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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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돌출부는 군사 용어로, 방어선이 적진으로 뻗어 들어간 지형을 의미한다. 공격 측은 포위 공격이나 정면 공격을 통해 돌출부를 만들 수 있으며, 방어 측은 공격 측의 공격으로 인해 자신의 방어선에 돌출부가 형성될 수 있다. 참호전에서는 참호선으로 인해 돌출부가 명확히 정의되며, 돌출부는 공격 측에게 유리하고 방어 측에게는 위험한 지형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게티즈버그 전투, 이프르 전투, 쿠르스크 전투, 벌지 전투 등에서 돌출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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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출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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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돌출부의 형성
돌출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다. 공격자는 포위 공격을 통해 군사 측면을 우회하거나, 광범위한 정면 공격을 시도하여 돌출부를 만들 수 있다. 또한, 공격자는 후퇴하는 척하며 방어군을 유인하여 포위함으로써 돌출부를 형성할 수도 있다.[1]
참호전에서는 대치하는 참호선에 의해 돌출부가 명확하게 정의되며, 광범위한 정면 공격의 실패로 인해 형성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참호의 정적인 특성 때문에 포위망을 형성하기는 어려웠지만, 돌출부의 취약한 특성으로 인해 종종 소모전의 초점이 되었다.
2. 1. 공격에 의한 형성
공격측은 포위 공격을 통해 군사 측면을 우회하여 돌출부의 끝을 만들거나, 중앙에서 저지되지만 측면에서 진격하는 광범위한 정면 공격을 통해 돌출부를 형성할 수 있다. 공격자는 일반적으로 중앙에서만 성공하는 광범위한 정면 공격을 하여 자신의 라인에 돌출부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이 돌출부의 끝이 된다. 공격군은 후퇴하는 척하여 방어군을 유인하여 추격하게 하고, 미리 계획된 매복에 의해 주력군이 사방에서 포위될 때도 돌출부가 형성될 수 있다.[1]2. 2. 방어에 의한 형성
공격측이 중앙에서만 성공하는 광범위한 정면 공격을 할 경우, 공격측 자신의 방어선에 돌출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공격군은 후퇴하는 척하여 방어군을 유인, 추격하게 하고, 미리 계획된 매복에 의해 주력군이 사방에서 포위될 때 돌출부가 형성될 수도 있다.[1]2. 3. 유인에 의한 형성
공격측이 후퇴하는 척하여 방어측을 유인하고, 미리 계획된 매복을 통해 방어측 주력군을 사방에서 포위할 때 돌출부가 형성될 수도 있다.[1]2. 4. 참호전에서의 형성
참호전에서 돌출부는 대치하는 참호선에 의해 명확하게 정의되며, 광범위한 정면 공격의 실패로 인해 일반적으로 형성되었다.[1] 참호의 정적인 특성으로 인해 포켓을 형성하기는 어려웠지만, 돌출부의 취약한 특성으로 인해 종종 소모전의 초점이 되었다.3. 돌출부의 군사적 의의
돌출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형이다.
4. 돌출부의 사례
미국 남북 전쟁에서는 게티즈버그 전투 2일차와 스포트실베이니아 전투에서 돌출부가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었으나, 때로는 아군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영국이 이프르에, 프랑스는 베르됭 주변에 돌출부를 점령했고, 독일은 프롬멜 전투에서 설탕 봉우리라는 작은 돌출부를 점령하여 전술적 이점을 얻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소련이 쿠르스크에 거대한 돌출부를 점령하여 역사상 가장 큰 전차전을 벌였고, 독일군은 아르덴에서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벌지 전투를 일으켰다. 키프로스 침공에서는 터키군이 루로지나를 돌출부에 위치하게 했다.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에서는 보이라 전투가 보이라 돌출부를 놓고 벌어졌다. 한국 전쟁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는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왜관, 다부동, 영천, 안강, 포항 등지에 돌출부가 형성되었고,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4. 1. 미국 남북 전쟁
미국 남북 전쟁에서는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거나 방어선을 강화하기 위해 돌출부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티즈버그 전투와 스포트실베이니아 전투에서 돌출부는 때로는 아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때로는 적의 집중 공격 목표가 되어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4. 1. 1. 게티즈버그 전투 (1863년)
미국 남북 전쟁의 게티즈버그 전투 2일차에서, 북군 장군 대니얼 시클스는 명령 없이 자신의 제3군단을 연방군의 주 방어선 앞으로 이동시켰다. 이로 인해 남부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을 때 주력 부대와 거의 고립될 뻔했다. 시클스는 2개월 전 챈슬러즈빌 전투에서 캐서린의 용광로에서도 비슷한 위치를 점했고, 두 경우 모두 그의 군단은 심하게 훼손되었고 다른 부대의 구조를 받아야 했다.[2][3]4. 1. 2. 스포트실베이니아 전투 (1864년)
스포트실베이니아 전투에서 남부 연합군 북버지니아군은 전략적 요충지에 먼저 도착하여, 수적으로 우세한 연방군 포토맥군에 맞서기 위해 목재로 보강된 참호선을 구축했다.[2] 이 참호선은 고지대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돌출되었으며, '말굽 돌출부'로 알려지게 되었다. 연방군 병사들은 이 지점에 공격을 집중하여 돌파했고, 남부 연합군이 새로운 위치로 후퇴하기 전까지 22시간 동안 격렬한 백병전이 벌어졌다.[2]4. 2.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돌출부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작용했다.- 영국은 이프르에 큰 돌출부를 점령했다.[4]
- 프랑스 도시 베르됭 주변에도 돌출부가 존재했으며, 베르됭 전투는 양측에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
- 독일은 프롬멜 전투에서 설탕 봉우리라는 작은 돌출부를 점령하여 이점을 얻었다.
4. 2. 1. 이프르 돌출부 (1914년 ~ 1918년)
영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이프르에 큰 돌출부를 점령했다. 제1차 이프르 전투의 결과로 형성되었으며, 서부 전선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4] 이 돌출부는 너무나 오래 지속되었고 그 평판이 너무 끔찍해서 영국 보병이 "그 돌출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이프르를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4]4. 2. 2. 베르됭 전투 (1916년)
프랑스 도시 베르됭 주변에 형성된 돌출부를 둘러싼 베르됭 전투는 양측 모두에게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4. 2. 3. 프롬멜 전투 (1916년)
1916년 프롬멜 전투에서 독일은 설탕 봉우리라고 불리는 작은 돌출부를 점령했다. 이곳은 작았지만, 점령군에게 양 측면에 있는 무인지대를 측면 사격할 수 있게 하여 이점을 제공했다.4. 3.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소련은 쿠르스크에 거대한 돌출부를 점령했는데, 이곳은 역사상 가장 큰 전차전이자 동부 전선의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5] 1944년 12월, 독일군은 아르덴에서 진격하는 연합군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했고, 이 전투는 벌지 전투(아르덴 공세 및 폰 룬트슈테트 공세라고도 함)로 알려져 있다.[6]4. 3. 1. 쿠르스크 전투 (1943년)
소련은 쿠르스크에 150km 깊이의 거대한 돌출부를 점령했는데, 이곳은 역사상 가장 큰 전차전이 벌어진 곳이자 동부 전선의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진 곳이 되었다.[5]4. 3. 2. 벌지 전투 (1944년)
1944년 12월, 독일군은 아르덴 (주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 있는 광대한 숲 지역)에서 진격하는 연합군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이 전투는 몇 주 동안 큰 돌출부를 만들었으며, 일반적으로 벌지 전투(아르덴 공세 및 폰 룬트슈테트 공세라고도 함)로 알려져 있다.[6]4. 4. 키프로스 침공 (1974년)
터키군은 터키계 키프로스인 마을 루로지나까지 남쪽으로 진출하였다. 키프로스를 그리스와 터키 통제 구역으로 나누는 휴전선은 루로지나를 돌출부에 위치하게 하였다. 이 지역은 터키계 키프로스인 통제 키프로스의 나머지 지역에서 단 하나의 도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었다.4. 5.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1971년)
보이라 전투는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당시 인도군과 무크티 바히니 연합군이 파키스탄군에 맞서 제소르 로드라는 중요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벌인 전투였다. 이 전투는 보이라 돌출부에서 벌어졌다.4. 5. 1. 보이라 전투
보이라 전투(Battle of Boyra)는 인도군과 무크티 바히니가 중요한 보급로인 제소르 로드를 내려다보는 보이라 돌출부를 놓고 파키스탄군과 벌인 전투였다.[6]4. 6. 한국전쟁
1950년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을 따라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낙동강 방어선 곳곳에 돌출부가 형성되었으며, 특히 왜관, 다부동, 영천, 안강, 포항 등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2]4. 6. 1. 낙동강 방어선 전투 (1950년)
1950년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을 따라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 방어선 곳곳에서 돌출부가 형성되었으며, 특히 왜관, 다부동, 영천, 안강, 포항 등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국군과 유엔군은 돌출부를 중심으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의 기회를 모색했다.[2]5. 포켓 (Pocket)
기동전에서 돌출부는 포위망으로 변하기 쉽고, 이는 섬멸전의 초점이 된다.[1] 포위된 군대는 요새화된 지점을 방어하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포위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1]
참조
[1]
웹사이트
The Art of War under Chinggis Qahan (Genghis Khan) » de Re Militari
http://deremilitari.[...]
[2]
웹사이트
Daniel Sickles
https://www.historyn[...]
2022-03-24
[3]
웹사이트
The Antihero of Gettysburg
https://www.historyn[...]
2022-03-24
[4]
서적
Three Years in France with the Guns: Being Episodes in the Life of a Field Battery
https://books.google[...]
Echo Library
2007-06
[5]
웹사이트
Battle of Kursk
https://www.history.[...]
2009-10-29
[6]
간행물
How the Battle of the Bulge Got Its Name
https://time.com/574[...]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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