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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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변증법은 고대 그리스에서 문답법으로 시작되어, 철학적 방법론으로 발전해왔다. 엘레아의 제논과 소크라테스는 변증법을 철학적 방법으로 사용했고, 플라톤은 이데아에 이르는 방법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박의 기술로 보았다. 중세에는 논리학 자체를 가리켰으며, 근대에 칸트는 가상적인 논리로, 헤겔은 인식 방법이자 사유와 현실의 자기운동에 대한 보편적 합법칙성으로 변증법을 이해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재해석하여 자연, 사회, 사유의 일반적 운동법칙으로 확립했다. 변증법은 정, 반, 합의 세 단계를 거치는 사고 방식으로, 헤겔은 역사를 정신의 자기 실현 과정으로 보았고, 마르크스는 사회 발전을 물질적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을 통해 설명했다. 그러나 니체, 포퍼, 붕게 등은 변증법의 모호성, 모순 허용, 과학적 부적합성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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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증법 - 엘레아의 제논
엘레아의 제논은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로서 운동과 다수성에 대한 역설적인 논증으로 유명하며 변증법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엘레아 학파 철학자이다. - 변증법 - 문답법
문답법은 소크라테스가 고안한 교수법으로, 소크라테스식 질문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자극하여 윤리적 개념의 본질을 탐구하고 스스로의 사고를 발전시키도록 돕는 교수법이며, 현대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도 있다. - 철학 이론 - 공산주의
공산주의는 사유 재산 폐지와 생산 수단의 공유를 통해 계급 없는 사회를 목표로 하며,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를 결합하여 다양한 형태로 실험되었으나, 경제적 비효율성과 인권 탄압 등의 비판을 받으며 그 영향력이 감소했다. - 철학 이론 - 마음
마음은 의식, 사고, 지각, 감정, 동기, 행동, 기억, 학습 등을 포괄하는 심리적 현상과 능력의 총체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인간 삶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 사회철학 - 공동체주의
공동체주의는 개인보다 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치 철학으로, 자유주의에 반대하며 사회 자본과 시민 사회 제도를 강화하려 한다. - 사회철학 - 유럽중심주의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의 문화, 역사, 가치관을 세계의 표준으로 간주하고 다른 문화권을 유럽 중심으로 해석하는 사상으로, 서구 우위와 식민지 확장을 배경으로 강화되었으나 탈식민화 이후 비판받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대안적 관점이 등장하였고 현대에도 여러 영역에서 영향력과 비판적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변증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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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학문 분야 | 철학, 논리학 |
어원 | 그리스어 διαλεκτική (dialektikḗ) |
주요 개념 | |
주요 개념 | 모순의 발전적 해결 정립 반정립 종합 대화법 논쟁 이성적 토론 |
역사적 발전 | |
고대 철학 | 소크라테스 플라톤 |
중세 철학 | 피에르 아벨라르 |
근대 철학 | 임마누엘 칸트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프리드리히 셸링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카를 마르크스 |
관련 학문 및 사상 | |
관련 분야 | 변증법적 유물론 비판 이론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 |
관련 개념 | 대화법 논리학 합리주의 |
주요 특징 | |
특징 | 대립되는 주장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리에 도달 모순과 변화의 과정을 중시 정태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사고를 강조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사유의 발전 과정을 분석 |
변증법의 의미 | |
의미 | 대화나 토론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 모순과 대립을 통해 사유를 발전시키는 방법 역사적 발전과 변화의 과정 |
기타 | |
영향 | 서양 철학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침 |
비판 |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추상적이라는 비판 존재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 존재 |
2. 역사 및 변천
고대 그리스에서는 변증법이 문답법으로 통했으며, 엘레아의 제논이나 소크라테스에게는 철학적 방법 그 자체였다. 소피스트가 부정을 정의라고 우기는 궤변술로 사용한 이후, 변증법을 적극적인 철학적 방법으로 삼는 용법과 궤변술로서 부정적으로 다루는 용법이 대립했다.[2][3] 플라톤은 변증법을 내면화된 이데아에 이르는 적극적 방법으로 삼았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박의 기술 또는 명제의 귀납적 탐구술이라 하여 부정적으로 보았다.
중세 시대에는 변증법이 논리학의 일부로 간주되었다.[10][11][12][13] 중세 대학교에서 가르친 세 가지 교양 과목 중 하나가 논리학이었으며, 다른 교양 과목은 수사학과 문법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와 사상은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재수입되어 중세의 스콜라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칸트는 순수이성이 형이상학적 문제에 적용될 때 발생하는 가상의 논리를 변증법이라 칭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68] 그러나 헤겔은 이성이 범하는 모순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헤겔에게 변증법은 고정된 견해인 형이상학에 대립되는 인식 방법이자, 사유의 자기 운동, 그리고 자연과 역사의 모든 현실적 자기 운동에 대한 보편적인 법칙이었다. 헤겔은 이러한 변증법적 운동을 관념론적 입장에서 개념의 자기 전개로 설명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계승하여, 자연, 사회, 사유의 일반적인 운동 법칙으로 확립하였다. 현대 철학에서 변증법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1. 고대 그리스 철학
고대 그리스에서는 변증법이 문답법으로 통했으며, 엘레아의 제논이나 소크라테스에게는 철학적 방법 그 자체였다. 소피스트가 부정을 정의라고 우기는 궤변술로 사용한 이후, 변증법을 적극적인 철학적 방법으로 삼는 용법과 궤변술로서 부정적으로 다루는 용법이 대립한다.[2][3]"변증법"(διαλεκτικήel)이라는 용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에서 차지하는 역할 덕분에 고전 시대에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이 소크라테스적 변증법적 방법의 예시라고 하면서, 변증법을 발명한 사람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 엘레아의 제논이라고 말했다.[4]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엘레아의 제논에 의해 창시되었다고 한다.[59]
플라톤은 변증법을 내면화된 이데아에 이르는 적극적 방법으로 삼았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박의 기술 또는 명제의 귀납적 탐구술이라 하여 부정적이었다.
2. 1. 1. 소크라테스적 방법
소크라테스 대화편은 엘렌쿠스 방법(elenchus, 문자 그대로 "반박, 조사"[5])으로 알려진 특정한 변증법의 형태를 사용한다. 이는 일련의 질문을 통해 모호한 신념을 더 정확하게 진술하고, 그 진술의 논리적 결과를 탐구하며, 모순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대체로 잘못된 신념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만, 이러한 노출이 진리 탐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적이다.[6] 오류의 발견은 반대 명제의 증명과 같지 않다. 예를 들어, ''경건함''의 정의에 대한 결과의 모순은 정확한 정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적 활동의 주된 목표는 인식하지 못한 오류로부터 해방시키거나, 혹은 탐구 정신을 가르침으로써 대화 참여자들의 영혼을 향상시키는 것일 수 있다.일반적인 경우, 소크라테스는 주장의 기초로 삼단논법의 일부 생략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에우튀프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에게 경건함의 정의를 제시해 달라고 요청한다. 에우튀프론은 경건함이 신들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신들이 다투고, 그들의 다툼은 인간의 다툼과 마찬가지로 사랑이나 증오의 대상을 둘러싸고 있다는 데 에우튀프론이 동의하도록 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적어도 어떤 신들은 사랑하지만 다른 신들은 미워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추론한다. 다시 에우튀프론은 동의한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의 경건함에 대한 정의가 받아들일 만하다면, 경건하고 불경건한 것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신들에게 사랑받고 미움받기 때문)는 결론을 내린다. 에우튀프론도 이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따라서 에우튀프론은 이러한 변증법적 방법을 통해 자신의 경건함에 대한 정의가 충분히 의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른 예로,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고르기아스, 그리고 폴루스와 칼리클레스 두 사람 사이에 변증법이 일어난다. 소크라테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정한 지식에 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바꾸는 것조차 기꺼이 했다. 이 경우 변증법의 근본적인 목표는 주제(이 경우 수사학)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확립하고, 논증과 질문을 사용하여 주제를 더욱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일련의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짧고 명확한 답을 받음으로써 진리에 도달한다.
플라톤의 초기 변론에서 묘사되는, 비교적 실제 모습에 충실하다고 여겨지는 소크라테스의 행위에 대한 해석에서는, 그가 실천한 어떤 하나의 사상이 내포하는 모순을 명확히 하기 위해, 그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논의·문답함으로써, 보다 타당한 진리에 다가가려는 방법을 의미한다. '''문답법'''이라고 표현된다.
2. 1. 2.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법
플라톤은 "변증법"(διαλεκτικήel)과 "웅변술(레토리케)"을 대비시키면서, "언술(로고스)의 기술(테크네)"로서 변증법의 우위성과 웅변술의 결함을 주장했다.[60] 플라톤에게 변증법은 대상의 자연 본성에 따라 자유롭게 개념을 종합하고 분석할 수 있는 정밀한 추론의 기술이자 능력이었다.[60] 플라톤은 변증법을 통해 감각적인 것에서 지적인 것으로, 즉 관념에서 관념으로 상승하여 마침내 최고의 관념, 즉 모든 것의 기원인 첫 번째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다.[7] 따라서 철학자는 "변증가"이며,[7] 변증법은 최초 원리에 이르기까지 가설을 제거하는 탐구 과정이다.[8] 철학자 사이먼 블랙번(Simon Blackburn)은 이러한 의미에서 변증법이 "철학자가 최고선, 즉 선의 이데아에 대한 지식을 얻도록 교육하는 완전한 깨달음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사용된다고 썼다.[9]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변증법 개념을 계승했지만, "어떤 전제로부터 출발하는가"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분화하고 재정의했다.[60]
종류 | 전제 | 특징 | 관련 저서 |
---|---|---|---|
논증 (demonstration) | 절대적인 진리이자 첫 번째 전제 | 논의 불필요, 항진적 추론, 엄밀, 학문적, 형식적 (형식논리학) | 『분석론전서』, 『분석론후서』 |
변증 (dialectic) | 개연적인 통념 (endoxa) | 사회적, 실천적 추론 | 『토피카』 |
논쟁 (eristic) | 불확실한 전제 | 궤변 | 『궤변논박론』 |
오류 (paralogism) | 잘못된 전제 | 오류 추론 |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법의 의미와 역할을 "사회 통념을 적절히 처리하는 수단"이라는 좁고 제한된 영역으로 축소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추론은 삼단논법(, syllogism, 실로기스모스)으로 정형화되어 있으며, 플라톤 시대보다 통합을 향해 더욱 형식화되었다. 그리고 이 통합성은 후대의 헤겔의 변증법과는 달리, 무모순적으로 진행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저술들은 후대에 『오르가논』(Organon)으로 정리되었고, 그 기술은 총체적으로 “로기케”(, logikē, , 로기카)라고 불리게 되어, “논리학”(logic)의 기초가 된다.
2. 2. 중세 철학
중세 시대에는 변증법이 논리학의 일부로 간주되었다.[10][11][12][13] 중세 대학교에서 가르친 세 가지 교양 과목 중 하나가 논리학이었으며, 교양 과목의 다른 요소는 수사학과 문법이었다.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중세 변증학자는 보에티우스(480-524)였다.[14] 그 이후로 아벨라르,[15] 셔우드의 윌리엄,[16] 가를란두스 콤포스티스타,[17] 월터 버리, 로저 스와인셰드, 오컴의 윌리엄,[18] 토마스 아퀴나스[19] 등 많은 스콜라 철학자들도 자신의 저술에서 변증법을 사용했다.
이 변증법 (''quaestio disputata'')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 결정될 질문 ("~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 질문에 대한 임시적인 답변 ("그리고 그것은 ~인 것 같다...")
# 임시적인 답변을 뒷받침하는 주요 주장들
# 임시적인 답변에 대한 반대 주장 (전통적으로 권위에 의한 단일 주장) ("반대로...")
# 증거를 저울질한 후 질문에 대한 결정 ("나는 이렇게 답한다...")
# 초기 반론들에 대한 답변들 ("첫 번째에 대해, 두 번째에 대해 등등, 나는 이렇게 답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와 사상은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재수입되어 중세의 스콜라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2. 3. 근대 철학
칸트는 순수이성이 형이상학적 문제에 적용될 때 발생하는 가상의 논리를 변증법이라 칭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68] 그러나 헤겔은 이성이 범하는 모순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헤겔에게 변증법은 고정된 견해인 형이상학에 대립되는 인식 방법이자, 사유의 자기 운동, 그리고 자연과 역사의 모든 현실적 자기 운동에 대한 보편적인 법칙이었다. 헤겔은 이러한 변증법적 운동을 관념론적 입장에서 개념의 자기 전개로 설명했다.헤겔의 변증법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유물론적으로 계승되어, 자연, 사회, 사유의 일반적인 운동 법칙으로 확립되었다.
2. 3. 1. 헤겔 변증법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19세기 초 변증법 개념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헤겔은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의 종합 개념에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의 변증법은 내용 자체의 "내적 삶과 자기 운동"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22]'''헤겔 변증법'''은 사유 형식의 변화를 그 자체 내적 모순을 통해 구체적인 형태로, 이전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을 설명한다.[24]
이 변증법은 하인리히 모리츠 찰리바우스가 처음 언급한 대로 삼단 논법으로 제시되기도 하는데, 이는 발전의 세 가지 변증적 단계로 구성된다. 즉, 반작용을 야기하는 '''주장(thesis)''', 주장에 반대하거나 부정하는 '''반주장(antithesis)''', 그리고 두 가지 사이의 긴장이 '''종합(synthesis)'''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다.[25][26] 하지만 헤겔은 이러한 용어 사용에 반대했다.[27]
헤겔은 암묵적인 모순을 명시적으로 만들어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의 각 단계는 이전 단계에 내재하거나 암묵적인 모순의 산물이다. 헤겔에 따르면 변증법의 목적은 "사물을 그 자체의 존재와 운동 속에서 연구하여 이해의 부분적 범주들의 유한성을 증명하는 것"이다.[30]
헤겔에게 역사는 통일된 변증법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데, 그 주요 단계는 예속으로서의 자기소외에서 자기통일과 실현으로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합리적인 헌법 국가로의 진보다.
헤겔의 변증법은 명제(테제=정), 그것과 모순되거나 부정하는 반대 명제(안티테제=반대 명제), 그리고 그것들을 본질적으로 통합한 명제(진테제=합)의 세 가지로 구성된다. 모든 것은 그 속에 모순을 포함하며, 그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자신과 대립하는 것을 만들어낸다. 만들어낸 것과 만들어진 것은 서로 대립하지만(여기에는 우열 관계가 없다), 동시에 바로 그 대립으로 인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상호 매개). 결국에는 둘이 정지(揚棄)(aufheben)된다. 이 정지는 “부정의 부정”이며, 단순한 이중 부정 즉 긍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지에서는 정뿐만 아니라 정과 대립했던 반도 통합되어 보존된다. 독일어 '아우프헤벤(aufheben)'은 “버리다”(부정하다)와 “들어올리다”(높이다)라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2. 3. 2. 마르크스주의 변증법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재해석하여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을 제시했다.[32] 이들은 헤겔의 변증법이 너무 추상적이라고 비판하며, 자신들의 변증법적 방법이 헤겔의 방법과 "정반대"라고 주장했다.[33]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은 역사적 유물론 연구에 적용되는 방법론으로, 사회적, 경제적 행위를 검토한다. 이는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의 기초이며, 역사적 유물론의 기반을 형성한다.[31]
마르크스주의에서 "변증법"은 자연, 사회, 인간 사고에서 정기적이고 상호적인 관계, 상호 작용 및 과정을 의미한다.[31] 변증법적 관계는 두 현상이나 사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발전과 부정으로 이어지는 관계이다.[31] 발전은 덜 발전된 것에서 더 발전된 것으로, 덜 완전한 것에서 더 완전한 것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31] 변증법적 부정은 이전의 두 주체 간의 모순이 새로운 주체를 낳는 발전 단계를 의미하며, 이는 종착점이 아니라 더 발전하고 부정하기 위한 새로운 조건을 만든다.[31]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그것은 현존하는 사물의 상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포함하고, 동시에 그 상태의 부정, 즉 그것이 불가피하게 무너지는 것을 인식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발전된 모든 사회 형태를 유동적인 움직임 속에 있다고 간주하고, 따라서 그 일시적인 본성을 그 순간적인 존재 못지않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것에도 좌우되지 않고, 본질적으로 비판적이고 혁명적이기 때문이다.[34]
계급 투쟁은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삶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므로,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이 해결해야 할 주요 모순이다.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 사이, 도시와 시골 사이의 변증법적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계급 투쟁 개념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철학적 모순은 변증법 발전의 중심이며, 양에서 질로의 진보, 점진적인 사회 변화의 가속화, 현상 유지의 초기 발전의 부정, 그 부정의 부정, 그리고 원래 현상 유지의 특징의 고차원적 재현 등이 그것이다.
엥겔스는 자연 자체가 변증법적이며, 이것이 "어디에서나 매일 일어나는 매우 단순한 과정"이라고 주장했다.[35] 그의 변증법적 "양의 질로의 전환 법칙 및 그 반대"[36]는 상전이 개념에 해당하며, 창발 개념을 예상했다.[54]
블라디미르 레닌은 유물론적 철학을 역사와 사회 과학에 적용하는 것을 "변증법적 유물론"(레닌의 용어)의 주요 특징으로 보았다. 레닌은 인간 의식을 객관적인 물질 세계의 역동적인 반영으로 제시하는 반영 이론에 공헌했다.
스탈린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으로 엄격하게 분류했다. 전자는 자연 철학의 핵심 방법과 이론, 후자는 역사 철학의 소비에트 버전이었다.
알렉산더 보그다노프는 헤겔과 유물론적 변증법을 진보적이지만 부정확하고 확산된 시도로 보고, 테크톨로지 또는 보편적인 조직 과학이라고 불렀다.[37]
2. 4. 현대 철학
현대 철학에서 변증법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키르케고르는 자신의 변증법을 질적 변증법이라 부르고, 헤겔의 것을 양적 변증법이라 부르며 구분했다. 키르케고르는 미적·윤리적·종교적 실존의 영역은 질적으로 본질을 달리하며, ‘~이기도 하고 ~이기도 하다’가 아니라 ‘~이거나 ~이다’의 결단에 의한 선택, 또는 정립에 의한 종합이 아니라 좌절에 의한 도약만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실존은 되어가는 것으로서 무한으로의 무한한 운동이며, 단순한 가능성이 아닌 현실로서 항상 시간적이며, 그 시간적 운동은 결단과 그 반복 속에서 시간 안의 영원을 채운다고 하였다. 모순에 의해 각각의 실존에 대해 닥쳐온 결단에서의 진리의 생성이 주체성의 진리이며, 주체적이고 실존적인 사유자는 마치 실존하면서 문제를 푼다고 보았다.
니시다 기타로는 헤겔의 변증법이 형식논리 안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것보다 대표적이지만, 서양 특유의 무모순적인 정적인 형식논리를 초월한 형식적 모순의 측면에서 “절대변증법”을 제시했다. 절대변증법에서는 정립되어야 할 모순은 상대적 모순이 아니라 절대적 모순이며, 그 결과 모순의 정립을 거쳐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모순에 있으며, 운동과 정지가 동시에 존재한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1966년 저서 『부정변증법』(Negative Dialektik)에서 “부정적 변증법”을 제시했다. 이는 “존재하는 것과 생각되는 것과의 사이의 동일성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하지 않는 것, 또는 그러한 개념 속에 귀착되지 않고, 바로 그 반대물을 명시하려고 하는, 즉, 개념과 사물과의 사이, 주객 사이의 분리 지향을,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비화해성을 명시하려고 하는 철학의 기획”이다.
2. 4. 1. 변증법적 자연주의
머레이 부크친은 사회생태학의 철학적 토대로서 변증법적 자연주의를 제시했다. 부크친은 사회 문제와 인간 사회의 생태적 영향 간의 복잡한 상호 관계를 탐구하며, 헤겔의 "공상적이고, 근본적으로 반자연주의적인 변증법적 관념론"과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딱딱하고, 종종 과학주의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대조로서 변증법적 자연주의를 제시했다.[38]2. 4. 2. 신학적 변증법
칼 바르트[42]와 에밀 브루너[39]는 신정통주의 신학에서 변증법적 신학을 발전시켰다.[39][40] 변증법적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차이와 대립을 강조하며, 이러한 대립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모든 시도는 '죄'로 특징지어진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인류는 부정되고 극복되지만, 이 심판은 또한 인류가 그리스도 안에서 재건되는 부활을 향해 나아간다. 바르트는 모든 인간적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아니오'를 통해서만 그의 '예'를 인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44]3. 용어 (헤겔 변증법)
헤겔 변증법에서 사용되는 주요 용어들은 다음과 같다.
용어 | 설명 |
---|---|
테제(These) | 정립(定立) 또는 명제(命題)라고도 하며, 원래부터 정리된 하나의 주장이다. 변증법적 전개의 첫 단계로, 추상적이고 오성적인 규정에 해당한다. |
안티테제(Antithese) | 반정립(反定立)이라고도 하며, 정립이 내적 모순으로 인해 낳은 대립 명제이다. 변증법적 전개의 두 번째 단계로, 변증법적이고 부정적이며 이성적인 규정에 해당한다. |
진테제(Synthese) | 합(合) 또는 종합(綜合)이라고도 하며, 정립과 반정립의 모순이 통일된 상태이다. 변증법적 전개의 세 번째 단계로, 사변적이고 긍정적이며 이성적인 규정에 해당한다. |
정·반·합 | 헤겔 변증법의 도식이다. 정립-반정립-종합, 또는 즉자적(卽自的) 단계-대자적(對自的) 단계-즉자 및 대자적 단계와 같으며, 그 자체의 운동 과정을 나타낸다. |
즉자(卽自, an sich|안 지히de) | 그 자체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직 분열이나 대립에 이르지 못한 변증법적 전개의 첫 단계이다. 잠재적이고 무자각적인 상태를 뜻한다. |
대자(對自, für sich|퓌어 지히de) | 자신에 대립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자기가 분열하고 대립하고 있는 변증법적 전개의 두 번째 단계이다. 즉자 단계에서 이미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던 모순이 드러난 단계로, 즉자에 비해 한층 자각적인 상태이다. |
지양(止揚, aufheben|아우프헤벤de) | 양기(揚棄)라고도 하며, 보존하다와 폐지하다라는 상반된 뜻을 동시에 가지는 독일어 단어이다. 헤겔은 이 단어가 독일어의 사변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여 변증법 용어로 사용했다. 정립과 반정립의 대립이 종합 단계에서 통일될 때, 정립과 반정립의 규정은 부정되면서도 그 내용은 더 높은 차원에서 보존되며, 개념은 더욱 구체화된다.[29] |
3. 1. 정, 반, 합
헤겔의 변증법은 흔히 정(正), 반(反), 합(合)의 세 단계로 설명된다. 이러한 삼단 논법은 하인리히 모리츠 찰리바우스가 처음 제시한 것으로, 변증법적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25][26] 그러나 헤겔은 '정, 반, 합'이라는 용어 대신 '추상적', '부정적', '구체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27][28]- 정(正, These): 원래부터 정리된 하나의 주장으로, 변증법적 전개의 첫 단계다.(추상적·오성적 규정)
- 반(反, Antithese): 정립이 내적 모순으로 낳은 대립 명제다. 변증법적 전개의 두 번째 단계다.(변증법적 부정적 이성적 규정)
- 합(合, Synthese): 정립과 반정립의 모순이 통일된 단계다. 변증법적 전개의 세 번째 단계다.(사변적·긍정적·이성적 규정)
헤겔은 지양(止揚, aufheben|아우프헤벤de)이라는 개념을 통해 정반합의 과정을 설명한다. 아우프헤벤(aufheben)은 '보존하다'와 '폐지하다'라는 상반된 뜻을 동시에 가지는 독일어 단어다.[29] 헤겔은 이 단어가 독일어의 사변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여 변증법 용어로 사용했다. 지양은 정립과 반정립의 대립이 종합 단계에서 통일될 때, 정립과 반정립의 규정이 부정되면서도 그 내용은 더 높은 차원에서 보존되고, 개념이 더욱 구체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 변증법에서 중요한 개념은 다음과 같다.
- 즉자(卽自, an sich): 아직 분열, 대립에 이르지 못한 변증법적 전개의 첫 단계다. 그 자체로는 타와 관계가 없지만, 잠재적이고 무자각적인 상태다.
- 대자(對自, für sich): 자신이 분열하고 대립하고 있는 변증법적 전개의 두 번째 단계다. 즉자 단계에서 이미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던 모순이 드러난 단계로, 즉자에 비해 한층 자각적이다.
- 즉자 및 대자: 즉자와 대자의 대립이 통일된 단계다. 자기 자신의 내용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자각적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에게 있어 역사 또한 변증법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역사가 예속으로서의 자기소외에서 자기통일과 실현으로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합리적인 헌법 국가로 진보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3. 2. 즉자, 대자, 즉자 및 대자
즉자(卽自, an sich|안 지히de)는 그 자체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직 분열이나 대립에 이르지 못한 변증법적 전개의 첫 번째 단계이다.[24] '즉자적(卽自的)'이란 원래 그 자체는 타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지만, 잠재적이고 무자각적인 상태를 뜻한다.대자(對自, für sich|퓌어 지히de)는 자신에 대립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자기가 분열하고 대립하고 있는 변증법적 전개의 두 번째 단계이다.[24] '즉자' 단계에서 이미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던 모순이 드러나는 단계로, 즉자에 비해 한층 자각적인 상태이다.
즉자 및 대자(卽自-對自)는 즉자와 대자의 대립이 통일되는 단계이다.[24] 이 단계는 즉자 때의 일체성과는 다르게 자기 자신의 내용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각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3. 3. 지양
지양(止揚)은 양기(揚棄)라고도 한다. 독일어 '아우프헤벤(aufheben)'은 '보존하다, 보관하다'라는 뜻과 '폐지하다, 폐기하다'라는 상반된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헤겔은 이를 독일어가 지니는 사변적 성격이라 하여 변증법 용어로 사용했다. 헤겔 변증법에서 정립·반정립의 대립이 종합 단계에서 통일될 때, 정립·반정립의 규정은 부정되면서도 그 내용은 보다 고차적인 차원에서 보존되며, 개념은 더욱 구체화된다.[29]4. 주요 변증론자
다음은 변증법적 사상을 발전시킨 주요 철학자들이다.
- 노자 (BCE. 571년? ~ BCE. 5세기?)
- 헤라클레이토스 (BCE. 535년? ~ BCE. 475년?)
- 플로티노스 (205년? ~ 270년?)
- 포르피리오스 (234년? ~ 305년?)
- 프로클로스 (412년 ~ 485년)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1260년 ~ 1328년)
-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1401년 ~ 1464년)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1770년 ~ 1831년)
-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1775년 ~ 1854년)
-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1804년 ~ 1872년)
- 카를 마르크스 (1818년 ~ 1883년)
- 프리드리히 엥겔스 (1820년 ~ 1895년)
- 요제프 디츠겐 (1828년 ~ 1888년)
-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1856년 ~ 1918년)
- 블라디미르 레닌 (1870년 ~ 1924년)
- 아브람 데보린 (1881년 ~ 1963년)
- 마오쩌둥 (1893년 ~ 1976년)
- 표도르 콘스탄티노프 (1901년 ~ 1991년)
- 에발트 일리옌코프 (1924년 ~ 1979년)
- 고트프리트 슈틸러 (1924년 ~ 2007년)
- 비토리오 회슬레 (1960년 ~ )
고대 그리스에서는 문답법으로 통했으며, 엘레아의 제논이나 소크라테스는 변증법을 철학적 방법으로 사용했다. 소피스트들이 변증법을 궤변술로 사용한 이후, 적극적인 철학적 방법으로서의 변증법과 궤변술로서의 부정적인 용법이 대립하게 되었다. 플라톤은 변증법을 내면화된 이데아에 이르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보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박의 기술 또는 명제의 귀납적 탐구술로 보아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칸트는 순수이성이 형이상학적 문제에 적용될 때 발생하는 가상(假象)의 논리를 변증법이라 칭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헤겔은 이성이 범하는 모순의 적극적인 의의를 포착하여, 변증법을 고정된 견해인 형이상학에 대립되는 인식 방법이자 사유(思惟)의 자기 운동과 자연 및 역사(歷史)의 모든 현실적 자기 운동에 대한 보편적인 법칙으로 보았다.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운동을 관념론적 입장에서 개념의 자기 전개로 정착시켰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의 합리적인 핵심을 유물론의 입장에서 계승하여 변증법을 자연, 사회, 사유의 일반적인 운동 법칙으로 확립하였다.
4. 1. 고대
고대 철학에서 변증법(διαλεκτική|디알렉티케el)은 찬반 논증의 대화를 기반으로 하는 추론의 한 형태로, 명제(주장)와 반명제(반대 주장)를 제시한다. 이러한 변증법의 결과는 관련 명제의 반박이 될 수도 있고, 종합(상반되는 주장의 결합)이 될 수도 있으며, 또는 대화의 질적 향상이 될 수도 있다.[2][3]"변증법"이라는 용어는 기원전 5세기부터 4세기까지의 그리스 고전 시대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에서 차지하는 역할 덕분에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이 소크라테스적 변증법적 방법의 예시라고 하면서, 변증법을 발명한 사람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 엘레아의 제논이라고 말했다.[4]
변증법(弁証法)이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처음 등장하여, 타인과의 논쟁 기술 또는 사물의 대립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엘레아의 제논에 의해 창시되었다고 한다.[59] 플라톤의 초기 변론에서 묘사되는, 비교적 실제 모습에 충실하다고 여겨지는 소크라테스의 행위에 대한 해석에서는, 그가 실천한 어떤 하나의 사상이 내포하는 모순을 명확히 하기 위해, 그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논의·문답함으로써, 보다 타당한 진리에 다가가려는 방법을 의미한다. '''문답법'''이라고 표현된다.
4. 2. 중세 및 근대
칸트는 순수이성이 그 원리를 잘못 적용하여 형이상학적 문제에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가상(假象)의 논리를 변증법이라 칭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헤겔은 이성이 범하는 모순의 적극적인 의의를 파악했다. 헤겔에게 변증법은 고정된 견해인 형이상학에 대립되는 인식 방법이자, 사유(思惟)의 자기 운동과 자연 및 역사(歷史)의 모든 현실적 자기 운동에 대한 보편적인 합법칙성 이법(合法則性理法)이었다.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운동을 관념론적 입장에서 개념의 자기 전개로 정착시켰다.[68]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의 합리적인 핵심을 유물론의 입장에서 계승하여 변증법을 자연, 사회, 사유의 일반적인 운동 법칙(의 과학)으로 확립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와 사상은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재수입되어 중세의 스콜라 철학과 근대의 철학자들(특히, 대륙합리론, 칸트)에게 계승되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적 분류에 의해 변증법(dialectic)이라는 단어와 행위 자체는 형식 논리(논증, demonstration)보다 낮은, 통속적·사회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 등에 의해 태양 중심설(지동설)이 해명·보급된 16세기 이후, 지구 중심설(천동설)적 우주관·세계관에 기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체계가 붕괴되면서 중세 및 근세·근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둘러싼 상황과 그 위치가 크게 변화했다.
따라서 근대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체계를 대체하는 새로운 형이상학(제1철학)과 거대 이론(그랜드 시오리)의 재구축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경험론·관념론이 주류가 되었지만, 흄은 회의론에 이른다는 것을 제시했다. 유럽 대륙에서는 대륙 합리론을 통해 합리론적으로 형이상학·그랜드 시오리의 재구축이 시도되었지만, 독단론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대륙 합리론의 이성주의적 기조를 계승하면서도 경험론적 발상도 고려하여, 인식의 공통 기반인 이성 자체를 검토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비판철학)를 통해 형이상학과 그랜드 시오리적 틀의 적정한 재생을 시도했다.
피히테, 셸링, 헤겔 등 독일 관념론에 분류되는 사람들은 "변증법"(dialectic)의 옹호와 함께 칸트의 이원론(경험·감각적 현상과 비경험·비감각적 물자체)적인 비판철학적 틀의 재편·극복을 지향했다. 이들은 칸트의 이원론적인 틀을 더 주체적인 관점에서 극복하고, 「일자」에 이르는 과정·틀로 재구축하고자 했다.
헤겔은 「인간의 주관(의식·이성)으로 붙잡을 수 없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으며, 이는 『법철학』 서문의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이다"라는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헤겔에 따르면 철학은 현실을 뒤쫓을 뿐이며, 현실의 역사가 그 형성 과정을 끝낸 후에야 철학이 건설된다("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고 한다.
헤겔에게 철학은 인간의 주관·인식이 자기의 성질·욕구에 따라 주체적이고 점진적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형태로 진리·절대지에 도달해 가는 과정·도정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여기서 인간의 현실 인식이 대립·매개를 통해 전개되고 절대지에 도달해 가는 과정의 역동성에 주목하는 "헤겔의 변증법"이라는 사고방식이 등장한다.
4. 3. 마르크스주의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 관점에서 계승하여, 자연, 사회, 사유의 일반적인 운동 법칙을 과학적으로 확립하였다.[23]19세기 중반, 헤겔의 변증법은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수용되어 그들이 비관념론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었다. 이는 후대의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나타내는 데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서로 다른 마르크스주의 그룹들 사이에서 활발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23]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은 역사적 유물론 연구에 적용되는 헤겔 변증법의 한 형태이며, 사회적, 경제적 행위를 검토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의 기초이자 역사적 유물론의 기반을 형성한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변증법"은 자연, 사회 및 인간 사고에서 정기적이고 상호적인 관계, 상호 작용 및 과정을 의미한다.[31] 변증법적 관계는 두 가지 현상이나 사상이 서로 상호 영향을 미쳐 발전과 부정으로 이어지는 관계이다.[31] 발전은 현상과 사상이 덜 발전된 것에서 더 발전된 것으로, 또는 덜 완전한 것에서 더 완전한 것으로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31] 변증법적 부정은 이전의 두 주체 간의 모순이 새로운 주체를 낳는 발전 단계를 의미하며,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변증법적 부정은 결코 종착점이 아니고, 대신 더 발전하고 부정하기 위한 새로운 조건을 만든다.[31]
헤겔 사후 수십 년 동안 저술한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헤겔의 변증법이 너무 추상적이라고 주장했다.[32]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신의 변증법적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는 헤겔의 방법과 "정반대"라고 주장했다.[33]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은 『자본론』에서 잘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계급 투쟁은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삶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이 해결해야 할 주요 모순이다.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 사이, 그리고 도시와 시골 사이의 변증법적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계급 투쟁 개념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철학적 모순은 변증법 발전의 중심이다. 양에서 질로의 진보, 점진적인 사회 변화의 가속화, 현상 유지의 초기 발전의 부정, 그 부정의 부정, 그리고 원래 현상 유지의 특징의 고차원적 재현 등이 그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세계는 여러 사건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여러 과정들의 집합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헤겔의 사상이 "머리만 커서" "거꾸로 서 있다"고 비판하며, 그의 사상을 "땅에 발을 붙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65] 즉, 헤겔의 관념론에 기반한 변증법에서 관념의 우위성을 유물론에 기반한 물질의 우위성으로 뒤집음으로써 유물변증법(변증법적 유물론) 또는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이 생겨났다. 세계는 관념적인 신이나 절대 지성을 향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 자연과학을 향해 발전해 간다는 것이다.
이 변증법을 역사 이해에 적용한 것이 바로 역사적 유물론(유물사관)이며, 이러한 관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의 저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변증법은 마르크스주의자 사상의 핵심적인 출발점이 된다.
엥겔스는 『자연변증법』에서 유물론적 변증법의 구체적인 원리를 세 가지로 제시했다.
# "양에서 질로의 변화, 또는 그 역의 변화"
# "대립물의 상호 침투(통일)"
# "정의의 정의"
엥겔스는 이것들이 헤겔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을 인정했다. 첫 번째는 양의 점진적인 움직임이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하며, 엥겔스는 예를 들어 분자와 그것이 구성하는 물체는 본질적으로 질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에 대한 엥겔스의 설명은 적다. 그러나 두 번째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실체론이 아닌 관계론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한다. 즉, 대립물은 서로 상호 작용함으로써 비로소 서로 성립하는 상호 의존적이고 상관적인 관계에 있으며, 결코 독자적인 실체로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헤겔의 아우프헤벤(Aufhebung)과 같다. 엥겔스에 따르면, 유물론적 변증법은 자연에서 변증법을 찾지만, 헤겔의 것은 정반대로 사고에서 자연으로의 적용을 시도한다.
또한 엥겔스는 헤겔의 변증법의 정당성이 "세포", "에너지 전환",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세 가지 자연과학적 발견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생각했다.
블라디미르 레닌에게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레닌의 용어)의 주요 특징은 유물론적 철학을 역사와 사회 과학에 적용하는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에 대한 레닌의 주요 공헌은 그의 반영 이론으로, 인간 의식을 그 내용과 구조를 완전히 형성하는 객관적인 물질 세계의 역동적인 반영으로 제시한다.
나중에 스탈린의 이 주제에 대한 저술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으로 엄격하고 형식적인 분류를 확립했다. 전자는 자연 철학의 핵심 방법과 이론이 되어야 했고, 후자는 역사 철학의 소비에트 버전이었다.
소비에트 시스템 이론의 선구자인 알렉산더 보그다노프는 헤겔과 유물론적 변증법을 진보적이지만 부정확하고 확산된 시도로 보았다. 그는 이것을 테크톨로지 또는 보편적인 조직 과학이라고 불렀다.[37]
스탈린주의에서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측면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점차 교조주의적이고 이론적으로 파탄된 것으로 변해갔다. 소비에트 연방의 철학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에브게니 일리엔코프[66]이다. 그는 레닌의 사상에 있는 "변증법적 논리학을 발전시키려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인식론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지시에 따라, 관념론적 편향에서 해방된 마르크스주의적인 변증법 연구를 계속했다.[67]
4. 4. 현대
칸트는 순수이성이 그 원리를 잘못 적용하여 형이상학적 문제에 이르게 될 때 발생하는 가상(假象)의 논리를 변증법이라 칭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헤겔은 이성이 범하는 모순의 적극적인 의의를 포착했다. 헤겔에게 변증법은 고정된 견해인 형이상학에 대립되는 인식 방법이자, 사유(思惟)의 자기 운동, 그리고 자연과 역사의 모든 현실적 자기 운동에 대한 보편적인 합법칙성 이법(合法則性理法)이었다.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운동을 관념론적 입장에서 개념의 자기 전개로 정착시켰다.[68]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의 합리적인 핵심을 유물론의 입장에서 계승하여 변증법을 자연, 사회, 사유의 일반적인 운동 법칙으로 확립했다.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변증법을 질적 변증법이라 칭하고, 헤겔의 것을 양적 변증법이라 구분했다. 예를 들어 미적, 윤리적, 종교적 실존 영역은 질적으로 본질을 달리하며,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다'가 아닌 '이것이거나 저것이다'라는 결단에 의한 선택, 또는 정립에 의한 종합이 아닌 좌절에 의한 도약만이 존재한다. 실존은 되어가는 것으로서 무한으로의 무한한 운동이며, 단순한 가능성이 아닌 현실로서 항상 시간적이다. 그 시간적 운동은 결단과 그 반복 속에서 시간 안의 영원을 채운다. 모순에 의해 각각의 실존에 대해 닥쳐오는 결단에서의 진리의 생성이 주체성의 진리이며, 주체적이고 실존적인 사유자는 마치 실존하면서 문제를 푼다.
헤겔의 변증법 외에도,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와 같은 이단 논법(二枝弁証法), 셸링과 같은 사단 논법(四枝弁証法)도 존재한다.
니시다 기타로는 “절대변증법”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서양 특유의 무모순적인 정적인 형식논리를 초월한 형식적 모순의 측면을 강조한다. 정립되어야 할 모순은 상대적 모순이 아닌 절대적 모순이며, 그 결과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모순에 있으며, 운동과 정지가 동시에 존재한다.
아도르노는 1966년 저서 『부정변증법』(Negative Dialektik)에서 “부정적 변증법"을 제시했는데, 이는 니시다 기타로의 "절대변증법"과 거의 일치한다. 아도르노는 “존재하는 것과 생각되는 것과의 사이의 동일성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하지 않고, 개념과 사물, 주객 사이의 분리 지향 및 비화해성을 명시하려는 철학의 기획”이라고 설명했다.
5. 비판
프리드리히 니체는 변증법이 인위적인 경계를 설정하고 현실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억압한다고 보았다. 그는 진리가 변증법적 추론을 통해 완전히 파악될 수 있다는 개념을 거부하고, 기존의 틀에 도전하며 현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변증법적 접근의 한계를 강조했다.[47]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나는 모든 체계화자들을 불신하며 그들을 피한다. 체계에 대한 의지는 성실성의 부재이다."라고 말하며 변증법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48] 또한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이 본능보다 이성을 우선시하여 개인의 열정을 억압하고 인위적인 도덕성을 부과한다고 비판했다.[48]
칼 포퍼는 변증법이 모순을 용인하면 비합리적인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시드니 후크는 "변증법의 이치와 넌센스"에 대해 논의했고, 두 가지 변증법 개념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거부했지만, 하나의 개념은 "편리한 조직 범주"로 받아들였다.[51]
마리오 붕게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모호하고 과학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52] 포 유제 완은 붕게의 비판이 타당하다고 보면서도, 변증법이 과학자들에게 어떤 휴리스틱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54] 그는 리처드 레빈스와 리처드 레원틴(변증법적 생물학자의 저자)과 어니스트 메이어같은 과학자들이 변증법적 원리와 과학적 관점 사이에 합의를 발견했지만, 엥겔스의 변증법 "법칙"이 "사실상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언급했다.[54]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도 "변증법"이라는 용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미하엘 하인리히는 "변증법에 대한 장황한 수사는 대부분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에 의존하고 상호 작용 상태에 있으며, 모든 것이 매우 복잡하다는 간단한 사실로 귀결된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사실이지만, 실제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라고 썼다.[55]
5. 1. 칼 포퍼의 비판
칼 포퍼는 변증법이 모순을 용인함으로써 비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49] 1937년 "변증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헤겔, 마르크스, 엥겔스의 변증법이 "모순을 감수하려는" 의지를 가졌다고 비판했다.[49] 그는 모순을 논리의 타당한 형태로 받아들이면 폭발의 원리와 자명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포퍼는 "변증법의 전체적인 발전은 철학적 체계 구축에 내재된 위험에 대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49]70년 후, 니콜라스 레셔는 "포퍼의 비판은 변증법의 과장된 버전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반박하며, "역설적이게도, 변증법에 대한 포퍼의 비판에는 변증법적인 것이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50]
5. 2. 마리오 붕게의 비판
마리오 붕게는 변증법을 "모호하고 과학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으며,[52] "파괴적인 유산"이라고도 불렀다.[53] 붕게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이 공식화한 변증법의 법칙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거짓이라고 결론지었다.[53]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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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The transition from Quality to Quantity...is not found in our ordinary way of thinking, which deems each of these categories to exist independently beside the other. We are in the habit of saying that things are not merely qualitatively, but also quantitatively defined; but whence these categories originate, and how they are related to each other, are questions not further examined. - Shorter Lo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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