임명되었고, 6월 25일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에 취임했다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6월 26일 제1사단 제12연대로 다시 배속되고 연대장으로 보직 변경되어 파주, 문산에서부터 싸웠다. 1사단 12연대장으로서 다부동 전투 등 낙동강 전선 방어 전투 이후 평양 전투 등 국군의 진격전과 중공군 참전 이후 철수전 등 여러 전투에서 싸웠다. 1951년 중공군 춘계공세 당시 구파발 부근에서 전투중에 부상을 입어 부산 육군병원에서 치료받고 1951년 말에 백야전사령부 참모장으로 복귀하여 백선엽을 보좌하였다. 1952년 준장으로 9사단장에 임명되었고, 육군 인사국장, 6사단장을 역임했다. 휴전협정 이후 1954년 제1군사령부 참모장, 1955년 육군 소장, 1956년 육군보병학교 교장이 되었으며, 1957년 육군 정보참모부장, 연합참모본부장을 거쳐 1961년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수석대표, 국방부 차관보에 임명되었다가 1962년 소장 계급을 끝으로 전역했다.
김점곤의 한국전쟁 이후 군 경력은 다음과 같다.
| | 내용 | |
|---|---|
| 1950년 5월 15일 | 제1사단 12연대 부연대장 |
| 1950년 6월 25일 |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 |
| 1950년 6월 26일 | 제1사단 제12연대장 (한국 전쟁 발발로 백선엽 대령의 요청) |
| 1951년 | 중공군 춘계공세 중 부상, 부산 육군병원 입원 |
| 1951년 말 | 백야전사령부 참모장 (백선엽 소장 보좌) |
| 1952년 | 준장, 제9사단장 |
| 1953년 1월 | 육군 인사국장 |
| 1953년 6월 | 제6사단장 |
| 1954년 | 제1야전군 참모부장 (백선엽 대장) |
| 1954년 6월 | 제1야전군 참모장 |
| 1955년 1월 | 육군 소장 |
| 1956년 3월 | 육군보병학교 교장 |
| 1957년 7월 |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차장 |
| 1959년 3월 | 연합참모본부장 |
| 1959년 7월 | 헌병부사령관 |
| 1960년 | 연합참모본부장 |
| 1961년 9월 |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대표 |
| 1961년 10월 | 국방부 차관보 |
| 1962년 |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차장 |
2.4. 학자 및 교육자로서의 삶
1923년 전라남도 광주 양림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김씨이다. 광주사범학교 부속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사범학교 심상과에 입학했다. 1년 수료 후, 고졸 자격 시험에 합격하고 제1 와세다 고등학원에 유학했다. 졸업 후,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 진학했다.
1962년 3월 예비역으로 편입한 후 동국대학교 사학과, 경희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경희대학교 정경대학 교수 및 김점곤 안보·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정책 평가 교수로 활동했다.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95년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회장을 역임했다. 1997년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명예회장, 1999년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고문을 역임했다.
3. 학력
* 1946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 1947년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 졸업
* 1949년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졸업
* 1951년 대한민국 육군 포병학교 졸업
* 1953년 동국대학교 사학과 학사
* 1957년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 학사
* 1960년 대한민국 국방대학원 행정학 석사
* 1961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1967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역사학
* 1972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4. 상훈
5. 저서
* Korean War(1950 - 1953)영어 (경희대 평화연구원, 2000년)
* 《한국동란》 (광명출판사, 1973년)
* 《한국전쟁과 노동당 전략》 (박영사, 1973년, 198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