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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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누엘 퐁세는 멕시코의 작곡가, 오르가니스트, 피아니스트, 지휘자이며, 특히 기타 음악과 가곡 '작은 별'의 작곡가로 유명하다. 사카테카스 주에서 태어나 유럽 유학 후 멕시코로 돌아와 활동했으며,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융합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기타를 위한 작품, 특히 '라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남부 소나티네' 등이 기타 연주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말년에 신장병으로 고통받다 1948년 사망했으며, 멕시코 국립 예술원 홀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사카테카스주의 프레스니요 시에서 태어났다.본업은 오르간 연주자였으나, 멕시코 민요 가운데에서 아름다운 멜로디를 발굴한 뒤 기타곡 등으로 편곡하여 소개했으며, 1948년에 멕시코시티에서 사망했다.
마누엘 퐁세의 작풍은 1912년에 작곡한 가곡 〈작은 별〉(Estrellita)에서 나타나듯이 아름다운 가락에 중점을 둔다. 주요 작품으로는 기타 독주곡 《스물네 개의 전주곡》(1925), 피아노곡 《네 개의 멕시코 춤》(1941), 가곡 〈작은 별〉(1912), 실내악곡 《현악 사중주》(1932), 《현악 삼중주》(1943), 《기타 사중주》(1946), 《낭만풍의 피아노 삼중주》(1912), 관현악곡 《차풀테펙》(1934), 기타 협주곡 《남부의 협주곡(1941), 피아노 협주곡 《낭만풍 협주곡》(1910), 《바이올린 협주곡》(1943) 등이 있다.
2. 생애
사카테카스 주프레스니요영어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구아스칼리엔테스로 이주했다. 지방 성당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16세에 교회의 정식 오르가니스트를 맡는 등 음악적 재능을 나타냈으며, 그 후 18세부터 멕시코 시티 국립 음악원에서 배웠다. 1905년에 유럽으로 건너가 볼로냐와 베를린에서 유학하며, 리스트의 제자인 마르틴 클라우제에게 피아노를 사사했다. 1907년에 귀국하여 모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제자로는 카를로스 차베스가 있었다. 피아니스트로서는 드뷔시 등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힘썼다. 멕시코 혁명의 혼란을 피하여 1915년부터 1917년까지 쿠바에 머물렀으며, 이 사이에 뉴욕에서 작곡가 겸 연주가로 데뷔했다. 그 후 멕시코로 돌아와 프랑스 출신 여성 가수와 결혼했다. 1925년부터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 음악원에서 폴 뒤카에게 작곡을 사사했으며, 같은 곳에서 기타 연주자인 안드레스 세고비아와 친교를 맺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디아 불랑제에게도 사사했다. 1933년에 귀국하여 멕시코 대학교와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피아니스트, 지휘자로서도 활약했다.
말년에는 신장병, 류마티즘으로 고통받았다. 1948년, 미겔 알레만 대통령으로부터 '예술 과학 국가상'을 음악가로서 처음 수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멕시코 시티에서 요독증으로 사망했다. 이듬해 1949년, 멕시코 국립 예술원의 홀이 "살라 마누엘 M. 폰세"로 명명되었다. 멕시코 시티의 에 매장되어 있다.
폰세는 오늘날 야샤 하이페츠의 편곡으로 바이올린 소품으로 유명해진 가곡 '작은 별(에스트레리타)'(''Estrellita'')의 작가로 유명하다(가사도 그 자신이 썼다). 하지만,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이나 기타 협주곡 '남쪽의 협주곡'(Concierto del Sur, 1941년) 등 대작도 남겼다. 초기 피아노 협주곡은 슈만을 연상시키는 서정성과 정열적인 표현으로 낭만주의 음악의 전통에서 작곡되었다. 이 외에도 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영향을 받은 마주르카 등의 무곡, 연주회용 연습곡, 변주곡과 푸가 등의 피아노곡을 다수 남겼지만, 잃어버린 곡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폰세의 오리지널 기악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기타 작품으로, 특히 '라 폴리아'를 주제로 한 변주곡과 푸가(1929년), 슈베르트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로맨틱 소나타'(Sonata Romantica, 1927년 - 1929년), '기타 소나타 3번'(Sonata III, 1927년), '남국의 소나티네'(Sonatina Meridional, 1939년)는 세고비아의 연주 기교를 고려하여 작곡되었으며, 기타 연주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폰세는 유럽풍의 세련된 작풍으로 알려져 있으며, 창작의 소재로는 스페인 정복 후의 민요를 많이 사용했다(피아노용으로 2곡 남긴 '멕시코 광시곡'(1911년/1913년) 등). 그러나 후년에는 교육용 '20개의 쉬운 소품집'(1939년)에서 원주민 민요를 소재로 사용했다. 또한, 프랑스 유학 후에는 신고전주의, 다조성 등을 도입한 선진적인 작풍으로 전환했다.
2. 1. 초기 생애 (1882-1904)
마누엘 퐁세는 사카테카스주의 프레스니요 시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가족과 함께 아과스칼리엔테스 시로 이주하여 15세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음악 신동으로, 4세 때 누나 호세피나가 피아노 수업을 듣는 것을 들은 후 악기 앞에 앉아 들었던 곡 중 하나를 연주할 정도였다. 그의 부모는 즉시 그에게 피아노와 악보 수업을 받게 했다. 지방 성당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16세에 교회의 정식 오르간 연주자가 되는 등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며, 18세부터 멕시코 시티 국립 음악원에서 배웠다.
2. 2. 유학 시절 (1904-1908)
퐁세는 1904년 이탈리아 볼로냐의 조반니 바티스타 마르티니 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했다. 1906년부터 1908년까지는 독일 베를린의 슈테른 음악원에서 마틴 크라우스의 제자로 공부했다. 그는 리스트의 제자인 마르틴 클라우제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2. 3. 멕시코 귀국과 활동 (1909-1925)
퐁세는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09년부터 1915년까지, 그리고 1917년부터 1922년까지 국립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음악사를 가르치기 위해 멕시코로 돌아왔다.[1] 1915년부터 1917년까지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생활하였다.[1]
1912년에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별빛(Estrellita)"을 작곡했다.[1] 이 곡은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생생한 향수(Nostalgia Viva)"를 담고 있다. 같은 해, 퐁세는 "아르보 극장"에서 멕시코 대중음악 콘서트를 열었는데, 이는 유럽 고전 음악 옹호자들에게는 충격이었지만 멕시코 민족 가요 역사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1]
에이토르 빌라로부스는 1920년대 파리에서 퐁세를 만났는데, 퐁세가 멕시코 민족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고 기록했다.[1] 퐁세는 "별빛(Estrellita)", "야자수 해변에서(A la orilla de un palmar)", "일어나라(Alevántate)", "새장(La Pajarera)", "시들어진 영혼(Marchita el Alma)", "더 많은 군중(Una Multitud Más)"과 같은 멜로디를 작곡하고 멕시코 음악을 홍보하여 '현대 멕시코 가요의 창시자'라는 칭호를 얻었다.[1] 그는 대중음악을 세계에 알린 최초의 멕시코 작곡가이기도 하다. "별빛(Estrellita)"은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의 레퍼토리에 포함되었지만, 이 곡의 기원과 작가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1]
1947년에는 국가 과학 예술상을 받았다.[1]
2. 4. 유럽 재방문과 국제적 명성 (1925-1933)
퐁세는 1925년부터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 음악원에서 폴 뒤카에게 작곡을 사사했으며, 같은 곳에서 기타 연주자인 안드레스 세고비아와 친교를 맺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디아 불랑제에게도 사사했다. 1933년에 귀국하여 멕시코 대학교와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피아니스트, 지휘자로서도 활약했다.
퐁세의 오리지널 기악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기타 작품으로, 특히 '라 폴리아'를 주제로 한 변주곡과 푸가(1929년), 슈베르트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로맨틱 소나타'(Sonata Romantica, 1927년 - 1929년), '기타 소나타 3번'(Sonata III, 1927년), '남국의 소나티네'(Sonatina Meridional, 1939년)는 세고비아의 연주 기교를 고려하여 작곡되었으며, 기타 연주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퐁세는 유럽풍의 세련된 작풍으로 알려져 있으며, 창작의 소재로는 스페인 정복 후의 민요를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후년에는 교육용 '20개의 쉬운 소품집'(1939년)에서 원주민 민요를 소재로 사용했다. 또한, 프랑스 유학 후에는 신고전주의, 다조성 등을 도입한 선진적인 작풍으로 전환했다.
2. 5. 말년과 사망 (1933-1948)
사카테카스주의 프레스니요 시에서 태어났다.본업은 오르간 연주자였으나, 멕시코 민요 가운데에서 아름다운 멜로디를 발굴한 뒤 기타곡 등으로 편곡하여 소개했다. 말년에는 신장병, 류마티즘으로 고통받았다. 1948년, 미겔 알레만 대통령으로부터 '예술 과학 국가상'을 음악가로서 처음 수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멕시코시티에서 요독증으로 사망했다. 이듬해 1949년, 멕시코 국립 예술원의 홀이 "살라 마누엘 M. 폰세"로 명명되었다. 멕시코 시티의 판테온 시빌 데 돌로레스에 매장되어 있다.
3. 작품 세계
퐁세는 독주 악기, 실내악 앙상블,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 현재 알려진 퐁세의 작품들 중 피아노와 기타를 위한 곡이 다른 독주 악기를 위한 곡보다 더 많다. ''별빛''은 퐁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퐁세의 중요한 작품들은 멕시코 피아노 연주자이자 교육자였으며 퐁세에게 사사한 카를로스 바스케스(Carlos Vázquez)가 자칭 상속자로서 원본 악보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었기에, 이전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이 작품들 대부분은 멕시코시티의 국립 음악 학교(UNAM)에 기증되었으며, 그의 작품 분석 목록을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바스케스는 퐁세의 소지품 일부를 사카테카스에 있는 마누엘 M. 퐁세 박물관에 기증했다. 불행히도 바스케스는 박물관 개관 몇 달 전에 사망했다.
오늘날까지 다양한 편곡으로 들을 수 있는 퐁세의 멜로디 중 하나는 "작은 별"(Estrellita, 1912)이다.
3. 1. 기타 음악
마누엘 퐁세의 작풍은 1912년에 작곡한 가곡 〈작은 별〉(Estrellita)에서 나타나듯이 아름다운 가락에 중점을 둔다. 주요 작품으로는 기타 독주곡 《스물네 개의 전주곡》(1925), 피아노곡 《네 개의 멕시코 춤》(1941), 가곡 〈작은 별〉(1912), 실내악곡 《현악 사중주》(1932), 《현악 삼중주》(1943), 《기타 사중주》(1946), 《낭만풍의 피아노 삼중주》(1912), 관현악곡 《차풀테펙》(1934), 기타 협주곡 《남부의 협주곡(1941), 피아노 협주곡 《낭만풍 협주곡》(1910), 《바이올린 협주곡》(1943) 등이 있다.
퐁세의 기타 음악은 이 악기의 레퍼토리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며,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라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1929)와 ''남부 소나티나'' (1939)가 있다. 그는 또한 그의 오랜 친구이자 기타 거장인 안드레스 세고비아에게 헌정된 기타 협주곡 콘시에르토 델 수르를 작곡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아버지 안토니오 브람빌라에게 헌정된 ''카베손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1948년, 그가 사망하기 몇 달 전에 쓰여졌다. 이 변주곡이 실제로 안토니오 데 카베손의 주제를 기반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퐁세의 스승이자 오르간 연주자인 엔리코 보시의 작품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다음은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일부를 선택한 것이다.
세고비아가 연주하고 녹음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의 전주곡을 기타용으로 편곡한 것은 퐁세의 익명 작품이다.
퐁세는 또한 "기타와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했다. 세고비아는 이 소나타의 전주곡을 류트 연주자이자 바흐의 동시대 인물인 S. L. 바이스에게 돌렸다. 세고비아는 이 곡을 솔로와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라파엘 푸야나와 함께 듀엣으로 녹음했다.
퐁세는 또한, 세고비아가 녹음한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D조 앤티구아 모음곡"의 작곡가로도 유명하며, 이 곡은 세고비아를 위해 (알고서) 작곡되었으며, 존 윌리엄스와 마누엘 로페즈 라모스 등도 일부 연주했다. 이 속임수는 한 악장이 원래 류트 곡으로 추정되었던 것보다 훨씬 높게 올라가는 것을 관찰하면서 마침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음곡은 매우 아름답다.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는 명성이 있지만 (당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바흐의 친구이자 바로크 류트 작품의 탁월한 작곡가였던, 알려지지 않은 줄 알았던 퐁세/세고비아의 이전 파스티슈의 작곡가였던 실비우스 레오폴트 바이스보다 더 나은 선택이었다.3. 2. 피아노 음악
마누엘 퐁세는 아름다운 가락에 중점을 둔 작품을 썼으며, 그 예로는 1912년에 작곡한 가곡 〈작은 별(Estrellita)〉이 있다. 주요 피아노 작품으로는 《스물네 개의 전주곡》(1925), 《네 개의 멕시코 춤(Cuatro Danzas Mexicanas)》(1941), 《낭만풍의 피아노 삼중주》(1912) 등이 있다.
그의 피아노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3. 3. 실내악
마누엘 퐁세는 아름다운 가락에 중점을 둔 작품들을 작곡하였다. 주요 실내악 작품으로는 《현악 사중주》(1932), 《현악 삼중주》(1943), 《기타 사중주》(1946), 《낭만풍의 피아노 삼중주》(1912)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현악 3중주를 위한 미니어처''(1927),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 아 듀오''(1936–1938),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로맨틱 트리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을의 노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기타와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첼로 소나타'', ''피아노 삼중주 《로맨틱》'', ''기타와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등이 있다.
3. 4. 관현악
마누엘 퐁세는 〈작은 별〉(Estrellita)에서 보여지듯이 아름다운 가락에 중점을 둔 작품을 썼다. 관현악곡으로는 《차풀테펙》(1934), 기타 협주곡 《남부의 협주곡》(1941), 피아노 협주곡 《낭만풍 협주곡》(1910), 《바이올린 협주곡》(1943) 등이 있다.
《밤의 인상》, 교향적 3부작 《차풀테펙》, 『로맨틱』, 남쪽 협주곡/Concierto del Sures, 바이올린 협주곡 등이 있다. 피아노 협주곡 2번(1946)은 미완성으로 남았다.[6]
3. 5. 가곡
퐁세는 1912년에 작곡한 가곡 〈작은 별/Estrellitaes〉에서 보여지듯이 아름다운 가락에 중점을 둔 작품들을 작곡하였다. 주요 가곡 작품으로는 〈작은 별/Estrellitaes〉(1912) 외에, "아디오스 미 비엔"(Adiós mi bien), "알레루야"(Aleluya), "아레반타테"(Alevántate), "세르카 데 티"(Cerca de tí), ''다섯 개의 중국 시/Cinco poemas chinoses'', ''F.A. 데 이카사의 시 네 편/Cuatro poemas de F.A. de Icazaes'', ''두 개의 독일 시/Dos poemas alemanesde'', ''B. 다발로스의 시 두 편/Dos poemas de B. Dávaloses'', "포르세"(Forse), "호 비소뇨"(Ho bisogno), "인솜니오"(Insomnio), "이사우라 데 미 아모르"(Isaura de mi amor), "라 파하레라"(La pajarera), "레호스 데 티"(Lejos de tí), "레호스 데 티" II(Lejos de tí II), "마르치타 엘 알마"(Marchita el alma), "네세시토"(Necesito), "오프렌다"(Ofrenda), "포에마 데 프리마베라"(Poema de primavera), "포르 티 미 코라손"(Por tí mi corazón), "로만체타"(Romanzeta), "스페란도, 소냐도"(Sperando, sognando), ''여섯 개의 아라카이코 시/Seis poemas aracáicoses'', ''멕시코 세레나데/Serenata mexicanaes'', "소뇨 미 멘테 로카"(Soñó mi mente loca), "탈 베스"(Tal vez), "토이"(Toi), ''E. 곤잘레스 마르티네스의 시 세 편/Tres poemas de E. González Martínezes'', ''M. 브룰의 시 세 편/Tres poemas de M. Brulles'', ''레르몬토프의 시 세 편/Tres poemas de Lermontowru'', ''R. 타고르의 시 세 편/Tres poemas de R. Tagorees'', ''세 개의 프랑스 시/Tres poemas franceses프랑스어'', "투"(Tú), "울티모 엔수뇨"(Último ensueño), "우나 물티투드 마스"(Una multitud más) 등이 있다. 또한, 다수의 민요를 편곡하기도 하였다.
3. 6. 멕시코 민족주의 음악에 끼친 영향
마누엘 퐁세의 작풍은 1912년에 작곡한 가곡 〈작은 별〉(Estrellita)에서 나타나듯이 아름다운 가락에 중점을 둔다. 주요 작품으로는 기타 독주곡 《스물네 개의 전주곡》(1925), 피아노곡 《네 개의 멕시코 춤》(1941), 가곡 〈작은 별〉(1912), 실내악곡 《현악 사중주》(1932), 《현악 삼중주》(1943), 《기타 사중주》(1946), 《낭만풍의 피아노 삼중주》(1912), 관현악곡 《차풀테펙》(1934), 기타 협주곡 《남부의 협주곡》(1941), 피아노 협주곡 《낭만풍 협주곡》(1910), 《바이올린 협주곡》(1943) 등이 있다.
퐁세의 중요한 작품들은 멕시코 피아노 연주자이자 교육자였으며 퐁세에게 사사한 카를로스 바스케스(Carlos Vázquez)가 자칭 상속자로서 원본 악보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었기에, 이전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이 작품들 대부분은 멕시코시티의 국립 음악 학교(UNAM)에 기증되었으며, 그의 작품 분석 목록을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바스케스는 퐁세의 소지품 일부를 사카테카스에 있는 마누엘 M. 퐁세 박물관에 기증했다. 불행히도 바스케스는 박물관 개관 몇 달 전에 사망했다.
오늘날까지 다양한 편곡으로 들을 수 있는 퐁세의 멜로디 중 하나는 "작은 별"(Estrellita, 1912)이다. 퐁세의 다른 노래로는, "야자나무 둑에서", "당신에게", "나를 기억해요", "안녕, 나의 사랑",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 곁에", "시에리토 린도", "당신의 삶을 돌보세요" 등이 있다.
4. 퐁세와 한국 음악
5. 미디어
]
참조
[1]
간행물
Manuel Maria Ponce (1882–1948)
https://web.archive.[...]
Guitarra Magazine
2016-09-16
[2]
간행물
Las muchas lecturas de una grabación sonora
http://www.redesmusi[...]
[3]
간행물
Dos grabaciones históricas y algunos de sus valores: Revueltas y Ponce
http://dialnet.uniri[...]
[4]
웹사이트
Duo-Art Piano Roll Catalog
http://www.rprf.org/[...]
2012-12-02
[5]
간행물
Mechanical Music Digest
http://www.mmdigest.[...]
[6]
웹사이트
La OSSLP recordará el estreno en la Ciudad de México del Segundo Concierto para Piano Manuel M. Ponce por televisión abierta
https://slp.gob.mx/s[...]
[7]
웹사이트
Museo Manuel M. Ponce | , Mexico | Sights
https://www.lonely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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