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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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종대(1908년 ~ 1987년)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한국 개신교계에서 활동한 목회자이다. 전라북도 무주 출신으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남원읍교회 목사,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서기 및 총무를 역임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친일 행적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광복 후 미군정 관제국장으로 활동하며 종교 재산 인수에도 관여했다. 한국 전쟁 중 서울에서 조선인민군 환영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이후 부역 혐의는 받지 않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 서울장로회신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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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목회자)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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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이름 | 김종대 |
출생일 | 1909년 |
출생지 | 대한제국 전라북도 무주 |
사망일 | 1989년 (81세) |
사망지 | 대한민국 전라북도 완주 |
본관 | 김해(金海) |
종교 | 유교(성리학)→개신교(장로회) |
정당 | 무소속 |
경력 | |
경력 | 조선총독부 기독교행정교육특보비서관 조선인민공화국 총리 기독교행정교육특보비서관 진보당 대표상임위원(1956년) 대한기독공보사 사장(1968년~1975년) |
학력 | |
학력 | 1939년 평안남도 평양신학교 전문학사 |
웹사이트 |
2. 생애
김종대는 전라북도 무주 출신으로, 호는 산남(山南)이다. 어릴 적 보이열 선교사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전주신흥학교 중등과정을 마치고 금산 육영학원에서 교사로 일했다. 이후 전주성경학교를 거쳐 전도사가 되었고, 진안군에 갈현교회를 세웠으며, 1931년 장수읍교회 전도사가 되었다. 1933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았다. 남원읍교회 목사로 시무 중, 1942년 제31회 조선예수교장로교 총회에서 서기로 선출되었고, 이듬해 총회 총무로 발탁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요 등 조선총독부의 종교 황민화 정책에 부응하여 일본기독교 장로교단 총무국장직을 맡는 등 친일 행위를 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배은희, 함태영 등과 장로교 총회 재건에 참여했고, 미군정의 지원을 받았다. 미군정 관제국장으로 일본인의 종교재산을 인수하는 일에 참여했다. 한국 전쟁 중에는 조선인민군 환영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이후 안동교회를 거쳐 은광교회에서 1979년까지 목회 활동을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 서울장로회신학교 이사장, 한국기독공보사 사장, 방파선교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2. 1. 초기 생애와 목회 활동
전라북도 무주 출신이다.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어릴 때 전라북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보이열의 전도를 받고 교인이 되었다.보이열의 추천으로 전주신흥학교 중등과정을 이수하고 인근 금산의 육영학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이후 전주성경학교에 진학하여 전도사가 되었고 진안군에 갈현교회를 개척했으며, 1931년에는 장수읍교회 전도사가 되었다. 1933년에는 보이열의 추천으로 평양신학교에 진학했고, 휴학과 복학 끝에 1939년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남원읍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고, 1942년 제31회 조선예수교장로교 총회에서 서기로 선출되었다. 34세의 젊은 나이에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 이듬해 총회 총무로 발탁되었다.[2]
2. 2. 일제 강점기 활동
김종대는 일제 강점기 말기 전북노회 회장과 총회 간부를 지내면서 친일 행적을 보였다. 일본기독교 장로교단 총무국장직을 맡았고,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요, 일본어 사용 등 조선총독부의 종교 황민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2]1941년 《장로회보》에 기고한 〈조선기독교의 진로〉라는 글에서는 "종교인도 국민이므로 국법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사도 바울이 전도를 위해 로마 제국 시민권을 갖고 로마식 이름으로 개명했다거나 신약성서가 아람어가 아닌 헬라어로 기록된 사실 등을 성경에서 인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했다.[2]
2. 3. 광복 이후 활동
1945년 광복 후, 배은희, 함태영 등과 함께 장로교 총회 재건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미군정의 후원을 받았다.[2] 미군정 관제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일본인의 종교재산을 인수하는 일에도 참여했는데,[2] 일본기독교가 세운 경성교회 건물을 인수해 교회를 운영하고, 천리교 건물 등을 접수해 신학교를 세우기도 했다.[2]한국 전쟁 때는 서울을 점령한 조선인민군을 환영하는 개신교 행사에 장로교 대표로 참가해 설교를 하기도 했으나, 인민군 후퇴 시 납북되지도 않고 이후 부역 혐의를 받지도 않고 살아 남았다.[2] 안동교회에서 시무하다가 1962년 은광교회로 부임하여 1979년까지 근무했고,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2] 서울장로회신학교 이사장, 한국기독공보사 사장, 방파선교회 초대 회장직도 역임했다.[3]
2. 4. 한국 전쟁 전후 활동
1945년 광복 후 1947년에 배은희, 함태영 등과 함께 장로교 총회 재건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미군정의 후원을 받았다. 미군정 관제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일본인의 종교재산을 인수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일본기독교가 세운 경성교회 건물을 인수해 교회를 운영하고, 천리교 건물 등을 접수해 신학교를 세우기도 했다.[2]한국 전쟁 때는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 개신교 행사에 장로교 대표로 참가해 설교를 하기도 했으나, 인민군 후퇴 시 납북되지도 않고 이후 부역 혐의를 받지도 않고 살아 남았다.[2] 안동교회에서 시무하다가 1962년 은광교회로 부임하여 1979년까지 근무했고,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서울장로회신학교 이사장, 한국기독공보사 사장, 방파선교회 초대 회장직[3] 도 역임한 바 있다.
3. 논란 및 평가
김종대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에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종교 부문에 선정되었다.[4]
은평구 불광동의 은광교회는 김종대가 오랫동안 재직했던 곳으로, 부속 건물을 주민들에게 개방하여 도서관으로 운영하면서 '김종대 목사 기념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4]
3. 1. 친일 행적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종교 부문에 선정되었다.[4]김종대가 오랫동안 재직했던 은평구 불광동의 은광교회는 부속 건물을 주민들에게 개방하여 도서관으로 운영하면서, '김종대 목사 기념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4]
3. 2. 한국 전쟁 중 행적
김종대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에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종교 부문에 선정되었다.[4]4. 사후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에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종교 부문에 선정되었다.[4]
김종대가 오랫동안 재직했던 은평구 불광동의 은광교회는 부속 건물을 주민들에게 개방하여 도서관으로 운영하면서, '김종대 목사 기념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4]
참조
[1]
웹인용
교회 100년사 - 제4장 전시체제 강화로 교계가 고통받다 (1930~1945)
https://web.archive.[...]
전주서문교회
2008-01-04
[2]
뉴스
김영주 새문안교회 3대 담임목사 추모예배와 그 의미
https://web.archive.[...]
새문안
2004-09-01
[3]
뉴스
'"순교의 피가 흐르는 방파(邦播)선교회" - 방파선교회 총무 김영곤 목사(호산나선교회 총무) 인터뷰'
http://www.newspower[...]
뉴스파워
2007-09-21
[4]
뉴스
책벌레 이웃 다 내게로 오라
http://www.hani.co.k[...]
한겨레
200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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