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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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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고전주의 음악은 20세기 초,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표현주의를 거부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 비 게르만 작곡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음악 운동이다. 19세기 의고주의와 달리, 토론을 즐기는 논객들이 자신들의 미학을 이론적으로 무장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를 통해 신고전주의 이념이 제시되었으며, 스트라빈스키의 네오 바로크 양식은 다양한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코다이, 바르토크 등의 헝가리 작곡가들과 다리우스 미요, 알렉산드르 체레프닌 등은 민족 음악 요소를 활용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카젤라와 말리피에로가 신고전주의를 추진했으나, 레스피기, 피체티의 낭만적이고 복고적인 작품이 유명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주요 작곡가들의 변화와 전위 음악의 등장으로 쇠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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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 음악

2. 역사적 배경 및 전개

20세기 음악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영어)는 과거, 특히 바로크 시대와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 양식과 형식을 빌려와 당대의 음악 언어와 결합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비록 "신고전주의"라는 용어는 20세기의 특정 음악 운동을 지칭하지만, 그 뿌리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란츠 리스트, 에드바르 그리그,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등 일부 작곡가들은 이미 과거 양식을 차용하여 향수적이거나 사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교향곡 1번 (1917)이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시민 귀족'' 모음곡 (1917) 등도 초기 신고전주의적 경향을 보여주는 예시로 언급된다.

본격적인 신고전주의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주관성과 감정 과잉,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과 독일 표현주의 음악에 대한 반작용으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전쟁의 참화는 기존 질서와 가치관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예술 분야에서도 객관성, 명료성, 질서, 균형미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신고전주의는 과거의 형식미를 통해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꼽힌다. 그가 1920년에 발표한 발레 『풀치넬라』는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로 알려졌던)의 음악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화성과 리듬을 가미하여 신고전주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스트라빈스키 이후 많은 작곡가들이 신고전주의 양식을 받아들였으며, 이는 프랑스 6인조, 독일의 파울 힌데미트, 러시아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등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또한, 명교사 나디아 불랑제를 통해 애런 코플런드, 월터 피스톤 등 많은 미국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스페인의 마누엘 데 파야, 이탈리아의 알프레도 카셀라, 라틴 아메리카 등 다른 지역에서도 신고전주의적 경향이 나타났다.

신고전주의는 단순히 과거 양식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변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작곡가들은 소나타, 협주곡, 푸가, 모음곡 등 전통적인 형식을 사용하면서도 불협화음, 불규칙한 리듬, 확장된 조성 등 20세기적인 음악 어법을 결합하여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고자 했다. 심지어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들로 대표되는 12음 기법 진영에서도 작품의 구조적 명료성을 위해 고전적인 형식을 차용하는 등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 신고전주의 작곡가들은 19세기의 의고주의 작곡가들과 달리, 자신들의 음악적 지향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토론하며 이론적으로 정립하려 했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들은 과거와의 연결을 통해 음악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회복하고자 했으며, 이는 20세기 음악의 다양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축이 되었다.

2. 1. 20세기 초 신고전주의의 태동

"신고전주의"라는 용어는 20세기의 음악 운동을 가리키지만, 19세기에 이미 중요한 선구자들이 있었다. 프란츠 리스트의 ''À la Chapelle Sixtine''(1862), 에드바르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1884),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스페이드 여왕''(1890) 중 디베르티스망, 조르주 에네스쿠의 ''옛 양식의 피아노 모음곡''(1897), 막스 레거의 ''옛 양식의 협주곡''(1912)과 같은 작품들에서 작곡가들은 과거 양식을 차용하여 향수적이거나 사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을 만들었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교향곡 1번 (1917년)은 때때로 신고전주의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언급된다. 프로코피예프 자신은 이 작품을 "지나가는 단계"로 여겼지만,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는 1920년대에 그의 음악의 주된 흐름이 되어갔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역시 오케스트라 모음곡 ''시민 귀족'' Op. 60(초판 1911년, 최종판 1917년)에서 신고전주의적 요소를 도입했다.

오토리노 레스피기 또한 1917년에 작곡된 ''고대 가요와 무곡'' 모음곡 1번을 통해 신고전주의의 선구자로 꼽힌다. 레스피기는 유명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였을 뿐만 아니라 음악학자로서, 18세기 음악 형식이 아닌 16~17세기 이탈리아 음악에 주목했다. 동시대의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인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작품 전집을 편찬했는데, 이는 단순히 옛 형식을 부활시키는 것을 넘어, 소나타 형식과 같은 고착화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곡 방식을 모색하려는 시도였다.[1]

본격적인 신고전주의의 시작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의 주제(나중에 상당수가 동시대 다른 작곡가의 작품으로 밝혀짐)를 사용하여 발레 ''풀치넬라''(1919-20)를 작곡하면서부터로 여겨진다. 미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T. 콘은 이 작품이 과거 양식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고 변형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스트라빈스키는 관악기를 위한 옥텟, "덤바턴 오크스" 협주곡, D장조 협주곡, 시편 교향곡, C장조 교향곡, 세 악장 교향곡, 오페라-오라토리오 ''오이디푸스 렉스'', 발레 ''아폴로'', ''오르페우스'' 등에서 신고전주의 양식을 발전시켰다. 특히 ''오이디푸스 렉스'', ''아폴로'', ''오르페우스''에서는 고대 그리스 분위기를 명확히 드러냈다. 그의 신고전주의는 W. H. 오든의 대본을 사용한 오페라 ''방탕아의 행각''에서 절정에 달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는 프랑스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 프란시스 풀랑크, 아르튀르 오네게, 제르맹 테유페르와 체코의 보후슬라프 마르티누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마르티누는 자신의 작품에서 바로크 시대의 합주 협주곡 형식을 부활시키기도 했다. ''풀치넬라''와 같이 기존 바로크 작품을 재구성하는 방식은 알프레도 카셀라의 ''스카를라티아나''(1927), 풀랑크의 ''프랑스 모음곡'', 레스피기의 ''고대 가요와 무곡'' 및 ''새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쿠프랭의 건반 작품에서 가져온 무곡 모음곡''(1923)과 ''쿠프랭의 건반 작품에서 가져온 디베르티멘토'' Op. 86(1943) 등 유사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1926년경부터 벨러 버르토크의 음악에서도 신고전주의적 특징이 두드러졌으며, 그는 스트라빈스키가 옛 음악 요소를 활용해 새로운 음악을 창조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동료 졸탄 코다이를 또 다른 헝가리의 신고전주의 추종자로 언급했다.

독일에서는 파울 힌데미트가 신고전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는 강한 대위법과 반음계적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 실내악, 관현악곡,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오페라 ''화가 마티스''가 대표적이다. 로만 블라드는 스트라빈스키의 "고전주의"가 작품의 외적 형식과 패턴에 집중하는 반면, 페루초 부소니의 "고전성"은 작가의 내면적 성향과 태도를 나타낸다고 구분했다. 부소니는 파울 베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젊은 고전주의'란 이전 실험의 모든 성과를 숙달하고 선별하여 강력하고 아름다운 형식에 담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고전주의는 나디아 불랑제를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널리 퍼졌다. 그녀는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제자로는 그라지나 바체비치, 레녹스 버클리, 엘리엇 카터, 프란시스 샤그린, 애런 코플런드, 데이비드 다이아몬드, 어빙 파인, 해롤드 샤페로, 장 프랑세, 로이 해리스, 이고르 마르케비치, 다리우스 미요, 아스토르 피아졸라, 월터 피스톤, 네드 로렘, 버질 톰슨 등이 있다.

스페인에서는 마누엘 데 파야의 하프시코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협주곡(1926)이 국제적인 모더니즘 미학과 연결된 "보편주의"(universalismo)의 표현으로 평가받았다. 파야는 이 작품에서 15세기 빌라시코 "De los álamos, vengo madre"의 일부를 인용했으며, 이미 꼭두각시 오페라 ''마에스트로 페드로의 제단화''(1919–23)에서 17세기 음악을 인용하며 신고전주의를 받아들였다. 그의 후기 신고전주의 작품으로는 실내 칸타타 ''프시케''(1924)와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의 ''El gran teatro del mundo''를 위한 부수 음악(1927) 등이 있다. 로베르토 게르하르트 역시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에 현악 협주곡, 목관 5중주, 칸타타 ''L'alta naixença del rei en Jaume'', 발레 ''아리엘'' 등 신고전주의 양식의 작품을 썼다. 다른 중요한 스페인 신고전주의 작곡가로는 공화국 세대(27년 세대)의 훌리안 바티스타, 페르난도 레마차, 살바도르 바카리세, 헤수스 발 이 가이 등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파리 유학 후 귀국한 알프레도 카셀라가 신고전주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는 스트라빈스키나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같은 모더니스트 작곡가들을 이탈리아에 소개하는 데 힘썼다. 그의 대표적인 신고전주의 작품으로는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 모티프를 사용한 ''스카를라티아나''(1926)와 같은 해의 ''로마 협주곡''이 있다. 카셀라의 동료 마리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역시 초기 이탈리아 음악과 고전 모델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썼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G단조 ''이탈리아 협주곡''(1924)은 안토니오 비발디와 16-17세기 이탈리아 민요를 반영하며, 기타 협주곡 1번 D장조(1939)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협주곡 양식을 의식적으로 따랐다.

포르투갈에서는 나디아 불랑제에게 배운 아르만도 호세 페르난데스와 호르헤 크로너 드 바스콘셀로스가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꼽힌다.

남아메리카,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도 신고전주의는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아르헨티나의 신고전주의는 유럽과 달리 이전의 급격한 양식 변화를 바로잡으려는 목적보다는 새로운 양식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주요 작곡가로는 야코보 피셔, 호세 마리아 카스트로, 루이스 지안네오, 후안 호세 카스트로 등이 있다. 20세기 아르헨티나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 명인 알베르토 지나스테라는 1950년대에 민족주의에서 신고전주의 양식(피아노 소나타 1번, ''콘체르탄테 변주곡'' 등)으로 전환했다가 이후 무조성과 음렬주의 기법으로 나아갔다. 로베르토 카마뇨는 일부 작품에서 불협화음적인 신고전주의 양식을 사용했다.

브라질의 에이토르 빌라로보스가 작곡한 ''브라질 바히아나스''(1930-1947)는 바흐의 형식(전주곡과 푸가 또는 토카타 등)을 따르고 오스티나토, 지속 저음 등 신고전주의적 기법을 사용했지만, 바흐 양식의 모방이라기보다는 브라질 음악에 바로크 화성과 대위법 기법을 자유롭게 적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빌라로보스 이후 세대의 브라질 신고전주의 작곡가로는 라다메스 그나탈리, 에디노 크리에거, 카마르고 구아르니에리 등이 있다. 구아르니에리는 1920년대 파리에서 불랑제를 만났지만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며, 그의 음악에는 1928년 피아노 소나티나 2악장부터 신고전주의적 특징이 나타나 5개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두드러진다.

칠레의 작곡가 도밍고 산타 크루스 윌슨은 독일 신고전주의, 특히 힌데미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칠레의 힌데미트"로 불리기도 했다.

쿠바에서는 호세 아르데볼이 신고전주의 학파를 이끌었으나, 이후 현대적인 민족주의 양식으로 전환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로 대표되는 무조 음악 악파 역시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쇤베르크는 후기 낭만주의에서 무조 시기를 거쳐 12음 기법을 확립하기 직전인 1920년 이후, 작품 23, 24, 25 등에서 명백한 신고전주의적 경향을 보였다. 이는 1908년에서 1913년 사이의 음악적 진전을 18-19세기 유산과 통합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쇤베르크는 이러한 작품들에서 청중이 식별할 수 있는 구조적 기준점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의 제자 알반 베르크는 스승보다 먼저 관현악을 위한 세 개의 소품 Op. 6(1913–14)과 오페라 ''보체크''에서 신고전주의적 접근을 보여주었다. ''보체크''의 각 장면은 모음곡, 파사칼리아, 론도와 같은 닫힌 형식을 구성 원리로 사용한다. 안톤 베베른 역시 동기에 대한 집중을 통해 일종의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의 1935년 바흐 ''음악의 헌정'' 중 6성 리체르카레 편곡은 악기 음색의 단편화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신고전주의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20세기 초 신고전주의 운동은 주로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 비독일계 작곡가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독일 낭만주의 음악과 그 영향 아래 있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독일 표현주의 음악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다. 제1차 세계 대전에 대한 반감, 독일 음악의 상대적 쇠퇴와 다른 국가 음악의 부상, 그리고 프랑스 유학파 중심의 미국 작곡가들의 활약이 신고전주의 확산에 기여했다. 특히 20세기 신고전주의 작곡가들은 19세기 의고주의 작곡가들과 달리 토론을 즐기고 자신들의 음악 미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려 했다는 특징이 있다.

20세기 신고전주의 음악을 예비한 인물로는 페루초 부소니, 만년의 클로드 드뷔시, 막스 레거를 꼽을 수 있다.

  • 페루초 부소니: 동시대 음악에서 낭만주의의 종말을 예견하고 "모차르트로의 회귀", "바흐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그는 낭만주의 음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전주의 음악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가 감정 표현에서 거리를 두고 형식미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유쾌함을 표현하는 디베르티멘토세레나데 풍의 기악곡을 다수 작곡했으며, 넘버 오페라나 오페라 부파로의 복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 클로드 드뷔시: 의식적인 신고전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라모나 쿠프랭, 모차르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등 음악가로서 고전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나타냈다. 이는 표현의 절제를 지향하는 태도로 이어졌으며, 피아노곡에서는 일찍부터 바로크 음악의 무곡이나 토카타 양식을 사용했다. 특히 만년에 작곡한 3개의 소나타(첼로 소나타, 플루트, 비올라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는 시적인 제목 대신 추상적인 구성에 집중하여 전후(戰後)의 새로운 음악 경향을 예고했다.
  • 막스 레거: 기본적으로 낭만주의자였지만, 동시대 음악의 감정 과잉을 배제하고 초연한 표현과 형식주의적인 악곡 구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부소니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그의 중후하고 복잡한 짜임새는 후기 낭만주의의 특징을 보여주지만, 감정 절제와 형식미 추구는 브람스힌데미트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힌데미트는 레거뿐 아니라 드뷔시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2. 2.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확산

제1차 세계 대전독일 낭만주의 음악과 그 영향을 받은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독일 표현주의 음악에 대한 반발을 심화시키며 신고전주의 음악이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전쟁에 대한 혐오감, 독일 음악의 상대적 쇠퇴와 비독일계 음악의 성장, 그리고 프랑스 유학파 출신 미국 작곡가들의 부상이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했다. 특히 1900년대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이전 시대의 음악 풍조에 대한 반감이 커졌고, 현실적인 문제들도 변화를 촉구했다. 많은 연주자들이 징병되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어 연주자 수급이 어려워졌으며,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등에서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연주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또한, 프랑스를 통해 유럽 전역에 재즈가 유행하면서 새로운 음악적 자극제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발레 음악 『풀치넬라』(1920)를 통해 신고전주의 음악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이 작품은 소규모 편성 오케스트라의 투명한 음색과 장음계 기반의 명랑한 선율을 특징으로 한다. 스트라빈스키는 페르골레시의 작품으로 알려진 18세기 나폴리 악파의 무곡을 차용하고 현대적인 화성을 덧붙여, 빈 고전파가 아닌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음악에서 '고전미'의 이상을 찾았다.

'풀치넬라'에서 나타난 이러한 '''네오 바로크 양식'''은 스트라빈스키 자신의 후속작(예: 『뮤즈를 이끄는 아폴로』)뿐만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콘체르토 그로소를 연상시키는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고, 비발디바흐의 기악곡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방출 동기' 기법이 다시 활용되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번』은 피아노를 포함하면서도 간결한 악기 편성으로 고전적인 면모를 보이며,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독주 악기군과 현악 오케스트라의 대비를 통해 바로크 음악을 연상시킨다. 파울 힌데미트의 『실내악』 연작은 옛 모음곡이나 콘체르토 그로소의 현대적 해석으로 볼 수 있으며, 힌데미트와 바르토크는 무반주 현악 소나타를 작곡하며 바흐로의 회귀를 보여주었다.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는 명교사 나디아 불랑제를 통해 미국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아론 코플랜드나 엘리엇 카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스트라빈스키의 영향 아래 서정성과 고전적 명료함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화성 감각을 보여주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스트라빈스키의 영향과는 별개로 독자적인 신고전주의 흐름이 나타났다. 프랑스 6인조는 시인 장 콕토의 영향을 받아, 19세기 음악의 장대함이나 심각함보다는 즐겁고 경쾌한 음악을 지향했다. 콕토는 니체의 바그너 비판을 19세기 음악 전반으로 확장하며 당시 예술지상주의를 비판했고, 요제프 하이든의 음악과 재즈, 라틴 음악 등을 모범으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경향은 알베르 루셀이나 아르튀르 오네게르처럼 본질적으로 낭만주의 성향이 강한 작곡가들조차 재즈나 탱고를 작품에 활용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신고전주의는 바로크 음악보다는 빈 고전파와의 연결을 더 중시했는데, 자크 이베르프랑시스 풀랑크가 모차르트 풍의 파스티슈를 작곡한 것이 그 예이다. 풀랑크가 존경했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역시 하이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고전 교향곡』을 작곡한 바 있다(프랑스 망명 이전).

에릭 사티는 '6인조'가 공통적으로 존경했던 작곡가로, 몇몇 신고전주의적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진지하게 신고전주의 이념을 추구하기보다는, 《관료적인 소나티네》처럼 "진지한 고전파 음악"을 패러디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런 점에서 사티를 전형적인 신고전주의 작곡가로 보기는 어렵지만, 20세기 신고전주의 음악이 가진 패러디적 성격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3. 민족주의와의 결합

신고전주의 음악의 흐름 속에서, 동유럽, 특히 구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했던 지역에서는 민요가 악곡 소재로 다시 평가받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전 시대 작곡가들에게서도 나타났지만, 신고전주의 시대에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헝가리의 작곡가들이 주목할 만한데, 코다이, 바르토크, 레오 바이너 등은 각자의 음악적 사고에 따라 민족 음악의 요소와 동시대의 작곡 기법을 결합했다. 바르토크는 마자르 민족음악 연구에 기초하여 여러 독자적인 음악 어법을 확립했다. 초기 작품에서는 민요 소재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1936년의 <현악기와 타악기의 첼레스타 음악>이나 1937년의 <2대의 피아노와 타악기의 소나타> 같은 후기 대작에서는 '배음렬음계', '황금분할', '기능근친' 등 독자적인 음악 어법을 사용하여 추상적인 형식을 구축했다. 그의 음악은 반음계적 성향이 강하면서도 마자르 민요 음계와 가까워, 민족 음악 자체가 직접 드러나지 않더라도 민족적 색채를 강하게 풍긴다.

다른 지역에서도 민족주의적 요소는 신고전주의와 결합되었다. 다리우스 미요는 남프랑스의 민요와 유대인의 민족 음악 및 종교 음악 요소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했으며, 폭넓은 세계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재즈브라질의 민족 음악도 활용했다. 알렉산드르 체레프닌은 코카서스와 동아시아의 민족 음악 요소를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민족 음악을 연구하여 '체레프닌 음계'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음 조직을 창안하여 작곡에 사용했다.

모리스 라벨 역시 전후의 『쿠프랭의 무덤』에서 신고전주의 음악에 명확한 관심을 보였지만, 『볼레로』에서는 스페인의 민속 무곡과 변주곡 형식을 결합했으며, 『바이올린 소나타』는 고풍스러운 이중주 소나타와 다조성에 재즈블루스가 교묘하게 융합되어 있다.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다. 마누엘 데 파야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에르네스토 할프테르의 『라장조의 신포니에타』,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협주곡』 등은 고전파 음악의 간결함과 명료함에 민족 음악의 요소를 조화시켜 작곡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일련의 "고전적인" 작품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2. 4. 이탈리아의 신고전주의

이탈리아에서는 모더니즘의 한 형태로 신고전주의 음악이 나타났는데, 이는 파리에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경험한 알프레도 카젤라와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이들보다 오토리노 레스피기일데브란도 피체티의 낭만적이고 복고주의적인 작품들이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레스피기의 경우 편곡 작품이 유명하다. 카젤라와 말리피에로와 달리, 레스피기와 피체티의 '신고전주의' 작품들은 그레고리오 성가, 르네상스 음악, 바로크 춤곡 등 과거의 문화 유산에 직접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그들의 음악은 조성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호흡이 긴 가요적인 선율과 매력적인 화성이 돋보여 대중에게 매우 친숙하게 다가간다. 결과적으로 레스피기와 피체티는 리듬감 있고 불협화음을 사용한 카젤라나, 극도로 대위법적인 말리피에로와는 다른 작풍을 보여준다.

3. 주요 특징 및 기법

20세기 신고전주의 음악은 독일 낭만주의 음악과 그 영향 아래 있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독일 표현주의 음악의 주관성과 복잡성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주로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 비 게르만계 작곡가들이 주도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사회 분위기와 독일 음악의 영향력 약화 속에서 힘을 얻었다. 이 운동의 주체들은 과거 작곡가들과 달리 자신들의 음악 미학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토론하는 경향이 있었다.

페루초 부소니, 클로드 드뷔시, 막스 레거 등은 신고전주의의 도래를 예비한 인물들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낭만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과거 형식과 기법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본격적인 신고전주의의 시작을 알린 중요한 계기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풀치넬라』였다. 이 작품은 18세기 이탈리아 음악(당시에는 페르골레시 작곡으로 알려짐)에서 영감을 받아 소규모 편성, 명료한 선율, 현대적 화성을 결합하며 신고전주의의 특징적인 모습을 제시했다. 특히 빈 고전파가 아닌 바로크 시대 음악에서 이상적인 '고전미'를 찾으려는 경향은 이후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이어지며 많은 작곡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에서는 나디아 불랑제와 그녀의 제자들(아론 코플랜드, 엘리엇 카터 등 주로 미국 작곡가들)을 통해 스트라빈스키의 영향력이 확산되었으나, 프랑스 6인조장 콕토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이들은 즐겁고 경쾌하며 예술지상주의를 풍자하는 음악을 지향하며 재즈나 라틴 음악 같은 대중음악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또한 동유럽이나 스페인 등지에서는 작곡가들이 자국의 민족 음악 요소를 신고전주의 어법과 결합하는 경향도 나타났다(코다이, 바르토크, 마누엘 데 파야 등). 한편, 에릭 사티의 예처럼 과거 양식을 풍자하거나 패러디하는 성격 역시 신고전주의 음악의 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3. 1. 형식 및 구성

신고전주의 음악은 독일 낭만주의 음악과 그 영향 아래 있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독일 표현주의 음악의 주관적 감정 표현과 복잡성에서 벗어나 객관성, 명료성, 그리고 형식미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를 위해 고전주의 음악 시대와 바로크 음악 시대의 형식과 기법들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다시 사용하고 재해석하였다.
고전주의 형식의 차용신고전주의 작곡가들은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 모음곡 등 고전 시대의 형식을 다시 음악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 부소니는 "모차르트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감정 표현보다는 형식미를 강조하는 디베르티멘토세레나데 풍의 기악곡, 그리고 넘버 오페라와 오페라 부파 같은 고전적 오페라 형식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는 낭만주의 음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전주의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 유쾌함의 표현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 드뷔시는 만년에 작곡한 세 개의 소나타 (첼로 소나타, 플루트, 비올라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이전처럼 시적인 제목에 의존하지 않고 추상적인 작품 구성을 시도하며 새로운 방향을 예고했다.
  • 힌데미트와 바르토크는 무반주 독주 현악기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하며 바흐의 영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고전적 형식을 탐구했다.
  •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번은 피아노가 포함되지만 악기 편성이 간결하여 고전적인 특징을 보인다.
  • 힌데미트의 연작 『실내악』(de)은 고풍스러운 모음곡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크 음악의 영향 (네오 바로크 양식)신고전주의는 고전주의뿐만 아니라 바로크 음악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는 특히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나타났다.

  • 부소니는 "바흐로의 회귀"를 외치며 바로크 음악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 드뷔시는 피아노곡에서 일찍부터 바로크 시대의 무곡이나 토카타와 같은 형식을 사용했다.
  •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풀치넬라』는 신고전주의의 방향을 제시한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페르골레시의 것으로 알려진 18세기 나폴리 악파의 음악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여기에 비기능적인 화성 등을 덧붙여 현대적으로 변형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를 통해 빈 고전파가 아닌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음악에서 이상적인 "고전미"를 찾았으며, 이는 '''네오 바로크 양식'''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콘체르토 그로소 형식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여, 힌데미트의 『실내악』이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나타났다.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역시 독주 악기군과 현악 오케스트라의 대비를 통해 바로크 음악을 연상시킨다.
  • 비발디나 바흐의 기악곡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짧은 동기를 반복하고 확장하며 곡을 전개하는 "방출 동기"(de) 기법도 다시 활용되었다.

절제된 표현과 객관성신고전주의는 낭만주의 음악의 과도한 감정 표현을 지양하고, 보다 객관적이고 명료한 표현을 추구했다.

  • 부소니와 레거는 감정에서 거리를 둔 형식주의적인 작곡 방식을 추구했다. 레거의 음악은 텍스처는 복잡했지만, 동시대 음악의 감정 과잉을 배제하고 초연한 표현을 보여주었다.
  • 드뷔시는 고전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바탕으로 표현의 절제를 지향했다.
  • 스트라빈스키의 후기 작품들은 과도한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고전적인 명석함을 유지하는 특징을 보였다.

소규모 편성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연주자 수의 감소와 경제적 어려움은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와 더불어, 투명한 텍스처와 명료한 선율을 선호하는 미학적 지향점이 결합되어 소규모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편성이 선호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는 소규모 편성 오케스트라를 사용하여 투명한 음향을 만들어냈다.
  •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번 역시 비교적 작은 편성으로 작곡되었다.
  • 힌데미트의 『실내악』 연작은 이름 그대로 실내악 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3. 2. 음악적 요소

신고전주의 음악은 대체로 조성 음악에 기반을 두지만, 과거의 음악 양식을 그대로 모방하는 대신 현대적인 기법을 결합하는 특징을 보인다.

'''화성 및 조성''':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에서 나타나듯이, 18세기 나폴리 악파의 음악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비기능적인 화성을 덧붙여 고전적인 명료함 속에 현대적인 색채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빈 고전파보다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음악에서 고전미의 기준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스트라빈스키의 후기 작품이나 에르네스트 블로흐와 그 문하생들의 작품에서는 반음계적 화성법이 결합되어 더욱 복잡하고 난해한 울림을 만들기도 했고,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는 다조성 기법이 활용되었다. 전반적으로 기능화성 체계에서 벗어나 화성법이나 조성감이 현대적으로 변형된 양상을 보였다.

'''선율''': 장음계에 기반한 명랑하고 간결한 선율이 선호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민족 음악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 중요한 특징이었다. 동유럽, 특히 구 오스트리아 제국 지역 작곡가들(코다이, 바르토크 등)은 자국의 민요를 연구하여 작품에 통합하였다. 다리우스 미요는 남프랑스 민요, 유대인 음악, 브라질 민족 음악 등 다양한 지역의 음악 요소를 활용하였고, 알렉산드르 체레프닌은 코카서스와 동아시아 민족 음악 연구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체레프닌 음계를 창안하여 작곡에 활용하였다. 마누엘 데 파야, 에르네스토 할프테르, 로드리고스페인 작곡가들도 민족 음악의 색채를 고전적 형식미와 결합하였다.

'''리듬''': 고전적인 규칙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재즈, 블루스, 탱고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래한 대중음악의 리듬과 스페인 민속 무곡 등 민속적인 리듬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프랑스 6인조장 콕토의 영향 아래 재즈를 중요한 음악적 자원으로 여겼고, 알베르 루셀이나 아르튀르 오네게르 같은 작곡가들도 재즈나 탱고 리듬을 작품에 활용하였다.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나 미요의 작품에서도 재즈와 블루스의 영향이 나타났다.

'''텍스처 및 악기 편성''':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에서 보이듯이 소규모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통한 투명한 텍스처가 특징적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번』 역시 피아노를 포함하면서도 얇은 악기 편성으로 고전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처럼 독주 악기군과 현악 오케스트라의 대비를 사용하는 등 바로크 음악의 악기 편성을 연상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형식''': 바로크 음악과 고전파 음악 시대의 형식을 부활시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콘체르토 그로소를 연상시키는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장르가 개척되었고, 비발디바흐 풍의 기악곡 작법(예: 방출 동기)이 사용되었다. 파울 힌데미트의 『실내악』 시리즈는 옛 모음곡이나 콘체르토 그로소의 현대판으로 볼 수 있고, 힌데미트와 바르토크는 바흐를 따라 무반주 독주 현악기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하였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하이든을 모델로 『고전 교향곡』을 작곡하였고, 자크 이베르프랑시스 풀랑크는 모차르트의 파스티슈를 남겼다. 라벨은 『쿠프랭의 무덤』에서 바로크 모음곡 형식을, 『볼레로』에서는 변주곡 형식을 사용하였다.

4. 주요 작곡가 및 작품

신고전주의는 20세기 음악 운동을 가리키지만, 19세기에도 중요한 선구자들이 있었다. 프란츠 리스트의 ''À la Chapelle Sixtine''(1862), 에드바르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1884),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스페이드 여왕''(1890) 중 디베르티스망, 조르주 에네스쿠의 ''옛 양식의 피아노 모음곡''(1897), 막스 레거의 ''옛 양식의 협주곡''(1912) 등은 과거 양식을 차용하여 새로운 음악을 시도한 예시이다.

20세기 들어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교향곡 1번 '고전'''(1917)은 신고전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역시 오케스트라 모음곡 ''시민 귀족''(1911/1917)에서 신고전주의적 요소를 도입했다. 오토리노 레스피기는 ''고대 가요와 무곡''(1917년 첫 모음곡 발표)을 통해 16-17세기 이탈리아 음악을 참조하며 신고전주의 흐름에 동참했고,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연구를 통해 과거 음악 어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 시도했다.[1]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발레 ''풀치넬라''(1919-20)를 통해 본격적으로 신고전주의 양식을 선보였다. 이후 그는 옥텟, "덤바턴 오크스" 협주곡, 시편 교향곡, C장조 교향곡, 세 악장 교향곡, ''오이디푸스 렉스'', ''아폴로'', ''오르페우스''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신고전주의를 발전시켰으며, 오페라 ''방탕아의 행각''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다. 그의 영향은 다리우스 미요, 프란시스 풀랑크, 아르튀르 오네게, 제르맹 테유페르, 보후슬라프 마르티누 등에게 미쳤다. 스트라빈스키의 교육자였던 나디아 불랑제는 애런 코플런드, 엘리엇 카터, 월터 피스톤, 아스토르 피아졸라 등 수많은 작곡가들을 가르치며 신고전주의 확산에 기여했다.

독일에서는 파울 힌데미트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의 오페라 ''화가 마티스''는 대표적인 신고전주의 작품으로 꼽힌다. 페루초 부소니 역시 "젊은 고전주의"를 주창하며 신고전주의 이념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벨러 버르토크는 1926년경부터 신고전주의적 경향을 보였으며, 동료 졸탄 코다이 역시 신고전주의 흐름에 동참했다.

스페인에서는 마누엘 데 파야의 하프시코드 협주곡(1926)과 ''마에스트로 페드로의 제단화''(1919–23)가 대표적이다. 로베르토 게르하르트와 공화국 세대 작곡가들(훌리안 바티스타, 페르난도 레마차, 살바도르 바카리세, 헤수스 발 이 가이)도 스페인 신고전주의를 이끌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알프레도 카셀라(''스카를라티아나'')와 마리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기타 협주곡 1번 등)가 활동했다. 포르투갈에서는 아르만도 호세 페르난데스와 호르헤 크로너 드 바스콘셀로스가, 남아메리카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야코보 피셔, José María Castro (compositor)|호세 마리아 카스트로es, 루이스 지안네오, 후안 호세 카스트로, 알베르토 지나스테라, 브라질의 에이토르 빌라로부스(''브라질 바히아나스''), 카마르고 구아르니에리, 칠레의 도밍고 산타 크루스 윌슨, 쿠바의 호세 아르데볼 등이 신고전주의 작품을 썼다.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 알반 베르크(오페라 ''보체크''), 안톤 베베른의 작품에서도 1920년대 이후 고전적 형식이나 구조를 참조하는 등 신고전주의적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다음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작품을 쓴 주요 작곡가들의 일부 목록이다.

작곡가 이름활동 기간국적 (주요 활동 국가)
아서 버거 (Arthur Berger)1912–2003미국
카를로스 차베스 (Carlos Chávez)1899–1978멕시코
살바도르 콘트레라스 (Salvador Contreras)1910–1982멕시코
피에르 가베 (Pierre Gabaye)1930–2019프랑스
하랄트 겐츠머 (Harald Genzmer)1909–2007독일
조르조 페데리코 게디니 (Giorgio Federico Ghedini)1892–1965이탈리아
바그네 홀름보에 (Vagn Holmboe)1909–1996덴마크
스테판 키시레프스키 (Stefan Kisielewski)1911–1991폴란드
이샤 크레이치 (Iša Krejčí)1904–1968체코
에른스트 크레네크 (Ernst Krenek)1900–1991오스트리아, 미국
프랑코 마르골라 (Franco Margola)1908–1992이탈리아
마르셀 미할로비치 (Marcel Mihalovici)1898–1985루마니아, 프랑스
조르조 파키오니 (Giorgio Pacchioni)1947년 출생이탈리아
고프레도 페트라시 (Goffredo Petrassi)1904–2003이탈리아
가브리엘 피에르네 (Gabriel Pierné)1863–1937프랑스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1875–1937프랑스
크누다게 리사게르 (Knudåge Riisager)1897–1974덴마크
알베르 루셀 (Albert Roussel)1869–1937프랑스
알렉상드르 탄스만 (Alexandre Tansman)1897–1986폴란드, 프랑스
마이클 티펫 (Michael Tippett)1905–1998영국
다그 비렌 (Dag Wirén)1905–1986스웨덴


4. 1. 유럽

20세기 "신고전주의 음악" 운동은 주로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 비독일계 작곡가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독일 낭만주의 음악과 그 영향 아래 있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독일 표현주의 음악을 비판하며 등장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변화된 사회 분위기, 독일 음악의 영향력 감소, 그리고 프랑스 유학파 출신 작곡가들의 활동 증가와 맞물려 확산되었다. 이 운동의 주체들은 단순히 과거 양식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음악 미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적극적으로 알렸다는 점에서 19세기 의고주의 작곡가들과 차별화되었다.

20세기 신고전주의 음악의 길을 연 인물로는 페루초 부소니, 만년의 클로드 드뷔시, 막스 레거가 꼽힌다. 부소니는 낭만주의 음악의 한계를 지적하며 "모차르트로의 회귀", "바흐로의 회귀"를 주장하였다. 그는 19세기 말 낭만주의 음악의 과잉된 감정 표현에서 벗어나 고전주의 음악 이전의 형식미와 명료함을 되찾아야 한다고 보았으며, 스스로 디베르티멘토세레나데 풍의 기악곡과 오페라 부파 등을 작곡하며 이를 실천하였다. 드뷔시는 이론가는 아니었지만, 장 필리프 라모, 프랑수아 쿠프랭,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등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절제된 표현과 고전적인 형식을 추구하였다. 특히 만년에 작곡한 세 개의 소나타(첼로 소나타, 플루트, 비올라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는 추상적인 구성으로 신고전주의적 경향을 예고하였다. 레거는 낭만주의적 성향을 유지했지만, 감정 과잉을 배제하고 형식적인 구성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부소니의 주장과 맞닿아 있었고, 요하네스 브람스파울 힌데미트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연주자 부족, 경제적 어려움(바이마르 공화국,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초인플레이션), 재즈의 유행 등 사회적 변화는 음악계에도 새로운 방향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고전주의 이념을 성공적으로 제시한 인물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이다. 그의 발레 ''풀치넬라''(1919-20)는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작곡으로 알려진(실제로는 동시대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 포함) 18세기 나폴리 악파의 음악을 소재로 삼아, 소규모 편성, 명료한 텍스처, 장음계 선율에 비기능적 화성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신고전주의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는 빈 고전파가 아닌 바로크 음악 시대 이탈리아 음악에서 이상적인 "고전미"를 찾으려는 시도, 즉 네오 바로크 양식의 등장을 알렸다.

스트라빈스키의 이러한 접근은 이후 ''뮤즈를 이끄는 아폴로'', 관악기를 위한 옥텟, "덤바턴 오크스" 협주곡, D장조 협주곡, 시편 교향곡, C장조 교향곡, 세 악장 교향곡, 오페라-오라토리오 ''오이디푸스 렉스'', 발레 ''아폴로'', ''오르페우스'' 등 여러 작품으로 이어졌고, W. H. 오든의 대본을 사용한 오페라 ''방탕아의 행각''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그의 영향력은 프랑스 6인조다리우스 미요, 프란시스 풀랑크, 아르튀르 오네게, 제르맹 테유페르 등 프랑스 작곡가들과 보후슬라프 마르티누 등에게 미쳤다. 스트라빈스키의 교육자 나디아 불랑제는 그의 음악 철학을 유럽과 미국에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그라지나 바체비치, 레녹스 버클리, 장 프랑세, 이고르 마르케비치 등 수많은 유럽 작곡가들을 가르쳤다.

프랑스에서는 스트라빈스키의 영향과 별개로 프랑스 6인조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신고전주의 노선이 나타났다. 정신적 지주 장 콕토의 영향 아래, 이들은 19세기 음악의 장대함이나 심각함 대신 즐겁고 경쾌한 음악, 요제프 하이든의 명료함, 재즈와 라틴 음악의 생동감을 추구하였다. 알베르 루셀이나 아르튀르 오네게르처럼 낭만적 성향의 작곡가들도 재즈나 탱고를 활용했으며, 자크 이베르나 프란시스 풀랑크는 모차르트 풍의 파스티슈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에릭 사티는 6인조에게 영향을 주었으나, 그의 신고전주의적 작품들은 진지한 추종보다는 "고전파 음악"에 대한 풍자적 성격이 강하였다. 모리스 라벨 역시 전후 작품 ''쿠프랭의 무덤''에서 신고전주의에 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볼레로''나 ''바이올린 소나타'' 등에서 민속 음악, 재즈, 블루스 요소를 고전적 형식과 결합하였다.

독일에서는 파울 힌데미트가 신고전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는 실내악 시리즈, 관현악 작품, 오페라 ''화가 마티스'' 등에서 대위법적이고 반음계적인 특징이 강한 신고전주의 양식을 선보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역시 오케스트라 모음곡 ''시민 귀족''(1911/1917)이나 ''쿠프랭의 건반 작품에서 가져온 무곡 모음곡''(1923), ''쿠프랭의 건반 작품에서 가져온 실내 관현악을 위한 디베르티멘토''(1943) 등에서 신고전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파리에서 스트라빈스키 등을 접한 알프레도 카셀라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가 모더니즘적 신고전주의를 추구하였다. 카셀라의 대표작으로는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모티프를 활용한 ''스카를라티아나''(1926)와 ''로마 협주곡''(1926)이 있다. 말리피에로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전집 편찬 등 고음악 연구를 바탕으로, 소나타 형식의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작곡 방식을 모색하였다. 반면 오토리노 레스피기일데브란도 피체티그레고리오 성가, 르네상스 음악, 바로크 춤곡 등 과거 음악 유산을 직접적으로 활용하여 보다 서정적이고 듣기 편한 복고풍의 신고전주의 작품을 선보였다. 레스피기의 ''고대 가요와 무곡''(1917년 첫 모음곡 작곡)과 ''새들''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마리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역시 초기 이탈리아 음악과 고전 형식을 참조하여 바이올린 협주곡 ''이탈리아 협주곡''(1924), 기타 협주곡 1번(1939) 등을 작곡하였다.

동유럽에서는 민족 음악 요소가 신고전주의와 결합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헝가리의 벨러 버르토크는 1926년경부터 신고전주의적 특징을 보였고, <현악기와 타악기,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1936), <두 대의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소나타>(1937) 등에서 독자적인 음악 어법과 민족 음악적 색채를 결합하였다. 그는 스트라빈스키의 업적을 인정하며 동료 졸탄 코다이를 또 다른 헝가리 신고전주의 추종자로 언급하기도 하였다. 러시아에서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교향곡 1번 '고전'''(1917)이 신고전주의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번과 피아노 협주곡 1번 역시 간결한 악기 편성 등에서 신고전주의적 특징을 보인다.

스페인에서는 마누엘 데 파야가 하프시코드 협주곡(1926), 꼭두각시극 ''마에스트로 페드로의 제단화''(1919–23) 등을 통해 신고전주의를 받아들였다. 그의 작품은 국제적인 모더니즘 미학과 연결된 "보편주의"(''universalismo'')의 표현으로 인식되었다.[1] 로베르토 게르하르트 역시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에 현악을 위한 협주곡, 목관 5중주, 칸타타 ''L'alta naixença del rei en Jaume'' 등 신고전주의 양식의 작품을 썼다. 공화국 세대 (27년 세대)의 훌리안 바티스타, 페르난도 레마차, 살바도르 바카리세, 헤수스 발 이 가이 등도 중요한 스페인 신고전주의 작곡가들이다.

포르투갈에서는 나디아 불랑제에게 배운 아르만도 호세 페르난데스와 조르헤 크로너 드 바스콘셀로스가 신고전주의 경향을 보였다.

심지어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이끈 무조 음악 진영에서도 신고전주의적 아이디어가 나타났다. 쇤베르크는 1920년 이후 작품 23, 24, 25 등에서 12음 기법 음렬주의를 사용하면서도 고전적인 형식을 참조하여 구조적 명확성을 부여하려 하였다. 그의 제자 알반 베르크는 오페라 ''보체크''의 각 장면에 모음곡, 파사칼리아, 론도 등 전통적인 형식을 사용하는 등 스승보다 앞서 신고전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였다. 안톤 베베른 역시 동기 발전에 집중하며 일종의 신고전주의적 엄격함을 보여주었다.

이 외에도 아서 버거, 카를로스 차베스, 피에르 가베, 하랄트 겐츠머, 조르조 페데리코 게디니, 바그네 홀름보에, 스테판 키시레프스키, 이샤 크레이치, 에른스트 크레네크, 프랑코 마르골라, 마르셀 미할로비치, 고프레도 페트라시, 가브리엘 피에르네, 크누다게 리사게르, 알렉상드르 탄스만, 마이클 티펫, 다그 비렌 등 많은 유럽 작곡가들이 경력의 일부 또는 전체에 걸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작곡하였다.

4. 2. 아메리카

일부 작곡가는 경력의 일부 기간 동안만 신고전주의 양식의 음악을 썼을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여러 작곡가들이 신고전주의 경향을 보였다.

  • '''아론 코플런드''' (Aaron Copland, 미국): 미국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그의 작품 중 '애팔래치아의 봄'이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 등에서 신고전주의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
  • '''엘리엇 카터''' (Elliott Carter, 미국): 미국의 작곡가로, 초기 작품인 '홀리데이 서곡'이나 '피아노 소나타' 등에서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Alberto Ginastera,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작곡가로, '피아노 소나타 1번'이나 '콘체르탄테 변주곡' 등에서 신고전주의적 특징과 함께 남미 음악의 색채를 결합했다.
  • '''카마르구 과르니에리''' (Camargo Guarnieri, 브라질): 브라질의 작곡가로, '피아노 소나티나'나 5개의 '피아노 협주곡' 등에서 신고전주의적 기법을 활용했다.
  • '''카를로스 차베스''' (Carlos Chávez, 1899–1978, 멕시코): 멕시코의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그의 작품에서도 신고전주의적 경향이 나타난다.
  • '''살바도르 콘트레라스''' (Salvador Contreras, 1910–1982, 멕시코): 멕시코의 작곡가로, 차베스와 함께 멕시코 신고전주의 음악을 이끌었다.

4. 3. 한국

모로이 마코토는 신진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할 때, 힌데미트를 모범으로 삼는 조화로운 신고전주의적 작풍을 보였다. 이는 아버지인 모로이 사부로의 영향으로 추측된다. 그 외에도 오구라 오사무는 습작기 이후의 작품에서 바르토크 등의 영향을 받은 신고전주의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야시로 아키오 역시 유학 중에 작곡한 '현악 사중주'에 대해 스스로 "힌데미트나 바르토크를 연구했으며,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5. 쇠퇴 및 영향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신고전주의 음악은 이 운동을 이끌었던 주요 작곡가들이 사망하거나 다른 음악 양식으로 전향하고, 전위 음악이 새로운 흐름으로 부상하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예술 운동으로서의 신고전주의는 점차 영향력을 잃었으나, 그 명맥은 힌데미트의 제자였던 지크프리트 보리스나 하랄트 겐츠머 등 일부 작곡가들을 통해 이어졌으며, 그 음악적 특징과 이념은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후대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5. 1. 쇠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신고전주의 음악은 이 예술 운동을 이끌었던 주요 작곡가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다른 음악 양식으로 전향하면서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라벨레스피기는 전쟁 중에 사망했으며, 코플랜드는 전후 12음 기법을 받아들이면서 작품 활동이 줄어들었다. 스트라빈스키엘리엇 카터는 더욱 급진적인 작풍으로 변화했는데, 특히 카터는 이후 '복잡계 음악'의 선구자가 되었다. 1945년에는 바르토크도 세상을 떠났다. 힌데미트는 실내악에서는 표현주의 음악에, 교향곡에서는 신낭만주의 음악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위 음악이 유럽 음악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6인조'의 작곡가들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음악적 흐름 속에서 점차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다. 전후 독일에서는 다름슈타트 하계 현대 음악 강습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음악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12음 기법 이전 세대의 작곡가들은 과거의 유산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나타났다.

결국 신고전주의 음악은 전위 음악의 그늘에 가려 예술 운동으로서의 영향력을 잃고 막을 내렸으며, 이후 일부 작곡가들에 의해 명맥이 이어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힌데미트의 제자였던 지크프리트 보리스와 하랄트 겐츠머를 들 수 있다.

5. 2. 영향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풀치넬라』는 신고전주의 음악의 이념을 "새로운 음악"으로 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작품은 소규모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투명한 질감이나 장음계를 사용한 명랑한 선율뿐만 아니라, 작자 미상(전통적으로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작곡으로 알려짐)의 18세기 나폴리 악파 무곡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여기에 비기능적인 화성을 덧붙이는 등 현대적인 변형을 가했다. 이는 빈 고전파 음악이 아닌, 바로크 음악, 특히 이탈리아 음악에서 이상적인 "고전미"의 기준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네오 바로크 양식'''은 스트라빈스키의 후속 작품(예: 『뮤즈를 이끄는 아폴로』)을 넘어 더 넓은 반향을 일으켰다. 합주 협주곡(콘체르토 그로소)을 연상시키는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개척되었고, 안토니오 비발디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기악곡에서 보이는 "방출 동기" 기법이 활용되기도 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번』은 피아노를 포함하면서도 악기 편성이 간결하여 고전적인 면모를 보이며,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독주 악기군과 현악 오케스트라의 대비를 통해 바로크 음악을 연상시킨다. 파울 힌데미트의 『실내악』 연작은 옛 모음곡이나 콘체르토 그로소의 현대적 해석으로 볼 수 있으며, 힌데미트와 바르토크 벨러는 무반주 독주 현악기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하며 바흐로의 회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프랑스에서는 명교사 나디아 불랑제가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의 제자 중 국제적으로 성공한 프랑스 작곡가는 장 프랑세 정도였으나, 아론 코플랜드나 엘리엇 카터와 같은 미국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스트라빈스키 특유의 느긋한 서정성, 고전적 명료함, 현대적인 화성법과 조성감은 불랑제와 그의 제자들을 통해 미국 음악계의 주류가 되었다. 한편, 에르네스트 블로흐와 그의 제자들은 반음계적 화성법을 결합한 더 복잡한 신고전주의 음악을 선보였다.

프랑스 음악계는 스트라빈스키의 영향을 받았지만, 프랑스 6인조로 대표되는 프랑스 신고전주의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이들의 정신적 지주인 장 콕토는 음악이 위대하고 심각하기보다는 즐겁고 경쾌해야 하며, 베토벤부터 드뷔시까지의 낭만주의 음악은 잘못된 길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바그너 비판을 19세기 음악 전체에 적용하며 당시의 예술지상주의를 비판했다. "6인조"는 요제프 하이든재즈, 라틴 음악을 모범으로 삼았다. 알베르 루셀이나 아르튀르 오네게르처럼 본래 낭만주의적 성향이 강한 작곡가들조차 재즈나 탱고를 작품에 활용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프랑스의 신고전주의는 바로크 음악보다는 빈 고전파와의 연결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크 이베르프랑시스 풀랑크가 모차르트 풍의 파스티슈를 작곡한 것이나, 풀랑크가 존경했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하이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고전 교향곡』을 작곡한 것(프랑스 망명 이전)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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