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셔
1. 개요
요크셔는 잉글랜드 북부에 위치한 역사적인 지역으로, 켈트족, 로마 제국, 앵글로족, 바이킹, 노르만 왕조 등 다양한 문명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주요 도시로는 리즈, 셰필드, 브래드퍼드, 헐 등이 있으며, 석탄, 철강, 직물 산업의 중심지였다. 요크셔는 3개의 국립 공원과 해안, 유서 깊은 건축물, 브론테 자매, 테드 휴즈 등 유명 작가와 예술가들을 배출했으며, 독특한 방언과 문화를 자랑한다. 현재는 여러 지방 자치 단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요크셔험버가 과거 요크셔 지역을 포괄하는 행정 단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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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행정 구역 -
잉글랜드의 단일 자치구
잉글랜드의 단일 자치구는 주 의회와 구 의회 기능을 통합한 지방 자치 단체로, 1990년대 행정 구조 개편을 통해 현재 모습을 갖추었으며, 2023년 현재 50개 이상 존재하며 지역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지역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비판도 있다. -
요크셔 -
웨스트요크셔주
웨스트요크셔주는 1974년 광역시로 설립되어 5개의 자치구로 구성되며, 역사적으로 요크셔 서라이딩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산업 혁명으로 성장했으며, 현재는 교통 및 재생 기능을 담당하는 통합 당국을 두고 금융, 모직물, 탄광, 루바브 재배 등의 산업과 다양한 문화 시설, 스포츠 클럽, 관광 명소를 보유하고 교통 접근성이 뛰어나다. -
요크셔 -
선데이 로스트
선데이 로스트는 일요일에 오븐에 구운 고기를 중심으로 하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식사로, 다양한 고기와 채소, 그레이비 등을 곁들여 먹으며, 기독교 문화권에서 금식 후 먹는 음식에서 유래되었다. -
잉글랜드의 폐지된 행정 구역 -
셔
셔는 고대 영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호주, 미국의 행정 구역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며, 특히 잉글랜드에서는 카운티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
잉글랜드의 폐지된 행정 구역 -
컴벌랜드 (잉글랜드)
컴벌랜드는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역사적인 카운티로, 중세 시대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의 일부였으며, 1974년 컴브리아주에 통합되었으나 현재는 지리적, 문화적 명칭으로 남아 2023년 단일 자치구가 되었다.
2. 역사
로마 제국이 브리튼섬을 정복하기 이전, 켈트족의 일파인 브리간트족이 요크셔를 중심으로 살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에보라쿰을 건설했으며, 이 도시는 훗날 요크시로 발전하였다. 요크셔는 로마 지배 초기 2세기 동안 브리타니아 북부의 중심지였으며, 3세기에는 브리타니아 세쿤다(라틴어 Britania Secunda)의 중심 도시였다.
잉글랜드 왕국이 세워지기 전, 요크셔 지역에는 바이킹 왕국인 요르빅 왕국이 있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큰 도시들은 대부분 노르만의 잉글랜드 정복 시기에 세워졌다. 1831년 당시 요크셔의 면적은 약 15000km2이었으며, 현재 요크셔 험버 지역의 인구는 약 5백만 명이다.
요크셔의 상징은 요크 왕가의 백장미 문장이며, 요크셔 기는 남색 바탕에 백장미 문양이 그려져 있다. 1974년 8월 1일부터 해마다 이날을 요크셔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요크 공작(Duke of York)"에서 국왕이 된 조지 6세는 요크 지방이 잉글랜드 역사에서 중요한 무대였다고 말했다. 요크 지방은 로마 제국의 브리타니아 건국, 앵글로색슨 왕국, 바이킹의 침입, 노르만인의 정복, 국교의 탄생, 장미 전쟁, 청교도 혁명, 산업 혁명에서 중요한 무대였으며,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1066년), "스탠다드의 전투"(1138년), "웨이크필드 전투"(1460년), "타우턴 전투"(1461년), "마스턴 무어 전투"(1644년) 등 잉글랜드 역사의 큰 전투들이 요크 지방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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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에는 아일랜드 경유의 켈트 기독교와 로마 경유의 가톨릭 두 가지 경로로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켈트 기독교는 켈트 문화를 반영하여 이교적 요소도 지니고 있었으며, 가톨릭과는 분리되어 발전했다. 켈트 기독교는 세속으로부터의 은둔을 갈망하며 고립된 수도원 생활을 중시했다.
앵글로색슨족은 로마의 기독교를 이용하여 국내 지배를 하였다. 663년 위트비 수도원(Whitby Abbey)에서 위트비 종교 회의가 열려 잉글랜드 기독교의 방향이 결정되었다. 요크 대성당의 원형도 이 무렵 지어졌고, 대주교구(Archbishop of York)가 설치되었다.
바이킹의 침략으로 각지의 교회와 수도원은 황폐해졌다. 바이킹들은 기독교를 통해 잉글랜드를 통치했다. 11세기에 그레고리오 7세가 개혁을 단행하여, 로마 교황이 국왕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자 잉글랜드에서는 왕과 기독교 세력이 대립하게 되었다.
정복왕 윌리엄은 로마 교회의 힘을 배경으로 잉글랜드 지배를 추진했다. 토착 기독교를 쇄신하기 위해 오래된 수도원(abbey)과 수도소(priory)를 파괴하고, 종교 지도자층을 로마 교회의 주교로 교체했다. 12세기 초, 요크 대주교 서스턴(Thurstan)이 스코틀랜드인의 침입에 맞서 민병대를 이끌고 "스탠다드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헨리 8세는 1536년 수도원 해산(Dissolution of the Monasteries)을 단행했다. 이때 요크 지방에서도 많은 수도원이 버려졌다. 위트비 수도원(Whitby Abbey)도 이때 파괴되었다. 폰테인스 수도원 유적도 이 시기에 폐기되었다.
헨리 8세는 국민에게 잉글랜드 성공회로 개종하도록 강요했지만, 은총의 순례와 같은 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요크의 여성 마가렛 클리서로(Margaret Clitherow)는 순교자로서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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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국에서는 왕당파와 의회파의 대립이 심화되어 잉글랜드 내전, 청교도 혁명으로 발전했다.
1642년 헐에서 양측은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 찰스 1세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왔으나 의회파 지지자들이 문을 닫고 왕의 입성을 거부했다. 이를 돌파하려던 양측 사이에서 헐 포위전(Siege of Hull)이 벌어졌고, 이것이 잉글랜드 내전의 발발 계기가 되었다.
요크셔 지방 북부는 왕당파의 세력이 강했고, 왕당파는 요크 시를 거점으로 리즈와 웨이크필드를 함락시켰다. 애드월턴 무어 전투에서 왕당파가 승리하여 요크셔 지방 거의 전역이 왕당파의 세력 하에 놓였다. 헐은 의회파의 요새였다.
의회파는 헐을 거점으로 반격하여, 1644년 마스턴 무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요크를 함락시켰다. 의회파는 잉글랜드 북부 여러 주를 장악해 나갔다.
마스턴 무어 전투에서 의회파를 승리로 이끈 것은 요크셔 지방 출신의 토머스 페어팩스와 올리버 크롬웰이다. 크롬웰은 이후 혁명을 주도하여 찰스 1세를 처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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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대항해 시대로 견직물이 유럽에 보급되고, 대외 전쟁으로 대륙과의 무역이 줄어들어 잉글랜드의 모직물 산업은 타격을 받았다. 청교도 혁명으로 잉글랜드의 수장이 된 크롬웰은 항해 조례를 정하여 모직물의 수운을 가속화하고, 요크셔 지방의 모직물 산업을 발전시켰다.
18세기 서 요크셔에서는 석탄 채광이 시작되었고, 1700년대 후반에는 최초로 통행료를 받는 유료 도로가 생겼으며 광천수가 건강에 좋다는 믿음이 퍼져 할로게이트의 온천이 각광받기도 하였다.
19세기에 요크셔는 산업 혁명과 함께 철강, 석탄, 직물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셰필드, 로더럼, 미들즈브러에서 철강 산업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산업 도시의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 인해 1832년과 1848년에 콜레라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세기 말에는 현대적인 하수도와 수도 시설이 도입되면서 발전이 이루어졌다. 요크셔에는 여러 요크셔 철도 노선이 건설되어 전국 철도망과 연결되었다. 던캐스터에서 제작된 런던 노스 이스턴 철도(LNER) A4급 4468 Mallard는 1938년 7월 3일 203km/h로 현재 가장 빠른 증기 기관차로 기록되어 있다.
19세기 요크셔 지방의회는 요크셔를 3개의 라이딩(하위 자치구역)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선거구가 있는 대도시는 라이딩에 포함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요크셔에는 영국 공군 폭격 사령부가 있었으며,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의 헐 공습 표적이 되었다.
1970년대 영국의 지방자치 개편에 따라 요크셔는 세 개의 지방자치구역으로 분할되었으며, 많은 요크셔 주민들이 이 조치를 반대하였다. 현재 요크셔는 여러 지방 자치 단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거 요크셔 지역 전체를 묶는 행정 단위는 요크셔험버이다.
2024년 3월 기준, 4개의 의례적 카운티를 관할하는 행정 계층 구조는 다음과 같다.
| 연합 자치구 | 상태 | 자치구 |
|---|---|---|
| 사우스 요크셔 | 2014년부터 연합 자치구, 2018년부터 시장이 이끔 | 반즐리 |
| 던캐스터 | ||
| 로더럼 | ||
| 셰필드 | ||
| 티스 밸리 | 2016년부터 연합 자치구, 2017년부터 시장이 이끔. 노스 요크셔와 카운티 더럼의 의례적 카운티에 걸쳐 있음. | 미들즈브러 |
| 레드카 앤 클리블랜드 | ||
| 스톡턴온티스 (티스 강 남쪽은 노스 요크셔, 강 북쪽은 카운티 더럼) | ||
| 카운티 더럼에서 달링턴 및 하틀풀도 포함. | ||
| 웨스트 요크셔 | 2014년부터 연합 자치구, 2021년부터 시장이 이끔 | 브래드퍼드 |
| 칼더데일 | ||
| 커클리스 | ||
| 리즈 | ||
| 웨이크필드 | ||
| 요크 및 노스 요크셔 | 2024년 2월 설립, 첫 시장은 2024년 5월 선출 예정 | 노스 요크셔 |
| 요크 | ||
| 헐과 이스트 라이딩 | 제안됨, 아직 시행되지 않음 | 요크셔 이스트 라이딩 |
| 킹스턴 어폰 헐 |
2.1. 켈트족
로마 제국이 브리튼섬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켈트족 중 가장 큰 부족이었던 브리튼족의 일파인 브리간트족이 요크셔를 중심지로 하여 살고 있었다. 요크셔의 초기 정착민은 켈트족의 일파인 브리간트족과 파리시족이었다. 브리간트족은 알프스 또는 켈트 갈레시아에서 기원한 민족으로 지금의 북 요크셔와 서 요크셔 일대에 정착하였다. 브리간트족의 중심지는 지금의 알브보러프(영어 Aldborough)였으며 로마 시대에는 이수리움 브리간툼(라틴어 Isurium Brigantum)으로 불렸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 《지리학:Geographia》에는 브리간트족의 9개 도시 국가 중 6개의 위치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파리시족은 지금의 동 요크셔 지역에 거주하였으며 이들은 갈리아의 루테티아(지금의 프랑스 파리 인근)에 살고 있었던 파리시족과 연관된 민족이었다.
43년 로마의 브리튼 정복이 시작되어 브리간트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으나 여전히 브리간트 왕국이 유지되었다. 당시 브리간트는 카르티만두아 여왕과 그의 남편 베누티우스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브리튼섬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가 있었던 브리간트와 로마의 충돌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2.2. 로마 제국 시기
51년 카르티만두아 여왕이 베누티우스와 이혼하고 벨로카투스와 결혼하여 브리간트족의 왕권에 변화가 생겼다. 카르티만두아 여왕은 왕국을 보전하기 위해 로마와 동맹을 맺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의 전 남편인 베누티우스는 여왕과 로마의 연맹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베누티우스는 왕권을 탈환했으나, 71년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아리스가 이끄는 로마 군대가 브리튼섬을 정복했다.
로마 제국의 지배 기간 동안 지금의 요크시로 발전하게 된 에보라쿰이 건설되어 북 브리타니아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에보라쿰은 한때 브리타니아 전체를 관할하는 중심 도시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이후 4개의 지방으로 나뉜 브리타니아의 지방 행정구역 중 하나인 브리타니아 세쿤다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306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가 요크에서 사망했다. 그의 아들인 콘스탄티누스 1세는 아버지와 함께 요크를 방문하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후임 황제로 즉위했다.
400년대 초 로마 제국이 몰락하면서 브리타니아에 대한 로마의 지배도 끝났다. 그러나 당시 로마 제국의 제도와 문화는 이후에도 요크셔 지방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2.3. 앵글로족의 등장
로마 제국의 지배가 끝난 후, 요크셔 지방에는 에브라욱 왕국, 엘멧 왕국 같은 켈트족 국가들이 세워졌다. 이 시기에 앵글로족이 이 지역에 들어와 메르시아 왕국, 노섬브리아 왕국, 데이라 왕국 등을 건설했으며, 이들은 특히 엘멧 왕국과 잦은 전쟁을 벌였다. 엘멧 왕국은 150년 가까이 앵글로족에 저항했다.
영국 역사에서 이 시기는 앵글로-색슨 시대라고 불리며, 잉글랜드 북쪽에는 앵글로족이, 남쪽에는 색슨족이 들어와 왕국을 세우고 영토를 확장했다. 앵글로족의 여러 국가들은 결혼 등을 통해 통합되어 더 큰 국가가 되었고, 결국 노섬브리아 왕국이 유일하게 남은 앵글로족 국가가 되었다.
2.4. 요르빅 왕국
886년 흔히 대 바이킹 군대라 불리는 덴마크 지역의 바이킹들이 노텀브리아 왕국을 침략하였다. 이들 바이킹은 요크셔 지역에 요르빅 왕국을 건설하였는데, 지금의 요크 시와 요크셔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요르빅 왕국은 지금의 요크셔 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영토를 확장하여 잉글랜드의 동북부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이 지역은 흔히 데인로(영어 Danelaw)라고 불리는데 덴마크인 지배 지역이란 뜻이다. 그러나 바이킹족이 직접 지배하는 지역은 요크셔로 한정되어 있었고 다른 지역은 앵글로족의 여러 왕국들이 바이킹에 항복하면서 속국의 형태로 남아있었다. 요르빅 왕국은 할프단 라그나르손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이후 노르웨이의 왕에게 왕권이 넘겨졌다. 요르빅 왕국은 활발한 상업 활동을 벌였으며, 이들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뿐 아니라 지중해와 중동에서까지 무역활동을 벌였다. 요르빅 왕국의 마지막 왕은 에릭 블러드엑스였다.
요르빅 왕국의 멸망 후 요크셔 지역을 지배한 것은 웨식스 왕국이었다.
2.5. 노르만의 침공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가 일어난 주에 잉글랜드의 해럴드 2세는 그의 형 토스티그와 노르웨이의 하랄드 3세가 왕위를 요구하며 침략하여 몹시 불안한 상태였다. 토스티그의 동맹군은 풀포드 전투에서 해럴드 2세에게 이미 승리하였다. 해럴드 2세는 직접 군대를 움직여 스템포드 브리지 전투에서 이들을 격파하였다. 토스티그와 하랄드 3세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럴드 2세는 정복왕 윌리엄의 군대에 대항하기 위하여 군대를 곧바로 남쪽으로 이동시켜야만 했다. 이들의 분쟁 덕에 아무런 피해 없이 잉글랜드에 상륙한 윌리엄은 결국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를 물리치고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이로써 노르만 왕조가 시작되었다.
1069년 덴마크의 스웨인 2세의 지원을 받은 반란군이 노르만 왕조에 대항하여 요크를 탈환하고자 하였으나 윌리엄은 요크를 파괴하였다. 이 전쟁에서 노르만 왕조의 사령관이었던 헤링은 청야 작전을 감행하여 요크에서 더럼에 이르는 지역을 초토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요크셔 지역의 많은 마을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이후 한 세기 동안 요크셔 지역에는 많은 수도원이 들어섰으며, 노르만 왕조는 세입 증대를 위해 새로운 도시들을 건설하였다. 리즈, 헐, 쉬필드, 반즐리, 동커스터, 스카버러 등이 이때 세워진 도시들이다. 노르만 정복 이전부터 있던 도시들로는 요크, 브리들링튼, 포클링튼 셋뿐이다.
요크셔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였으나 1315년-1322년의 대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당시 기근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이전의 헤이스팅스 전투와 청야 작전 등 노르만 침공에 의한 전쟁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의 수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더욱이 1349년에는 흑사병이 창궐하여 요크셔의 인구는 급감하였다.
2.6. 장미 전쟁
잉글랜드의 리처드 2세가 퇴위된 후 플랜태저넷 왕가의 방계였던 흰 장미의 요크 왕가와 붉은 장미의 랭커스터 왕가 사이에 왕위 계승권을 놓고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 분쟁은 장미 전쟁으로 알려진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요크셔에서도 웨이크필드 전투와 투톤 전투가 벌어졌으며, 특히 투톤 전투는 영국 내에서 일어난 가장 격렬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1461년 3월 4일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6세는 폐위되고 그의 친척인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가 잉글랜드의 새 군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에드워드 4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급작스럽게 사망하였고, 12살에 불과했던 그의 아들 에드워드 5세는 즉위하자마자 그의 삼촌이었던 리처드 3세에 의해 폐위되어 런던탑에 수감되었다. 에드워드 5세는 탑에 갇힌 왕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어머니 계통으로 왕실에 연결된 랭커스터 가의 유일한 왕위 요구자인 헨리 튜더가 프랑스의 루이 11세의 지원을 받아 리처드 3세를 격파하고 헨리 7세로 즉위하였다. 이로써 장미 전쟁은 끝나고 튜더 왕조가 열렸다. 헨리 7세는 에드워드 4세의 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였으며, 랭커스터의 붉은 장미 속에 요크의 흰 장미가 그려진 문장을 사용하여 두 왕가의 통합을 상징하였다.
2.7. 방직업의 발달과 내전
16세기에 들어 양모 산업이 서 요크셔를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으며, 웨이크필드와 핼리팩스는 방직업의 발달과 함께 성장하였다.
헨리 8세 시기, 요크셔 지역은 고용 인구의 변화로 인해 많은 수도원이 폐쇄되었으며 이는 1536년 요크에서 발생한 민란인 은총의 순례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였다. 헨리 8세의 수장령에 의해 일어난 영국의 종교 개혁에 반발한 요크셔의 민란은 곧 진압되었으나 엘리자베스 1세 시기까지도 많은 요크셔 주민들이 로마 가톨릭을 신봉하였다. 이 와중에 순교한 마가렛 클리서로우는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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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영국에서는 왕당파와 의회파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결국 요크셔 지방에서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고, 이것이 잉글랜드 내전, 청교도 혁명으로 발전했다.
요크셔 지방에서도 왕당파와 의회파는 양분되었다. 1642년 헐에서 양측은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 헐은 원래 왕당파에 속해 있었고, 성 안에 군수 물자를 비축하고 있었는데, 찰스 1세가 직접 요크에서 군대를 이끌고 왔다. 그러나 의회파 지지자들이 문을 닫고 왕의 입성을 거부했다. 이를 돌파하려던 양측 사이에서 전투가 시작되었고(헐 포위전(Siege of Hull)),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잉글랜드 내전이 발발했다.
요크셔 지방 북부는 특히 강력한 왕당파에 속해 있었고, 왕당파는 요크 시를 거점으로 리즈와 웨이크필드를 함락시켰다. 애드월턴 무어 전투에서 왕당파의 승리로 인해 요크셔 지방의 거의 전역이 왕당파의 세력 하에 놓였다. 헐만 예외였고, 의회파의 요새였다.
의회파는 헐을 거점으로 반격에 나섰고, 1644년 봄에는 스코틀랜드 군대를 끌어들여 요크를 공격했다(요크 포위전(Siege of York)). 요크는 3개월 동안 버텼지만, 7월의 마스턴 무어 전투에서 의회파가 대승을 거두자 요크도 함락되었다. 이후 형세는 역전되어, 의회파는 잉글랜드 북부 여러 주를 장악해 나갔다.
마스턴 무어 전투에서 의회파를 승리로 이끈 것은 요크셔 지방 출신의 토머스 페어팩스와 올리버 크롬웰이다. 크롬웰은 이후 혁명을 주도하여 찰스 1세를 처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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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들어서 대항해 시대에 의해 견직물이 유럽에 보급됨과 동시에, 대외 전쟁으로 대륙과의 무역이 줄어들어 잉글랜드의 모직물 산업은 타격을 받았다. 17세기 중반의 청교도 혁명으로 잉글랜드의 수장이 된 크롬웰은 항해 조례를 정하여 모직물의 수운을 가속화하고, 요크셔 지방의 모직물 산업은 더욱 발전했다.
18세기에 서 요크셔에서는 석탄 채광이 시작되었고, 1700년대 후반에는 최초로 통행료를 받는 유료 도로가 생겼으며 광천수가 건강에 좋다는 믿음이 퍼져 할로게이트의 온천이 각광받기도 하였다.
2.8. 근래의 요크셔
19세기에 요크셔는 산업 혁명과 함께 철강, 석탄, 직물 산업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특히 셰필드, 로더럼, 미들즈브러에서 철강 산업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산업 도시의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 인해 1832년과 1848년에 콜레라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세기 말에는 현대적인 하수도와 수도 시설이 도입되면서 발전이 이루어졌다. 한편, 요크셔에는 여러 요크셔 철도 노선이 건설되어 전국 철도망과 연결되었다. 던캐스터에서 제작된 런던 노스 이스턴 철도(LNER) A4급 4468 Mallard는 1938년 7월 3일 203km/h로 현재 가장 빠른 증기 기관차로 기록되어 있다.
19세기 요크셔 지방의회는 요크셔를 3개의 라이딩(하위 자치구역)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선거구가 있는 대도시는 라이딩에 포함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요크셔에는 영국 공군 폭격 사령부가 있었으며,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의 헐 공습 표적이 되었다.
1970년대 영국의 지방자치 개편에 따라 요크셔는 세 개의 지방자치구역으로 분할되었으며, 많은 요크셔 주민들이 이 조치를 반대하였다. 현재 요크셔는 여러 지방 자치 단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거 요크셔 지역 전체를 묶는 행정 단위는 요크셔험버이다. 2024년 3월 기준, 4개의 의례적 카운티를 관할하는 행정 계층 구조는 다음과 같다.
| 연합 자치구 | 상태 | 자치구 |
|---|---|---|
| 사우스 요크셔 | 2014년부터 연합 자치구, 2018년부터 시장이 이끔 | 반즐리 |
| 던캐스터 | ||
| 로더럼 | ||
| 셰필드 | ||
| 티스 밸리 | 2016년부터 연합 자치구, 2017년부터 시장이 이끔. 노스 요크셔와 카운티 더럼의 의례적 카운티에 걸쳐 있음. | 미들즈브러 |
| 레드카 앤 클리블랜드 | ||
| 스톡턴온티스 (티스 강 남쪽은 노스 요크셔, 강 북쪽은 카운티 더럼) | ||
| 카운티 더럼에서 달링턴 및 하틀풀도 포함. | ||
| 웨스트 요크셔 | 2014년부터 연합 자치구, 2021년부터 시장이 이끔 | 브래드퍼드 |
| 칼더데일 | ||
| 커클리스 | ||
| 리즈 | ||
| 웨이크필드 | ||
| 요크 및 노스 요크셔 | 2024년 2월 설립, 첫 시장은 2024년 5월 선출 예정 | 노스 요크셔 |
| 요크 | ||
| 헐과 이스트 라이딩 | 제안됨, 아직 시행되지 않음 | 요크셔 이스트 라이딩 |
| 킹스턴 어폰 헐 |
3. 지리
요크셔 지역의 경계는 북쪽으로 티스강, 남쪽으로 험버 하구, 서쪽으로 페나인산맥, 동쪽으로는 북해와 닿아있다. 요크셔 주위에는 링컨셔주, 더럼주, 노팅엄셔주, 더비셔주, 체셔주, 랭커셔주, 웨스트모얼랜드와 같이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주들이 인접해 있다. 페나인산맥의 지질은 석탄기의 것이고, 북 요크 초지를 중심으로 한 북동부는 쥐라기 지질이다. 이외에도 요크셔 중심부는 선캄프리아기, 남부는 트라이아스기, 남동부는 백악기의 지질을 보인다.
요크셔의 주요 강으로는 북쪽의 티스강과 중심부를 흐르는 오즈 강이 있다. 티스강은 요크셔 북쪽 경계를 따라 동쪽으로 흘러 북해에 이르고, 오즈강은 요크셔 중심을 북에서 남으로 흐르면서 페나인산맥에서 시작되는 많은 지류들과 합쳐진 후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험버 하구를 통해 북해로 나아간다.
요크셔는 영국에서 가장 많은 녹지를 지녀 가디언으로부터 "신이 내린 땅", "영국의 정원"과 같은 찬사를 받았다. 요크셔에는 디스트릭트 산, 북 요크 초지, 요크셔 데일즈 등 세 곳의 국립 공원이 있다.
4. 교통
요크셔로 통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영국의 대북로는 현재 A1 국도로 알려져 있다. 이 도로는 런던에서 출발하여 잉글랜드 중부의 여러 주를 지나 요크셔에 이르며 에든버러까지 이어진다. 또 다른 중요한 도로는 더 동쪽에 위치한 A19 도로로, 던캐스터에서 시작하여 뉴캐슬어폰타인 북쪽, 시턴 번에서 끝난다. M62 고속도로는 헐에서 그레이터 맨체스터 및 머지사이드로 이어지며 동에서 서로 횡단한다. M1 고속도로는 런던과 잉글랜드 남부에서 요크셔로 교통량을 운송한다. 1999년, 약 약 12.87km 구간이 추가되어 리즈 동쪽으로 우회하여 A1과 연결되었다.
철도로는 이스트 코스트 메인 라인이 런던에서부터 요크를 지나 스코틀랜드로 이어진다. 트랜스페닌 익스프레스 철도 노선은 헐에서 리즈를 거쳐 리버풀까지 동서 방향으로 운행한다.
철도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리즈 리버풀 운하가 리즈와 리버풀 사이의 주요 수송로 역할을 하였으며 훌에 주요 항구가 있다. 헐에서는 P&O 페리를 통해 정기 페리 서비스를 이용하여 유럽 본토(네덜란드 및 벨기에)로 갈 수 있다.
주요 공항으로는 리즈 브래드퍼드 국제 공항이 있다. 요크셔는 리즈 브래드퍼드 공항을 통해 항공 운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공항은 1996년부터 개선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터미널 규모와 여객 시설 모두에서 상당하고 빠른 성장을 경험했다. 2005년부터 2022년까지 사우스 요크셔는 피닝글리에 있는 돈캐스터 셰필드 공항에서 서비스를 제공했다.
5. 문화
요크셔 사람들의 문화는 켈트족(브리간테스와 파리지), 로마인, 앵글족, 노르드 바이킹, 노르만족 등 역사에 영향을 미친 여러 문명의 축적된 결과물이다. 노스라이딩의 서부 지역은 알랭 르 루가 리치몬드 명예를 점령했기 때문에 브르타뉴 문화가 추가적으로 유입되었다. 요크셔 사람들은 자신의 지역 문화에 대해 매우 자부심을 느끼며, 때로는 국가보다 지역에 더 강하게 정체성을 느낀다고 한다.
요크셔 사람들은 "타이크스"라고도 불리는 특유의 방언과 억양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고대 영어와 고대 노르드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요크셔는 넓기 때문에 지역별로 구어 방언이 다르다. 노스 요크셔와 험버사이드/이스트 요크셔의 방언은 웨스트 요크셔 및 사우스 요크셔와 매우 다르며 스칸디나비아의 영향이 더 강하다.
요크셔의 전통 중 하나는 롱 소드 댄스이다. 요크셔의 가장 유명한 전통 노래는 온 일클라 무어 바트 앳("일클리 무어 모자 없이")이며, 요크셔의 비공식 국가로 간주된다.
요크셔는 롱 소드 댄스를 포함한 민속 음악과 민속 무용의 유산을 가지고 있다. 요크셔 민요는 방언 사용이 특징이며, 특히 웨스트 라이딩에서 두드러졌다. 19세기 후반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온 일클라 무어 바트 '앳'은 켄트 민요 멜로디를 사용했다. 이 지역 출신의 유명한 민속 음악가로는 헐 출신의 워터슨스, 영 트래디션의 헤더 우드, 미스터 폭스, 더 데이튼 패밀리, 줄리 매튜스, 캐서린 로버츠, 케이트 러스비가 있다. 요크셔에는 40개 이상의 민속 클럽과 30개의 연례 민속 축제가 있다.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요크셔는 프레데릭 델리우스, 조지 다이슨, 에드워드 베어스토우, 케네스 레이턴, 개빈 브라이어스 등 여러 작곡가들을 배출했다. 국립 초기 음악 센터는 요크에 있다.
이 지역에는 블랙 다이크 밴드, 브리하우스 & 라스트릭 브라스 밴드와 같은 성공적인 브라스 밴드가 있다.
1970년대 던캐스터 출신 데이비드 보위는 헐 출신 음악가들과 지기 스타더스트와 화성에서 온 거미들의 몰락을 녹음했다. 셰필드 출신 데프 레파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요크셔는 포스트펑크가 강했으며, 더 시스터즈 오브 머시, 더 컬트, 갱 오브 포, ABC, 휴먼 리그, 뉴 모델 아미, 소프트 셀, 춤바왐바, 더 웨딩 프레젠트, 더 미션 등이 있다. 펄프는 1995년 "커먼 피플"로 큰 인기를 얻었다. 21세기에는 카이저 치프스, 더 크립스, 아틱 몽키스 등이 인기를 얻었다.
5.1. 건축
노르만 왕조 이래 요크 성, 리치먼드 성, 파이컬링 성, 보우즈 성과 같은 수많은 성들이 요크셔에 세워졌다. 이후 스코틀랜드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헬름슬레이 성, 스카버러 성, 미들햄 성 등이 건설되었다. 이 성들의 유적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으며 잉글리쉬 헤리티지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워드 성과 같이 "성"으로 불리지만 궁전 이상의 규모를 가진 것도 있다.
요크셔에는 리즈 시청 청사, 쉬필드 시청 청사, 요크셔 박물관, 요크 길드 청사와 같은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있으며, 이 건축물들은 영국의 건축물 목록에 1급 건축물로 등재되어 있고 네셔널트러스트 운동 등에서 보존 노력을 펼치고 있다.
요크셔 전역에는 노르만-브르타뉴 시대에, 특히 북부 황폐화 이후에 많은 성들이 건설되었다. 여기에는 보우즈 성, 피커링 성, 리치몬드 성, 스키pton 성, 요크 성 등이 포함된다. 이후 중세 시대의 헬름슬리 성, 미들햄 성 및 스카버러 성은 침략하는 스코틀랜드인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건설되었다. 리처드 3세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에서 미들햄은 주목할 만하다. 이 성들의 유적은 일부가 잉글리시 헤리티지 유적지이며,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이다.
요크셔에는 프랑스에서 샤토가 흔하게 사용되는 것과 유사하게 "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저택들이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예로는 앨러튼 성과 캐슬 하워드가 있으며, 둘 다 하워드 가문과 관련이 있다. 캐슬 하워드와 헤어우드 백작의 저택인 헤어우드 하우스는 잉글랜드의 9개의 보물 저택에 포함된다.
브로드워스 홀, 템플 뉴섬, 웬트워스 우드하우스 (유럽에서 정면이 가장 큰 개인 주택) 및 웬트워스 성에는 대규모 건물이 있는 대저택이 건설되었다.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보존 및 관리하는 부동산으로는 닝턴 홀, 옴즈비 홀, 리보 테라스 & 사원, 스터들리 로열 공원 등이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산업을 위해 건설된 건물들은 이 지역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웨스트 요크셔에는 다양한 면직 공장, 리즈 콘 익스체인지와 핼리팩스 피스 홀이 있다.
지방 자치 단체를 위해 지어진 다양한 건물이 있다.
* 1등급 지정 건축물: 리즈 시청, 셰필드 시청, 웨이크필드 카운티 홀 및 요크 길드홀
* 2등급* 지정 건축물: 미들즈브러 시청, 리즈 시빅 홀, 헐 길드홀, 헐 시청 및 셰필드 시청.
종교 건축물로는 현존하는 대성당뿐만 아니라 수도원과 수도원의 유적도 포함된다. 이러한 주요 건물 중 다수는 헨리 8세 치하의 수도원 해산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는 볼턴 수도원, 분수 수도원, 기즈버러 수도원, 리보 수도원, 성 마리아 수도원 및 휘트비 수도원 등이 있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고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종교 건물로는 북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건축 양식의 대성당인 요크 민스터, 베벌리 민스터, 브래드퍼드 대성당, 로더럼 민스터 및 리폰 대성당이 있다.
5.2. 문학과 예술
브론테 자매는 요크셔 출신의 유명한 문인이다. 1800년대 중반에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던 브론테 자매의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앤 브론테), 《제인 에어》(샬럿 브론테),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이 있다. 이 소설들은 처음 출판되었을 때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이후 위대한 영문학의 정경으로 받아들여졌다. 폭풍의 언덕은 요크셔의 삶을 묘사하고, 등장인물들을 통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유형을 보여주며, 폭풍이 몰아치는 요크셔 황무지를 배경으로 사용했다. 현재 그들의 옛집이었던 목사관은 그들을 기리는 박물관이 되었다. 《드라큘라》의 저자 브람 스토커는 휫비에서 살면서 드라큘라를 집필했으며, 이 소설에는 러시아 선박 드미트리의 좌초를 포함한 지역 민속의 여러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책에서 데메테르의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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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셔의 소설가 전통은 20세기와 21세기에도 이어져, J. B. 프리슬리, 앨런 베넷, 스탠 바스토우, 데임 마가렛 드래블, 위니프레드 홀트비(사우스 라이딩, 군중 거리), A. S. 바이엇, 바바라 테일러 브래드퍼드, 마리나 레위츠카, 선지브 사호타와 같은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테일러 브래드퍼드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중 하나인 실질적인 여성으로 유명하다. 또 다른 유명 작가로는 아동 작가 아서 랜섬이 있으며, 그는 제비와 아마존'' 시리즈를 썼다. 제임스 헤리엇은 서더랜드에서 태어났지만, 북요크셔의 Thirsk에서 약 50년 동안 수의사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에 관한 6천만 부 이상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그의 책에서 다로우비라고 언급한 마을은 그의 쉽고 재미있는 문체와 흥미로운 등장인물로 칭송받았다.
시인으로는 테드 휴즈, W. H. 오든, 윌리엄 엠프슨, 사이먼 아미티지, 데이비드 미에지아닉, 앤드루 마벨 등이 있다.
20세기에 헨리 무어, 바바라 헵워스, 앤디 골즈워디와 같은 유명 조각가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작품 중 일부는 요크셔 조각 공원에서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페렌스 미술관, 리즈 미술관, 밀레니엄 갤러리, 요크 미술관과 같이 광범위한 컬렉션을 갖춘 여러 개의 미술관이 요크셔에 있다. 더 잘 알려진 지역 화가로는 윌리엄 에티와 데이비드 호크니가 있으며, 후자의 많은 작품은 솔트 밀 1853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