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토르 빌라로부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에이토르 빌라로부스(Heitor Villa-Lobos)는 1887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난 브라질의 작곡가이다. 그는 브라질 민속 음악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작품을 통해 브라질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으며, 다양한 장르의 1,000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브라질 민속 음악과 바흐의 대위법을 결합한 《브라질풍의 바흐》, 브라질식 세레나데인 《쇼로스》 등이 있으며, 브라질 민족주의 음악의 선구자이자 라틴 아메리카 음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한 음악 교육에도 힘썼으며, 1959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사망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브라질의 클래식 작곡가 - 이그베르투 지즈몬티
브라질 출신 작곡가이자 기타 연주자인 이그베르투 지즈몬티는 브라질 전통 음악, 재즈, 아방가르드 음악을 융합한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ECM 레코드 등과 협력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 브라질의 클래식 기타 연주자 - 로린도 알메이다
로린도 알메이다는 브라질 출신의 기타리스트, 작곡가, 편곡가로, 클래식, 재즈, 라틴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며 5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영화 및 텔레비전 사운드트랙 작업에도 참여했다. - 브라질의 클래식 기타 연주자 - 이그베르투 지즈몬티
브라질 출신 작곡가이자 기타 연주자인 이그베르투 지즈몬티는 브라질 전통 음악, 재즈, 아방가르드 음악을 융합한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ECM 레코드 등과 협력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 첼로 작곡가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바로크 시대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로, 뛰어난 대위법 기법과 독창적인 화성으로 서양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다양한 장르에 걸쳐 1000곡이 넘는 작품을 남긴 거장이다. - 첼로 작곡가 - 안토니오 비발디
안토니오 비발디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베네치아 피에타 고아원에서 다수의 작품을 작곡했으며,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로 널리 알려져 바로크 및 후대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말년에 빈곤 속에서 사망 후 20세기에 재평가되었다.
에이토르 빌라로부스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헤이토르 빌라로부스 |
출생일 | 1887년 3월 5일 |
출생지 | 브라질 제국 리우데자네이루 |
사망일 | 1959년 11월 17일 |
사망지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
국적 | 브라질 |
직업 | 작곡가 |
배우자 | |
배우자 | 루실리아 기마라에스 |
음악 스타일 | |
기타 |
2. 생애
에이토르 빌라로부스는 1887년 3월 5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스페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라울 빌라로부스는 도서관 사서이자 아마추어 작곡가였으며, 어머니 노에미아는 작곡가 안토니오 산토스 몬테이루의 친척이었다. 1899년 아버지가 천연두로 사망한 후, 카페와 영화관에서 첼로 연주자로 활동했다.
1905년 브라질 북동부를 여행하며 민속 음악을 수집했다. 이 여행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지만, 빌라로부스는 식인종을 만났던 경험을 회고하기도 했다. 이후 리우데자네이루의 국립 음악원에서 공부했지만, 그의 작품은 기존의 틀을 벗어난 독창적인 것이었다.
1912년 아마존 우림 지역을 탐험한 후 리우데자네이루에 정착했다. 1915년 11월 13일 첫 작품 발표회를 열었고, 재능을 인정받아 1923년 정부 지원금을 받아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1930년 브라질로 돌아와 음악 교육에 힘썼다.
빌라로부스는 브라질 음악 문화와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음악 교수법을 고안했으며, 민족음악을 접목한 대편성 합창곡을 작곡하는 등 교육자로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1944년부터는 미국 전역을 돌며 지휘 활동을 하고, 미국 오케스트라의 위촉 작품과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1959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사망했다. 사후, 그의 아내 알민다는 주셀리누 쿠비체크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빌라로부스 박물관을 설립하고 초대 관장을 역임했다.
2. 1. 유년 시절과 음악적 성장
1887년 3월 5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스페인계 이민자이자 도서관 사서, 아마추어 작곡가였던 아버지 라울과 음악가 집안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는 아마추어 천문학자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브라질은 사회 혁명과 근대화를 겪었고, 1888년에는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1889년에는 브라질 제국이 붕괴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 생활에도 반영되어, 이전에는 유럽 음악이 지배적이었지만 점차 브라질 고유의 음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빌라로부스는 아버지로부터 음악의 기초를 배우고, 삼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열리는 음악 파티에 참여하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아버지는 그에게 첼로, 클라리넷, 기타를 가르쳤고,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즐겨 연주했던 숙모의 영향도 받았다. 빌라로부스는 색소폰 등 다양한 악기를 독학으로 익혔고, 1899년경에는 작곡도 시작했다.[1]

1899년 아버지가 천연두로 사망한 후, 어머니는 빌라로부스가 의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음악가의 길을 선택했다.[1] 16세에 집을 나와 숙모 집에서 살면서 기타 레슨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연주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카페와 영화관에서 첼로 연주를 하기도 했다.[1]
2. 2. 브라질 민속 음악 탐구
1905년경 빌라로부스는 브라질의 "어두운 내륙"을 탐험하기 시작하여 브라질 원주민 음악 문화를 흡수했다.[1] 이 탐험에 보낸 10년 남짓 동안의 이야기와 식인종에게 잡혔다가 간신히 탈출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으며, 일부는 이것이 허구이거나 과장된 낭만주의라고 믿고 있다. 이 기간 이후 그는 전통적인 훈련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고 대신 포르투갈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 요소를 기반으로 한 브라질 원주민 문화의 음악적 영향을 흡수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이 시대의 클래식 기타 즉흥 연주의 결과였다.2. 3. 초기 작품 활동과 유럽 유학
1912년 아마존 우림 지역에 다녀온 후 리우데자네이루에 정착했다. 1915년 11월 13일에 첫 작품 발표회를 열었다.[8] 그의 재능은 인정받아 1923년 정부 지원금을 받아 파리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8]2. 4. 바르가스 시대의 활동과 음악 교육
1930년 브라질로 돌아와 음악 교육에 힘썼다. 빌라로부스는 당시 브라질 사람들을 위한 음악 교수법을 고안했는데, 브라질의 음악 문화와 애국심을 바탕으로 하였다.[2] 민족음악을 접목하여 학생들을 위한 대편성 합창곡을 썼다. 빌라로부스가 사망한 지 40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교수법은 삼바 음악과 MTV에 영향을 받는 브라질의 젊은 세대에게도 공감을 얻고 있다.2. 5. 국제적인 명성과 말년
1945년 바르가스가 실각하자 빌라로부스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과 함께 다시 해외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파리로 돌아갔고, 미국을 정기적으로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과 이스라엘을 여행하기도 했다.[6] 그는 수많은 위촉을 받아 작곡을 하였고, 건강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중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피아노, 첼로(1953년 두 번째 첼로 협주곡), 클래식 기타(1951년 세고비아를 위해 작곡, 세고비아는 1956년 작곡가가 카덴차를 제공할 때까지 연주를 거부함),[6] 하프(1953년 니카노르 사발레타를 위해), 하모니카(1955~56년 존 세바스찬을 위해)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다. 다른 위촉 작품으로는 1955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한 교향곡 11번과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예르마''(1955~56)가 있다. 이 시기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은 음표 남용과 진부함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5번에 대한 비평 반응에는 "파산 상태", "피아노 조율사들의 향연"이라는 평가가 포함되어 있으며,[6] "진부함의 깊은 곳을 파헤쳤다", "… 끈적끈적한 질감이나 초라한 낭만적 아이디어일 뿐이다", "결코 쓰여서는 안 되고, 더욱이 연주되어서도 안 되는 종류의 음악"이라는 평가가 있었다.[6]1958년 오드리 헵번과 앤서니 퍼킨스가 주연한 영화 ''그린 맨션''의 음악은 MGM이 위촉했으며, 이 작품으로 빌라로부스는 를 벌었고, 그는 직접 사운드트랙 녹음을 지휘했다.[7] 빌라로부스는 이 영화 음악을 바탕으로 소프라노 독창, 남성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을 편곡하여 ''아마존의 숲''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1959년 브라질의 소프라노 비두 사이앙, 신원 미상의 남성 합창단, 심포니 오브 더 에어와 함께 스테레오로 녹음했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레코드를 통해 LP와 릴-투-릴 테이프로 발매되었다.[7]
1959년 6월, 빌라로부스는 브라질이 "평범함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인터뷰를 통해 실망감을 표출하며 많은 동료 음악가들과 사이가 멀어졌다.[8] 11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사망했고, 그의 국장은 수도가 브라질리아로 이전되기 전 리오에서 열린 마지막 주요 시민 행사였다.[8] 그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세우 잔 바티스타 묘지에 묻혔다.
3. 주요 작품
에이토르 빌라로부스는 브라질 민족음악을 바탕으로 개성적이고 다채로운 작품들을 작곡했다. 그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오페라, 발레 음악, 영화 음악, 피아노곡, 기타곡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1,000여 곡이 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14] 그의 작품은 브라질 민속 음악의 리듬과 선율, 유럽 클래식 음악의 형식과 기법, 그리고 20세기 초 현대 음악의 실험 정신이 융합된 독창적인 스타일을 특징으로 한다.
그의 초기 작품은 기타 독주곡으로 시작되었으며, 1915년부터 1921년까지 열린 콘서트 시리즈에서는 독창성과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이 작품들에는 "이베리아 가곡(Canção Ibéria)"(1914년 작곡), "절망-환상적이고 변덕스러운 소나타 1번(Desesperança – Sonata Phantastica e Capricciosa no. 1)"(1915년 작곡), "화살에 맞은 새(L'oiseau blessé d'une flèche)"(1913년 작곡), "어머니들(Les mères)"(1914년 작곡), "꽃 스위트(Suíte floral)"(1916년~1918년 작곡) 등이 있다.
유럽 전통과 브라질적 영향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은 그의 초기 작품인 "소품 스위트(Pequena suíte)"(1913년 작곡)와 "세 개의 특징적인 춤곡(아프리카와 인디언)(Três danças características (africanas e indígenas))"(1914년~1916년 작곡) 등에서 나타난다.
그는 브라질 원주민의 영향을 받은 작품인 "아마조나스(Amazonas)"(1917년 작곡, 1929년 파리 초연)와 "우이라푸루(Uirapurú)"(1917년 작곡, 1935년 초연) 등을 통해 브라질 민담과 인물, 정글과 동물들의 소리를 음악에 담아냈다.
1918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을 만난 후, 빌라로부스는 "간단한 소곡집(Simples coletânea)"(1919년 작곡)과 "지옥의 발레(Bailado infernal)"(1920년 작곡)와 같은 피아노 음악을 작곡했다.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에 작곡된 "어린이들의 카니발(Carnaval das crianças)"은 빌라로부스의 성숙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1929년 "모모프레코세(Momoprecoce)"라는 제목으로 오케스트라 편곡되었다. 또한, 1918년에서 1921년 사이에 작곡된 피아노 모음곡 "아기의 가족(A Prole do Bebê)"에서도 순수함을 엿볼 수 있다.
빌라로부스는 도시 브라질의 영향과 인상을 융합한 "상징적 사중주(Quarteto simbólico)"(1921년 작곡)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는 쇼롱의 도시 거리 음악을 자신의 작품에 포함시켰는데, "신비주의 6중주(Sexteto místico)"(약 1955년 작곡)와 "브라질 전통 노래(Canções típicas brasileiras)"(1919년 작곡) 등이 그 예이다.
파리에서 그의 음악 어휘가 확립된 후, 빌라로부스는 작품 형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형식을 개발했다. 다악장의 "시(poema)" 형식은 "성악과 바이올린을 위한 스위트"와 "아이와 그의 어머니의 시(Poema da criança e sua mamã)"(1923년 작곡) 등에서 볼 수 있다. 루드포엠(Rudepoêma) 피아노곡은 실험적이고 까다로운 다층적인 작품이다. "시란다(Ciranda)" 또는 "시란지냐(Cirandinha)"는 다양한 분위기에서 단순한 브라질 민요를 세련되게 다룬 것이다.
그는 또한 1930년에서 1945년 사이에 브라질풍의 바흐라고 부르는 9개의 작품을 작곡했다. 이 작품들은 쇼루스의 형식과 민족주의를 취하고 작곡가의 바흐에 대한 애정을 더한 것으로, 신고전주의를 통합했다. "브라질 바흐풍 작품(Bachianas Brasileiras)" 9번은 작곡가의 민족적 영향을 완전히 증류한 추상적인 "전주곡과 푸가"이다.[11]
SEMA에서 활동하는 동안 빌라-로보스는 5번부터 9번까지 다섯 개의 현악사중주곡을 작곡했다. 그는 세고비아를 위해 "다섯 개의 전주곡(Cinq préludes)"등의 음악을 작곡했다.
빌라-로보스의 마지막 주요 작품은 영화 녹색의 저택의 음악이었지만, 결국 그의 대부분의 음악은 브로니스와프 카페르의 음악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마존의 숲(Floresta do Amazonas)"으로 편곡했고, 일부 짧은 노래는 별도로 발매되었다. 1957년 그는 17번 현악사중주곡을 작곡했다.[8] 1958년에 작곡된 "축복받은 지혜(Bendita Sabedoria)"는 라틴어 성경 본문의 비슷하게 단순한 설정인 일련의 무반주(a cappella) 합창곡이다.
12곡의 교향곡, 17곡의 현악사중주와 같은 고전적인 형식의 작품부터 9곡의 브라질풍의 바흐와 같은 실험적인 성격을 가진 작품까지, 무려 1,000곡에 가까운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곡가이며, 그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 1. 브라질풍의 바흐
Bachianas Brasileiraspt(바키아나스 브라질레이라스)는 빌라-로보스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바흐에 대한 경의와 브라질 민속 음악의 결합을 보여주는 9개의 모음곡으로, 변주 및 대위법적 기법이 사용되었다. 각 모음곡은 서로 다른 악기 편성을 가지며, 전곡이 함께 연주되는 경우는 드물다.[14]3. 2. 쇼로스
쇼로스(Chôros)는 브라질의 도시 민속 음악으로, 브라질식 세레나데라고도 할 수 있다. 빌라로부스는 14곡과 2개의 추가 곡을 작곡했으나, 13번과 14번은 악보가 분실되어 연주되지 않는다.[10] 이 시리즈는 작품마다 악기 편성이 다르다.3. 3. 교향곡
빌라로부스는 총 12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초기에는 유럽 낭만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브라질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교향곡 양식을 확립했다.[14] 특히 제3번부터 제5번까지는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을 기념하여 브라질 정부의 위촉으로 작곡된 3부작이다. 제5번은 악보가 분실되었다.제목 | 작곡 연도 |
---|---|
제1번 "알려지지 않은 것" | 1916년 |
제2번 "승천" | 1917년 |
제3번 "전쟁" | 1919년 |
제4번 "승리" | 1919년 |
제5번 "평화" | 1920년 (악보 분실) |
제6번 "브라질 산맥의 능선" | 1944년 |
제7번 | 1945년 |
제8번 | 1950년 |
제9번 | 1951년 |
제10번 "아메린디아" | 1952년 |
제11번 | 1955년 |
제12번 | 1957년 |
3. 4. 영화 음악
- '''브라질의 발견''' (Descobrimento do Brasil): 1937년. 이후 4곡으로 구성된 모음곡으로도 개편되었다.[14]
- '''녹색의 저택''' (Green Mansion): 1958년. 같은 해, 자신이 작곡한 부분을 발췌하여 '''아마존의 숲''' (Floresta do Amazonas)으로 개작하였다.[14]
3. 5. 기타 작품
빌라-로보스는 기타를 위한 작품도 많이 남겼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2개의 연습곡", "5개의 전주곡", "브라질 민요 모음곡" 등이 있으며, 이러한 작품들은 기타 연주자들의 중요한 레퍼토리로 자리 잡고 있다.[14] 그는 클래식 기타 연습곡에 쇼롱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세고비아를 위해 작곡한 "다섯 개의 전주곡(Cinq préludes)"은 그의 작곡 스타일이 좀 더 형식화된 면모를 보여준다.4. 음악적 특징과 영향
빌라로부스는 브라질의 토속적인 민족음악을 소재로 개성과 색채감에 넘치는 이국적인 작품을 작곡하였다. 바흐의 정신으로 브라질 민족음악을 작곡하였다는 《브라질풍의 바흐》(소프라노 독창과 첼로 합주를 위한 <제5번>은 특히 유명하다)를 비롯하여 피아노 모음곡 《아기의 가족》이나 기타 독주 《전주곡집》과 같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특색있는 작품들을 작곡한 것으로 평가된다.[14]
그의 초기 작품은 기타 독주곡(예: 1900년 작곡된 "판케이크(Panqueca)")으로 시작되었으며, 1915년부터 1921년까지 이어진 콘서트 시리즈에서는 독창성과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유럽 전통과 브라질적 영향을 조화시키는 것은 그의 후기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1913년 작곡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품 스위트(Pequena suíte)"는 첼로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지만, 브라질적인 특징은 뚜렷하지 않다. 1917년 작곡된 음악시 "아마조나스(Amazonas)"(1929년 파리에서 초연)와 "우이라푸루(Uirapurú)"(1935년 초연)는 브라질 원주민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로, 브라질 민담과 인물, 정글과 동물들의 소리 모방 등을 사용한다.
1918년 아서 루빈스타인을 만난 후, 빌라로부스는 "간단한 소곡집(Simples coletânea)"(1919)과 "지옥의 발레(Bailado infernal)"(1920)과 같은 피아노 음악을 작곡했다.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에 작곡된 "어린이들의 카니발(Carnaval das crianças)"은 빌라로부스의 성숙한 스타일이 나타난 작품이다. 이 무렵 그는 1921년 작곡된 "상징적 사중주(Quarteto simbólico)"와 같이 도시 브라질의 영향과 인상을 융합하기도 했으며, 쇼롱(chorões)의 도시 거리 음악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요소들은 빌라로부스의 9중주곡 "전 브라질의 빠른 인상(Impressão rápida do todo o Brasil)"에 융합되어 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실내악이지만, 대규모 타악기, 그리고 혼성 합창단을 위한 편곡이다.
파리에서 그의 음악 어휘가 확립되자, 빌라로부스는 소나타 형식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을 개발했다. 다악장의 "시(poema)" 형식은 "성악과 바이올린을 위한 스위트"와 "아이와 그의 어머니의 시(Poema da criança e sua mamã)"(1923)에서 볼 수 있다. 루드포엠(Rudepoêma) 피아노곡은 다층적인 작품으로, 실험적이고 까다롭다. "시란다(Ciranda)" 또는 "시란지냐(Cirandinha)"는 단순한 브라질 민요를 세련되게 다룬 것이다.
또 다른 형식은 "쇼루스(Chôros)"였다. 빌라로보스는 1924년부터 1929년 사이에 주로 다양한 악기를 위한 이 제목의 작품을 12개 이상 작곡했다. 그는 이것들을 "새로운 형식의 음악 작곡", 브라질 음악과 소리의 "작곡가의 개성에 의한" 변형이라고 설명했다.[10]
그는 또한 1930년에서 1945년 사이에 "브라질풍의 바흐"라고 부르는 9개의 작품을 작곡했다. 이 작품들은 "쇼루스(Chôros)"의 형식과 민족주의를 바흐에 대한 애정과 결합하고, 신고전주의를 통합했다. 소프라노와 8개의 첼로를 위한 5번(1938년-1945년)과 1930년 작곡된 오케스트라를 위한 2번 등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작곡가의 첼로 음색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며, 초기 음악의 거친 불협화음이 덜 두드러진다. "쇼루스(Chôros)"가 "브라질풍의 바흐"로 변형된 것은 플루트와 바순을 위한 6번과 플루트와 클라리넷을 위한 초기 쇼루스 2번(Chôros No. 2)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브라질풍의 바흐" 9번은 추상적인 "전주곡과 푸가" 형태를 띤다.[11]
SEMA에서 활동하는 동안 빌라로부스는 5번부터 9번까지 다섯 개의 현악사중주곡을 작곡했다. 세고비아를 위해 "다섯 개의 전주곡(Cinq préludes)" 등 더 많은 음악을 작곡했다. 바르가스 정부 몰락 후, 빌라로보스는 작곡에 전념하여 왕성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그의 협주곡, 특히 클래식 기타, 하프, 하모니카를 위한 협주곡은 그의 초기 "시(poema)" 형식의 예이다.
빌라로보스의 마지막 주요 작품은 영화 그린 맨션의 음악이었지만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마존의 숲(Floresta do Amazonas)"으로 편곡되었고, 일부 짧은 노래는 별도로 발매되었다. 1957년 그는 17번 현악사중주곡을 작곡했다.[8]
4. 1. 브라질 민족주의 음악의 선구자
빌라로부스는 브라질의 토속적인 민족음악을 소재로 독창적이고 다채로운 작품들을 작곡했다. 특히, 바흐의 정신으로 브라질 민족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브라질 풍의 바흐》는 소프라노 독창과 첼로 합주를 위한 <제5번>이 유명하다.[14] 피아노 모음곡 《아기의 가족》, 기타 독주 《전주곡집》과 같은 소품들에서도 그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다.[14]1913년, 빌라로부스는 피아니스트 루실리아 기마랑이스와 결혼[2]한 후 본격적으로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배웠고, 1913년부터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1915년부터 1921년까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실내악 및 관현악 연주회를 열어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 시기 빌라로부스는 유럽 음악과 브라질 음악 사이에서 정체성 위기를 겪었지만, 1916년 교향시 《아마조나스》와 《우이라푸루》를 작곡하면서 브라질 원주민 전설과 민속 자료를 활용한 독자적인 음악 스타일을 확립했다.[14]
1917년, 빌라로부스는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 브라질 순회 공연에 영향을 받았으며, 프랑스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를 만나 클로드 드뷔시, 에릭 사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접하고 브라질 거리 음악을 소개했다. 1918년에는 피아니스트 아서 루빈스타인을 만나 더 많은 피아노 음악을 작곡하게 되었다.[3]
1918년경, 빌라로부스는 작품 번호 사용을 중단하고, 1919년부터 1920년까지 피아노 모음곡 《카르나발 다스 크리안사스》를 통해 유럽 낭만주의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다.[14]
1922년 2월, 상파울루에서 열린 현대 미술 축제에서 빌라로부스는 자신의 작품을 공연했지만, 언론과 관객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14] 하지만 1922년 7월, 루빈스타인이 피아노 모음곡 《아 프로레 두 베베》를 초연하면서 "브라질 모더니즘의 첫 번째 지속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14]
1923년, 빌라로부스는 파리로 떠나 에드가르 바레즈, 파블로 피카소, 레오폴드 스톡호프스키, 아론 코플랜드 등과 교류하며 그의 음악은 파리에서 큰 인상을 남겼다.[14] 1920년대에 빌라로부스는 스페인 기타리스트 안드레스 세고비아를 만나 기타 연습곡을 의뢰받고, 브라질 거리 음악가들(''코롱'')의 영향을 받은 12개의 작품을 작곡했다.[4]
1930년, 빌라로부스는 브라질 혁명으로 인해 파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상파울루를 중심으로 연주회를 기획하며 애국적인 교육 음악을 작곡했다. 1932년, 그는 "교육 음악 예술 감독청"(SEMA)의 감독이 되어 브라질 초연 연주회와 브라질 작품 연주회를 기획했다. SEMA에서의 활동은 그가 주로 애국적이고 선전적인 작품을 작곡하게 했지만, 《바키아나스 브라질레이라스》는 예외적인 작품이었다.
1936년, 빌라로부스는 아내와 헤어지고 아르민다 네베스 달메이다와 연애 관계를 맺었다.[5] 헤투리우 바르가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빌라로부스는 브라질 국민성에 대한 선전[5]과 교육적인 작품들을 썼다. 1937년 이후 바르가스가 권력을 장악한 "에스타두 노보" 기간 동안에도 빌라로부스는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는 애국적인 작품들을 계속 제작했다.
빌라로부스의 초기 작품은 기타 독주곡으로 시작되었으며, 1915년부터 1921년까지의 콘서트 시리즈에서는 독창성과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연주되었다. 이 작품들에는 이베리아 반도에 대한 애착, 고뇌와 절망, 새, 모자 관계, 꽃 등 그의 전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들이 나타난다.
유럽 전통과 브라질적 영향을 조화시키는 것은 그의 후기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1913년 작곡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품 스위트》는 첼로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지만, 브라질적인 특징은 뚜렷하지 않다.[9] 1914년에서 1916년 사이에 작곡된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특징적인 춤곡》은 마토 그로소의 카리푸나 인디언들의 부족 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9]


4. 2. 다양한 음악 양식의 융합
빌라로부스는 브라질의 토속적인 민족음악을 소재로 하여 개성과 색채감이 넘치는 이국적인 작품을 작곡하였다.[14] 특히 소프라노 독창과 첼로 합주를 위한 <제5번>으로 유명한 《브라질풍의 바흐》는 바흐의 정신으로 브라질 민족 음악을 작곡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아노 모음곡 《아기의 가족》, 기타 독주 《전주곡집》과 같은 소품들에서도 그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14]참조
[1]
harvard
[2]
harvard
[3]
harvard
[4]
뉴스
''Le Monde musical''
''Le Monde musical''
1927-12-31
[5]
harvard
[6]
뉴스
''Musical Opinion''
Musical Opinion
1955
[7]
웹사이트
Heitor Villa-Lobos "Floresta do Amazonas"
https://www.youtube.[...]
2013-08-28
[8]
harvard
[9]
harvard
Villa-Lobos, sua obra
[10]
문서
Chôros No. 3
[11]
harvard
Bachianas Brasileiras
[12]
웹사이트
Great Recordings of the Century: Villa-Lobos: Bachianas Nos. 1, 2, 5 & 9
https://web.archive.[...]
2015-11-19
[13]
웹사이트
Cruzado (Cz$) vigente de 28/2/1986 a 15/1/1989
http://www.bcb.gov.b[...]
브라질중앙은행
2017-03-21
[14]
웹사이트
세계음악/서양음악가와 작품감상/미국·중남미#빌라 로보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