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뭄미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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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키우스 뭄미우스는 기원전 2세기 로마 공화정 시대의 정치가이자 군인이다. 그는 기원전 154년 히스파니아 울테리오르에서 루시타니아 반란을 진압하고 로마 개선식을 거행했다. 기원전 146년 집정관으로 선출되어 아카이아 전쟁에서 아카이아 동맹군을 격파하고 코린토스를 파괴했으며, 그리스를 로마의 속주로 만들었다. 이후 감찰관을 역임하며 엄격한 성격을 보였으나, 그리스 예술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루키우스 뭄미우스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
로마자 표기L. Mummius L. f. L. n.
국적로마
활동 시기공화정 로마
정치 경력
출신 계급평민
씨족뭄미우스 씨족
관직법무관 (기원전 153년)
속주 법무관? (기원전 152년)
집정관 (기원전 146년)
속주 총독 (기원전 145년)
감찰관 (기원전 142년)
군사 경력
참전 전투오킬레 전투
코린토스 공성전
수상로마 개선식
주요 사건
주요 업적코린토스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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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루키우스 뭄미우스의 초기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기원전 187년에 호민관을 지낸 루키우스 뭄미우스의 아들로 추정되며, 기원전 155년 선거에서 프라에토르(기원전 154년) 직을 획득했다.

2.1. 프라이토르 (법무관)

기원전 154년, 뭄미우스는 프라이토르(법무관)에 선출되어 히스파니아 울테리오르 (더 먼 스페인)에서 루시타니아인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반란은 푸니쿠스와 카에사루스가 이끌었다. 초기에는 몇 차례 패배를 겪었으나, 오킬레에서 보병 9,000명과 기병 500명으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수적으로 우세한 루시타니아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여 약 15,000명의 반란군을 죽이고 포위를 풀었다. 그의 후임자인 마르쿠스 아틸리우스는 루시타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옥스라카에를 점령했다. 뭄미우스는 루시타니아인과의 승리로 로마 개선식을 거행했다.

2.2. 집정관과 코린토스 전쟁

기원전 146년 집정관으로 선출된 뭄미우스는 아카이아 전쟁의 지휘를 맡아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로부터 지휘권을 넘겨받았다. 그는 로마 군단을 이끌고 펠로폰네소스반도로 원정을 떠나 아카이아 동맹과의 전쟁을 벌였다. 코린토스 지협에서 아카이아 동맹군을 상대로 승리하고 (코린토스 전투), 코린토스를 함락시켰다. 뭄미우스는 코린토스의 모든 남자를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았으며, 조각상, 그림 및 예술 작품은 압수되어 로마로 운송했다. 코린토스는 이후 잿더미로 변했다.

토마스 앨럼의 그림, 『코린토스 파괴의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1872년)
토마스 앨럼의 그림, 『코린토스 파괴의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1872년)


이러한 코린토스 파괴는 불필요해 보이는 잔혹 행위였지만, 몸젠은 위험한 상업적 경쟁자를 몰아내고자 했던 상인 세력의 압력에 따라 로마 원로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뭄미우스는 주변 사람들의 압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뭄미우스의 원정으로 그리스는 로마 속주인 아카이아 속주가 되었다. 또한 같은 해인 기원전 146년에 마케도니아도 로마 속주가 되었다.

로마로 돌아온 그는 개선식을 거행했으며, 군사적 공로로 아그노멘을 받은 최초의 노부스 호모였다.

2.3. 켄소르 (감찰관)

기원전 142년에 뭄미우스는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와 함께 감찰관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엄격한 성격은 관대한 동료와 자주 충돌을 일으켰다. 스키피오는 엄격한 검열을 실시하여 클라우디우스 아셀루스에게 켄소르의 견책(노타 켄소리아, 강등 처분)을 가했지만, 뭄미우스는 이를 중재하려 했다.

카피톨리누스 언덕은 뭄미우스의 아카이아 전리품으로 장식되었고,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이 프린켑스 세나투스로 다시 임명되었다. 이때의 켄서스에서는 성년 인구가 328,442명이었다고 한다.

그가 로마로 가져온 수많은 그리스 미술 작품은 많은 로마인들을 자극하여 그리스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뭄미우스 자신은 그리스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3. 예술에 대한 태도

뭄미우스는 로마로 보내온 수 많은 그리스 미술 작품이 많은 로마인들을 자극하여 그리스 미술에 푹 빠지게 하였지만, 정작 자신은 그리스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그의 예술 작품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는 코린토스의 보물을 로마로 운송하는 계약을 맺은 사람들에게 한 유명한 발언에서 드러난다. "만약 그들이 그것들을 잃거나 손상시킨다면, 그들은 그것들을 교체해야 할 것이다." 즉, 그는 "새것으로 교환하는 거래"가 그처럼 가치 있는 골동품에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뭄미우스는 코린토스를 약탈하고, 그곳의 귀중한 예술품과 호화로운 가구들을 배에 실어 로마로 보냈다. 그는 전시를 위한 연극적 과시를 위해 그리스 모델을 따른 개선된 음향 조건과 좌석을 갖춘 극장을 세웠고, 이는 오락 시설 건설에 있어 뚜렷한 진전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