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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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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미다강은 도쿄를 흐르는 강으로, 원래는 아라카와강의 일부였으나 1965년 아라카와 방수로가 아라카와강으로 지정되면서 분기점 이남이 스미다강으로 불리게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오카와로 불리기도 했으며, 26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역사적으로 강의 명칭과 흐름이 여러 번 바뀌었으며, 주변의 산업화로 인해 수질 오염이 심화되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노력으로 개선되었다. 스미다강은 다양한 문화, 예술 작품의 배경이 되었으며, 문학 작품과 도자기, 불꽃 축제 등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현재는 다양한 어종과 철새가 서식하는 생태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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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다강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스미다강
일본어 이름隅田川 (스미다가와)
로마자 표기Sumida-gawa
설명도쿄도를 흐르는 주요 강
지리 정보
위치도쿄도 남동부
발원지아라카와강
하구도쿄만
길이23.5km
기타 정보
스미다강
도쿄도 아다치를 흐르는 스미다강

2. 역사

원래 스미다강은 아라카와강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홍수를 막기 위해 강 동쪽에 아라카와 방수로(荒川放水路)가 만들어졌다. 1965년 3월 24일, 아라카와 방수로가 '아라카와강'으로, 분기점 서쪽의 강은 '스미다강'으로 불리게 되었다.[35]

메이지 시대에 현재의 이와부치 수문부터 하류로 도쿄만까지 아라카와 방수로를 개착했다. 1964년 하천법 개정에 의해 이 방수로를 아라카와강의 본류로 정하고, 이전의 하도(이와부치 수문부터 하류)를 스미다강으로 정했다.[35]

1916년경에는 수질 오염으로 뱅어가 사라지기도 했다.[36] 1917년 3월에는 하구 부근의 개량 공사가 완료되어 500톤 전후의 소형 기선 항행이 가능해졌다.[37] 1950년대 이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며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폐수와 쓰레기로 인해 스미다강은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악취가 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자, 1979년 인근 시민 12명이 '스미다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다이토구와 도쿄 도 등에 하천 개선 작업을 요구했고, 그 결과 강변에 갈대가 심어진 인공 테라스가 마련되어 시민들이 산책이나 조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섬네일


간토 대지진이나 동일본 대지진 등에서는 지진이나 쓰나미의 영향으로 스미다강이 역류했다는 기록도 있다.

2. 1. 명칭의 변천

835년 스미다강은 한자로 住田川이라 표기하였다. 13세기 무렵 고후카쿠사인 니죠(後深草院二條, 1258~?)가 쓴 '''토하즈가타리(とはずがたり, 問わず語り)'''에서는 스다가와(須田川)로 기록되었다. 이후 스미다가와와 스다가와가 혼용되었으나, 결국 스다가와에서 스미다가와로 다시 정착되었고 隅田川, 墨多川, 墨田川, 住田川, 澄田川 등의 표기가 혼용되었다.

1829년 도쿠가와 막부에서 편찬한 '''어부내비고(御府內備考)'''에서는 墨田川라고 기록되었다.

대정봉환 이후인 1878년 내무성 지리국 지지과에서 펴낸 '''실측동경전도(實測東京全圖)'''에는 墨田川로 표기했으나, 1883년 참모본부 육군부 측량국에서 펴낸 1:5,000 측량도에서는 隅田川로 바뀌었다.

그러나 민간에선 줄곧 墨田川의 의미로 스미다가와를 칭했는지, 1884년에 나온 '''신편 무사시 풍토기(新編武藏風土記)'''에서는 染田川라고 기록되었다.

그 후 1937년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묵동기담(濹東綺譚)'''에서 '墨田川의 동쪽'이라는 의미로 '''濹東'''이라고 표기하며, 연재된 글에서 줄곧 墨田川로 기재하였다.

그러다 1965년 3월 24일 하천법 개정에 따라, 隅田川로 최종 결정되었다.[47]

2. 2. 고대-중세

고대 스미다강은 옛 도네강과 옛 이루마강이 현재의 아다치구 센주아케보노초 부근[15]에서 합류하여 남쪽으로 흘러 도쿄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이었다. 그 서쪽 강변을 따라 남쪽의 아사쿠사・도리코시까지 3킬로미터에 걸쳐 뻗은 가늘고 긴 미고지[16]가 형성되었으며, 표고 10미터 이하의 언덕도 산재해 고분 시대에 고분이 만들어졌다.[17][18]

두 강이 합류하는 지점부터 하류로 1킬로미터 사이(현재의 스이진오하시에서 시라히게바시까지)의 동쪽 강변은 '''스미다'''(묵전, 수전)라고 불렸다.[19][20]

합류점에서 2킬로미터 아래인 스미다구 무코지마 5초메 북단 부근[21]부터 하류는 사주가 흩어져 있는 하구로의 분류 지대였다.[22] 당시 도쿄만으로 흘러드는 주요 하구 하천은 이 지점에서 두 갈래로 나뉘었다. 남서쪽의 아사쿠사(아사쿠사항) 방향으로 향하는 현재의 하천[23]과 별도로 요코지켄강 방향으로 남동쪽으로 2킬로미터 흐르는 하천이 있었는데, 이 하천은 현재의 요코가와・야나기시마 (스미다구)와 가메이도 (고토구) 사이 부근에서 도쿄만에 흘러들었다.[24] 다만, 후자의 하구 하천은 점차 토사의 퇴적으로 세력이 약해졌다.[25]

스미다강(및 옛 도네강)은 후자의 하구 하천에 이르기까지 무사시국(도요시마군)과 시모사국(가쓰시카군)과의 최초의 국경이었다.[26][27]

남북 2킬로미터의 합류 구간은 양국 간의 교통 접점으로서 중요했으며, 771년 이후에는 무사시국시모사국을 거쳐 히타치국으로 이어지는 도카이도가 통과하여 스미다강을 배로 건너 동쪽 강변의 스미다로 건너갔다.[28] 835년(조와 2년)의 태정관부에 "'''주전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미야토강'''" 등으로도 불렸다.

이후에도 합류 구간 혹은 분류 지대의 도하는 무사시국・사가미국과 시모사국・히타치국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헤이안 시대까지는 더욱 오슈로 향하는[29]).[30] 사라시나일기에 따르면 스가와라노 다카스에 일행이 도성으로 돌아갈 때 도하하여 무사시국으로 들어갔으며(닌닌 4년〈1020년〉9월), 가마쿠라 시대 중기의 "도하지가타리"(고후카쿠사인 니조)에 따르면, 스미다강에 다리가 놓여 있었고, 현지 사람들은 스미다강을 "수전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쇼오 3년, 1290년).

군대가 통과한 예로는[31], 전 구년의 역에서 오슈로 향하는 미나모토노 요리요시, 요시이에가 통과했고, 지쇼・주에이의 난에서 가마쿠라로 향하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통과하여 무사시국으로 들어갔다.[32]

; 중세 이전의 하구 부근의 하천

: 도쿠가와 이에야스 입부 이전, 수도고속 6호 무코지마선 무코지마 입구 부근으로부터, 현재의 하토노마치 거리 상점가와 지조자카 거리 상점가를 둑으로 하는 분류(각각 과거에는 반둑, 쓰루둑이라고 불렸다.)가 흘러 히키후네역 부근을 경유하여, 그 앞 오시아게 부근까지 더욱 3갈래로 갈라져, 오요코강, 요코지켄강, 기타지켄강에 거의 접하는 형태의 하천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 하천과 미야토강・아사쿠사강이라고도 불린 현재의 스미다강 하류 중 어느 쪽이 본류에 해당하는지는 현재 판명되지 않았으며, 『호조씨 소령 역장』에 보이는 에도 지역과 갓사이 지역의 구분은 현재의 스미다강이 아닌 분류 중 어느 쪽이 경계선이 된다.[33]

2. 3. 에도 시대

1629년(간에이 6년) 아라카와를 이루마강으로 물길을 바꾸는 세가에(瀬替え)로 인해 스미다강의 하도는 아라카와의 본류가 되었다.[34] 이 무렵 현재의 하구로의 하도로 거의 일원화되었고, 그 서안(아사쿠사, 구라마에 등)에 대규모 하안이 정비되어 에도를 지탱하는 선운의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요코주켄강 방향으로 흐르는 물줄기로의 분기에는 우시지마 제방이 축조되어 최종적으로 막혔다.

아사쿠사 가야초 하안, 신류 하안, 모토류 하안, 하마초 하안, 오노에 하안, 이나리 하안, 미나토 하안, 후나마쓰 하안 등이 있었다.

간다강이 세가에되어 (혼고대지 말단을 개착), 동쪽으로 향하여 스미다강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료고쿠 다리 부근). 시노바즈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도 시노부가와라고 불리며 스미다강으로 흘러들게 되었다 (도리고에 부근).

2. 4. 메이지 시대 이후

메이지 시대에 현재의 이와부치 수문부터 하류로 도쿄만까지 아라카와 방수로를 개착했다. 1964년 하천법 개정에 의해 이 방수로를 아라카와강의 본류로 정하고, 이전의 하도(이와부치 수문부터 하류)를 스미다강으로 정했다.[35]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초기에 걸쳐 홍수를 막기 위해 이와부치 수문에서 하구까지 아라카와 방수로가 개설되었고, 1965년 3월 24일 시행된 하천법에 의해 아라카와 방수로가 아라카와강의 본류가 되었으며, 분기점인 이와부치 수문 하류의 이전 하도는 "스미다강"으로 개칭되었다.[35]

점차 수질 오염이 진행되어 1916년경에는 뱅어가 사라졌다.[36] 1917년 3월에는 하구 부근의 개량 공사가 완료되어 500톤 전후의 소형 기선 항행이 가능해졌다.[37]

간토 대지진이나 동일본 대지진 등에서는 지진이나 쓰나미의 영향으로 스미다강이 역류했다는 기록도 있다.

3. 지리



스미다강은 도쿄도 기타구의 이와부치 수문에서 아라카와강에서 분기하여 도쿄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신가시강, 샤쿠지이강, 간다천, 니혼바시강 등이 스미다강으로 합류한다.

스미다강에는 도쿄도를 관통하는 27km 구간에 26개의 다리가 약 1km 간격으로 놓여 있다. 각 다리는 특징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하류 쪽에 위치한 에이타이 다리와 기요스 다리는 간토 대지진 이후 지진 재해 부흥 사업으로 에이타이 다리는 위로 뻗은 아치교로, 기요스 다리는 현수교 형식으로 만들어져 뚜렷하게 대비된다.[40]

에도 시대에는 방어상의 이유로 다리 건설이 제한되어 메이지 시대 무렵까지는 많은 나룻배로 양안이 연결되었다. 그러나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점차 나무 다리 등이 건설되었다. 간토 대지진으로 많은 다리가 피해를 입자, 국비에 의한 지진 재해 부흥 사업으로 강철 다리로 교체되었다.[40]

3. 1. 유역의 자치체


3. 2. 다리

스미다강에는 도쿄도를 관통하는 27km 구간에 26개의 다리가 놓여 있으며, 대략 1km 간격으로 다리가 있다. 주요 다리는 다음과 같다.

  • 료고쿠 다리: 1932년에 건설되었으며, 1659년에 지어진 다리를 대체했다. 히로시게가 여러 작품에서 이 다리를 묘사했다.
  • 에이타이 다리: 1924년에 건설되었으며, 1696년에 지어진 다리를 대체했다.
  • 센주 다리: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1594년에 처음 건설된 다리를 대체했다. 이 다리는 오랫동안 스미다강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다.
  • 사쿠라 다리: 1985년에 건설되었으며, 스미다 공원과 보쿠테이도리 거리를 연결한다.
  • 고토토이 다리: 1928년에 건설되었으며, 인근 미메구리 신사와 마츠치야마 쇼덴이라는 두 사원을 연결하는 위치에 재건되었다.
  • 아즈마 다리: 1931년에 건설되었으며, 1774년에 처음 건설된 다리를 대체했다. 아사쿠사역과 가미나리몬에서 가장 가깝다.
  • 고마가타 다리: 1927년에 건설되었으며, 바토-카논을 모시는 마츠가타 사원에서 이름을 따왔다.
  • 우마야 다리: 1929년에 건설되었으며, 1875년에 건설된 다리를 대체했다.
  • 구라마에 다리: 1924년에 건설되었다.
  • 신 오하시(새 다리): 1976년에 건설되었으며, 1693년에 건설된 다리를 대체했다. 료고쿠 다리에서 멀지 않다.
  • 기요스 다리: 1928년에 건설되었으며, 독일 쾰른의 도이츠 현수교를 모델로 하여 기요스와 니혼바시-나카수를 연결한다.
  • 추오 다리: 1994년에 개통되었다.
  • 쓰쿠다 다리: 1964년에 건설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 건설된 다리로 쓰키지에서 쓰키시마로 강을 건너간다.
  • 가치도키 다리: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의 뤼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940년에 건설되었다. 스미다강에 있는 유일한 도개교이며, 1970년 이후로 들어 올려진 적이 없다.
  • 쓰키지 오하시: 스미다강을 가로지르는 가장 최근의 다리로, 2018년 츠키지 시장의 이전 부지 바로 옆에 개통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방어상의 이유로 다리 건설이 제한되기도 하여, 메이지 시대 무렵까지는 많은 나룻배로 양안이 연결되었다. 그러나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점차 나무 다리 등으로 다리가 건설되었다. 다이쇼 시대의 간토 대지진으로 많은 다리가 피해를 입자, 국비에 의한 지진 재해 부흥 사업으로 강철 다리로 교체되었다.

정부는 도쿄 부흥의 상징으로 스미다강 다리 건설을 전체적인 구상 하에 실행했으며, 부흥 사업의 기술적 총책임자였던 제국 부흥원 토목국장 오타 엔조의 부하 다나카 유타카에 의해 통일적인 디자인 모티프 하에 각각 다른 교량 형식이 채택되었다. 게다가 자동차 시대의 개막과 함께 더 많은 다리 건설이 이루어졌다.

각 다리는 특징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하류 쪽에 위치한 에이타이 다리와 기요스 다리는 지진 재해 부흥 시에 교체되었을 때, 에이타이 다리는 위로 뻗은 아치교로, 기요스 다리는 현수교 형식으로 하여 뚜렷한 대비성을 갖게 하여 구조 기술적인 면과 환경 디자인적인 면을 양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재해 대책 연락 다리나 산책로적인 보행자 전용 다리 등도 건설되어 더욱 다양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다리는 26개이며, 상류에서 하류까지 걸으면 6시간 정도 소요된다.[40]

'''보행자 통행'''

  • ○ - 가능
  • × - 일반 불가
  • ◆ - 보행자 전용


교량명병렬 노선자치체
( - 구)
비고
아라카와에서 분기
신가시가와 합류
신카미야 다리도쿄도도318호선(환상 7호선)기타 - 아다치
신다 다리기타 - 아다치
신토요 다리기타 - 아다치
도요시마 다리도쿄도도501호선기타 - 아다치
×수도고속 중앙 환상선 교량기타 - 아다치수도고속 중앙 환상선용 교량
샤쿠지이천 합류
고다이 다리도쿄도도458호선(고다이 거리)아라카와 - 아다치
오구 다리도쿄도도58호선(오구 다리 거리)아라카와 - 아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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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케 다리도쿄도도313호선 (오타케 다리 거리)아라카와 - 아다치
×조수 센주 수도관교아라카와 - 아다치도쿄도 수도국의 상수도관. 노후화와 내진성 문제로 인해 2013년 5월에 철거.
×게이세이 본선 스미다가와 교량아라카와 - 아다치게이세이 전철 || 본선용 교량
×도쿄전력 송전교아라카와 - 아다치도쿄전력 파워 그리드의 송전용. 내진성 문제로 인해 2021년에 철거.
×센주 수도관교아라카와 - 아다치도쿄도 수도국의 공업 용수관
센주 오하시국도4호선 (닛코 가도)아라카와 - 아다치
×조반선 스미다가와 교량아라카와 - 아다치JR || 조반선용 교량
×쓰쿠바 익스프레스 스미다가와 교량아라카와 - 아다치'TX'쓰쿠바 익스프레스용 교량
×히비야선 스미다가와 교량아라카와 - 아다치도쿄 지하철히비야선용 교량[41]
센주 시오이리 오하시도쿄도도314호선 (가와노테 거리)아라카와 - 아다치
구 아야세가와 합류
스이진 오하시도쿄도도461호선 지선아라카와 - 스미다
시라히게 다리도쿄도도306호선 (메이지 거리)다이토 - 스미다
사쿠라 다리다이토 - 스미다
고토이토이 다리국도6호선・도쿄도도319호선 (고토이토이 거리)다이토 - 스미다
도부 하나카와도 철도교
스미다 리버 워크
다이토 - 스미다도부 철도이세사키선(도부 스카이트리 라인)용 교량
보행자 전용 다리 "스미다 리버 워크"를 병설
기타주켄가와 합류
아즈마 다리도쿄도도463호선 지선 (카미나리몬 거리)다이토 - 스미다
고마가타 다리도쿄도도463호선 (아사쿠사 거리)다이토 - 스미다
구라야 다리도쿄도도453호선 (카스가 거리)다이토 - 스미다
구라마에 다리도쿄도도315호선 (구라마에 다리 거리)다이토 - 스미다
×구라마에 전용교다이토 - 스미다NTT 전화 통신선・도쿄도 수도국의 수도관
×소부선 스미다가와 교량다이토 - 스미다JR소부선용 교량
간다천 합류
료고쿠 다리국도14호선 (게이요 도로)주오 - 스미다
타테가와 합류
×료고쿠 오하시료고쿠 정션주오 - 스미다수도고속 6호 무코지마선・7호 코마츠가와선용 교량
신오하시도쿄도도50호선(신오하시 거리)주오 - 고토
오나기강 합류
기요스 다리도쿄도도474호선 (기요스 다리 거리)주오 - 고토
센다이보리강 합류
스미다가와 오하시수텐구 거리・수도고속 9호 후카가와선주오 - 고토
니혼바시강 합류
에이다이 다리도쿄도도10호선 (에이다이 거리)주오 - 고토
오요코가와 합류
아이오이 다리도쿄도도463호선 (기요스미 거리)주오 - 고토
주오 오하시도쿄도도463호선 지선 (야에스 거리)주오 - 주오
가메시마강 합류
쓰쿠다가와 지천에 분류
쓰쿠다 오하시도쿄도도473호선 (쓰쿠다 오하시 거리)주오 - 주오
쓰키시마강에 분류
가치도키 다리도쿄도도304호선 (하르미 거리)주오 - 주오
신쓰키시마강에 분류
쓰키지 오하시도쿄도도50호선 지선 (환2거리)주오 - 주오
도쿄만에 유수


4. 문화 및 예술

''보쿠스이 츠츠미 하나자카리 노 주 –'' 우타가와 히로시게 3세, 1881


스미다강은 여러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 음악: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은 1956년 일본을 방문하여 노 연극 《스미다강》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드라마 작품 《굴뚝강》(1964)을 작곡했다.

  • 가부키: 가부키 연극 《스미다강 — 고니치노 오모카게》는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인 《호카이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나카가와 시메스케가 쓴 이 연극은 1784년 오사카에서 처음 제작되었다. 이 연극은 일본 가부키 레퍼토리에 계속 포함되어 있으며 서양에서도 공연된다. 2007년 여름, 나카무라 칸자부로 18세가 출연진을 이끌고 헤이세이 나카무라자에 의해 링컨 센터 페스티벌에서 재현되었다.[6]

  • 불꽃놀이: 스미다강 불꽃 축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불꽃놀이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료고쿠와 아사쿠사 사이의 강을 가로지르는 부선에서 발사된다. 여름 동안 같은 시기에 축제도 열린다.

  • 도자기: 스미다강 도자기는 스미다강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원래 도쿄 근처 아사쿠사 지역에서 도예가 이노우에 료사이 1세와 그의 아들 이노우에 료사이 2세가 제조했다.[1][2][3] 1890년대 후반에 료사이 1세는 "플랑베"라고 불리는 중국 유약을 바탕으로 유약이 흐르는 표면에 인물을 적용하는 스타일을 개발했다.[2] 스미다 도자기 조각은 찻주전자, 재떨이 또는 꽃병일 수 있으며 서양으로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1] 료사이 1세의 손자 이노우에 료사이 3세는 1924년 제조 장소를 요코하마로 옮겼지만,[1][2][3] 조각들은 계속해서 스미다 도자기 제품으로 식별되었다.[2] 이 도자기는 허구의 섬에서 제조되었다거나 한국 전쟁 포로에 의해 제조되었다는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3][4]

4. 1. 문학

마쓰오 바쇼는 스미다강 옆에서 살았는데, 그의 필명의 유래가 된 유명한 바나나 나무(일본어: 바쇼)가 그곳에 있었다. 예를 들어, 『오쿠노 호소미치』(The Narrow Road to the Deep North and Other Travel Sketches) (펭귄 클래식, 1967)에 실린 「풍에 노출된 해골의 기록」의 첫 구절을 참고하라.[41]

스미다강은 고바야시 잇사가 1820년에 쓴 하이쿠에 등장한다.[41]

  • 이세 이야기 - 아리하라노 나리히라의 작품으로 전해짐("이름을 묻는다면, 자, 물어보리, 도읍의 갈매기여, 내가 생각하는 사람은 있느냐 없느냐"라고 갈매기를 읊음). 헤이안 시대 초기.
  • 사라시나 일기 - 스가와라노 타카스에의 딸의 일기. 1020년(간닌 4년)에 아버지의 부임지인 가즈사 국부에서 교토로 돌아오는 도중, 스미다강을 건너는 모습을 묘사.
  • "말해도 대답 없는 달의 스미다강, 도읍의 벗과 볼 보람도 없네" (『교쿠요와카슈』여행 노래・1149) - 니조 타메코(니조파 가인·존지 친왕 (고다이고 천황)의 비)의 와카. 에도 시대에 스미다강의 노래로 에도 사람들에게 유명했다 (니조 타메코#스미다강).
  • 스미다강 - 나가이 가후의 소설. 1911년.
  • 조묘지에 있는 노구치 우죠의 시. 1933년 - "도읍의 갈매기조차 긴 밤에는 물에 노래 쓰는 꿈도 꾼다".
  • 행복호 출범 -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1955년
  • 트럼프대 위의 목 -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 소설. 1957년
  • 대여 보트 13호 -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 소설. 1957년

4. 2. 예술

스미다 강은 여러 예술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 스미다강 (노) - 무로마치 시대
  • 스미다가와 하나노고쇼조메 (온나 세이겐) - 분카 11년 (1814년)
  • 사쿠라히메 아즈마분쇼 - 분카 14년 (1817년)
  • 미야코도리 쿠루와 시라나미 (시노비노 소타) - 안세이 원년 (1854년)
  • 하나마치 모요 아지가이로누이 (이자요이 키요미) - 안세이 5년 (1858년)
  • 하치만마츠리 코모치즈키노 나이와이 (치지미야 신스케) - 만엔 원년 (1860년)
  • 아오토조시 하나노 니시키에 (시라나미 고닌오토코) - 분큐 2년 (1862년)
  • 스미다강 그림 두루마리 (회화) - 후지마키 요시오 작. 1935년, 실종 직전에 그려진 대작. 강가의 풍경을 쉼없이 가로로 묘사하여, 전체 길이는 60m에 달한다.


스미다 강 도자기는 스미다 강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원래 도쿄 근처 아사쿠사 지역에서 도예가 이노우에 료사이 1세와 그의 아들 이노우에 료사이 2세에 의해 제조되었다.[1][2][3] 1890년대 후반에 료사이 1세는 "플랑베"라고 불리는 중국 유약을 바탕으로 유약이 흐르는 표면에 인물을 적용하는 스타일을 개발했다.[2] 스미다 도자기 조각은 찻주전자, 재떨이 또는 꽃병일 수 있으며 서양으로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1] 료사이 1세의 손자 이노우에 료사이 3세는 1924년 제조 장소를 요코하마로 옮겼지만,[1][2][3] 조각들은 계속해서 스미다 도자기 제품으로 식별되었다.[2] 이 도자기는 허구의 섬 푸에서 제조되었고 태풍에 의해 쓸려 내려갔다는 등의 다양한 신화의 대상이 되었으며, 한국 전쟁 포로에 의해 제조되었다는 설도 있다.[3][4] 산드라 안다흐트는 1987년에 "스미다 강 도자기는 수집가, 딜러 및 투자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모티프는 동양 디자인이 묘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반적인 서양 개념에 부합한다; 꼬여있는 용, 불교 제자, 신화적, 전설적 존재와 생물. 따라서 이러한 도자기는 인기가 높으며 (미국에서) 가격이 높으며, 완벽하지 않은 상태의 조각조차도 그렇다."라고 적었다.[5]

4. 3. 음악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은 1956년 일본을 방문하여 노 연극 《스미다강》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드라마 작품 《굴뚝강》(1964)을 작곡했다.

가부키 연극 《스미다강 — 고니치노 오모카게》는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인 《호카이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연극은 나카가와 시메스케가 썼으며, 1784년 오사카에서 처음 제작되었다. 이 연극은 일본 가부키 레퍼토리에 계속 포함되어 있으며 서양에서도 공연된다. 2007년 여름, 나카무라 칸자부로 18세가 출연진을 이끌고 헤이세이 나카무라자에 의해 링컨 센터 페스티벌에서 재현되었다.[6]

스미다강 불꽃 축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불꽃놀이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료고쿠와 아사쿠사 사이의 강을 가로지르는 부선에서 발사된다. 여름 동안 같은 시기에 축제도 열린다.

다음은 스미다강을 소재로 한 노래들이다.

  • 꽃 (타키 렌타로) - 1900년
  • 스미다강 - 토카이린 타로, 1937년
  • 스미다강 - 시마쿠라 치요코, 1969년
  • 스미다가와 - 조노우치 사나에, 2000년
  • Sumidagawa - 이이즈카 마모루, 2011년. 앨범 『My Songs』수록
  • 스미다가와 야곡 - 이시하라 준코, 2016년. 싱글 『화장 고치기』수록
  • 스미다가와 - 이이즈카 마모루, 2017년. 싱글 『디스턴스』수록
  • 노비시로 - Creepy Nuts, 2021년. 앨범 『Case』수록

4. 4. 도자기

스미다강 도자기는 스미다강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원래 도쿄 근처 아사쿠사 지역에서 도예가 이노우에 료사이 1세와 그의 아들 이노우에 료사이 2세가 제조했다.[1][2][3] 1890년대 후반에 료사이 1세는 "플랑베"라고 불리는 중국 유약을 바탕으로 유약이 흐르는 표면에 인물을 적용하는 스타일을 개발했다.[2] 스미다 도자기 조각은 찻주전자, 재떨이 또는 꽃병일 수 있으며 서양으로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1] 료사이 1세의 손자 이노우에 료사이 3세는 1924년 제조 장소를 요코하마로 옮겼지만,[1][2][3] 조각들은 계속해서 스미다 도자기 제품으로 식별되었다.[2]

이 도자기는 허구의 섬 푸에서 제조되었고 태풍에 의해 쓸려 내려갔다는 등의 다양한 신화의 대상이 되었으며, 한국 전쟁 포로에 의해 제조되었다는 설도 있다.[3][4] 산드라 안다흐트는 1987년에 "스미다 강 도자기는 수집가, 딜러 및 투자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모티프는 동양 디자인이 묘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반적인 서양 개념에 부합한다; 꼬여있는 용, 불교 제자, 신화적, 전설적 존재와 생물. 따라서 이러한 도자기는 인기가 높으며 (미국에서) 가격이 높으며, 완벽하지 않은 상태의 조각조차도 그렇다."라고 적었다.[5]

5. 생태

시라히게 다리 상류에 설치된 만(灣)처


잉어붕어 등의 담수어 외에도, 하구에 가까운 하류부에는 전어, 청어, 농어, 보라, 망둥어, 가오리 등의 기수어가 서식하고 있다. 또한, 겨울이 되면 갈매기가 월동을 위해 날아온다. 1916년경에는 뱅어가 사라졌지만, 다이쇼 시대까지는 뱅어가 서식했었다.[45]

아즈마 다리 상류의 테라스 부분에는 수질 정화를 위해 갈대밭이 만들어져 작은 갯벌을 형성하고, 나 수많은 수생 곤충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 또한, 시라히게 다리 상류에는 인공적으로 만(灣)처가 만들어져 보라, 농어, 망둥어, 게, 민물새우가 서식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먹이로 하는 중대백로가마우지가 날아오고 있다.

참조

[1] 서적 Imari, Satsuma, and other Japanese export ceramics Schiffer Pub. 2000
[2] 간행물 Sumida gawa wares 1987
[3] 뉴스 Image of wonderful Sumida gawa vase emerges from disk 2006-08-06
[4] 문서 Andacht, p. 49
[5] 문서 Andacht, p. 51
[6] 문서 Lincoln Center Festival, ''Hokaibo'' program notes in ''Playbill''. July 10–29, 2007.
[7] 문서 Titsingh (1834), p. 415.
[8] 웹사이트 Sumida river and many bridges, Tokyo http://myaukun.wordp[...] 2012-07-17
[9] 문서 '100 Views of Great Tokyo in the Showa Era. #1' http://ocw.mit.edu/a[...] Koizumi Kishio
[10] 웹사이트 Discovering Construction as an Art – The 'Cologne Bridge Quarrel' http://www.bma.arch.[...] Roland May 2016-02-02
[11] 웹사이트 http://www.ihi.co.jp[...]
[12] 웹사이트 Tsukiji Market, R.I.P. (goodbye to the curve) https://thetokyofile[...] 2019-05-11
[13] 웹사이트 Tsukiji Bridge {{!}} NIPPON ENGINEERING CONSULTANTS CO.,LTD. https://www.ne-con.c[...]
[14] 웹사이트 荒川放水路の歴史 https://www.gotokyo.[...] 東京の観光公式サイト
[15] 문서 水神大橋より上流300メートルの地点。
[16] 문서 石浜の地名が残る。
[17] 문서 待乳山、浅草弁天山、鳥越など
[18] 문서 さらにその西側の上野台地との間は江戸時代に埋め立てられるまでは沼沢地だった(千束池、姫ヶ池)。
[19] 문서 隅田川東岸が下総国葛飾郡(隅田、寺島、小村井、亀戸島など)だった。
[20] 문서 西岸は江戸時代に橋場と呼ばれた。
[21] 문서 桜橋より上流500メートルの地点。
[22] 문서 牛嶋、請地(浮地)、柳島などの中洲があった(どれも武蔵国豊島郡に属した)。牛嶋は浅草・柳橋の対岸に2キロメートル以上細長く延び、現在の墨田区横網から古墳時代の壺が出土している。
[23] 문서 縄文時代までの旧利根川が現在の東京湾へ注ぐ主河道であり、澪筋が海底に残る。
[24] 서적 低地の景観と開発 高志書院 2013
[25] 문서 請地村飛木稲荷はこの河道の中洲に当たる。
[26] 문서 この下総国と武蔵国の国境を流れる旧利根川の河道は、現在の古利根川の埼玉県加須市琴寄、川口より下流、埼玉県春日部市の古隅田川、越谷市の元荒川、三郷市・八潮市の中川、東京都足立区・葛飾区境界の古隅田川、足立区・墨田区境界の旧綾瀬川であり、部分的に「隅田川」の名が残っている。その後、荒川瀬替え後の1683年(貞享3年)もしくは一説によれば寛永|寛永年間(1622年-1643年)に下総国と武蔵国の国境が変更された。
[27] 문서 埼玉県の古隅田川も併せて考えると、「隅田川」とは古くは旧利根川が春日部付近から南流し旧入間川と合流し東京湾へ注ぐまでを指していたらしい。
[28] 문서 江戸時代の隅田川の渡し#橋場の渡し。
[29] 문서 なお鎌倉時代以降になると、奥州へ向かうには、『吾妻鏡』によれば、岩渕から川口へ旧入間川 (埼玉県)|入間川を渡り北上する鎌倉街道#中路および奥大道(後に日光御成道)の経路が使われている。
[30] 문서 伊勢物語(東下りの段)で主人公が赴いている。
[31] 문서 日本武尊の一行が渡河した伝説も当地に伝わっている。
[32] 문서 治承4年〈1180年〉10月2日に隅田に宿泊)。
[33] 문서 '特別展 隅田川流域の古代・中世世界 水辺から見る江戸東京前史』の図録本(足立区立郷土博物館, すみだ郷土文化資料館, 宮本記念財団編、2007)では、現隅田川を宮戸川(別称ではなく正式名称として)、分流を(中世の)隅田川と位置づけ、中世においてはこの定義での隅田川(最下流は横十間川付近の河口)を国境としている(関連リンク [http://www.edo-tomo.jp/jetm/jetm52/jetm52-2.html#jt52202 中世から江戸初期にかけての隅田川 - 消えた隅田川]/ [https://web.archive.org/web/20120121082226/http://homepage3.nifty.com/nqe50897/skytree/ スカイツリー634m 一考 - 武蔵・下総の国境、隅田川])。
[34] 문서 今でも古典落語などでは「大川」が出てくる。また、大川右岸、特に吾妻橋周辺から佃 (東京都中央区)|佃周辺までを{{読み仮名|大川端|おおかわばた}}と称する。今でも佃 (東京都中央区)|佃に、大川端リバーシティ21にその名が残る。
[35] 문서 荒川に面せず、隅田川に面している荒川区が「荒川」の名を持つのは、こうした事情による。
[36] 서적 明治・大正家庭史年表:1868→1925 河出書房新社
[37] 문서 明治・大正家庭史年表:1868→1925
[38] 문서 足立区と葛飾区の境界を流れ、現在は多くの区間が暗渠化されている
[39] 웹사이트 東京都建設局・隅田川はどんな川? http://www.kensetsu.[...]
[40] 뉴스 隅田川の「歩ける橋」をぜんぶ渡る https://withnews.jp/[...] 朝日新聞社withnews
[41] 문서 隅田川を渡る鉄道路線では唯一の地下鉄路線である。
[42] 간행물 渋い外見の奥に在る弱さと温かさ [[キネマ旬報社]] 2021-11-01
[43] 웹사이트 ウォーターフェア・隅田川レガッタ開催記念展 https://www.city.sum[...] 墨田区 2022-06-18
[44] 웹사이트 (社)東京都ボート協会 設立以来の歩み http://tara.or.jp/wp[...] 一般社団法人 東京ボート協会 2022-06-18
[45] 서적 環境史年表 明治・大正編(1868-1926) 河出書房新社刊 2003-11-30
[46] 문서 1867년 11월 9일
[47] 웹사이트 1461:"스미다강"의 명칭의 유래를 알고 싶습니다. https://www.city.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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