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라 국왕
1. 개요
나바라 국왕은 나바라 왕국을 통치했던 군주들을 의미한다. 나바라 왕국은 이니고 왕조, 히메네스 왕조, 샹파뉴 왕조, 카페 왕조, 에브뢰 왕조, 트라스타마라 왕조, 푸아 왕조, 알브레 왕조, 부르봉 왕조로 이어졌다. 1512년 이후에는 스페인과 프랑스로 분할되었으며, 현재 스페인 국왕, 프랑스의 앙주 공작, 칼라브리아 공작 등이 나바라 왕위를 주장하고 있다.
| 국가 | 나바라 왕국 |
|---|---|
| 존속 기간 | 824년 ~ 1841년 |
| 위치 | 피레네산맥 양쪽 |
| 수도 | 팜플로나 (주요) 상가사 에스테야 올리테 타팔라 |
| 언어 | 바스크어 라틴어 오크어 나바라-아라곤어 |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 정부 형태 | 군주제 |
|---|
| 건국 | 824년 |
|---|---|
| 프랑스 합병 | 1512년 |
| 스페인 합병 | 1841년 |
| 이니고 아리스타 | 824년 - 851/852년 |
|---|---|
| 가르시아 이니게스 | 851/852년 - 882년 |
| 포르투넬로 히메네스 | 882년 - 905년 |
| 산초 1세 가르세스 | 905년 - 925년 |
| 가르시아 산체스 1세 | 925년 - 970년 |
| 산초 2세 가르세스 | 970년 - 994년 |
| 가르시아 산체스 2세 | 994년 - 1000년 |
| 산초 3세 가르세스 | 1004년 - 1035년 |
| 가르시아 산체스 3세 | 1035년 - 1054년 |
| 산초 4세 가르세스 | 1054년 - 1076년 |
| 라미로 1세 | 1063년 - 1064년 |
| 산초 1세 라미레스 | 1076년 - 1094년 |
| 페드로 1세 산체스 | 1094년 - 1104년 |
| 알폰소 1세 엘 바탈라 | 1104년 - 1134년 |
| 가르시아 라미레스 | 1134년 - 1150년 |
| 산초 5세 가르세스 | 1150년 - 1194년 |
| 산초 6세 엘 푸에르테 | 1194년 - 1234년 |
| 테오발도 1세 | 1234년 - 1253년 |
| 테오발도 2세 | 1253년 - 1270년 |
| 엔리케 1세 | 1270년 - 1274년 |
| 후아나 1세 | 1274년 - 1305년 |
| 펠리페 1세 | 1285년 - 1305년 |
| 루이스 1세 | 1305년 - 1316년 |
| 후안 1세 | 1316년 |
| 펠리페 2세 | 1316년 - 1322년 |
| 카를로스 1세 | 1322년 - 1328년 |
| 후아나 2세 | 1328년 - 1349년 |
| 펠리페 3세 | 1329년 - 1343년 |
| 카를로스 2세 | 1349년 - 1387년 |
| 카를로스 3세 | 1387년 - 1425년 |
| 블랑카 1세 | 1425년 - 1441년 |
| 후안 2세 | 1425년 - 1479년 |
| 레오노르 1세 | 1479년 |
| 프란시스코 포에부스 | 1479년 - 1483년 |
| 카타리나 1세 | 1483년 - 1517년 |
| 후안 3세 | 1484년 - 1516년 |
-
나바라 국왕 -
루이 10세
루이 10세는 프랑스와 나바라의 왕으로, 나바라 왕국을 상속받아 통치하다 프랑스 왕으로 재임하며 귀족과의 갈등, 플랑드르 문제, 왕실 수입 증대 개혁을 추진했고 농노제 폐지 칙령과 유대인 귀환 허용 칙령을 발표했으나 테니스 경기 후유증으로 사망 후 왕위 계승 분쟁이 발생했다. -
나바라 국왕 -
필리프 5세
필리프 5세는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와 나바라 여왕 후아나 1세 사이에서 태어나 형 루이 10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여성의 왕위 계승을 배제하는 원칙을 확립하고 플랑드르와의 분쟁 해결, 왕실 재정 및 행정 개혁 추진, 십자군 운동 관여 등의 활동을 했다. -
프랑스의 역사 -
삼부회
삼부회는 프랑스에서 성직자, 귀족, 평민 대표로 구성된 신분제 의회로, 국왕의 과세 동의 기능을 수행하며 왕권 강화에 기여했으나, 프랑스 혁명 직전 소집 후 의결 방식 갈등으로 국민 의회 결성되어 해체되고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
프랑스의 역사 -
프랑스 제4공화국
프랑스 제4공화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립되어 의회 권한이 강력한 양원제 공화정 체제였으나, 정치적 불안정과 식민지 문제에 직면하여 군부 쿠데타로 붕괴하고 프랑스 제5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
군주 목록 -
잉글랜드 국왕
잉글랜드 국왕은 잉글랜드 왕국을 통치했던 군주를 의미하며, 웨섹스 왕조의 에그버트 이후 잉글랜드 전역에 군주권이 행사되었고, 1707년 연합법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대체되었다. -
군주 목록 -
바르셀로나 백작
바르셀로나 백작은 카탈루냐 지역을 다스린 역사적 작위로, 프랑크 왕국에서 시작하여 세습 작위로 독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아라곤과의 결혼을 통해 아라곤 연합왕국 형성에 기여했으며, 현재는 스페인 국왕이 계승하는 작위이다.
- 1. 개요
- 2. 이니고 왕조 (824년?~905년)
- 3. 히메네스 왕조 (905년~1234년)
- 3.1. 산초 1세 가르세스 (905년~925년)
- 3.2. 히메노 가르세스 (925년~931년)
- 3.3. 가르시아 1세 산체스 (931년~970년)
- 3.4. 산초 2세 가르세스 아바르카 (970년~994년)
- 3.5. 가르시아 2세 산체스 (994년~1000/1004년)
- 3.6. 산초 3세 대왕 (1004년~1035년)
- 3.7. 가르시아 3세 산체스 (1035년~1054년)
- 3.8. 산초 4세 가르세스 (1054년~1076년)
- 3.9. 가르시아 4세 라미레스 (1134년~1150년)
- 3.10. 산초 6세 (1150년~1194년)
- 3.11. 산초 7세 (1194년~1234년)
- 4. 샹파뉴 왕조 (1234년~1284년)
- 5. 카페 왕조 (1284년~1441년)
- 6. 트라스타마라 왕조 (1425년~1479년)
- 7. 푸아 왕조 (1479년~1517년)
- 8. 알브레 왕조 (1484년~1572년)
- 9. 부르봉 왕조 (1572년~1620년)
- 10. 상 나바라 (알타나바라)
2. 이니고 왕조 (824년?~905년)
이니고 가문은 824년경 프랑크 왕국의 권위에 반기를 들어 나바라(팜플로나) 왕국의 토대를 구축했다. 이 왕조는 프랑크 왕국(카롤링거 왕조)에 대항하여 바스크족의 독립을 쟁취하였다. 코르도바 측 자료는 이들을 코르도바의 통제를 벗어난 기독교 왕국을 지칭하는 방식이 아닌, 때때로 반란을 일으키는 가신으로 언급했다. 이들은 905년에 반(反)코르도바 연합이 후계 왕조인 히메네스 왕조를 권력에 앉히면서 대체되었다.
| 이름 | 초상 | 출생 | 결혼 | 사망 |
|---|---|---|---|---|
| 이니고 아리스타 824년?–851/2년 | 851/2년 | |||
| 가르시아 이니게스 851/2년–882년 | 이니고 아리스타의 아들 | 882년 | ||
| 포르툰 가르세스 882년–905년 | 가르시아 이니게스의 아들 | 아우리아 | (905년 폐위) | |
2.1. 이니고 아리스타 (824년?~851/852년)
이ñigo 아리스타스페인어는 나바라 왕국의 건국자이다. 824년경 프랑크 왕국(카롤링거 왕조) 세력이 이 지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에 대항하여 봉기하면서 나바라 왕국(팜플로나)을 건국한 것으로 여겨진다. 코르도바 측 자료는 그들을 코르도바의 통제를 벗어난 기독교 왕국을 지칭하는 방식이 아닌, 때때로 반란을 일으키는 가신으로 언급했다.
| 이름 | 초상 | 출생 | 결혼 | 사망 |
|---|---|---|---|---|
| 이니고 아리스타 824?–851/52 | 851/52 |
2.2. 가르시아 이니게스 (851/852년~882년)
가르시아 이니게스는 이니고 아리스타의 아들로, 851년 또는 852년에 나바라 왕국의 왕위를 계승했다. 우라카와 결혼하여 5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882년에 사망했다.
| 이름 | 초상 | 출생 | 결혼 | 사망 |
|---|---|---|---|---|
| 가르시아 이니게스 851/852년~882년 | 이니고 아리스타의 아들 | 우라카 자녀 5명 | 882년 |
2.3. 포르툰 가르세스 (882년~905년)
가르시아 에네코이츠의 아들인 포르툰 가르세스는 882년부터 905년까지 나바라 왕국을 다스렸다. 그의 아내는 아우리아였고, 슬하에 5명의 자녀를 두었다. 905년, 반(反)코르도바 연합이 히메네스 왕조를 권력에 앉히면서 포르툰 가르세스는 폐위되었고, 922년에 사망했다.
| 이름 | 초상 | 출생 | 결혼 | 사망 |
|---|---|---|---|---|
| 포르툰 가르세스 882–905 | 가르시아 에네코이츠의 아들 | 아우리아 자녀 5명 | 922 (905년 폐위) |
3. 히메네스 왕조 (905년~1234년)
905년, 이웃 세력과의 연합은 포르툰 가르세스를 수도원으로 은둔하게 만들었고,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왕조인 히메네스 왕조가 왕위에 올랐다. 이들의 통치 아래 나바라 왕국은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나바라'라는 이름은 '팜플로나'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 이름 | 초상화 | 출생 | 결혼 | 사망 |
|---|---|---|---|---|
| 산초 가르세스 1세 905년–925년 | 가르시아 히메네스와 다딜디스 데 팔랴스의 아들 | 토다 아스나레스 6명의 자녀 | 925년 12월 11일 레사 | |
| 히메노 가르세스 925년–931년 | 가르시아 히메네스와 다딜디스 데 팔랴스의 아들 | 산차 데 팜플로나 3명의 자녀 | 931년 5월 29일 | |
| 가르시아 산체스 1세 931년–970년 | 919년 산초 가르세스 1세와 토다 아스나레스의 아들 | 안드레고토 갈린데스 2명의 자녀 테레사 라미레스 데 레온 3명의 자녀 | 970년 2월 22일 51세 | |
| 산초 가르세스 2세 970년–994년 | -- | 935년 이후 가르시아 산체스 1세와 안드레고토 갈린데스의 아들 | 우라카 페르난데스 4명의 자녀 | 994년 12월 |
| 가르시아 산체스 2세 994년–1000/1004년 | 산초 가르세스 2세와 우라카 페르난데스의 아들 | Jimena Fernández스페인어 981년 4명의 자녀 | 1000/1004년 | |
| 산초 가르세스 3세 1004년–1035년 | 985년 가르시아 산체스 2세와 Jimena Fernández스페인어의 아들 | 무니아도나 데 카스티야 1010년 4명의 자녀 | 1035년 10월 18일 | |
| 가르시아 산체스 3세 1035년–1054년 | 1016년 산초 가르세스 3세와 무니아도나 데 카스티야의 아들 | 에스테파니아 데 바르셀로나 1038년 9명의 자녀 | 1054년 9월 15일 아타푸에르카 | |
| 산초 가르세스 4세 1054년–1076년 | 1039년 가르시아 산체스 3세와 에스테파니아 데 바르셀로나의 아들 | 플라센시아 1068년 3명의 자녀 | 1076년 6월 4일 Peñalén영어 | |
산초 가르세스 4세가 암살되자 나바라는 사촌 카스티야 왕 알폰소 6세와 아라곤 왕 산초 1세의 침략을 받았고, 후자가 나바라 왕이 되어 반 세기 동안 아라곤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 이름 | 초상화 | 출생 | 결혼 | 사망 |
|---|---|---|---|---|
| 산초 5세 라미레스 1076년–1094년 | 1042년 아라곤 왕 라미로 1세와 에르메신다 데 비고라의 아들 | 이자벨 데 우르헬 1065년 1명의 자녀 펠리시 데 루시 1076년 3명의 자녀 | 1094년 6월 4일 우에스카 52세 | |
| 페드로 1세 1094년–1104년 | 1068년 산초 5세 라미레스와 이자벨 데 우르헬의 아들 | 아녜스 다키텐 1086년 2명의 자녀 Berta de Aragón스페인어 1097년 자녀 없음 | 1104년 9월 28일 아란 계곡 36세 | |
| 알폰소 1세 1104년–1134년 | 1073년 산초 5세 라미레스와 펠리시 데 루시의 아들 | 우라카 데 카스티야 1109년 자녀 없음 | 1134년 9월 8일 우에스카 61세 | |
알폰소 1세의 죽음은 아라곤을 왕위 계승 위기로 이끌었고, 나바라 귀족들이 암살된 산초 4세의 증손(서형제를 매개하는 형태)을 왕위에 앉히면서 왕국의 재건 독립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3.1. 산초 1세 가르세스 (905년~925년)
산초 1세 가르세스는 905년에 이웃 세력의 연합으로 인해 이전의 왕인 포르툰 가르세스가 수도원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왕위에 올랐다. 그의 통치하에 '나바라'라는 이름이 '팜플로나'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 이름 | 출생 | 배우자 | 자녀 | 사망 |
|---|---|---|---|---|
| 산초 1세 가르세스 905–925 | 가르시아 히메네스와 다딜디스 데 팔라르스의 아들 | 토다 데 나바라 | 6명 | 925년 12월 11일 레사 |
3.2. 히메노 가르세스 (925년~931년)
히메노 가르세스는 925년부터 931년까지 나바라를 통치한 가르시아 히메네스와 다딜디스 데 팔라르스의 아들이다. 산차 데 나바라와 결혼하여 3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931년 5월 29일에 사망했다.
3.3. 가르시아 1세 산체스 (931년~970년)
산초 1세 가르세스와 토다 데 나바라의 아들인 가르시아 1세 산체스는 931년부터 970년까지 나바라를 통치했다. 그는 안드레고타 갈린데스(아라곤)와 결혼하여 2명의 자녀를 두었고, 이후 테레사 라미레스(레온)와 재혼하여 3명의 자녀를 두었다. 970년 2월 22일,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이름 | 출생 | 결혼 | 사망 |
|---|---|---|---|
| 가르시아 1세 산체스 931–970 | 919년 | 안드레고타 갈린데스 (아라곤) 2명의 자녀 테레사 라미레스 (레온) 3명의 자녀 | 970년 2월 22일 51세 |
3.4. 산초 2세 가르세스 아바르카 (970년~994년)
가르시아 1세 산체스와 안드레고타 갈린데스의 아들로 935년 이후에 태어났다. 우라카 페르난데스와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다. 994년 12월에 사망했다.
3.5. 가르시아 2세 산체스 (994년~1000/1004년)
산초 2세 가르세스 아바르카와 우라카 페르난데스의 아들이다. 981년에 히메나 페르난데스 데 세아와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다. 1000년 또는 1004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3.6. 산초 3세 대왕 (1004년~1035년)
산초 3세스페인어 (Sancho III el Mayor스페인어, 985년경 ~ 1035년 10월 18일)는 나바라 왕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군주이다. 가르시아 2세 산체스와 히메나 페르난데스 데 세아의 아들로, 1004년부터 1035년까지 나바라 왕국을 통치했다. 무니아도나 데 카스티야와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다.
3.7. 가르시아 3세 산체스 (1035년~1054년)
산초 3세 대왕의 아들인 가르시아 3세 산체스는 1035년부터 1054년까지 나바라 국왕이었다. 1038년에 에스테파니아 데 바르셀로나와 결혼하여 9명의 자녀를 두었다. 1054년 9월 15일 아타푸에르카 전투에서 사망했다.
3.8. 산초 4세 가르세스 (1054년~1076년)
가르시아 3세 산체스와 에스테파니아 데 바르셀로나의 아들인 산초 4세 가르세스는 1076년 페냐렌에서 암살당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바라는 그의 사촌들인 알폰소 6세와 산초 라미레스에게 분할 점령되었고, 산초 라미레스가 왕위에 오르면서 이후 50년 이상 아라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 이름 | 초상 | 출생 | 배우자 | 사망 |
|---|---|---|---|---|
| 산초 4세 가르세스 | 1039년 가르시아 3세 산체스와 에스테파니아 데 바르셀로나의 아들 | 플라센시아 1068년 자녀 3명 | 1076년 6월 4일 페냐렌 |
3.8.1. 아라곤의 히메네스 왕조 (1076년~1134년)
Casa Jiménez스페인어
산초 4세가 암살당한 후, 나바라는 그의 사촌인 알폰소 6세와 산초 라미레스에 의해 분할되었다. 산초 라미레스가 왕이 되면서 나바라는 50년 이상 아라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 이름 | 초상 | 출생 | 배우자 | 사망 |
|---|---|---|---|---|
| 산초 5세 라미레스 1076–1094 | 1042년경 라미로 1세와 에르메신데 데 비고르의 아들 | 이자벨 데 우르젤 1065년 자녀 1명 펠리시아 드 루시 1076년 자녀 3명 | 1094년 6월 4일 우에스카 약 52세 | |
| 페드로 1세 1094–1104 | 1068년경 산초 5세 라미레스와 이자벨 데 우르젤의 아들 | 아그네스 드 아키텐 1086년 자녀 2명 베르타 데 아라곤 1097년 자녀 없음 | 1104년 9월 28일 아란 계곡 약 36세 | |
| 알폰소 1세 1104–1134 | 1073년경 산초 5세 라미레스와 펠리시아 드 루시의 아들 | 우라카 데 레온 1109년 자녀 없음 | 1134년 9월 8일 우에스카 약 61세 |
4. 샹파뉴 왕조 (1234년~1284년)
산초 7세의 조카인 샹파뉴 백작 티보 4세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샹파뉴 왕조가 시작되었다. 샹파뉴 왕조는 티발트 1세, 티발트 2세, 헨리케 1세, 호아나 1세로 이어졌다.
4.1. 테오발도 1세 (1234년~1253년)
테오발도 1세(1234년~1253년)
4.2. 테오발도 2세 (1253년~1270년)
티발트 1세의 아들인 테오발도 2세는 1253년부터 1270년까지 나바라 왕국을 통치했다.
5. 카페 왕조 (1284년~1441년)
프랑스 카페 왕조 출신의 필리페 1세 미남왕은 호아나 1세와 결혼하여 나바라 왕위를 공동 통치했다. 그의 아들들인 루이스 1세 완고왕, 호아네스 1세 유복자왕, 필리페 2세 장신왕, 카를로스 1세 미남왕이 차례로 프랑스와 나바라 왕을 겸임하였다. 호아나 2세는 루이스 1세의 딸로, 아버지와 호아네스 1세, 숙부인 필리페 2세와 카를로스 1세의 뒤를 이어 나바라 여왕이 되었다.
에브뢰 왕조는 프랑스의 필리프 3세의 서자인 에브뢰의 루이를 시조로 하는 가문으로, 필리프 데브뢰 백작이 호아나 2세와 결혼하여 나바라의 계승권을 확보했다.
5.1. 카페 왕조 (1284년~1349년)
필리페 1세 미남왕은 호아나 1세의 남편으로 명예왕이었다. 루이스 1세 완고왕, 호아네스 1세 유복자왕, 필리페 2세 장신왕, 카를로스 1세 미남왕이 차례로 프랑스와 나바라 왕을 겸임하였다. 호아나 2세는 루이스 1세의 딸로, 아버지와 호아네스 1세, 숙부인 필리페 2세와 카를로스 1세의 뒤를 이어 나바라 여왕이 되었다.
5.1.1. 필리프 1세 (프랑스의 필리프 4세) (1284년~1305년)
필리페 1세 미남왕(1284년~1305년)은 호아나 1세의 남편이자 명예왕이었다.
5.1.2. 루이 1세 (프랑스의 루이 10세) (1305년~1316년)
루이 1세 (별명: 완고왕)(1305년~1316년)
5.1.3. 장 1세 (1316년)
장 1세 유복자왕(1316)
5.1.4. 필리프 2세 (프랑스의 필리프 5세) (1316년~1322년)
필리페 1세의 아들이자 루이스 1세의 동생이며, 호아네스 1세의 숙부이다. 1316년부터 1322년까지 나바라 국왕 필리페 2세이자, 프랑스 국왕 필리프 5세였다. '장신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5.1.5. 샤를 1세 (프랑스의 샤를 4세) (1322년~1328년)
카를로스 1세 (1322년~1328년)
5.1.6. 후아나 2세 (1328년~1349년)
루이스 1세의 딸로, 아버지와 호아네스 1세 및 숙부인 필리페 2세와 카를로스 1세의 뒤를 이어 나바라 왕국의 여왕이 되었다.
5.2. 에브뢰 왕조 (1328년~1441년)
프랑스의 카페 왕조의 방계 가문인 에브뢰 가문은 프랑스의 필리프 3세의 서자인 에브뢰의 루이를 시조로 하며, 에브뢰의 루이가 에브뢰 백작에 임명된 것에서 가문 이름이 유래한다. 필리프 데브뢰 백작은 루이 10세의 딸 호아나 2세와 결혼하여 나바라의 계승권을 확보했고, 샤를 4세가 필리프 3세의 누이인 잔 데브뢰와 결혼하여 이중으로 인척관계를 형성하였다.
5.2.1. 필리프 3세 (1328년~1343년)
필리페 3세는 호아나 2세의 남편이자 프랑스의 필리프 3세의 서자인 에브뢰의 루이의 아들로, 명예왕이었다. 필리프 데브뢰 백작은 루이 10세의 딸 호아나 2세와 결혼하여 나바르의 계승권을 확보했다. 그 뒤 샤를 4세가 필리프 3세의 누이인 잔 데브뢰와 결혼하여 이중으로 인척관계를 형성하였다.
5.2.2. 카를로스 2세 (1349년~1387년)
카를로스 2세는 필리페 3세의 아들이다.
5.2.3. 카를로스 3세 (1387년~1425년)
카를로스 2세의 아들이다.
6. 트라스타마라 왕조 (1425년~1479년)
호아네스 2세는 블랑카 1세 사후 비아나 공 카를로스(카를로스 4세)와 블란카(수리아 2세)의 권한으로 나바라를 통치했다. 레오노르 1세는 가스통 4세 드 푸아 백작과 결혼했다.
6.1. 후안 2세 (1425년~1479년)
후안 2세는 블랑카 1세 사후에도 나바라 왕위를 유지했으나, 아들 비아나 공 카를로스(카를로스 4세)와 딸 블란카(수리아 2세)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6.1.1. 왕위 주장자 (1441년~1464년)
호아네스 2세는 수리아 1세 생전에는 명예왕이었으나, 아들 비아나 공 카를로스(카를로스 4세)와 딸 블란카(수리아 2세)의 권한으로 나바라를 통치했다. (1425년 ~ 1479년)
레오노르 1세는 가스통 4세 드 푸아 백작과 결혼했다. (1479년)
7. 푸아 왕조 (1479년~1517년)
프란치스코 1세 페부스와 카탈리나 1세는 레오노르의 손자, 손녀이자 가스톤의 자녀들이다.
7.1. 프란시스코 페부스 (1479년~1483년)
프란치스코 1세 페부스는 가스톤의 아들이자 레오노르 여왕의 손자였다.
7.2. 카탈리나 (1483년~1517년)
프란치스코 1세의 여동생이자 레오노르의 손녀였다.
8.1. 후안 3세 (1484년~1516년)
호아네스 3세 (1484년~1516년)는 카탈리나의 남편으로, 명예왕이었다. 1512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에게 나바라 남부를 빼앗겼다.
8.2. 엔리케 2세 (1517년~1555년)
헨리케 2세스페인어 (1517년~1555년)
9. 부르봉 왕조 (1572년~1620년)
헨리케 3세(대왕) (1572년~1610년)는 잔 달브레의 아들로, 나바라 국왕위를 계승하면서 부르봉 왕조가 시작되었다. 헨리케 3세는 프랑스 왕 앙리 4세로 즉위하며 나바라 왕위를 프랑스 왕위와 통합하였다. 루이스 2세(정의왕) (1610년~1620년)는 헨리케 3세의 뒤를 이었다.
9.1. 앙투안 (1555년~1562년)
안토니오 1세 (1555년~1562년) - 명예왕
9.3. 루이 2세 (프랑스의 루이 13세) (1610년~1620년)
루이 2세 정의왕 (1610년~16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