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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케 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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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야케 간란은 1674년 교토에서 태어난 유학자로, 주자학을 배우고 미토 번에서 《대일본사》 편찬에 참여했다. 아라이 하쿠세키의 추천으로 에도 막부에 등용되었으나, 실각한 하쿠세키와 연좌될 것을 우려하여 기노시타 준안의 제자임을 부정했다. 그는 《중흥감언》, 《지기간담》, 《열사보경록》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1718년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 종4위가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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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케 간란
기본 정보
미야케 간란
미야케 간란
이름미야케 간란
본명미야케 야스시
츠구아키
간란
작가 필명란엔
생년월일1674년 11월 23일
사망년월일1718년 5월 17일
출생지일본, 교토부, 교토시
신분유학자
학문
사사기노시타 슌사이
가족
아버지미야케 시게토모
아들미야케 쇼사이, 미야케 겐사이
저서
주요 저서간란 문집
간란 시초
란엔 책자

2. 생애

미야케 간란은 1674년(엔포 2년) 교토조닌 유학자인 미야케 미치요시(또는 미야케 도에쓰)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사미 게이사이와 기노시타 준안에게서 주자학을 배웠다. 1698년(겐로쿠 11년) 에도로 가서 이듬해 구리야마 센보의 추천으로 미토번에 등용되었다. 쇼코칸 총재 우카이 렌사이가 간란이 쓴 구스노키 마사시게에 대한 글을 도쿠가와 미쓰쿠니에게 보인 것을 계기로 《대일본사》 편찬에 참여했다. 닛타 요시사다, 구스노키 마사시게, 나와 나가토시 등 난보쿠초 시대 인물들의 전기를 썼고, 1700년(겐로쿠 13년)에는 200석을 받았다. 1708년(호에이 5년) 진물번으로 승진했고, 1710년(호에이 7년) 쇼코칸 총재가 되었다.

1711년 아라이 하쿠세키의 추천으로 에도 막부에 등용되었으나,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장군직을 계승한 후 하쿠세키가 실각하자 연좌될 것을 우려하여 "참회서"(회서)를 쓰고 기노시타 준안의 제자임을 부정했다. 고다이고 천황의 실각을 소재로 난초 정부의 정당성을 논한 저서 《중흥감언》은 쇼와 천황을 가르쳤던 노기 마레스케가 자살 직전 쇼와 천황에게 전달한 책이다. 그 외에도 조선통신사 수행 학자와 함께 필담집인 《지기간담》, 아코 낭인들을 소재로 한 《열사보경록》을 남겼다.

1718년(교호 3년), 4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야나다 테이가(梁田蛻巖) 등 많은 문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묘소는 분쿄구 류코지에 있다. 1907년(메이지 40년), 종4위를 추증받았다.

2. 1. 초기 생애와 수학

미야케 간란은 1674년(엔포 2년) 교토조닌 유학자인 미야케 미치요시(또는 미야케 도에쓰)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사미 게이사이와 기노시타 준안에게서 주자학을 배웠다. 1698년(겐로쿠 11년) 에도로 가서 이듬해 구리야마 센보의 추천으로 미토번에 등용되었다. 쇼코칸 총재 우카이 렌사이가 간란이 쓴 구스노키 마사시게에 대한 글을 도쿠가와 미쓰쿠니에게 보인 것을 계기로 《대일본사》 편찬에 참여했다. 닛타 요시사다, 구스노키 마사시게, 나와 나가토시 등 난보쿠초 시대 인물들의 전기를 썼고, 1700년(겐로쿠 13년)에는 200석을 받았다. 1708년(호에이 5년) 진물번으로 승진했고, 1710년(호에이 7년) 쇼코칸 총재가 되었다. 1711년 아라이 하쿠세키의 추천으로 에도 막부에 등용되었으나,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장군직을 계승한 후 하쿠세키가 실각하자 연좌될 것을 우려하여 "참회서"(회서)를 쓰고 기노시타 준안의 제자임을 부정했다.

2. 2. 미토 번에서의 활동

미야케 간란은 교토의 조닌 유학자인 미야케 미치요시의 차남으로, 아사미 게이사이와 기노시타 준안에게서 수학했다. 1698년 에도로 이주한 후, 이듬해 구리야마 센보의 추천으로 미토번에서 일하게 되었다. 쇼코칸 총재 우카이 렌사이가 간란이 구스노키 마사시게에 대해 쓴 문장을 번주 도쿠가와 미쓰쿠니에게 보인 것을 계기로 《대일본사》 편찬에 참여하여, 닛타 요시사다, 구스노키 마사시게, 나와 나가토시 등 난보쿠초 시대 인물들의 이야기를 썼다. 1710년 우카이의 뒤를 이어 쇼코칸 총재가 되었다. 1711년 아라이 하쿠세키의 추천으로 막부에 등용되었으나, 아라이가 실각하자 연좌제로 처벌받을 위기에 처해 "참회서"를 써서 해명해야 했으며, 이 글에서 기노시타 준안의 제자였다는 사실 또한 부정해야 했다. 1718년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고다이고 천황의 실각을 소재로 난초 정부의 정당성을 논한 저서 《중흥감언》은 쇼와 천황을 가르쳤던 노기 마레스케가 자살 직전 쇼와 천황에게 전달한 책이다. 그 외에도 조선통신사 수행 학자와 함께 필담집인 《지기간담》, 아코 낭인들을 소재로 한 《열사보경록》을 남겼다.

1907년 종4위가 추증되었다.

2. 3. 막부 등용과 시련

미야케 간란은 교토의 조닌 유학자 미야케 미치요시(또는 미야케 도에쓰)의 차남으로, 아사미 게이사이와 기노시타 준안에게서 수학했다. 1698년 에도로 와 이듬해 구리야마 센보의 추천으로 미토번에서 일하게 되었다. 쇼코칸 총재 우카이 렌사이가 간란이 구스노키 마사시게에 대해 쓴 문장을 번주 도쿠가와 미쓰쿠니에게 보인 것을 계기로 《대일본사》 편찬에 참여했다. 닛타 요시사다, 구스노키 마사시게, 나와 나가토시 등 난보쿠초 시대 인물들의 전기를 썼다. 1710년 쇼코칸 총재가 되었고, 1711년 아라이 하쿠세키의 추천으로 에도 막부에 등용되었다.

그러나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쇼군이 되면서 하쿠세키가 실각하자, 간란은 연좌될 것을 우려하여 "참회서"(또는 회서)를 써서 해명해야 했다. 이 글에서 간란은 기노시타 준안의 제자였다는 사실 또한 부정해야 했다. 1718년 45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그의 죽음에 많은 문인들이 애도했다.

2. 4. 사망

1718년(교호 3년), 4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야나다 테이가(梁田蛻巖) 등 많은 문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묘소는 분쿄구 류코지에 있다. 1907년(메이지 40년), 종4위를 추증받았다.

3. 저서


  • 중흥감언』: 고다이고 천황의 건무 신정에 대한 득실을 논하고, 남조 정통론을 주장하였다.
  • 『지기간담』: 조선 사신을 수행한 학사 서기와 창화 필담한 문장을 모은 책이다.
  • 『열사보수록』: 아코 낭사를 논한 책이다.

3. 1. 《중흥감언》(中興鑑言)

고다이고 천황의 건무 신정에 대한 득실을 논하고, 남조 정통론을 주장하였다.

3. 2. 《지기간담》(識疑間談)

조선 사신을 수행한 학사 서기와 창화 필담한 문장을 모은 책이다.

3. 3. 《열사보경록》(烈士報境錄)

미야케 간란은 아코 낭사를 논한 『열사보수록』을 저술했다.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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