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상유적
1. 개요
박제상 유적은 박제상과 관련된 유적들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박제상은 고구려와 왜로 사행을 다녀온 인물이며,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치산서원이 건립되었다. 치산서원지에는 충렬묘, 신모사, 쌍정려가 있었으며 현재 복원되어 있다. 또한, 박제상의 부인 치술신모와 관련된 망부석과 은을암이 울주군 두동면과 범서읍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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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의 관광지 -
태화강 국가정원
태화강 국가정원은 울산 태화강 일대에 조성된 대한민국 국가정원으로, 십리대숲을 포함한 다양한 테마정원과 역사적 건축물을 갖춘 곳이다. -
박제상 -
부도지
박금이 저술한 부도지는 징심록의 상교로서 한민족의 기원과 역사를 짐세, 선천, 후천 시대로 구분하여 마고를 시조로 환인, 환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고대 신화와 단군조선 건국 이후 삼한 시대까지 다루는 책이다. -
박제상 -
징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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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의 기념물 -
서생포 만호진성
서생포 만호진성은 조선 시대 초기에 축성되어 울산읍성을 보호하던 수군 진성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왜군에 함락된 후 폐성되었고, 정유재란 이후에는 서생포왜성으로 옮겨져 유지되다가 현재는 성벽 일부와 해자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
울산광역시의 기념물 -
개운포성지
개운포성지는 울산만과 외황강 합류 지점에 있는 조선시대 성곽으로, 경상좌수영 수군 기지로 활용되었고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과 군선 건조 및 수리 기능을 수행하는 전선창이 설치되었으나 1895년에 폐지된 타원형의 평산성, 포곡성이다.
2. 생애와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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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은 신라 눌지 마립간(재위 417∼458) 때 활동한 충신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혁거세의 후손으로 제5대 파사이사금의 5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아도갈문왕, 아버지는 파진찬(波珍飡) 물품(勿品)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산 지방의 토호 세력으로서 삽량주간(歃良州干)이라는 직책에 있었다.
2.1. 고구려와 왜로의 사행
당시 신라는 고구려 및 왜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물왕의 둘째 아들 복호를 고구려에, 셋째 아들 미사흔을 왜에 볼모로 보냈다. 내물왕의 큰아들인 눌지왕은 즉위 후 두 동생을 고구려와 왜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박제상을 천거하였다.
박제상은 418년(눌지왕 2) 왕명을 받들어 고구려에 가서 장수왕을 언변으로 회유하여 복호를 구출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다시 왜국에 인질로 가 있는 미사흔을 구출하기 위해 부인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왜로 떠났다. 미사흔을 구출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자신은 붙잡히고 말았다.
2.2. 최후와 추증
왜왕은 박제상을 신하로 삼기 위해 협박과 감언이설로 회유했으나, 박제상은 끝내 신라에 대한 충정을 지키다가 참형을 받아 죽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눌지왕은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그를 대아찬으로 추증하고, 부인을 국대부인(國大夫人)으로 책봉하였으며, 둘째 딸을 미사흔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3. 유적
박제상과 관련된 유적들은 그의 충절과 희생을 기리는 중요한 장소들이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1745년(영조 21)에 건립된 치산서원 터와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 및 범서읍 척과리에 있는 망부석과 은을암이 있다.