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브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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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널드 브룩은 영국의 조각가, 미술 평론가, 시각 예술 이론가이다. 그는 1927년 영국에서 태어나 전기 공학을 전공하다 조각으로 전향하여, 런던 우드스톡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호주로 이주하여 캔버라 타임스, 시드니 모닝 헤럴드 등에서 미술 평론가로 활동하며, 시드니 대학교 파워 미술 연구소 연구원, 플린더스 대학교 초대 미술학과장 등을 역임했다. 브룩은 지각과 비언어적 표현, 밈 이론을 바탕으로 한 예술 이론을 제시했으며, 2018년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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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브룩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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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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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도널드 브룩 |
출생 이름 | 도널드 브룩 |
출생일 | 1927년 1월 8일 |
출생지 | 리즈, 잉글랜드 |
사망일 | 2018년 12월 17일 |
사망지 | 애들레이드, 오스트레일리아 |
국적 | 오스트레일리아 |
관심 분야 | 미학 예술철학 지각철학 과학철학 |
교육 | 트리니티 칼리지 컬럼비아 대학교 |
영향 | 찰스 다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길버트 라일 J. L. 오스틴 리처드 도킨스 |
주요 아이디어 | 비언어적 표현 예술철학 문화 진화 문화적 종류 |
2. 생애
도널드 브룩은 1927년 1월 8일 영국 요크셔 리즈에서 태어났다. 리즈 대학교에서 전기 공학을 공부했으나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중단했으며, 이후 더럼 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여 1953년 우등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그리스에서 고대 조각을 연구하고 영국에서 조각가로 활동하던 중, 이론적 탐구를 위해 1962년 호주로 건너가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 논문은 저명한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와 철학자 데이비드 암스트롱의 심사를 받았다. 이후 호주에 정착하여 조각가, 미술 평론가, 교육자, 이론가로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특히 시드니 대학교와 플린더스 대학교 등에서 교육과 미술 이론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2018년 12월 17일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영국)
브룩은 1927년 1월 8일 영국 요크셔 리즈에서 태어났다.[1] 그는 장학금을 받아 요크셔의 우드하우스 그로브 학교(Woodhouse Grove School)와 리즈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리즈 대학교에서는 전기 공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전에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는 군에 징집되기도 했다.1949년, 브룩은 추가 교육 및 훈련 보조금을 받아 더럼 대학교의 킹 에드워드 7세 미술학교(King Edward VII School of Art)에서 조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53년에는 헨리 무어와 윌리엄 콜드스트림(William Coldstream)이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가운데 최우등으로 미술학사 학위를 받으며 졸업했다. 이후 대학원 장학금(Chancellor’s postgraduate award)을 받아 1년 동안 그리스에 머물며 아르카익 조각과 키클라데스 조각을 연구했다.
연구를 마친 후 조각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런던의 우드스톡 갤러리(Woodstock Gallery)에서 전시회를 열고 작품 의뢰를 받았다. 또한 교육자 헨리 모리스(Henry Morris)가 설립한 딕스웰 예술 재단(Digswell Arts Trust)의 지원을 받아 하트퍼드셔 웰윈(Welwyn)에 작업실과 거주지를 마련했다.
2. 2. 호주 이주와 활동
오스트레일리아에 남기로 결정한 후, 브룩은 조각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존 더글라스 프링글(John Douglas Pringle)이 편집국장으로 있던 캔버라 타임스에서 미술 평론가로 글을 썼다. 1968년부터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미술 평론가로 활동했다. 같은 해 시드니 대학교에 새로 설립된 파워미술연구소(Power Institute of Fine Arts)의 초대 연구원 세 명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다.이 시기(1968-1973) 동안 그는 틴 셰드 아트 워크숍(Tin Sheds Art Workshops) 설립을 주도했으며, 그곳에서 당시 개념미술(Conceptual Art)로 알려진 포스트 오브제 아트(Post-Object Art)를 주창하여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11][2] 1969년, 예술가이자 후원자인 존 파워(John Power)를 기념하는 현대미술 특강에서 브룩은 '오브제로부터의 도피'(Flight from the Objecteng)를 주제로 강연했다.[12][3][4] 이는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전년도 같은 강연에서 강조했던 '아방가르드적 태도'(Avant-Garde Attitudeeng)에 대한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당시 호주 화가들은 국제적인 모더니즘 흐름을 따르거나 호주만의 차별화된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구축하는 경향이 있었다.
1973년 브룩은 애들레이드에 위치한 플린더스 대학교의 초대 미술학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논의를 거쳐 학과 명칭을 '미술학과'(Fine Artseng)에서 '시각예술'(Visual Artseng)로 변경했다. 그는 시지각의 심리학 및 철학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시작했으며, 당시 유럽 미술사가 지배적이던 학문적 맥락 속에서 호주 원주민의 시각 문화 연구를 도입했다. 당시 호주 대학에서는 이론 수업과 병행하는 미술 실기 과정을 제공하지 않았다. 1974년부터 브룩은 애들레이드에서 실험미술재단(Experimental Art Foundationeng) 설립을 추진했다. 이는 학자 및 이론가들과 함께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등록시켜, 대학 사회와 지역 사회 간의 간극, 즉 '타운 앤 가운(town and gown)'의 분리를 좁히려는 의도였다. 또한 그는 활동 중인 예술가들이 학부 졸업 후 진학할 수 있는 대학원 학위 과정도 마련했다.
시드니를 떠난 후 브룩은 미술 비평 활동을 중단했지만, 학술 저널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중 매체에 꾸준히 글을 기고했다. 1989년 플린더스 대학교에서 정년 퇴임한 후, 1990년부터 1992년까지 키프로스에서 지냈다. 이후 퍼스의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에서 잠시 파트타임으로 일한 뒤 애들레이드에 다시 정착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2018년 12월 17일, 만 92세 생일을 앞두고 애들레이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2. 3. 은퇴 이후와 죽음
시드니를 떠난 뒤 브룩은 미술 비평 대신, 신문이나 대중 매체에 폭넓게 글을 기고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1989년 플린더스 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한 그는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지중해 동부의 키프로스에서 지냈다. 이후 퍼스에 있는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에서 잠시 임시직으로 일한 뒤, 애들레이드에 완전히 정착하여 여러 활동을 이어갔다. 브룩은 2018년 12월 17일, 만 92세를 앞두고 애들레이드에서 세상을 떠났다.[5]3. 주요 활동 및 이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조각가, 미술 비평가, 교육자, 이론가로 활동하며 다방면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캔버라 타임스와 시드니 모닝 헤럴드 등에서 미술 비평가로 활동하며 당시 새로운 예술 경향이었던 포스트 오브제 아트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또한 시드니 대학교 파워 미술 연구소의 초기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틴 셰드 워크숍 설립을 주도했으며, 이후 플린더스 대학교의 초대 미술학과장(후에 '시각예술학과'로 개칭)을 맡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미술을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등 교육 과정에 혁신을 가져왔다. 애들레이드에서는 실험미술재단 설립을 추진하여 이론과 실기의 연계, 대학과 지역 사회 간의 교류를 도모했다.
이론적으로는 시각 인지의 철학적 문제, 특히 비언어적 표현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그는 예술과 문화 진화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리처드 도킨스의 밈 개념을 받아들이되, 이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발전시켜 문화 현상을 분석하는 틀로 삼았다. 그의 이러한 활동과 이론은 여러 논문과 저서를 통해 발표되었다.
3. 1. 미술 비평과 포스트 오브제 아트 옹호
오스트레일리아에 남기로 결정한 후, 브룩은 조각가로 활동하면서 존 더글라스 프링글이 편집장으로 있던 캔버라 타임스에서 미술 비평을 시작했다. 1968년에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미술 비평 기자가 되었고, 같은 해 시드니 대학교에 새로 설립된 파워 미술 연구소의 초기 연구원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다.1969년, 브룩은 틴 셰드 워크숍 설립을 주도했다. 이곳을 통해 그는 당시 개념미술로 알려졌던 포스트 오브제 아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11][2] 같은 해 예술가이자 후원자인 존 파워를 기리는 현대미술 특강에서 브룩은 '오브제로부터의 도피(Flight from the Object)'라는 주제로 강연했다.[12][3][4] 이는 저명한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전년도 같은 강연에서 제시했던 '아방가르드적 태도'에 대한 더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의 예술가들은 국제적인 모더니즘 흐름을 따르거나, 오스트레일리아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려는 경향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1973년, 브룩은 애들레이드에 위치한 플린더스 대학교의 초대 미술학과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학과 명칭을 '미술학과(Fine Arts)'에서 '시각예술(Visual Arts)'로 변경했는데, 이는 그의 확장된 예술관을 반영했다. 그는 시각 인지의 심리학 및 철학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시작했으며, 기존의 유럽 중심적 미술사 연구에서 벗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시각 문화를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도입했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에서는 이론 수업과 미술 실기 과정을 함께 제공하는 곳이 드물었다. 이에 브룩은 1974년부터 애들레이드에서 실험미술재단(Experimental Art Foundation) 설립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그는 학자와 현장 예술가가 함께 교류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대학과 지역 사회 간의 간극, 즉 '타운 앤드 가운'의 분리를 좁히고자 노력했다. 또한 현장 예술가들이 학부 졸업 후에도 학문적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대학원 과정을 마련했다.
시드니를 떠난 후 브룩은 정기적인 미술 비평 활동은 줄였지만, 학술 저널이나 대중 매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술과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의견을 꾸준히 발표했다.
3. 2. 시각 예술 이론: 지각과 비언어적 표현
브룩의 철학적 관심사는 광범위하지만, 주로 두 가지 주요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첫째는 시각 예술에서 지각과 비언어적 표현의 본질과 위치를 이해하는 것이고, 둘째는 예술, 예술 작품의 역사, 문화 진화의 역학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그의 초기 지각 연구는 ''조각의 지각과 평가''[6]라는 논문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이 연구에서 그는 나중에 비언어적 표현 행위에서 일치(matching)와 시뮬레이션(simulation) 사이의 중요한 구분을 제시하게 될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이를 시각적으로 인식된 것, 특히 3차원 예술 작품에 대해 우리가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대상 설명(object-description)"과 "그림 설명(picture-description)"의 차이로 설명했다. 브룩의 생각에서 중요한 점은 비언어적 표현이 일종의 준언어적(quasi-linguistic) 의사소통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언어적 표현은 관련 속성이 공유되지 않는 경우에도 한 가지를 다른 것으로 사회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며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존한다. 그는 이러한 지각적으로 매개된 대체적 적합성(substitutive fit)이 언어 이전의 유기체에게도 이용 가능했을 것이며, 그렇지 않았다면 언어 자체가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브룩은 예술 개념을 처음에는 "실제 및 가능한 세계의 실험적 모델링(experimental modelling of actual and possible worlds)"이라고 칭하며 명확히 했는데, 이는 그의 논문 ''예술의 새로운 이론''(A New Theory of Art)[7]에서 처음으로 포괄적으로 설명되었다. 이 다소 복잡한 이론적 구조는 그의 밈(meme)에 대한 문화 진화 설명이 발전하면서 여러 출판물에서 지속적으로 수정되었다. 그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밈 개념을 생물학적 진화에서 유전자의 기능과 유사한, 문화 진화의 강력한 요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밈을 이해하고 예시를 제시하는 방식에서 도킨스나 다른 밈 이론가들과 크게 달랐다. 대중가요나 유행어와 같은 예시를 드는 대신, 브룩은 이러한 것들이 말이나 양배추와 같은 생물학적 종류의 항목과 유사한 문화적 종류의 항목이라고 주장했다. 말이 적절하게 활성화된 유전자의 산물이듯이, 그는 대중가요나 유행어 자체가 밈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밈을 실행함으로써 생성되는 예측 가능한 문화적 종류의 항목이다. 밈은 단순한 행동과는 대조적으로, 의도적으로 지시된 행동이며, 합심된 방식으로 실행될 수 있다. 이는 그의 논문 ''미술사?''(Art History?)[8]에서 처음으로 명확하게 설명되었다.
브룩은 예술을 새로운 밈의 실행 가능성에 대한 본질적으로 예상치 못한 인식으로 설명하며, 이는 그의 저서 ''예술의 본질에 대한 끔찍한 진실''(The Awful Truth About What Art Is, 2008)[9]에서 자세히 설명되었다. 이 책에 이어 그의 반자전적 저서 ''인생을 살아라''(Get A Life, 2014)[10]가 출간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지각, 표현, 예술, 진화, 역사에 관한 그의 논문 모음집이 그의 개인적인 역사와 경험의 맥락에 맞춰 엮여 있다.
3. 3. 예술과 문화 진화: 밈 이론의 적용
브룩은 예술, 예술 작품의 역사, 그리고 문화가 어떻게 진화하는지에 대한 역학 관계를 밝히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초기에 예술을 "실제 및 가능한 세계의 실험적 모델링"이라고 정의하며, 이 개념은 그의 논문 "예술의 새로운 이론"[7]에서 처음으로 자세히 설명되었다.이후 브룩은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밈(meme) 개념을 받아들여 문화 진화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밈을 생물학적 진화에서 유전자가 하는 역할과 유사하게, 문화를 진화시키는 강력한 요인으로 보았다. 하지만 브룩은 밈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에서 도킨스를 비롯한 다른 밈 이론가들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많은 이론가들이 대중가요나 유행어 같은 것을 밈의 예시로 드는 반면, 브룩은 이러한 것들이 밈 자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대중가요나 유행어는 마치 말이 특정 유전자가 발현된 결과물이듯, 특정 밈이 실행됨으로써 만들어지는 예측 가능한 '문화적 종류의 항목'일 뿐이다. 브룩에게 밈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지며 여러 사람이 함께 실행할 수 있는 '지시된 행동'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논문 "미술사?"[8]에서 처음 명확하게 제시되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브룩은 예술을 '새로운 밈이 실행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상치 못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 내용은 그의 저서 ''예술의 본질에 대한 끔찍한 진실''(2008)[9]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졌다. 이 책 이후에는 그의 반자전적 저서인 ''인생을 살아라''(2014)[10]가 출간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지각, 표현, 예술, 진화, 역사에 관한 그의 여러 글들이 개인적인 삶과 경험의 맥락 속에서 함께 엮여 소개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Donald Brook b. 8 January 1927
https://www.daao.org[...]
2018-01-08
[2]
논문
Toward a definition of conceptual art
1972
[3]
간행물
The 1969 John Power Lecture in Contemporary Art. Flight from the object
https://books.google[...]
Power Institute of Fine Arts
[4]
서적
Flight from the Object. The John Power Lecture on Contemporary Art. Delivered at the University of Sydney on Wednesday 10 September, 1969 by Donald Brook
https://books.google[...]
Power Institute of Fine Arts
2023-01-23
[5]
웹사이트
Donald Brook 1927-2018
https://www.artlink.[...]
2023-01-23
[6]
논문
Perception and the Appraisal of Sculpture
1969
[7]
논문
A new theory of art
1980
[8]
논문
Art history?
2004-02
[9]
간행물
The awful truth about what art is
Artlink, Adelaide
2008
[10]
간행물
Get a life
Artlink, Adelaide
2014
[11]
논문
Toward a definition of 'conceptual art.'
1972
[12]
간행물
The 1969 John Power Lecture in Contemporary Art. Flight from the object
Power Institute of Fine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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