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치구
1. 개요
민치구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음서로 관직에 올라 연경 사절단의 수행원을 지냈다. 철종 때 연안부사를 거쳐 고종 즉위 후 공조 판서에 이르렀으며, 고종의 외척으로 국정에도 관여했다. 1866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를 주관하고, 익종의 옥책문 제작에 참여했다. 1874년 아들 민승호가 사망한 충격으로 병사했으며,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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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 -
충정로 (서울)
충정로는 서울 서대문구 아현삼거리에서 서대문역을 잇는 도로로, 민영환의 시호에서 유래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다케조에마치로 불렸다가 1946년 현재 이름으로 변경, 1984년 도로 구간 단축, 2010년 2개 이상 자치구 도로 고시, 2014년 버스전용차로 개통 등의 변화를 거쳤다. -
민영환 -
충정로역
충정로역은 서울 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이 환승되는 역으로, 1984년 2호선 개통 후 1996년 5호선 개통으로 환승역이 되었으며, 역명은 민영환 선생의 호를 딴 충정로에서 유래했다. -
1795년 출생 -
토머스 칼라일
토머스 칼라일은 19세기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이자 사상가로, 《프랑스 혁명사》, 《영웅 숭배론》 등의 저서를 통해 빅토리아 시대 문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영웅 숭배론, 민주주의 비판 등의 사상을 펼쳤다. -
1795년 출생 -
존 키츠
존 키츠는 1795년 런던에서 태어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으로, 가난한 환경 속에서 외과의사 견습생으로 일하다 시 창작에 몰두하여 "그리스의 옛 항아리에 대한 송가" 등의 명작을 남겼으나 25세에 결핵으로 요절했고 사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영국 문학의 거장이 되었다. -
1874년 사망 -
밀러드 필모어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 밀러드 필모어는 휘그당 소속으로 정치 경력을 쌓아 제13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으며, 1850년 타협을 관철시키고 미국-일본 간 최초 통상 조약을 체결하는 등 성과를 남겼으나, 노예제 문제에 대한 미온적 태도로 비판을 받으며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
1874년 사망 -
다테 요시쿠니
에도 시대 센다이 번의 마지막 번주인 다테 요시쿠니는 덴포 기근과 에조 경비로 재정난을 겪었고, 보신 전쟁에서 오우에쓰 열판 동맹의 맹주로 활동했으나 패배 후 영지를 잃고 은거하다 사망했다.
2. 생애
철종 때 연안부사를 지냈다. 그 뒤 1857년(철종 8년) 인천 부사와 청주 목사를 거쳐 1863년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그해 12월 외손자인 고종이 즉위하자 공조 참의가 되었다. 1864년(고종 1년) 5월 종2품으로 승진하여 동지돈령부사, 동지의금부사를 거쳐 9월 한성부좌윤으로 나갔다가 그해 12월 말 공조판서에 특진되었다.
1865년 1월 초 광주부 유수로 나갔다가 그해 7월 광주부유수로 재직 중 숭정대부로 특별 승진했다. 1866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때 가례 정사(嘉禮正使) 이경재(李景在)와 함께 가례부사(嘉禮副使)로 가례를 주관했다. 1866년 2월에는 익종의 옥책문 제작에 금보 전문 서사관으로 참여하고, 그해 3월 숭록대부로 가자되었다. 그해 보국숭록대부로 승진, 1868년 판의금부사, 행 지중추부사, 판돈령 부사를 역임하고 궤장을 하사받았다. 1869년 공조 판서가 되었다.
1874년 폭탄 테러로 아들 민승호와 손자가 사망하자 그 충격으로 병을 얻어 몸져 누었고 12월 14일 병사했다. 사후 바로 증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2.1. 초기 생애
음서로 관직에 올라 연경에 파견되는 사절단의 수행원으로 다녀온 뒤 금부도사, 사과 등을 거쳐 정선군수를 지냈다. 덕흥대원군의 후손 이옥(李𪸛)의 딸 전주 이씨와 결혼, 여흥부대부인 민씨 등의 자녀를 두었다. 한편 사위가 되는 이하응은 그의 처가와 먼 친족간이 된다.
2.2. 관직 생활
음서로 관직에 올라 연경에 파견되는 사절단의 수행원으로 다녀온 뒤 금부도사, 사과 등을 거쳐 정선군수를 지냈다. 덕흥대원군의 후손 이옥(李𪸛)의 딸 전주이씨와 결혼, 여흥부대부인 민씨 등의 자녀를 두었다. 한편 사위가 되는 이하응은 그의 처가와 먼 친족간이 된다.
철종 때 연안부사를 지냈다. 그 뒤 1857년(철종 8년) 인천 부사와 청주 목사를 거쳐 1863년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그해 12월 외손자인 고종이 즉위하자 공조 참의가 되었다가, 1864년(고종 1년) 5월 종2품으로 승진하여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 동지의금부사를 거쳐 9월 한성부좌윤으로 나갔다가 그해 12월 말 공조 판서(工曹判書)에 특진되었다.
1865년 1월 초 광주부유수로 나갔다가 그해 7월 광주부유수로 재직 중 숭정대부(崇政大夫)로 특별 승진했으며, 1866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때는 가례 정사(嘉禮正使) 이경재(李景在)와 함께 가례를 주관하는 가례부사(嘉禮副使)에 임명되었다. 1866년 2월에는 익종의 옥책문 제작에 금보 전문 서사관으로 참여하고, 그해 3월 숭록대부로 가자되었다. 다시 그해 보국숭록대부로 승진, 1868년 판의금부사, 행 지중추부사, 판돈령 부사를 역임하고 궤장을 하사받았다. 1869년 공조판서가 되었다. 아들이 없이 일찍 죽은 10촌 동생뻘 되는 민치록에게 자신의 아들 민승호를 양자로 입양보냈다. 이로서 민승호는 고종의 외숙에서 처남이 되었다.
1874년 폭탄 테러로 아들 민승호와 손자가 사망하자 그 충격으로 병을 얻어 몸져 누었고 12월 14일 병사했다. 사후 바로 증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2.3. 왕실과의 관계 강화
음서로 관직에 올라 연경에 파견되는 사절단의 수행원으로 다녀온 뒤 금부도사, 사과 등을 거쳐 정선군수를 지냈다. 덕흥대원군의 후손 이옥(李𪸛)의 딸 전주 이씨와 결혼, 여흥부대부인 민씨 등의 자녀를 두었다. 한편 사위가 되는 이하응은 그의 처가와 먼 친족간이 된다.
1863년 외손자인 고종이 즉위하자 1864년 5월 종2품으로 승진, 9월 한성부좌윤으로 나갔다가 그해 12월 말 공조판서에 특진되었다. 1866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때는 가례 정사(嘉禮正使) 이경재(李景在)와 함께 가례를 주관하는 가례부사(嘉禮副使)에 임명되었다. 아들이 없이 일찍 죽은 10촌 동생뻘 되는 민치록에게 자신의 아들 민승호를 양자로 입양보냈다. 이로서 민승호는 고종의 외숙에서 처남이 되었다.
2.4. 사망
閔致久중국어는 1874년 폭탄 테러로 아들 민승호와 손자가 사망하자 그 충격으로 병을 얻어 몸져 누웠고, 그해 12월 14일 병사했다. 사후 바로 영의정에 증 추증되었고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3.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고조부 | 민진영(閔鎭永) | 민진후, 민진원의 이복 동생 |
| 증조부 | 민악수(閔樂洙) | |
| 할아버지 | 민백술(閔百述) | |
| 아버지 | 민단현(閔端顯) | 첨지중추부사 역임 |
| 부인 | 정경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 | 1873년 11월 17일 사망, 통덕랑 이옥(李𪸛)의 딸, 경원군 이하전의 고모 |
| 장녀 | 여흥부대부인 민씨(驪興府大夫人 閔氏) | 1818년 - 1898년, 흥선대원군의 아내 |
| 사위 | 흥선대원군 이하응(興宣大院君 李昰應) | 1820년 ~ 1898년 |
| 외손자 | 고종 이희(高宗 李熙) | |
| 외손자 | 흥친왕 이재면(興親王 李載冕) | |
| 장남 | 민태호(閔泰鎬) | 민태호(閔台鎬)와는 동명이인 |
| 차남 | 민승호(閔升鎬) | 1830년 - 1874년, 민치록에게 입적 |
| 삼남 | 민겸호(閔謙鎬) | 1838년 - 1882년 |
| 손자 | 민영환(閔泳煥) | 1861년 - 1905년, 민겸호의 장남 |
| 차녀 | 여흥민씨 | 1859년 - 1942년 |
| 사위 | 주용선 | 대광보국승록대부 우의정 겸 이조판서 신안주씨, (1853년 - 1925년) |
| 외손자 | 주양규 | 신안주씨 승록대부 행 이조참판, (1904년 - 1999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