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도쿄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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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지 도쿄 지진은 1894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건물 130동이 붕괴되고 31명이 사망, 157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특히 서양식 벽돌 건물 피해가 컸으며, '굴뚝 지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진의 진원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필리핀해판 내부 지진으로 추정된다. 지진 피해는 히구치 이치요,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의 문학 작품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액상화 현상과 같은 지진 관련 기록도 남아있다.

메이지 도쿄 지진
지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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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 지방의 위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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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위치 지도
지진 정보
명칭메이지 도쿄 지진
현지 날짜1894년 6월 20일
현지 시간14시 04분 (JST)
지속 시간알 수 없음
규모6.6 M
깊이50 km ~ 80 km
위치35.7°N 139.8°E
종류알 수 없음
영향 국가일본
피해알 수 없음
최대 진도IX
최대 지반 가속도알 수 없음
쓰나미없음
산사태알 수 없음
전진알 수 없음
여진알 수 없음
인명 피해
사망자31명
부상자15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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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피해

이 지진으로 도쿄 시타마치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가와사키시 등 도쿄만 연안을 중심으로 피해가 발생했다. 1892년 설립된 지진재해예방조사회에서 상세한 피해 조사를 실시했다.

여진은 적은 편이었으며, 6월 21일과 22일약진이 1회씩, 미진이 수 회 정도 있었다. 10월 7일 발생한 도쿄만 지진(M 6.7, 깊이 100km)이 최대 여진일 가능성이 있다.

2.1. 인명 피해

이 지진으로 사망자 31명(도쿄 시 24명, 요코하마시 4명, 다치바나군 3명), 부상자 157명이 발생했다. 후카가와구에서 9명, 시바구에서 2명이 즉사하는 등 도쿄 시내에서 인명 피해가 집중되었다. 벽돌 건물의 피해가 많았고 굴뚝 파괴가 두드러져 '굴뚝 지진'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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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망자 수
도쿄시24명
요코하마시4명
다치바나군3명
| 31명

2.2. 건물 피해

이 지진으로 건물 130동이 완전히 붕괴되었는데, 도쿄부에서 90동, 가나가와현에서 40동이 붕괴되었다. 서양식 벽돌 건물의 피해가 컸으며, 굴뚝 파괴가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굴뚝 지진'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아사쿠사료운카쿠(12층)는 일부 파손되어 보강 공사가 실시되었다. 요츠야의 가쿠슈인은 피해를 입어 시모타카다무라(현재의 메지로)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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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기타 피해

스미다강아라카와 유역, 사이타마현 모토아라카와강 등에서 액상화 현상이 발생했다. 사이타마현 한노시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했다.

3. 지진 발생 메커니즘

메이지 도쿄 지진은 도시 직하형 지진이었지만, 정확한 진원지는 특정되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

1892년 설립된 지진재해예방조사회가 상세한 피해 조사를 실시했다. 도쿄도 시타마치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가와사키시를 중심으로 피해가 발생했다. 제국대학 이과대학(현재의 도쿄 대학 이학부) 지진학 교실에 따르면 10월 7일에 발생한 도쿄만 지진 M 6.7, 깊이 100km가 최대 여진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3.1. 발생 원인 가설

피해 유형은 도시직하형이지만, 진원이 내륙지각 내 지진(대륙판 내 지진)인지, 태평양판필리핀해판 경계에서 발생한 지진 (판 경계간 지진) 두 종류의 지진인지는 현재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태평양판의 지진 특유의 도호쿠 · 간토 태평양 쪽 이상지진역이 없다는 점 등에서 필리핀 해판 내부의 지진(해양판 내 지진)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당시의 지진계 기록과 현대적인 지진계에서 관측 기록을 비교 분석한 결과에서도 필리핀해판 내부 지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도쿄 제국 대학 이과대학 학부 지진학교실에 따르면 여진이 적고, 6월 21일 및 22일에는 약진이 한 번씩 있었으며, 미진이 몇 번 정도 있었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3.2. 추가 연구

당시 지진계 기록과 현대 지진계 관측 기록을 비교 분석한 결과, 필리핀해판 내부 지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여진이 적고, 도호쿠 지방·간토 지방 태평양 쪽 이상지진역이 없다는 점 등에서 필리핀 해판 내부 지진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4. 지진 관련 기록

히구치 이치요의 '수상일기', 밸츠의 일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어린 시절' 등에 메이지 도쿄 지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히구치 이치요의 '수상일기'에는 지진 피해에 대해 들은 내용이, 밸츠의 일기에는 지진 피해 상황과 주택 건축에 대한 교훈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어린 시절'에는 지진 피해 경험과 지진 공포증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4.1. 문학 작품

히구치 이치요의 '수상일기'에는 이 지진에 대해 들은 것을 기록하는 형태로 소개되어 있다. 요츠야의 마쓰다이라 가에서는 마루 사이의 벽이 붕괴되었고, 토장(흙벽으로 만든 창고)의 고시마키(토장 아래의 두꺼운 부분)가 무너졌다고 한다. 또한, 미타 쪽에서는 액상화 현상이 발생하였고 분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진 당일 22시쯤에 여진이 있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어린 시절'에는 도쿄 변두리의 집에 있던 다니자키가 피해를 입은 경험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이것이 그의 지진 공포증 원인이 됐다고 말한다.

4.2. 기타 기록

히구치 이치요의 '수상일기'에는 요츠야의 마쓰다이라 가에서 마루 사이 벽이 붕괴되고 토장(흙벽으로 만든 창고)의 고시마키(토장 아래의 두꺼운 부분)가 무너졌다는 피해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타에서는 액상화 현상으로 분사가 있었다고 하며, 지진 당일 22시쯤에는 여진도 있었다고 한다.

밸츠의 6월 22일 일기에는 석조 및 벽돌 건물 피해가 크고, 목조 건물 피해는 적어 주택 건축에 교훈이 될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도쿄 제국 대학 이과대학 학부 지진학교실에 따르면 여진이 적었고, 6월 21일 및 22일에는 약진이 한 번씩 있었으며, 미진이 몇 번 정도 있었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