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라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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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가라 학파는 기원전 5세기 후반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메가라의 유클리드가 설립한 철학 학파이다. 이 학파는 엘레아 학파의 일원론을 계승하여 육체-영혼 이원론을 비판하고, 유물론적이면서 범신론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메가라 학파는 '선(善)'만이 존재하고 '악(惡)'은 실재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스토아 학파의 도덕론에 영향을 미쳤다. 주요 인물로는 유클리데스, 에우불리데스, 스틸폰, 크로노스의 디오도루스 등이 있으며, 논리적 퍼즐과 역설을 연구하고 양상 논리 및 조건문의 본성에 대한 논쟁을 통해 논리학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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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라 학파 | |
---|---|
학파 정보 | |
이름 | 메가라 학파 |
다른 이름 | 변증학파 에리스 학파 |
국가 | 고대 그리스 |
창립 시기 | 기원전 4세기 초 |
창립자 | 에우클레이데스 |
주요 인물 | 에우클레이데스 익티아스 에우불리데스 디오도로스 크로노스 필론 스티르폰 알렉시노스 클레이토마코스 |
철학적 특징 | |
특징 | 소크라테스의 윤리적 가르침과 엘레아 학파의 형이상학적 원리를 결합 소크라테스의 덕(arete) 개념을 '선'(good)으로 확장하고, 이것이 궁극적인 실재라고 주장 감각적 경험과 개별적인 다양성을 부정하고, 이성적이고 불변하는 '하나'(one)의 중요성을 강조 논쟁과 변론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변증술을 중시 |
영향 | |
영향 | 스토아 학파의 논리학 발전에 기여 |
2. 역사
메가라의 유클리드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 메가라 학파를 설립했다.[1] 메가라 학파는 기원전 4세기 초부터 활동했다. 유클리드의 후계자로는 익티아스(기원전 4세기 중반)와 스틸폰(기원전 4세기 후반)이 있다.[2] 그러나 메가라 학파는 실제 학문 기관이라기보다는 오스트리아 학파처럼 지리적 기원을 나타내는 일시적인 묘사에 가까웠고, 통일된 철학적 입장을 갖지도 않았다.[3]
메가라 학파는 기원전 4세기 초부터 활동했으며,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적 사유 체계, 특히 감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계승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육체-영혼 이원론은 철저히 비판했다. 이들은 엘레아 학파의 신[20] 중심 일원론을 물질의 존재와 연결시켜 논리적으로 체계화했고, 유물론적이면서도 범신론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이들은 악을 유발하는 감각은 실재하지 않으며, 무지한 대중들이 착각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악함은 실체가 없고, 오직 유일하게 존재하는 최고 진리인 '선함(善)'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일원론과 선함의 절대성을 연결시켰으며, 이는 스토아 학파의 도덕론에 큰 영향을 주어 메가라-스토아 학파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 학파의 철학자들은 처음에는 '메가라 학파'로 불렸고, 나중에는 '논쟁가' 및 '변증론자'라고 불렸다.[4] 하지만, 이러한 명칭은 메가라 학파와 구별되는 분파 집단을 지칭했을 가능성도 있다.[5] 유클리드의 제자로는 밀레투스의 에우불리데스[6]와 클리노마쿠스(투리의 클리노마쿠스)[7]가 있었다. 클리노마쿠스 시대에 변증론 학파가 분리되어 설립된 것으로 보이며,[8] 이 학파는 논리학과 변증법을 매우 강조했다. 클리노마쿠스는 "명제와 술어에 대해 최초로 저술한 인물"이라고 전해진다.[7] 유클리드 자신도 논리학을 가르쳤으며,[9] 그의 제자인 에우불리데스는 유명한 역설을 사용하여 명성을 얻었다.[6]
스틸폰을 통해 메가라 학파는 메네데무스와 아스클레피아데스(플리우스의 아스클레피아데스)가 이끄는 에레트리아 학파, 피론주의의 창시자인 피론,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인 키티온의 제논에게 영향을 미쳤다. 키티온의 제논은 스틸폰과 크로노스의 디오도루스에게서 공부했고,[10] 변증론자 필로와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스토아 논리학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도 변증론 학파인 크로노스의 디오도루스와 필로였을 것이며, 제논은 스틸폰에게서 그의 도덕적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공부했는데, 스틸폰 또한 "논쟁과 궤변을 만들어내는 데 뛰어났다"고 전해진다.[2]
3. 철학
에우클레이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지만, 고대 역사가들은 그를 엘레아 학파의 후계자로 보았고, 그의 철학은 엘레아 학파와 소크라테스 사상의 융합으로 여겨졌다. 엘레아 학파의 "하나"라는 개념은 소크라테스의 "선의 이데아"와 동일시되었고,[11] 에우클레이데스는 선의 반대편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했다.[4] 그러나 그의 사상은 '존재'보다는 '선'에 중점을 두었으며, 선의 반대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선의 통일성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었다.[12] 이는 중요한 것은 도덕적 선이며 이를 향해 노력하는 선한 사람의 의지라는 전형적인 소크라테스적 주제였다. 스틸폰은 엄격한 일원론을 주장하며 모든 변화와 운동을 부정함으로써 엘레아 학파의 경향을 이어갔으며,[13]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거부했다.[14] 윤리학에서 스틸폰은 견유학파와 유사하게 자유, 자제, 자족을 가르쳤다.[15]
변증론자들은 논리적 퍼즐과 역설을 연구하는 것 외에도 양상 논리를 재검토하고, 조건문의 본성에 대한 중요한 논쟁을 시작함으로써 두 가지 중요한 논리적 혁신을 이루었다.[16] 이는 변증학파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가진 유일한 두 명의 구성원인 디오도루스 크로노스와 변증론자 필론의 업적이었다. 명제 논리의 발전을 통해 변증학파는 논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스토아 논리의 중요한 선구자였다.
메가라 학파의 주요 철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스틸폰과 디오도로스는 스토아 학파의 시조 제논에게 문답법을 가르쳤다.[19]
4. 인물
- 메가라의 에우클레이데스
- 에우브리데스
- 아레크시노스
- 디오도로스 크로노스
- Philo the Dialectician|필론영어
- 필톤
- 스티르폰
- 익티아스
- 클리노마쿠스
- 아스클레피아데스(플리우스의 아스클레피아데스)
- 메네데무스
- 키티온의 제논
5. 영향
메가라 학파는 스토아학파의 도덕론에 큰 영향을 주어 메가라-스토아학파를 형성하기도 했다.[2] 스틸폰을 통해 메가라 학파는 메네데무스와 아스클레피아데스(플리우스의 아스클레피아데스)가 이끄는 에레트리아 학파, 피론주의의 창시자인 피론,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인 키티온의 제논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10] 제논은 스틸폰과 크로노스의 디오도루스에게서 공부했고, 변증론자 필로와 논쟁을 벌였다.[10] 스토아 논리학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도 변증론 학파인 디오도루스와 필로였을 것이며, 제논은 스틸폰에게서 그의 도덕적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공부했는데, 스틸폰 또한 "논쟁과 궤변을 만들어내는 데 뛰어났다"고 전해진다.[2]
변증론자들은 논리적 퍼즐과 역설을 연구하는 것 외에도 양상 논리를 재검토하고, 조건문의 본성에 대한 중요한 논쟁을 시작함으로써 두 가지 중요한 논리적 혁신을 이루었다.[16] 이는 변증학파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가진 유일한 두 명의 구성원인 크로노스의 디오도루스와 변증론자 필론의 업적이었다. 명제 논리의 발전을 통해 변증학파는 논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스토아 논리의 중요한 선구자였다.
참조
[1]
서적
Diogenes Laërtius, ii. 47
[2]
서적
Diogenes Laërtius, ii. 113
[3]
논문
[4]
서적
Diogenes Laërtius, ii. 106
[5]
논문
[6]
서적
Diogenes Laërtius, ii. 108
[7]
서적
Diogenes Laërtius, ii. 112
[8]
서적
Diogenes Laërtius, ii. 106
[9]
서적
Diogenes Laërtius, ii. 107
[10]
서적
Diogenes Laërtius, vii. 16
[11]
서적
Diogenes Laërtius, ii. 106; Cicero, ''Academica'', ii. 42
[12]
논문
[13]
서적
Aristocles, in Eusebius, ''[[Praeparatio Evangelica]]'' xiv. 16. 1
[14]
서적
Diogenes Laërtius, ii. 119
[15]
논문
[16]
논문
[17]
웹사이트
[[スタンフォード哲学事典]]
https://plato.stanfo[...]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2019
[18]
서적
학자들_에게의_논박_2
교토대학학술출판회〈서양고전총서〉
2006
[19]
웹사이트
쇼가쿠칸 일본대백과전서(닛포니카)
[20]
문서
인격신과는 다른, 최고 진리로서의 신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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