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렬
1. 개요
박명렬은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호응하여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퇴학당했으며, 이후 비밀결사 조직 및 반전 운동을 펼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중화민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에서 활동했으며, 광복 후에는 한국독립당, 자유당, 민주공화당 등에서 활동했다.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받았으며, 만성 당뇨병으로 투병하다 2003년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이름 | 박명렬 |
|---|---|
| 원래 이름 | 朴命烈 |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군 공주읍 |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 종교 | 유교(성리학) |
| 본관 | 밀양 |
| 배우자 | 김소천 |
| 자녀 | 장남 박승철(감염내과 의사) |
| 거주지 | 충청남도 공주 허베이성 베이핑 쓰촨성 충칭 충청남도 홍성 서울특별시 |
| 학교 | 충청남도 공주고등보통학교 |
|---|
| 주요 경력 | 자유민주연합 행정특임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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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 무소속 |
|---|
| 직책 | 대한민국 임시 정부 내무부 행정비서요원 |
|---|---|
| 주석 | 송병조 이동녕 김구 |
| 임기 | 1936년 2월 29일 ~ 1945년 8월 15일 |
| 직책2 |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예하 사무행정특보보좌관 직무대리 |
| 임기2 | 1948년 8월 26일 ~ 1949년 1월 31일 |
| 대통령2 | 이승만 |
| 부통령2 | 이시영 |
| 총리2 | 이범석 |
| 장관2 | 이범석 |
| 차관2 | 최용덕 |
| 후임2 | 전경찬 |
| 서훈 내역 | 1993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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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1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2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3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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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박래군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생 박래전의 죽음을 계기로 인권 운동에 참여하여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 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 및 정책실장,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국 국장, 다산인권재단 상임이사,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및 소장, 서울특별시 인권위원회 전문위원 및 부위원장, 2014년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이다. -
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 -
김여진
김여진은 1998년 영화 데뷔 후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고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우이다.
2. 생애
충청남도 공주 출신이다. 1930년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호응하여 동맹휴학과 반일 시위를 주도하다 퇴학당했다. 이후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반전(反戰) 운동을 전개했으며, 이로 인해 1932년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받고 약 11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에도 고향 공주에서 독서회를 조직해 항일 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이어가다 1935년 다시 체포되었으나, 기소유예 처분으로 풀려났다. 같은 해 중화민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고, 1936년부터 충칭에서 임시정부 내무부 행정비서요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광복 이후 1947년 대한민국에 귀국하여 한국독립당, 자유당, 민주공화당,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등 여러 정당에서 활동하였으나, 특정 정당에 오래 소속되기보다는 대부분의 기간을 야인으로 보냈다. 만년에는 당뇨병으로 투병하였으며, 2003년 10월 19일 향년 92세로 별세하였다.
2.1. 항일 독립 운동 (1930-1945)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1930년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호응하여 동맹휴학과 반일 시위를 주도하다 퇴학당했다. 이후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반전(反戰) 운동을 전개했으며, 이로 인해 1932년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받고 약 11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에도 고향 공주에서 독서회를 조직해 항일 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이어가다 1935년 다시 체포되었으나, 기소유예 처분으로 풀려났다. 같은 해 중화민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고, 1936년부터 충칭에서 임시정부 내무부 행정비서요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2.1.1. 공주고보 시절 항일 운동
충청남도 공주 출신이다. 1930년 1월, 공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던 중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호응하여 동맹휴학과 반일 가두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퇴학 후에도 항일 운동을 멈추지 않고, 동문 후배 김순태, 공주소년연맹 상임위원장 안병두 등과 함께 반전(反戰) 운동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1932년 3월 5일에는 공주 사립 영명고등보통학교를 비롯한 공주 읍내 여러 곳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내용의 벽보를 붙이고 격문을 뿌리는 활동을 펼쳤다. 이 일로 같은 해 3월 10일, 동지 4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결국 1932년 12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1933년 2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 형이 확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약 11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2.1.2. 비밀결사 및 반전 운동
1930년 1월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동맹휴학과 반일 가두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동문 후배 김순태(金淳泰), 공주소년연맹 상임위원장 안병두(安炳斗) 등과 함께 반전 운동을 위한 비밀결사조직을 결성하여 운영하였다.
1932년 3월 5일, 공주 사립 영명고등보통학교를 비롯한 공주 읍내 곳곳에 반전(反戰) 내용을 담은 벽보를 붙이고 격문을 뿌리는 활동을 전개했다. 이 사건으로 같은 해 3월 10일 동지 4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2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듬해인 1933년 2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나기까지 약 11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석방 이후에도 고향인 충청남도 공주에서 독서회를 조직하여 반일 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35년 7월 2일 다시 체포되어 한 달여간 조사를 받았다.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예심(豫審)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석방된 후, 같은 해 12월 중화민국 허베이성 베이핑으로 망명하였다. 1936년 1월부터는 쓰촨성 충칭으로 이동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 행정비서요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2.1.3.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1935년 7월 2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독서회를 조직하여 반일 사상을 고취하다가 체포되었으나, 한 달여의 조사를 받고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의 예심에서 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되었다. 같은 해 12월, 중화민국 허베이성 베이핑으로 망명하였다. 1936년 1월 이후에는 쓰촨성 충칭으로 이동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하였고, 내무부 행정비서요원으로 활동하였다.
2.2. 광복 이후 정치 활동 (1945-2003)
1947년 대한민국에 귀국하여 한국독립당, 자유당, 민주공화당,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등 여러 정당에서 활동하였으나, 특정 정당에 오래 소속되기보다는 대부분의 기간을 야인으로 보냈다.
3. 학력
* 1930년 충청남도 공주고등보통학교 중퇴 (1986년 공주고등학교 명예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